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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겨진 왕권

사무엘상 이윤식 목사............... 조회 수 2341 추천 수 0 2011.04.18 13:3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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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삼상15:24-35 
설교자 : 이윤식 목사 
참고 :  

본문 : 삼상 15장 24-35 2010.8.24

제목 : 찢겨진 왕권

본문

24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25 청하오니 지금 내 죄를 사하고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나로 하여금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니

26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나는 왕과 함께 돌아가지 아니하리니 이는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음이니이다 하고

27 사무엘이 가려고 돌아설 때에 사울이 그의 겉옷자락을 붙잡으매 찢어진지라

28 사무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나라를 왕에게서 떼어 왕보다 나은 왕의 이웃에게 주셨나이다

29 이스라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하지 않으심이니이다 하니

30 사울이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이제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사 내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더라

31 이에 사무엘이 돌이켜 사울을 따라가매 사울이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32 사무엘이 이르되 너희는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내게로 끌어 오라 하였더니 아각이 즐거이 오며 이르되 진실로 사망의 괴로움이 지났도다 하니라

33 사무엘이 이르되 네 칼이 여인들에게 자식이 없게 한 것같이 여인 중 네 어미에게 자식이 없으리라 하고 그가 길갈에서 여호와 앞에서 아각을 찍어 쪼개니라

34 이에 사무엘은 라마로 가고 사울은 사울 기브아 자기의 집으로 올라가니라

35 사무엘이 죽는 날까지 사울을 다시 가서 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사울을 위하여 슬퍼함이었고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더라

본문 주제 관찰

①15장 11절, 29절, 35절은 역사의 흐름이라는 엄연한 요구와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이다-월터 브르거만

②사울보다 나은 자의 등장

③실질적으로 사울의 이야기는 끝난다 사울은 살아있으나 죽은 자다

 

1. 찢겨진 왕권은 사울의 진정성이 없었기 때문이다(24-26절). (적용 : 의지하는 대상이 하나님이 아닌 사람)

 

①마음에서 회개가 아닌 입술로 회개

②사울 진정성이 없다

③진리의 부재시대

(결)하나님을 의식하는 삶을 살라

①하나님의 말보다 백성들의 말을 더 의식

②정작 두려워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다

③마 10:28 몸과 영혼을 지옥에 멸하는 이

(결)두려워할 대상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

①세상의 눈을 의식하면 정작 하나님을 살필 수 없다

②사울의 왕권은 이미 찢어진 상태

③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인간을 따름은 스스로의 왕권을 찢는 행위

(결)하나님을 따름으로 영원한 기업을 삼으라

 

2. 찢겨진 왕권은 변개할 수 없다(27-31절). (적용 : 하나님은 사람처럼 거짓이나 변개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①겉옷-제사장, 선지자, 왕이 입는 예복

②겉옷-최후의 보루 목숨과 같은 것

③찢어지다-떼다-같은 단어

 

(결)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자

①사울의 겉옷자락을 벤 다윗

②이스라엘의 지존자

③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신 하나님

(결)하나님은 사람처럼 거짓이나 변개하시지 않으신다

①♬ 오 신실하신 주

②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이사

③여호와께 경배-뒤 늦은 경배

(결)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과 밀착하라

 

3. 찢겨진 왕권은 해야 할 사명을 감당치 못했기 때문이다(32-35절). (적용 :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과 밀착하라)

 

①사무엘의 아각 처형

②아각을 찍어 쪼개니라-사무엘의 분노

③거룩한 분노는 발하여야 한다

(결)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려는 거룩한 분노는 필요하다

①사무엘은 라마로 사울은 기브아로-각자 다른 길을 가는 두 사람

②왕과 제사장으로서의 뗄 수 없는 관계

③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사울

(결)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라

①자이로스코프(Gyroscope)와 같이

②사무엘 사울을 죽는 날까지 다시 보지 않았다

③사울을 위한 슬픔은 중보자로서의 슬픔이다

(결)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밀찰하는 삶

 

15장의 마지막 단락에 들어섰습니다. 월터 브르거만은 ‘15장 11절, 29절, 35절은 역사의 흐름이라는 엄연한 요구와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시고 그를 버렸습니다. 사울은 어떻게 보면 그의 왕권까지 파기되어야 할 만큼의 잘못을 하였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후에 역사를 보면 사울보다 더 잘못했던 유대와 이스라엘의 왕들을 비교해보아도 사울은 하나님께 엄격한 잣대로 평가되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월터 브르거만의 말처럼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라 할 수 있습니다. 즉 사무엘서에 흐르는 하나님은 살리기도 하시고 죽이기도 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높이기도 하시지만 낮추시기도 하신다는 점에서 사울은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왕으로 높임을 받지만 또 낮추어져서 버림받기도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사울보다 나은 자의 등장으로 실질적으로 사울의 이야기는 15장에서 끝납니다. 사울은 살아있으나 죽은 자와 같습니다. 여전히 왕으로 다스리나 하나님에 의해 왕권이 찢겨진 채로 상처투성이의 왕권만 있을 뿐입니다.

사울의 전성시대가 시작하는가 동시에 막을 내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전개되는 그의 일생은 하나님께 버림받은 험난하고 초라한 인간 사울의 내리막길 여정만 있을 뿐입니다. 사울을 보면서 왜 이런 상황에 도달하게 되었는가는 앞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믿음이 뒤따르지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자세를 다시 한 번 점검하기를 바랍니다.

 

1. 찢겨진 왕권은 사울의 진정성이 없었기 때문이다(24-26절).

(적용 : 의지하는 대상이 하나님이 아닌 사람)

 

사울은 처음으로 죄를 고백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회개를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겉치레의 입술의 회개이지 진정한 마음에서 나오는 회개는 아니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명령과 사무엘 당신의 말을 어긴 것은 다름이 아니라 백성들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에 따랐을 뿐입니다’라고 또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백성들에게 핑계를 대고 있습니다. 사울은 여러 번 경솔한 행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책임을 전가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율례를 작고 사소한 것으로 취급합니다. 문제는 이런 사울의 믿음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울은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후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고 무시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말씀을 무시하고 청종하지 않은 것은 사울의 신앙상태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경중이 따로 있을까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야 할 크고 중요한 것이 있고 무시해도 좋은 작고 하찮은 것이 있을까요? 아닙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정이다. 진리이다. 이 말씀을 무시하고 인간의 정과 욕심에만 끌렸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일점일획도 부풀리거나 작은 것으로 취급해서는 안 되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를 받기를 바랍니다.

사무엘이 길갈에 미처 도착하기 이전에 자신이 제사장의 직무로 번제를 수행했습니다. 하나님께 번제나 제사를 드리는 것은 제사장이 하는 일이었습니다. 사울은 눈앞에 닥친 위기 앞에 제사장인 사무엘의 역할을 대신함으로 죄를 저질렀습니다. 하나님의 신탁을 받은 사무엘의 말을 무겁게 여겼더라면 결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말렉과의 전쟁 중에 군사들에게 금식을 선포했습니다. 아말렉 족속의 재물이 탐나서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했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과 규례들, 명령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습니다. 대신에 백성들을 두려워하고 그들의 소리를 귀담아 들었습니다.

왕으로서 백성들을 두려워하고 그들의 말을 귀담아 듣는 것은 바람직합니다. 고대전제국가에서는 왕이 곧 법이고 법이 곧 왕이었던 때 사울의 이 말은 오늘날 민주주의 사고방식 같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사울의 핑계에 지나지 않는 변명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왕으로 기름부음을 앞서 인간 왕이 백성들에게 끼치는 폐해에 대하여 이미 말씀하신 바가 있습니다. 왕은 빼앗고 취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왕의 권력의 횡포로 인하여 백성들이 부르짖어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까지 했습니다.

삼상 8:19

그날에 너희는 너희가 택한 왕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되 그 날에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니

 

이처럼 왕은 절대권력을 가지고 있는데 백성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사울의 뻔한 거짓말입니다. 사울은 사무엘에 의하여 죄를 지적당하는 상태에서도 범죄의 책임을 백성들에게 돌리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날 우리는 진리의 부재에 살고 있습니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가짜인지 혼란스럽습니다. 청문회를 보면서 장관후보자들이 입술에서 침을 튀기며 나는 진실하다고 하지만 진정성이 없어 보입니다. 요즈음 불거지는 있는 두 가지 진실게임으로 시끌시끌합니다. 한 가지는 여자피겨 스케이팅 코치 해고 문제로 국경을 넘어선 진실공방으로 진흙탕 싸움양상으로 비쳐지고 있습니다. 분명 둘 중 하나는 진실하지 못하겠지요? 또 다른 하나는 히말라야 등정에 관한 것 입니다. 히말라야 고봉 14좌를 완등한 여자 산악인의 칸첸중가 등정의 진실이라는 TV프로도 방영되었습니다. ‘정상의 증거는 신(神)만이 아는가’라며 진실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지구상에서 세 번째로 높은 칸첸중가를 입증할만한 요즈음 말하는 확실한 인증 샷이 없었습니다. 또한 함께 등정을 한 셰르파의 증언이 엇갈림으로 의문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불편한 진실보다 영웅적인 것에 목말라 있습니다. 진실을 파헤치고 진리가 드러나기보다 영웅적인 사건, 사람을 더 목말라 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말하는 사람은 매도당합니다. 진리를 알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진리를 알면 다치는 무엇이 있기에 다들 쉬쉬 문제를 덮어버립니다. 이처럼 진리가 사라지고 애매모호한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혼돈과 무질서, 어두움의 공중권세 잡은 사단마귀의 세력들이 가라지를 뿌려났습니다. 사람들은 어둠과 혼돈의 세계 속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숨길 수 있습니다. 인터넷 매체에서 왜 그리 신랄한 비판을 가할 수 있는 것도 자신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지만 필리핀에서 선교하다 무장괴한에 의해 순교한 목사를 향하여 입에 담지 못할 댓글들이 도배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울의 거짓 회개는 어쩌면 그의 죄보다 더 악합니다. 겉으로는 회개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책임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사울에게는 진리, 진정성이 없습니다. 여러번 되풀이 되는 그의 행적에서 어떤 진실조차 발견할 수 없습니다.

히브리어에 에메트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 말은 확실한, 신실한, 안정성, 진리로 표현됩니다. 그런데 이 단어의 알파벧이 알렙과 멤, 타브로 되어있습니다. 히브리 알파벧은 27개의 단어로 형성되어 있는데 알렙은 제일 처음 단어이고 멤은 중간인 14번째이고 타브는 27번의 맨 마지막 단어입니다. 히브리인들은 진리(에메트)를 처음과 중간과 마지막이 변함이 없어야 한다고 정의했습니다. 진리는 처음이나 중간이나 마지막까지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진정성을 회복하기를 바랍니다. 끝까지 변함없는 진리를 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사울의 처음 시작은 건실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가기도 전에 중간에 도달하기 이전에 변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의식하는 삶을 사는 사람은 진리를 추구하며 진정성이 있는 성도입니다. 이런 성도는 처음의 삶도 중간의 삶도 앞으로 전개되는 마지막까지의 삶도 한 결 같이 충성된 삶을 살 줄 믿습니다.

사울은 정작 두려워할 대상이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그가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울과 같습니다.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진실된 행동을 못하는 것입니다. 정작 하나님이 두려움을 느끼고 산다면 처음과 중간과 마지막의 삶까지도 진실된 삶을 살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정작 두려워해야 할 자가 누구신가 말씀하셨습니다.

마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할렐루야!

사람은 두려운 존재가 아닙니다. 정말 두려운 존재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몸을 괴롭게 하고 병들게 하고 죽이는 존재는 무서운 존재입니다. 죽음보다 더 인간을 공포에 떨게 하는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죽음의 극심한 공포를 경험 하지 못해서 그렇지 죽음은 두려운 존재입니다. 죄의 결과로 죽음이라는 비참한 결과를 맞는 인간들은 죽음은 맞이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 죽음을 가져다주는 세력은 분명 인간이 두려움을 느끼는 존재일 것입니다. 그러나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므로 두려운 존재가 아닙니다. 몸의 죽음은 일시적인 죽음입니다. 그러나 오직 몸과 영혼까지 죽는 것은 영원한 죽음입니다. 몸뿐만이 아니라 영혼까지도 능히 지옥에 던져 멸망시키시는 분, 그분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기를 축원합니다.

사울은 사람을 두려워하고 영혼과 육신을 멸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눈을 의식하며 살아간다면 정작 하나님을 의식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부재의 삶을 살게 됩니다.

사울이 사무엘에게 같이 하나님께 돌아가서 경배하자고 했지만 사무엘은 처음에는 거절했습니다. 31절에 어쩔 수 없이 그의 청을 들어주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과 같은 상황입니다. 엎질러진 물은 다시 주어 담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울의 왕권은 이미 찢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벌써 그의 마음에 떠나계십니다. 사울이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인간을 따랐습니다. 세상의 물질을 좇고 명예를 좇고 하나님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사울은 스스로 왕권을 찢는 행위를 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따름으로 영생의 복락을 기업으로 누리는 축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2. 찢겨진 왕권은 변개할 수 없다(27-31절).

(적용 : 하나님은 사람처럼 거짓이나 변개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사무엘이 다시 한 번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다는 사형선고를 내린 후 사울은 다급해졌습니다. 돌아가는 사무엘을 붙잡고 통사정하는 모습을 27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사무엘의 겉옷 자락을 붙잡았는데 그만 사무엘의 겉옷이 찢어지고 말았습니다. ‘열린다 성경’의 생활풍습에 보면 겉옷에 대한 해설이 있습니다. 겉옷의 다양한 쓰임새에 대하여 자세한 설명이 있습니다. 겉옷은 오늘날 크레디트 카드나 인감 도장의 역할을 합니다. 겉옷을 입고 다니지만 저녁에는 추위를 막는 이불 대용으로 덮는 옷으로 사용됩니다. 보아스의 옆에 누운 룻이 “나를 당신의 옷자락으로 덮으소서”할 때는 남자의 보호아래 들어감을 의미합니다(룻 3:9). 단 벌의 겉옷은 최후의 수단으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출애굽기나 신명기 등 구약성경에는 저당 잡힌 겉옷을 저녁에 돌려줄 것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위기 상황에서 마지막 수단으로 전당 잡히는 물건이 겉옷이기 때문입니다.

출 22:26-27

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 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보내라

그것이 유일한 옷이라 그것이 그의 알몸을 가릴 옷인즉 그가 무엇을 입고 자겠느냐 그가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들으리니 나는 자비로운 자임이라

 

또한 겉옷은 권위의 상징입니다. 성경당시 겉옷은 사회적 권위를 상징했습니다. 사무엘의 겉옷은 제사장 선지자, 왕 등이 입는 겉옷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옷이라는 상징성이 내포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수치를 가리고 입는 옷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어떤 직위에 있는 사람의 옷을 벗긴다 할 때 그 직위에서 박탈당함을 의미합니다. 이 때 옷은 그 사람의 권위, 직위를 나타냅니다.

찢어진 겉옷은 사울의 찢겨진 왕권과 상징성이 있습니다. 사무엘이 자신의 옷이 찢어진 것을 보며 사울에게 오늘 이스라엘 나라도 이 옷처럼 찢겨져서 다른 사람에게 주어질 것이라 선언했습니다. 27절의 찢어지다와 28절의 떼어 라는 단어는 똑같은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사무엘의 옷이 찢어진 것처럼 이스라엘의 왕위를 찢어서 사울 왕보다 나은 이웃에게 주겠다는 말의 뜻입니다.

사울에 의해 사무엘의 옷이 찢겨진 것처럼 사울 왕의 권위도 찢겨질 것입니다. 그리고 사울의 왕권이 자신의 혈통을 통해 이어나가지 못하고 다른 이를 통하여 계승될 것이라 뜻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울은 왕의 체통도 내팽개친 채로 사무엘의 겉옷을 잡고 매달렸지만 그의 마음이 찢어짐과 동시에 왕권도 찢어졌습니다. 사울은 사무엘의 겉옷을 잡아 매달려 찢어질 정도의 다급한 심정이었습니다. 사울이 다급함 김에 단순히 사무엘의 겉옷을 잡아당겨서 찢어졌다고 만 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한 말씀을 상고해보면 사울의 심정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고 세상 끝에 있을 환난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겉옷에 대하여 언급하셨습니다.

마 24:18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심판의 급박한 상황에서 목숨과 같은 겉옷을 가지러 집안으로 돌이킬 시간이 없다는 뜻입니다. 환난의 급박한 심판을 당할 때 지체하지 말고 떠나야 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울의 처지도 환난의 급박한 때가 아니겠습니까? 사무엘의 겉옷을 붙잡았다고 했는데 원문은 ‘강하게 되다’로 사무엘의 겉옷을 강하게 붙잡은 것입니다. 이처럼 절박한 심정으로 사무엘에게 매달렸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그의 왕위가 찢어져 사울 왕보다 나은, 선한 이웃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내러티브가 다윗이라고 말을 하지 않습니다. 내러티브는 이 암시를 독자들이 알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알만 한 사람들은 그가 누구인지 다 알만합니다.

왕으로서의 모든 권한과 적법성은 사울로부터 떨어져 찢겨져 나갔습니다. 후에 다윗이 사울이 발을 가리러 간 사이 사울의 겉옷자락을 가만히 벤 일이 있었습니다. 이것마저 마음에 찔린 다윗이 사울을 향하여 땅에 엎드려 절하고 왕께 범죄 한 일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사울이 “나는 네가 반드시 왕이 될 것을 안다”고 하였습니다(삼상 24:1-20). 다윗이 사울의 왕권을 상징하는 겉옷을 베었을 때 사울은 자신이 사무엘의 겉옷을 찢은 후 왕권이 자신에게서 떠날 것을 회상하면서 이 말을 되새겼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말이 생각납니다. 있을 때 잘하자! 집사님 있을 때 잘합시다. 환경을 탓하지 말고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기를 바랍니다. 자기의 자리, 자기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지존자이십니다. 때문에 사울이 사무엘의 권위에 매달려도 이스라엘의 지존자 이신 하나님께서 뜻을 변개할 수 없습니다. 지존자는 ‘항상 빛나시는 분’을 뜻하고 ‘이스라엘의 영광’과 ‘이스라엘의 힘’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불변하는 영광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지존자이신 하나님께서는 거짓이나 변개가 없습니다. 변개라는 말도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후회하다 라는 원어와 같은 단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거짓이나 후회가 없으신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변하시거나 후회하시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하루에도 열 두 번이 더 변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영원하지 못합니다.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변개가 없으신 줄 믿습니다.

 

♬ 오 신실 하신 주

하나님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 없으시고

언제나 공평과 은혜로 나를 지키셨네

오 신실 하신 주 오 신실 하신 주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약속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 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사랑하는 여러분!

이스라엘의 지존하신 하나님께서 한 번 결정하시면 변개할 수 없습니다. 계시록에서는 예수님의 권세를 한 번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분으로 묘사했습니다.

계 3: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를 들어가게 할 수도 있고 축출할 수도 있는 예수님의 권세는 지존하신 하나님의 권세와 같습니다. 태양이 사라진다 해도 하나님의 빛난 영광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 영원하신 권세는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자주 변하는 사울은 내가 범죄 하였을지라도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여 달라고 사무엘에게 청원합니다. 왕권이 끝났다는 말을 들었음에도 백성들 앞에 체면을 세워달라 요구하는 사울에게서 허세와 인간성을 볼 수 있습니다. 사울은 끝까지 하나님 앞에 겸허하고 진실 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자기 체면을 지키기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인간이기에 부족합니다. 하나님은 강한자 완벽한 자만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부족하더라도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겸손한 자를 하나님께서는 들어 쓰십니다. 다윗도 실수투성이요 인간의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그때마다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하나님은 변하시지 않는 분입니다. 내가 자주 변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변하는 것처럼 생각이 들 뿐입니다.

사울은 사무엘에게 뒤 늦게 하나님께 경배하게 해 달라고 합니다. 사무엘이 돌이켜 사울과 함께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그러나 이 경배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마지못해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하나님께 경배한 들 하나님의 마음은 이미 사울을 떠나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인간의 잘못된 뜻을 결코 변개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 내리신 결정은 변개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내리신 결정에 후회가 없도록 충성된 일꾼들로 삶을 살기를 축원합니다.

 

3. 찢겨진 왕권은 해야 할 사명을 감당치 못했기 때문이다(32-35절).

(적용 :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과 밀착하라)

 

사울의 왕권이 찢어진 요인으로 사울은 하나님께 받은 명령을 어기고 해야 할 사명을 감당치 못함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사람은 물론 가축까지도 남김없이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습니다. 사울은 사명을 감당치 못했습니다. 아말렉 왕과 가축들을 진멸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왕으로서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결국은 그의 왕권이 찢어지고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이에 사무엘은 사울이 하지 못한 일을 합니다. 그 일은 아각을 끌고 와서 과감하게 처단하는 일이었습니다. 어리석은 아각은 자신이 왕의 손에서 벗어난 것을 기뻐하며 사망의 괴로움이 지나갔음을 안도하였습니다. 일단 적국의 왕의 손에서 벗어나 제사장의 손으로 이관 된 것을 죽음의 고비를 넘겼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사람이란 존재는 참으로 어리석습니다. 아각은 자신의 죽을 것도 모르고 풀러나는 줄 알고 기뻐합니다. 그러나 사울보다 사무엘은 더욱 더 엄격했습니다. 사무엘 앞으로 끌려나온 아각은 추상같은 심판을 당합니다. 사무엘은 ‘네 칼로 많은 이스라엘 청년들을 죽여 그 자손을 단절한 것 같이 너도 그와 같을 것이다’ 라며 무자비한 살육을 합니다. 아각을 찍어 쪼개 갈기갈기 조각을 내어 처단했습니다. 사망의 괴로움이 지났다며 기뻐하던 순간도 잠시 아각은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성경에는 안 나와 있지만 이 현장을 지켜본 사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놀라움의 당혹한 표정과 함께 두려움이 교차했겠지요? 아!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지 않는 것에 대한 사무엘의 분노를 보면서 속으로 뜨끔했을 것입니다. 잘못하면 나도 이 비참한 일을 당할 수 있겠구나 하고 느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사무엘을 통하여 하나님에 의해 왕으로 버림을 당했다는 말과 나라를 찢어 다른 사람에게 주었다는 말을 들은 터였습니다. 왕보다는 아직까지 하나님의 신탁을 전하는 사무엘의 선지자적 사역과 제사장으로서의 역할이 더욱 권위가 있게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16장 2절을 보면 왕으로서 사울의 권세가 있는 것을 보면 분명 이 날의 사무엘의 거룩한 분노는 왕의 권위를 넘어선 것이었습니다. 다윗에게 기름을 부으러 이새에게 가라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사무엘이 그것을 알게 될 때 사울이 나를 죽일 것이라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무엘이 무자비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무엘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사울의 불순종과 어리석음에 대한 분노가 함께 폭발하였습니다. 왕을 세우는 것을 사무엘은 반대를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그토록 반대한 하나님을 대신한 이스라엘의 왕이 이토록 불순종으로 실패한 것을 보면서 분노가 끓어올랐습니다. 분노는 필요합니다. 하나님에 의해 부여받는 거룩한 분노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도 거룩한 분노를 폭발하셨습니다. 거룩한 예루살렘 성전이 동물의 울음소리와 환전상들의 거래로 시끌시끌한 모습을 보시고 분노하셨습니다.

요 2:14-16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예수님께서 채찍을 휘두르며 노기를 띤 얼굴로 그들에게 분노를 발하셨습니다. 정의에 대한 분노가 없으면 공의가 사라집니다. 세계적으로 사형제를 폐지하는 운동이 벌어집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찬성하는 측이 우세합니다. 이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논란이 많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사형제는 존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적으로도 사람을 죽인 사람에 대하여서는 그에 대한 형벌을 받음이 마땅한 것입니다. 다만 무고히, 실수로 사람을 죽인 것을 제외하고는 그에 대한 대가가 지불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남을 해치는 분노가 아니라 정의를 해치는 것에 대한 분노,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에 대한 분노는 발(發)해 져야 하는 줄 믿습니다. 사무엘은 사울이 순종하지 못한 일을 처리했습니다. 사무엘은 거룩한 분노를 발하여 사울이 하지 못한 일을 감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감당하라 한 사명을 감당하지 못할 때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통하여 이 일을 완성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 했을 때 노아가 듣지도 보지도 못한 방주를 짓는 일을 하지 않았다고 가정해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섭리가 중단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성취할 또 다른 사람을 준비시켜 사용하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에 의해 선의로 사용되느냐 아니면 감당하지 못하고 사라지느냐는 순종에 달려 있습니다.

이 사건 이후로 사무엘과 사울은 각자의 길을 갔습니다. 사무엘은 사무엘대로 사울은 사울대로 각자 자기의 고향인 라마와 기브아로 돌아갔습니다.

사무엘은 다시는 사울을 보지 않았는데 사울이 사무엘 앞에서 예언하는 19장 24절을 보면 문맥이 어긋납니다. 사무엘이 사울을 다시 가서 보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헤어지는 두 사람을 보면서 씁쓸함을 감추지 못합니다. 아마도 사무엘은 허탈한 마음이었을 것이고 사울도 여러 가지 복잡한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눈 앞에서 아각 왕이 처단당해 죽고 자신은 하나님으로부터 내쳐져서 이미 왕으로서 죽은 목숨이나 다름이 없었던 것입니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기름을 부은 첫 번째 이스라엘 왕이었습니다. 사울 역시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사무엘의 도움을 받아 왕으로 올랐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왕과 제사장으로 이스라엘의 땔 수 없는 관계였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의 모습은 서로에게 등을 돌리고 말았습니다. 모든 전적인 잘못은 사울에게 있었습니다. 사울은 왕으로서의 자질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후회하실 만한 자였습니다. 끝까지 좋았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세상의 관심을 쏟다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언제나 한결 같을 수는 없으나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다 느낄 때에 다시 돌아와야 할 줄 믿습니다. 선박의 중요한 안전을 제공하는 자이로스코프(Gyroscope)라는 장치가 있습니다. 미국의 챈들러 회사가 이것을 이용하여 1917년 장난감을 만들어 지금도 미국 장난감의 고전으로 챈들러 자이로스코프가 생산되고 있습니다. 자이로스코프는 선박이나 항공기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안전장치입니다. 자이로스코프는 회전축이 어느 방향으로 놓이더라도 방향은 항상 일정하게 유지 됩니다. 때문에 선박의 균형을 잡아주는 아주 중요한 장치입니다. 지금은 그 쓰임이 더욱 발전 확대되어 카메라의 손떨림 방지와 스마트 폰 등 IT 단말기에서 더욱더 각광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안에 이런 자이로스코프가 내장되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균형을 잃는다고 할 때 다시 균형을 잡아주는 이런 자이로스코프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역할을 하는 귀한 분이 계십니다. 우리 안에 성령님의 내주, 역사, 충만하심이 자이로스코프와 같은 역할을 하는 줄 믿습니다. 끊임없이 내 안에서 성령님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내 안에 성령님께서 자유 하도록 마음을 열기 바랍니다.

사무엘은 죽는 날까지 사울을 대면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믿음에서 멀리 떨어진 사울을 멀리했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에게 왕으로 기름부음을 한 사무엘에게로부터 외면당하고 말았습니다. 사울은 실패자가 되어 이스라엘의 왕권이 찢겨져 나갔습니다. 사무엘은 사울을 생각하며 끝까지 비통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을 위하여 나면서부터 부름을 받은 선지자였습니다. 사무엘은 제사장으로 이스라엘을 위하여 제단에서 성장했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중재하며 삶을 살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이 자신의 대에서 끝났습니다. 인간의 욕구대로 사울을 왕으로 세웠지만 허망하게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사울을 향한 중보의 끈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 사울은 중보자로서의 슬픔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울의 찢겨진 왕권을 보면서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음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한 번 사울을 왕으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길은 돌아서는 길뿐입니다. 하나님과 밀착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영원한 중보자이신 예수님께서도 우리를 위해 끝까지 중보 하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과 연합되기 바랍니다. 성령님과 동행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으로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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