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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까닭으로 이러십니까?

말라기 이장우 목사............... 조회 수 1726 추천 수 0 2009.06.18 08: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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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말2:10-16 
설교자 : 이장우 목사 
참고 : 늘푸른교회 2007. 11. 21 

10 ○우리는 한 아버지를 가지지 아니하였느냐 한 하나님의 지으신 바가 아니냐 어찌하여 우리 각 사람이 자기 형제에게 궤사를 행하여 우리 열조의 언약을 욕되게 하느냐 11 유다는 궤사를 행하였고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중에서는 가증한 일을 행하였으며 유다는 여호와의 사랑하시는 그 성결을 욕되게 하여 이방 신의 딸과 결혼하였으니 12 이 일을 행하는 사람에게 속한 자는 깨는 자나 응답하는 자는 물론이요 만군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자도 여호와께서 야곱의 장막 가운데서 끊어 버리시리라 13 너희가 이런 일도 행하나니 곧 눈물과 울음과 탄식으로 여호와의 단을 가리우게 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다시는 너희의 헌물을 돌아보지도 아니하시며 그것을 너희 손에서 기꺼이 받지도 아니하시거늘 14 너희는 이르기를 어찜이니까 하는도다 이는 너와 너의 어려서 취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일찍이 증거하셨음을 인함이니라 그는 네 짝이요 너와 맹약한 아내로되 네가 그에게 궤사를 행하도다 15 여호와는 영이 유여하실찌라도 오직 하나를 짓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지으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취한 아내에게 궤사를 행치 말찌니라 16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르노니 나는 이혼하는 것과 학대로 옷을 가리우는 자를 미워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러므로 너희 심령을 삼가 지켜 궤사를 행치 말찌니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나님께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을 것입니다. 특히 억울한 일을 당할 때에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면서 묻고 싶어 합니다. 다른 성경에서도 그런 질문들이 많습니다만 특히 말라기서에서는 이런 질문들이 많습니다. 첫째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나이까? 사랑하신다는 것이 이런 것입니까? 하는 질문입니다.

두 번째는 1:6-2:9절의 말씀에서 너희가 나를 멸시한다고 하시자 언제 우리가 하나님을 멸시하였습니까? 라고 질문한 것입니다. 사실 질문이라기보다는 따지는 것입니다. 자기들은 하나님을 멸시하지 않고 제물도 드리고 절기도 지켰는데 왜 멸시하신다는 말씀입니까? 여기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제물을 드리는 그 내용에 하나님과 맺은 레위 언약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병든 것, 저는 것, 눈먼 것을 드리면서 이 얼마나 귀찮은 일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전의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도 너희의 헌물을 받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그러자 무슨 까닭으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왜 우리의 헌물을 받지 않으신다는 것입니까? 이렇게 따지는 것입니다. 세상의 수많은 종교의 신들과 성경의 하나님과 무엇이 다른 것입니까? 세상의 종교와 신은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소원을 이루기 위하여 정성을 바치면 소원을 들어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하나님은 인간의 정성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언약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에서도 계속하여 언약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10절을 봅니다. 이스라엘은 한 아버지 한 하나님을 가진 것입니다. 신명기 32:6절입니다. “우매무지한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너를 얻으신 너의 아버지가 아니시냐 너를 지으시고 세우셨도다” 고린도전서 8:6절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

이처럼 한 아버지 한 하나님을 모신 자들이 어떻게 형제에게 궤사를 행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궤사를 행한다는 것은 배신하고 반역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언약을 배신하고 반역하는 행위가 궤사입니다. 자기 형제에게 궤사를 행하는 것은 곧 열조의 언약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열조가 받은 언약은 하나님의 선택으로 언약 백성을 삼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에 대한 궤사가 곧 아버지께 대한 궤사가 됩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5장에서 말씀하시기를 마지막 심판 때에 양과 염소를 나누실 때에 그 기준을 무엇으로 말씀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 춥고 굶주리고 병들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아 준 자와 그렇게 하지 아니한 자를 나누어 버리십니다. 예수님이 보이지도 않는데 어떻게 합니까? 지극히 작은 자에게 행한 것이 곧 예수님께 행한 것이고 그렇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예수님께 하지 아니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말인 것입니다.

11절입니다. 유다는 궤사를 행하였고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중에서는 가증한 일을 행하였다고 합니다. 형제들에 대하여 궤사를 행한 것만이 아니라 가증한 일도 행한 것입니다. 구약에서 가증한 일이란 제물을 드릴 때에 더러운 것을 드리면 가증한 것이 됩니다. 우상 섬기는 사람이나 땅이 가증합니다. 남녀 사이의 간음도 가증한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가증한 것이란 우상을 섬기는 자와 결혼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다는 여호와의 사랑하시는 그 성결을 욕되게 하여 이방신의 딸과 결혼하였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입니다. 거룩함이란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방신을 섬기는 자와 결혼하는 것은 언약을 배반하는 행위가 됩니다. 이방인이라고 무조건 결혼하면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방인이라도 이스라엘에 편입이 되면 결혼할 수가 있습니다. 룻과 같은 여인은 이방의 모압 여인이며 과부였지만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고백하며 이스라엘에 들어와서 이스라엘 백성에 편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방신의 딸과 결혼을 금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보면 늘 이 문제가 떠나지 아니합니다. 지난주에도 보았습니다만 출애굽한 후 광야에서 미디안 여인들에게 미혹을 받아서 바알에게 복속이 되었습니다. 이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늘 이방신을 섬기는 자들과의 결혼이 문제였습니다. 이방인과의 결혼은 이방신을 섬기게 됩니다. 그 결과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갑니다만 그곳에서 돌아와서도 여전히 이방인과의 결혼이 계속되었습니다. 에스라, 느헤미야서에 보면 이런 문제에 대한 개혁이 나옵니다. 이런 일들이 언약을 욕되게 하고 성결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12절입니다. 그러므로 이 일을 행하는 사람에게 속한 자는 깨는 자나 응답하는 자나 만군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자도 야곱의 장막 가운데서 끊어버리시겠다고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13절에서는 눈물과 탄식으로 여호와의 단을 가리게 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회개의 눈물이 아니라 이방신을 섬기는 방식으로 여호와의 단을 가린다고 봅니다. 에스겔서에 보면 성전에서 이방의 우상인 담무스를 향하여 애곡하는 여인들이 있습니다(겔8:14). 하나님의 언약을 욕되게 할 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방식으로 눈물과 탄식으로 여호와의 단을 가리기에 하나님께서는 다시는 너희의 헌물을 돌아보지 않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13절 중반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다시는 헌물을 돌아보지도 아니하시며 그것을 너희 손에서 기꺼이 받지도 아니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러자 당장 따집니다. 어찜이니까? 다른 번역으로 보면, 어찌 된 일입니까? 무슨 까닭으로 이러십니까? 왜 이러십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지 않아서 문제이지 헌물을 드리는데 왜 받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이렇게 항의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배가 고파서 제물을 드리라고 하셨습니까? 아니지요! 무엇이 부족해서 입니까? 아닙니다. 천하 만물이 다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면 왜 제물을 드리라고 하셨습니까? 지난주에 본 레위와의 언약 때문입니다. 제사로 언약을 맺었습니다. 언약으로 인하여 그 생명과 그 평강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대신 희생을 통하여 생명과 평강이 주어지는 것을 레위 언약으로 보여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런 제사를 번폐스러운 것으로 여긴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하나인들 받으시겠느냐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받으시지 않으신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을 배반하였기 때문입니다. 지난주에는 제사 언약을 무시한 것입니다. 오늘은 결혼 언약을 무시한 것입니다. 이러한 언약을 무시하고 배신하는 것은 결국 언약의 하나님을 무시하고 배신하는 행위가 되기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헌물을 받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의 제물을 받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어찌하여 그렇게 하셨나이까? 왜 우리의 제물을 받지 않으십니까? 하는 자들에게 답변을 합니다.

14절 중반입니다. 네가 어려서부터 취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일찍이 증거하셨다는 것입니다. 너와 맹약한 아내로되 네가 궤사를 행하였다는 것입니다. 어려서 취한 아내를 보기 싫다고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를 아내로 데리고 온 것입니까? 이방신을 섬기는 딸들을 데리고 온 것입니다. 이방신의 딸들의 관심사는 오직 세상적인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의 겉모습에 미혹을 받아서 하나님의 언약으로 취한 아내를 버리고 이방 여인과 결혼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려서 취한 아내, 조강지처를 버리면서도 율법대로 행하였다고 하는 자들입니다. 모세가 이혼하려면 이혼증서를 써 주라고 하였다는 조문(신24:1)을 가지고 자기 유리한대로 해석, 적용하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인데도 그들은 자기 유리한대로 해석을 한 것입니다. 정말 사람들은 자기들이 듣고 싶은 것만 들리고, 보고 싶은 것만 보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다 가짜이지만 자기들은 그것이 진리임을 굳게 믿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9장에 보시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시험하여 묻습니다. 올무로 잡으려고 율법으로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시험출제자에게 시험 치르는 자가 테스트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아무 연고를 무론하고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좋으냐고 묻습니다. 예수님의 답변은 사람을 지으신 이가 남자와 여자를 지으시고 그 부모를 떠나 둘이 합하여 한 몸이 되라고 하셨다는 말씀을 보지 못하였느냐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 지워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모세는 이혼증서를 주면 이혼하여도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의 답변은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아내 내어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자기 아내보다 다른 여자가 마음에 들면 아내를 계속 구박하고 그냥 ?아내어 버리면 그 여인은 보호를 받을 수가 없기에 이혼증서라도 주어서 재혼이라도 하게 함으로 그 여자를 보호하게 하려는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이 완악한 자들이 이 율법을 가지고 음행의 연고 없이도 마음대로 이혼하여 왔다는 것입니다. 이 대답을 들은 바리새인들이 그러면 장가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합니다. 이정도로 완악한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말라기 선지자가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한 것을 어려서 취한 아내를 버리고 이방신의 딸들과 결혼하는 것을 가지고 책망하는 것입니다.

15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영이 유여하실지라도 오직 하나를 지었다고 하십니다. 아담에게 아내를 여럿 주실 수도 있었지만 왜 하나를 주었겠느냐는 것입니다. 경건한 후손을 얻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내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취한 아내에게 궤사를 행치 말라고 하십니다.

16절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이혼하는 것과 학대로 옷을 가리는 자를 미워하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 심령을 삼가 지켜 궤사를 행치 않도록 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늘 궤사를 행하는 자들입니다. 이혼도 하고 싶을 때가 있고, 약한 자를 괴롭힐 때도 있고, 형제를 무시하고 깔보는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면서도 하나님, 이럴 수가 있습니까? 하면서 따지고 대드는 인간들입니다. 이스라엘에게서 끊어져도 마땅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끊어지지 않는 것입니까?

호세아 2:19-20절입니다. “19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20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이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었습니다. 우리의 영원하신 신랑이 변하지 아니하는 한 우리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이런 반응이 나올 것입니다. 어찌 나 같은 죄인에게 이런 사랑을 베푸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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