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명설교 모음

택스트 설교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성전(聖戰)과 불순종

사무엘상 이윤식 목사............... 조회 수 2404 추천 수 0 2011.04.18 13:27:17
.........
성경본문 : 삼상15:1-9 
설교자 : 이윤식 목사 
참고 :  

본문 : 삼상 15장 1-9 2010.07.28

제목 : 성전(聖戰)과 불순종

 

본문

1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어 왕에게 기름을 부어 그의 백성 이스라엘 위에 왕으로 삼으셨은즉 이제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2 만군의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로 내가 그들을 벌하노니

3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으라 하셨나이다 하니

4 사울이 백성을 소집하고 그들을 들라임에서 세어 보니 보병이 이십만 명이요 유다 사람이 만 명이라

5 사울이 아말렉 성에 이르러 골짜기에 복병시키니라

6 사울이 겐 사람에게 이르되 아말렉 사람 중에서 떠나 가라 그들과 함께 너희를 멸하게 될까 하노라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너희가 그들을 선대하였느니라 이에 겐 사람이 아말렉 사람 중에서 떠나니라

7 사울이 하윌라에서부터 애굽 앞 술에 이르기까지 아말렉 사람을 치고

8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사로잡고 칼날로 그의 모든 백성을 진멸하였으되

9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의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도 진멸하기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하찮은 것은 진멸하니라

본문 주제 관찰

①15장은 사울이왕으로서 버림받는 두 번째 사건을 다룬다

②13장의 불순종 사건이 사울을 넘어지게 하는 돌이었다면 15장은 짓누르는 바위가 되었다

③자비의 하나님은 유독 사울에게만 가혹하신가?

 

1.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라(1-3절). (적용 : 악한 사단 마귀를 대적하여 진멸하라)

 

①사무엘의 재등장-통제권을 가지고 있다

②여호와의 말을 들으라(쉐마)

③1달러-3달러

(결)하나님이 말씀을 경청하라

①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②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

③이상근 박사 주석-헬렘의 분류

(결)하나님께서 작정하신 것은 진멸하신다

①말시온 주의

②사랑의 하나님, 공의의 하나님

③하나님께서 선포하신 진멸은 보편적으로 이 땅에 악이 사라지는 것

(결)악한 사단 마귀를 대적하여 진멸하라

 

2. 그들과 함께 너희를 멸하게 될까 하노라(4-6절). (적용 : 택한 백성은 보호하신다)

 

①겐 사람-모세의 장인

②겐 족속-이스라엘을 선대

③옛적 일을 기억하시고 선대하시는 하나님

(결)하나님께서는 무서운 진멸 가운데서도 자신을 선대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신다

①택한 백성 진노 중에도 긍휼

②사 6:13 그루터기

③죄의 자리에서 떠나 긍휼의 자리로

 

(결)하나님께서는 무서운 진멸 가운데서도 긍휼을 베푸신다

①♬ 우리 함께 기도해 긍휼 베푸시는 주

②엡 2:3 인간은 본질상 진노의 자녀

③죄가 장성할수록 예수님 재림이 가까이 옴을 깨닫자

(결)하나님의 긍휼의 대상이 되라

 

3. 모든 좋은 것도 남기지 말고 진멸하라(7-9절). (적용 : 하나님의 성전에는 가감이 없어야 한다)

 

①선별적인 진멸

②성전을 간과한 사울

③말씀의 가감이 문제를 야기

 

 

(결)성전을 치루기 위해서는 말씀의 가감이 없어야 한다

①가장 좋은 것

②여자가 보았던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한 것

③요일2:15-16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결)인간들이 추구하는 가장 좋은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한다

①하나님의 말씀은 불변하다

②사단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빼앗고 속이려 든다

③내가 전심을 다하여 추구하는 것들 중 하나님의 말씀과 벗어나는 것을 진멸하라

(결)하나님의 성전에는 가감이 없어야 한다

 

15장은 사울이 다시 한 번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하나님께 버림 받는 두 번째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13장의 불순종 사건이 사울을 넘어지게 하는 돌이었다면 15장에서의 사울의 불순종은 짓누르는 바위가 되었습니다. 15장에서 유의 있게 보아야 할 것은 사울에 대한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사울은 하나님께 있어서 대체 어떤 큰 잘못을 했기에 유독 사울을 가혹하게 대하시는가 하는 점입니다. 성경의 다른 인물들은 사울보다 더 큰 잘못을 범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울의 실수와 잘못을 용서치 못하시고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음을 당하게 됩니다.

 

1.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라(1-3절).

(적용 : 악한 사단 마귀를 대적하여 진멸하라)

 

사무엘이 오랜만에 재등장하고 있습니다. 사울은 사무엘을 통하여 하나님께 제사한 일로 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무엘도 모든 공식적인 사역을 내려놓고 사울의 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다시금 사울 앞에 나타났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여 제사장직을 침범하며 스스로 제사장 역할을 하려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하였습니다. 사울 앞에 나타난 사무엘의 첫말은 “이제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는 말에서 여러 가지 복잡한 심경이 들어있습니다. 나를 통하여 사울 당신에게 왕으로 기름 붓게 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시오. 사무엘이 아직까지 통제권을 가지고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사울이 하나님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았으면 순종하는 것이 도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마땅히 귀를 기울어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을 들으라는 것은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입니다. “들으라” 하는 말은 쉐마를 말합니다. 쉐마 이스라엘로 유명한 구절이 있습니다. 율법의 대강령이라고 불리는 신명기 6장 4-9절이 바로 쉐마 본문입니다.

신 6:4-9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원문은 “쉐마 이스라엘”로 시작됩니다. “들으라 이스라엘아” 자기 이름을 넣고 읽으면 더욱더 뜻이 나에게 다가오는 줄 믿습니다. 들으라 아무개야!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즉 전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십시오.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하며 기억하기를 축원합니다.

미국 한인교회에서 시무하는 한국인 젊은 목사가 있었습니다. 한 20여 명 정도의 소수의 교인들이 주일예배에 참석하였습니다. 젊은 목사에게는 아버지가 계시는데 아들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와 같이 사는데 신앙은 별로 깊지 못했습니다. 목사님의 아버지는 주일이면 예배당 맨 앞자리에 앉아 설교를 들으셨습니다. 그러나 잘 듣는 것이 아니고 항상 졸고 심하면 코까지 고시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은 이런 부친 때문에 교인들 보기가 민망하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직 신앙이 깊지 못하신 부친께 섣불리 말씀을 드릴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다 하루는 교회에 잘 나오는 꼬마를 만나 부탁을 하였습니다. “주일 낮 예배 때 맨 앞에 앉으시는 할아버지 옆에 앉아 있다가 할아버지가 설교시간에 조시면 흔들어 깨워 드려라. 그러면 한 주에 1달러씩 주겠다. 그 뒤로 몇 주일이 지나도록 목사님의 아버지는 조실 수가 없었습니다. 한 달 정도 지난 어느 주일이었습니다. 설교시간에 부친이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도 옆에 앉아있는 꼬마는 깨울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예배 후 목사는 꼬마를 불러 왜 깨우지 않았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꼬마가 대답하였습니다. “할아버지께서 흔들어 깨우지 않으면 3달러를 주신다고 했거든요.

파파라치가 교회에서도 필요합니다. 잠 파라치에게 포상을 해야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귀를 기울여 듣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귀를 잘 기울여 들을 것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추억하고 계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추억하고 계신 일은 출애굽 때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한 일이었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기쁨의 추억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이 기분 나쁜 추억은 출애굽기나 민수기, 신명기에서 거론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르비딤에서 싸울 때에 모세가 손을 들면 이기고 피곤하여 손을 내리면 누가 이겼습니까? 모세를 도와 아론과 훌이 두 손을 들어 해가지지 않도록 하여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 유명한 아말렉과의 르비딤 사건이었습니다(출 18:8-13). 또한 출애굽 하는 이스라엘의 행렬을 피곤함을 틈타 약한 대열을 친 일입니다(신 25:17-19). 광야의 약탈자인 아말렉의 이런 행위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정면도전 이었습니다. 하여 하나님께서 “내가 그들을 벌하노니” 라며 아말렉 사건을 잊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당시 400여 년 전 사건을 하나님은 잊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억력이 대단한 분이십니다. 오래 전의 일도 다 기억하고 계시며 과거에 아멜렉 족이 잘못한 것에 대하여 다시 응징하겠다는 의도십니다. 아멜렉은 잘못 걸렸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잘 듣고 순종하면 아말렉은 다시 모세에 이어 사울에게도 철저히 응징 당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 정리되지 못한 것이 있으면 두 손 들고 항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개인은 물론 공동체의 정리 되지 못한 일까지도 언젠가는 반드시 물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심판하시는 것은 조선시대 죄인을 추국(推鞫)하는 것에 비하여 절대 가볍지 않습니다. 역모를 하다 발각되면 삼대가 멸족을 당하여 완전 패가망신한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사울에게 내린 명령은 진멸입니다. 진멸하다는 원어 헬렘으로 신에게 바친다라는 뜻입니다. 또한 “파괴하는 일에 전심하다”는 뜻도 있습니다. 쑥대밭을 만든다는 말이 있죠? 이처럼 여기서는 완전히 멸함을 뜻합니다. 범죄의 물건을 완전히 멸하는 것이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란 뜻입니다.

이상근 박사의 주석에 이 헬렘에 대하여 자세히 분류해 놓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적군에 대하여 헬렘을 선고한 명령은 다양합니다.

①남자만 죽일 것(민 31:17)

②유부녀는 죽이고 처녀는 살려둘 것(민 31:17-18; 삿 21:11-12)

③사람은 다 죽이고 가축은 살려둘 것(신 2:34-35)

④사람과 가축을 모두 멸할 것(신 32:25)

 

하나님께서 아말렉의 모두 생명체를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남녀노소는 물론 그들의 양과 약대 나귀등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까지 죽이는 철저한 선고였습니다. 아말렉에게 내려진 헬렘은 사람과 가축을 모두 멸하는 가장 무거운 선고입니다. 생명체는 다 죽이고 제물은 모두 파괴시켜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여기서 당혹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구절을 너무나 잘 아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말시온(Marcion)주의자들은 이런 하나님의 폭력성에 대하여 구약성경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신약과 요한복음과 바울서신 등 일부만 인정하는 이단까지도 생겨났습니다. 우리가 보아도 하나님의 헬렘은 너무나 가록하게만 느껴집니다. 젖 먹는 어린아이의 눈을 들여다보면 어찌 이런 끔찍한 일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죽음에 대하여서도 기뻐하시지 않는 분 아닙니까?

겔 33:11

너는 그들에게 말하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

 

궁극적으로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께서 손수 빚으신 결과물들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그러나 토기장이가 자신이 원하지 않는 토기를 다시 부수는 것처럼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사람은 부서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이미 모세를 통하여 가나안 땅의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성실치 못했습니다. 결국에는 가나안의 이방신전을 접하고 하나님을 떠나 끊임없이 가나안 우상숭배에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왜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의 우상들을 섬기는 민족들에 대하여 헬렘을 선포하셨는가를 역사를 통하여 보여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진멸은 보편적으로 이 땅에 악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단마귀가 공중 권세를 잡은 것도 하나님을 배반한 인간의 죄악 때문인 것입니다. 죄악으로 물든 인간은 하나님과 가까울 수 없습니다. 죄는 모양이라도 버리라는 것처럼 철저히 이런 본성이 헬렘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을 떠나려는 이 육신이 철저히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는 줄 믿습니다.

이스라엘은 택한 백성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유대인에게 접붙인바 되어 영적인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에 의해 택한 언약 백성이 되지 않고는 마지막 때에 가서 진멸 당함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내 안에는 더러운 것들에 대하여 헬렘을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 정사와 권세 잡은 악한 영들을 대적하여 진멸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부터 성전을 선포합니다. 말씀을 가로막고 방해하고 교회부흥을 가로막는 더러운 사탄 마귀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성전을 선포하노라!

진멸될 지어다! 진멸될 지어다!

내 육신을 침입한 모든 악한 질병은 진멸될 지어다! 내 영을 더럽히고 분열하고 파괴하는 악한 영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명하노니 부서지고 무너져 진멸될 지어다! 아멘

 

2. 그들과 함께 너희를 멸하게 될까 하노라(4-6절).

(적용 : 택한 백성은 보호하신다)

 

사울이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명령을 받고 21만의 대군을 이끌고 아말렉 성까지 이르렀습니다. 아말렉은 성전에 의하여 진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겐 족속이 있었습니다. 겐 족속은 본래 아라비아 유목민들이었습니다. 모세의 장인이 이드로인데 바로 겐 사람이었습니다. 따라서 겐 족속은 이스라엘에 호의적이었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광야 길에 동행하면서 길을 안내하고 가나안 부족들과 싸우면서 선의를 베풀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는 차차 아말렉 족과 같이 섞여 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겐 족속을 잊지 않았습니다. 사울이 군대가 아말렉을 치기 전에 겐 족속이 아말렉에서 떠나 안전한 곳으로 피하도록 알려주었습니다.

3절에 하나님께서 아말렉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다 진멸하라고 하셨습니다. 남기지 말라고 하신 것은 긍휼히 여겨 아끼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한 마디로 국물도 없다는 뜻입니다. 사사로운 인간의 정에 이끌리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으로 모든 일을 하라는 하나님의 단호한 명령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죄에 대하여 단호하시기 바랍니다. 죄가 우리의 영혼에 얼마나 악영향을 끼치는지 심각하게 생각해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하여서는 그렇게 강경하고 단호하십니다. 죄와는 전혀 타협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무서운 진멸 가운데서도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호의를 베푼 겐 족속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은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베푸시는 줄 믿습니다.

사 6:13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을 것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라 하시더라

 

이 말 뜻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의해 포로가 되어 끌려가고 죽고 하는 가운데서 인구가 일부가 남아 있을지라도 결국은 멸망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십니다. 비록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루터기가 남아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밤나무와 상수리나무는 잘라 내어도 그 뿌리에서 새 싹이 다시 나옵니다. 이처럼 범죄 한 이스라엘이 끌려가고 잘려 내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그루터기를 남겨두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이 혹 하나님에 의해 내쳐졌다고 생각하십니다. 세상에 의해 좌절되고 배신당하고 버려졌다고 생각하십니까? 삶이 싫증이 나고 내 삶이 피폐되어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드십니까? 아닙니다. 절대 사탄 마귀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붙들고 있는 사람은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내 삶이 절단되고 무너지는 순간에도 희망의 새순이 트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루터기는 반드시 남겨두기 때문입니다. 좌절과 고통 속에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그루터기가 있음을 알기 바랍니다.

소돔과 고모라 라는 용서할 수 없는 진멸 대상 속에서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을 기억하셨습니다. 진멸의 대상인 아말렉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겐 족속을 돌아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실 때에 죄의 자리에서 떠나기를 축원합니다. 롯의 사위들이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호의를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농담으로 받아넘겨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진리를 농담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살리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말렉과 겐 족속을 똑같이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아말렉은 죄로 인해 진멸의 대상이었습니다. 겐 족속은 하나님을 선대하므로 긍휼의 대상이었습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고 방해하는 세력은 진멸의 대상인 되는 줄 믿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을 선대하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들은 진노 중에서도 긍휼을 베푸시는 줄 믿습니다.

 

♬ 우리 함께 기도해

우리 함께 기도해 주 앞에 나와 긍휼 베푸시는 주

하늘을 향해 두 손 들고

하늘문이 열리고 은혜의 빗줄기 이 땅 가득 내리도록

마침내 주 오셔서 의의 빗줄기 우리 위에 부으시도록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에 의해 긍휼의 대상입니까? 진멸의 대상입니까?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인간의 본질을 진노의 자녀라고 하였습니다.

엡 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당시 에베소의 이방인뿐만이 아니라 바울과 유대인들은 과거에 자신들이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었다고 자부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들도 본질상 육체의 자녀이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이 말은 모욕적인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아담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되었고 그 후로도 끊임없이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야 할 존재가 바로 인간의 모습인 것입니다.

본질상 인간은 진노의 자녀입니다.

인간은 육체가 원하는 일만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인간의 감정, 사고 이성까지도 죄에 오염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육체나 마음이 원하는 것들이 모두 하나님을 거역하고 반대합니다. 우리 인간이 얼마나 부패하였는지 모릅니다. 그 죄의 부패가 이제는 어린 청소년에게까지 미쳤습니다. 하루가 멀다하게 각종 범죄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매스컴에 나오는 중학교 1, 2학년 학생들의 행하는 일들을 보면 정말 인간의 부패가 어디까지 갈 것인지 참으로 암담한 심정입니다. 물론 일부이기는 하지만 청소년으로서의 악한 어른들을 흉내 내는 죄악상은 본질상 인간은 진노의 자녀임을 실감합니다. 죄의 장성함이 어디까지 갈 줄 모릅니다. 이제는 원만한 범죄에 대하여 눈도 꿈적하지 않습니다. 이런 나 자신을 보면 정말 말세가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인간의 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나중에는 감당할 수 없게 되는데 그 때는 점점 주님 오실 날이 가까워지는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의 대상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시편에는 한 인간의 7대 참회시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참회시에는 인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자신을 물론 원수들과 친구들에게 조롱당하고 하나님께 사죄 은총을 구하고 있습니다. 7대 참회시 중에 시편 51편에서 다윗은 철저히 하나님의 긍휼을 바랬습니다.

시 51:1-5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주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들과 함께 너희를 멸하게 될까 하노라” 비록 사울이 한 말이지만 하나님이 주신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과 함께 어찌 우리가 멸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모두 주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무궁한 긍휼로 우리의 죄악에서 건짐 받기를 축원합니다.

 

3. 모든 좋은 것도 남기지 말고 진멸하라(7-9절).

(적용 : 하나님의 성전에는 가감이 없어야 한다)

 

사울이 아말렉을 쳐서 왕인 아각을 사로잡고 그 외 백성들은 모두 진멸하였습니다. 8절까지의 상황은 사울이 하나님의 성전을 완성하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 지키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전을 치루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가감이 없어야 하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벗어날 때 분열이 오고 균열이 생기고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의 장로교로 출발한 장로교가 지금은 한 140여가 됩니다.

한국의 장로교 교단이 갈라진 것은 역사적으로 세 차례입니다. 1912년 조선예수교장로회로 출발했으나 1952년 신사참배문제로 고신이 분리되었습니다. 두 번째 분열은 1년 뒤인 예장과 기장이 신학적 노선으로 갈렸습니다. 세 번째는 1959년 WCC가입 문제로 합동과 통합이 분리되어 그 뒤로도 140여 개의 수많은 장로교단이 생겨났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위에 세워진 한국 장로교단은 축자영감설(기계영감설)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신학적 입장이 나뉩니다. 축자영감설은 하나님께서 기록자에게 글자를 하나씩 불러주셨다는 이론입니다. 아멘. 이에 따라 성경에 전혀 오류가 있을 수 없다는 성경무오설이 나왔습니다. 예장 합동, 고신, 합신은 성경무오설과 축자영감설을 받아들입니다. 통합은 성경무오설은 인정하지만 축자영감설은 거부합니다. 그러나 기장은 성경무오설과 축자영감설을 모두 거부하되 성서비평학을 인정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인 줄 믿습니다. 성경 말씀을 왜곡하고 말씀에서 벗어나 이렇게 분열되고 갈라진 것도 하나님의 말씀, 성경 말씀에 대하여 가감을 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성경 그대로의 말씀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를 믿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하셨음을 믿습니다. 말씀이 육신에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심을 믿습니다. 말씀이 우리 영혼에 생명이 되는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교회가 약화되는 것은 말씀이 약화되었기 때문입니다. 강단에서 말씀 선포가 약화되었기 때문에 성도들의 신앙도 약화 되는 줄 믿습니다. 한국의 교회가 부흥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였기 때문입니다. 심령부흥회와 함께 말씀사경회는 오늘날 한국교회 있게 한 원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점차 하나님의 말씀 대신에 교회에 점차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도입되었습니다.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손쉽게 혹은 무분별하게 각종 예배의 행태가 도입되면서 교회가 힘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성도들을 말씀으로 양육하기보다 반짝 유행하는 프로그램으로 대치했습니다. 그 결과 젖만 먹는 어린아이의 신앙으로 정체되고 말았습니다. 어린 아이가 엄마 젖을 힘차게 빨아야 하는데 그만 젖병에 익숙해져 엄마 젖을 힘을 써서 빨지 못합니다. 애쓰고 힘쓰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려는 얄팍한 성도들은 젖병에 익숙한 교인일 뿐입니다. 교회를 지탱해주고 성도 개인의 믿음을 지탱해 줄 단단한 말씀의 양식을 공급받지 못함으로 어떻게 되었습니까? 시들시들 병에 걸린 중환자 같은 모습이 오늘날 우리교회와 성도들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에 감동되어 말씀이 나를 사로잡기를 축원합니다. 목적이 내 삶을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닙니다. 목적과 그 외에 어떤 수단이 나를 이끄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나를 이끌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태초부터 계셨던 말씀, 그 말씀에 벗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일점일획도 가감하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나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벗어났습니다. 말씀을 자신에 맞게 변형했습니다. 아말렉 왕인 아각을 죽이고 않았습니다. 가장 좋은 양과 소, 기름진 어린 양을 진멸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볼품없고 가치 없는 짐승들만을 진멸하였습니다. 사울은 성전-헬렘을 무시했습니다. 파괴하는 일에 전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지지 못한 헬렘이 되었습니다. 결국 아각은 사무엘에 의하여 죽었지만 아말렉 사람 일부가 도망쳤음에 분명합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망치던 시절 아말렉이 다시 출현 하였다가 히스기야 시대에 일소되었다는 사실을 보면 아말렉 진멸도 사실이 아닐 수 있습니다.

삼상 30:1-2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사흘 만에 시글락에 이른 때에 아말렉 사람들이 이미 네겝과 시글락을 침노하였는데 그들이 시글락을 쳐서 불사르고

거기에 있는 젊거나 늙은 여인들은 한 사람도 죽이지 아니하고 다 사로잡아 끌고 자기 길을 갔더라

 

아말렉에 의하여 다윗을 따르던 백성들이 잡혀가고 다윗의 두 아내도 잡혀갔습니다. 이 사건으로 백성들이 돌로 다윗을 치려한 일까지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게 되면 꼭 후환이 뒤따르게 됩니다. 사울이 하나님의 성전을 어기고 불순종한 것은 가장 좋은 것, 보기에 좋은 것이었습니다. 탐욕, 물욕이 사울의 눈을 멀게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간 역사의 비극은 좋은 것을 찾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한 만큼 탐스럽기도 한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 세상, 즉 사단 마귀가 공중의 권세를 잡은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없다고 하였습니다. 세상으로부터 온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은 하나님 아버지께로 온 것이 아닙니다(요일2:15-16). 우리 인간들이 추구하는 보편적인 가치는 이처럼 세상적인 것입니다. 하늘로부터 오는 신령한 것이 아닌 썩어질 것을 추구하는 것이 말씀을 선별적으로 취한 사람들의 태도입니다.

생각해 볼 것은 물질을 향한 정당한 노력, 명예를 추구하는 것을 무작정 배척하는 것은 아닙니다. 명예를 향한 지나친 욕심, 물질을 향한 지나친 욕심을 파괴하시바랍니다. 비이성적인 육신의 정욕을 파괴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모든 것들이 진멸의 대상입니다. 불순종 역시 철저히 파괴되어 하나님께 복종시켜야 할 것입니다.

사단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빼앗고 속이려듭니다. 에덴동산에서 여자와 남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변형 왜곡시켰습니다. 사사로운 정에 얽매이게 만들고 말씀을 혼탁하게 만들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했습니다. 결국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 성전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별하여 자기에게 유리에게 차용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불변합니다. 이사야가 무너져 가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외쳤던 말씀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사 40: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인간 세상사의 모든 것은 세월이 지나가면 마르고 시들고 변하여 없어지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변함없는 줄 믿습니다. 말씀을 가로막고 빼앗아 가는 사탄 마귀를 대적하기를 바랍니다. 성도들의 말씀을 빼앗아 가야 사단이 존재하기에 사탄은 어떻게 해서든지 말씀에 굳게 서는 성도를 방해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전심을 다하여 추구하는 것들 중에 하나님의 말씀에 반하는 것이 있다면 과감히 결단해야합니다. 이 세상이 가져다주는 보기에 좋은 것이냐 하나님의 말씀이냐? 이 세상이 가져다주는 안락함과 평안함이야 말씀을 붙잡고 씨름하며 가느냐 선택을 해야 합니다. 사울은 이 세상이 가져다주는 좋은 것들, 기름진 것들을 취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생은 그것으로 만족할 뿐 더 이상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들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이단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변형시키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떨어져 나갔습니다. 교회의 부흥을 가로막고 성도들의 신앙의 성숙을 가로막는 것은 성경을 가감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비평하는 자들은 이 말씀은 이래서 엉터리다, 이 말은 이래서 잘못됐다 라며 성경을 갈기갈기 찢고 더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에게는 더 이상 기적도 성령의 능력도 맛 볼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은 비평의 대상이 아닙니다. 말씀이신 하나님을 어떻게 인간들이 비평을 합니까? 우리는 성경이 가라하면 가고 서라하면 서야합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말씀에는 오직 “예”와 “아니오”만 있습니다. 아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므로 여러분들의 삶이 세상의 좋은 것은 물론 하늘의 신령한 것들로 가득 채워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날짜 조회 수
등록된 글이 없습니다.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