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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시는 하나님

창세기 이정원 목사............... 조회 수 480 추천 수 0 2015.06.07 23:5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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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창8:1-14 
설교자 : 이정원 목사 
참고 : 2014.10.12 주일설교 http://charmsarang.onmam.com/ 참사랑교회 

기억하시는 하나님                           

창8:1-14

 
예수 믿고 나면 모든 것이 달라집니까? 당신의 경우는 어떠했습니까? 예수 믿고 나면 구원을 받고,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그러나 현실적으로 보면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도 즉시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이 세상에서 살게 됩니다. 그런데 이제 믿음으로 살려고 하니 막막하고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예수 믿고 나서 이제 믿음을 지키며 살려고 하니 걸리는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주일 지키는 문제 때문에 마땅히 할 만한 사업을 찾기가 힘들더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직장에서도 여간 불편하고 힘들지가 않습니다. 공부하는 학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학교와 학원에서는 주일에도 나와서 공부를 하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과연 구원받은 성도가 믿음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노아와 그의 가족은 홍수심판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홍수가 끝난 후 곧장 천국으로 들어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홍수가 끝난 후 그들은 다시 땅으로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다시 돌아와서 살아야 할 땅은 홍수심판으로 인하여 완전히 황폐되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아는 세상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노아가 구원받은 후의 삶은 홍수 전보다 막연하고 힘들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모든 것이 황폐된 상태에서 말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가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믿기 전보다 훨씬 힘듭니다. 자,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철저히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며 믿음을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사는 것은 너무나도 힘들고 어려울까요? 놀라운 것은 거기에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혀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당신은 이러한 삶을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권념하심


노아와 그의 가족들과 짐승들이 방주 안에서 지낸 지도 1년이 지났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지내는 동안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물론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에 그들은 기적적인 은혜의 나날을 보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천국에 들어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 받았다고 해서 아무 고통이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구원 받고 은혜를 받았다고 해도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는, 즉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여전히 어려움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어려움 당하는 것은 안 믿는 사람들의 경우와는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돌보셔서 그 어려운 일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는 잘못된 일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방주 안에 있던 노아와 그의 가족들, 그리고 동물들이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일 년 이상을 그 안에서만 지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방주 안에 닫아 넣으시고는 잊어버리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이와 똑같은 단어가 출애굽기에도 나옵니다.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출2:23-25)


그러면 하나님께서 방주 안에 있던 사람들과 짐승들, 그리고 애굽에서 고통당하며 신음하던 이스라엘을 잊고 계시다가 그제서야 문득 기억하셨다는 뜻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잊으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백성을 사랑하시며 항상 돌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버리시거나 잊으시는 법이 없으십니다. 항상 기억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염려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간혹 하나님께서 우리를 완전히 잊어버리신 것처럼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어려운 일이 오랫동안 계속될 때입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심하도록 유혹을 받게 됩니다. 절망과 두려움이 우리에게 엄습해옵니다. 이제 도저히 안 되겠다고 포기하려고 합니다. 이때가 우리에게 가장 힘들고 위험할 때입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은혜를 주시며 위로해주시고 확신을 새롭게 심어주십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기억하셨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이 약해지려고 할 때, 더 이상 인내하기 어려울 때 우리는 더욱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더욱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마침내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오늘 막다른 길에서 이제 포기하려고 하는 성도가 있습니까? 믿음과 소망이 희미해지는 분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굳게 붙드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을 기억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기억하심을 생각하면서 끝까지 믿음으로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바람을 보내어 물이 감하게 하심


하나님께서는 바람을 보내사 땅 위의 물이 줄어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하나님의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들었고”(1절) 많은 비가 온 후 물이 줄어들려면 태양이 뜨겁게 작열하는 것보다는 세찬 바람이 불어야 합니다.


시골에서 목회할 때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벼를 심어 놓았는데 많은 비가 와서 벼가 거의 물에 잠겨버렸습니다. 그리고 며칠 동안 세찬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 때 동네 어른들이 바람이 불어야 물이 줄어든다고 했습니다. 과연 그렇게 며칠 동안 바람이 불자, 그 많던 물이 현저하게 줄어들었습니다. 노아 홍수 때도 하나님께서는 바람을 보내사 땅 위의 물이 물러가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바람은 단순히 그런 바람이 아닙니다. 이 바람은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이었습니다. 이러한 바람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널 때도 있었습니다.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출14:21)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그 말씀의 능력으로 땅위의 물이 물러가게 하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이 막힘


2절은 하나님께서 땅위의 물이 물러가게 하신 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문이 닫히고 하늘에서 비가 그치매”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문이 닫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땅이나 하늘에 뚫려있던 어떤 구멍을 막으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홍수 이전의 상태로 원 위치시키셨다는 뜻입니다. 노아 홍수는 단순한 홍수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일시적으로 중단되었던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세상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기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 버렸던 것입니다. 궁창 위의 물이 다 쏟아졌으며, 솟아올랐던 땅이 다시 꺼져버렸습니다. 그러자 바닷물이 밀고 들어와 온 세상이 물로 뒤덮여버렸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서 다시 세상을 회복시키셨습니다.


이 장면을 시편 기자는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옷으로 덮음 같이 주께서 땅을 깊은 바다로 덮으시매 물이 산들 위로 솟아올랐으나 주께서 꾸짖으시니 물은 도망하며 주의 우렛소리를 말미암아 빨리 가며 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정하여 주신 곳으로 흘러갔고 산은 오르고 골짜기는 내려갔나이다 주께서 물의 경계를 정하여 넘치지 못하게 하시며 다시 돌아와 땅을 덮지 못하게 하셨나이다”(시104:6-9) 이 말씀과 3절을 비교해보십시오. “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백 오십일 후에 줄어들고”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세상을 회복시키고 계셨습니다.


세계의 가장 높은 산들인 히말라야, 알프스, 그리고 안데스 산맥에서 물고기와 조개 등의 화석이 발견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런 지역에서 소금이 생산되고 있습니다. 창조 과학자들은 이 산들이 그렇게 오래된 산들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아시아의 많은 섬들로 이루어진 나라들은 본래 높은 산이 꺼져서 봉우리만 남은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이상한 일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곧 노아 홍수가 전 세계적이었으며, 역사적 사실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입니다.

 

기다림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렇게 회복시키고 계시는 동안에 노아는 방주 안에서 나오지 않고 끝까지 기다렸습니다. 사실 방주 안에서는 별 소란이 다 일어나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강권적인 은혜로 동물들이 얌전해지기는 했지만, 그 동물들이 일 년 이상을 방주에 갇혀 있었던 것입니다.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도 잠시만 가둬 놓으면 얼마나 안달을 해댑니까? 그런데 그 많은 짐승들이 방주 안에서 일 년 이상을 지냈던 것입니다.


힘들기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열 시간 정도만 자동차나 비행기를 타도 몸살이 납니다. 하물며 일 년 이상 밖을 내다볼 수도 없는 방주 안에서 지냈으니 오죽했겠습니다. 별 소리와 의견이 다 나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방주가 땅에 닿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한 번 나가보자고 보채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전히 기다리고만 있었습니다. 왜 문을 열어보지 않느냐고 따지는 아들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노아는 오직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만이 사는 길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 가족들과 짐승들을 방주 안에 닫아 넣으신 지 일 년이란 시간이 지났습니다. 방주 안에 있는 사람들과 동물들이 얼마나 지루하고 힘들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왜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리게 하셨을까요? 우리는 그 이유를 다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가장 선하고 완전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서 하시는 대로 따라가야 합니다. 이해할 수 없을 때에도 하나님만 바라보며 따라가는 것이 최상의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실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가장 선하고 안전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믿음입니다.

 

까마귀와 비둘기


좀 더 찬찬히 생각해봅시다. 노아의 가족들과 동물들이 방주 안으로 들어간 지 벌써 7개월 이상이 지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방주가 어딘가에 닿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일곱째 달 곧 그달 열이렛날에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물렀으며”(4절)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지시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지시가 없었기 때문에 노아는 계속해서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약 4개월이 더 지났을 때, 노아는 창을 열고 까마귀를 내보냈습니다(6-7절).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던 까마귀가 어느 날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물이 많이 줄었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노아는 또 비둘기를 내보냈습니다. 비둘기는 지면에 내려앉을 곳을 찾을 수가 없어서 다시 돌아왔습니다. 노아가 다시 비둘기를 내보냈는데, 이번에는 비둘기가 감람나무 새 잎사귀를 물고 돌아왔습니다(10-11절). 감람나무는 일정한 고도 이하에서만 서식하기 때문에, 노아는 이것을 보고 물이 어느 정도 빠졌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비둘기가 물고 온 감람나무 새 잎사귀는 새로운 희망과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홍수로 황폐된 세상에 새로운 은혜를 베풀고 계셨던 것입니다. 노아가 비둘기를 다시 내보내자 이번에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땅에 물이 거의 말랐기 때문이었습니다.


배가 아라랏산에 머물렀을 때, 노아는 방주에서 나오지 않고 까마귀와 비둘기를 내보내어 상황을 짐작해보았습니다. 만일 노아가 답답한 나머지 문을 활짝 열고 나왔더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큰 위험과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아직도 세상은 물로 덮여있었고, 세찬 바람이 불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때때로 우리가 답답한 일을 당할 때 무모하게 행동하여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노아처럼 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상황을 재보고 짐작을 해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더욱 소망을 가지고 기도하며 기다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지시가 없을 때 무모하게 내 생각대로 행동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상황을 짐작해보고 좀 더 기도하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이제 물이 거의 빠져간다는 사실을 짐작한 노아는 얼마나 기뻤을까요? 노아와 그 가족들은 한시 빨리 답답한 방주에서 나오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지시를 기다리며 여전히 방주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 없이는 한발자국도 움직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해가 바뀌고 물이 걷혔을 때, 비로소 노아는 방주의 뚜껑을 열었습니다(13절). 그리고 땅이 완전히 마른 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했습니다(14절). 그런데도 노아는 여전히 방주에서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았습니다. 아직 하나님의 지시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노아는 철저한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이렇게 철저히 순종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구원받는 후에도 우리는 바로 천국에 들어가지 않고 여전히 이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지만,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우리 자신은 완전히 새 사람이 되었는데, 세상은 전혀 변한 것이 없습니다. 세상에는 여전히 죄악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구원받고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단한 성도는 세상에서 좌절을 경험하고 실망하게 됩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니 세상에는 가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세상은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가기에 불편하고 힘든 곳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세상에서 살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살기로 결단한 성도는 과연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그러나 두려워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을 기억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바람이 불어올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이 두려워하던 큰물이 물러가게 하실 것입니다.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절대로 서두르거나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당분간 답답한 일이 계속된다 할지라도 조급해하거나 불안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노아는 결코 서두르지 않고 철저하게 하나님의 지시를 기다렸습니다. 노아처럼 우리도 철저하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사용해야 합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이렇게 살 때 하나님께서는 능히 세상을 이기게 하십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세상에 있는 자보다 더 강하고 위대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지켜주시고 돌보아주실 것입니다. 반드시 승리하게 하실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하며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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