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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에1: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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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김경형 목사 |
| 참고 : | 2000년대 설교 |
一. 아하수에로 왕의 잔치.
(一) 아하수에로 왕의 소유.
1장 1절-3절: 이 일은 아하수에로 왕 때에 된 것이니 아하수에로는 인도로 구스까지 일백 이십 칠도를 치리하는 왕이라 당시에 아하수에로 왕이 수산 궁에서 즉위하고 위에 있은지 삼년에 그 모든 방백과 신복을 위하여 잔치를 베푸니 바사와 메대의 장수와 각 도의 귀족과 방백들이 다 왕 앞에 있는지라.
아하수에로는 인도와 구스까지 127도를 다스리는 왕이다. 이 땅을 부왕으로부터 받았는지, 아니면 왕 자기가 침략 정복을 하여 자기의 소유로 삼았는지 모르지만(역사가들은 부왕 다리오 1세로부터 받았다고 함) 아무튼 세상 제 1의 권세자요 영광자요 소유자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출생하면서 자기가 가지고 나온 땅이 아니니 만큼 세상사람들은 왕이 가지고 있는 명예와 영광과 소유와 권세를 부러워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얻기 위해 잠도 안 자며 동서남복으로 뛰고 있다.
이방 불신자들은 자기 힘으로 세상을 갖고자 하고, 이방우상 신을 믿는 자는 자기가 믿는 신의 조력을 얻어 세상을 갖고자 하고, 기독교 기복주의자들은 예수님의 힘을 빌려 세상을 갖고자 한다. 모두가 아하수에로 왕이 되고자 한다.
(二) 왕이 잔치를 베풀다.
① 잔치 참여 대상자들: 127도의 모든 방백 신복 장수 귀족 대소인민 전 백성들.
② 잔치기간: 180일간.(6개월간)
③ 잔치장소: 수산궁.
④ 잔치의 대 주최자: 아하수에로 왕.(바사국)
127도의 방방곡곡에 광고를 써서 붙이고 초대장을 띄웠다.
초대장을 받은 자들 중에는 기쁘고 즐거워서 가는 자도 있지만 개중엔 가기 싫어도 왕에게 밉게 보일까봐 어쩔 수 없이 가는 자도 있을 것이고, 광고를 본 자들은 호기심이 가득하여 마음이 부풀었다.
누가 제일 가고 싶은 마음이 들까?
① 왕의 진수성찬의 진미에 배가 고픈 자.
② 왕궁이 얼마나 화려한지 보고 싶은 자.
③ 왕궁사람들이 얼마나 화려한 옷을 입었는지 그것을 구경하고 싶은 자.
④ 자기를 자랑하고 싶은 자.
모두들 가고 싶어 할 것이다.
그리고 왕을 만나러 갈 때는 왕과 절친한 자는 왕에게 잘 보여 앞으로 성공 출세를 하기 위해 빈손을 들고 가겠느냐? 바람기가 있는 여자들은 왕의 눈에 들기 위해서 그려 붙이고 찍어 붙이고 옷 입은 것에 신경을 쓸 것이다. 그러나 신앙 좋은 하나님이 백성인 이스라엘 여자가 그런 식으로 왔을까?
(三) 잔치에 동원되는 물질.
잔치라고 하면 잔치의 종류도 많다. 생일잔치 돌잔치 환갑잔치 경로잔치, 또 명칭은 다소 다르지만 환영회 송별회 개업식 무슨 기념잔치 무슨 축하잔치 등 개인은 개인대로 단체는 단체대로 잔치의 종류가 많다. 어쨌든 잔치라고 하면 사람동원 물질동원 시간동원이 된다.
잔치가 크면 클수록 그만큼 소비성이 많다. 하지만 잔치라고 하면 인간이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것을 연상케 한다.
잔치의 장단점이 있는데 단점은 모든 물질이 소비가 된다는 점이다. 또한 적에게 공격의 기회를 주어 나라가 망하기도 한다.(벨사살 왕) 반면에 장점은 잔치로 통해서 인간끼리의 유대강화나 단결심이 강화되기도 한다.
4절: 왕이 여러 날 곧 일백 팔십 일 동안에 그 영화로운 나라의 부함과 위엄의 혁혁함을 나타내니라.
본문의 왕의 잔치는 왕의 영화로움과 나라의 부함과 위엄의 혁혁함을 나타내기 위해서였다. 혹자들은 이 잔치를 그리스를 정복하기 위한 잔치라고도 한다.
왕의 잔치이니 왕이 잔치를 시시하게 벌이겠느냐? 하루만 하고 말겠느냐? 무려 6개월간이다.
127도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동원 되었겠으며, 또 얼마나 많은 식물이 동원 되었겠으며, 얼마나 많은 시간이 소비되었겠느냐? 한 사람이 먹고 나오는데 최소한 1시간씩 잡더라도 하루의 잔치시간 10시간에 1270명, 180일×1270명=128.600명.
그런데 127도(인도와 구스까지)의 사람이 10여만 명만 되겠느냐? 몇 천만 명 몇 억만 명이 될 터이니 6개월 안에 이 많은 사람이 다 잔치에 참여하지 못한다. 그러니 하루에 어찌 1270명만 잔치 맛을 보고 가겠느냐? 쌀이 몇 가마니가 나가겠으며 소가 몇 마리나 죽어 나가겠느냐? 이것만 보아도 얼마나 부요국인지?
이런 왕으로 살기 위해 모두 부러워한다.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의 잔치는 천국에서 한다.
(四) 잔치장소의 분위기.
장소는 수산궁.
수산궁의 잔치장소가 얼마나 휘황찬란한지!(6절)
127도의 사람이 모이니 풍습이 다 다르다. 먹고 노는 모습이 다르고, 말(言)이 다르고, 춤도 다르고, 먹는 음식도 다 다르다.
예를 들면 춤도 민속무용 훌라춤 손가락춤 발춤, 흑인이 추는 것이 다르고 백인이 추는 춤이 다르고, 노래도 마찬가지로 가요극팀 째즈팀 타령팀, 음식도 서양음식 인도음식 아프리카음식, 술도 여러 가지니 막주 포도주. 무용수들은 모기장 같은 옷을 입고 풍악에 맞추어 금붕어 꼬리처럼 나비처럼 춤을 추고 돌아가고, 금잔으로 술잔을 기울이니 ‘이것이 천국이 아닌가’ 하고 모두 놀란다.
어디서 온 사람들이 제일 놀랄까? 미개지역에서 온 사람이 제일 많이 놀랄 것이다. 마치 벽촌에서 서울로 구경 온 어린아이들이 빌딩을 보고 놀라듯이!
먹을 것이 걱정이 없고, 잘 곳이 걱정이 없고, 노랫소리 들어가며 춤추는 세월이 날마다 나에게도 있었으면! 이것이 세상사람들의 생각이다.
금과 은으로 만든 저 걸상에 누굴 앉히려고 내어 놓았는지, 그 걸상에 누가 앉을 건지 관심이 없다. 모두 먹고 마시고 그 잔치에 도취되어 아하수에로 왕을 부러워하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택한 거룩한 백성은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비록 조상들의 지은 죄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멀고 먼 이국땅에 포로로 잡혀오긴 했지만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는 신앙의 긍지가 있다.
그런데 음식 만드는 부엌 모퉁이에서 호박빈대떡 하나 얻어먹으려고 서성거리는 저 자가 어느 나라 어느 고을 어느 교회에 다니는 교인인지? 자기 것 주는 것처럼 잔심부름을 하느라고 설치며 돌아다니는 저 교인은 어느 교회 교인일까?
(五) 와스디도 따로 잔치를 함.
9절: 왕후 와스디도 아하수에로 왕궁에서 부녀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푸니라.
왕후도 같은 궁에서 부녀들을 위해서 잔치를 열었다. 왕도 잔치 남편도 잔치, 황후도 잔치 아내도 잔치다.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이렇게 앉으면 의례히 잡담이 심하고, 또 의례히 자기 자랑이다. 모두 잘난 사람들이다.
여자 왈 ‘우리가 그 동안 남자들에게 기죽고 살았다, 기회는 이 때다. 6달 동안 코가 삐뚤어지게 실컷 먹고 마시자’ 북 치고 장구 치고 춤추고, 기분은 최고도로 올라간다. 그 기분이 영원히 올라갔으면 좋았을 터인데!
세상 모든 인간들이 사는 것은 전부는 이 목적으로 살아간다. 그 맛을 보고 죽는 사람, 그 맛도 못 보고 죽는 사람, 그 맛을 보지도 못하고 쳐다만 보다가 죽는 사람.
그 때 수산궁에서 잔치하고 놀던 그 인간들 지금까지 잔치하고 있느냐? 그 때 그 백성도 다 갔고 왕도 가고 없다. 그리고 그 때 그 기쁨들도 다 사라져 갔다.
그 잔치 먹고 오래 오래 살려고 했는데 그 때 그 잔치 먹고 배탈 난 사람은 없을까? 그 때 그 잔치 먹고 병을 얻어 죽은 사람도 있을까? 그리고 그 때 그 잔치 얻어먹으려고 멀리서 육로로 오다가다 교통사고를 만났거나 강도를 만나서 죽은 사람도 있을까? 뱃길로 오다가다 물에 빠져(풍파만나서) 죽은 사람도 있을까? 127도의 사람들이니 얼마든지 사고들이 있을 수 있다.
(六) 왕후 와스디의 폐위.
10절-12절: 제 칠일에 왕이 주흥이 일어나서 어전 내시 므후만과 비스다와 하르보나와 빅다와 아박다와 세달과 가르가스 일곱 사람을 명하여 왕후 와스디를 청하여 왕후의 면류관을 정제하고 왕의 앞으로 나아오게 하여 그 아리따움을 뭇 백성과 방백들에게 보이게 하라 하니 이는 왕후의 용모가 보기에 좋음이라 그러나 왕후 와스디가 내시의 전하는 왕명을 좇아 오기를 싫어하니 왕이 진노하여 중심이 불 붙는듯 하더라.
부녀들과 왕후도 즐거움이 최고도로 올라갔다. 왕도 신하들이 주는 술에 거나하게 취하여 기분이 최고도로 올라간다.
이럴 때 왕이 어전 내시 일곱 사람을 불러 시키기를 왕후 와스디에게 가서 면류관을 정제하고 그 아름다운 미모를 온 방백들과 백성들 앞에 보이라고 했는데 그러나 오지 않았다.
결국 왕의 분노가 일어났다. 그래서 그 잔치의 분위기는 완전히 깨지고 말았다. 6개월간의 즐거움도 왕후의 불응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 잔치를 먹고 즐겁던 자들도 그 기쁨은 다 사라졌다.
왕이 왕후를 오라는 것은.
① 방백들과 백성들을 기쁘게 해 주기 위해서.
② 왕후의 미모를 자랑시키고 왕후를 즐겁게 해 주기 위해서.
③ 그럼으로 왕도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서.
그러나 왕후의 생각은.
① 내가 뭇 백성들의 구경꺼리냐?
② 나의 분위기를 깨지 말라.
③ 나는 나 잘난 멋에 산다. 왕의 명령에 살지 않는다.
이런 생각으로 오지 않았다면 아마 왕후가 술에 취해서였을 것이다. 아니면 술에 골아 떨어져서 못 온 건지? 어쨌든 술에 취하면 자기의 위치와 신분과 도덕성이 무너진다. 결국 왕후의 불응으로 왕의 얼굴은 말이 아니게 되었다.
사회에서 서로 만나 술자리에서 ‘형아, 동생아’ 하다가 싸움판이 벌어지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지상 제 1의 명예 권세 영광자요, 천하를 호령하는 그의 명령에 모두 움직이고 돌아가는데 아무리 왕후지만 일개 여자 앞에서 왕의 권위성은 떨어지고 말았다. 그러니 왕의 분노가 안 날 리가 없다.
아내가 남편을 올려주면 아내도 올라간다. 그런데 아내가 왕을 깎아내린 셈이 되니 왕후 자기도 내려가게 된다.
왕이 왕후를 만든 것이지 왕후가 왕을 만든 것이 아니다. 가령 왕이 폐위가 된다면 왕후도 따라서 폐위가 된다. 부부는 한 몸이기 때문에!
박사들의 생각.
13절: 왕이 사례를 아는 박사들에게 묻되(왕이 규례와 법률을 아는 자에게 묻는 전례가 있는데.
왕이 분노하여 법률을 아는 박사들에게 물었다.
규례와 사례와 법률을 아는 그들의 대답은.
① 왕에게 잘못했다.
② 뭇 백성들에게도 잘못했다.
왕에게 잘못했고 남편에게도 잘못했다. 즉 국가적인 차원과 가정적인 차원의 두 가지 양면성이 있는데 왕후로서 본보기를 보이지 못했다.
‘왕’ 하게 되면 주권과 법이 붙어있는 말이다. 왕으로서 하는 말과 남편으로서 하는 말은 그 무게가 달라진다. 차원이 달라진다. 보좌에 앉은 왕 앞에서는 사무적이요 공적이다. 왕의 식구라도 왕의 명령은 지켜야 한다.
남편과 아내는 사랑으로 결합된 부부일체요 사랑으로 된 도덕성이 있다. 남편의 주권은 하나님께서 정해준 것이다. 남편의 주권이 올바르게 행사가 안 되면 그 가정은 뒤죽박죽이 된다.
우리 인간은 국가의 질서 가정의 질서를 깨어버리면 안 된다. 계시로 준 것이다. 예수를 믿는 기독자가 신앙정신으로 가정의 질서를 지킬 수 있고 국가의 질서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왕후가 추모인데 이 왕후에게 왕관을 쓰고 많은 사람 앞에 나오라고 한다면 왕후도 고통이겠지만 왕은 그보다 더 고통스러운 일이다. 반대로 왕후가 미녀라면 왕관을 쓰고 나올 때 ‘너희들의 왕후다’ 라고 하면 모든 백성들이 환영의 박수를 치지 않겠는가?
왕후가 누구 때문에 왕후가 되었고, 누구의 덕분에 자기가 그 행복을 누리는가? 왕에게 시집을 왔으면 왕후로서, 또는 아내로서 장소와 때에 따라, 분위기에 따라 눈치 빠르게 자기 처신을 했었어야 옳았을 일이다. 그러나 왕후는 자기 주제파악을 못했던 것이다.
인간은 자기 신분의 위치가 올라가면 자기가 알던 모르던 모든 사람 앞에서 다른 사람에게 본보기가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왕후로서 국가의 질서 가정의 질서를 파괴한다는 것은 용납 못할 일이다. 아무리 미모의 여성이라 할지라도!
예를 들면 교회집사가 주일 날 교회는 안 나오고 소풍을 갔다면 교인들이 그 본을 따르기 마련이다. 가정의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주일날 시장보기, 주일날 누구 찾아다니는 것 등.
여자가 시집을 갔다면 처녀 때처럼 돌아다니는 그 버릇을 가질 수 없고, 아무 남자나 만날 수 없고, 아무 집에나 가서 자고 들어올 수 없다. 시집간 여자가 그렇게 한다면 어떻게 그 가정이 서겠느냐? 자녀들이 당장 그 본을 따를 것이다.
박사들의 말인즉.
17절-19절: 아하수에로 왕이 명하여 왕후 와스디를 청하여도 오지 아니하였다 하는 왕후의 행위의 소문이 모든 부녀에게 전파되면 저희도 그 남편을 멸시할 것인즉 오늘이라도 바사와 메대의 귀부인들이 왕후의 행위를 듣고 왕의 모든 방백에게 그렇게 말하리니 멸시와 분노가 많이 일어나리이다 왕이 만일 선히 여기실진대 와스디로 다시는 왕 앞에 오지 못하게 하는 조서를 내리되 바사와 메대의 법률 중에 기록하여 변역함이 없게 하고 그 왕후의 위를 저보다 나은 사람에게 주소서.
왕후의 불응은 왕을 남편을 멸시한 것이요 가정의 파괴로 본 것이다.
가정파괴는 국가의 존립과 연결이 된다. 완전히 나라가 망하는 것이다. 결과가 이렇게 되는 것이라면 엄하게 다스려져야 할 문제이다.
어찌되었던 와스디는 왕후의 자리에서 쫓겨남으로 해서 자기의 명예와 영광, 자기의 권력과 그 잔치의 즐거움과 쾌락 그 행복 그 누림성은 끝나고 만 것이다. 자기의 가정도 자기의 남편도 자기의 친구도 모두 다 끝난 것이다.
궁중 밖으로 쫓겨나갈 때 옛날처럼 어느 누가 ‘왕비마마’ 하며 절을 하겠느냐? 문지기가? 평민이? 이제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안 알아준다고 해서 호령을 할 수도 없다. 자기에게 함부로 대한들 어쩔 도리가 없다. 이제는 놀림감이 된 것이다.
이제는 어디로 가겠느냐? 술집에서 술 팔아달라고 오라고 할 테지! 사람 팔자 시간문제라더니 와스디가 그 짝이 났다.
이런 것을 보면 왕과 왕후, 남편과 아내는 단순히 육모의 미모성만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통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마음과 마음으로 통하는 부부가 얼마나 있을지?
15절: 왕후 와스디가 내시의 전하는 아하수에로 왕명을 좇지 아니하니 규례대로 하면 어떻게 처치할꼬.
‘어떻게 처치할꼬’ 왕의 말이다.
남편을 존경치 않고 왕을 무시하는 왕후를 어떻게 궁중에 둘 수가 있느냐?
저보다 나은 사람에게 주소서.
왕의 눈에 벗어났지만 박사들에게도 잘못 보인 것이다.
나라의 첫 자리에 앉은 일곱 방백들은 늘 왕의 얼굴기색을 살피며 신경을 쓰면서 국가의 질서를 잡는다. 하물며 왕후라는 사람이 한 남편의 아내로서 왕의 마음을 모른 데서야 말이 안 된다. 최고의 일곱 방백들이 왕의 어명을 받고 갔는데도 왕후는 왕에게 나오지 않았다.
박사들이 ‘저보다 나은 사람에게 주소서’ 라고 말한 것을 보면 왕후가 일곱 방백들의 눈앞에서 추태를 보였기 때문이 아닌가 보여진다.
남편으로 그 집을 주관하게 하라.
물론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모른다. 하지만 왕이 명한 그 조서는 여호와께서 인간을 만드신 후에 남편(남자)에게 주신 말씀이다. 비록 불신자가 말을 했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
가정의 도덕성의 질서는 하나님께서 일반가정의 안녕과 질서가 유지되고 택한 백성의 가정의 성도의 구원도리를 위해 주신 것이다.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요약 정리했습니다)
김경형목사님이 교역자 신학생을 대상으로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영원 전에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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