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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처럼 살처럼

창세기 김남준 목사............... 조회 수 1765 추천 수 0 2013.05.20 16:0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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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창2:23 
설교자 : 김남준 목사 
참고 : 2009-05-24 http://www.yullin.org 

뼈처럼 살처럼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창2:23).

 

Ⅰ. 본문해설

 

가정은 하나님께서 하와를 창조하시고 아담과 짝지어 주신 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고안하신 결혼의 목적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결혼의 목적을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창 2:18)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사람”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히브리어로 ‘아담’입니다. 이 아담이라는 말은 사람이라는 보통명사도 되고, 아담, 개인의 이름을 지칭하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습니다. 설교자는 이것을 개인 아담으로 보는 것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독신도 있기 때문입니다.

 

Ⅱ. 결혼의 목적

 

하나님의 말씀대로 결혼의 목적 두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함께 있게 함과 도와주게 함입니다.

 

A. 함께 있게 함

 

함께 있게 만드신 것이 결혼의 목적이라고 할 때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이 떠오릅니다. 그렇다면 왜 처음부터 두 사람을 만드시지 한 사람을 만드시고 좋지 못하다고 하신 것입니까? 게다가 창세기 1장 1절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을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담을 만드신 후 무언가 부족한 것이 있어서 화급히 하와의 창조 계획을 세우셨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미 남녀로 인간을 창조하실 계획을 가지고 계셨지만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시차를 두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아담으로 하여금 홀로 사는 것과 하와와 같이 사는 것을 비교하게 함으로써 함께 사는 것이 훨씬 복되다는 것을 깨닫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아담의 몸을 취하여 여성을 만드심으로써 두 사람이 한 몸이라는 것을 보여주시는 한편, 아내의 창조에 앞서 남편을 먼저 창조하심으로 가정의 질서를 암시하신 일입니다. 물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을 잘못 해석하고 있습니다. 특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베필을 지으리라”라는 구절에서 ‘위하여’라는 말을 풀이할 때 그렇습니다. 마치 여자의 사명은 남자를 위하는 것이며, 여성의 사명이 남자의 사명에 종속된 것처럼 받아들입니다. 이 해석은 성경과는 상관이 없는 남성 우위론적인 사고방식의 결과입니다. ‘위하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케네게도’는 종속의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상응하는(corresponding to)의 의미를 지닙니다. 그러므로 남녀가 몸은 공간적으로 함께 있고, 마음과 정신은 거리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연합을 이루는 상태가 되는 것이 결혼의 목적입니다.

 

B. 도와주게 함

 

또한 하나님께서는 도와주게 하시기 위해 결혼제도를 만드셨습니다. 여기에도 남성 우위론적인 해석이 덧붙여집니다. 즉 돕는다는 것부터 여자의 사명이 남성의 것에 부차적인 혹은 이바지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서 돕는 배필은 형용사와 명사로 나뉘어져 있지만 원문에는 히브리어 ‘에제르’로 나옵니다. 이 단어는 “여호와는 나의 도움이시오.”라고 말할 때 시편 기자가 많이 사용한 단어입니다. 그리고 이 ‘에제르’가 군대 용어로 쓰일 때, 전세가 기울어진 급박한 상황에 지평선에서 흙먼지를 날리며 달려오는 대규모 응원군을 가리킵니다. 만일 ‘에제르’가 없었다면 패배했을 전쟁을 그 ‘에제르’의 도움으로 말미암아 승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도움은 단순히 보조적인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위의 두 가지 목적 아래서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를 각각 중요한 목적을 가지고 연합을 이루어, 창조의 목적에 이바지하도록 뜻하신 것입니다.

 

또 우리가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종교명령-선악과를 먹는 것을 금지함-과 함께 주신 문화명령입니다. 종교명령과 같이 아담이 인류의 머리로서 받은 문화명령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8)라는 말씀입니다. 아담 혼자서는 이 명령을 준행할 수 없었습니다. 이 세 가지 명령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시는 생육의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류를 한 번에 창조하지 않으시고 한 사람의 남자와 여자를 통해 인류를 만들어 가셨습니다. 아담이 하와를 보면서 자신의 일부로 생각하게 하신 것처럼, 인류가 가정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을 본받고, 그 안에서 사랑하고 사랑받고 사랑을 배워가며 그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속성을 터득하고 하나님과 관련이 있는 인류의 집단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두 번째는 땅을 정복하고, 생물을 다스리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정복은 개척하는 것입니다. 그때는 도전, 모험, 호기심, 불굴의 의지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일들에 적합한 정신적 능력과 육체의 힘을 남자에게 부여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스리라”는 사명을 여성들에게 주셨습니다. 이것은 히브리어로 ‘라다’인데 왕이 나라를 아주 선하게 통치하는 것과 같은 다스림을 의미합니다. 즉 이미 있는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서로 연결 시키고, 돌보고, 가꾸어서 완전한 아름다움이 발현되도록 만드는 일입니다.

 

Ⅲ. 사랑의 원리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성에게는 완벽한 여성성만 남성에게는 완벽한 남성성만 주셨다면 서로를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남자에게도 여성성을 주시고, 여자에게도 남성성을 주셔서 공통분모를 가지고 서로 교통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이 가정의 기본인 사랑의 원리를 가능케 해주었습니다.

 

A. 아담의 고백

 

본문 말씀에서 아담은 하와를 두고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고백합니다. 우리 몸에는 어디에도 필요하지 않은 살이나 뼈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중요성은 각기 다릅니다. 어느 살은 약간 없어도 생명에 지장이 없지만, 어느 살은 약간만 상처를 입어도 치명적입니다. 그래서 아담의 이 고백은 히브리 문학에서 최상(the best)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의 갈비뼈로 하와를 창조하셨는데 얼마나 사랑스러웠으면 그렇게 고백을 했을까요? 곧 “너는 내가 가진 뼈와 살 중에 없으면 죽는 종류의 뼈와 살 같은 존재이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렇게 자기의 진정한 존재를 아내의 존재 속에서 확인하게 되는 육체와 정신의 연합이 바로 결혼에 있어서 사랑의 원리의 핵심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더 깊은 질문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되느냐는 문제입니다.

 

B. 부부: 목적·수단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부부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일 수 없습니다.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창조목적에 이바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이 남녀를 짝지어 부부가 되게 하신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목적과는 단절된 채 남편은 아내를, 아내를 남편을 사랑하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그들 사이에서 태어나는 아이들도 하나님이 의도하신 그 사람으로 자라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에게는 새로운 삶이 있습니다. 만약 남편과 아내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남편은 아내를 통해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게 되고, 아내는 남편을 보면서 하나님의 성품을 미루어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믿음의 눈으로 주님을 알고 사랑하는 것이나, 창조주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깨달은 사람들이 자연의 오묘함을 통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깨닫는 것과 같습니다. 실상 피조물 가운데 하나님을 가장 닮은 피조물이 사람이 아닙니까? 그래서 우리는 다시금 정의할 수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고 그분의 창조의 목적대로 사는 것이 정의되어 있다면 남편과 아내가 서로 사랑하는 그 사랑은 그 자체가 최종적인 목적이 될 수도 있다고 말입니다. 젊은 날, 아우구스티누스도 이 문제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수단일 뿐이지 목적이 될 수 없다고 못 박았지만 후에 신학적으로, 철학적으로, 신앙적으로 성숙하면서 앞서 말씀드린 원리로 인하여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최종적인 목적이 될 수 있다고 선언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요한1서의 주석에서 이런 의미 깊은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때 우리 형제 말고 거기에 누가 있겠으며, 우리가 순수한 마음으로 우리 형제를 진정 사랑할 때 하나님 이외에 그 속에 누가 있겠습니까?”

 

C. 하나님 사랑과의 일치

 

여기서 우리는 아내와 남편을 사랑하는 사랑과 하나님 사랑 사이의 완전한 일치를 발견합니다. 타락 전에는 부부가 사랑하는 것이 처음부터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인하여 시작되었기 때문에, 서로 사랑할수록 자신들의 영혼이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타락 후에 이것이 깨졌습니다. 하나님 중심이던 사람이 사람 중심이 되었고, 무엇보다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동기가 되었을 때에는 목적 자체가 자기 자신의 만족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만족이었고, 자신은 그 안에서 기뻐하는 존재로 머물기 좋아했는데, 타락한 이후에는 이제 아내와 남편이 각자의 중심을 가지고 다투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직 부부임에도 불구하고 상대를 허물고 복종시키려는 권력의 투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Ⅳ. 부부와 가정

 

결국 부부는 내버려두면 철저히 불행해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서로를 완성해가는 과정이 되어야 합니다.

 

A. 서로를 완성함
그래서 부부는 서로를 도구로 삼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깊이 사랑함으로써 자기가 얼마나 부족한 존재인지 깨달으며 자기를 고쳐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힘든 과정입니다. 항상 그렇습니다. 만약 남편이나 아내로서의 자리를 그것을 딛고 도달할 더 높은 목표의 수단쯤으로 생각한다면, 내 갈 길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될 때는 그 자리에 있는 것이 힘들고 고통스럽기만 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고 주님의 뜻대로 남편과 아내를 사랑하면 그 고통들은 감사의 조건이 됩니다. 그 안에서 인간은 하나님을 더 많이 의지하고, 붙들고, 매달리게 되고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 마음도 없이 상대방을 내 질서대로 이용하고, 나의 만족을 얻는 수단으로 생각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시작부터 잘못된 것입니다. 내가 끊임없니 희생하고, 주님의 은혜를 받고 새로워짐으로써 상대방이 변하고, 그런 그를 보고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보면서 만족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B. 완성되는 인간을 보여줌

그렇게 해서 한 사람 한 사람이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이웃에게 보여줌으로써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내는 것이 신자의 의무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참된 신자가 되기 원하는 것은 결국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C. 개인보다 아름다운 공동체
더욱이 개인이 주님을 닮은 것도 아름답지만, 개인보다 아름다운 공동체가 주님을 닮으면 더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움이란 함께 어울림으로써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까? 남편은 아내 때문에, 자녀는 부모 때문에 숲의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나무와 꽃으로서 어울려 있을 때 아름다운 것입니다. 이렇게 아름답게 엮어진 행복한 가정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훌륭한 전도인 것입니다.

 

Ⅴ. 결론

이를 위해서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먼저 부르기도 하시고 나중에 부르기도 하시면서 주님을 믿게 하십니다. 그들이 주님을 믿고, 의지하고, 사랑하면서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도록 하십니다. 우리는 그 첫걸음을 회심으로, 두 번째 걸음을 주님의 말씀을 듣고 성화되어 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이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으니 부디 남편과 아내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을 향한 최고의 섬김의 중심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정말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어가시기를 바랍니다.2009-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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