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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영혼을 지키는 길

베드로후 이한규 목사............... 조회 수 894 추천 수 0 2015.04.13 23:2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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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벧후2:17-22 
설교자 : 이한규 목사 
참고 : 실시간 온라인 새벽기도(1574) 2015.3.16 

자기 영혼을 지키는 길

(벧후2:17-22)


< 거짓에 현혹되지 마십시오 >

 일전에 미국 사이클 선수인 랜스 암스트롱의 얘기를 담은 책이 나왔습니다. 1996년 그는 25세에 고환암과 세포종양이 뇌와 폐까지 퍼졌습니다. 처음 암 판정을 받고 암을 부인하고 싶었지만 결국 현실을 인정하고 기지회견을 통해 자신이 암에 걸렸으며 반드시 완쾌해서 돌아오겠다고 했습니다.

 그때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희망을 찾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희망의 말만 선택해서 듣고 작은 희망도 있으면 크게 감사하며 욕심을 버렸습니다. 특히 사이클 선수로 돌아간다는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뇌수술 후 항암치료를 하면서 심한 구토와 현기증에 시달리면서도 그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겠다는 신념과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결국 완치 판정을 받고 약속대로 사이클 선수로 돌아왔습니다.

 얼마 후, 그는 투르 드 프랑스 대회에 참가해 암과 싸우던 때를 생각하며 피레네산맥의 험한 길을 달렸습니다. 결국 2등과의 격차를 7분 넘게 따돌리고 우승했습니다. 죽음을 극복한 그의 정신력을 아무도 이겨낼 수 없었습니다. 우승 직후 그의 투병을 가까이서 지켜본 한 의료인이 말했습니다. “하나님! 그가 머리카락이 다 빠져 앙상한 몸으로 침대에 누워 간신히 몸을 움직이던 정말 그 사람입니까? 세상에 이처럼 멋진 일이 어디 있습니까?”

 그 후 1999년부터 2005년까지 투르 드 프랑스 대회 7연속 우승의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미국 최고의 스포츠 스타가 되고 암 환자 후원재단을 설립해 많은 후원을 받고 책도 냈습니다. 여기까지는 책에 나온 소설 같은 감동적인 얘기입니다. 그런데 그가 약물의 도움으로 우승한 것이 발각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2012년 사이클 계에서 영구 퇴출되었고 미국 정부는 그에게 약 1350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습니다. 거짓 인간 승리로 인생이 완전히 추락한 것입니다.

 거짓 승리의 탑은 언젠가는 반드시 무너집니다. 물론 이 세상에 완벽하게 진실한 사람은 없습니다. 때로는 어쩔 수 없이 선한 의도로 거짓말도 합니다. 그러나 명백한 거짓술수로 사람을 미혹해 승리와 성공을 얻으려고 하면 안 됩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종교에서도 거짓 기적과 거짓 치유와 거짓 예언으로 영혼을 미혹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영혼은 자기가 힘써 지켜야 합니다.

< 자기 영혼을 지키는 길 >

 초대교회 때도 곳곳에 거짓 선지자들과 이단들이 창궐했습니다. 그들에 대해 베드로는 뭐라고 말합니까? 본문 17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니 그들을 위하여 캄캄한 어둠이 예비되어 있나니.” 베드로는 이단들을 ‘물 없는 샘’이라고 표현합니다. 목마를 때 샘에 가봤는데 물이 없다면 얼마나 실망이 큽니까? 이단들에게는 목마름을 해결해줄 무엇이 있는 것 같았는데 막상 가보니까 그들이 내세우는 진리나 체험에는 거짓이 많고 윤리적으로도 비상식적인 언행이 많아서 영혼이 더 목마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베드로는 거짓 교사들을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라고 표현합니다. 그들은 자욱한 안개처럼 뭔가 신비한 것을 내세우지만 내용도 없고 열매도 없고 생명력도 없어서 고난의 바람이 불면 흔적 없이 허무하게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이단과 사이비들이 내세우는 가르침과 기적을 보면 “야! 저기에는 뭔가 신비한 것이 있네.”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막상 그곳에 들어가 보면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허무한 거짓 실체를 금방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 그때라도 과감히 발을 빼야 하는데 돈과 인맥과 사상에 복잡하게 얽히고 두려움과 허영심과 자존심의 복잡한 감정에 얽혀 발을 빼기 쉽지 않습니다. 결국 이단에 빠지면 인생이 어둡고 캄캄해집니다. 캄캄하면 아름다운 것이 보이지 않듯이 이단에 빠지면 아무리 좋은 은사와 재능과 가능성이 있어도 무용지물이 됩니다. 그러므로 거짓 교사와 이단들로부터 자기 영혼을 지켜야 합니다. 그처럼 자기 영혼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헛된 자랑을 주의하십시오

 본문 18절 전반부 말씀을 보십시오. “그들이 허탄한 자랑의 말을 토하며.” 이단들은 ‘허탄한 자랑의 말’이 많습니다. 그래서 자랑하는 말을 잘 분별해 들어야 합니다. 때로는 간증집회도 잘 분별해 들어야 합니다.

 간증을 하다 보면 청중을 감동시키려고 스토리의 강도가 점점 심해지다가 나중에는 없던 말도 지어내고 더 나아가서 그 지어낸 말을 본인이 정말 믿기도 합니다. 또한 겸손한 표현을 쓰면서도 은혜와 영성을 은근히 자랑하다가 심해지면 ‘허탄한 자랑의 말’을 토하게 되고 더 심해지면 허풍이 심한 말을 상습적으로 하면서 ‘허풍쟁이’로 발전할 때도 많습니다. 그래서 한때 간증집회를 열심히 인도하러 다녔다가 말에 과장이 심해지는 것을 느끼고 양심에 찔려서 간증집회 초청에 더 이상 응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사람도 있습니다.

 특히 즉흥적인 간증은 생생한 언어로 전달되기에 사람에게 주는 임팩트가 더 강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본능에 따라 자기를 자랑하는 말이 자기도 모르게 나올 수도 있고 또한 유머 중에 실수하는 말도 나올 수 있습니다. 그때마다 정말 말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낍니다. 사람에게는 자랑하려는 본능이 있어서 말의 여과장치가 잘 작동되지 않으면 어느새 자랑하는 말이 나가버리고 그 다음에 후회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자기를 자랑하려는 입술을 절제해야 합니다.

 그런 자랑의 절제가 쉽지 않음을 알기에 양심적인 사람은 자랑스러운 간증도 조심합니다. 반면에 내세울 것이 별로 없는 거짓 사역자들은 사람을 미혹하려고 영성과 신앙을 대놓고 자랑하다 못해 심지어는 신비하게 포장까지 하면서 허탄한 거짓 자랑을 일삼는 허풍쟁이가 될 때가 많습니다. 신기한 일은 어떤 사람은 미혹되기로 작정된 사람처럼 그런 허풍과 거짓에 넘어가 몸과 마음과 물질을 다 날릴 때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헛된 자랑을 하는 것도 주의해야 하지만 헛된 자랑에 넘어가지 않는 것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2. 육체의 정욕을 피하십시오

 본문 18절 후반부 말씀을 보십시오. “그릇되게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겨우 피한 자들을 음란으로써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하는도다.” 사람들이 잘못된 사상과 손길에서 겨우 피하면 이단들은 음란과 육체의 정욕을 앞세워 사람을 또 미혹한다는 것입니다.

 요즘도 욕정의 충족을 내세우는 이단들에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미혹되어 넘어갑니까? 사람이 많이 몰리는 곳이라고 무조건 믿지 마십시오. 사람은 바른 곳에 몰리기보다 욕정을 충족시켜준다는 곳에 몰릴 때가 더 많습니다. 또한 사람은 소유되고 싶거나 소유하고 싶어서 몰릴 때가 많기에 군중심리도 주의해야 합니다. 다단계 하는 곳에 가보십시오. 상식적으로 돈을 벌 수 없는 시스템이고 그 폐해가 무수히 알려졌는데도 여전히 많이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왜 그렇습니까? 물질욕 때문입니다.

 구원파 유병언은 집회 때마다 건강을 강조하고 건강식품을 팔아 큰 폭리를 취했습니다. 그런 곳으로도 사람들이 얼마나 몰렸습니까? 그때 그곳에 몰려든 사람들은 자기네들이 교주의 이용거리가 되는 것을 몰랐을 것입니다. 이단 교주들은 교인들을 사랑 대상이 아닌 이용 대상으로 삼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헌금을 작정시키는 것도 주의해야 합니다. 특히 헌금 작정과 액수까지 강요하는 것은 이단적인 행위에 가깝습니다.

 물론 공짜 심리도 주의해야 합니다. 공짜 좋아하면 결국은 더 손해를 봅니다. 장사꾼들이 시골 노인들에게 왜 공짜 여행을 시켜줍니까? 고가의 건강식품을 팔기 위해서입니다. 그런 유사한 일들이 거짓 종교인들을 통해서도 많이 일어납니다. 결국 공짜 심리가 기복주의가 자라는 토양이 되기에 공짜 심리를 잘 버려야 합니다. 은혜는 공짜로 주어지는 것이지만 공짜 심리를 조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짜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면 대가를 치르는 삶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런 헌신적인 믿음에는 결코 손해가 없습니다.

3. 자유를 남용하지 마십시오

 본문 19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들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자신들은 멸망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라.” 이단들은 자신들이 참 자유를 준다고 하지만 그들 자신부터 자유인이 아닌 거짓과 정욕에 속박된 멸망의 종들이란 뜻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하나님이 주고 말씀이 주는 것입니다. 말씀을 떠난 이단들의 말을 들으면 죄와 욕심의 종이 되어 오히려 자유를 잃습니다.

 다단계 판매 강사들은 사람을 처음에 이렇게 미혹합니다. “행복은 자유에 있습니다. 자유를 누리려면 돈이 있어야 합니다. 돈은 원하는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자유를 줍니다.” 그렇게 돈이 자유를 준다는 말에 미혹되면 돈에 속박되면서 진짜 자유를 잃고 영혼과 인생과 열정과 재산까지 날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단들이 참 자유를 준다고 하는 미혹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그런 거짓에 넘어가면 자유를 오히려 잃습니다.

 또한 베드로는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된다.”고 했습니다. 고대에 전쟁에서 지면 다 종으로 끌려갔습니다. 즉 이단의 미혹에 넘어가면 결국 자유를 잃고 사탄의 종이 된다는 뜻입니다. 요새 이단들로 인해 몸과 마음과 인격이 망가지고 가정이 파괴되고 물질적인 피해를 입을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폐해가 명백하면 사회적인 제재는 물론 법적인 제재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자기 통제 능력을 가지는 것입니다. 참된 자유는 주어진 자유를 절제하고 자기 자리를 잘 지킬 때 더 누릴 수 있고 더 빛나게 됩니다.

 비행기가 항로를 이탈하고 배가 해로를 이탈하면 큰 위험에 빠집니다. 그처럼 하나님이 각자에게 있게 하신 자리에서 하나님이 가게 하신 길로 가려고 해야 인생사고도 줄고 인생이 아름답고 행복하게 됩니다. 천사가 자기 자리를 지키면 아름답지만 교만하게 자기 자리를 떠났기에 마귀가 된 것입니다. 가룟 유다가 자기 자리를 지켰으면 베드로처럼 빛나는 제자가 되었을 텐데 자기 자리를 떠났기에 지옥 백성이 된 것입니다.

 성경에 있는 말씀을 불순종하는 것도 죄지만 성경에 없는 말씀을 주제넘게 해서 사람을 미혹하는 것은 더욱 큰 죄입니다. 또한 시키는 일을 무책임하게 안 하는 것도 문제지만 안 시킨 일을 주제넘게 하는 것은 더욱 큰 문제입니다. 그래서 저도 자주 이런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이 시키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은 아닌지요?” 시키지 않은 일을 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면 그 일을 하면서 고통도 받지만 하나님이 다른 복된 일을 시켜주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자리를 지키고 하나님이 맡기시는 일 안에서 최선을 다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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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믿음을 버리지 마십시오

 본문 20절 말씀을 보십시오. “만일 그들이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이 세상에서 사람에게 가장 큰 불행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알고 세상의 더러움을 피했지만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지 않아서 믿음을 버리고 이단에 미혹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 자유를 잃고 세상에 속박되면서 나중 형편이 더 비참해집니다.

 이단을 따라 잘못된 믿음을 가지면 가장 비참한 존재가 됩니다. 그러므로 믿을 때 바른 진리를 따라 바르게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으면 신천지 등의 이단에 미혹될 수 없습니다. 결국 신천지 등에 미혹되는 것은 실제로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과 같아서 구원받지 못하고 그 형편은 더욱 비참한 형편이 됩니다.

 계속해서 본문 21절 말씀을 보십시오.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그들에게 나으니라.” 이 구절에서 ‘의의 도’는 ‘진리의 복음’을 뜻하고 ‘거룩한 명령’은 ‘복음적인 삶’을 뜻합니다. 복음을 알았다가 배교하는 삶보다 차라리 복음을 몰랐던 것이 더 낫다는 말입니다. 결국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삶은 이단에 빠져 참된 믿음을 버리는 배교자의 삶입니다.

 그 배교자의 비참한 형편을 베드로는 당시 속담을 인용해 좀 더 생생하게 표현합니다. 본문 22절 말씀을 보십시오. “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 교인이 이단에 빠지는 것은 마치 개가 토한 것을 다시 찾아서 먹고 목욕한 돼지가 다시 더러운 구덩이에 눕는 것과 같은 비참한 모습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 있어도 이단의 거짓에 미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 거짓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

 성경은 “거짓 증거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 말은 단순히 “거짓말하지 말라!”는 말과는 차원이 다르게 “조직적으로 꾸며내는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사람 중에 거짓말의 죄에서 완벽하게 의로운 인생은 없습니다. 선한 거짓말도 거짓말입니다. 상처와 수치가 없도록 유사하게 둘러대는 말이나 속으로는 “희망이 없어!”라고 하는데 입으로는 “희망이 있어요.”라고 하는 것도 엄밀하게 말하면 거짓말입니다. 그처럼 완벽하게 진실하지는 못해도 조직적으로 꾸며내는 명백한 거짓말만은 주의해야 합니다.

 특별히 거짓 치유사역자를 경계하십시오. 입으로 “나았습니다.”라고 믿음으로 선포했다가 안 나으면 부끄러운 줄 알고 그 다음부터는 그런 말을 조심해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선포한 것이 틀려도 계속 또 “나았습니다.”라고 거짓으로 습관적으로 선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한번 낫기만 하면 그 사례만 열심히 선전해서 마치 자신이 치유 사역자인 양 치유집회를 열고 늘 하던 대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공적인 치유를 선포합니다. 그래서 낫지 않으면 예수님의 이름이 얼마나 크게 손상됩니까? 그것은 믿음이 아니고 거짓입니다.

 어떤 거짓 치유 사역자는 “예수 이름으로 나았다!”고 선포했는데 낫지 않으니까 “당신 믿음이 없어서 그렇다.”고 꼼수를 부리며 병자에게 책임을 돌리고 상처까지 줍니다. 그것은 더욱 나쁘다 못해서 아주 사악한 언행입니다. 믿음이 없었다면 아예 선포하지 말아야 하지 선포하고 나서 병자에게 책임을 돌리니 얼마나 얄팍한 거짓말입니까? 그런 얄팍한 거짓들이 제재되지 않으니까 거짓 사역자들이 회개할 줄 모르고 계속 미혹하고 다니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이 완벽하게 진실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공적인 자리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내세워 거짓말하는 것을 가볍게 여기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이 훼손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한 구절이라도 진실이 의심되면 위대한 문서조차 정경에서 탈락시켰습니다. 한 번의 거짓말이나 의심스런 말도 있으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포함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한 번의 공적인 거짓말 이력도 큰 수치로 여기는 엄격함이 있어야 거짓 사역자들이 능력자로 인정되는 오해가 줄어들 것입니다.

 그 동안 거짓 예언 사역과 치유 사역 등으로 영혼과 육신이 망가지고 가정이 깨지고 돈을 털린 사례가 한둘이 아닙니다. 한 신학박사는 병든 사모를 두고 “믿음의 기도로 치유한다.”고 해서 병원에 데리고 가지 않아 결국 그 사모가 죽었습니다. 그러자 아들은 아버지가 엄마를 죽였다고 크게 분노해서 아버지와 절연했습니다. 믿음으로 치료한다는 것은 현대의학의 힘을 빌리지 않고 치료한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은 기적의 치료자이십니다. 그러나 사람의 헛된 작위적인 행사는 하나님의 기적적인 치유를 오히려 멀어지게 합니다.

 요새 “아니면 말고!” 식의 정치가 얼마나 정치를 혐오하게 합니까? 그처럼 “아니면 말고!” 식의 치유 사역과 예언 사역은 교회와 목회자를 불신하게 하고 심지어는 믿음 자체를 혐오하게 만듭니다. 특히 병들어 마음이 약해져서 무엇이라도 의지하고 싶을 때 “아니면 말고!” 식의 거짓 사역자들의 농간에 당한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그렇게 순수한 사람들의 몸과 마음과 물질을 빨아먹고 엄청나게 커져 상당한 권력집단이 된 거짓 사역자들의 공동체도 꽤 많습니다. 그들로 인해 한국 교회 전체의 이미지가 얼마나 추락되었습니까?

 한국 교회를 살리려면 거짓 치유, 거짓 예언, 거짓 사역에 넘어가지 않도록 거짓을 분별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바른 말씀사역에 더욱 요구되는 때입니다. 이제 자신만 살려고 하지 말고 보다 많은 사람들을 살리고 바른 길로 이끄는 작은 초석이라도 되십시오. 그런 소망을 가지고 바른 진리를 널리 알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바른 인물을 많이 키워내는 일에도 관심을 기울이십시오. 그래서 교회가 어려워진 시기에 교회를 다시 살리는 시대적인 소명을 다하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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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베드로후 새 하늘과 새 땅 벧후3:1-13  정용섭 목사  2009-11-25 2551
4 베드로후 불심판의 가능성 벧후3:3-6  강종수 목사  2009-01-18 1632
3 베드로후 그리스도의 영광과 증거 벧후1:16-22  소재열 목사  2008-01-23 1791
2 베드로후 몸을 긍정하는 신앙 벧후3:11-13  홍명관 형제  2004-05-05 2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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