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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삼상15:17-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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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윤식 목사 |
참고 : |
본문 : 삼상 15장 17-23 2010.08.13.
제목 :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본문 17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여호와께서 왕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시고 18 또 여호와께서 왕을 길로 보내시며 이르시기를 가서 죄인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되 다 없어지기까지 치라 하셨거늘 19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께서 악하게 여기시는 일을 행하였나이까 20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여호와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 왔고 아말렉 사람들을 진멸하였으나 21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끌고 왔나이다 하는지라 22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23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
본문 주제 관찰 ①사무엘은 사울의 잘못을 지적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법정의 검사가 피고에게 선고하는 것과 같이 한다 ②들으라와 청종하라 ③사울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린 것같이 하나님께서도 사울을 버리신다 |
1. 순종은 자신을 스스로 작게 여기는 것(17-19절). (적용 : 교만한 사람이 할 수 없는 것 순종)
①삼상 9:21 사울 스스로 작은 자 ②예수님의 제자들-천국에서 키재기 ③자신을 낮추는 자가 큰 자 (결)자신을 낮추고 섬기는 자가 되라 |
①♬ 나의 가장 낮은 마음 ②교만한 사람이 할 수 없는 것 순종 ③빌 2:5-8 기독론 (결)죽기까지 순종하는 예수님을 배우자 |
①성령을 거스리는 육신의 소욕을 쳐서 복종시켜라 ②하나님께 청종하지 않고 탈취하는 사울 ③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자는 하나님께서 악하게 여기는 일만 한다 (결)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청종하자 |
2. 순종은 마땅히 버려야 할 것을 버리는 것(20-21절). (적용 : 버려야 할 것들을 버리고 하나님을 쫓아야 한다)
①순종은 버려야 할 것을 버리는 것 ②자기정당화는 순종의 삶에서 멀어지게 ③프로이센 지방의 베를린 감옥의 죄수들 (결)자기정당화를 버려라 |
①버리고 쫓은 믿음의 선진들 ②멸하여야 할 것을 마땅히 버리라 ③행 27:18-19 살기 위하여 버려라 (결)버리지 않고는 하나님께 순종할 수 없다 |
①선박의 만재흘수선(滿載吃水線) ②여리고 성 일곱 바퀴를 다 돌고 외치라는 명령에 순종했을 때 무너졌다 ③온전한 순종을 붙들라 (결)버리고 쫓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라 |
3. 순종이 제사보다 더 낫다(22-23절). (적용 : 순종은 종교성보다 내적 태도가 더 중요하다)
①번제와 제사보다 하나님의 말씀 청종 ②프랭크린 루스벨트 대통령 ③순종이 제사보다 더 낫다 (결)순종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므로 |
①가나안의 풍요제가 아닌 상한 심령 ②번제와 제사의 중요성 ③ 시 51:17 상한 심령, 호 6:6 인애, 하나님을 아는 것 (결)번제나 제사보다 상한 심령이 요구 |
①말씀을 청종함이 순종의 삶이다 ②세상의 것들로부터 자신을 통제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 ③하나님의 말씀을 버림으로 사울도 버려진다 (결)하나님께 순종하라 |
본 단락은 사울의 불순종에 대한 사무엘의 지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시 한 번 사울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합니다. 사무엘은 사울의 잘못을 지적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법정의 검사가 피고에게 선고하는 것과 같이 준엄한 심판을 내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성도들의 순종은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믿음은 들으면서 나기 때문입니다. 듣는 다는 말의 히브리 원어가 순종을 의미합니다. 믿음은 들으면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 순종하지 않으면 예수님을 내 안에 담아 둘 수 없습니다. 말씀을 순종하지 않으면 내 안에 예수님이 안 계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하여 순종하는 삶이 어떤 종교적 행위보다 나음을 알게 되기를 원합니다.
1. 순종은 자신을 스스로 작게 여기는 것(20-21절).
(적용 : 교만한 사람이 할 수 없는 것 순종)
순종하는 사람은 자신을 스스로 작게 여길 줄 아는 사람입니다. 사울은 하나님에 의해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을 때에 자신을 작은 사람이라 여겼습니다. 이런 그의 겸손은 이스라엘을 이끌 지도자로서 마땅한 것이었습니다.
삼상 9:21
사울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니이까 또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서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니이까 당신은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나이까 하니
사울의 출발은 겸손하였습니다. 스스로 약한자로 생각하여 자신을 낮추었습니다. 자신을 낮출 때에 하나님께서 택하십니다. 그러나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생각하지 못한다고 하는 말은 사울을 가리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흔히들 사용하는 이 말은 우리 중에서도 적용되는 줄 믿습니다. 자수성가한 사람들 중에는 자신의 연약한 처지를 생각하며 훌륭한 삶을 사시는 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런 자신의 처지를 잊어버리고 안하무인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성공하였을 때 초심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시 초심으로 돌아갑시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혜를 생각하고 우리의 믿음 생활도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기를 바랍니다. 늘 자신의 뒤를 돌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과거에는 내가 이렇게 살았는데 겸손하게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며 살았는데 이래서는 안 되겠구나!
하나님!
제가 하나님 앞에 다시 한 번 낮아지기를 원합니다. 아버지 앞에 작은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고 교만한 자를 물리치십니다. 순종과 교만은 함께 할 수 없습니다. 높아지고자 하는 자는 낮아지고 낮아지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높여주실 줄 믿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천국에서 키재기 시합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온 인류의 십자가를 지고 씨름을 하는데 제자들은 천국에서 누가 큰 자냐 논쟁이 붙었습니다. 주의 영광중에 각각 좌우편에 앉기를 원했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에서 어린아이와 같이 자신을 낮추는 자가 큰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에서는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고자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직업으로서 직장에서 섬기는 일뿐만 아니라 교회에서도 서로 섬기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신을 낮추는 일은 너무 어렵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낮추는 자를 하나님은 사용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나의 낮은 마음을 기뻐하십니다.
♬ 나의 가장 낮은 마음
나의 가장 낮은 마음 주님께서 기뻐하시고
작은 일에 큰 기쁨을 느끼게 하시는 도다
내가 지쳐 무력할 때 주님께서 힘이 되시고
아름다운 하늘나라 내 맘에 주시는도다
우리에게 축복하신 하나님 사랑
낮은 자를 높여주시고
아름다운 하늘나라 허락하시고
내 모든 것 예비하시네
찬양함에 기쁨을 감사함에 평안을
간구함에 하나님 알도록 하셨네
교만한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순종입니다. 순종은 낮은 사람, 자신의 마음을 낮추고 겸손한 사람이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순종을 철저히 하나님 앞에서 낮아지셨습니다. 예수님의 일생은 자신은 낮추고 아버지께 온전한 순종의 삶을 사셨습니다. 제가 설교에 많이 인용하는 빌립보서의 기독론을 다시 한 번 새겨봅니다.
빌 2:5-8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할렐루야!
저는 이 말씀을 대할 때 마다 마음이 찡합니다.
왜 그렇게 하나님께서 죽기까지 순종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습을 온전히 비우시고 종의 모습을 가지시는 것입니까? 예수님은 단지 종의 외향만을 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본질적으로 종이 되었습니다. 종이 되어 우리와 같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비하하시고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십니다. 누구 때문에 자신을 비참하게 하시는 것입니까? 무엇 때문에 자신을 낮추고 있는 것입니까?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본질을 바꾸시면서까지 죄의 모양을 가진 인간으로 오셨습니까? 그 죄로 인하여 죽음도 불사하는 십자가에 순종하셨습니까?
저와 여러분의 교만과 죄 때문입니다. 교만과 죄는 하나님을 순종하지 못하게 합니다. 마치 독사가 고개를 쳐들고 먹이를 노리듯이 불순종은 나의 심령을 노리고 있는 것입니다. 방울뱀이 나무에 올라간 다람쥐를 사냥할 때 꼬리에 달린 방울로 다람쥐를 현혹합니다. 그러면 다람쥐가 방울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릴 때 독사 방울뱀이 다람쥐를 찢어 죽일 듯이 째려봅니다. 그 순간에 방울뱀과 눈이 마주친 다람쥐가 얼어붙어 버리고 정신을 잃어버려 나무에 떨어지고 맙니다. 그러면 방울뱀이 냉큼 입을 벌리고 잡아먹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단이 하는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성도들을 현혹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로막아 순종치 못하게 합니다. 성도들의 관심사를 세상의 것으로 현혹합니다. 쾌락과 헛된 욕망으로 유혹합니다. 그리고 때가 되어 결정타를 달리면 다람쥐 신세가 되어 사단의 밥이 돼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사단의 밥이 되지 맙시다. 죽기까지 순종하는 예수님을 배우시기를 바랍니다. 내 육신의 정욕은 끊임없이 교만과 불순종을 요구합니다. 성령을 거스리는 육신의 소욕을 쳐서 복종시켜 하나님께 드려지기를 원합니다. 교만한 마음이 겸손으로 낮아지기를 축원합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없이하라는 것 말씀에 청종하지 않았습니다. 사울은 오직 재물에만 귀를 기울였습니다. 좋은 가축들이 들려주는 울음소리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사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청종치 않음으로 하나님께서 악하게 여기시는 것만 행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떠난 인간은 하나님께서 악하게 여기는 죄악들만 행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말씀을 못 듣게 하는 것이 사단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귀를 기울여 듣지 못하도록 귀를 막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도록 인간의 이성으로 꽁꽁 묶어버립니다. 철학가, 예술가, 과학자 등 하나님을 불손종하는 이 세상의 지혜자들이 사람들을 현혹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가로막혀 버리고 만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악하게 여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판단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당하였을 때 계산하고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독자 이삭을 모리아산에 바치고 칼로 내리쳤습니다. 모리아산이 후에 예루살렘 성전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순종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전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므로 하나님의 성전이 내 심령에도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인간의 이성으로는 하나님의 이 말씀에 순종하지 말라 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아니라 사단 마귀의 일로 판단하고 정죄합니다. 사단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게 가라지를 뿌려 놓습니다. 영분별을 하지 못하게 하여 어떤 것이 알곡인지 어느 것이 가라지인지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내 심령에 가라지가 제거되는 줄 믿습니다.
나는 작으나 내 안에 내주하시는 크신 성령님의 크신 비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축복의 삶이되기를 축원합니다.
2. 순종은 마땅히 버려야 할 것을 버리는 것(20-21절).
(적용 : 버려야 할 것들을 버리고 하나님을 쫓아야 한다)
이사를 많이 해보신분들은 알겠지만 이삿짐을 쌀 때 보면 왜 그리 잡동사니들이 많은지요? 좁은 집 안에 어디서 그렇게 많은 쓸데없는 물건들이 숨어있는지 새삼 놀랍니다. 마땅히 버려야 할 것들을 버리지 못하고 이사 다닐 때 마다 버리지 못하고 쓸모없는 물건들을 지니고 삽니다. 누더기를 버리고 살림살이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버려야 홀가분한데 그걸 버리지 못하고 이사 때마다 가지고 다닙니다. 먼지만 뽀얗게 쌓여있는 잡동사니들을 버려야 짐이 덜어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절대 우리의 영적인 상태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버려야 할 것들을 버리고 못하고 끌어안고 살아갑니다. 피곤할 수밖에 없습니다. 버려야 할 것들을 버려야 갈 길을 힘차게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영적으로도 우리가 버려야 할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상숭배, 영적인 간음행위, 믿음의 형제, 자매와의 시기 질투, 게으름, 분노, 혈기, 아집 등등 이 모든 것을 과감히 버리기를 축원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적인 침체에 빠져들고 맙니다.
허물을 벗지 않으면 제2의 도약이 없습니다. 곤충이 자기의 유충을 벗어버리고 나야 성충으로 거듭나듯 우리의 옛 자아가 벗어져야 새 사람으로 거듭나는 줄 믿습니다. 우리의 겉사람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져야 할 줄 믿습니다.
순종은 버려야 할 것들을 마땅히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사울은 자기정당화를 일삼고 있습니다. 진멸해야 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취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 백성들이 한 일이라고 다시 한 번 변명과 자기정당화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18세기 프로이센 지방의 군주인 프레드릭 2세가 베를린에 있는 감옥을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죄수들은 왕 앞에 자신이 부당하게 투옥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려고 애썼습니다. 다른 모든 죄수가 무죄를 주장하는 가운 데 오직 한 명의 죄수만이 조용히 구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를 본 왕이 갇힌 이유를 물었습니다.
저는 무장 강도를 저질러서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폐하!
유죄가 맞느냐?
그렇습니다, 폐하. 저는 벌을 받아 마땅합니다.
그러자 왕이 간수에게 명령했습니다.
이 죄인을 풀어주어라. 이자가 다른 무고한 사람들을 물들이게 하고 싶지 않구나.
사랑하는 여러분!
무덤에 가서 물으면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하나도 없고 감옥에 가면 다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사람들 뿐입니다. 인간의 본성이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변명과 자기정당화를 버리지 못하고 사는 한 현대인의 모습이 18세기 프로이센 감옥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일본의 총리가 한일강제병합 100주년을 맞이해 사죄담화문을 발표했습니다. 과거 일본의 어느 정권보다 진일보 했지만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고 강제점령만 인정할 뿐이었습니다. 자기정당성을 내세우며 일본은 독일과 달리 과거 자신들이 이웃나라에게 고통을 주며 잘못을 행하였던 사실에 대하여 진심으로 사죄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방어를 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본능입니다. 운전도 몇 년을 하다보면 익숙하고 능숙하게 됩니다. 초보자일 때는 도로 위의 선과 교통신호등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운전합니다. 그러나 몇 년을 하다보면 방어운전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운전의 자기방어와 달리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고 떠넘기는 태도는 극히 잘못된 것입니다. 사울은 잘못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거짓과 변명으로 자기방어만하고 모든 잘못을 백성들에게 사람에게 떠넘기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수하에 있는 사람들을 오히려 이용하고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에서 사울은 왕으로서 지도자로서의 덕목으로 자질이 없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버리지 못하면 하나님을 따를 수가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 했을 때 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지시한 곳으로 갔을 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열국의 아버지로 세우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를 때에 그 부르심에 응했습니다. 베드로와 형제 안드레를 부르셨을 때 이들은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자기들의 밥줄이요 생업인 그물을 붙잡고 있지 않고 그물을 버렸습니다. 세베대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은 한 술 더 떠 자신들의 아버지와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버려두다’라는 말은 특별히 권리나 재산에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 요한은 예수님의 부르심에 물질로 매이지 않았습니다. 혈연으로 매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쓰려고 하는데 우리는 물질로 매입니다. 학연으로 혈연으로 지연으로 매여서 하나님이 쓰시고자 하려해도 쓸 수 없습니다. 세상은 우리가 버려야 할 것들을 버리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결코 버리지 않고는 하나님에 의해 사용될 수 없습니다.
사울은 물질에 매였습니다. 물질이 그를 사로잡으므로 하나님을 순종하고 따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물질이 그의 마음을 붙들고 있어 절대 놓지 못하므로 버려야 할 것을 버릴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과감하게 버려야 할 것들은 버리기를 축원합니다. 너무 버리기 힘든 것으로 인하여 마음이 괴롭고 아픈 것도 있겠지요. 그러나 버리지 않으면 죽습니다. 사도행전에 죄인의 신분이 된 바울을 태운 배가 이탈리아로 항해하다 광풍을 만나 위험에 처한 일이 있었습니다. 배와 사람이 살기 위해서 한 일은 짐을 바다에 버리는 일이었습니다.
욘 1:4-5
여호와께서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서 큰 폭풍이 일어나 배가 거의 깨지게 된지라
사공들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들을 바다에 던지니라 그러나 요나는 배 밑충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
계속해서 말씀을 보겠습니다.
행 27:18-19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그들의 손으로 내버리니라
선원들이 살기 위해서는 배에 선적해 있던 짐을 내 던져버려야 조금이라도 안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의 첫 직업은 청년 시절 외항선의 항해사였습니다. 따라서 배에 대하여 조금은 알고 있습니다. 배에는 만재흘수선(滿載吃水線)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선박의 안전에 대하여 화물선에 화물을 실을 수 있는 한계를 표시한 선입니다. 선박에 화물을 싣고 항해 할 때 안전을 위하여 설정한 선으로 절대 그 선을 넘어서는 안 됩니다. 대양에서 큰 저기압을 만나거나 험악한 날씨로 인하여 파도가 칠 때 배의 중심이 기울어져 배가 침몰 될 수 있습니다. 그 때에 최후의 수단으로 배의 중심을 잡기 위해 선적한 화물을 바다에 버립니다. 그러므로 만재흘수선을 유지하여 안전을 확보해야 하는 것입니다. 버리지 않으면 배와 더불어 타고 있던 사람들이 죽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가장 아끼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가장 버릴 수 없는 것이 무엇입니까?
다 버리십시오. 버려야 삽니다.
사울이 가장 좋은 것으로 하나님께 제사하려고 한 것은 진심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 드림을 핑계대고 사울 자신의 배만 채우려는 속셈인 걸 다 알고 있습니다. 순종은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마땅히 좋은 것들을 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믿음은 순종을 요구합니다. 여리고 성이 언제 무너졌습니까? 칠일 째 되는 마지막 날입니까? 아닙니다. 칠일 마지막 일곱 바퀴를 다 돌고도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여리고 성이 무너진 것은 칠일 째 일곱 바퀴를 다 돌고 외치라는 명령에 순종했을 때입니다.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고 그 소리에 마쳐 백성들이 크게 소리 질러 외칠 때에 성벽이 무너져 내린 줄 믿습니다. 인간의 헛된 욕망이 추구하는 것들이 무너져 내리기를 원합니다. 내가 추구하는 하나님을 떠난 믿음의 행위들이 부서져 내리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적은 말씀을 마지막까지 순종할 때 일어나는 줄 믿습니다.
신앙은 온전한 순종을 요구합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양다리 걸치고 있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교회를 나가니 할 수 없이 신앙생활도 해야 겠고 세상이 주는 너무 좋은 것들을 포기할 수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적당히 해라 합니다. 그만하면 교회생활에 충성을 다했다. 이제 됐다. 중간쯤 하면 된다. 마귀들이 ‘그만하면 됐다’고 속삭입니다.
사울은 반쯤 하나님께 순종했습니다. 사울은 마귀들의 속임을 당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기 못하고 세상의 제물과 헛된 것을 붙잡았습니다. 버려야 할 것을 버리고 못하고 잡아야 할 것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만족과 자기방어로 하나님을 떠나 불순종으로 일관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잡고 놓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까?
놓으면 죽는다고 생각되는 것이 있습니까?
버리면 죽는다고 생각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무엇이 나의 삶보다도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버리지 않으면 죽는데도 불구하고 도저히 버릴 수 없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 각자가 잘 알고 있겠지요?
하나님! 저는 도저히 버릴 수 없습니다. 이것을 버리면 죽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것을 버리지 못하게 하는 것은 사단 마귀의 속삭임입니다. 마귀는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하게 합니다. 육신의 분노를 버리지 못하고 품고 있으면 병들어 죽습니다. 죄악을 품고 버리지 못하면 죄가 나를 삼켜버리고 맙니다. 세상을 품고 버리지 못하면 세상이 나를 삼켜버리고 맙니다. 양손으로 세상의 것들을 꽉 쥐고 있으면 하나님으로부터 주시는 것들을 받을 길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의 것들을 버려두길 축원합니다. 마땅히 버려야할 것들을 버리기를 바랍니다. 땅에 것을 버리고 하늘의 신령한 것을 붙잡기를 축원합니다. 위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능력을 붙잡고 살기를 축원합니다.
3. 순종이 제사보다 더 낫다(22-23절).
(적용 : 순종은 종교성보다 내적 태도가 더 중요하다)
사울은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 왕으로 세움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불순종하였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청종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남의 말을 듣기 싫어하는 줄 모릅니다. 귀를 기울여 듣는 것을 잘 하지 못합니다. 학생이 가르치는 선생님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으면 좋은 성적이 나올 리 없습니다. 직장인이 상사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좋은 관계가 형성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은 얼마나 중요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므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돈독해지는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연인의 대화는 속삭임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 작은 소리가 들리는 것은 상대방의 말을 기꺼이 들어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하늘의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작은 신음까지도 경청하여 들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경청하지 않는 우리는 우레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에도 전혀 듣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귀가 영적인 할례를 받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 옛적 광야에서 들려주시는 레마의 음성을 듣기를 축원합니다.
도널드 맥컬로우는 인격이라는 책에서 경청하기의 중요성에 대하여 말합니다. 경청하는 법 배우기에서 경청하려면 마음을 열고 상대방의 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하면서 루스벨트 대통령의 예를 들었습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한 번은 무도회에 참석하여 특유의 환한 웃음을 지으며 사람들과 악수를 나누고 의례적인 인사말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차츰 지겨워진 그는 어차피 아무도 듣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만나는 사람마다 “전 오늘 아침에 할머니를 죽였어요”라고 인사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하나같이 “대단하십니다!”, “정말 정이 많으세요!”, “앞으로도 그렇게 하세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귀를 기울였던 한 외교관은 제대로 알아듣고 그에게 귓속말로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할머니께서 죽을 짓을 하셨겠죠.”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번제나 그 어떤 제사 행위가 아닙니다. 사무엘은 이 사실을 지적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번제나 제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은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한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경청은 마음을 열고 상대방의 말에 주의를 기울어야하는 것입니다. 경청은 이해로 이어지고 이해는 관계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줍니다.
이어지는 사무엘의 발언을 봅니다. ‘순종은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다. ’이것은 히브리 시의 특징인 대구법인 동의적 평행법으로 순종과 듣는 것, 제사와 숫양의 기름을 대조하여 뜻을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형식적인 예배를 거부하십니다. 구약의 번제나 제사는 얼마나 중요한 일이었습니까? 고대 동방세계의 예배는 풍요제(豊饒際)와 관련이 되어있습니다. 이 풍요제가 가나안 농경문화에서 성행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애굽과 가나안의 제사문화가 아닌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성별하고 구별하는 법을 가르치셨습니다. 오경 중 레위기의 기록목적이 바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제사하는 것이었습니다. 구속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거룩한 삶을 영위하는 방법을 기록하게 하였습니다. 제사장들에게 성결 및 제사의식을 가르치기 위하여 레위기가 기록되었습니다. 모세 율법은 희생제물이 바쳐지는 제단에도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하였습니다. 또한 제단을 성별하는 제사를 칠 일 동안 단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여 거룩을 유지케 했습니다.
출 29:37
너는 이레 동안 제단을 위하여 속죄하여 거룩하게 하라 그리하면 지극히 거룩한 제단이 되리니 제단에 접촉하는 모든 것이 거룩하리라
하나님께 제사하는 성막과 성소는 구별되는 장소였습니다. 세상으로부터 구별되고 죄로부터 구별되는 거룩한 곳이었습니다. 구약 백성들에게 있어서 제사는 삶이었습니다. 제사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교제의 장소였습니다. 죄 용서를 구하는 장소였습니다. 제사장의 복장 하나 하나까지도 하나님께서 일일이 지시하여 만들게 했습니다.
번제를 잘못 드리다 죽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하나님께서 명령하지 않는 다른 불로 분향하다 불이 하나님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켰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하여 제물과 예물을 밟은 엘리의 두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가 결국은 죽음으로서 심판을 당하지 않았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제사보다 나은 줄 믿습니다.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은 줄 믿습니다. 순종치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다면 제사와 숫양의 기름은 아무 소용이 없음을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짐승을 잡아 바치는 외적인 제사는 이방인들도 하는 것입니다. 숫양들의 가장 좋은 부분 즉, 하나님께 드리는 최상의 헌물을 드리고 제사를 드린다 할지라도 순종과 하나님을 청종하지 않는다면 아무소용이 없습니다. 제사는 단지 소나, 양과 염소의 피나 기름에 지나지 않지만 내적인 순종은 하나님을 전 인격적으로 예배하는 줄 믿습니다. 그러기에 다윗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을 한 후 선지자 나단에 의해 책망을 받은 후 이렇게 고백 하였습니다.
시 51: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다윗은 자신의 교만과 자아가 완전히 부서진 심령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상한 심령인 줄 믿습니다. 부서진 마음 상한 심령으로 아버지께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든 죄와 허물을 사하여 주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선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 자신을 아는 것을 원하십니다.
호 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상한 심령으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에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이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는 것은 곧 순종의 삶입니다. 이것을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邪神)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하였습니다. 이 또한 대구법인 동의적 평행법으로 거역하는 것과 완고한 것, 점치는 죄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치 않고 말씀을 청종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완고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사울은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하여 왕으로 세움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거역하여 점치는 행위를 하고 완고하여 헛된 우상에게 절하는 죄를 저질렀습니다. 사울이 한 행위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반적인 죄악이기도 합니다. 구약 전체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경계하며 경고했던 죄악들이 여전히 횡행하고 있습니다. 사울을 통하여 이런 죄악들이 나타났지만 전반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와 다름이 없는 줄 압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경계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경고가 있기를 원합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시대에도 똑같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한 세대한 세대는 헛된 사술을 찾고 우상들을 숭배합니다. 생명이 없는 헛된 우상들은 돈이요, 권력이요, 명예요, 쾌락과 안락으로 둔갑하여 죄악으로 빠져들게 합니다. 돈이 왜 죄가 되는지요? 술과 쾌락이 왜 죄가 되는지요? 권력과 명예가 왜 죄가 되는지요? 이런 것들이 없어서 문제가 되기도 하겠지만 오히려 많이 가지고 있고 남용하므로 문제가 됩니다. 돈과 권력, 명예가 있으면 쾌락과 죄악으로 빠지기 쉬운 환경에 놓입니다. 돈과 권력, 명예는 끊임없이 자신을 제어하지 않으면 이것들이 자신을 통제합니다. 자신을 제압하여 죄악으로 끌고 들어갑니다. 세상 것들로부터 자신을 통제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통제 받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인간의 본성은 궤도를 이탈한 열차와 같습니다. 통제권을 하나님의 말씀에 두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인간의 본성은 끊임없이 죄와 더불어 짝합니다. 하나님께 순종치 않는 외형적인 번제나 제사는 아무쓸모가 없습니다. 시간과 노력과, 물질만 낭비할 뿐입니다.
사울은 준수한 청년이었습니다. 아버지께 효도를 다하는 건실한 아들이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쓸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권력과 물욕, 명예욕이 그를 평범한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한나라의 왕으로서 하나님을 대신한 이스라엘을 이끌 왕으로서 신앙과 인격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사울은 언약 공동체의 지도자로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이 공동체를 다스려야 했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을 말씀을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사울을 버렸습니다. 비록 사무엘의 이 말 뒤에 당장 그의 왕위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지만 이 선고는 최종 사형선고와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사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한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사울을 무시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형식적인 예배나 예물이 아닙니다. 내 마음을 원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가난한 마음, 겸허한 마음을 요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경건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버려지고 무시되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께 사용되는 인생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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