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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느6:1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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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2015.1.31 실시간 온라인 새벽기도(1546 ) |
큰일 성취에 필요한 것 (느헤미야 6장 10-19절)
1. 내부의
대적을 없게 하라
성전 완공을 앞둔 어느 날, 느헤미야는 스마야 선지자가 두문불출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무슨 시험에 들었든지
아니면 느헤미야의 주의를 끌려고 그랬을 것이다. 느헤미야가 그 집에 심방을 가자 스마야가 말했다. “적들이 당신을 죽이려고 하니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으로 도망가서 그 문을 닫읍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당신을 밤에 죽일 것입니다(10절).”
스마야가 그런 말을 한 것은
산발랏 일당에게 매수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스마야의 말대로 느헤미야가 성전에 숨으면 평신도가 성전에 들어오는 율법을 범했다고 공격받고, 죽음이
두려워 성전에 숨은 겁쟁이라고 공격받는다. 그러면 느헤미야의 리더십은 약화되고 자중지란이 생긴다.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힌 셈이다. 능력이
탁월해도 내부에 대적이 있으면 비전을 이룰 수 없다.
당시 유다의 귀족들 중에 여러 명이 도비야와 내통했었다(17절). 그렇게
내통하면서 현재 느헤미야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를 다 파악해 약점을 잡으려고 했다. 특히 도비야는 유력한 유대인 가문과
정략결혼을 통해 유다인 중에서도 상당한 동맹을 형성했고(18절), 동맹자들은 도비야의 선행을 말하며 느헤미야의 경계심을 늦추게 해서 성벽 재건을
방해하려고 했다(19절).
살다 보면 비전을 방해하는 세력이 있다. 그런 세력에게는 비전을 발설하지 말라. 가끔 보면 갈등으로
교회를 떠난 사람이 옛날에 친하던 사람과 교통하면서 떠난 교회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려고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모습은 떠난 교회가 잘못
되었으면 하는 심리가 들어있기에 좋은 모습이 아니다. 나쁜 일과 섭섭한 일은 빨리 잊을수록 좋다. 또한 남은 사람들은 갈등으로 떠난 사람과는
교통을 삼가는 것이 좋다. 떠난 사람이 새로운 처소에서 잘 적응하도록 돕는 의미에서도 그렇게 해야 한다.
비전을 이루려면 파당을
만들지 말라. 왜 파당이 생기는가? 사람을 자기편으로 이끌려는 욕심 때문이다. 사람을 자기편으로 이끌려고 하지 말고 주님 편으로 이끌려는 영적
중매쟁이들이 되라. 중매쟁이가 주님께 중매할 생각은 하지 않고 성도들의 마음을 훔쳐 자기 세력화를 꾀하면 교회는 어려워진다. 만약 누군가 슬쩍
다가와 비방의 말을 하고 마음을 흔들면 지혜롭게 물리치라. 비방과 내부 분란이 왜 생기는가? 대개 ‘남의 쇄신의 요구’는 크게 하면서 ‘자기
쇄신의 실천’은 작게 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자기 쇄신이다.
2. 문제를 피하지 말라
느헤미야는 총독의 신분으로
성소로 도망쳐서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고 스마야의 제의를 거절했다(11절). 그는 죽음이 두려워 제자리를 이탈하지 않았다. 그처럼
제자리를 지키는 성품 때문에 아닥사스다 왕과 사람들의 신임을 받을 수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일은 제자리를 지키는 일이다. 마귀는
제자리를 이탈해서 마귀가 되었다. 마귀에게 한번 큰 아픔을 당한 하나님은 제자리를 이탈하는 사람을 제일 싫어하고, 제자리를 지키는 사람을 제일
기뻐한다.
제자리를 지키고 비전에 집중하라. 집중하면 힘이 배가된다. 사람은 잠재능력의 5%밖에 발휘하지 못하는데, 그 잠재능력을
더 많이 발휘하게 만드는 것이 믿음과 집중력이다. 믿고 힘을 집중하면 엄청난 능력이 생긴다. 큰일을 스스로 이룬 자수성가형 사람들의 공통점은
‘비전에 집중하는 능력’이다. 힘이 많고 땀을 많이 흘려도 그 힘과 땀을 집중시키지 못하면 작품 인생이 될 수 없다.
마가복음
11장 23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이 구절에서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이란 말은 “믿고 집중하면”이란 말이다. 믿고 비전에
집중하면 신기하게도 그 일이 이뤄지는 방향으로 환경도 변하고, 분위기도 변하고, 자신도 변한다.
물론 비전을 향해 달려갈 때
장벽도 있다. 그때 낙심이 있어도 다시 정신을 차리고 비전을 붙잡고 달려가라. 극복하기 힘든 큰 문제가 있어도 문제보다 하나님이 크다고 생각하고
비전을 꼭 붙들라. 진짜 큰 문제는 힘든 환경이 아니라 “나는 못한다! 나는 끝났다!”라는 생각이다. 왜 못하는가? 할 수 있다. 왜 끝났는가?
다시 일어서면 된다.
어떤 사람은 쥐를 무서워한다. 그러나 월트 디즈니는 쥐를 귀엽게 보고 미키 마우스를 만들었다. 생각과
시각에 따라 그렇게 보는 것이 달라진다. 사람이 쥐를 무서워하는 것보다 쥐가 사람을 100배나 더 무서워한다. 쥐를 무서워할 필요가 없듯이
문제나 사단을 무서워하지 말라. 사단이 가장 무서워하는 사람은 ‘죽어라고 믿는 사람들’이다.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을 보면 사단을 재빨리
도망친다. 중요한 것은 믿음의 눈이다. 문제를 큰일 날 문제로 보면 큰 문제지만 문제를 발전을 위한 조교로 보면 문제는 비전 성취의 디딤돌이
된다.
3. 분별력과
판단력을 갖추라
느헤미야가 성소로 도망치지 않겠다고 한 것은 스마야가 뇌물을 받고 거짓 예언을 한다고 깨달았기 때문이다(12절).
결국 느헤미야는 바른 분별력과 판단력으로 지도력과 명성을 지키고 비전을 이룰 수 있었다. 그처럼 진짜와 거짓을 분별하는 분별력을 키우라. 그것을
위해 말씀과 기도를 가까이 하고, 욕심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라. 왜 유혹에 넘어가는가? 대개 보면 욕심 때문이다.
일전에 한
투자회사는 1000만원을 맡기면 매달 100만원을 이자로 주겠다고 자금을 유치한 후 잠적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당했는데 사실상 피해를
당한 사람도 문제이다. 잘 생각해보면 누가 돈을 거의 공짜로 주겠는가? 그래도 속은 것은 순식간에 일확천금을 얻겠다는 욕심 때문이다. 돈만
잃으면 그나마 낫다. 잘못된 미신에 빠져 영혼을 잃으면 큰 문제이다. 왜 첨단 과학 시대에 미신에 활개 치는가? 쉽게 미래를 보장받으려는 욕심
때문이다.
한때 전도방법의 중심메시지가 ‘기적과 치유’가 된 적이 있다. 물론 그것도 필요하지만 바람직한 전도방법의 중심메시지는
‘예수님의 사랑’이다. 비록 전도 효과가 떨어져도 그것이 기독교의 미신화와 기복주의를 방지한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에게 신령한 것을 알라고
했다(고전 12:1). 고린도교회에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자 악령의 역사도 강했다. 그래서 분별이 중요하다. 흔히 방언을 성령의 역사로만 아는데
그렇지 않다. 스님도 방언을 하고, 무속인은 대부분 방언을 유창하게 한다. 그래서 분별력이 중요하다.
조선시대에 풍수지리를
안다는 지관이 수천 명이었다. 그때 왕의 지관들은 좋은 땅을 다 골라 무덤을 만들었지만 나라는 망했다. 고구려부터 조선시대까지 왕의 평균 수명이
약 40세였다. 특히 조선시대 왕의 평균 수명은 34세였다. 좋은 터에 묻었는데 왜 그렇게 후손들은 단명 하는가? 그것이 풍수지리의 허상을
말해주는데 믿는 사람 중에도 그런 미신에 넘어가는 사람들이 많다.
요새는 꿈 때문에 분별력을 잃는 경우도 많다. 시한부종말론이
난리를 친 발단은 바로 꿈이었다. 그래서 말씀이 필요하다. 말씀이 없으면 몇 십 년 믿어도 그냥 넘어진다. 꿈을 꾸면 어떤 때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어떤 때는 상상을 초월한 화려한 꿈을 꾼다. 그런 변화무쌍한 꿈에 인생을 건다면 얼마나 어리석인 일인가? 꿈은 선한 자극을 하는 역할
정도만 하게 하되 꿈을 맹신하지 말라.
4.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라
느헤미야는 산발랏 일당의 계략을 깨닫고 그
음모에 가담한 사람들을 모두 하나님의 뜻대로 처리해 달라고 기도했다(14절). 총독인 그는 힘이 있었지만 반대파의 처리를 하나님께 맡겼다. 모든
일을 가장 멋지게 처리할 분은 하나님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아무리 치밀하게 준비해도 궁극적으로 일을 이루는 분은 하나님이다. 진인사
대천명이란 말이 있다. 최선을 다해 할 일을 하고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기고 기다리라는 뜻이다.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으면
큰일을 이룰 수 없다.
열심히 일하면서 하나님이 일할 여지를 드리라. 혼자 하려고 하니까 짜증과 혈기가 나는 것이다. 혈기를
내면 자꾸 뇌세포가 죽어서 더 분별력이 없어진다. 때로 어떤 일은 도저히 감당하지 못하는 일이다. 그때는 살기 힘들 것 같지만 사실 그때까지 산
것도 자신의 실력과 능력으로 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산 것이다. 그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겸손하게 나가면 하나님이 반드시 도와준다.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으면 어떤 능력도 소용이 없다. 삼손에게 주의 영이 함께 했을 때는 나귀 턱 뼈 하나로 1천명의 군사를
무찔렀다. 그러나 머리카락이 잘리고 주의 영이 떠나자 두 눈이 뽑혀지고 초라한 종이 되어서 맷돌을 돌렸다. 영력과 영안과 영감을 잃어버리는 것이
얼마나 큰 불행인가?
아무리 좋은 쇠도 자력이 없으면 바늘 하나 못 끌어당기지만 아무리 보잘것없는 쇠도 자력이 있으면 쇠를
끌어당긴다. 그처럼 아무리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진 사람도 성령이 떠나면 무능해지고 매력도 없어지고 불 꺼진 난로처럼 연기만 피우고 다른 사람의
손가락질만 받지만 아무리 무식하고 부족한 사람도 성령님이 함께 하면 시대를 이끌어 가는 인물이 될 수 있다.
5. 비전을 향해
담대히 나가라
결국 느헤미야의 담대한 믿음으로 마침내 수십 년 동안 방치된 성벽이 52일 만에 재건되었다. 너무 빨리 재건되어
역사가 요세푸스는 그 기간을 840일이라고 주장하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성경대로 52일 만에 성벽재건을 이뤘다고 인정한다. 그처럼 빨리
성벽재건을 이루자 대적들 눈에는 그 일이 기적으로 보였다. 그래서 두려워하고 스스로 낙담하며 하나님이 그 일을 이루셨음을 인정했다(16절).
대적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대적이 두려워한다. 우리의 싸움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영적인 싸움과 마음의 싸움이다. 이제 어떤
대적과 환난이 있어도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나가라. 큰일을 이루는 길은 언제나 쉽지 않지만 담대하게 나가면 반드시 승리한다. 일시적인 전략적
후퇴는 해도 영원히 포기하는 후퇴는 하지 말라. 비전을 향해 나갈 때 언제나 포기를 강요하는 시점이 있다. 그때 포기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그의
믿음을 인정하고 가장 복된 일을 이루게 한다.
나는 오랫동안 선교사 훈련학교에 대한 비전을 품었다. 보이는 열매는 없어도 그
비전은 포기할 수 없었다. 목회 초창기에는 신학교 강의를 많이 나갔는데 학생들로부터 설교보다 강의를 재밌게 잘한다는 소리를 심심찮게 들었다. 그
뒤 목회에 전념하려고 신학교 강의를 그만 두었지만 신학교 강의할 때의 재미와 보람을 잊어버리지 못한다. 언젠가는 반드시 강의실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다.
1883년 기독교 연맹의 창시자인 심슨 목사는 준비되지 않은 선교사가 끼칠 해독을 알고 선교사 훈련학교의 가졌다.
선교사 훈련학교의 비전을 가지자 선교 후원자들이 곳곳에서 후원금을 보내주었다. 그러자 심슨은 1883년 7월에 22개 과목의 교과과정을
완성했고, 학생들의 숙박시설준비까지 끝냈다. 그리고 1883년 10월 1일 월요일 뉴욕 8가에서 정식으로 선교사 훈련학교를 시작했다.
그때 교수진은 심슨과 조지 미드 목사가 교수로 봉사했고, 강사진으로는 피어선, 조지 펜타코스트, 아도니람 고든, 제임스 브룩스
등 당시 동부의 유명한 복음주의 강사와 목사들을 망라했다. 학생 수는 40-50명 정도였고 입학요건은 단 한 가지로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사명을 따라 산다는 결단이었다. 그 학교가 오늘날 복음주의 계통의 명문대학인 뉴욕의 나약대학(Nyack University)이다.
나도 심슨처럼 좋은 선교사 훈련학교를 세우고 싶다는 비전을 가졌다. 그러나 비전의 성취는 지체되고 시간이 흐르면서 그 비전의
포기를 강요하는 수많은 시련들이 있었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뭘 믿고 그런 꿈을 꾸느냐?”고 핀잔을 주었다. 그러나 언젠가 부요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이 반드시 있을 줄 믿고 포기하지 않고 나가고 있다.
수십 년 동안 방치된 성벽 재건 사업도 52일 만에 이뤄진 것처럼
거룩한 비전도 어느 순간에 기적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물론 어떤 일을 이루는데 숙성 기간도 필요하다. 그러나 때로는 하나님이 한번만 고개를
끄덕하고 한번만 새끼손가락을 슬쩍 움직여주면 사람이 수십 년 달라붙어도 해결하지 못한 현안을 순식간에 해결할 수도 있다. 하나님의 역사에 반드시
긴 시간이 필요한 것만은 아니다.
벤처 사업으로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단기간에 성공한 사람들도 많다. 열심히 준비하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힘 있는 동역자도 붙여준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존재가 되느냐 하는 것이다. 환경을 바라보고 낙심하지 말라.
문제가 있으면 오히려 투지를 가지라. “옳다! 기회가 왔구나! 이번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낼 절호의 기회다! 하나님이 함께 함을 이 기회에
보여주자!” 하나님이 도와주면 어떤 역경도 극복하고 비전을 이룰 수 있다. 그러므로 지금은 보잘것없어도 내일의 찬란한 비전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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