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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기도의 사람 야베스

역대상 복음............... 조회 수 3418 추천 수 0 2011.01.08 20:13:08
.........
성경본문 : 대상4:9-10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꿈과 기도의 사람 야베스

본문: 역대상 4장 9 - 10절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 찬송: (490장, 구542장) 주여 지난 밤 내 꿈에

 

오늘은 꿈과 기도의 사람 야베스에 대하여 함께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야베스라는 이름의 뜻은 '수고롭게 낳음'이라는 의미입니다. '야베스'라는 이름이 '고통'을 뜻하는 '아차브'에서 유래되었다고 할 때 그의 존귀는 '고통의 대가'임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야베스는 모세 이전의 사람으로 어느 가문에 속했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유다의 후손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즉 지금부터 약 4천년전의 사람으로 유대인입니다. 그리고 야베스는 유대인 중의 존귀한 자로서 하나님께 기도하여 부유와 평안함을 누렸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야베스는 훌륭한 신앙인이었습니다. 10절의 기도가 이를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는 언약의 하나님을 복의 근원으로 고백하고 있으며 참된 성공의 길은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다고 믿고 도움의 손길을 간구하였습니다.(시29:11, 잠16:1) 서기관 족속이 야베스 지역에 살았던 것으로 미루어 그는 학식에도 뛰어났으리라 짐작됩니다. 유대의 전승에 의하면, 야베스는 유명한 율법 학자였다고 합니다. 그러면 야베스가 어떻게 그런 복을 받는 사람이 되었을까를 생각해보면서 우리도 다 환난과 근심을 벗어나 복에 복을 더하여 받는 성도가 됩시다.

 

1. 존귀한 자 야베스

 

이 “존귀한 자”는 영어로 존경받는(honorable)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람들에게 훌륭한 인격자가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임금님 수라상에 오르는 금그릇과 같이 고귀한 인품을 가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그릇은 그릇인데 강아지 밥그릇밖에 못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딤후2:20, 21)

 

 성도여러분, 환난과 근심을 벗고 복에 복을 더하여 받는 사람이 되려면 먼저 야베스처럼 존귀한 사람이 됩시다. 죄악된 생활을 버리지 못하고 죄를 물 마시듯 하고 못된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더러운 생활을 하면서 그 그릇에다 복을 달라고 하면 큰 모순입니다. 먼저 깨끗한 그릇, 존귀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 찾아왔던 한 부자 청년에게 주님은 “네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라고 말씀하시면서 지적해 주셨지만 그는 그것을 고치지 못하고 물러갔습니다. 결단을 못 내려서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는 기회, 영생을 얻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리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중에 한 가지 결함 때문에 존귀한 사람이 못 되고 임금님 진지그릇이 아니라 마당에 뒹구는 강아지 밥그릇밖에 못 되는 사람은 없습니까? 십자가의 구속의 은총으로 구원은 받았는지 모르지만 축복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없습니까? 어떤 분은 의리도 있고 다 좋은데 다혈질이라 시도 때도 없이 혈기를 부리고 교회에서도 팔 걷어붙이고 난동을 부리고, 어떤 분은 다 좋은데 말버릇이 나빠서 받은 은혜와 복을 입으로 쏟아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거짓말을 잘해서 여기서 이 말하고 저기서 저 말하며 이간질을 잘 시키는 못된 버릇이 있어서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남의 돈을 잘 떼어먹는 버릇이 있고, 어떤 분은 점잖은 것 같은데 훔치는 버릇이 있고, 어떤 분은 5년, 10년 다니면서도 술 담배를 못 끊는 사람이 있고, 어떤 분은 다 좋은데 돈에 관해서는 인색해서 평생 믿어도 십일조도 못하고 감사헌금 한 번도 제대로 못해서 통 믿음이 안 자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가는 데마다 남녀관계가 좋지 못해서 이 남자 저 남자, 이 여자 저 여자 건드리고 다니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치명적인 단점이 무엇입니까? 존귀한 사람이 되어 복 받는 그릇이 되려면 묵은해와 더불어 철저히 회개하고 끊을 것을 끊고 환난과 근심을 벗고 복에 복을 더해 받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가 존귀한 사람이 되기 원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신28장 1-6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1)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3)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4)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5)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6)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그러므로 크리스천은 복 받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 속에서 존귀한 사람이 되는 길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언약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사는 삶입니다. 그 언약의 체결은 십자가의 피가 나를 위해 뿌려졌음을 믿는 믿음으로 체결되는 것입니다.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9:22)

이 믿음을 가지면 존귀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께서 손을 대지 않으시고, 하나님을 뵙고, 하나님 앞에서 먹고 마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성만찬이며 크리스천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게 되는 축복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약 백성을 사랑하십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습3:17)

언약 백성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하면 놀라운 복을 받게 됩니다.

 

 2. 기도의 사람 야베스

 

(1) 기도의 사람 히스기야

산헤립은 히스기야에게 비굴한 항복을 요구하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히스기야는 그 편지를 가지고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 여호와 앞에서 그것을 펼쳤습니다.(왕하19:14, 대하32:17-19)

구약 시대의 많은 선지자들, 히스기야와 엘리야 같은 신실한 일꾼들은 모두 다 기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도 역시 기도를 중요하게 생각하셨습니다. 세례를 받으실 때, 열두 제자를 선택하실 때, 새벽 미명에 광야에서, 유혹과 맞서 싸우실 때, 겟세마네 동산에서, 심지어 십자가에 달리셔서도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 베드로와 바울과 야고보와 같은 주님의 제자들도 나중에 모두 기도의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기도 외에는 이 땅의 어두운 권세를 몰아낼 수 있는 능력이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믿음 없는 오늘날의 세대를 바라보시며 탄식하고 계십니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무능한 것은, 다른 그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늘 능력’의 결정적인 근원은 오직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우리의 숫자 적음, 우리의 가난함, 우리의 능력의 부족함을 바라보고 원망하듯 함부로 말하지 말고, 또한 이런 것들만 채워 주시기를 기도하지 말고 “주님, 우리가 믿음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를 도우시면, 우리 안에 주님을 향한 굳은 믿음이 생길 줄을 믿습니다. 우리의 믿음 없음을 도와주십시오.”라고 우리의 믿음 없음을 솔직히 고백하는 기도를 먼저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주님의 긍휼을 힘입어 새로운 역사를 경험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2) 기도의 사람 처칠

2002년 영국 BBC 방송이 영국인 100만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설문 내용은 ‘영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는 누구인가?’ 이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사람은 윈스턴 처칠이었습니다. 그의 학창시절 생활기록부는 엉망이었습니다. “품행이 나쁘고 믿을 수 없는 아이. 희망이 전혀 없으며 다른 아이들과 싸움질만 일삼는 문제아….” 성적도 초라했습니다. 지리 점수는 겨우 낙제를 면할 정도. 그는 3수 끝에 샌드허스트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지금 셰익스피어를 제치고 영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입니다. 그의 힘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요? 그는 철저한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처칠은 전쟁터에서나 국회에서 늘 머리를 숙이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지도자였습니다. 이런 용기 있는 믿음이 그를 가장 존경 받는 인물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무한대의 능력을 주십니다. 기도는 ‘희망이 없던 소년’을 ‘희망을 주는 지도자’로 변화시켰습니다.

기도의 필요성을 알고 하나님께 바르게 기도할 줄 안다는 것은 보통 신령한 사람이 아닙니다. 야베스는 기도를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본문 10절에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라고 한 것을 보면 막연하게 범신론적인 신관을 가지고 기도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께”라고 했습니다. 곧 나의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나의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또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라고 한 것을 보면 성공도 축복도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된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깊은 단계에 들어간 것입니다. 기도를 하고 싶은데 잘 못하고 힘이 드는 것은 자기의 부족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물 떠난 고기는 살지 몰라도 주님 떠난 내 심령은 살 수가 없습니다. 절실한 마음을 늘 갖고 있어야 됩니다. 이 갈급한 마음이 기도가 되고, 이 기도를 많이 하게 될 때 능력이 오고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간절한 기도가 있을 때 근심이 물러가고 평안이 오며, 이런 간절한 기도가 있을 때 안전함을 보장받고 진정한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칼빈은 “하나님께 무엇을 구해서 얻으려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진정한 축복과 능력은 다 기도를 통해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간구하여 무엇을 얻어야 할 필요가 없는 교인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이런 절실함을 못 느끼고 간절히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불신앙의 사람이거나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무릎학(무릎 꿇고 기도)을 배우지 못한 사람, 하나님을 바로 아는 신학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복을 빌고 복을 구하는 것은 기복신앙이며 샤머니즘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복음도 모르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야고보서 4장 2~3절에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고 했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교회, 기도하지 않는 목사는 능력도 없고 생명력도 없고 부흥도 안 됩니다. 목회자는 기도를 최우선 순위에 놓고 말씀 훈련보다 기도 훈련을 우선순위에 놓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고 했습니다. “찾는 자들”이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도하는 믿음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합니다.

 

 3. 축복을 구한 야베스

 

복을 빌어주거나 하나님의 축복을 구하는 것은 무조건 기복신앙(祈福信仰)이고 샤머니즘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고상한 불신앙입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임마누엘 칸트의 합리주의(合理主義) 철학의 영향에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사장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복을 빌어 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민수기 6장 22~27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찌니라 하라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찌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고 했습니다. 복을 빌어주는 것과 야베스처럼 복을 구하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단, 점쟁이, 무당들처럼 윤리나 도덕과 상관없이 복채를 받고 점치고 복을 비는 것 같은 것은 물론 잘못입니다. 또 헌금을 귀신 앞에 복채 내듯이 하나님께 뇌물 쓰는 것과 같은 마음으로 하는 것은 잘못이지만 야베스와 같이 하나님이 붙잡아 주시지 않으면 성공도 축복도 있을 수 없다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복을 구하는 것은 절대로 잘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어떤 명령을 하실 때에는 반드시 보상을 약속하셨습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면…하늘문을 열고 복을 주겠다”, “죽도록 충성하라…생명의 면류관을 주겠다”, “부모를 공경하라…장수의 복을 주겠다”, “주일을 거룩히 지키라…안식과 복을 주겠다”, “네 아들 네 독자라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큰 복을 주고 하늘의 별같이 해 주고 네 씨가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천국의 영원한 보상을 믿기 때문에 세상 것을 포기하고 순교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나가 사무엘을 받고 난 후의 감사의 시를 보십시오. 사무엘상 2장 6~8절에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드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위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이런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이런 하나님께 복을 구하지 않고, 무슨 신앙생활을 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이 축복하시면 5병2어를 가지고도 5천 명을 먹이고 12바구니가 남은 것처럼 축복의 주님이 역사하시면 몇 퍼센트가 아니라 몇 배, 백 배, 천 배도 될 수 있습니다. 축복의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자원에 비례하지 않고 축복에 비례합니다. 원인자가 주님이기 때문에 환경만 바라보지 마십시오. 무서운 하나님, 심판하시는 하나님만 생각하지 말고 축복의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야베스처럼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고 했습니다. 또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혀 달라”고 할 때 그 기도도 응답 받았다고 했습니다.

 

4. 꿈의 사람 야베스

 

(1) 갈매기의 꿈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인 ‘갈매기의 꿈’은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안겨줍니다. 작품 속의 주인공 갈매기 조나단은 동료 갈매기들과 함께 바닷가의 쓰레기더미와 선창가의 고깃배 주위를 맴돌면서 먹다버린 빵조각을 먹으려고 서로 다투는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마침내 조나단은 먹기 위해 사는데 싫증이 났습니다. 그는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싶었습니다. 그는 부모와 형제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혼자 하늘을 나는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이윽고 갈매기 조나단은 피나는 노력과 눈물겨운 인내로 하늘 높이 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작가 리처드 버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일상적인 삶에서 탈출하여 좀더 멀리 바라볼 수 있다면, 그리고 인생의 분명한 꿈과 목표를 가지고 살아간다면 똑같은 시간이지만 그 시간의 질은 분명히 다를 것입니다.

 

(2) 꿈의 사람 요셉

요셉의 어린 시절을 보면 그렇게 좋은 환경에서 자라지는 못했습니다. 그가 어릴 때 어머니 라헬은 동생 베냐민을 낳다가 죽었기에 때문에 그는 어머니의 사랑을 많이 받지를 못하고 자랐습니다. 또 형들과는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났을 뿐 아니라, 그 집안이 어머니가 넷이고, 그러다 보니 배다른 형제들이 많음으로 좀 복잡하였기에 형제간에는 우애보다는 오히려 서로 견제의 상대였기에 그는 아버지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 야곱 역시 자기가 노년에 얻은 아들이고, 제일로 사랑했던 아내 라헬의 자식이고해서 여러 아들보다 그를 깊이 사랑하여 다른 자녀들은 입지 못하는 좋은 채색 옷을 늘 입혔습니다. 아버지 야곱이 요셉을 사랑함을 보고 더욱 미워하고 그에게 언사가 불평할 정도로 잘해준 것입니다.(창37:3-4)

 

그러니 요셉도 자연히 아버지만을 의지하게 되었고 아버지를 더 많이 따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아버지의 편애를 받으면서 요셉은 자란 것입니다. 아버지 야곱으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는 사이에 요셉은 형제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기 시작했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형제들 사이에서 미움의 대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요셉은 늘 형제들 앞에서도 자신의 꿈을 자랑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꿈꾸는 사람, 혹은 꿈쟁이 요셉이라고 부를 정도로 꿈의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이 말은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비웃으며 한 말이지만(창37:19) 정말 요셉은 평생 하나님이 주신 꿈을 붙잡고 살았으며, 꿈 때문에 어려움도 많이 겪었지만 그 주신 꿈 때문에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먼저 창37장을 보면 요셉이 꾸었던 꿈이 나옵니다. 요셉은 형제들과 함께 밭에서 곡식을 추수하여 단을 묶었는데 그 형제들이 묶은 단이 요셉이 묶은 단을 향하여 엎드려 절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다시 한번 더 꿈을 꾸었는데 그것은 해와 달과 열 한개의 별이 자신을 향하여 절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꿈은 장차 요셉이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는 꿈 아닙니까? 문제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꿈대로 다 척척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꿈이 없이 살고 있으며, 때로는 꿈을 갖기는 갖되 헛된 꿈에 빠져 사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꿈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요셉의 모습입니다. 요셉은 좋은 꿈을 꾸고 난 뒤에 주변의 모든 환경은 꿈과는 거리가 먼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먼저는 형제들에게 미움과 시기를 샀고 아버지에게는 야단을 맞았습니다. 꿈 이야기를 들은 형제들은 분노하여 네가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겠느냐? 하면서 분노를 터뜨리면서 요셉을 더 미워하게 되었던 것입니다.(창37:4-8,11) 그가 이 꿈의 이야기를 이번에는 아버지와 그 형제들 있는 그 자리에서 이야기를 합니다. 꿈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 야곱이 요셉을 향하여 아버지인 나와 네 어머니와 형제들이 참으로 너에게 가서 엎드려 절하겠느냐? 하면서 야단을 침니다.(창37:10) 형들에게는 계속 미움과 시기가 더해 가고 아버지에게는 꾸지람을 듣는 요셉의 꿈이었습니다. 다음으로는 노예로 애굽에 팔려감으로 꿈과 전혀 다른 현실을 보여 줍니다.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요셉에게 절하는 꿈이라든가, 부모 형제가 자기에게 절하는 이 꿈이 실현되려면 부모 형제 가까운 곳에 살아야 하는데 도리어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먼 외국 애굽에 종으로 팔려가고, 노예에서 다시 죄수로 감옥에 갇힘니다. 진짜 요셉은 자신이 어려서부터 꾼 꿈과 비젼, 계획과 정반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방향이나 역사를 뒤집으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아무리 꿈과는 정반대의 길로 가고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뒤로 돌아” 하시면 역사는 바뀌고 마는 것입니다. 그 역사의 희비가 바뀌는 과정을 보면 먼저 요셉은 꿈을 꾸며, 꿈을 가지더라도 그 꿈이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꿈임을 확신하며,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결국 그 꿈의 성취를 맛본 사람입니다. 그가 꿈의 성취를 맛보게 된 것은 바로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시는 은총이었습니다. 창 6장에 나오는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나 요셉은 반대로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창세기 37장에서 끝인 50장까지의 성경을 보면 요셉이 이처럼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요셉이 하나님과 함께 했다고 표현하기보다는 항상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고, 요셉을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셨다고 말씀합니다.(창39:2-5) 사실 요셉이 꾼 꿈은 자신이 원해서 꾼 꿈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의도나 계획을 따라 그런 꿈을 꾸려고 노력을 해서 꾼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 그에게 꿈을 주셨기에 꿈을 꾸었고, 하나님께서 그런 Vision을 주셨기에 그런 Vision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꿈 때문에 요셉은 지금 형들에게 미움을 받고, 그 하나님의 꿈 때문에 죽을 뻔도 하였고, 그 하나님의 꿈 때문에 그는 지금 애굽에 노예로 팔려 가는 것입니다. 아마도 요셉이 미디안 사람들에게 팔려가면서 그는 많이 울었을 것입니다. 형들에게 살려 달라고 애걸 복걸 하였을 것이고, 다시는 꿈 자랑을 하지 않겠다고 하였을 것이고, 다시는 아버지를 든든한 후원자로 삼아 가지고 형들을 놀리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였을 것입니다. 아무튼 그는 울면서 울면서 미디안 상인들에게 노예로 팔려갔을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얼마나 억울한 장면입니까? 내가 그런 꿈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 한 적도 없고 그런 꿈을 가지길 원했던 것도 아니었고, 내가 그런 꿈을 꿔 보려고 사모한 적도 없는데 어느 날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그런 꿈을 꾸게 되었고 그 꿈을 이야기 한 적밖에 없는데 도대체 왜 내가 은 20에 팔려가야 했고, 다시 돌아올 기약이 없는 이 길을 가야 한다는 것입니까? 그러나 이것은 요셉을 통하여 이루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섭리이며 이끄심이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이 이제 큰 민족을 이루어 제물을 이끌고 나와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여 인류를 구원코자 하시는 그 섭리 가운데 이루어진 이끄심이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십니까? 하나님의 이끄심을 믿으십니까? 이것은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에 대하여 불신하고 그것은 우연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매우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146:5)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121:2)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합니다. 살아있는 한 누구에게나 희망과 가능성은 있습니다. 희망을 잃지 마십시오. 꿈이 길을 만듭니다. 꿈을 꾸는 자가 꿈을 이룹니다. 꿈이 있기에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의 꿈을 실현시킵니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시37:5-6)

야베스는 그 옛날 사람인데도 인품이 고상하고 꿈이 있는 사람이며 큰 비젼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본문 4장 10절에서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 하사 나의 지경을 넓혀주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사람이 마음을 넓히면 바다같이 넓어질 수도 있고 좁아지기 시작하면 바늘구멍처럼 좁아질 수도 있습니다. 잘못된 정욕에서 나온 야망은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지만 거룩한 계시에 의한 꿈은 크게 가져야 합니다.

 

시편 81편 10절에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하셨습니다. 새들이 새끼를 키우는 것을 보면 입을 제일 넓게 벌리고 짹짹거리며 보채는 새끼에게 먹이를 넣어줍니다. 입을 제대로 벌리지도 않고 조는지 마는지 하는 새끼에게는 먹이를 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사모하면서 입을 넓게 열면 그만큼 채워주십니다. 이사야 54장 2절에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찌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더 많은 영혼 구원을 위해서, 선교를 위해서, 큰 꿈을 가지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며 하나님도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가령 13억 인구를 가진 중국을 품에 안고 선교의 비전을 갖는다든지, 십일조를 제일 많이 하는 교인이 된다든지, 사업을 크게 확장하여 하나님의 큰 일을 할 결심을 갖는다든지, 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William Carey 선교사가 “하나님을 위해 큰일을 도모하라. 하나님으로부터 큰일을 기대하라” 고 한 말은 유명한 말입니다. 이런 큰 꿈을 가졌기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선교사가 된 것입니다.

야베스가 이런 꿈을 가진 것은 당시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이나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이 넓은 땅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인 자기가 어서 지경을 넓혀서 넓은 땅을 차지해야 되겠다는 마음으로 이런 꿈을 가지고 기도한 줄 압니다.

 

어떤 분이 “위대한 사람이란 비상한 결정을 내릴 줄 아는 보통 사람이다”라고 했습니다. 긍정적인 영상, 구체적인 영상을 그리면서 야베스처럼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경제가 불황이라고 “아이쿠, 나는 망했다”, “나와 내 가족이 어떻게 살까” 등 절망적인 생각을 하지 말고 밝게 생각하고 근심거리가 있으면 기도로 해결하십시오. 하나님께 불황도 없고 능치 못한 일도 없습니다. 따라서 기도에도 불가능이 없고 해결 못할 문제가 없습니다.

 

우리가 야베스를 통해 얻는 교훈을 정리하면

1. 야베스는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천상의 은혜를 달라고 구했습니다. 이것이 꿈이자 비전이었습니다. 그는 위대한 삶을 살게 해달라고 구했습니다. 존귀한 자가 되기 위해서는 '탁월한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한 번뿐인 인생인데, 마치 터진 수도관처럼 여기저기가 뻥뻥 뚫려서 누수 되는 인생이 있습니다. 누수 되는 인생으로는 큰일을 못합니다. 아무 힘도 없습니다. 누수 되지 않는 인생, 뜻을 정한 인생, 푯대를 향한 인생, 그래서 열매를 거두는 그런 거룩한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야베스의 기도이자 비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평범한 삶이 아니라 특별한 삶을 원하십니다. 인생이 길지 않습니다. 그 짧은 기간에 실제로 남을 돕고 남들에게 기여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는 너무 어리기 때문에 도움을 받고 살았고, 나이가 들면 너무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이제는 도움을 주고 살아야 합니다. 실제로 이 땅에서 하나님나라의 확장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시간을 보면 그렇게 긴 시간이 아닙니다. 그런데 어리석게도 예수님을 믿고 난 다음에도 허송세월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소망이 없는 사람처럼 목적도 없이 살아갑니다. 설계도 없이 소시민적으로 삽니다. 지극히 작은 것 하나 붙들고 만족해하며 살아갑니다. 이것은 옳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주신 그 꿈, 하나님나라에 대한 꿈으로 가슴 설레게 만들고 울부짖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전체를 드리고자 하는 열망 가운데 살아가는 인생이 복됩니다. 세상은 비전을 가진 사람에 의해서 변화됩니다. 그래서 비전과 꿈은 재산입니다. 꿈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2. 야베스가 존귀한 자가 된 두 번째 이유는 '한계를 뛰어넘는 믿음' 때문입니다. 야베스는 그렇게 부유했던 것 같지 않습니다. 배경이 그렇게 좋았던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는 유다 족속이었는데, 이 유다 족속들 중에는 왕족이 나옵니다. 왕족의 목록은 역대상 3장 후반부에 나옵니다. 4장은 알아듣기 쉽게 말해서 육두품 이하의 사람들을 거명한 목록입니다. 육두품 이하의 명부에 야베스가 끼어 있습니다. 그는 보잘 것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가진 게 없다.' '돈도 없고 배경도 없다.' 이렇게 좌절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결코 없는 것을 바라보면 안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만유의 주 되신 하나님, 만유보다 크신 하나님이십니다. 오직 하나님만 나의 하나님이시면 세상 그 어떤 사람보다도 큰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모시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모신 사람이 어떻게 가진 게 없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진 자입니다. 우리는 결코 빈민의식을 가지고 살아 갈 수 없습니다. 빌립보서 4장 19절에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하나님께서는 부유하시고 만유의 주로서 모든 것을 주관하십니다. 따라서 빈민의식에 사로잡혀 살 수 없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불신앙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승리를 이루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믿음입니다. 믿음은 재능이나 교육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인데 믿음 때문에 특별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 사람들은 믿음 빼놓고는 정말 하나도 볼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 하나가 특별해서 인생을 특별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이 무기입니다.

반면에 세상적으로 볼 때 너무나 많은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믿음이 없어 정말 적당히 살아가는 인생, 허송세월 하는 인생, 탕진하는 인생으로 전락하는 사람들 역시 부지기수로 보았습니다. 공부도 잘했고 명문대학도 나오고 유수한 기업의 임원으로 재직했다고 하는데, 믿음이 없어 영 헛다리짚고 엉뚱한 일, 엉뚱한 사람에게 충성하고 거기 매달리다가 아무런 신앙의 열매도 없이 폭삭 늙어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세상에 이런 안타까운 일이 어디 있는가! 그 좋은 머리, 그 좋은 배경을 가지고 그런 인생을 살아야 되겠습니까?

 

3. 야베스가 존귀한 자가 된 세 번째 이유는 '간절한 기도'입니다. 야베스의 기도는 이기적이거나 술수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다는 것으로 미루어 그의 정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엉터리를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대로 구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허락해주셨습니다. 우리도 존귀한 자가 되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합니다. 낙심한 친구를 놓고 계속 기도해 보십시오. 용기를 얻고 회복합니다. 성도가 왜 시시하게 살아갑니까? 왜 시시하게 직분을 감당합니까? 엎드려 기도해서 그 권세를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야베스는 구하고 얻는 자였기에 존귀한 자입니다. 야고보서 4장 2절에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하였습니다. 왜 못 얻느냐 하면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구하면 하나님이 주십니다. 우리는 결코 기도하는 수준 이상으로 높아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의 수준을 알려면 그 사람의 기도를 들어보며 됩니다. 기도가 그 사람의 수준입니다. 기도하는 만큼 하나님이 주십니다. 세계를 놓고 기도하는 사람은 세계적인 사람, 한국을 놓고 기도하는 사람은 한국적인 사람입니다. 가정만을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은 졸장부입니다. "나 뭐 좀 주십시오. 주십시오." 이러는 사람은 거지같은 인생입니다. 기도의 수준만큼 자기가 클 수 있습니다. 기도가 업그레이드되면 인생 자체가 업그레이드됩니다. 주님은 기도를 통해서 역사하기를 원하십니다. 기도할 때 악한 마귀의 견고한 진들이 파해질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뱀과 전갈을 밟으며 모든 원수의 능력을 제어할 권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권세의 소유자'가 아니라 '권세의 실행자'가 되어야 합니다. 권세를 가지고 있어도 안 쓰면 그뿐입니다. 물질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질의 소유자'가 되기보다는 '물질의 실행자'가 되어야 합니다. 써야 합니다. 써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생명을 건지고 열매를 거둬야 합니다. 은사에 대해서도 수유자가 아니라 실행자가 되는 게 중요합니다. 소유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쓸 줄 아는, 복된 실행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시29:11)

 

4. 야베스는 이름 그대로 고난과 환난의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해외에서 산 물고기를 수입해 올 때 아무리 온도 조절을 잘하고 산소 공급을 잘해도 물고기들이 잘 죽더랍니다. 그래서 물고기를 잡아먹는 상어나 문어 같은 것을 함께 집어넣어서 오니까 물고기들이 긴장하면서 죽지 않고 잘 살더랍니다. 기후가 좋아서 옷 입을 걱정 않고, 자연 식물이 풍부해서 굶어 죽을 걱정하지 않는 아프리카나 아열대 지방의 나라들은 발전이 없고, 미개한 상태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추워서 얼어죽기 쉽고 자연 식물이 별로 없는 나라 사람들은 고난과 싸우며 열심히 노력하니까 문명한 나라가 되고 수준 높은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안일하고 평안한 것만 추구하지만 그것이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영적으로 타락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정신이 썩고 육신의 정욕으로 흐르게 되고 멸망하게 됩니다.

더욱이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환난과 핍박과 고난은 큰 은혜와 축복을 가져다주며 열심히 기도하게 하고 죄를 끊고 돌아서게 하고 성결한 사람으로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축복을 고난의 보자기에 싸서 준다”는 말이 있습니다. 영적으로 볼 때 환난과 고난과 근심거리는 그 후에 더 큰 축복을 주시겠다는 징조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성도여러분의 가정도, 집도, 사업도 확장되고 우리 교회의 부속 여러 기구도 확장되고 선교사업도 야베스 처럼 확장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만복의 근원이 되신 주님, 우리도 야베스 처럼 꿈과 기도의 사람이 되게 하시고 교회의 직분을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기회로 알고 헌신할 수 있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야베스에게 주신 축복을 우리에게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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