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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 고무신

창작동화 한희철 목사............... 조회 수 641 추천 수 0 2017.03.23 11: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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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 고무신 -한희철 목사


내가 다시 햇빛을 보게된 건 새로 들여온 강아지 때문이었습니다.
며칠 동안 양지말로 일을 다닌 할머니가 품값 삼아 새로 태어난 강아지 한 마리를 가져왔습니다. 털이 누렇다고 누렁이란 이름을 얻은 강아지가 나를 끄집어냈던 것입니다.

이른 새벽 할머니가 일을 나가고 나면 하루종일 혼자 빈집을 지켜야 했던 누렁이는 그게 심심했던지 온 집안을 뒤져대기 시작했습니다. 구석구석 발 가는 대로 집 안팎을 헤집던 강아지는 마침내 마루 밑에까지 기어 들어오고 말았습니다. 겁도 없이 어두컴컴한 마루 밑으로 기어 들어온 강아지가 휘휘 마루 밑을 돌아다니다 한 쪽 구석에 버려져 있는 나를 보았던 것입니다.
녹이 잔뜩 슨 삽과 톱, 자루가 부러진 낫과 곡괭이, 다 닳은 숫돌과 호미, 이끼가 낀 양은그릇.....,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는 마루 밑 잡동사니 중에서 누렁이에게 만만해 보였던 게 나였나 봅니다. 고 작은 입으로 덥석 나를 물더니 이내 마당으로 나왔습니다.
그동안 어둠 속에서 먼지를 수북히 뒤집어쓴 채 비스듬히 누워있는 나를 알아보았던 것은 사실 쥐들밖엔 없었습니다. 지나가던 쥐들이 심심하면 오줌을 누고, 어떤 놈들은 새까만 똥을 누기도 했습니다. 말하자면 쥐들의 변소가 된 셈이었습니다.

참, 내 소개를 안 했네요.
이미 짐작한 분들이 있겠지만 나는 신다가 버려진 검정 고무신 한 짝이랍니다. 지금은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내 주인이었습니다. 할머니가 장에 다녀온 날, 난 마루 밑으로 버려졌습니다.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운동화를 새로 사온 것이었습니다.
할머니의 계속되는 타박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는 고집스레 검정 고무신을 신었습니다. 맑은 날이든 비가 오는 날이든 논이든 밭이든 마음대로 신을 수가 있고, 더러우면 휙휙 개울물에 씻기도 좋고, 게다가 오래 신어도 쉬 헤지는 법이 없다시며 할아버지는 꿋꿋하게 나를 신었습니다. 운동화와 구두에 밀려 흰 고무신도 드문 세상에 검정 고무신을 고집하는 할아버지를 할머니는 내내 못마땅해 했지만, 난 그런 할아버지의 고집이 참으로 고마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러니까 할머니가 장에 가 할아버지 운동화를 사 오던 날 나는 마루 밑창으로 내던져졌습니다. 다시는 할아버지 눈에 띄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는지 할머니는 힘껏  마루 깊숙한 곳으로 나를 집어 던졌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 나가려던 할아버지가 나를 찾았을 때 할머닌 대답 대신 새로 사온 운동화를 내어놓았습니다.
할머니 고집에 꺾였는지 그 날부터 할아버지는 더 이상 나를 찾지 않았고, 난 그때부터 내 다른 한 짝과도 떨어져 어두컴컴한 마루 밑에서 혼자 지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추운 겨울이 다섯 번 지났으니까 그렇게 된 것도 벌써 오래 전 일입니다. 그런 나를 새로 들여온 강아지 누렁이가 마루 밖으로 끌어냈으니, 정말 오랜만에 햇빛을 본 셈이지요.

총총 별을 이고 어둠 속 돌아온 할머니가 매운 연기를 날리며 저녁밥을 짓다가 돌계단 밑에 떨어져 있는 나를 보았습니다. 나를 보는 순간 할머니는 깜짝 놀랐습니다. 긴가민가 싶은 표정으로 한참동안 내려다보던 할머니가 마당으로 내려와 나를 집어들었습니다. 할머니 손끝이 떨렸지 싶었는데, 오랜만에 보는 할머니 모습이 무척이나 반가웠습니다.
할머니는 나를 우물가로 데려가 깨끗하게 씻겨 주었습니다. 할머니 손에 잡혔으니 또 다시 마루 밑으로 던져질 줄 알았는데, 할머닌 마치 세수를 시키듯 나를 씻기고 또 씻겼습니다. 허옇게 뒤집어썼던 먼지와 냄새나는 쥐들의 똥오줌이 모두 씻겨졌습니다. 난 모처럼 옛날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마른 수건으로 정성껏 물기를 닦은 할머니는 나를 방으로 가지고 들어가 낡은 재봉틀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영감……"
할머니는 목이 메어 할아버지를 불렀습니다.
할머니의 젖은 눈길을 따라 위를 올려다보니 씨 옥수수 몇 개 걸려 있는 벽에는 할아버지 사진이 걸려 있었습니다. 지긋이 웃고 있는 얼굴이었습니다. 할아버지 사진을 보는 순간 떠오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매일 밤 마루 밑에서 들었던 할머니 얘기는 모두 할아버지 사진을 보며 할머니 혼자 한 얘기였습니다. 할머니는 밤마다 옆에 누가 있는 듯 하루동안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곤 했습니다.
"오늘은 건너말 호진네서 담배 조리를 했다우. 갈수록 사람이 모자라 큰일이에유."
"죽마골 박서방이 오늘 생일이었우. 떡 좋아하는 당신 두구 혼자 먹을라니 마음이 아픕니다."
"오늘은 큰 아들네가 전화를 했어요. 손주들이랑 다 잘 있다믄서유."
"강가밭 당근이 굵다랗게 씨가 잘 내렸는디 아무두 사러 오는 사람이 없네유."
"영감, 미안해요. 오늘은 그만 일찍 잘라요. 하루종일 비 맞고 일했드니 어째 몸이 으스스 하구먼유."
"올해두 우물가 산수유가 빨갛게 잘 익었어유. 당신 보았으면 좋아했을 텐데…."
얘기하며 할머닌 때론 웃었지만 많이는 울먹였습니다. 불꺼진 할머니 방에서 흘러나오는 할머니의 울음소리를 난 마루 밑에서 자주 듣곤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그 해 겨울, 그러니까 내가 마루 밑으로 버려지던 그 해 겨울 세상을 떠났습니다. 오래도록 앓아 온 해소병(할아버지는 쉬지 않고 기침을 계속했습니다)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감고 말았습니다.
언 땅을 파고 할아버지를 묻고 돌아온 할머니는 그 날부터 혼자 지내게 되었습니다. 둘 있는 자식들이 서울로 올라가자 몇 번을 그랬지만 여기가 좋다고 할머니는 고집을 부렸습니다. 넉넉지 못한 아들네 살림을 뻔히 아는데 올라가야 짐이 될 게 뻔했고, 자기마저 올라가면 비록 땅에 묻히긴 했지만 먼저 간 영감이 외로울 거라는 생각에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찬이라곤 짠지뿐인 저녁상을 물린 할머니는 아랫목 널어 말리던 산수유를 한쪽으로 밀어놓고 이부자리를 폈습니다. 한번 잠을 놓치면 뜬눈으로 온 밤을 지새우는 적이 많아 할머니는 저녁상을 물리기만 하면 잠을 청합니다.
오늘도 할머니는 할아버지 사진을 보며 할아버지에게 얘기를 시작했습니다.
"영감, 오늘은 일 마치고 집에 오니 아 글쎄, 마당에 당신 신이 나와 있질 않겠수. 당신이 고집스레 신었던 검정 고무신 말이우. 아마 누렁이가 끄집어낸 모양입디다. 실은 당신 신지 못하게 내 마루 밑에 숨겨놨던 것인데…."
할머니 목소리가 나직합니다. 마치 할아버지가 사진에서 나와 할머니 옆에 누워 있는 것 같습니다.
한참동안 이야기를 이어가던 할머니가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는 재봉틀 위에 있는 나를 끌어안더니 다시 자리에 누웠습니다.
"영감, 미안하구려. 당신이 그리두 좋아하던 이 검정 고무신을 왜 난 그리두 싫어했는지."
할머니 두 눈이 이내 젖어 들었습니다.
"영감, 오늘은 날이 무척이나 차던데, 당신은 언 땅에서……."
할머닌 더 이상 말을 못 이었습니다.
한동안 울먹이던 할머니가 주섬주섬 당신 가슴을 열었습니다. 그러더니 나를 고이 그 품에 안는 것이었습니다. 주름진 가슴이었지만 할머니 가슴은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었습니다.
따뜻한 할머니 가슴에 안긴 나는, 그래도 내게 남아 있는 할아버지의 체온이며, 할아버지랑 함께 한 시간들을 할머니 가슴에 전해 드리고 싶어 애를 썼습니다.
구멍 뚫린 문풍지 사이로 매운 바람이 앵앵 우는 겨울밤이 저만치 깊어가고 있었습니다.

한희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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