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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삼하2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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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조용기 목사 |
참고 : | 2004년 6월 27일 주일3부설교 |
“다윗의 시대에 년부년 삼년 기근이 있으므로 다윗이 여호와 앞에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는 사울과 피를 흘린 그 집을 인함이니 저가 기브온 사람을 죽였음이니라 하시니라 기브온 사람은 이스라엘 족속이 아니요 아모리 사람 중에서 남은 자라 이스라엘 족속들이 전에 저희에게 맹세하였거늘 사울이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위하여 열심이 있으므로 저희 죽이기를 꾀하였더라 이에 왕이 기브온 사람을 불러 물으니라 다윗이 저희에게 묻되 내가 너희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내가 어떻게 속죄하여야 너희가 여호와의 기업을 위하여 복을 빌겠느냐 기브온 사람이 대답하되 사울과 그 집과 우리 사이의 일은 은금에 있지 아니하오나 이스라엘 가운데서 사람을 죽이는 일은 우리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왕이 가로되 너희의 말하는대로 시행하리라 저희가 왕께 고하되 우리를 학살하였고 또 우리를 멸하여 이스라엘 경내에 머물지 못하게 하려고 모해한 사람의 자손 일곱을 내어 주소서 여호와의 빼신 사울의 고을 기브아에서 우리가 저희를 여호와 앞에서 목매어 달겠나이다 왕이 가로되 내가 내어 주리라 하니라 그러나 다윗과 사울의 아들 요나단 사이에 서로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한 것이 있으므로 왕이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은 아끼고 이에 아야의 딸 리스바에게서 난 자 곧 사울의 두 아들 알모니와 므비보셋과 사울의 딸 메랍에게서 난 자 곧 므홀랏 사람 바실래의 아들 아드리엘의 다섯 아들을 잡고 저희를 기브온 사람의 손에 붙이니 기브온 사람이 저희를 산 위에서 여호와 앞에 목매어 달매 저희 일곱 사람이 함께 죽으니 죽은 때는 곡식 베는 처음날 곧 보리 베기 시작하는 때더라”
[서론]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속죄제와 속건제’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중에 속죄제와 속건제가 있었습니다. 속죄제는 사람이 하나님께 죄를 범한 그 죄를 속하는 제사가 속죄제사 였습니다. 그러나 속건제는 하나님 앞에 범죄했을 뿐 아니라 이웃에게도 정신적, 물질적 상처를 입혔을 때 하나님께 속죄할 뿐 아니라 이웃에게 보상을 겸하는 제사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구약의 제사와 제물을 대신하여 우리의 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신앙생활은 첫 번째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속에서 이루어집니다. 그 때문에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서 죄용서함을 받았을지라도 우리는 우리 이웃과 우리와의 관계가 잘못되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이웃과의 관계개선이 이루어져야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용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하나님께 대한 죄는 용서받지만 이웃에 손해를 끼치고 고통을 갖다준 죄는 이웃과의 관계개선이 이루어져야 하나님께로부터 기도가 응답받고 복을 받을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23절로 24절에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주고 재판관이 관예에게 내어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고 했습니다.
예물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 복받기 위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예물을 드려 복을 받기 전에 내 이웃과 잘못된 일이 있으면 그것부터 먼저 해결하고 와서 예물을 드려야 하나님께 복을 받을 수 있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오늘 다윗에게 있었던 보상의 제물을 여러분하고 나누고자 하는 것입니다.
[본론]
1. 다윗 시대의 속죄와 보상
첫째로, 다윗이 왕으로 시무할 때 극심한 기근이 3년이나 계속되어 온 국민 전체가 기근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우물물이 다 말라 버리고 짐승떼들이 풀이 없어 죽고, 사람들은 기근에 방황하고 나라를 떠나 이웃 나라에 가서 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사무엘하 21장 1절에 “다윗의 시대에 년부년 삼년 기근이 있으므로 다윗이 여호와 앞에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는 사울과 피를 흘린 그 집을 인함이니 저가 기브온 사람을 죽였음이니라 하시니라”
이 말은 무슨 의미냐 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을 점령할 때 여호수아와 족장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브온 사람을 죽이지 않기로 언약하고 맹세를 했는데 사울왕이 이스라엘과 유다를 사랑하는 마음이 특심하여 그 나라에 있는 기브온 백성들을 다 멸하려고 작정하고 많은 기브온 백성들을 죽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언약을 어기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진노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상숭배하는 가나안의 칠족을 진멸하도록 엄명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땅을 처들어 올 때 기브온 거민은 그중 히위족속인데 목숨을 부재하려고 먼 곳에 사는 것처럼 속여서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와서 화친을 전했습니다. 이때 여호수아와 장로들은 하나님께 묻지 않고 단순하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약조를 했는데 사흘후에 보니까 속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속은 것을 알았지만은 언약은 언약이니 하나님 이름으로 한 언약은 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할 수 없이 가나안을 점령했을 때 이 히위족속인 기브온 거민들은 성막에서 나무패고 물긷게 하는 종들로 삼으신 것입니다.
여호수아 9장 15절에 보면 “여호수아가 곧 그들과 화친하여 그들을 살리리라는 언약을 맺고 회중 족장들이 그들에게 맹세하였더라”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더불어 맹세한 것은 절대로 깨뜨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사울왕때에 여호수아와 그 족장들이 기브온 족속하고 안 죽이겠다고 맹세하고 언약한 것을 깨뜨리고 일방적으로 기브온 백성들을 멸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진노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깨뜨리고 하나님을 멸시한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시대에 온 이스라엘에 년부년 삼년 기근이 왔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기브온 사람들에게 어떻게 속죄해야 될지 물었습니다. 하나님께 범죄한 것은 하나님께 회개하면 되지만 이웃에게 범죄한 것은 이웃에게 속량을 해야 하나님이 기도를 응답하시고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기브온 백성들이 뭐라고 말하냐면 “우리는 이스라엘에 사는 외부 민족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을 죽일 권한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원한을 풀기 위해서는 사울왕의 직계자손중에 일곱명을 내주어 주면 사울의 도시인 기브온에 그들을 목메어 달아 우리의 원한을 갚으면 우리가 이스라엘을 위해서 복을 빌겠습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다윗은 할수없어서 사울의 자손중에 일곱명의 남자를 붙잡아서 이 기브온 백성들에게 내어 주고 기브온 백성들은 일곱명의 자손들을 목메어 달았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기브온 사람들이 원한을 풀고 하나님께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쏟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 사실을 볼 때에 회개와 보상은 별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범죄했으면 하나님께 회개하면 용서를 받고 의로움을 얻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범죄하면 이웃 사람에게 해를 끼친다든지 심신에 고통을 가했다든지 이웃의 물건을 사기쳤다든지 훔쳤다든지 이러한 것들은 하나님 앞에 범죄할 뿐 아니라 이웃에게 범죄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회개하면 죄는 용서함 받지만은 축복은 이웃에게 보상을 해야 축복이 오지 보상하지 않은 이상은 결코 축복이 오지 않습니다. 제가 서대문에서 목회할 때 대게 성도들이 극빈자이고 교회 재정이 매우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신학교 학생 한 사람이 도움을 청하여서 우리 교회에서 밤에 교회를 지키고 교회를 돌보면 등록금을 우리가 대어 주고 그의 생활을 돌보아 주었습니다. 그런데 주일 예배를 필하고 난 다음에 월요일날 오니까 이 사람이 달아나고 없는데 보니까 교회 그날 주일날 헌금 거두어서 넣어 놓은 금고를 깨어가지고서 돈을 다 훔쳐서 도망을 처버렸습니다. 저는 아주 그냥 절망에 처했습니다. 그때 우리 교회가 얼마나 가난했는지 매주일마다 받는 헌금을 가지고 겨우겨우 교회를 운영해 나갔는데 그만 돈이 송두리째 없어졌으니 그 충격은 말로다 할수없어요. 그러나 하나님께 부르짖고 기도한 결과에 하나님이 도와 주셔서 교회는 그대로 그 충격을 이겨냈는데 한 3년이 지난후에 제가 어느곳에 가서 부흥회를 하는데 아주 이발도 하지 않고 수염을 기르고 행색이 굉장히 초라한 한 젊은이가 내게 와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목사님! 저를 알지요.” “알고 말고.. 너 고학생으로써 우리 교회에서 도와줬는데 금고를 깨고 돈 훔쳐간 놈 아니냐?” 그러니까 그 놈이 하는말이 “그것다 옛날일입니다. 나는 그때 이후로 기도원에 가서 죽도록 회개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다 받았습니다. 목사님도 용서해 주십시오.” 내가 하는말은 “이 사람아 속죄제와 속건제가 틀린줄 모르느냐. 하나님께 범죄한 것은 속죄제물만 드리면 되지만 하나님과 사람에게 범죄한 것은 속죄만 해서는 안된다. 속건제물을 드려야 한다. 다시 말하면 보상을 해야 한다. 자네는 예수의 보혈로 말미암아 용서를 받고 천당은 가지만 보상의 법칙을 통해서 훔친돈을 도로 갚기 전에는 평생을 이땅에서 헤매어도 하나님 복이 오지 않는다. 자네는 공사판에 가서 일을 하더라도 돈을 벌어서 하나님 헌금 도둑질 한 것을 도로 다 갚아야 된다. 그러기 전에는 자네의 기도는 절대로 응답받지 않는다. 하늘이 놋과 같이 되어서 축복은 한 방울도 임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람에게 범죄한 것 하나님께 회개하면 그 죄는 용서해 주되 축복을 받으려면 보상을 해야 됩니다. 한때 우리 교회 장로님 한분이 여러 장로님의 돈을 사기해서 미국으로 도망쳐 버렸습니다. 보증을 선 장로님들이 가슴을 쳤습니다. 상당이 거액의 돈을 가지고 도망을 쳤는데 세월이 흘러서 제가 미국에 가니까 그분이 날 만나러 왔어요. 자기가 하는말이 자기는 미국에 와서 크게 회개하고 신학교를 졸업하고 주의 종이 되었다고 그래요. 그래서 내가 말했습니다. “당신이 회개하고 신학교에 들어가서 주의 종이 된지 몰라도 당신은 절대로 하나님께 축복받지 못한다. 왜냐, 용서받았다고 해서 남을 헤쳐놓고 난 다음 기도원에 가서 기도하고 ‘아~ 나는 하나님께 용서받았다. 이제 나는 아무것도 안갚아도 된다.’ 그것은 있을수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속죄를 받을수 있지만은 속건죄는 반드시 보상을 해야 당신이 복을 받는다. 절대로 당신이 교회를 개척해서 하나님께 복받을줄 생각하지 말라. 한국에 있는 장로님들에게 당신이 사기친 그 돈을 다 갚는날에 하나님께 복을 주실 것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2. 속죄제물과 속건제물이신 예수님
오늘 두 번째로 생각하고 싶은 것은 예수님은 우리의 속죄제물과 속건제물이 동시에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속죄제물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아들이 와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 못박힐 정도로 사람은 흉악합니다. 이번에 김선일씨가 이라크에서 테러리스트에 대해 참수를 당한 고통을 입었습니다. 사람이 얼마나 악하면 생사람의 목을 자릅니까? 사람의 마음이 가증스럽고 부패하기 짝이 없습니다. 멀리서만 그런 것 보는 것 아닙니다. 제가 TV에서 뉴스를 보니까 우리 한국에 대학생이 자기 카드빚 안갚아 준다고 어머니를 때려 죽이고, 말리는 할머니를 때려 죽이고 말리는 형을 중상을 입히고 그 자리에 또 앉아서 인터넷에 자기 여자친구에게 자기가 잘했다고 자랑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부패하고 가증해도 그럴수가 없지요. 그런데 아담 하와 이후로 죄로써 부패한 사람의 마음이 다 그렇습니다. 나는 안그렇다고 할수 없습니다. 부패하고 가증하고 쇠퇴한 것이 다 동일합니다. 이러한 어마어마하고 무서운 죄는 아무리 수양과 도덕을 닦아도 도리킬 수가 없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와서 직접 이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당신이 몸을 찢고 피를 쏟아서 죄를 사하고 우리를 씻어줄 수밖에 없습니다. 얼마나 어마어마한 죄인지 어떤 종교나 수양이나 도덕이나 고행을 통해서 갚을정도의 죄가 아닙니다. 부패하고 가증스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속죄제물이 되셨습니다. 우리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야만 용서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히브리서 13장 12절에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요한복음 1장 29절에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말했습니다.
요한일서 3장 4절로 5절에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고 말했으며
히브리서 9장 12절에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 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선교사였던 보먼 박사가 인도 켈거타의 나환자 수용소 안에 교회를 건축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준공식이 있던날 82세의 한 인도 노인이 예수님을 믿기로 작정을 하고 앞으로 나왔습니다. 박사가 그 노인에게 물었습니다. “왜 이 나이에 예수를 믿기로 작정을 했습니까?” 그러자 그 노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예. 지금까지 나는 많은 신들을 섬겼습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나를 위해서 죽어준 신은 한분도 만나보지 못했는데 예수님만이 나를 위해서 죽어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신 분은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우리 속죄제물이 되셔서 우리 모든죄를 지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자는 그의 십자가 공로를 통하여 값없이 죄사함을 받고 용서받은 의인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속죄제물이 되실뿐 아니라 속건제물도 되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범죄해서 하나님을 거스렸을 뿐 아니라 그로 말미암아 굉장히 하나님이 지은 세상에 손해를 끼쳤습니다. 당장 에덴동산이 망했지 않습니까? 에덴동산이란 거창스러운 하나님의 작품을 망쳤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름다운 세상에 아담이 타락하므로 말미암아 저주가 임하게 해서 가시와 엉겅퀴가 나고 저주가 임하고 살상이 임했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만물은 병들고 죽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직접 뜻을 거스렸을뿐 아니라 하나님이 지은 세상에 손해를 끼친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 하나님이 만든 세상에 손해를 끼친 이 손해에 대한 배상으로 예수님은 육체가 십자가에 못박힌 것입니다. 그 흘린 피는 죄악을 속하는 속죄제물의 피였지만은 그 못이 양손에 박히고 양발에 박히고 창을 찍어서 옆구리가 찔린 것은 속건제물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육체로 고난을 당하시므로 아담과 하와 그를 통해서 입은 이 세상에 모든 손해와 상처가 속량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의 속제제물이 되시고 동시에 속건제물이 된것입니다.
레위기 6장 1절로 7절 우리 다함께 소리내어 읽어 보십시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누구든지 여호와께 신실치 못하여 범죄하되 곧 남의 물건을 맡거나 전당 잡거나 강도질 하거나 늑봉하고도 사실을 부인하거나 남의 잃은 물건을 얻고도 사실을 부인하여 거짓 맹세하는 등 사람이 이 모든 일 중에 하나라도 행하여 범죄하면 이는 죄를 범하였고 죄가 있는 자니 그 빼앗은 것이나 늑봉한 것이나 맡은 것이나 얻은 유실물이나 무릇 그 거짓 맹세한 물건을 돌려 보내되 곧 그 본물에 오분 일을 더하여 돌려 보낼 것이니 그 죄가 드러나는 날에 그 임자에게 줄 것이요 그는 또 그 속건제를 여호와께 가져 올찌니 곧 너의 지정한 가치대로 떼 중 흠 없는 수양을 속건 제물을 위하여 제사장에게로 끌어 올 것이요 제사장은 여호와 앞에서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는 무슨 허물이든지 사함을 얻으리라"
보십시오. 죄는 예수님의 보혈로 다 용서받지만 속죄제물로 용서받지만 허물은 속건제물을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이웃에게 상처를 입히고 이웃의 재물을 늑탈하거나 손실을 끼친 것은 속건제물 즉, 제물을 하나님께 드려 죄사함을 받을뿐 아니라 보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보상을 하지 않으면 영혼은 구원받아 천당은 갈것입니다만 절대로 축복은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응답하지 않습니다. 보상이 따라야 온전한 용서가 따라오게 되는 것입니다. 보상제도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사회에서나 찾아볼수 있는 제도입니다. 옛날 우리 한국에 고조선에서는 팔조권법이 있어서 남에게 상해를 입힌 사람은 곡물로써 갚아야 했습니다. 남의 물건을 훔친 사람은 노비로 삼았고 만일 속죄하고자 할 때는 50만전을 내어야 했습니다. 또 부여에는 1척 12법이 있어서 남의 물건을 훔친 사람은 그 훔친물건의 12배를 배상해야 했습니다. 고구려에서도 도둑질한 물건의 12배를 물어 내어야 했고 만약 배상을 안하면 자녀를 노비로 삼았습니다. 우리 나라뿐 아니라 고대 로마에도 12표법이 있어서 도둑질한 것은 두배로 배상을 해야만 했습니다. 이와같이 이웃에게 끼친 손해를 보상하는 것은 시대를 초월하여 보편적으로 행해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속건제인 것입니다. 속죄제는 하나님께 범죄한 것으로 예수의 보혈로 말미암아 용서를 받고 의로움을 얻습니다. 그러나 이웃에게 손해를 끼치고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해를 끼친 것은 보상해야 됩니다. 하나님 앞에 용서 받을뿐 아니라 보상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수가 없습니다. 다윗의 시대에 년부년 삼년 기근이 온것도 그들이 기브온 민족을 죽였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브온 민족이 원하는데로 보상하지 않고는 아무리 기도해도 이스라엘에 가뭄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보상했을 때 기도가 응답받는 것입니다.
3.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를 대속하심
셋째로, 성경에는 우리가 죄와 허물로 죽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아담과 하와를 통해서 원죄로 죽었고 그 다음 그 이후로 우리가 수많은 세상에서 허물을 지었기 때문에 허물로 죽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린 장면 보십시오. 그가 죽어서 썩은 냄새가 나는데 나흘만에 그 무덤에서 예수님이 가셔서 “나사로야 나오라!”고 하니까 나왔습니다. 이것은 무엇과 비교할 수 있냐면 우리가 영혼이 죄로 말미암아 썩어 문드러졌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피로 우리 영혼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짐이 되고 구원을 받은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나사로가 무덤에서 살아서 나올 때 수의를 입은채 나온 것입니다. 그는 살기는 살았는데 수의를 입고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하기를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살아나는 것과 풀어 놓아 다니게 하는 것은 별개입니다. 살리는 것은 예수님밖에 못살려요. 예수님이 살려 주셨지만 풀어 놓아 다니게 하는 것은 사람들끼리 해야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영혼이 죄로써 죽은 것은 예수님의 보혈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자유롭게 되는 것은 우리의 허물이 보상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풀어 놓아 다녀야 되는 것입니다. 살아났으나 허물은 풀어 놓아야 합니다. 이웃에게 허물진 누더기는 벗어 놓아야 됩니다. 많은 예수 믿는 사람이 영혼은 구원 받았으나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을 받지 못하고 축복을 받지 못하고 나는 왜 이렇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영혼이 살아났으나 누더기를 그대로 입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살았어도 누더기만 입고 있으면 누더기 입은 사람을 누가 집에 청하며 누가 같이 있으려고 하겠습니까? 우리의 허물은 누더기와 같은 것입니다.
누가복음 19장 8절에 보면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
여리고에 있는 세관장 삭개오는 많은 사람에게 세금을 포탈하고 로마에 바칠 세금 이외의 세금을 거두어서 부자가 되었습니다. 사기꾼이요, 사람들에게 미움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삭개오의 집에 들어올 때 삭개오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삭개오의 생애속에 큰 변화가 왔습니다. 속죄제물뿐 아니라 속건제를 그는 드렸습니다. 그는 주님께 말하기를 “주여! 내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남에게 토색한 재물은 사배로 갚겠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뭐라고 했습니까? “오늘날 이 집에 구원이 임하였다”고 말한 것입니다. 삭개오가 그냥 예수를 믿어도 구원은 받습니다. 그러나 그가 토색한 것을 갚기 전에는 축복은 절대로 받지 못합니다.
마가복음 11장 25절에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셨더라”고 말했으며
마태복음 5장 23절로 24절에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그러므로 구원 받는 것 하고 축복 받는 것은 별개입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예수님이 우리의 속죄제물이 되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해서 구원받습니다. 그러나 축복은 속건제물을 드려야 됩니다. 예수의 보혈을 의지해서 용서받을 뿐 아니라 내가 이웃에 잘못한 것을 갚아야 되는 것입니다. 청산해야 하늘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내가 남의것 다 거두어 먹고 난 다음 오산리기도원에 가서 일주일 금식기도하고 “아~ 용서 다 받았다. 나는 갚을 필요없다. 하나님께 용서다 받았으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남의 물건 다 토색해서 자기 포켓에 넣고 기도원에 가서 기도만 하면 다 용서 받았다하면 도대체 어떠한 하늘나라가 그런 하늘나라가 있습니까? 물론 그 사람이 예수를 구주로 믿었기 때문에 영혼은 불길 가운데서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토색한 모든 사기친 것을 갚기 전에는 이땅에 사는 동안에 끝까지 광야에서 방황하게 될것이요, 하나님의 축복은 전혀 받을 수가 없습니다.
유명한 전도자였던 영국의 빌리 산데이는 14살부터 학교 급사로 일을 했습니다. 하루는 그의 월급을 25달러 받아서 그 수표를 은행에서 바꾸는데 은행 직원이 실수를 해서 25달러를 수표를 40달러 지폐로 환전해 주었습니다. 그는 모른체 하고 집어넣고 “야~ 25달러 수표 냈는데 40달러를 받았다.” 그러나 양심이 가책이 조금 되니까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야~ 내가 은행에 수표 25달러를 줬는데 그게 환전을 해주는데 40달러를 주었다.”고 하니까 친구가 “야~ 너 복받았다. 그 나머지 돈을 가지고 극장 구경이나 가라.” 그래서 그 친구말에 용기를 얻어 가지고서 평생에 처음으로 그 나머지 돈을 가지고 양복한벌을 잘 사입었습니다. 그런데 내내 그가 살아가는 동안에 마음속에 양심이 가책이 있는데 그 후에 회개하고 예수를 믿고 난 다음 기도만 하려면 “도둑놈아~ 15달러 내놓아라.” 그래서 그가 말했습니다. “주님! 아무도 못봤어요. 내가 잘못한 것 아닙니다. 은행계원이 잘못해 가지고서 나에게 25불 내가 내놓았는데 40불을 준 것은 은행계원이 실수한 것이고 아무도 못보았습니다.” “내가 봤다. 너는 이것 15달러를 갚기전에는 무슨 기도를 해도 응답을 못받을 것이다.” 너무나 괴로워서 나중에 그는 은행직원에게 회개하는 편지를 쓰고 15달러를 갚고 난 다음에야 하나님의 성령의 불이 임하고 그는 영국과 세계를 뒤흔드는 위대한 부흥사가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허물의 수의를 입고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영혼의 죽은 무덤에서 나왔으나 살았으나 냄새나고 고약한 수의를 입고 다닙니다. 허물을 입고 다녀요. 내 자존심 때문에 내가 뭘 잘못했다고 하랴. 남에게 상처입은 것 내가 용서 구할턱이 뭐가 있느냐? 남을 사기친 것 이미 지나간 일인데 뭘 토색한 것 이미 과거야. 내 과거사 지금 들추어서 뭘하느냐. 그러면서 돌아 다니지만 하나님 앞에는 썩은 수의를 입고 다닙니다. 영혼은 살았으나 생활은 수의를 입고 다니는데 그러니까 냄새나는 그 수의를 입고 있는 이상 하나님 앞에 설수도 없고 사람 앞에도 설수가 없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허물의 수의를 입고 사는 사람들은 마귀의 참소를 당합니다. 그 썩은 옷을 입고 있으니 마귀가 가만히 있을수가 있어요. 더러운 것이 있어야 똥파리가 달라들지 않습니까? 수의를 입고 다니니까 마귀가 따라 다니면서 계속 참소합니다. “나쁜놈, 도둑놈, 너 기도는 응답 못받는다. 하나님이 이런놈을 살려줍니까?” 계속해서 참소하니까 그 마귀의 참소를 받고 이 사람의 생활이 복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허물의 수의를 벗기 전에는 마귀의 참소가 떠나지 않아요. 제가 미국에서 부흥회를 할 때 일입니다. 부흥회가 끝난후에 머리털이 새하얀 형제가 신앙상담을 왔어요. 그래서 “아~ 나이가 많이 먹었구나.” 하거고 곂에서 보니까 새파란 젊은 청년입니다. 그래서 나이가 얼마냐고 물으니까 30이라고 그래요. 30세의 청년이 머리가 백발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머리가 백발이 되었냐고 하니까 “목사님 내가 머리가 백발이 된 것은 얼마나 그 동안에 내 영혼속에 고통이 많아서 그렇지 않습니까? 32살밖에 안되는 저의 머리가 이렇게 희어진 사정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무슨 일입니까?” “12년 동안 아주 무거운 짐으로 인해 고통을 받아왔습니다.” 그리고 자꾸 주위를 살펴요. 혹시 다른 사람이 들을까 싶어서. “다른 사람 없으니까 이야기 하라”니까 “저희 부친은 돌아 가시면서 어머니에게 시골에 있는 작은 신문사를 유산으로 남겨 주었는데 어머니가 신문사를 경영하다가 크게 빚을 졌습니다. 빚으로 너무 고생해서 내가 보기에 안스러웠는데 알아 보니까 우리 아버님이 돌아가시기전에 그 신문사를 굉장한 돈으로 보험을 들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나이 20살 때 어머니하고 의논하지 않고 몰래 신문사에 밤에 들어가서 불을 질렀습니다. 신문사가 불에 타버렸기 때문에 거액의 보험금을 타서 내가 어머니 빚을 다 갚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아무도 못보았으니까 손털어 버리고 그때부터 양심에 고통과 괴로움에 견딜수가 없습니다. 늘 하나님이 앉아도 ‘도둑놈아!’ 서도 ‘도둑놈아!’ 그래서 너무나 마음에 고통스러워서 이것을 없애려고 술을 먹고 방탕을 하고 세속에 취해도 이 영혼에 꾸짖음을 끝나지 않았었습니다. 그래서 내 젊은 나이에 머리가 백발이 되고 말았습니다. 나는 이제 사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목사님 나 어떻해야 할까요?” 그래서 “당신이 살아갈 길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살아갈수 있습니까?”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 앞에 죄를 회개하고 고백하면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당신의 하나님 앞에 지은죄는 용서받기 때문에 영혼은 구원받지만 속건제인 당신이 보상을 하지 아니하면 결코 이 땅에 사는 동안에 행복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있는 재산 다 청산해 가지고서 거기에다 이자까지 계산해서 보험회사에 가서 속죄하고 그 돈을 갚으세요. 그러면 당신은 그 무거운 죄짐에서 벗어나게 되고 이제부터 하나님께 기도응답을 받게 되고 당신의 여생이 행복할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당신이 예수 보혈로 인하여 영혼은 구원받겠지만은 당신의 삶은 처절한 고통가운데 죽어갈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자신의 죄로인해 고통 당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아직 허물진 누더기를 벗어 놓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죄를 회개하고 이웃에 진 허물을 보상할 때 비로소 우리는 누더기를 벗어서 주안에서 행복해 질수가 있는 것입니다. 누더기를 벗어야 됩니다. 언제까지 그 누더기를 걸치고 썩은 냄새를 풍기고 다니는 동안에는 하나님 앞에서 결코 기도가 응답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누더기 옷이 하나님과 여러분 사이에 막힌 담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에 힘이 없습니다.
이사야 1장 15절에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찌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이사야 59장 1절로 2절에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1907년 길선주 목사님이 평양 장대제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할때였습니다. 매일같이 1천 5백명의 군중이 모였는데 그는 열렬한 마음으로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을 증거했으나 한 사람도 감화 감동을 받지 않고 아멘하는 사람도 없고 할렐루야 하는 사람도 없고 죄를 회개하는 사람, 구원받는 사람이 없습니다. 너무 길선주 목사가 답답해서 그는 예배를 마치고 집에 들어와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 “하나님 나를 버리셨나이까. 왜 이렇게 부르짖고 기도해도 응답이 없나이까?” 그러니까 하나 님이 “너 사기친 죄, 회개하라!” “하나님 내가 무슨 사기를 쳤습니까?” 그러니까 기억이 나요. 예전에 친구가 죽으면서 “야~ 우리 집사람은 물정을 모르니까 자네가 내 재산을 다 처리해 주되 그 돈으로 환산해서 우리 집 사람에게 주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의 재산목록을 다 받아서 그것을 다 처리해서 그 친구의 부인에게 돈주기 전에 백원을 떼먹어 버렸어요. 친구가 내게 다 서류 맡겼는데 내가 다 정리해서 그 부인에게 주면서 내가 백원 떼먹은 것 누가 알겠나. 포켓에 집어 넣었습니다. 자기는 잊어 버렸습니다. 이게 누더기입니다. 길선주가 예수믿고 구원받아서 목사까지 되었어도 영혼은 구원받아 목사까지 되었어도 누더기를 입고 있어요. 그 누더기 철렁철렁 거리면서 강단에 서서 아무리 외친들 사람들이 구린내가 나가지고서 고함을 치는데 은혜가 안돼요. 성령의 생수가 불어와야 회개하겠는데 고함은 치기는 치는데 성령의 생수는 없고 구린내만 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은혜가 없는 것을 알고 길선주 목사님이 그 다음 강단에 서서 “여러분 내가 아간입니다. 나 때문에 은혜가 안옵니다. 나는 내 친구의 아내에게 주어야 될 돈 백원을 떼먹은 나쁜놈입니다. 내가 오늘 여러분께 회개합니다.”하고 그는 땅을 치고 울었습니다. 그러자 성령이 임하여서 회개 운동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였습니다. 길선주 목사님 그 이튿날 돈 백원을 가지고 그 친구 부인에게 가서 회개하고 그 돈을 갚았습니다. 그러자 성도 여러분들이 일어나서 “이놈이 예수믿기 전에 큰 죄를 지었습니다. 저의 친한 친구가 나에게 이런 죄를 지었는데 내가 그를 보상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쌀가게 주인은 하는말이 “내가 되를 속여서 쌀을 팔았습니다. 광고를 크게 붙였습니다. 내 집에 쌀사간 사람 내가 되를 속여서 팔아 먹었으니 오면 도로 갚아 주겠습니다.” 도적질한 사람은 도적질한 것 도로 갚아 주고 남에게 상해를 끼친 사람은 끼친 것을 회개하고 자복하고 굉장한 부흥이 일어나서 1907년 장대제교회에서 우리 한국에 일어난 부흥의 역사는 바로 길선주 목사님이 회개하므로 말미암아 일어났던 것입니다. 허물의 수의를 입고 있으면 하나님과의 담이 막히기 때문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보상이 따르는 온전한 속건제를 드려야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병자위해서 기도할 때 그러지 않습니까? 병을 고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뭐라고 했습니까?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낫기를 위하여 기도하라.” 우리가 서로서로 잘못한 것을 회개하고 서로 마음으로 용서받고 난 다음에야 하나님의 기도는 응답하겠다는 것입니다. 나는 남을 때려놓고 남에게 상처를 입히고 남을 괴롭게 해놓고 난 다음에 그것은 제켜 놓고 나만 “하나님 병고쳐 주시옵소서.” 아무리 고함쳐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먼저 속건제, 보상의 죄를 보상하는 역사가 있어야 됩니다. 물건을 훔친 사람, 물건으로 갚아야 돼요. 토색한 사람은 토색한 것으로 갚아야 돼요. 서로 마음을 상하게 한 것은 서로서로 만나서 회개하고 자복하고 서로 마음에 화해해야 돼요. 성경은 뭐라고 말합니까? 땅에서 묶으면 하늘에서 묶인다고 말한 것입니다.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린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보상의 법칙에 따른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 18절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이것은 바로 죄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지은죄는 사람과 사람사이에 풀어야 되는 것입니다. 서로 용서하고 용서받고 풀면 하늘에서 풀려서 그때부터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시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세상에서 풀지 아니하면 하늘에서 응답이 오지 않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5장 15절로 16절에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찌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결론]
우리의 신앙생활 중에 속죄제와 속건제를 잘 이해해야 해야 원만한 축복받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원죄는 아담과 하와를 통해서 받은 원죄는 오직 믿음으로 다 씻어지지만 우리가 이땅에 살면서 허물지은 허물죄는 하나님 앞에서 용서받음과 동시에 허물을 벗는 실천이 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가만이 있다고 허물이 벗어지지 않습니다. 내 허물을 고백하고 그리고 내 허물을 남의 물건을 훔친 것은 보상을 하고 갚아야 되는 것입니다. 청산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 축복받는 것은 쉬운길이 아닙니다. 구원받는 것은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죄지은 그대로 못난 그대로 주님께 나와서 예수의 보혈을 의지하면 값없이 용서와 의와 구원을 받지요. 그러나 그것은 속죄제물입니다. 그 다음에는 속건제물은 여러분 보상이 따라야 되는 것입니다. 축복은 보상이 따라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축복받는 것은 너무나 힘이 듭니다. 내가 내 자신을 죽어야 됩니다. 나를 깨뜨려야 됩니다. 내 고집이 깨어져서 혹시 아내를 괴롭혔으면 아내에게 대해서 용서를 얻어야 됩니다. 남편을 속였으면 속였다고 용서를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불효했으면 불효한 죄를 회개하고 부모 앞에 무릎을 끓어서 용서를 받아야 됩니다. 이웃에 상해를 끼쳤으면 상해 끼친 것을 용서 받아야 됩니다. 훔쳤으면 갚아야 돼요. 얼마전에도 보니까 어느 책방에 만원짜리 돈을 넣어도 보내면서 하는말이 “내가 10년 전에 이 책방에서 만원짜리 책을 훔쳤습니다. 우리 조카가 났는데 형수가 늘 어린아이 기르는 법에 대한 책을 갖기를 원하나 너무 가난해서 책을 가질수 없었습니다. 내가 이 책방에 오니까 육아법에 대한 책이 있기에 슬쩍 훔쳐서 그래서 우리 형수에게 갖다 주었습니다. 10년이 하루같이 내 마음이 무겁고 괴로운데 나는 아무교회 나갑니다. 기도를 해도 기도가 막혀서 응답이 안됩니다. 그래서 내 죄를 고백하고 그 책값을 붙여 드립니다.” 책 주인이 돈 만원 받았어요. 그래서 너무 기특해서 그 교회로 책을 스물몇권 보냈다나? 그사람은 불과 만원짜리 밖에 안되지만은 그것이 마음에 늘 걸려서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우리 신학교 은사였던 존 스테츠 목사님이 그런 간증을 합디다. 성령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를 하는데 다른 사람은 다 성령을 받는데 자기는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성령을 받지를 못해요. 그래서 “하나님 왜 나는 성령을 주시지 않습니까?” 하니까 “임마, 너 언제 자동차를 타고 식당앞에 오다가 남의 차를 받았지 않았느냐? 앞뒤를 살펴보고 아무도 없으니까 네가 도망쳤지? 너 그 차값 갚아라. 너 남의 차를 우그러 뜨리고 난 다음에 안보았다고 도망을 쳤는데 그 우그러진 것 갚아라.” “하나님 그 차 주인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벌써 그 차 사고를 낸 것은 내가 총각때인데 뭐 그것을 가지고 말합니까?” “너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너 그 누더기를 입고 있다. 벗어라.” “어디다 벗을까요?” “줄때가 없으면 그 돈을 하나님 헌금함에 넣어라.” 그래서 회개하고 자동차 수리비를 봉투에 넣어서 헌금함에 넣고 꿇어 앉자마자 성령세례 받았어요. 성령이 불같이 임했습니다. 용서는 값없이 받지만 하나님께 축복은 속건제물을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보상의 법칙이 반드시 따라야 되는 것입니다.
제가 솔로몬 군도에 부흥회를 인도하는데 솔로몬 군도에서는 프롬펜세이션이라는 이 보상의 역사가 일어나 프롬펜세이션은 영어인데 한국말로 번역하면 ‘보상’이라는 말인 것입니다. 부족간에 싸움이 일어나고 또 이웃간에 서로 싸움이 일어나면 보상위원회가 있어서 불러 가지고서 서로 대화를 해서 얼마를 보상하면 되겠느냐 서로 이야기를 하게 되면 그 이야기에 따라서 쉘만 이라든지 돼지라든지 양이라든지 닭을 주어서 보상을 하고 그 다음에는 화해가 되어서 없은 듯이 평안하게 되고 그래서 그 솔로몬군도에서는 좀처럼 재판을 하러 가는 법이 없어요. 재판가기전에 보상위원회에 가서 이에서 서로 주고 받고 보상해서 화해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주 친하고 화평하게 지내요.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하나님과 친하기 위해서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보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기도를 듣고 이스라엘의 3년 동안 기근이 오던 그곳에 비를 내린 것처럼 우리의 생활에 하늘문을 열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축복을 내려주게 되시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속죄제물도 되시고 속건제물도 되셨습니다.
우리 조상이 잘못해서 지은죄를 위해서 하나님을 거스린죄는 속죄제물이 되고
그러 말미암아 가져온 에덴동산과 이 세상에 끼친 모든 손해는 주님이 육체를 찢음으로
속건제물이 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예수를 믿어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고
하나님 앞에 선 것을 기뻐하지만 우리가 우리의 삶속에 기근이 다가오고 영혼이 기근이 다가오고
생활에 기근이 다가오고 삶의 행복에 기근이 다가오는 것은 우리가 보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다시한번 우리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하고 예수 믿고 난 다음에 속건제물을
다 드리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천국만 갈뿐 아니라 이땅에 사는 동안 기도와
응답받고 하늘이 비를 내리고 땅이 열매를 맺는 기적을 가져오며 살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 아멘
[서론]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속죄제와 속건제’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중에 속죄제와 속건제가 있었습니다. 속죄제는 사람이 하나님께 죄를 범한 그 죄를 속하는 제사가 속죄제사 였습니다. 그러나 속건제는 하나님 앞에 범죄했을 뿐 아니라 이웃에게도 정신적, 물질적 상처를 입혔을 때 하나님께 속죄할 뿐 아니라 이웃에게 보상을 겸하는 제사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구약의 제사와 제물을 대신하여 우리의 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신앙생활은 첫 번째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속에서 이루어집니다. 그 때문에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서 죄용서함을 받았을지라도 우리는 우리 이웃과 우리와의 관계가 잘못되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이웃과의 관계개선이 이루어져야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용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하나님께 대한 죄는 용서받지만 이웃에 손해를 끼치고 고통을 갖다준 죄는 이웃과의 관계개선이 이루어져야 하나님께로부터 기도가 응답받고 복을 받을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23절로 24절에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주고 재판관이 관예에게 내어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고 했습니다.
예물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 복받기 위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예물을 드려 복을 받기 전에 내 이웃과 잘못된 일이 있으면 그것부터 먼저 해결하고 와서 예물을 드려야 하나님께 복을 받을 수 있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오늘 다윗에게 있었던 보상의 제물을 여러분하고 나누고자 하는 것입니다.
[본론]
1. 다윗 시대의 속죄와 보상
첫째로, 다윗이 왕으로 시무할 때 극심한 기근이 3년이나 계속되어 온 국민 전체가 기근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우물물이 다 말라 버리고 짐승떼들이 풀이 없어 죽고, 사람들은 기근에 방황하고 나라를 떠나 이웃 나라에 가서 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사무엘하 21장 1절에 “다윗의 시대에 년부년 삼년 기근이 있으므로 다윗이 여호와 앞에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는 사울과 피를 흘린 그 집을 인함이니 저가 기브온 사람을 죽였음이니라 하시니라”
이 말은 무슨 의미냐 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을 점령할 때 여호수아와 족장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브온 사람을 죽이지 않기로 언약하고 맹세를 했는데 사울왕이 이스라엘과 유다를 사랑하는 마음이 특심하여 그 나라에 있는 기브온 백성들을 다 멸하려고 작정하고 많은 기브온 백성들을 죽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언약을 어기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진노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상숭배하는 가나안의 칠족을 진멸하도록 엄명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땅을 처들어 올 때 기브온 거민은 그중 히위족속인데 목숨을 부재하려고 먼 곳에 사는 것처럼 속여서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와서 화친을 전했습니다. 이때 여호수아와 장로들은 하나님께 묻지 않고 단순하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약조를 했는데 사흘후에 보니까 속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속은 것을 알았지만은 언약은 언약이니 하나님 이름으로 한 언약은 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할 수 없이 가나안을 점령했을 때 이 히위족속인 기브온 거민들은 성막에서 나무패고 물긷게 하는 종들로 삼으신 것입니다.
여호수아 9장 15절에 보면 “여호수아가 곧 그들과 화친하여 그들을 살리리라는 언약을 맺고 회중 족장들이 그들에게 맹세하였더라”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더불어 맹세한 것은 절대로 깨뜨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사울왕때에 여호수아와 그 족장들이 기브온 족속하고 안 죽이겠다고 맹세하고 언약한 것을 깨뜨리고 일방적으로 기브온 백성들을 멸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진노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깨뜨리고 하나님을 멸시한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시대에 온 이스라엘에 년부년 삼년 기근이 왔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기브온 사람들에게 어떻게 속죄해야 될지 물었습니다. 하나님께 범죄한 것은 하나님께 회개하면 되지만 이웃에게 범죄한 것은 이웃에게 속량을 해야 하나님이 기도를 응답하시고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기브온 백성들이 뭐라고 말하냐면 “우리는 이스라엘에 사는 외부 민족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을 죽일 권한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원한을 풀기 위해서는 사울왕의 직계자손중에 일곱명을 내주어 주면 사울의 도시인 기브온에 그들을 목메어 달아 우리의 원한을 갚으면 우리가 이스라엘을 위해서 복을 빌겠습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다윗은 할수없어서 사울의 자손중에 일곱명의 남자를 붙잡아서 이 기브온 백성들에게 내어 주고 기브온 백성들은 일곱명의 자손들을 목메어 달았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기브온 사람들이 원한을 풀고 하나님께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쏟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 사실을 볼 때에 회개와 보상은 별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범죄했으면 하나님께 회개하면 용서를 받고 의로움을 얻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범죄하면 이웃 사람에게 해를 끼친다든지 심신에 고통을 가했다든지 이웃의 물건을 사기쳤다든지 훔쳤다든지 이러한 것들은 하나님 앞에 범죄할 뿐 아니라 이웃에게 범죄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회개하면 죄는 용서함 받지만은 축복은 이웃에게 보상을 해야 축복이 오지 보상하지 않은 이상은 결코 축복이 오지 않습니다. 제가 서대문에서 목회할 때 대게 성도들이 극빈자이고 교회 재정이 매우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신학교 학생 한 사람이 도움을 청하여서 우리 교회에서 밤에 교회를 지키고 교회를 돌보면 등록금을 우리가 대어 주고 그의 생활을 돌보아 주었습니다. 그런데 주일 예배를 필하고 난 다음에 월요일날 오니까 이 사람이 달아나고 없는데 보니까 교회 그날 주일날 헌금 거두어서 넣어 놓은 금고를 깨어가지고서 돈을 다 훔쳐서 도망을 처버렸습니다. 저는 아주 그냥 절망에 처했습니다. 그때 우리 교회가 얼마나 가난했는지 매주일마다 받는 헌금을 가지고 겨우겨우 교회를 운영해 나갔는데 그만 돈이 송두리째 없어졌으니 그 충격은 말로다 할수없어요. 그러나 하나님께 부르짖고 기도한 결과에 하나님이 도와 주셔서 교회는 그대로 그 충격을 이겨냈는데 한 3년이 지난후에 제가 어느곳에 가서 부흥회를 하는데 아주 이발도 하지 않고 수염을 기르고 행색이 굉장히 초라한 한 젊은이가 내게 와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목사님! 저를 알지요.” “알고 말고.. 너 고학생으로써 우리 교회에서 도와줬는데 금고를 깨고 돈 훔쳐간 놈 아니냐?” 그러니까 그 놈이 하는말이 “그것다 옛날일입니다. 나는 그때 이후로 기도원에 가서 죽도록 회개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다 받았습니다. 목사님도 용서해 주십시오.” 내가 하는말은 “이 사람아 속죄제와 속건제가 틀린줄 모르느냐. 하나님께 범죄한 것은 속죄제물만 드리면 되지만 하나님과 사람에게 범죄한 것은 속죄만 해서는 안된다. 속건제물을 드려야 한다. 다시 말하면 보상을 해야 한다. 자네는 예수의 보혈로 말미암아 용서를 받고 천당은 가지만 보상의 법칙을 통해서 훔친돈을 도로 갚기 전에는 평생을 이땅에서 헤매어도 하나님 복이 오지 않는다. 자네는 공사판에 가서 일을 하더라도 돈을 벌어서 하나님 헌금 도둑질 한 것을 도로 다 갚아야 된다. 그러기 전에는 자네의 기도는 절대로 응답받지 않는다. 하늘이 놋과 같이 되어서 축복은 한 방울도 임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람에게 범죄한 것 하나님께 회개하면 그 죄는 용서해 주되 축복을 받으려면 보상을 해야 됩니다. 한때 우리 교회 장로님 한분이 여러 장로님의 돈을 사기해서 미국으로 도망쳐 버렸습니다. 보증을 선 장로님들이 가슴을 쳤습니다. 상당이 거액의 돈을 가지고 도망을 쳤는데 세월이 흘러서 제가 미국에 가니까 그분이 날 만나러 왔어요. 자기가 하는말이 자기는 미국에 와서 크게 회개하고 신학교를 졸업하고 주의 종이 되었다고 그래요. 그래서 내가 말했습니다. “당신이 회개하고 신학교에 들어가서 주의 종이 된지 몰라도 당신은 절대로 하나님께 축복받지 못한다. 왜냐, 용서받았다고 해서 남을 헤쳐놓고 난 다음 기도원에 가서 기도하고 ‘아~ 나는 하나님께 용서받았다. 이제 나는 아무것도 안갚아도 된다.’ 그것은 있을수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속죄를 받을수 있지만은 속건죄는 반드시 보상을 해야 당신이 복을 받는다. 절대로 당신이 교회를 개척해서 하나님께 복받을줄 생각하지 말라. 한국에 있는 장로님들에게 당신이 사기친 그 돈을 다 갚는날에 하나님께 복을 주실 것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2. 속죄제물과 속건제물이신 예수님
오늘 두 번째로 생각하고 싶은 것은 예수님은 우리의 속죄제물과 속건제물이 동시에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속죄제물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아들이 와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 못박힐 정도로 사람은 흉악합니다. 이번에 김선일씨가 이라크에서 테러리스트에 대해 참수를 당한 고통을 입었습니다. 사람이 얼마나 악하면 생사람의 목을 자릅니까? 사람의 마음이 가증스럽고 부패하기 짝이 없습니다. 멀리서만 그런 것 보는 것 아닙니다. 제가 TV에서 뉴스를 보니까 우리 한국에 대학생이 자기 카드빚 안갚아 준다고 어머니를 때려 죽이고, 말리는 할머니를 때려 죽이고 말리는 형을 중상을 입히고 그 자리에 또 앉아서 인터넷에 자기 여자친구에게 자기가 잘했다고 자랑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부패하고 가증해도 그럴수가 없지요. 그런데 아담 하와 이후로 죄로써 부패한 사람의 마음이 다 그렇습니다. 나는 안그렇다고 할수 없습니다. 부패하고 가증하고 쇠퇴한 것이 다 동일합니다. 이러한 어마어마하고 무서운 죄는 아무리 수양과 도덕을 닦아도 도리킬 수가 없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와서 직접 이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당신이 몸을 찢고 피를 쏟아서 죄를 사하고 우리를 씻어줄 수밖에 없습니다. 얼마나 어마어마한 죄인지 어떤 종교나 수양이나 도덕이나 고행을 통해서 갚을정도의 죄가 아닙니다. 부패하고 가증스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속죄제물이 되셨습니다. 우리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야만 용서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히브리서 13장 12절에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요한복음 1장 29절에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말했습니다.
요한일서 3장 4절로 5절에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고 말했으며
히브리서 9장 12절에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 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선교사였던 보먼 박사가 인도 켈거타의 나환자 수용소 안에 교회를 건축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준공식이 있던날 82세의 한 인도 노인이 예수님을 믿기로 작정을 하고 앞으로 나왔습니다. 박사가 그 노인에게 물었습니다. “왜 이 나이에 예수를 믿기로 작정을 했습니까?” 그러자 그 노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예. 지금까지 나는 많은 신들을 섬겼습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나를 위해서 죽어준 신은 한분도 만나보지 못했는데 예수님만이 나를 위해서 죽어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신 분은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우리 속죄제물이 되셔서 우리 모든죄를 지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자는 그의 십자가 공로를 통하여 값없이 죄사함을 받고 용서받은 의인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속죄제물이 되실뿐 아니라 속건제물도 되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범죄해서 하나님을 거스렸을 뿐 아니라 그로 말미암아 굉장히 하나님이 지은 세상에 손해를 끼쳤습니다. 당장 에덴동산이 망했지 않습니까? 에덴동산이란 거창스러운 하나님의 작품을 망쳤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름다운 세상에 아담이 타락하므로 말미암아 저주가 임하게 해서 가시와 엉겅퀴가 나고 저주가 임하고 살상이 임했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만물은 병들고 죽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직접 뜻을 거스렸을뿐 아니라 하나님이 지은 세상에 손해를 끼친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 하나님이 만든 세상에 손해를 끼친 이 손해에 대한 배상으로 예수님은 육체가 십자가에 못박힌 것입니다. 그 흘린 피는 죄악을 속하는 속죄제물의 피였지만은 그 못이 양손에 박히고 양발에 박히고 창을 찍어서 옆구리가 찔린 것은 속건제물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육체로 고난을 당하시므로 아담과 하와 그를 통해서 입은 이 세상에 모든 손해와 상처가 속량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의 속제제물이 되시고 동시에 속건제물이 된것입니다.
레위기 6장 1절로 7절 우리 다함께 소리내어 읽어 보십시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누구든지 여호와께 신실치 못하여 범죄하되 곧 남의 물건을 맡거나 전당 잡거나 강도질 하거나 늑봉하고도 사실을 부인하거나 남의 잃은 물건을 얻고도 사실을 부인하여 거짓 맹세하는 등 사람이 이 모든 일 중에 하나라도 행하여 범죄하면 이는 죄를 범하였고 죄가 있는 자니 그 빼앗은 것이나 늑봉한 것이나 맡은 것이나 얻은 유실물이나 무릇 그 거짓 맹세한 물건을 돌려 보내되 곧 그 본물에 오분 일을 더하여 돌려 보낼 것이니 그 죄가 드러나는 날에 그 임자에게 줄 것이요 그는 또 그 속건제를 여호와께 가져 올찌니 곧 너의 지정한 가치대로 떼 중 흠 없는 수양을 속건 제물을 위하여 제사장에게로 끌어 올 것이요 제사장은 여호와 앞에서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는 무슨 허물이든지 사함을 얻으리라"
보십시오. 죄는 예수님의 보혈로 다 용서받지만 속죄제물로 용서받지만 허물은 속건제물을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이웃에게 상처를 입히고 이웃의 재물을 늑탈하거나 손실을 끼친 것은 속건제물 즉, 제물을 하나님께 드려 죄사함을 받을뿐 아니라 보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보상을 하지 않으면 영혼은 구원받아 천당은 갈것입니다만 절대로 축복은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응답하지 않습니다. 보상이 따라야 온전한 용서가 따라오게 되는 것입니다. 보상제도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사회에서나 찾아볼수 있는 제도입니다. 옛날 우리 한국에 고조선에서는 팔조권법이 있어서 남에게 상해를 입힌 사람은 곡물로써 갚아야 했습니다. 남의 물건을 훔친 사람은 노비로 삼았고 만일 속죄하고자 할 때는 50만전을 내어야 했습니다. 또 부여에는 1척 12법이 있어서 남의 물건을 훔친 사람은 그 훔친물건의 12배를 배상해야 했습니다. 고구려에서도 도둑질한 물건의 12배를 물어 내어야 했고 만약 배상을 안하면 자녀를 노비로 삼았습니다. 우리 나라뿐 아니라 고대 로마에도 12표법이 있어서 도둑질한 것은 두배로 배상을 해야만 했습니다. 이와같이 이웃에게 끼친 손해를 보상하는 것은 시대를 초월하여 보편적으로 행해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속건제인 것입니다. 속죄제는 하나님께 범죄한 것으로 예수의 보혈로 말미암아 용서를 받고 의로움을 얻습니다. 그러나 이웃에게 손해를 끼치고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해를 끼친 것은 보상해야 됩니다. 하나님 앞에 용서 받을뿐 아니라 보상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수가 없습니다. 다윗의 시대에 년부년 삼년 기근이 온것도 그들이 기브온 민족을 죽였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브온 민족이 원하는데로 보상하지 않고는 아무리 기도해도 이스라엘에 가뭄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보상했을 때 기도가 응답받는 것입니다.
3.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를 대속하심
셋째로, 성경에는 우리가 죄와 허물로 죽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아담과 하와를 통해서 원죄로 죽었고 그 다음 그 이후로 우리가 수많은 세상에서 허물을 지었기 때문에 허물로 죽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린 장면 보십시오. 그가 죽어서 썩은 냄새가 나는데 나흘만에 그 무덤에서 예수님이 가셔서 “나사로야 나오라!”고 하니까 나왔습니다. 이것은 무엇과 비교할 수 있냐면 우리가 영혼이 죄로 말미암아 썩어 문드러졌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피로 우리 영혼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짐이 되고 구원을 받은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나사로가 무덤에서 살아서 나올 때 수의를 입은채 나온 것입니다. 그는 살기는 살았는데 수의를 입고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하기를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살아나는 것과 풀어 놓아 다니게 하는 것은 별개입니다. 살리는 것은 예수님밖에 못살려요. 예수님이 살려 주셨지만 풀어 놓아 다니게 하는 것은 사람들끼리 해야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영혼이 죄로써 죽은 것은 예수님의 보혈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자유롭게 되는 것은 우리의 허물이 보상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풀어 놓아 다녀야 되는 것입니다. 살아났으나 허물은 풀어 놓아야 합니다. 이웃에게 허물진 누더기는 벗어 놓아야 됩니다. 많은 예수 믿는 사람이 영혼은 구원 받았으나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을 받지 못하고 축복을 받지 못하고 나는 왜 이렇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영혼이 살아났으나 누더기를 그대로 입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살았어도 누더기만 입고 있으면 누더기 입은 사람을 누가 집에 청하며 누가 같이 있으려고 하겠습니까? 우리의 허물은 누더기와 같은 것입니다.
누가복음 19장 8절에 보면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
여리고에 있는 세관장 삭개오는 많은 사람에게 세금을 포탈하고 로마에 바칠 세금 이외의 세금을 거두어서 부자가 되었습니다. 사기꾼이요, 사람들에게 미움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삭개오의 집에 들어올 때 삭개오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삭개오의 생애속에 큰 변화가 왔습니다. 속죄제물뿐 아니라 속건제를 그는 드렸습니다. 그는 주님께 말하기를 “주여! 내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남에게 토색한 재물은 사배로 갚겠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뭐라고 했습니까? “오늘날 이 집에 구원이 임하였다”고 말한 것입니다. 삭개오가 그냥 예수를 믿어도 구원은 받습니다. 그러나 그가 토색한 것을 갚기 전에는 축복은 절대로 받지 못합니다.
마가복음 11장 25절에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셨더라”고 말했으며
마태복음 5장 23절로 24절에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그러므로 구원 받는 것 하고 축복 받는 것은 별개입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예수님이 우리의 속죄제물이 되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해서 구원받습니다. 그러나 축복은 속건제물을 드려야 됩니다. 예수의 보혈을 의지해서 용서받을 뿐 아니라 내가 이웃에 잘못한 것을 갚아야 되는 것입니다. 청산해야 하늘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내가 남의것 다 거두어 먹고 난 다음 오산리기도원에 가서 일주일 금식기도하고 “아~ 용서 다 받았다. 나는 갚을 필요없다. 하나님께 용서다 받았으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남의 물건 다 토색해서 자기 포켓에 넣고 기도원에 가서 기도만 하면 다 용서 받았다하면 도대체 어떠한 하늘나라가 그런 하늘나라가 있습니까? 물론 그 사람이 예수를 구주로 믿었기 때문에 영혼은 불길 가운데서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토색한 모든 사기친 것을 갚기 전에는 이땅에 사는 동안에 끝까지 광야에서 방황하게 될것이요, 하나님의 축복은 전혀 받을 수가 없습니다.
유명한 전도자였던 영국의 빌리 산데이는 14살부터 학교 급사로 일을 했습니다. 하루는 그의 월급을 25달러 받아서 그 수표를 은행에서 바꾸는데 은행 직원이 실수를 해서 25달러를 수표를 40달러 지폐로 환전해 주었습니다. 그는 모른체 하고 집어넣고 “야~ 25달러 수표 냈는데 40달러를 받았다.” 그러나 양심이 가책이 조금 되니까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야~ 내가 은행에 수표 25달러를 줬는데 그게 환전을 해주는데 40달러를 주었다.”고 하니까 친구가 “야~ 너 복받았다. 그 나머지 돈을 가지고 극장 구경이나 가라.” 그래서 그 친구말에 용기를 얻어 가지고서 평생에 처음으로 그 나머지 돈을 가지고 양복한벌을 잘 사입었습니다. 그런데 내내 그가 살아가는 동안에 마음속에 양심이 가책이 있는데 그 후에 회개하고 예수를 믿고 난 다음 기도만 하려면 “도둑놈아~ 15달러 내놓아라.” 그래서 그가 말했습니다. “주님! 아무도 못봤어요. 내가 잘못한 것 아닙니다. 은행계원이 잘못해 가지고서 나에게 25불 내가 내놓았는데 40불을 준 것은 은행계원이 실수한 것이고 아무도 못보았습니다.” “내가 봤다. 너는 이것 15달러를 갚기전에는 무슨 기도를 해도 응답을 못받을 것이다.” 너무나 괴로워서 나중에 그는 은행직원에게 회개하는 편지를 쓰고 15달러를 갚고 난 다음에야 하나님의 성령의 불이 임하고 그는 영국과 세계를 뒤흔드는 위대한 부흥사가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허물의 수의를 입고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영혼의 죽은 무덤에서 나왔으나 살았으나 냄새나고 고약한 수의를 입고 다닙니다. 허물을 입고 다녀요. 내 자존심 때문에 내가 뭘 잘못했다고 하랴. 남에게 상처입은 것 내가 용서 구할턱이 뭐가 있느냐? 남을 사기친 것 이미 지나간 일인데 뭘 토색한 것 이미 과거야. 내 과거사 지금 들추어서 뭘하느냐. 그러면서 돌아 다니지만 하나님 앞에는 썩은 수의를 입고 다닙니다. 영혼은 살았으나 생활은 수의를 입고 다니는데 그러니까 냄새나는 그 수의를 입고 있는 이상 하나님 앞에 설수도 없고 사람 앞에도 설수가 없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허물의 수의를 입고 사는 사람들은 마귀의 참소를 당합니다. 그 썩은 옷을 입고 있으니 마귀가 가만히 있을수가 있어요. 더러운 것이 있어야 똥파리가 달라들지 않습니까? 수의를 입고 다니니까 마귀가 따라 다니면서 계속 참소합니다. “나쁜놈, 도둑놈, 너 기도는 응답 못받는다. 하나님이 이런놈을 살려줍니까?” 계속해서 참소하니까 그 마귀의 참소를 받고 이 사람의 생활이 복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허물의 수의를 벗기 전에는 마귀의 참소가 떠나지 않아요. 제가 미국에서 부흥회를 할 때 일입니다. 부흥회가 끝난후에 머리털이 새하얀 형제가 신앙상담을 왔어요. 그래서 “아~ 나이가 많이 먹었구나.” 하거고 곂에서 보니까 새파란 젊은 청년입니다. 그래서 나이가 얼마냐고 물으니까 30이라고 그래요. 30세의 청년이 머리가 백발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머리가 백발이 되었냐고 하니까 “목사님 내가 머리가 백발이 된 것은 얼마나 그 동안에 내 영혼속에 고통이 많아서 그렇지 않습니까? 32살밖에 안되는 저의 머리가 이렇게 희어진 사정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무슨 일입니까?” “12년 동안 아주 무거운 짐으로 인해 고통을 받아왔습니다.” 그리고 자꾸 주위를 살펴요. 혹시 다른 사람이 들을까 싶어서. “다른 사람 없으니까 이야기 하라”니까 “저희 부친은 돌아 가시면서 어머니에게 시골에 있는 작은 신문사를 유산으로 남겨 주었는데 어머니가 신문사를 경영하다가 크게 빚을 졌습니다. 빚으로 너무 고생해서 내가 보기에 안스러웠는데 알아 보니까 우리 아버님이 돌아가시기전에 그 신문사를 굉장한 돈으로 보험을 들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나이 20살 때 어머니하고 의논하지 않고 몰래 신문사에 밤에 들어가서 불을 질렀습니다. 신문사가 불에 타버렸기 때문에 거액의 보험금을 타서 내가 어머니 빚을 다 갚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아무도 못보았으니까 손털어 버리고 그때부터 양심에 고통과 괴로움에 견딜수가 없습니다. 늘 하나님이 앉아도 ‘도둑놈아!’ 서도 ‘도둑놈아!’ 그래서 너무나 마음에 고통스러워서 이것을 없애려고 술을 먹고 방탕을 하고 세속에 취해도 이 영혼에 꾸짖음을 끝나지 않았었습니다. 그래서 내 젊은 나이에 머리가 백발이 되고 말았습니다. 나는 이제 사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목사님 나 어떻해야 할까요?” 그래서 “당신이 살아갈 길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살아갈수 있습니까?”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 앞에 죄를 회개하고 고백하면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당신의 하나님 앞에 지은죄는 용서받기 때문에 영혼은 구원받지만 속건제인 당신이 보상을 하지 아니하면 결코 이 땅에 사는 동안에 행복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있는 재산 다 청산해 가지고서 거기에다 이자까지 계산해서 보험회사에 가서 속죄하고 그 돈을 갚으세요. 그러면 당신은 그 무거운 죄짐에서 벗어나게 되고 이제부터 하나님께 기도응답을 받게 되고 당신의 여생이 행복할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당신이 예수 보혈로 인하여 영혼은 구원받겠지만은 당신의 삶은 처절한 고통가운데 죽어갈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자신의 죄로인해 고통 당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아직 허물진 누더기를 벗어 놓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죄를 회개하고 이웃에 진 허물을 보상할 때 비로소 우리는 누더기를 벗어서 주안에서 행복해 질수가 있는 것입니다. 누더기를 벗어야 됩니다. 언제까지 그 누더기를 걸치고 썩은 냄새를 풍기고 다니는 동안에는 하나님 앞에서 결코 기도가 응답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누더기 옷이 하나님과 여러분 사이에 막힌 담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에 힘이 없습니다.
이사야 1장 15절에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찌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이사야 59장 1절로 2절에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1907년 길선주 목사님이 평양 장대제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할때였습니다. 매일같이 1천 5백명의 군중이 모였는데 그는 열렬한 마음으로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을 증거했으나 한 사람도 감화 감동을 받지 않고 아멘하는 사람도 없고 할렐루야 하는 사람도 없고 죄를 회개하는 사람, 구원받는 사람이 없습니다. 너무 길선주 목사가 답답해서 그는 예배를 마치고 집에 들어와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 “하나님 나를 버리셨나이까. 왜 이렇게 부르짖고 기도해도 응답이 없나이까?” 그러니까 하나 님이 “너 사기친 죄, 회개하라!” “하나님 내가 무슨 사기를 쳤습니까?” 그러니까 기억이 나요. 예전에 친구가 죽으면서 “야~ 우리 집사람은 물정을 모르니까 자네가 내 재산을 다 처리해 주되 그 돈으로 환산해서 우리 집 사람에게 주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의 재산목록을 다 받아서 그것을 다 처리해서 그 친구의 부인에게 돈주기 전에 백원을 떼먹어 버렸어요. 친구가 내게 다 서류 맡겼는데 내가 다 정리해서 그 부인에게 주면서 내가 백원 떼먹은 것 누가 알겠나. 포켓에 집어 넣었습니다. 자기는 잊어 버렸습니다. 이게 누더기입니다. 길선주가 예수믿고 구원받아서 목사까지 되었어도 영혼은 구원받아 목사까지 되었어도 누더기를 입고 있어요. 그 누더기 철렁철렁 거리면서 강단에 서서 아무리 외친들 사람들이 구린내가 나가지고서 고함을 치는데 은혜가 안돼요. 성령의 생수가 불어와야 회개하겠는데 고함은 치기는 치는데 성령의 생수는 없고 구린내만 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은혜가 없는 것을 알고 길선주 목사님이 그 다음 강단에 서서 “여러분 내가 아간입니다. 나 때문에 은혜가 안옵니다. 나는 내 친구의 아내에게 주어야 될 돈 백원을 떼먹은 나쁜놈입니다. 내가 오늘 여러분께 회개합니다.”하고 그는 땅을 치고 울었습니다. 그러자 성령이 임하여서 회개 운동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였습니다. 길선주 목사님 그 이튿날 돈 백원을 가지고 그 친구 부인에게 가서 회개하고 그 돈을 갚았습니다. 그러자 성도 여러분들이 일어나서 “이놈이 예수믿기 전에 큰 죄를 지었습니다. 저의 친한 친구가 나에게 이런 죄를 지었는데 내가 그를 보상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쌀가게 주인은 하는말이 “내가 되를 속여서 쌀을 팔았습니다. 광고를 크게 붙였습니다. 내 집에 쌀사간 사람 내가 되를 속여서 팔아 먹었으니 오면 도로 갚아 주겠습니다.” 도적질한 사람은 도적질한 것 도로 갚아 주고 남에게 상해를 끼친 사람은 끼친 것을 회개하고 자복하고 굉장한 부흥이 일어나서 1907년 장대제교회에서 우리 한국에 일어난 부흥의 역사는 바로 길선주 목사님이 회개하므로 말미암아 일어났던 것입니다. 허물의 수의를 입고 있으면 하나님과의 담이 막히기 때문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보상이 따르는 온전한 속건제를 드려야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병자위해서 기도할 때 그러지 않습니까? 병을 고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뭐라고 했습니까?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낫기를 위하여 기도하라.” 우리가 서로서로 잘못한 것을 회개하고 서로 마음으로 용서받고 난 다음에야 하나님의 기도는 응답하겠다는 것입니다. 나는 남을 때려놓고 남에게 상처를 입히고 남을 괴롭게 해놓고 난 다음에 그것은 제켜 놓고 나만 “하나님 병고쳐 주시옵소서.” 아무리 고함쳐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먼저 속건제, 보상의 죄를 보상하는 역사가 있어야 됩니다. 물건을 훔친 사람, 물건으로 갚아야 돼요. 토색한 사람은 토색한 것으로 갚아야 돼요. 서로 마음을 상하게 한 것은 서로서로 만나서 회개하고 자복하고 서로 마음에 화해해야 돼요. 성경은 뭐라고 말합니까? 땅에서 묶으면 하늘에서 묶인다고 말한 것입니다.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린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보상의 법칙에 따른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 18절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이것은 바로 죄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지은죄는 사람과 사람사이에 풀어야 되는 것입니다. 서로 용서하고 용서받고 풀면 하늘에서 풀려서 그때부터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시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세상에서 풀지 아니하면 하늘에서 응답이 오지 않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5장 15절로 16절에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찌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결론]
우리의 신앙생활 중에 속죄제와 속건제를 잘 이해해야 해야 원만한 축복받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원죄는 아담과 하와를 통해서 받은 원죄는 오직 믿음으로 다 씻어지지만 우리가 이땅에 살면서 허물지은 허물죄는 하나님 앞에서 용서받음과 동시에 허물을 벗는 실천이 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가만이 있다고 허물이 벗어지지 않습니다. 내 허물을 고백하고 그리고 내 허물을 남의 물건을 훔친 것은 보상을 하고 갚아야 되는 것입니다. 청산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 축복받는 것은 쉬운길이 아닙니다. 구원받는 것은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죄지은 그대로 못난 그대로 주님께 나와서 예수의 보혈을 의지하면 값없이 용서와 의와 구원을 받지요. 그러나 그것은 속죄제물입니다. 그 다음에는 속건제물은 여러분 보상이 따라야 되는 것입니다. 축복은 보상이 따라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축복받는 것은 너무나 힘이 듭니다. 내가 내 자신을 죽어야 됩니다. 나를 깨뜨려야 됩니다. 내 고집이 깨어져서 혹시 아내를 괴롭혔으면 아내에게 대해서 용서를 얻어야 됩니다. 남편을 속였으면 속였다고 용서를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불효했으면 불효한 죄를 회개하고 부모 앞에 무릎을 끓어서 용서를 받아야 됩니다. 이웃에 상해를 끼쳤으면 상해 끼친 것을 용서 받아야 됩니다. 훔쳤으면 갚아야 돼요. 얼마전에도 보니까 어느 책방에 만원짜리 돈을 넣어도 보내면서 하는말이 “내가 10년 전에 이 책방에서 만원짜리 책을 훔쳤습니다. 우리 조카가 났는데 형수가 늘 어린아이 기르는 법에 대한 책을 갖기를 원하나 너무 가난해서 책을 가질수 없었습니다. 내가 이 책방에 오니까 육아법에 대한 책이 있기에 슬쩍 훔쳐서 그래서 우리 형수에게 갖다 주었습니다. 10년이 하루같이 내 마음이 무겁고 괴로운데 나는 아무교회 나갑니다. 기도를 해도 기도가 막혀서 응답이 안됩니다. 그래서 내 죄를 고백하고 그 책값을 붙여 드립니다.” 책 주인이 돈 만원 받았어요. 그래서 너무 기특해서 그 교회로 책을 스물몇권 보냈다나? 그사람은 불과 만원짜리 밖에 안되지만은 그것이 마음에 늘 걸려서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우리 신학교 은사였던 존 스테츠 목사님이 그런 간증을 합디다. 성령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를 하는데 다른 사람은 다 성령을 받는데 자기는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성령을 받지를 못해요. 그래서 “하나님 왜 나는 성령을 주시지 않습니까?” 하니까 “임마, 너 언제 자동차를 타고 식당앞에 오다가 남의 차를 받았지 않았느냐? 앞뒤를 살펴보고 아무도 없으니까 네가 도망쳤지? 너 그 차값 갚아라. 너 남의 차를 우그러 뜨리고 난 다음에 안보았다고 도망을 쳤는데 그 우그러진 것 갚아라.” “하나님 그 차 주인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벌써 그 차 사고를 낸 것은 내가 총각때인데 뭐 그것을 가지고 말합니까?” “너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너 그 누더기를 입고 있다. 벗어라.” “어디다 벗을까요?” “줄때가 없으면 그 돈을 하나님 헌금함에 넣어라.” 그래서 회개하고 자동차 수리비를 봉투에 넣어서 헌금함에 넣고 꿇어 앉자마자 성령세례 받았어요. 성령이 불같이 임했습니다. 용서는 값없이 받지만 하나님께 축복은 속건제물을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보상의 법칙이 반드시 따라야 되는 것입니다.
제가 솔로몬 군도에 부흥회를 인도하는데 솔로몬 군도에서는 프롬펜세이션이라는 이 보상의 역사가 일어나 프롬펜세이션은 영어인데 한국말로 번역하면 ‘보상’이라는 말인 것입니다. 부족간에 싸움이 일어나고 또 이웃간에 서로 싸움이 일어나면 보상위원회가 있어서 불러 가지고서 서로 대화를 해서 얼마를 보상하면 되겠느냐 서로 이야기를 하게 되면 그 이야기에 따라서 쉘만 이라든지 돼지라든지 양이라든지 닭을 주어서 보상을 하고 그 다음에는 화해가 되어서 없은 듯이 평안하게 되고 그래서 그 솔로몬군도에서는 좀처럼 재판을 하러 가는 법이 없어요. 재판가기전에 보상위원회에 가서 이에서 서로 주고 받고 보상해서 화해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주 친하고 화평하게 지내요.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하나님과 친하기 위해서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보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기도를 듣고 이스라엘의 3년 동안 기근이 오던 그곳에 비를 내린 것처럼 우리의 생활에 하늘문을 열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축복을 내려주게 되시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속죄제물도 되시고 속건제물도 되셨습니다.
우리 조상이 잘못해서 지은죄를 위해서 하나님을 거스린죄는 속죄제물이 되고
그러 말미암아 가져온 에덴동산과 이 세상에 끼친 모든 손해는 주님이 육체를 찢음으로
속건제물이 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예수를 믿어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고
하나님 앞에 선 것을 기뻐하지만 우리가 우리의 삶속에 기근이 다가오고 영혼이 기근이 다가오고
생활에 기근이 다가오고 삶의 행복에 기근이 다가오는 것은 우리가 보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다시한번 우리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하고 예수 믿고 난 다음에 속건제물을
다 드리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천국만 갈뿐 아니라 이땅에 사는 동안 기도와
응답받고 하늘이 비를 내리고 땅이 열매를 맺는 기적을 가져오며 살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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