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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여호와는 변역지 아니하시나니.

말라기 궁극이............... 조회 수 314 추천 수 0 2015.01.22 16:36:39
.........
성경본문 : 말2:15-3:6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2000년대 설교 

2장 15절-3장 6절.


2장 15, 16절: 여호와는 영이 유여하실지라도 오직 하나를 짓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지으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취한 아내에게 궤사를 행치 말지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르노니 나는 이혼하는 것과 학대로 옷을 가리우는 자를 미워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러므로 너희 심령을 삼가 지켜 궤사를 행치 말지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들어서 여자 하나만 자기 아내로 삼아주신 것은 거룩한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거룩한 사역을, 구원역사를 염두에 두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라’ 그랬지요? 경건한 자손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손입니다. 남자가 눈길을 딴 여자에게 자꾸 돌리면 창부가 되지요? 여자가 눈길을 자꾸 딴 남자에게 돌리면 창녀가 되기 쉽습니다.


불경건한 행위 뒤에는 자기가 뿌리고 심은 대로 거두게 되는 겁니다. 자기가 죄 지은 거 남 안 준다 그 말이요. 그런고로 부부 간에 아이를 갖기 전에 먼저 하나님 앞에 깨끗한 진리신앙 정신을 바로 가져야 할 것입니다.


16절에 보면 ‘이혼하는 것과 학대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싫어한다’고 그랬지요? 말세교회가 세상화 되어버리면 가정도 완전히 세상화로 돌아가기 마련이고, 사회적으로도 정신적인 도덕성에 부패적인 문제가 많아지게 되는 겁니다.


또 ‘너희 심령을 삼가 지켜 궤사를 행치 말라’ 그랬지요? 자기의 마음을 진리의 말씀에 붙들어 매야 합니다. 또 자기 양심이 진리를 따라서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양심이 진리를 떠나면 남자의 경우는 다른 여자를 자꾸 쳐다보게 되지요. 여자의 경우는 다른 남자를 자꾸 쳐다보게 되고.


인류 제 1차적 종말 때에, 노아홍수 때지요.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한 말씀이 있지요? 말라기 때도 보면 자기의 어린 아내를 학대를 하고, 이혼을 한다고 하는 것은 벌써 도덕성이 무너졌구나 하는 것을 우리가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노아 때도 그랬지만 말라기 때도 그랬고, 앞으로도 또 그럴 겁니다. 모든 것을 외모 외형 모양을 보고 따라가게 됩니다. 사람이던 집이던 뭐던 할 것 없이 전부 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 중심을 잡고 신앙생활도 그렇게 하고, 사람도 그렇게 선택을 하고. 세상이 그렇다 그 말이지요. 이렇게 될 때에 성도로서 조심하지 않으면 성령이 떠나버립니다.


기독교 교회 여자들도 진리를 붙잡고 매우 조심할 일입니다. 죄를 지었다고 하면 남자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니고 여자에게도 문제가 있는 것도 필연적인 사실입니다. 사람의 딸들처럼, 노아홍수 때처럼 자기의 몸을 함부로 노출시키다가 남의 남자들을 죄를 짓게 하는 이거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책임이 있다 그 말이요.


‘보암직 먹음직 탐스럽게’. 여자가 먼저 정신적인 선악과를 따먹고, 그 다음에 보암직 먹음직스럽게 탐스럽게 여자 자기가 선악과 모양으로 자기 스스로를 만들어 놓는단 말이요. 이렇게 해서 다른 사람을 또 따먹게 했다면 하나님은 그 죄의 책임을 자기에게 크게 물을 겁니다.


그리고 우리 기독교인들은 어린아이들에게 옷 입히는 것도 신경을 써야 합니다. 은연중에 인형처럼 옷을 입히는 버릇이 생길까 염려가 됩니다. 어른들 가만 보면 어린애들을 인형처럼 만들어 놓지요?


보통 보면 유치원 아이들 옷 입은 거 어른들이 볼 때 깜찍해 보이니까 엄마 자기도 어린애처럼 옷을 그렇게 입으면 깜찍하게 보일 줄 알고 그렇게 입고 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말이요. 이것은 인간 사이에 도덕성을 문란케 하고, 사회와 국가가 어지럽고 망하는 요인이 돼 버립니다.


망하는 것에는 항상 여자가 끼어 있고, 돈이 끼어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어요. 이걸 무시하면 안 됩니다.


취한 아내에게 궤사를 행치 말지니라: 우리 주님께서는 성도들에게 항상 대하심이 진실하시지요. 안팎으로 진실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들도 주님의 진실하심처럼 그래야 된단 말이요. 무엇보다도 내외간에, 부부 간에 궤사가 나오면, 속여먹고 하는 게 나오면 문제의 발단이 생기게 됩니다. 매우 조심해야 될 문제입니다.


심령을 삼가 지켜서 궤사를 행치 말지니라: 진리를 붙들고 있어야 된다 그 말이요. 진리 따라 양심이 가고 그래야 됩니다.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간사스럽고, 얼마나 활동이 빠른지 조심해야 된다 그 말이요.


2장 17절: 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였나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모든 행악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선히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하며 또 말하기를 공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함이니라.


왜 이스라엘이 이런 말을 했을까? 왜 이스라엘이 ‘모든 행악자가 여호와 하나님의 눈에 선하게 보이고 하나님께서 기쁨이 된다’ 그런 말을 하고, ‘공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느냐’ 이런 말을 할까?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런 말을 한 것이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이 왜 이런 말투로 말을 했느냐 그 말이요. 그래서 왜 여호와 하나님을 괴롭게 하는 것이냐?


여호와 하나님이 괴로우실 때에는 첫째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말귀를 못 알아듣고 오해를 할 때에 하나님의 마음이 괴롭고, 또 두 번째는 불신세상을 그림책처럼 보여주고 있는데 이 불신세상을 보고도 깨닫지를 못하고 그 불신세상을 따라갈 때에 하나님이 괴로우시다. 또 세 번째는 이방인들보다도 더 미련할 때요. 네 번째는 남이 잘 되는 것을 보고도 깨닫지를 못할 때. 다섯 번째는 이스라엘 자기들이 얻어맞게 생겼는데 남보고 손가락질할 때에 마음이 아프다 그 말이요.


모든 행악자들이 악을 행하고도 벌도 받지도 않고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잘 살거든요. 그러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서 하나님을 믿어보아야 소용이 없다 그 말입니다. 그러니까 불평불만에서 나온 말이요, 또 이스라엘 자기들도 그들처럼, 불신자들처럼 살겠다는 말입니다.


왜 이런 말을 하게 되는가 하니 첫째로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거나, 또 악인들의 종말과 궁극적인 결과를 모르면 그런 말을 한단 말이요. 지금 마지막 때도 보면 이방 불신세상이 더 잘 살고 있습니다. 또 두 번째는 세상적으로 소원을 갖고 예수 믿는 사람들이 더 잘 되고, 세상 식으로 예수 믿으니까 더 잘 되고, 또 그런 교회가 부흥이 잘 되니까 그만 ‘저게 기독교 믿음인가보다’ 하고 속아 넘어간단 말이요.


이럴 때 하나님이 마음이 아프다 그 말이요.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무엇을 보내시느냐 하면, 3장으로 들어갑니다.


3장 1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


역사적으로 시간적으로 보면 예수님보다 여섯 달 먼저 온 세례요한을 말하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은 부친이 제사장인데도 불구하고 광야로 나가 살면서 요단강가에 가서 백성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주면서 앞으로 6개월 후에 오실 메시아, 초림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했습니다.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사자는 주님의 보내심을 받았다는 뜻이고,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사자는 구약 때 엘리야의 생활과 같은 그런 마음을 품고 간다 그 말이요.


세례요한은 특이한 복장을 했는데 약대털옷을 입었습니다. 이 약대털옷은 광야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안성맞춤의 옷입니다. 또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습니다.


여기서 세례요한의 생활을 우리가 억지해석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첫째로 하나님의 의로 옷을 입고, 두 번째는 꿀 같은 말씀을 진리로 먹고 살고, 셋째는 광야는 세상인데 세상을 의지하지 않고, 네 번째는 회개의 세례를 주는 것과 같이 사람을 천국의 사람으로 바꾸는 운동을 하는 겁니다. 이게 신앙정신 사상적으로 볼 때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자입니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보내신 사자들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자는 하나님 앞에서.(하나님 앞이라는 그 말은 ‘하나님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정신과 마음을 가지고’ 그 말이요)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주님을 대립이 없이 잘 영접을 할 수 있도록, 사람들의 마음이 주님을 맞을 수 있도록 잘 준비를 시킨다는 말입니다. 죄를 회개케 하고,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갖게 인도한다 그 말이요.


그 다음에 사자가 책임을 소홀히 하면, 물론 책임을 소홀히 하는 일이 있어서도 안 되겠지만 만일 그런다면 하나님으로부터 징계가 있게 됩니다.


주님을 잘 영접하는 자와, 잘 영접하지 못하는 자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지요. 또 다 같이 주님을 영접해도 영적 실력 면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이것은 영원한 차이가 됩니다. 말하자면 이렇게 주의 사자의 책임이 크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주의 사자는 언제든지 주의 말씀을 전하고 깨닫도록 해야 하는 거지요.


만약에 사자가 세상과 세상 것을 이루라고 하고, 또 기도를 시키면서 세상 종교적 건설로 열심을 부리게 했다면 이는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아주 큰 겁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이 보내신 종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주님이 보내신 종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 말이요.


죄를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하는 마음으로 사모하고 있으면 본문 말씀에 ‘너희의 구하는 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 했으니 홀연히 임한다는 말씀은 영접할 준비가 된 사람에게 언제 주님이 들어오셨는지 나도 모르게 주님이 나에게로 들어오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준비된 사람은 그만큼 주님이 쉽게 들어온다 그 말이요. 자기는 쉽게 영접이 된다 그 말이요.


또 한 면은 홀연히 임한다는 것은 주님 영접할 준비도 안 하고, 신앙 인격적 신앙 사상적으로도 준비도 하지 않고 종교업적 종교사역 목적으로 외식운동만 하는 자들에게는 자기 자신도 모르게 주님이 심판주로서 갑자기 온다는 그 말입니다.


성육신으로 주님이 오셨을 때에 당시의 종교지도자들과 교인들이 그랬었습니다. 그러니 주님이 오셨을 때 그 주님을 몰랐다 그 말이요. 준비를 할 줄 몰랐으니 성경을 가지고 자기 평생을 주님의 하는 일에 대적을 하고 역사적으로 큰 심판을 받고 살았었습니다.


곧 너희의 사모하는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 세례요한에게 의의 세례를 받고 주님을 소망한 자들은 주님을 영접하고 주님을 따라갔습니다.


주님이 보내신 참 종은 신앙 인격적으로 의사적으로 주님과 잘 결합을 하도록 만드는 겁니다. 그러나 이런 사자의 말에 순종치 않으면 어떤 일이 오느냐?


3장 2, 3절: 그의 임하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의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케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케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


‘순종치 아니하면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그랬어요. 그러니까 금을 연단하는 불은 진짜 금이 될 때까지, 녹아서 찌꺼기가 다 빠질 때까지 혹독한 시련과 연단의 연속이 되는 겁니다.


‘표백하는 잿물’ 이라고 그랬지요? 빨래를 하려면 표백제를 넣어야지요? 양잿물을 넣어야지요? 그렇게 하고 빨래를 하듯이 인간 자기에게 세상 때국물이 빠지도록 하나님 앞에 깨끗해지도록 한없이 두들겨 맞을 겁니다.


그러니까 회개를 하여, 이 회개는 ‘잘못 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게 회개가 아니고 회개는 하나님의 의사를, 뜻을 내 의사로, 내 뜻으로 빨리 받아들이는 것이 회개입니다. 천국을 소원 목적하고 살면서 진리이치대로 사는 이게 회개라 그 말이요. 그러니까 진리이치대로 살려고 한다면, 즉 빨리빨리 회개하고 안 얻어맞으려면 빨리 깨닫는 수밖에 없는 겁니다. 못 깨달으면 자기 속에 든 것이 온통 세상 것이기 때문에 어떤 면으로서든지 자꾸 계속 또 얻어맞게 됩니다. ‘잘못 했습니다’ 했는데도 또 얻어맞는다 그 말이요. 말이 ‘잘못 했습니다’가 아니라 진리이치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바른 길로 가는 게 회개라 그 말이요.


어쨌든 얻어맞으면 나만 서럽다 그 말이요. 왜 그런가 하니 하나님이 사람처럼 보여야 대들던지 하지. 하늘을 보고 뭐 욕을 하며 싸웠다간 누가 보면 미쳤다고 할 거란 말이요.


어쨌든 이유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 하나님의 백성들,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을 시련과 징계의 채찍으로 연단을 시킬 겁니다.


교회에서 간증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하나님에게 패역을 부리다가 하나님 앞에 얻어맞은 그 간증이 큰 자랑인 것처럼 하고 돌아다니지요. 알고 보면 미련한 짓입니다. ‘나는 바보요’ 하고 광고하고 다니는 거지요.


3장 3, 4절: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케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케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 그 때에 유다와 예루살렘의 헌물이 옛날과 고대와 같이 나 여호와께 기쁨이 되려니와.


레위자손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손들입니다. 영적으로 말한다면 여러분들이 레위자손이라 그 말이요.


‘그들이 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드린다, 헌물은 고대와 같이 드리게 된다’ 고 했지요.


우리가 신앙 조상적으로 보면 아브라함의 신앙을 생각할 수 있거든요. 하나님의 말씀이 ‘독자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바치라’ 할 때 아브라함은 군말 없이 반항 없이 ‘아멘’ 하고 드릴 수 있다 그 말이요. 이렇게 드릴 수 있는 신앙이 부럽습니다.


그 다음에 출36:2에 보면 모세가 성막을 짓는다고 그러니까 백성들이 자원을 해서 드린 헌물이 남아 돌아 갔습니다. 이래서 ‘이제 그만 가져오라’고 광고를 했다 그 말이요.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 올바르게 사는 자들의 그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헌물은 거룩하고 깨끗한 헌물들입니다.


3장 5절: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술수하는 자에게와 간음하는 자에게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게와 품군의 삯에 대하여 억울케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케 하며 나를 경외치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거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이 심판을 받을 자들이 열거가 됐는데, 술수하는 자들: 술수는 음양오행설을 주장하는 자들인데, 음양은 두 가지의 기원이 있어서 천지만물이 만들어지고, 또 오행설은 금 목 수 화 토 이 다섯 가지 상극의 이치로 전 우주가 지배된다는 설입니다.


이 술수하는 자들은 천지창조주 하나님을 믿지 않고 부정하는 자들이요, 이방신관 우상을 믿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술수라고 하는 것의 다른 뜻은 ‘권모술수’ 라고 말을 할 때는 인정이나 도덕성도 없이 다른 사람을 무조건 해코자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아까 말씀드린 술수하는 자들이란 음양오행설 주장자들입이다. 이방신관 우상을 믿는 자들을 이르는 말입니다.


두 번째는 간음하는 자들: 간음하는 자는 부부가 아닌 남녀가 성적 관계를 맺는 일인데, 간음을 하게 되면 사람을 더럽히고, 그 다음에 사회를 더럽힙니다. 가정파괴가 오고, 인류사회가 망하는 겁니다. 국가가 망한다 그 말이요.


이 간음하는 자를 신앙 사상적으로 본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세상을 소원하고 목적하고 붙들고 사는 것은 영적 간음입니다.


말세 때에는 교회들이 영적 간음을 하고도 모르는 겁니다. 왜냐? 육적 간음밖에 모르기 때문입니다. 신앙 정신적 간음은 모르고, 몸으로 간음하는 그것만 간음이라고 그런다 그 말이요. 말하자면 말세 때에 교회들의 신앙이 거의가 전부는 육적으로 간다는 말입니다.


교회가 신앙이 육적으로 기울어진 것은 전부 다 하나님 앞에 간음입니다. 간음사상이라 그 말이요. 신앙을 육적으로 가지게 되는데, 영적 면에서는 까막눈이 된다 그 말이요. 전혀 모르게 된다 그 말이요.


진리이치의 눈이 어두운 예언 방언 신유의 은사 등등 하는 것을 보통 보면 영적인 면에 능통한 것처럼 말을 하는데 그거는 영적인 면에 능통한 것이 아니고 영적인 면을 분별을 못하는 눈이 어두운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겁니다.


영적 신앙사상 면에서 간음을 모르면 일반적인 도덕성적인 그런 간음을 얼마든지 행할 수 있는 죄행을 앉고 있다 그 말이요. 이치가 그렇게 나가는 겁니다. 육적 간음을 왜 하느냐? 자기의 정신 사상 소원 목적이 하나님 앞에 영적 간음인 줄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나온다 그 말이요. 영적 간음을 모르면 육적 간음은 서슴없이 해 나가게 된다 그 말이요. 이치가 그렇다 그 말이요.


그 다음에 세 번째는 거짓 맹세하는 자: 맹세는 신 앞에 약속을 하는 겁니다. 참은 하나님이요 거짓은 세상인데,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이렇게 해 놓고는 그만 세상길로 나가는 자가 거짓 맹세하는 자입니다.


그 다음에 또 거짓은 세상인데 교인이 세상과 세상 것을 하나님 앞에다 두고 맹세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물질적인 것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맹세하는 것. 이것도 거짓 맹세입니다. 말하자면 못 믿을 맹세입니다. 하나님 앞에 그런 맹세하면 안 돼요.


예를 들어서 ‘내가 하나님 앞에 헌금을 일억을 하겠습니다’ 이렇게 맹세를 한단 말이요. ‘맹세대로 일억을 바치느냐, 안 바치느냐’ 이게 문제가 아니고 돈은 남의 주머니에 들어 있잖아요. 사람이 왔다가 가면 돈도 같이 움직이는데 자기는 일억을 채우려고 돈만 자꾸 따라갈 거 아니요? 그러니까 그게 못 믿을 맹세라 그 말이요.

그 때 그 때마다 ‘예, 아니오’로 신앙이 나가야 됩니다. ‘다음에’ 이렇게 하면 안 돼요. 그건 거짓 맹세입니다. 그렇게 하면 안 돼요. 다음은 다음이고, 지금은 지금이요. ‘다음에 잘 믿지요’. 오늘 죽어나갈지 어떻게 알아요. 현재가 자기 날이지 내일은 자기 날이 아니요. 자기가 살아있을지 죽어 있을지 압니까?


품꾼의 삯에 대하여 억울케 하며: 심판받을 자입니다.


품꾼의 삯에 대해 억울케 한다는 것은 품꾼의 삯을 떼어먹는 것. 이런 자가 많지요? 강도 같은 사람이지요. 품꾼에게 줄 돈을 가지고 도망을 가거나 잘라먹는 사람이 있지요. 지난번에도 누가 갖고 도망을 가서 누가 자살을 해서 죽었지? 일부는 주고, 일부는 안 주는 거.


그 다음에 품꾼에게 약속한 액수를 나중에 가서 변동을 시키는 것. 또 품꾼의 삯을 해 지기 전에 주어야 하는 건데 오래오래 끄는 것.


어쨌든 품꾼의 삯에 대해 억울케 한다는 것은 일을 한 일꾼의 생활을 어렵게 만드는 겁니다. 이건 심판이요.


그 다음에 다섯 번째인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과부는 남편이 없는 여자이고, 고아는 부모가 없는 아이이지요? 둘 다의 공통성은 세상에서 모두 외롭고 고독한 사람들입니다.


깨끗한 과부는 돌보는 게 좋지요. 부모 없는 고아도 돌봐야 하고. 바람피우는 과부는 돌볼 필요가 없는 거지요. 그리고 자녀들이 부모를 섬겨야 하고, 섬길 줄 알아야 됩니다. 성경에 보면 ‘자녀들로 하여금 부모를 섬기게 하라’고 하는 거지요.


이들을 돌보지 아니하면 세상을 살아가기가 참 고달프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이런 사람을 권력이나 완력을 이용해서 압제를 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볼 때도 매우 악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영적 신앙 면서 보는 과부는 세상재미가 끊어진 자들, 세상재미를 끊어놓고 사는 자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자들입니다. 이게 참 과부라 그 말이요. 또 영적 신앙 면에서 보는 고아는 세상으로부터의 양육이 끊어졌습니다. 그러니까 과부와 고아는 세상재미, 세상으로부터 오는 물질 면에서 참 어려운 자들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하나님 앞에 바로 살려고 하다 보니 그와 같은 과부가 아닌 과부 같은 삶이 되고, 고아가 아닌 고아 같은 고아가 됐다 그 말이요. 이런 자들을 압제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심판을 해 버립니다.


그 다음에 여섯 번째는 나그네를 억울케 하며: 나그네는 고향을 떠나서 외국에서 일을 해서 성공을 해서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사람입니다. 돈이 너무 많아서 외국여행이나 슬슬하고 다니며 사는 사람은 본문에서 말하는 나그네가 아닙니다. 이건 세상을 붙들고 세상하고 연해하고 다니는 거지요. ‘내 세상이다’ 하고 다니는 사람들이다. 나그네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거.


나그네는 객지에서 고생고생하며 돈을 벌지요? 빨리 돈 벌어서 고향 가서 부모 형제 처와 자식을 만나려고 하는 그 애탐성. 그러니까 나그네는 타향살이가 항상 외롭고 고독하고 쓸쓸하다 그 말이요.


나그네를 억울케 하는 것은, 즉 수탈을 하고, 일을 시키고도 값을 안 주고 내쫓고, 일을 하다가 사고를 당했는데 치료도 안 해 주고, 보상도 안 해 주는 그거 인간으로서도, 주님의 입장에서도 본다면 못할 짓입니다. 이런 일들을 우리가 아주 심심찮게 뉴스로 본다 그 말이요. 참 그거 가슴 아픈 일입니다.


외국사람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일을 해 가지고 한국사람보다 적게 월급 받는데도 안 주려고 구타를 하고, 일을 하다가 손발을 잘리고 사고가 났는데도 치료도 안 해주고, 보상도 안 해주고 내쫓아 버리는 거 하나님이 용서 안 해 줍니다. 일반양심으로도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그런데 그런 마음 아픈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불신세상에 참 많습니다.


신앙적으로 교회적으로 볼 때도 성도를 그렇게 대우하는 거, 교역자를 그렇게 대우하는 교회들이 간간히 있어요. 하나님이 그거 가만 안 둡니다.


우리 예수 믿는 기독자들은 모두 나그네들입니다. 세상에 잠깐 있다가 천국고향에 갈 우리들이지요. 그런데 그런 억울한 일을 종종 당하는데 왜 그런가 하니 예수 믿는 사람들은 뭐가 조금 손해가 나더라도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사는 자들이기 때문에 그런 일을 종종 당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한 형제를 얻고 싶어서, 또 하나는 전도문이 막힐까 싶어서, 또 하나는 나중 일을 보아서, 즉 그 형제를 하나라도 얻기 위해서! 그런 면으로 살다보니 불신세상이 성도를 바보처럼 보고 이용을 해 먹는 악한 사람들이 간간히 있습니다. 이게 나그네를 억울케 하는 겁니다.


우리 성도들이 육이 조금 손해나더라도 영의 이익을 위해서 억울한 일을 당하는 그런 일들이 종종 있지요. 그렇지만 웬만하면 다 주님께 맡겨버리고 살지요. 그래야 혹 그 사람이 나중에 예수 믿어 가지고 하나님 앞에 생각을 할 때 ‘아, 그 사람이 예수 옳게 믿는 사람이었구나’ 할 수 있지요. 그 당장에 싸우고 해 놓으면 그 사람이 나중에 예수 믿어 가지고 ‘나도 예수 믿지만 그 사람 더럽게 예수 믿는 사람이다’ 그렇게 말이 되면 되겠느냐 그 말이요. 우리가 우리의 귀로 그런 소리를 직접 듣지 않더라도 그런 것을 미리 다 짐작을 하고 나그네로 살아야 되는 겁니다.


그 다음에 일곱 번째는 하나님을 경외치 않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경외치 않는 자들은 이방불신자들이고, 두 번째는 이방우상을 섬기는 자들이고, 세 번째는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세상을 따라가는 자들이고, 하나님을 경외치 않는 자들입니다. 제 욕심 때문에 예수 믿는다 그 말이요. 네 번째는 성화구원을 이루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런 자들에게 본문 말씀이 ‘속히 증거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여기 ‘만군의 여호와’ 라고 그랬으니까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하는 말씀입니다.


6절: 나 여호와는 변역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


그런 자들에게 심판은 필연적 사실이지만 그러나 한 번 약속된 언약도 변역치 않고 끝까지 이루신다고 하는 것이 들어 있습니다.


야곱의 후손 이스라엘에게는 징계의 채찍을 들어서라도 약속된 것은 꼭 이루어 놓고야 만다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이스라엘과 약속된 것은 변역치 않는다.


또 하나는 아까 말씀드렸지만 일곱 가지로 심판받을 자들을 나열을 했는데 그런 심판을 받을 자들을 꼭 심판을 하고야 만다, 가만 두지 않는다는 면에서 변역치 아니한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이제 우리 입장에서는 문제는 이렇게도 이루어지는 거고 저렇게도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는 것이니 이왕 이루어질 거, 하나님의 소원대로 이루어질 거 얻어맞지 말고 순종을 하면서 성화구원이 잘 이루어지도록 하면 그게 더 낫지 않느냐 그 말이요. 안 그래요? 그렇게 살면 어디 덧날까요? (계속)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김경형목사님이 교역자 신학생을 대상으로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영원 전에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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