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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막딱따구리와 우주탐사선 뉴호라이즌 호

시편 허태수 목사............... 조회 수 169 추천 수 0 2021.01.19 22: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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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시139:7-8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2019.5.28 성암감리교회 http://sungamch.net 

까막딱따구리와 우주탐사선 뉴호라이즌 호

시139:7-8

 

지난주에 부귀리로 넘어가는 찻길 옆에서 까막딱따구리 부부가 은사시 나무에 구멍을 뚫고 새끼 두 마리를 부화시켜서 키우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여러분이 보시는 저 사진이 바로 그들입니다. 물론 사진은 전문가가 찍고 저는 그냥 멀찍이서 구경만 했어요. 요즘 숲 해설가이고,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이 큰 신문사 사진부장을 따라 홍천에서 산천어들이 폭포를 뛰어 오르는 것도 보고, 1500년 된 느티나무며 800년 된 음나무를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색다른 감동과 이해가 터졌습니다. 그것은 인간을 비롯한 지구상에 모든 생명들이 ‘하나님의 마당에서 잠시들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디 까막딱따구리의 삶에서만 이런 이해가 돋겠습니까? 서고에서 지나간 목회 노트를 뒤적이다가 2015년 일기장을 펼쳤습니다. 7월14일 기록을 보는데, 2006년 1월 19일 플로리다 주 케네디 우주 센터에서 발사된 우주 탐사선 New Horizons 호가 약 9년 반 동안 30억 마일(4,828,032,000km)이 넘는 여행을 거쳐 목적지인 명왕성 (Pluto)을 통과했다는 기록을 읽었습니다.

 

아시는 대로 명왕성은 우리 태양계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행성입니다. 인간의 과학기술에 대해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기장을 덮고 ‘뉴 호라이즌’호에 대해서 검색을 하자 아주 재미난 기사들이 나왔습니다. 이 우주 탐사선에는 흥미 있는 물체 두 가지가 부착되어 있다고 합니다. 한 가지는 25센트 짜리 쿼터 동전 2개 입니다. 동전 한 개는 탐사선이 발사된 플로리다 주 동전이고, 다른 한 개는 탐사선이 조립된 메릴랜드 주의 동전입니다. 왜 두 개의 동전을 달았을까요? 실용적인 이유로는 그 동전 두개가 균형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실용적인 이유 말고도 상징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작은 명왕성에도 그 둘레를 도는 위성이 있습니다. 그 위성의 이름은 ‘카론’이랍니다. 카론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명계의 강을 건너 주는 뱃사공인데, 그는 뱃삯을 내는 사람만 배에 태워주는 습관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명왕성의 위성 카론에게 줄 뱃삯으로 주기 위해 50센트를 매달았다고 합니다. 기독교인의 입장에서는 쓸데없는 미신처럼 들리지만, 어쨌든 재미있는 이야기거리를 만들어주는 낭만적인 소재입니다. 그리고 이 동전들 말고 다른 한 가지 중요한 물건이 작은 통 안에 부착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1930년 명왕성을 최초로 발견한 미국의 천문학자 클라이드 톰보 (Clyde Tombaugh)의 유해 일부분입니다. 그의 뼛가루가 들어있는 이 작은 통에는 이런 글씨가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이 안에 미국인 클라이드 톰보의 유해가 있습니다. 명왕성과 태양계 제 삼지대의 발견자, 아델과 모론의 아들, 천문학자, 교사, 달변가이자 친구: 클라이드 W. 톰보 (1906년부터 1997년)”

 

New Horizon호와 명왕성이라는 작은 소행성을 발견한 사람의 이야기를 생각해 보면서 저는 가슴이 뭉클함과 측은함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평생을 바쳐서 연구했고 가보고 싶었던 작은 별에 그는 85년이 지난 후에 살아서가 아니라, 죽은 후 유해로서 지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우주 탐사선의 이름 New Horizons이 말해주는 것처럼 우리 인간이 새로운 공간의 지평을 발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현재 명왕성을 지나 태양계 바깥으로 끊임없이 향하고 있는 그 탐사선과 한 번 교신을 하는 데만 약 9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 전파의 속도는 빛의 속도와 같이 일초에 약 삼십만 킬로미터를 움직입니다. 그런데, 그 빠른 속도로도 왕복하는데 9시간이 걸린다는 말은 우리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이 땅이, 이 지구가 얼마나 좁은 곳인가, 그 보다 우리 인간은 얼마나 유한한 존재인가를 잘 보여줍니다. 우리들은 참 가 보고 싶은 곳이 많습니다. 이번에는 꼭 이 곳에 여행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이 가 보아도 평생을 여행하며 살아간다고 해도 우리가 가 본 곳은 너무나 적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어떤 순간에 우리의 몸이 있는 오직 그 곳에만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공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인간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 왔습니까? 자동차를 만들고, 비행기를 만들고, 우주선을 만듭니다. 통신기술을 개발해서 세계 어디에서나 소통이 가능하게 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현재의 기술로 만들어진 우주 탐사선이 태양계에서 가장 가까운 4.2 광년 떨어진 별까지 날아가는 데는 무려 7만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이런 인간의 유한한 공간과 비교해 볼 때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는 편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에서는 많은 곳에서 하나님의 편재성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언 15장 3절에서는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느니라” 말씀합니다. 예레미야 23장 23절과 24절은 말씀합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가까운데 하나님이요 먼데 하나님은 아니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기를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히브리어로 하늘과 땅, 천지라는 말은 온 우주와 우주에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온 우주에 충만하신 분이십니다. 신약 성경에서도 비슷한 표현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1장 23절에서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 합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여기서 바울은 하나님이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 다른 말로 하면 모든 것들을 모든 방법으로 채우시는 분이라고 말씀합니다. 에베소서 4장 6절도 말씀합니다.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바울은 이렇게 하나님이 어디에나 계신 분임을 알았습니다. 더 나아가 바울은 하나님이 우주의 만유에게 생명력을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당시 모든 철학과 사상의 중심지였던 아테네에서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학파의 저명한 철학자들을 대면해서도 결코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이 알고 믿는 우주 어디에나 계시고 우주 전체를 다스리는 하나님에 대해 고백하면서 사도행전 17장 28절에서 말씀합니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살고 움직이며 우리의 존재를 얻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미련한 질문이지만 좀 더 깊이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모두 작은 제한된 공간에서만 살고 있는데, 어떻게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실까요? 이런 물음을 우리만 물었던 것이 아닙니다. 근대 시대 유명한 과학자였고 신앙인이었던 뉴튼은 아무 것도 없는 우주 공간을 통해서 빛이 전달되는 것에 의문을 느꼈고, 빛이 전달되기 위해서는 공간은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에테르’라는 것으로 가득 차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현대에도 많은 천문학자들이 우주 공간은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뭔가 실체는 알 수 없지만 우주 전체는 23%의 암흑물질과 73%의 암흑에너지, 그리고 4%의 별들과 행성, 생명체 같은 일반적인 물질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만약 우주가 실제로 그런 것들로 채워져 있다면, 우리 인간의 노력으로 그것들의 실체를 밝히려고 하는 것은 아주 값어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큰 문제는 많은 무신론적인 과학자들은 우주가 그런 물질로서 채워져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은연중에 우주 전체에 충만하신 하나님의 존재를 거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우주가 채워져 있든 비워져 있든 관계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물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시편 139편 7절은 말씀합니다.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여기서 “주의 신”이라고 말씀한 것처럼, 우리 하나님은 우리와 같은 물질로 존재하시는 것이 아니라 신으로서 즉, 영으로서 존재하십니다. 사실 하나님이 왜 우주 전체에 충만할 수 있는지를 계속 묻는다면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대학자 어거스틴 조차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원에 대해서 물어봤을 때 ‘나는 잘 모르는 것에 대해서 대답할 수 없습니다’라고 겸손하게 말했던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이 우주 전체에 충만한 이유에 대해 우리의 이성으로는 대답할 수 없습니다. 위대하시고, 영원하신 능력의 하나님은 그의 시간과 능력이 무궁하시듯이, 그의 임재에 있어서도 매이지 않으신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인간은 유한하기에 그저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다”라고, 더 나아가 솔로몬이 성전을 짓고 기도한 것처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 (왕상 8:27) 라고 겸손하게 고백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모든 공간에 계신다는 것을 알 때 우리는 하나님께 어떻게 반응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말씀을 거역하고 다시스로 간 요나 선지자의 이야기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계속 하나님을 피하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바다에 던지시고 큰 물고기를 예비해서 그를 삼키게 하셨을 때, 요나는 깊은 심연 속에서 하나님께서 어디에나 편재하시는 하나님임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그리고는 요나 2장 2절에서 이런 기도를 드립니다. “가로되 내가 받는 고난을 인하여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삽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어떤 성경학자들은 요나의 이 기도가 진실하지 않은 기도였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님이 그를 건지신 다음 요나서 3장에서 나오는 그의 행동을 살펴봤을 때 끝까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요나는 이미 죽은 것과 같은 생명의 위기를 통해서 물고기의 뱃속, 더 나아가 스올 즉 죽음의 한 가운데에서도 계시는 하나님을 깊이 알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시편 139편을 쓴 다윗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왜 다윗이 139편 8절처럼 하늘로, 음부로 9절처럼 바다 끝까지 가야 했는지를 자세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장소들은 생명이 위협에 처해 있는 상황, 더 심하게 말하면 하나님이 없는 것과 같은 한계 상황들을 뜻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다윗은 그런 위기를 수도 없이 경험했습니다. 그런 곳에서조차 다윗은 하나님의 편재하심을 깨닫고 10절에서 고백합니다.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마찬가지로 다윗은 시편 23편에서도 4절에서도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사망의 골짜기에는 마치 명왕성의 위성 카론이 명계의 강을 건너주기 위해 기다리는 것처럼 죽음만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죽음의 한계 상황에서도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공간을 점유해야만 하는 각박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내 땅과 영토를 확보해야만 하고, 큰 집과 큰 자동차가 있어야만 합니다. 우리와 이웃과 피조물 전체의 공간이 아니라 오직 나의 공간만이 중요한 시대입니다. 그래서 끝내 세상 속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확보하지 못한 사람은 컴퓨터의 가상공간을 찾고 끝내 자신의 방 안에 갇혀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야만 하는 불행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2011년 통계로 일본에서는 히키코모리라고 불리는 은둔형 외톨이가 70만 명이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도 30만 명의 사람들이 방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고 합니다. 미국에도 약 10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은둔형 외톨이이거나 그렇게 될 소질들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나와 관계없는 사람들이 아니라, 관계의 단절을 경험하고 있는 내 자신이며 각종 미디어와 첨단 기기에 빠져 사는 내 자녀들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이 세상에 살 수 있는 이유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창조를 통해 우리에게 하나님의 창조의 공간을 내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하나님께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시편 139편 23절에서 다윗이 마지막으로 고백했던 겸손한 말입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나를 살피시라고 간곡히 기도한 시인처럼, 내 스스로가 나만의 공간을 만들려고만 하지는 않았는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어디에나 계신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며,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공간을 이웃과 나누면서 살아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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