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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룻1:6-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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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2009·01·23
우리는 끊임없이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은 우리가 어떠한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나오미는 흉년을 피하여 모압으로 이주하는 결정을 내림으로 비참한 실패를 맛보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녀는 과부가 된 젊은 두 며느리와 함께 초라한 모습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은 이 세 사람에게 다시금 또 한 번의 결정을 촉구하고 있었습니다. 이 세 여인들이 어떤 결정을 내렸는가를 봅시다. 그녀들의 운명은 자기들이 내린 결정에 따라 달라졌습니다.
나오미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오르바는 자기의 친정으로 돌아갔습니다. 룻은 끝까지 나오미를 좇았으며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녀들의 선택은 그녀들의 영원한 미래를 결정지었습니다. 이들의 결정과 선택을 통해 우리는 어떻게 그리스도인다운 선택을 할 수 있는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나오미의 결정
나오미가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한 것은 참으로 옳은 결정이었습니다. 나오미는 모압 땅에서 고향소식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권고하사 양식을 주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사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6절) 나오미가 들은 것은 단지 고향에 풍년이 들었다는 소식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돌보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었을 때 나오미는 이스라엘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꼈습니다.
나오미는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양식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그 사랑이 그리워서였습니다. 타국에 와서 극심한 환난과 슬픔을 당한 나오미는 이제 하나님의 그 사랑이 너무나도 그리웠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환난과 슬픔을 통하여 나오미를 모압에서 가나안으로 향하게 하셨습니다. 모압에서의 삶이 형통했다면 나오미가 그렇게 돌아가기로 결정했을까요? 아마도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고통과 슬픔을 통하여 우리가 죄악으로부터 하나님께로 인도함을 받게 된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것은 신실하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쓰라린 고통과 슬픔을 통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왔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그 누구도 참된 안식과 평안과 행복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고통과 슬픔을 당할 때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야만 합니다. 나오미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가 하나님을 떠났던 바로 그 자리로 돌아와야만 합니다. 그 자리로 돌아오기만 하면 우리는 다시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호세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돌아올 것을 촉구하셨습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호6:1). 주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한 나오미는 즉시 그녀를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체험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녀가 모압에서 잃어버렸던 것들을 되돌려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녀에게 큰 기쁨과 축복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나오미의 또 하나의 결정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한 나오미는 함께 과부로 남은 두 며느리에게 각기 자기들의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권했습니다.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8절)
이것은 인간적으로 볼 때 젊은 과부 며느리들에 대한 각별한 배려로 생각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적으로 볼 때 이것은 매우 잘못된 선택이었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나오미가 또 이르되 보라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하니” 나오미는 두 며느리를 불신앙과 우상숭배의 세계로 돌려보내려 했던 것입니다. 얼마나 무책임하고 잘못된 일입니까?
당신은 어떻습니까? 나오미처럼 이렇게 육신적으로 선택하는 경우는 없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자녀들의 학업과 관련해서 많은 부모들이 이런 결정을 내리는 것 같습니다. 자녀들이 고3이 되면 많은 부모들이 “올해는 공부와 대학진학이 급하니 교회를 쉬었다가 내년부터 신앙생활 열심히 하도록 하라.”고 합니다. 이것이 과연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일입니까? 그렇게 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간 경우를 별로 보지 못했습니다. 설령 좋은 대학에 들어갔다고 칩시다. 그 동안에 자녀의 생각과 주관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진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대학에 들어가서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고 끝내 돌아오지 않는 자녀들도 있습니다. 그렇지는 않더라도 이렇게 자라난 자녀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고비를 만날 때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 같습니까?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게 되겠습니까?
이것은 가치와 우선순위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육신적으로 잘 살고 출세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어떤 사람이 되느냐, 우리 자녀들이 어떤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느냐 하는 것은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자녀들을 신앙적으로 철저하게 양육하시기 바랍니다. 당신의 자녀가 오르바가 되느냐 룻이 되느냐 하는 것은 오늘 당신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포기한 오르바
나오미가 며느리들을 친정으로 돌려보내고자 했을 때 두 며느리는 울면서 한사코 시어머니를 따라가겠다고 말했습니다. “나오미에게 이르되 아니니이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 하는지라”(10절) 그러다가 결국 큰며느리 오르바는 친정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들이 소리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의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14절) 오르바는 어쩌면 의리보다는 실속 있는 길을 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우상의 땅 모압으로 돌아간 것은 그녀에게 매우 애석한 일이며 큰 불행이었습니다.
신앙의 부모들과 선배들은 항상 자녀들과 후배들이 믿음에 굳게 서도록 이끌며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나오미는 며느리들을 믿음으로 이끌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당신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나오미는 며느리들에게 “너희는 각각 어미의 집으로 돌아가라”(8절), “남편의 집에서 평안을 얻으라”(9절)고 말했습니다. 심지어는 며느리들 앞에서 하나님을 탓하며 원망하기까지 했습니다.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13절) 이러한 나오미의 태도는 결국 큰 며느리 오르바로 하여금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게 했습니다.
오르바는 하나님을 믿고자 하는 믿음에는 가까이 있었으나 나오미의 말을 듣고 결국 우상 숭배하는 곳으로, 어두움과 불신앙의 세계로 다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시어머니와 함께 울었고, 시어머니와 입을 맞추었으며, 시어머니를 따라가겠다고 약속했으나 포기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히10:38). 오르바는 옛 생활로 돌아갔으며, 그 후로 다시는 오르바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길에서 물러가 옛 생활로 돌아가면 하나님의 책에서 우리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게 될 것이며, 천국에서 우리의 모습을 영원히 찾아볼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교회에 나오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신앙을 포기한 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들은 결국 구원을 놓쳐버린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견디는 신앙이 참된 신앙입니다. 당신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는 세상으로 되돌아가지 마십시오. 주님 오시는 그 날에 우리 모두가 다 같이 주님 앞에 서게 되기를 바랍니다.
끝까지 견딘 룻
오르바가 포기한 것과는 달리 룻은 자기가 잡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끝까지 놓지 않았습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 우리는 룻과 같이 끝까지 견뎌내는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이방 여인이었던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를 사랑했기 때문에 끝까지 함께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룻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믿음 때문에 끝까지 견디어 냈습니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16하)
룻의 결정은 참으로 훌륭했습니다. 그녀는 짧은 기간에 시아버지와 시아주버니, 그리고 남편의 죽음을 목격했습니다. 시어머니 룻이 하나님께 불평하는 것을 보았으며, 손위 동서인 오르바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믿는다는 사람에게 되는 일이라곤 하나도 없는 그러한 모습만 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믿는다는 사람이 자기가 믿는 하나님을 원망하며 불평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젊은 과부는 여전히 살아 계신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훌륭한 믿음입니까? 이러한 룻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우리 앞에 어떠한 장애물이 놓여 있을지라도 하나님만을 온전히 의지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됩니다. 우리는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사실 룻의 선택은 인간적으로 보기에 매우 어리석고 손해가 되는 선택이었습니다.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가면 젊은 과부인 룻이 재가할 수 있는 희망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녀가 만일 시어머니를 따라 돌아간다면 유대인들에게서 이방 여인이라고 괄시를 받게 될 것이 뻔했습니다. 그러므로 시어머니 룻을 따르기로 결정한 룻의 선택은 정말 무모하고 크게 불리한 선택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판단하고 결정할 때 그것이 나에게 이익이 되는가, 그것이 나에게 편리한 것인가 하는 것을 기준으로 삼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지혜롭고 안전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다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보다 먼저 이것이 옳은가, 이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는가 하는 것을 선택의 기준으로 삼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당신은 판단하고 결정할 때 무엇을 가장 먼저 고려하십니까? 당신의 판단기준은 무엇입니까?
인간적인 기준으로 볼 때 룻의 선택은 너무나도 어리석고 무모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이러한 결정을 내렸던 룻은 가장 복된 여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녀가 나오미를 따라 베들레헴에 오게 된 직후부터 그녀를 위해 예비해두신 일들을 하나씩 진행시켜 나가셨습니다.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던 그녀는 사람들에게도 인정을 받았으며 호의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녀를 통하여 나오미의 집을 급속도로 회복시켜 나가셨습니다. 마침내 룻은 보아스와 결혼함으로써 가장 안정되고 복된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는 보아스와 룻을 통하여 다윗의 조부인 오벳이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리스도께서 이들의 혈통을 타고 오시게 되었습니다. 룻은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믿음의 결정은 이렇게 위대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당시의 어두운 시대적인 상황에서도 믿음의 결정을 내렸던 룻은 샛별처럼 빛나는 아름다운 모습을 남겼습니다.
올바른 선택을 위하여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나오미의 결정을 보았습니다. 오르바와 룻의 선택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중에 내려야 할 결정은 이처럼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세상과 육신은 늘 우리에게 “옛 생활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돌아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끊임없이 선택을 해야 합니다. 자, 당신은 어떤 결정을 내리겠습니까?
처음에 나오미는 잘못된 결정을 내렸고, 그로 인하여 비참한 일들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잘못된 길에서 돌이키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녀는 모압을 떠나 베들레헴으로 돌아갔습니다. 회개란 이렇게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회개란 죄를 시인하고 고백하는 것만이 아니라 죄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 결정으로 나오미는 완전히 회복되고 더 큰 하나님의 은총을 받게 되었습니다. 룻은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 가장 훌륭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녀는 견고히 서서 하나님을 의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결정으로 비참하고 불쌍한 이방인 과부 룻은 가장 복된 여인이 되었습니다. 올바른 결정과 선택은 이렇게 중요합니다.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길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듣질 못합니다. 우리의 영이 둔해졌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둔해졌을 때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고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통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가 많습니다. 왜 그러실까요? C.S. 루이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무서운 일이 일어나기 전에는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지 않는 습성들이 남아 있다. 고통이란 귀머거리에게 알아듣도록 하는 하나님의 확성기이다.” 당신에게 어떤 고통이 있습니까? 그 고통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주의 깊게 들어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결정을 내리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면 당신은 놀라우신 하나님의 회복의 은총을 힘입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 필요한 또 한 가지는 잠시 멈춰서 방향을 점검하는 것입니다. 현대는 스피드 시대라고 할 만큼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대사회에는 빠른 것이 최대의 무기이며, 빠른 사람이 성공합니다. 그러나 만일 방향이 잘못되었다면 속도가 빠르다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방향이 잘못되면 빨리 간만큼 더 손해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수시로 자기가 나아가고 있는 방향을 점검해야 합니다. 방향을 점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나아가 기도하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자주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셔서 오랜 시간 기도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기도시간에 새 힘을 얻으셨고, 방향과 사명을 확인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한 번도 방향을 잃으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오늘 조용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신을 돌아보면서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방향을 세심하게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만일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주저하지 말고 돌이켜야 합니다. 알고도 돌이키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지금 당신은 올바른 방향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습니까? 혹시 방향이 잘못된 것을 알고서도 머뭇거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오미처럼 일어나 하나님께로 돌이키시기 바랍니다. 룻처럼 오직 하나님만 따르기로 결정하십시오. 어떤 희생과 어려움을 감수하더라도 즉시 돌이키도록 하십시오. 하나님의 놀라우신 회복의 역사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지 우리는 우리가 내린 결정에 따르는 열매를 따게 됩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전적으로 그러한 결정을 내린 나 자신이 책임져야 합니다. 어떠한 결정을 내려야 하겠습니까? 당신이 믿음으로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끝까지 지켜주실 것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다 해도 모든 일을 믿음으로 결정하고 선택함으로써 하나님의 놀라우신 회복의 은총을 힘입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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