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명설교 모음

택스트 설교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은혜로 사는 인생

창세기 이정원 목사............... 조회 수 953 추천 수 0 2015.06.07 23:58:35
.........
성경본문 : 창9:1-7 
설교자 : 이정원 목사 
참고 : 2014.10.26 주일설교 http://charmsarang.onmam.com/ 참사랑교회 

은혜로 사는 인생                     

창9:1-7


군에 입대해 훈련소에서 처음 교회에 나가 예배드리던 일이 생각납니다. 예배당은 벌써 꽉 차서 자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운데 통로에 무릎을 꿇고 앉았습니다. 무릎을 꿇자마자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도 절박했고, 가슴이 뜨거웠습니다. 그 날의 예배는 군에 오기 전에 주일마다 드리던 예배와는 달랐습니다.


방주에서 나와 황폐한 땅에서 노아가 드렸던 제사가 바로 그런 제사였을 것입니다. 노아가 드린 제사는 구원의 은혜에 대한 뜨거운 감격과,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겠다는 절박한 마음과 사모하는 마음으로 드린 예배였습니다. 오늘 우리의 예배가 너무나 형식적이고 미지근하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도저히 살 수 없겠다는 마음,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도 절실한 마음으로 예배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런 마음으로 예배하는 성도에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새로운 출발과 하나님의 축복


홍수심판으로 세상이 멸망을 당했고, 이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천지를 창조하셨을 때 인류의 시조는 아담이었습니다. 이제 새롭게 시작되는 시대에는 노아가 인류의 시조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노아는 인류의 두 번째 시조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가족들과 짐승들이 번성하여 세상에 충만하게 하실 작정이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1절) 이 축복의 말씀은 창1:28의 말씀과 비슷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그러나 차이가 있습니다. 1:28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후 죄가 없는 상태에서 축복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9:1은 죄로 인해 세상이 멸망을 당한 후, 온 땅이 황폐되고 여전히 죄가 있는 세상에서 주신 축복입니다.


노아는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으나, 그 출발은 죄와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새 출발을 하는 노아에게는 큰 불안과 염려가 있었습니다. 첫째, 과연 자연계가 안전하게 보존될 수 있을 것인가? 또 다시 이런 홍수가 나서 세상이 멸망을 당하지는 않을까? 둘째, 이렇게 황폐한 세상에서 과연 필요한 양식을 충분히 얻을 수 있을 것인가? 셋째, 죄 가운데서 사람들이 서로 죽이는 일은 없을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답을 주셨습니다. 첫 번째 문제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8:2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동물들이 사람을 두려워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2절). 두 번째 문제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육식을 허용해주셨습니다(3절). 그리고 세 번째 문제에 대해서는 사람을 죽이는 동물이나 사람은 반드시 사형에 처하게 하셨습니다(5-6절).

 

동물이 너희를 두려워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는 노아의 가족들과 짐승들을 축복하셨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처음 창조 때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2절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것들은 너희 손에 붙였음이라”


처음 창조 때는 사람과 짐승 사이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사람은 모든 짐승을 다스렸으며, 짐승들은 사람에게 온전히 복종했습니다. 사람과 짐승은 서로를 해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죄가 들어온 후 이러한 질서와 조화가 깨져버렸습니다. 짐승이 사람을 공격하는 경향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짐승이 사람을 두려워하게 하셨습니다. 짐승이 사람을 해치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요즘은 이 말씀이 별로 실감이 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람이 총을 갖게 되면서 동물은 더 이상 사람의 적수가 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총만이 아니라 다양한 도구들을 만들어 동물을 죽이고 길들여왔습니다. 심지어는 동물원에 잡아다 가둬놓고 구경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동물이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하며, 이제 사람은 동물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동물들을 억제시키고 계시는 손을 거두신다면, 지금도 인류는 동물을 당해낼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출애굽 당시 하나님께서는 애굽에 개구리 떼와 파리 떼, 그리고 메뚜기 떼를 보내셨습니다. 그것들이 애굽을 공격하자, 바로와 애굽의 막강한 군대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굳이 호랑이나 이리 떼를 보내실 필요도 없었습니다. 지금도 간혹 짐승들이 사람에게 달려들어 생명을 앗아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동물들을 통제하지 않으신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지를 짐작하게 해줍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동물들을 붙잡고 계시는 손을 잠시만 놓아버리신다면, 인류는 살 수 없게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동물들이 사람을 두려워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동물들은 사람을 함부로 공격하지 못합니다.


동물만이 아니라 모든 자연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자연계를 통제하시는 손을 잠시만 거두신다면 세상은 온통 난리가 나고 말 것입니다. 요즘 우리는 폭우나 지진, 쓰나미 등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근래에 엄청난 재난들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연계를 통제하시는 손을 놓아버리신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수해뿐만 아니라 가뭄과 기근, 지진, 태풍, 엘리뇨 등으로 세상은 완전히 지옥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안전하게 유지시켜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8:22)


이 모든 것을 통해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한순간도 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평안하게 살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우리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는 사실을 한순간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육식의 허용


홍수 후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육식을 허용해주셨습니다. 처음에는 사람이 동물을 잡아먹는 일이 없었습니다. 동물도 역시 서로 잡아먹는 일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창1:29-30) 본래는 사람이나 짐승이나 다 채식을 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육식은 죄의 결과로 생긴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왜 사람에게 육식을 허용하셨을까요?


인간이 타락하기 전에는 땅이 엄청난 열매를 생산해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타락한 이후 땅이 저주를 받았습니다. 가시와 엉겅퀴가 나게 되었고, 수확량도 현저하게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이마에 땀을 흘려가며 일해도 소득이 많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이 홍수심판 후에는 더욱 심해졌습니다. 그래서 식량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육식을 허용하심으로 사람들의 식량 문제를 해결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육식을 허용하신 또 다른 이유를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죄가 인간을 점점 더 쇠약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죄 때문에 나타나는 많은 질병들을 보면 이 말이 일리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죄의 영향으로 사람들의 몸이 전보다 훨씬 약해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보호하시기 위해 육식을 허용하셨다는 것입니다. 특히 육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육식은 죄 때문에 시작되었지만, 그 자체를 나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육식이냐 채식이냐가 아닙니다. 먹는 문제를 극복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입니다.


사람들은 우리의 생명이 먹는 것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마4:4)


실제로 모세는 40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먹는 것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우리에게 이 문제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6:31-32) 우리의 생명은 먹는 것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더 맛있는 음식, 더 좋은 음식, 몸에 좋다는 것들을 먹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대단히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것들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먹고 남아서 버리고 있는데, 먹을 것이 없어서 죽어 가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너무 좋은 것을 지나치게 많이 먹는 것은 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되도록 검소하게 먹고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는 것이 성도의 올바른 태도입니다. 좋은 것을 많이 먹어야 건강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야 건강할 수 있습니다. 검소하게 먹고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며 돕는 성도에게, 특별히 하나님만 의지하는 성도에게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주시고 건강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육식을 허용하시면서 동물의 피는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째 먹지 말 것이니라”(3절) 피는 생명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피를 먹지 말라는 것은 고기를 먹더라도 생명을 존중하라는 뜻입니다. 고기를 먹더라도 생명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혹시 당신에게 먹을 것이 없거나, 생계가 막막해지거든 공중의 새를 보십시오. 그리고 두려워하거나 불안해하지 마십시오. 공중의 새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분의 사랑스런 자녀인 당신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먹을 것을 염려하지 말고, 믿음으로 하나님만 의지할 것을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는 것을 확실히 믿고, 하나님 아버지만 바라보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자녀에게 하나님께서는 틀림없이 은혜를 베푸십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몸에 좋다는 것들을 먹어야 건강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형제도


노아 홍수 후 하나님께서는 살인자를 사형에 처하게 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6절) 사형제도는 홍수 후 인간의 죄악된 삶을 예견하고 그 대책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홍수심판 후 인간들은 죄로 인하여 서로를 미워하고 죽이는 일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개인적인 복수를 허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그렇게 되면 복수가 꼬리를 물고 일어나 인류가 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형제도는 정부를 세워서 개인의 사사로운 보복을 억제하고, 국가로 하여금 살인자를 처벌하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국가를 세우시고, 인간들의 죄악과 그로 인한 비참한 일들을 최소한으로 막게 하셨습니다. 만일 무정부 상태가 된다면 세상은 아수라장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국가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국가의 정당한 권세에 복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인간의 생명을 이렇게 소중히 여기실까요?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모든 인류가 존엄한 이유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원숭이에게서 진화된 동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존귀하게 지으심을 받은 특별한 존재입니다. 사람이 원숭이에게서 진화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람의 영혼에 대해서 절대로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의 존엄성을 말할 근거가 없습니다. 사람은 짐승이 아니라 하나님을 닮은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따라서 사람을 학대하거나 부당하게 다루거나 죽이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께 대한 도전이며 범죄인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존귀하게 지음 받은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동시에 다른 사람들 역시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존귀하고 소중한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살인자를 사형에 처하도록 엄격하게 규정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라


홍수심판 후에 새 출발을 하는 노아는 두려움과 불안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노아는 죄와 그로 인한 많은 문제점들을 안고 시작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죄가 여전히 남아 있었고, 앞으로도 더 발전하고 퍼져나갈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따라서 과연 이 세상에 다시 홍수심판과 같은 엄청난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죄 가운데서 사람들이 피차 죽고 죽이는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이 황폐한 세상에서 사람에게 필요한 양식이 제대로 공급될 수 있을까 염려하고 불안해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대책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자연은 여전히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질서와 법칙을 따라 운행될 것이며, 맹수들은 사람을 두려워하여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육식을 허용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살인자는 사형에 처하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문제를 안고 출발하는 노아와 새 시대를 위해 이러한 대책들을 세워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대책들은 임시방편이지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으로 인류의 모든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수는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더 크고 근본적이고 완전한 해결책을 준비해두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였습니다.


새 시대가 출발할 때 안고 있었던 문제들은 죄 때문에 생긴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 나타난 세 가지 대책들은 죄를 없이하는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문제는 완전히 해결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심으로써, 모든 문제들이 근본적으로 해결되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만이 죄를 해결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막을 수 있습니다. 이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진노를 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 것일까요? 인간의 지식과 노력으로 사는 것일까요?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사는 것일까요? 맛있고 몸에 좋은 음식으로 건강을 유지하며 사는 것일까요? 국가의 보호와 복지정책으로 사는 것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삽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은혜를 거두어 가시면 아무도, 한순간도 살 수가 없습니다. 한순간이라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거두어 가시면, 이 세상은 완전히 아수라장이 되고 지옥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홍수심판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세상 것들에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몰두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그것들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면 나는 한순간도 살 수 없음을 겸손하게 고백하십시오. 그리고 그 은혜를 감사하며 더욱 사모하십시오. 이러한 성도에게 하나님께서는 더 풍성한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가 늘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날짜 조회 수
59 창세기 작은 힘으로 큰 힘을 이기는 길 창14:13-16  이한규 목사  2009-02-24 1678
58 창세기 바벨탑 사건이 주는 교훈 창11:1-9  이한규 목사  2008-12-23 2397
57 창세기 성공적 결혼의 3대 원리 창2:18-25  이한규 목사  2008-12-23 1758
56 창세기 새길과 나 창1:1  이헌영 형제  2008-12-06 1459
55 창세기 롯의 아내 창19:26-29  민영진 목사  2008-12-06 2045
54 창세기 항복하면 이기고 다투면 진다 창32:22-29  조용기 목사  2008-11-21 1694
53 창세기 에덴으로의 귀환 창1:1-5  한세희 형제  2008-10-26 1445
52 창세기 브니엘의 눈부신 아침을 맞다 창32:31  김남준 목사  2008-10-01 2122
51 창세기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 날에 창17:1  김남준 목사  2008-10-01 1983
50 창세기 소돔 이야기 창19:24-26  류상태 목사  2008-09-29 1501
49 창세기 길 떠나기 창12:1-9  김은주 목사  2008-09-29 1573
48 창세기 하갈의 인생역전 창21:8-21  김기동 목사  2008-09-20 2482
47 창세기 예수 혁명 창1:1-2  김진 목사  2008-09-20 1432
46 창세기 야곱의 하나님 체험 창28:10-22  정용섭 목사  2008-09-18 2193
45 창세기 성령이 시키시는 것 창11:1-9  김기동 목사  2008-09-15 1728
44 창세기 보시니 참 좋았다 창1:26-27  양현혜 목사  2008-09-04 1702
43 창세기 작은 생명, 사는 이야기 창1:28  노은기 형제  2008-08-26 1469
42 창세기 내가 무엇을 가지고 나아갈까 창4:1-7  김이곤 목사  2008-06-25 2111
41 창세기 삶과 죽음 사이에서 창3:19  최만자 자매  2008-06-17 1714
40 창세기 창조의 보전 창1:26-28  최만자 자매  2008-06-02 1722
39 창세기 삶은 역전될 수 있다 창50:15-21  조용기 목사  2008-05-30 2482
38 창세기 죽음 준비 창48:17-19  민영진 목사  2008-05-29 2160
37 창세기 주어진 삶과 주장하는 삶 창22:15-19  조용기 목사  2008-05-28 1995
36 창세기 하나님 은총의 두 빛깔 - 녹색과 적색 창9:1-7  이정배 목사  2008-05-16 3594
35 창세기 우리 이름을 내고 창11:1-9  조용기 목사  2008-04-18 2250
34 창세기 자기부정과 자기긍정의 긴장관계 창3:6-7  최만자 자매  2008-04-18 1984
33 창세기 낯선 자 창15:12-21  서중석 목사  2008-03-10 1873
32 창세기 칠년 풍년, 칠년 흉년 창41:1-8  최만자 자매  2008-03-10 1719
31 창세기 사랑의 연대 창45:5  서창원 목사  2008-02-15 1734
30 창세기 요셉의 길, 생명의 길 창45:5  박동현 목사  2008-02-15 2137
29 창세기 두 가지 사명 창1:28-2:3  강보형 목사  2008-01-24 1994
28 창세기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의 영 창1:31  한완상 형제  2008-01-13 2268
27 창세기 열명만 있어도 창18:32-33  손운산 목사  2008-01-10 2266
26 창세기 기도로 승리한 야곱 창32:24-32  강종수 목사  2008-01-06 2550
25 창세기 명절의 만남 중요한 것은... 창45:4-10  김필곤 목사  2007-12-25 2260
24 창세기 공(公)에 대한 경외 창2:7-18  최만자 자매  2007-12-20 1796
23 창세기 다시 만나는 사람들 창33:1-11  박동현 목사  2007-12-19 2152
22 창세기 하갈의 하나님, 그리고 사라의 하나님 창16:7-16  최만자 자매  2007-12-18 2797
21 창세기 광복 50주년과 하나님의 형상대로의 신앙 창1:16-18  최만자 자매  2007-12-17 2015
20 창세기 창조의 미래 창2:1-3  길희성 형제  2007-12-12 1677
19 창세기 전화위복의 감사 창50:19-21  한태완 목사  2007-12-11 2915
18 창세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창14:17-21  천세영 형제  2007-12-07 2342
17 창세기 삶의 찬가 창1:26-31  길희성 형제  2007-12-05 2133
16 창세기 형제를 위한 희생 창14:1-16  한태완 목사  2007-11-25 2281
15 창세기 믿는 자에게도 기근이 창12:10-12  한태완 목사  2007-11-25 2463
14 창세기 하나님의 형상 창1:26-31  길희성 형제  2007-11-22 1170
13 창세기 신실하신 하나님 창7:6-24  한태완 목사  2007-11-18 3242
12 창세기 나와의 씨름 창32:23-3  권진관 형제  2005-02-16 3924
11 창세기 쉼의 저항 창2:1-3  최만자 자매  2005-02-01 2471
10 창세기 나를 보낸 이는 형님들이 아니요 하나님... 창45:1-8  김이곤 목사  2004-08-27 2736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