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육신이 되신 말씀
예수님의 탄생을 “나심”이 아니라 “오심”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님의 오심을 이렇게 규정할 수 있다.
“대화자”로서 오신 예수님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란 맨 처음 거기에는 삶의 “공유”가 있었다. 하지만 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가로막고 말았다. “대화의 단절”이 생겨났다. 이제는 정상적인 대화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하나님의 수준으로 올라서든지 하나님이 인간의 수준으로 내려오든지 둘 중의 하나가 선택되어야 했다. 그러나 인간은 결코 하나님의 수준으로 올라갈 수 없었다. 죄의 멍에가 너무도 무겁고 컸기 때문이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하나님이 인간 편으로 내려오셔야 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의 막힌 대화의 담을 헐어버리셨다. 그는 하늘 보좌의 자리를 버리고 죄인의 자리에 오셨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증언한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 1:1).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 태워도 없어지지 않는 ‘말씀’
어떤 남자가 알코올에 중독돼 비참한 삶을 살고 있었다. 어느 사람이 그의 아내에게 성경을 한 권 줬는데 아내는 성경을 읽다 예수를 믿게 됐다. 아내는 성경을 통해 많은 위로를 받고 그것을 보물처럼 여겼다. 하지만 남편은 아내의 새로운 신앙을 비웃기만 했다.하루는 남편이 또 만취해 집에 돌아와 아내의 손에서 성경을 빼앗아 난로속에 던져버렸다.“보자, 네 성경이 뭐가 될지” 다음날 아침 남편은 남은 재를 치우다가 타다 남은 성경 몇쪽을 보게 됐다. 그중 마태복음 24장 35절에 있는 예수님의 말씀이 눈에 들어왔다.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나의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그 구절을 읽고 그는 깜짝 놀랐다. 성령께서 그 경험을 사용하신 것이다. 그는 죄책감을 강하게 느꼈고 결국 그의 영혼은 구원의 믿음을 얻게 됐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브리서 4:12)
/김상복 목사
▣ 재료가 있어야 불이 탄다
1962년 화재가 발생한 이후 45년 동안 불이 꺼지지 않고 있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콜롬비아 카운티에 위치한 센트레일리아 마을. 그곳은 유령 마을로 전락한 지 오래다. 지난 1984년 주 당국은 거주하고 있던 지역 주민들에 대한 철수명령을 내렸는데, 그 이유는 도로 및 들판 등 마을 곳곳이 화염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40여년 전까지만 해도 센트레일리아 마을은 석탄 채굴로 사람들의 왕래가 활발하던 곳이었다. 이 마을이 재앙에 휩싸인 것은 1962년의 작은 화재 때문이다. 불길은 진화됐지만 불씨가 석탄 광맥에 옮겨 붙었고, 이후 지하에 매장된 석탄이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마을은 서서히 연소되기 시작해 현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도로 또한 끊어진 상태다. 센트레일리아 마을의 지하에 매장된 석탄이 다 연소되려면 앞으로 250년이 더 걸릴 것이라고 한다.
불꽃이 한 번 타오르면 연료가 바닥날 때까지 계속된다. 우리들에게 성령의 불이 지속적으로 피어오르게 하려면 말씀의 연료가 필요하다.
▣ 반복된 말씀
스펄전을 회심시킨 것은 콜로체스터의 예배당에서 있었던 어느 감리교의 평신도 설교자의 설교가 아니었다. 그를 변화시킨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나를 바라라 그리하면 땅 끝까지라도 함께 하리라."
스펄전은 그 순간을 이렇게 회상했다.
"그 설교자는 그다지 많은 것을 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그로 하여금 계속 그 말씀을 되풀이하게 하신 것입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 말씀 이외에 필요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지금도 분명히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지금도 분명히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누구든지 원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그냥 고민하던 문제가 해결되어버리지요. 문제 해결을 하기 위해 여기 저기 기웃거릴 필요 없어요. 골방으로 들어가 문 걸어 잠그고 딱 꿇어앉아 하나님의 음성이 들릴 때 까지 안 일어나겠다는 작심을 하세요. 그러면 들립니다. 그리고 한 가지 절대로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는데...." 라고 말하는 것을 삼가십시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무척 싫어합니다. 그 이유는 저도 모르겠고, 어쨌든 꼭 마음속에 비밀로 간직하십시오. 그 마음속의 비밀이 많은 사람일수록 얼굴 표정을 보면 환하게 빛이 납니다.
/최용우
▣ 말씀을 듣는 믿음
성경: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꼭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누가복음 10:42)
한 어머니가 아이와 함께 이름있는 선생님을 찾아와 말했습니다.“우리 아이는 워낙 총명해서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아이입니다. 가르침을 부탁드립니다”하고 돌아갔습니다. 얼마 후 그 어머니가 다시 찾아왔습니다. “어떻습니까? 매우 똑똑하죠?” 그 때, 선생님은 아이의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아이가 말씀하신대로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아이이긴 합니다만 문제는 가장 기본이 되는 하나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일행이 예루살렘 근처 베다니에 이르러 날이 저물었습니다. 그곳에서 마르다라는 여인이 예수님의 일행을 맞이하여 하루를 묶게 되었습니다. 저녁준비에 마르다는 분주했으나 그의 여동생 마리아는 저녁준비는 하지 않고 예수님의 발 옆에 앉아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마르다가 참다 못해 불평의 소리를 합니다.“주님,제 동생이 저에게만 일을 맡기고 있는데 가만히 있으십니까? 마리아더러 저를 좀 도우라고 일러주십시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마르다야,마르다야”하고 화난 그를 두 번씩이나 다정하게 부르시며 “너는 많은 일에 마음을 쓰며 걱정을 하지만, 실제로 중요한 것은 한가지이다. 마리아는 그 많은 것들 중에 참 좋은 몫을 택하였다. 그것을 빼앗아서는 안된다”라고 오히려 마리아를 칭찬해 주셨습니다.
▣ 부러지기 쉽다
옛날에는 불에 설탕을 녹인 다음 소다를 섞어 부풀린 뒤에 형상을 찍어 그 형상 그대로 오려오면 하나 더 만들어 주었던 뽑기라는 것이 있었다.
그런데 이 뽑기를 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은 신중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면 뽑기는 부러지기가 쉽기 때문이다. 기껏 열심히 손가락을 신중히 놀려 거의 다 오려내다가 마지막 부분에 가서 부러진다면 대단히 억울한 일이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만사가 다 위태로운 상황이다. 그러나 말씀으로 내 자신을 달래며 신중을 기한다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무엇이든지 억지로 해결하려고 들면 부러져서 아주 기회가 없어지고 마는 것이다.
모든 삶은 하나님의 말씀의 테두리를 따라 강제적이 아닌 순리로서 나갈 때에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수 1:8)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적 사고를 하려면 성경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우리의 사고 그릇을 비워 두면 불순물이 들어오게 되고 비성경적 사고를 하게 됩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이 믿고 있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쉼없이 가르치고 강론하며 기록하고 입에서 떠나지 않도록 합니다. 이렇게 철저하게 말씀으로 무장한 그들은 비록 한 곳에 모여 살지 못하고 전 세계를 유랑했지만 그들만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말씀으로 철저히 무장하는 데에 그 뿌리를 둡니다.
▣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함
하나님께 구하는 것을 모두 받으려면,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속에 거해야 한다. 무슨 신비한 명상이나 황홀경을 체험함으로써 그리스도 안에 거하기를 배우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기를 배우는 방법은 바로 기록된 말씀을 받아 섭취하고 성령께서 그 말씀을 우리 마음 속에 심어주셔서 살아 역사하게 만드시도록 만드는 데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저 지식적으로 공부하는 것만으로는 안된다. 그 말씀에 대한 묵상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을 끊임없이 바라보며 성령께서 그 말씀을 우리 마음 속에 살아 있게 만드시도록 구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 속에 계속해서 맴돌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속에 거하도록 하면, 그 말씀들이 우리를 자극하여 기도하게 만든다. 그 말씀들의 틀 속에서 우리의 기도가 형성되어 나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기도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과 동일선상에 있게 되고, 결국 하나님의 응답을 받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 일을 소홀히 하고서는 기도의 응답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다. 가장 위대한 기도의 사람 중 한 사람인 조지 뮬러는 기도할 때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나서 기도가 자연스럽게 마음속에서 우러나기 시작할 때에 비로소 기도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렇게 할 때에 하나님 자신이 기도를 일으키시고, 또한 자신이 불러일으키신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 친히 응답하시는 것이다.
/ R. A. 토레이
▣ 지진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강력한 지진이 남캘리포니아 주의 찰스턴 시를 강타했다. 이 날 한 나이 많은 흑인 목사가 설교를 막 시작하려고 할 때 첫 진동이 느껴졌다. 사람들은 잠시 동안 아무 말 없이 침묵에 잠겼다. 두 번째로 더 강한 지진이 느껴졌다. 바로 그 때였다. 이 흑인 목사가 설교 노트에서 눈을 떼고 이렇게 소리쳤다.
"자, 여러분! 하나님께서 지금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 모 두 조용히 합시다."
이 날 지진이 진행되는 동안 하나님과 함께했던 하나님의 백 성들은 사실상 축복을 받았다. 그들은 지구의 혼란과 세상의 반항적인 말을 모두 물리치고 단지 하나님의 평온하고 용기를 북돋워 주는 말씀만을 듣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렇게 외쳤다.
"주님, 말씀하소서. 당신의 종들이 듣고자 하나이다."
▣ 가장 먼저 전해야 할 말씀
모라비아 교회 선교사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최초로 그린랜드에 파견되었을 때 그들은 그 곳 사람들에게 먼저 자연종교의 교리를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단 한사람의 개종자를 얻는데 무려 17년이라는 세월이 걸릴 정도로 비참한 것이었다. 어느 날 카야르낙이라는 매우 사악한 사내가 선교사의 움막에 들렀다가 우연히 선교사가 성경 읽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 때 선교사가 읽고 있었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중 마지막 한 주간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 원주민은 예수께서 죄인들을 위하여 죽으셨으며, 죄인들은 그 분을 통하여 구원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희미하게나마 알게 되었고 그에 대해 자세히 듣기 위해 선교사에게 물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저에게 자세히 말씀히 주십시오. 저도 구원받고 싶습니다."
뜻밖의 일에 선교사는 깜짝 놀랐고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카야르낙과 그의 가족은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들은 그린랜드에서 구주께 드려진 첫 열매가 되었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선교사들은 죄인들에게 가장 먼저 설교해야 할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구속의 희생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 꿀 송이 보다 더 단 하나님 말씀
본문: 시19:10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미국 농담에 거북이 교인 (Turtle Christian)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새는 9일간 먹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사람은 12일간이고 개는 20일간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런데 거북이는 500일을 먹지 않아도 살고 뱀은 800일을 견딥니다. 곤충들은 1200일을 음식 없이도 생존합니다. 그래서 참다운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 없이 사는 신자를 거북이 크리스찬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들은 매일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오늘도 꿀송이 보다 더 단 하나님의 말씀으로 아름답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등불이 되는 말씀
성경: 잠6:23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責望)은 곧 생명의 길이라 "
스웨덴의 동물학자가 "개를 보고 웃지 말라"고 경고하였습니다. 웃는 얼굴을 보고 호감을 갖는 것은 사람의 기분이고 웃으면 이빨이 나오기 때문에 개는 기분이 상합니다. 이빨을 내미는 것은 공격의 징조라는 개의 상식을 계산에 넣지 않고 내 본위로 판단하는 것이 오해입니다. 바로 인생사의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항상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도 내 생각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어서 아름답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송태승 목사
▣ 성경 말씀
1789년 영국 군함 바운티(Bounty)호에서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반란자들 중 일부는 피트게언 섬에 상륙하여 원주민들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정치적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9년이 지난 뒤 그곳에는 살인과 폭력, 성(性)의 문란, 알콜 중독 등 심각한 사회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고 이러한 결과에 회의를 품은 지도자 플래처 크리스천은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남은 사람들은 영국으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배가 떠나기 두 달 전 존 아담스라는 사람이 창고에서 우연히 성경책 한 권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성경을 읽다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다시 예수님을 찾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영국으로 가는 배에 오르지 않고 성경과 함께 섬에 남았습니다. 이제 죄악으로 얼룩졌던 피트게인 섬은 한 권의 성경으로 다시 소생하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한 활자나 많은 출판물 중의 하나가 아닙니다. 성령이 살아 계셔서 생명을 불어넣은 책입니다. 때문에 성경 말씀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말씀은 역사 속에 함께 하고 있는 능력입니다.
"성경: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24:35)
* 기도: 주님,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을 늘 묵상하게 하소서
▣ 하나님의 말씀
성경: "하나님 말씀은 다 순전하며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시니라 너는 그 말씀에 더하지 말라 그가 너를 책망하시겠고 너는 거짓말하는 자가 될까 두려우니라"(잠30:5,6)
로버트 모리슨은 중국에 파견된 개척 선교사였습니다. 그가 성경을 중국어로 번역해 가던 중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라는 같은 구절에 이르렀을 때의 일입니다. 함께 번역 작업을 해온 중국인 동료가 말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결코 구세주를 뵙게 될 것이라거나 하나님을 면전에서 맞대어 보게 될 것이라고는 믿지 않을 것입니다. 이 구절의 번역을 다르게 바꾸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자 모리슨이 대답하였습니다.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하도록 합시다."
순전하다는 것은, 마치 뜨거운 불로 연단하여 찌꺼기를 모두 제거한 금처럼 순수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순전해서 그 속에 더러운 것이나 잘못된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말씀만 믿고 의지하고 나가면 그 말씀이 참으로 드러나는 것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을 모든 시험과 환난에서 지켜 보호해 주십니다.
* 묵상: 말씀 가운데서 삶의 지혜를 공급받고 있습니까?
▣ 하나님의 말씀을 좇으라
위대한 사람 옆에 서 있다고 내가 저절로 위대해지지 않습니다. 배부른 사람 옆에 있다고 내가 배부르지 않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십시오. 말씀을 따라다니십시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교회나 목사를 좇아다니지 마십시오. 사람을 좇아다니면 꼭 얻는 것이 있습니다. 실망과 상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좇으십시오.
/하용조 목사
▣ 말씀과 일관된 삶
미국의 어느 법관이 취임석상에서 '나는 한 때 무신론자였지만 내가 그리스도를 부인할 수 없었던 것은 내 아버지의 성경 말씀과의 일관된 생활로 인해서입니다. 그 후로 차츰 그리스도를 신뢰하게 되었으며, 성경이 내 삶의 나침반이 되었습니다'라고 신조를 말하였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말씀과 일관된 삶이 가장 큰 전도가 아닌가 생각한다
▣ 말씀적용
두 기독교인 신사가 같은 좌석에 앉아 기차 여행을 하고 있었다. 점심 시간이 되자 그중 한 사람이 두 개의 샌드위치 중 하나를 먹기 시작했다. 다른 한 사람은 그의 동료가 먹는 모습을 보자 배고픈 듯한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한 개의 샌드위치를 먹는 사람에게 '나는 최근에 주님의 계명에 조용히 사로잡힌 일이 있습니다. 당신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아십니까?' '거참 좋은 말씀입니다' 하며 남은 샌드위치를 입 속에 집어넣고는 이렇게 응수했다. '나는 또 다른 성경말씀을 잘 알고 있습니다. 네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들의 입장에서만 성경을 해석한다. 그리고 자기의 이기심을 채우기 위해 말씀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 말씀의 표적
캐나다 동북쪽에 사는 아이누이츠라는 에스키모족이 있습니다. 이들은 지금도 고수하는 그들만의 관습이 있다고 합니다. 악령을 쫓기 위해 문이나 현관에 물건을 달아맵니다. 매의 깃털이나 동물의 가죽 혹은 독수리의 깃 등을 문에 달아놓으면 악령을 쫓아낸다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부적과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부적을 붙여본 경험이 있습니까? 우리의 신령한 표적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것은 문이나 현관에 붙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 판에 새기고 다닐 표적입니다. 이 말씀을 미간에 붙이고 문설주에 붙이고 손목에 매달아놓는 것입니다. 말씀을 늘 붙이고 새기고 다니는 사람은 악한 영이 넘보지 못합니다. 말씀을 떠나 사는 사람을 마귀는 가장 좋아합니다. 언제든지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성희 목사(연동교회)
▣ 믿음을 키우는 약
한번은 '무디'선생이 자신의 간증을 했다. '내가 하나님께 믿음을 달라고 기도한 시간만 합쳐도 몇 달은 족히 될 것이다. 내 생각으로 믿음이란 번개불과 같이 어느 날 나를 확 달아오르게 할 어떤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수없이 기도해도 믿음이 오지 않았다. 그런 어느 날 나는 로마서 10장을 읽다가 '그런즉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란 구절을 보았던 것이다. 그 즉시 난 성경을 부등켜 안고 믿음을 구했다. 그리고는 성경을 다시 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기 시작했더니 믿음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우리의 믿음을 자라게 하는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고 알고 이를 순종하는것이 제일이다.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눅 8:15)
흙은 원래 부드럽지만 사람들이 밟고 오랜 시간이 지나면 굳어지고 단단하게 되는 것이 길바닥입니다. 어린아이의 마음은 부드럽고 복음을 전하면 잘 받아들이지만 길바닥같이 인생의 경륜이 쌓인 사람들은 말씀을 받아들이기가 무척 힘듭니다. 마음이 부드럽지 못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길바닥에 떨어진 것과 같아서 믿음이 자랄 수 없고 하나님을 느끼거나 천국을 체험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씨앗이 잘 자랄 수 있는 좋은 땅은 부드러운 마음입니다.
/최홍준 목사(호산나교회)
▣ 말씀으로 돌아가자
얼마 전 신문에 재미있는 글이 실렸습니다. 부동산 투자에 관한 글이었는데 제목이 '망하는 길 10가지'였습니다. 그 첫째가 "전문가나 컨설팅업체의 말을 100% 믿는다. " 그러면 반드시 망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이런 사례가 실려 있었습니다. "투자론을 강의하는 유명대학 K교수, 그의 강의는 늘 인기가 있다. 사람을 몰고 다닐 정도다. 그런 그가 한 초청 강연장에서 그 잘하던 강의를 망친 적이 있다. 왜냐하면 자신이 세들어 살고 있는 집 주인이 청중 속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프란시스 쉐퍼는 그의 책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인간적인 지식이 아닙니다. 얄팍한 술수나 꾀가 아닙니다. 우리를 향하신 거룩하신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아는 지혜입니다. 초대 교회가 타락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을 때, 사막으로 나아갔던 사막의 교부들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새롭게 깨닫는 운동이 있었습니다. 그런 운동을 통해서 당시의 교회들이 새로워졌습니다. 중세 교회가 교권주의에 매여 하나님의 뜻을 거역할 때, 종교개혁자들은 말씀을 새롭게 연구하기 시작했고, 성경에서 개혁의 불길을 찾았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말씀을 바로 알고, 바로 깨닫고, 그 말씀을 따라 살기를 결단하게 될 때 하나님은 우리를 바꾸실 것입니다. 우리를 온전케 하실 것입니다.
/ 서정오
▣ 말씀의 맛을 보라
어떤 총각이 여자 친구와 결혼할 것을 결심하였지만 그 총각은 부끄러움이 많아서 여자 친구를 만나지 못하고 매일 연애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그런 일이 3주 계속된 다음, 드디어 그녀는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가 결혼한 사람은 연애편지를 보낸 그 총각이 아니라, 매일 편지를 배달한 우체부였다. 계속적인 접촉이 사랑에 이르렀고 결국 결혼으로 골인하게 된 것이다.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주님과 접촉하게 되고 말씀을 통해서 주님의 인자하심이 어떠한지, 그 맛을 보게 되면 더욱 말씀을 갈구하게 되는 것이다. 주님의 맛을 말씀으로 보고 말씀을 더욱 갈구하면 그 결과 더욱 성장하게 된다. 이것이 성장의 순환이다. 죄악을 통한 세상의 맛이 쓰다는 것을 느껴야 말씀을 통한 주님의 맛을 갈구하게 된다. 말씀을 통한 주님의 맛을 보고 나면 죄악을 통한 세상의 맛이 시들해진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사기, 위선, 시기, 비방 등 모든 악독을 버리고 순수한 말씀의 젖을 갈구해야 한다. 부모가 어린 자식이 위험한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에 무조건 그것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장난감을 주면서 그것을 버리게 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말씀을 통한 인자하신 주님의 맛을 대안으로 내어놓으면서 옛 사람의 달콤한 죄악들을 버리게 하신 것이다. 죄를 버리고 말씀을 갈구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성장하자.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수 1:8)
* 기도 : 주를 알아가는 지식이 커가면서 주를 향한 열정이 식어져가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주의 말씀을 들을 때 주를 향한 순수한 사랑이 회복되게 하시며, 그 말씀이 나의 심령과 골수를 쪼개는 강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소서.
/권성수
▣ 코끼리의 칼슘
코끼리는 우둔해 보이지만 생존을 위한 지혜는 가히 경이롭다. 코끼리는 더울 때 귀로 부채질을 하거나 목욕을 하여 더위를 이겨낸다. 또는 침을 잔뜩 괴었다가 코로 들이마신 후, 몸에 뿌리는 식으로 더위를 피한다. 물론 이 방법은 근처에 개울이나 연못이 없을 때 쓰는 비상 수단이다. 햇볕을 피해 나무 그늘을 찾아서 몇 시간이고 꼼짝 않고 서 있을 때도 있다.
코끼리의 지혜는 음식 섭취에서도 나타난다. 코끼리는 이빨을 튼튼하게 하기 위해서 대나무를 즐겨 먹는다. 코끼리는 단단하고 질긴 통 대나무를 으깬 다음, 코로 말아 올려 먹기도 하고, 그냥 입으로 ‘우지직’ 씹어 먹기도 하면서 부족하기 쉬운 영양소를 섭취한다고 한다. 또한 아프리카의 건조한 초원 지대의 코끼리는 죽은 동물의 뼈를 먹음으로써 부족한 칼슘을 보충한다. 그들은 보통 하루에 300kg 정도의 먹이를 먹는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몸에 꼭 필요한 영양분을 찾아 섭취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의 영적 건강도 무슨 음식을 섭취하는가와 직결된다 하겠다. 물론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은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을 섭취해야 한다. 그러나 어리석은 이는 편식에 길들여져 버린다. 어린아이가 밥상에서 편식을 하듯 말씀에 대한 편식을 하는 것이다. 귀에 거슬리는 설교에는 방음막을 친다. 좀 까다롭거나 부담스러운 말씀은 그냥 건너뛴다. 그러나 깨달아야 한다. 코끼리는 달콤한 야자 열매만 찾아다니지 않는다. 코끼리는 칼슘을 보충하기 위해 억센 대나무를 씹기도 하고, 죽은 동물의 뼈를 먹기도 한다. 당신에게도 이런 결단이 필요하다.
/ 이진우
▣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라
성경: 행4:19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초대 교회사에 나오는 위대한 순교 사화입니다. 로마 교회의 식스투스 감독은 경건하고 인자하여 그의 목회에 감동 받은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습니다. 그는 빈민 구제와 사랑을 실천하여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발레리아누스 황제는 그를 처형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조용히 순교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식스투스 감독이 사형장에 끌려갈 때 라우렌티우스 집사가 식스투스의 뒤를 따라가면서 “아버지여, 당신께서 제단으로 나아 가실 때 늘 저에게 도움을 청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어찌하여 지금은 저를 데려가지 않으십니까?”하며 눈물을 흘립니다. 그때 식스투스는 “사랑하는 아들아, 너희들도 며칠 후면 나의 뒤를 따르게 되리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라우렌티우스 집사는 당시에 식스투스 감독의 교회 수석 집사로 거대한 교회의 재산을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이 막대한 재산을 알게 된 로마 시장은 교회의 모든 재산을 상납토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라우렌티우스 집사는 교회 재산을 정리하겠다는 구실을 내세워 상납일을 연기하도록 허락받고 교회당의 모든 보물을 다 팔았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의존하고 있는 수천의 민중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교회당에 그 사람들을 모집하였습니다. 약속한 날 시장이 교회당으로 올라오면서 “보물은 어디에 있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문을 열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때 라우렌티우스 집사는 교회당 문을 활짝 열고 소경, 벙어리, 걸인, 병자, 고아, 과부의 무리를 가리키며 “교회의 보물이 여기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눈치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성실히 행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오늘도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아름답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송태승 목사
▣ 말씀을 청종하는 자세
언젠가 조지 윗필드가 설교를 할 때 한 사람이 중간에서 열심히 졸고 있었습니다. 윗필드는 설교를 멈추고 단 아래로 내려가서 졸고 있는 그 사람에게 이렇게 충고하였습니다. “만약에 내가 하는 설교가 윗필드 자신의 말이라면 주무셔도 좋습니다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데 어떻게 졸 수 있습니까?” 윗필드는 심하게 꾸중하고 난 다음에 후반부 설교를 다시 이어 갔습니다. 졸음에서 깨어난 그 사람이 일생 일대의 큰 은혜를 받았다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설교를 듣고 난 후에 들은 메시지는 잊어버리고 오직 설교 중에 동원되었던 재미있는 예화만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설교는 끝났는데 나중에 교인들의 마음속에 남은 것이라고는 배꼽을 잡고 웃게 만들어 주었던 예화밖에 없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돌아다니는 수많은 예화가 우리의 마음과 삶을 바꿔 놓을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입니다. 설교를 듣는 시간이 강연을 듣는 시간과 같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청교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당신이 설교를 들으면서 그 속의 재담이나 일화에 귀를 기울이고 즐거워하고 있다면 그것은 마치 배고픈 사람이 화려하게 차려 준 밥상에서 밥 대신에 밥그릇의 무늬를 보면서 즐거워하는 것과 같다.”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귀기울여 들어야 할 것이 바로 하나님 자신의 목소리라는 점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여! 무엇이든 말씀하시옵소서. 종이 듣겠나이다” 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 예배의 감격에 빠져라 / 김남준
▣ 갈매기의 죽음
영국을 여행하는 한 나그네가 관광지로 유명한 해안지대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 바닷가에 많은 갈매기가 죽어 있는 것이었다. 그는 죽은 갈매기떼를 치우고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되어 그에게 물었다. "이 많은 갈매기가 왜 죽게 되었습니까?" 그는 대답했다. "여기는 관광지가 되어서 여름 한철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데 관광객들은 늘 갈매기들에게 빵과 과자와 사탕을 줍니다. 갈매기들이 사람들의 손바닥에 올라 앉아서 그런 먹이를열심히 쪼아 먹지요. 사람들은 그게 재미있어서 더 열심히 그런 먹이를 주곤 합니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갈매길들은 입맛이 달라졌고, 그래서 이제는 자연의 먹이에는 식욕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이제 철이 바뀌어서 관광객들의 발길이 뚝 끊어지고 보니 갈매기들은 별 수 없이 굶어 죽고 만 것입니다." ...누가 이 갈매기들을 죽이자고 과자를 주었겠는가? 갈매기를 향해서 총을 쏘는 사람들에게는 나쁜 사람들이라고 나무라지만 갈매기에게 과자를 주는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고 나무라는 사람은 없다. 그런 먹이가 결국에는 갈매길들을 떼죽음시킨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었다. 갈매기가 먹어야 할 음식은 따로 있다. 갈매기는 갈매기로서의 길을 가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나름대로 즐기느라고 이렇게 갈매기에게 먹여서는 않되는 먹이를 준 결과로 이러한 일이 생겼다는 것이다.
사람은 분명히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면 꼭 먹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 목회 사회학자가 연구해 보았는데, 넉 주일만 교회 나오지 않으면 하나님의 존재가 안보인다고 한다. 먹어야 할 것은 먹지 않으면 안 먹어야 될 것을 먹게 된다.
/곽선희 목사 설교예화
▣ 가장 큰 지혜
손으로 물을 건져 올려 보라. 이내 새어 나가 버리고 말 것이다. 그러나 그릇으로는 얼마든지 퍼 올릴 수 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지 않으면 보배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의미 없이 새어 나가 버릴 1초를 영원으로 건져 올려 담는 그릇이다. 허망하게 사라져 버릴 1분 1초를 영원이란 보배로 꿰어 주는 사슬이다. 부디 어떤 경우에도 잊지 말기를 바란다. 인생은 절대로 거창한 데 있지 않다. 지금 당신을 스쳐 지나가고 있는 1초가 바로 인생이다. 그 1초를 어떻게 맞느냐에 따라 당신의 일생이 결정되는 것이다.
지금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그릇 삼아, 그 1초를 영원으로 건져 올려라. 하나님의 말씀을 당신 삶의 씨줄로 삼아라. 그리고 그 씨줄에 당신을 스쳐 가는 1초를 날줄로 엮어 가라. 그때부터 당신의 삶은 절대적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 절대적 의미는 영원하신 절대자인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만 움트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은 결코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한줌의 흙에 지나지 않을, 바로 당신 자신을 위한 것이다. 그렇기에 청년의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보다 더 큰 지혜는 없다.
- 참으로 신실하게 / 이재철
* 기도: 하나님, 전심으로 하나님을 구하고 말씀을 지키기 원합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자들에게 복에 복을 더할 줄 믿사오니 청년의 때에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행동으로 제 자신을 관리하게 하시며, 주님의 말씀을 근실히 지키도록 도와주소서.
▣ 지혜의 말씀
“지혜 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이요 명철한 자는 모략을 얻을 것이라 잠언과 비유와 지혜 있는 자의 말과 그 오묘한 말을 깨달으리라”(잠 1:5,6)
영국 왕 제임스 1세는 킹 제임스 성경을 번역한 독실한 신자였는데 그는 작은 범죄도 엄하게 다스렸습니다. 한 번은 암스트롱이라는 좀도둑이 양을 훔치다 붙잡혀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이 때 암스트롱은 사형을 피하기 위해 한 가지 묘안을 짜낸 후 간수를 불렀습니다. “나는 어차피 죽을 몸, 마지막으로 성경을 읽고 싶소. 임금께 내 뜻을 전해주시오” 제임스 1세는 그 소식을 듣고 대답했습니다. “참 기특한 죄인이로군. 그에게 성경을 주어라. 그리고 성경을 모두 읽은 후에 사형을 집행하라” 암스트롱은 그날부터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나도 사형을 집행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루에 딱 한 절씩만 성경을 묵상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제임스 1세는 그를 풀어주며 말했습니다. “집에 가서 성경을 읽어라” 암스트롱은 그 후 새사람이 되어 봉사의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항상 지혜의 말씀에 귀기울이고 마음에 새기는 지혜로운 자는 잠언이 주는 교훈을 열린 마음으로 듣고 순종하여 더욱 지혜로워집니다. 또한 선악과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능력이 있는 명철한 자는 잠언의 말씀을 통해 모략을 얻습니다. ‘모략’이란 인생의 진로를 바른 방향으로 인도하는 길잡이의 역할을 합니다. 잠언은 명철한 자의 인생을 성공의 길로 인도해 주는 것입니다.
* 기도: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무지했던 제 모습을 고백합니다. 저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소서. 날마다 말씀을 묵상함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더 깊이 알아가게 하소서.
▣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이제 아침 큐티 시간은 식사 시간처럼 제게 자연스런 습관이 되었습니다. 아침 5시 20분 자명종이 울리면 무조건 일어나 세수로 정신을 차린 후, 식탁에 앉아 큐티를 합니다. 아침밥이 그렇듯이 때로는 꿀맛 같은 큐티 시간을 갖지만, 많은 경우 의무적인 식사 시간처럼 지나가 버리곤 합니다. 하지만 제게는 이 시간이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시간입니다. 아침 큐티 시간에 주시는 말씀이 오늘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 때로 한 번의 큐티로 잘 알아듣지 못할 때는 몇 번에 걸쳐 같은 메시지를 주십니다. 한동안 보직 해임 통보로 실망하고 힘들어할 때 하나님은 시편 61-66편에 걸쳐 계속해서 ‘저를 단련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게 하셨습니다. 직원들의 업무 평가를 앞두고 있을 때는 디모데전서 5장 21절 말씀을 통해 “편견과 편벽 없이 하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흐트러져 있는 청년부의 부장을 맡게 되어 걱정과 염려가 생겼을 때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시 46:10)라는 말씀으로 마음을 강하게 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주님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으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저에게 큐티 시간은 절대로 놓칠 수 없는 귀하고 귀한 시간입니다.
/ 방선오
* 기도: 제 인생의 등불 되시는 주님, 저를 위해 예비하신 약속을 찾아 말씀을 볼 때 제 마음에 성령의 빛을 비추소서. 환난이나 곤고에 처할 때 읽었던 말씀을 생각나게 하사, 필요할 때마다 주님의 약속을 적용함으로 올바른 기도를 할 수 있게 하소서.
▣ 신앙과 말씀
우리의 신앙이 성장하고 우리의 삶이 변화되는 것은 우리가 받는 말씀을 사람의 말로 받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면서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은, 사람을 통해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지 않고 그 말씀이 자신을 변화시키리라는 믿음을 갖기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선포된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을 때 우리의 믿음이 굳게 설 수있고 그 믿음의 그릇에 하나님의 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데살로니가전서 2:13)
* 기도: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도 우리 가운데 살아서 역사하고 계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들이 언제나 성경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믿음 위에 굳게 서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말씀 묵상속에서 영감을 얻은 하이든
오스트리아의 하이든은 <천지창조>와 같은 오라토리오<종교적 아극>를 발표한 위대한 작곡가이다. 언젠가 그의 교회음악이 어쩌면 그렇게 감동적일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할 때면 풍성한 기쁨으로 인해 곡조들이 춤추듯이 떠오르며, 그러면 나는 펜을 움직여 용서받은 기쁨과 감사하는 영혼으로 주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음악을 작곡합니다" 라고 말했다. 하이든은 말씀을 묵상함으로 아름다운 오라토리오를 발표할 수 있었던 것이다.
▣ 집에 놔둔 칼
옛날 어떤 검객이 집에다 칼을 놔둔 채 밖으로 나왔다가 강도를 만났다. 칼을 든 강도가 “있는 것을 다 내놓으라”고 하자 검객은 “네 이놈! 내가 누군 줄 아느냐?”고 소리쳤다. 강도는 웃으면서 “잘 모르지만 내게 귀중품을 바칠 사람으로 안다”고 조롱했다. 검객은 “우리 집에 칼이 있다. 나는 검객이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강도는 “칼도 없는 검객이 입만 살았구나”라면서 달려들어 검객이 가지고 있던 것을 다 빼앗았다.
하나님의 말씀은 검이다(엡 6:17). 말씀을 깨달았으나 삶에 적용하지 못하는 성도는 집에 칼을 놔둔 검객과 같다. 또한 ‘살았고 운동력이 있는’(히 4:12) 능력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원수 마귀에게 꼼짝 없이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성도는 언제나 말씀의 검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군인이 무기 없이 보초를 설 수 없다. “에브라임 자손은 병기를 갖추며 활을 가졌으나 전쟁의 날에 물러났도다”(시 78:9).
- 김상길 논설위원 (국민일보)
▣ 말씀에 관한 성경 말씀
0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시12:6)
0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시119:9)
0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시119:50)
0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하나이다. (시119:103)
0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 105)
0 내가 새벽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주의 말씀을 묵상하려고 내 눈이 야경이 깊기 전에 깨었나이다.(시119:147-148)
0 너희는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 말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 말씀은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니 너희는 말하지 말라 하였으나 너희가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 하였은즉(렘23:38)
0 여호와께서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선한 말씀, 위로하는 말씀으로 대답하시더라(슥1:13)
0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마4:4)
0 말씀이 길 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막4:15)
0 예수께서 가라사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눅11:28)
0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
0 또 말하되 조금 있으면이라 하신 말씀이 무슨 말씀이냐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거늘(요16:18)
0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 하더라(행12:24)
0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벧전1:25)
예수님의 탄생을 “나심”이 아니라 “오심”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님의 오심을 이렇게 규정할 수 있다.
“대화자”로서 오신 예수님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란 맨 처음 거기에는 삶의 “공유”가 있었다. 하지만 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가로막고 말았다. “대화의 단절”이 생겨났다. 이제는 정상적인 대화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하나님의 수준으로 올라서든지 하나님이 인간의 수준으로 내려오든지 둘 중의 하나가 선택되어야 했다. 그러나 인간은 결코 하나님의 수준으로 올라갈 수 없었다. 죄의 멍에가 너무도 무겁고 컸기 때문이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하나님이 인간 편으로 내려오셔야 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의 막힌 대화의 담을 헐어버리셨다. 그는 하늘 보좌의 자리를 버리고 죄인의 자리에 오셨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증언한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 1:1).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 태워도 없어지지 않는 ‘말씀’
어떤 남자가 알코올에 중독돼 비참한 삶을 살고 있었다. 어느 사람이 그의 아내에게 성경을 한 권 줬는데 아내는 성경을 읽다 예수를 믿게 됐다. 아내는 성경을 통해 많은 위로를 받고 그것을 보물처럼 여겼다. 하지만 남편은 아내의 새로운 신앙을 비웃기만 했다.하루는 남편이 또 만취해 집에 돌아와 아내의 손에서 성경을 빼앗아 난로속에 던져버렸다.“보자, 네 성경이 뭐가 될지” 다음날 아침 남편은 남은 재를 치우다가 타다 남은 성경 몇쪽을 보게 됐다. 그중 마태복음 24장 35절에 있는 예수님의 말씀이 눈에 들어왔다.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나의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그 구절을 읽고 그는 깜짝 놀랐다. 성령께서 그 경험을 사용하신 것이다. 그는 죄책감을 강하게 느꼈고 결국 그의 영혼은 구원의 믿음을 얻게 됐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브리서 4:12)
/김상복 목사
▣ 재료가 있어야 불이 탄다
1962년 화재가 발생한 이후 45년 동안 불이 꺼지지 않고 있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콜롬비아 카운티에 위치한 센트레일리아 마을. 그곳은 유령 마을로 전락한 지 오래다. 지난 1984년 주 당국은 거주하고 있던 지역 주민들에 대한 철수명령을 내렸는데, 그 이유는 도로 및 들판 등 마을 곳곳이 화염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40여년 전까지만 해도 센트레일리아 마을은 석탄 채굴로 사람들의 왕래가 활발하던 곳이었다. 이 마을이 재앙에 휩싸인 것은 1962년의 작은 화재 때문이다. 불길은 진화됐지만 불씨가 석탄 광맥에 옮겨 붙었고, 이후 지하에 매장된 석탄이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마을은 서서히 연소되기 시작해 현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도로 또한 끊어진 상태다. 센트레일리아 마을의 지하에 매장된 석탄이 다 연소되려면 앞으로 250년이 더 걸릴 것이라고 한다.
불꽃이 한 번 타오르면 연료가 바닥날 때까지 계속된다. 우리들에게 성령의 불이 지속적으로 피어오르게 하려면 말씀의 연료가 필요하다.
▣ 반복된 말씀
스펄전을 회심시킨 것은 콜로체스터의 예배당에서 있었던 어느 감리교의 평신도 설교자의 설교가 아니었다. 그를 변화시킨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나를 바라라 그리하면 땅 끝까지라도 함께 하리라."
스펄전은 그 순간을 이렇게 회상했다.
"그 설교자는 그다지 많은 것을 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그로 하여금 계속 그 말씀을 되풀이하게 하신 것입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 말씀 이외에 필요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지금도 분명히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지금도 분명히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누구든지 원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그냥 고민하던 문제가 해결되어버리지요. 문제 해결을 하기 위해 여기 저기 기웃거릴 필요 없어요. 골방으로 들어가 문 걸어 잠그고 딱 꿇어앉아 하나님의 음성이 들릴 때 까지 안 일어나겠다는 작심을 하세요. 그러면 들립니다. 그리고 한 가지 절대로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는데...." 라고 말하는 것을 삼가십시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무척 싫어합니다. 그 이유는 저도 모르겠고, 어쨌든 꼭 마음속에 비밀로 간직하십시오. 그 마음속의 비밀이 많은 사람일수록 얼굴 표정을 보면 환하게 빛이 납니다.
/최용우
▣ 말씀을 듣는 믿음
성경: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꼭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누가복음 10:42)
한 어머니가 아이와 함께 이름있는 선생님을 찾아와 말했습니다.“우리 아이는 워낙 총명해서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아이입니다. 가르침을 부탁드립니다”하고 돌아갔습니다. 얼마 후 그 어머니가 다시 찾아왔습니다. “어떻습니까? 매우 똑똑하죠?” 그 때, 선생님은 아이의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아이가 말씀하신대로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아이이긴 합니다만 문제는 가장 기본이 되는 하나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일행이 예루살렘 근처 베다니에 이르러 날이 저물었습니다. 그곳에서 마르다라는 여인이 예수님의 일행을 맞이하여 하루를 묶게 되었습니다. 저녁준비에 마르다는 분주했으나 그의 여동생 마리아는 저녁준비는 하지 않고 예수님의 발 옆에 앉아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마르다가 참다 못해 불평의 소리를 합니다.“주님,제 동생이 저에게만 일을 맡기고 있는데 가만히 있으십니까? 마리아더러 저를 좀 도우라고 일러주십시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마르다야,마르다야”하고 화난 그를 두 번씩이나 다정하게 부르시며 “너는 많은 일에 마음을 쓰며 걱정을 하지만, 실제로 중요한 것은 한가지이다. 마리아는 그 많은 것들 중에 참 좋은 몫을 택하였다. 그것을 빼앗아서는 안된다”라고 오히려 마리아를 칭찬해 주셨습니다.
▣ 부러지기 쉽다
옛날에는 불에 설탕을 녹인 다음 소다를 섞어 부풀린 뒤에 형상을 찍어 그 형상 그대로 오려오면 하나 더 만들어 주었던 뽑기라는 것이 있었다.
그런데 이 뽑기를 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은 신중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면 뽑기는 부러지기가 쉽기 때문이다. 기껏 열심히 손가락을 신중히 놀려 거의 다 오려내다가 마지막 부분에 가서 부러진다면 대단히 억울한 일이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만사가 다 위태로운 상황이다. 그러나 말씀으로 내 자신을 달래며 신중을 기한다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무엇이든지 억지로 해결하려고 들면 부러져서 아주 기회가 없어지고 마는 것이다.
모든 삶은 하나님의 말씀의 테두리를 따라 강제적이 아닌 순리로서 나갈 때에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수 1:8)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적 사고를 하려면 성경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우리의 사고 그릇을 비워 두면 불순물이 들어오게 되고 비성경적 사고를 하게 됩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이 믿고 있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쉼없이 가르치고 강론하며 기록하고 입에서 떠나지 않도록 합니다. 이렇게 철저하게 말씀으로 무장한 그들은 비록 한 곳에 모여 살지 못하고 전 세계를 유랑했지만 그들만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말씀으로 철저히 무장하는 데에 그 뿌리를 둡니다.
▣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함
하나님께 구하는 것을 모두 받으려면,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속에 거해야 한다. 무슨 신비한 명상이나 황홀경을 체험함으로써 그리스도 안에 거하기를 배우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기를 배우는 방법은 바로 기록된 말씀을 받아 섭취하고 성령께서 그 말씀을 우리 마음 속에 심어주셔서 살아 역사하게 만드시도록 만드는 데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저 지식적으로 공부하는 것만으로는 안된다. 그 말씀에 대한 묵상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을 끊임없이 바라보며 성령께서 그 말씀을 우리 마음 속에 살아 있게 만드시도록 구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 속에 계속해서 맴돌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속에 거하도록 하면, 그 말씀들이 우리를 자극하여 기도하게 만든다. 그 말씀들의 틀 속에서 우리의 기도가 형성되어 나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기도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과 동일선상에 있게 되고, 결국 하나님의 응답을 받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 일을 소홀히 하고서는 기도의 응답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다. 가장 위대한 기도의 사람 중 한 사람인 조지 뮬러는 기도할 때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나서 기도가 자연스럽게 마음속에서 우러나기 시작할 때에 비로소 기도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렇게 할 때에 하나님 자신이 기도를 일으키시고, 또한 자신이 불러일으키신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 친히 응답하시는 것이다.
/ R. A. 토레이
▣ 지진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강력한 지진이 남캘리포니아 주의 찰스턴 시를 강타했다. 이 날 한 나이 많은 흑인 목사가 설교를 막 시작하려고 할 때 첫 진동이 느껴졌다. 사람들은 잠시 동안 아무 말 없이 침묵에 잠겼다. 두 번째로 더 강한 지진이 느껴졌다. 바로 그 때였다. 이 흑인 목사가 설교 노트에서 눈을 떼고 이렇게 소리쳤다.
"자, 여러분! 하나님께서 지금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 모 두 조용히 합시다."
이 날 지진이 진행되는 동안 하나님과 함께했던 하나님의 백 성들은 사실상 축복을 받았다. 그들은 지구의 혼란과 세상의 반항적인 말을 모두 물리치고 단지 하나님의 평온하고 용기를 북돋워 주는 말씀만을 듣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렇게 외쳤다.
"주님, 말씀하소서. 당신의 종들이 듣고자 하나이다."
▣ 가장 먼저 전해야 할 말씀
모라비아 교회 선교사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최초로 그린랜드에 파견되었을 때 그들은 그 곳 사람들에게 먼저 자연종교의 교리를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단 한사람의 개종자를 얻는데 무려 17년이라는 세월이 걸릴 정도로 비참한 것이었다. 어느 날 카야르낙이라는 매우 사악한 사내가 선교사의 움막에 들렀다가 우연히 선교사가 성경 읽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 때 선교사가 읽고 있었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중 마지막 한 주간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 원주민은 예수께서 죄인들을 위하여 죽으셨으며, 죄인들은 그 분을 통하여 구원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희미하게나마 알게 되었고 그에 대해 자세히 듣기 위해 선교사에게 물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저에게 자세히 말씀히 주십시오. 저도 구원받고 싶습니다."
뜻밖의 일에 선교사는 깜짝 놀랐고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카야르낙과 그의 가족은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들은 그린랜드에서 구주께 드려진 첫 열매가 되었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선교사들은 죄인들에게 가장 먼저 설교해야 할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구속의 희생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 꿀 송이 보다 더 단 하나님 말씀
본문: 시19:10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미국 농담에 거북이 교인 (Turtle Christian)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새는 9일간 먹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사람은 12일간이고 개는 20일간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런데 거북이는 500일을 먹지 않아도 살고 뱀은 800일을 견딥니다. 곤충들은 1200일을 음식 없이도 생존합니다. 그래서 참다운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 없이 사는 신자를 거북이 크리스찬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들은 매일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오늘도 꿀송이 보다 더 단 하나님의 말씀으로 아름답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등불이 되는 말씀
성경: 잠6:23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責望)은 곧 생명의 길이라 "
스웨덴의 동물학자가 "개를 보고 웃지 말라"고 경고하였습니다. 웃는 얼굴을 보고 호감을 갖는 것은 사람의 기분이고 웃으면 이빨이 나오기 때문에 개는 기분이 상합니다. 이빨을 내미는 것은 공격의 징조라는 개의 상식을 계산에 넣지 않고 내 본위로 판단하는 것이 오해입니다. 바로 인생사의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항상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도 내 생각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어서 아름답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송태승 목사
▣ 성경 말씀
1789년 영국 군함 바운티(Bounty)호에서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반란자들 중 일부는 피트게언 섬에 상륙하여 원주민들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정치적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9년이 지난 뒤 그곳에는 살인과 폭력, 성(性)의 문란, 알콜 중독 등 심각한 사회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고 이러한 결과에 회의를 품은 지도자 플래처 크리스천은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남은 사람들은 영국으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배가 떠나기 두 달 전 존 아담스라는 사람이 창고에서 우연히 성경책 한 권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성경을 읽다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다시 예수님을 찾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영국으로 가는 배에 오르지 않고 성경과 함께 섬에 남았습니다. 이제 죄악으로 얼룩졌던 피트게인 섬은 한 권의 성경으로 다시 소생하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한 활자나 많은 출판물 중의 하나가 아닙니다. 성령이 살아 계셔서 생명을 불어넣은 책입니다. 때문에 성경 말씀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말씀은 역사 속에 함께 하고 있는 능력입니다.
"성경: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24:35)
* 기도: 주님,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을 늘 묵상하게 하소서
▣ 하나님의 말씀
성경: "하나님 말씀은 다 순전하며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시니라 너는 그 말씀에 더하지 말라 그가 너를 책망하시겠고 너는 거짓말하는 자가 될까 두려우니라"(잠30:5,6)
로버트 모리슨은 중국에 파견된 개척 선교사였습니다. 그가 성경을 중국어로 번역해 가던 중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라는 같은 구절에 이르렀을 때의 일입니다. 함께 번역 작업을 해온 중국인 동료가 말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결코 구세주를 뵙게 될 것이라거나 하나님을 면전에서 맞대어 보게 될 것이라고는 믿지 않을 것입니다. 이 구절의 번역을 다르게 바꾸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자 모리슨이 대답하였습니다.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하도록 합시다."
순전하다는 것은, 마치 뜨거운 불로 연단하여 찌꺼기를 모두 제거한 금처럼 순수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순전해서 그 속에 더러운 것이나 잘못된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말씀만 믿고 의지하고 나가면 그 말씀이 참으로 드러나는 것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을 모든 시험과 환난에서 지켜 보호해 주십니다.
* 묵상: 말씀 가운데서 삶의 지혜를 공급받고 있습니까?
▣ 하나님의 말씀을 좇으라
위대한 사람 옆에 서 있다고 내가 저절로 위대해지지 않습니다. 배부른 사람 옆에 있다고 내가 배부르지 않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십시오. 말씀을 따라다니십시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교회나 목사를 좇아다니지 마십시오. 사람을 좇아다니면 꼭 얻는 것이 있습니다. 실망과 상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좇으십시오.
/하용조 목사
▣ 말씀과 일관된 삶
미국의 어느 법관이 취임석상에서 '나는 한 때 무신론자였지만 내가 그리스도를 부인할 수 없었던 것은 내 아버지의 성경 말씀과의 일관된 생활로 인해서입니다. 그 후로 차츰 그리스도를 신뢰하게 되었으며, 성경이 내 삶의 나침반이 되었습니다'라고 신조를 말하였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말씀과 일관된 삶이 가장 큰 전도가 아닌가 생각한다
▣ 말씀적용
두 기독교인 신사가 같은 좌석에 앉아 기차 여행을 하고 있었다. 점심 시간이 되자 그중 한 사람이 두 개의 샌드위치 중 하나를 먹기 시작했다. 다른 한 사람은 그의 동료가 먹는 모습을 보자 배고픈 듯한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한 개의 샌드위치를 먹는 사람에게 '나는 최근에 주님의 계명에 조용히 사로잡힌 일이 있습니다. 당신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아십니까?' '거참 좋은 말씀입니다' 하며 남은 샌드위치를 입 속에 집어넣고는 이렇게 응수했다. '나는 또 다른 성경말씀을 잘 알고 있습니다. 네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들의 입장에서만 성경을 해석한다. 그리고 자기의 이기심을 채우기 위해 말씀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 말씀의 표적
캐나다 동북쪽에 사는 아이누이츠라는 에스키모족이 있습니다. 이들은 지금도 고수하는 그들만의 관습이 있다고 합니다. 악령을 쫓기 위해 문이나 현관에 물건을 달아맵니다. 매의 깃털이나 동물의 가죽 혹은 독수리의 깃 등을 문에 달아놓으면 악령을 쫓아낸다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부적과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부적을 붙여본 경험이 있습니까? 우리의 신령한 표적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것은 문이나 현관에 붙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 판에 새기고 다닐 표적입니다. 이 말씀을 미간에 붙이고 문설주에 붙이고 손목에 매달아놓는 것입니다. 말씀을 늘 붙이고 새기고 다니는 사람은 악한 영이 넘보지 못합니다. 말씀을 떠나 사는 사람을 마귀는 가장 좋아합니다. 언제든지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성희 목사(연동교회)
▣ 믿음을 키우는 약
한번은 '무디'선생이 자신의 간증을 했다. '내가 하나님께 믿음을 달라고 기도한 시간만 합쳐도 몇 달은 족히 될 것이다. 내 생각으로 믿음이란 번개불과 같이 어느 날 나를 확 달아오르게 할 어떤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수없이 기도해도 믿음이 오지 않았다. 그런 어느 날 나는 로마서 10장을 읽다가 '그런즉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란 구절을 보았던 것이다. 그 즉시 난 성경을 부등켜 안고 믿음을 구했다. 그리고는 성경을 다시 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기 시작했더니 믿음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우리의 믿음을 자라게 하는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고 알고 이를 순종하는것이 제일이다.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눅 8:15)
흙은 원래 부드럽지만 사람들이 밟고 오랜 시간이 지나면 굳어지고 단단하게 되는 것이 길바닥입니다. 어린아이의 마음은 부드럽고 복음을 전하면 잘 받아들이지만 길바닥같이 인생의 경륜이 쌓인 사람들은 말씀을 받아들이기가 무척 힘듭니다. 마음이 부드럽지 못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길바닥에 떨어진 것과 같아서 믿음이 자랄 수 없고 하나님을 느끼거나 천국을 체험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씨앗이 잘 자랄 수 있는 좋은 땅은 부드러운 마음입니다.
/최홍준 목사(호산나교회)
▣ 말씀으로 돌아가자
얼마 전 신문에 재미있는 글이 실렸습니다. 부동산 투자에 관한 글이었는데 제목이 '망하는 길 10가지'였습니다. 그 첫째가 "전문가나 컨설팅업체의 말을 100% 믿는다. " 그러면 반드시 망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이런 사례가 실려 있었습니다. "투자론을 강의하는 유명대학 K교수, 그의 강의는 늘 인기가 있다. 사람을 몰고 다닐 정도다. 그런 그가 한 초청 강연장에서 그 잘하던 강의를 망친 적이 있다. 왜냐하면 자신이 세들어 살고 있는 집 주인이 청중 속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프란시스 쉐퍼는 그의 책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인간적인 지식이 아닙니다. 얄팍한 술수나 꾀가 아닙니다. 우리를 향하신 거룩하신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아는 지혜입니다. 초대 교회가 타락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을 때, 사막으로 나아갔던 사막의 교부들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새롭게 깨닫는 운동이 있었습니다. 그런 운동을 통해서 당시의 교회들이 새로워졌습니다. 중세 교회가 교권주의에 매여 하나님의 뜻을 거역할 때, 종교개혁자들은 말씀을 새롭게 연구하기 시작했고, 성경에서 개혁의 불길을 찾았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말씀을 바로 알고, 바로 깨닫고, 그 말씀을 따라 살기를 결단하게 될 때 하나님은 우리를 바꾸실 것입니다. 우리를 온전케 하실 것입니다.
/ 서정오
▣ 말씀의 맛을 보라
어떤 총각이 여자 친구와 결혼할 것을 결심하였지만 그 총각은 부끄러움이 많아서 여자 친구를 만나지 못하고 매일 연애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그런 일이 3주 계속된 다음, 드디어 그녀는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가 결혼한 사람은 연애편지를 보낸 그 총각이 아니라, 매일 편지를 배달한 우체부였다. 계속적인 접촉이 사랑에 이르렀고 결국 결혼으로 골인하게 된 것이다.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주님과 접촉하게 되고 말씀을 통해서 주님의 인자하심이 어떠한지, 그 맛을 보게 되면 더욱 말씀을 갈구하게 되는 것이다. 주님의 맛을 말씀으로 보고 말씀을 더욱 갈구하면 그 결과 더욱 성장하게 된다. 이것이 성장의 순환이다. 죄악을 통한 세상의 맛이 쓰다는 것을 느껴야 말씀을 통한 주님의 맛을 갈구하게 된다. 말씀을 통한 주님의 맛을 보고 나면 죄악을 통한 세상의 맛이 시들해진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사기, 위선, 시기, 비방 등 모든 악독을 버리고 순수한 말씀의 젖을 갈구해야 한다. 부모가 어린 자식이 위험한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에 무조건 그것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장난감을 주면서 그것을 버리게 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말씀을 통한 인자하신 주님의 맛을 대안으로 내어놓으면서 옛 사람의 달콤한 죄악들을 버리게 하신 것이다. 죄를 버리고 말씀을 갈구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성장하자.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수 1:8)
* 기도 : 주를 알아가는 지식이 커가면서 주를 향한 열정이 식어져가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주의 말씀을 들을 때 주를 향한 순수한 사랑이 회복되게 하시며, 그 말씀이 나의 심령과 골수를 쪼개는 강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소서.
/권성수
▣ 코끼리의 칼슘
코끼리는 우둔해 보이지만 생존을 위한 지혜는 가히 경이롭다. 코끼리는 더울 때 귀로 부채질을 하거나 목욕을 하여 더위를 이겨낸다. 또는 침을 잔뜩 괴었다가 코로 들이마신 후, 몸에 뿌리는 식으로 더위를 피한다. 물론 이 방법은 근처에 개울이나 연못이 없을 때 쓰는 비상 수단이다. 햇볕을 피해 나무 그늘을 찾아서 몇 시간이고 꼼짝 않고 서 있을 때도 있다.
코끼리의 지혜는 음식 섭취에서도 나타난다. 코끼리는 이빨을 튼튼하게 하기 위해서 대나무를 즐겨 먹는다. 코끼리는 단단하고 질긴 통 대나무를 으깬 다음, 코로 말아 올려 먹기도 하고, 그냥 입으로 ‘우지직’ 씹어 먹기도 하면서 부족하기 쉬운 영양소를 섭취한다고 한다. 또한 아프리카의 건조한 초원 지대의 코끼리는 죽은 동물의 뼈를 먹음으로써 부족한 칼슘을 보충한다. 그들은 보통 하루에 300kg 정도의 먹이를 먹는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몸에 꼭 필요한 영양분을 찾아 섭취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의 영적 건강도 무슨 음식을 섭취하는가와 직결된다 하겠다. 물론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은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을 섭취해야 한다. 그러나 어리석은 이는 편식에 길들여져 버린다. 어린아이가 밥상에서 편식을 하듯 말씀에 대한 편식을 하는 것이다. 귀에 거슬리는 설교에는 방음막을 친다. 좀 까다롭거나 부담스러운 말씀은 그냥 건너뛴다. 그러나 깨달아야 한다. 코끼리는 달콤한 야자 열매만 찾아다니지 않는다. 코끼리는 칼슘을 보충하기 위해 억센 대나무를 씹기도 하고, 죽은 동물의 뼈를 먹기도 한다. 당신에게도 이런 결단이 필요하다.
/ 이진우
▣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라
성경: 행4:19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초대 교회사에 나오는 위대한 순교 사화입니다. 로마 교회의 식스투스 감독은 경건하고 인자하여 그의 목회에 감동 받은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습니다. 그는 빈민 구제와 사랑을 실천하여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발레리아누스 황제는 그를 처형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조용히 순교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식스투스 감독이 사형장에 끌려갈 때 라우렌티우스 집사가 식스투스의 뒤를 따라가면서 “아버지여, 당신께서 제단으로 나아 가실 때 늘 저에게 도움을 청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어찌하여 지금은 저를 데려가지 않으십니까?”하며 눈물을 흘립니다. 그때 식스투스는 “사랑하는 아들아, 너희들도 며칠 후면 나의 뒤를 따르게 되리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라우렌티우스 집사는 당시에 식스투스 감독의 교회 수석 집사로 거대한 교회의 재산을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이 막대한 재산을 알게 된 로마 시장은 교회의 모든 재산을 상납토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라우렌티우스 집사는 교회 재산을 정리하겠다는 구실을 내세워 상납일을 연기하도록 허락받고 교회당의 모든 보물을 다 팔았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의존하고 있는 수천의 민중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교회당에 그 사람들을 모집하였습니다. 약속한 날 시장이 교회당으로 올라오면서 “보물은 어디에 있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문을 열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때 라우렌티우스 집사는 교회당 문을 활짝 열고 소경, 벙어리, 걸인, 병자, 고아, 과부의 무리를 가리키며 “교회의 보물이 여기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눈치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성실히 행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오늘도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아름답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송태승 목사
▣ 말씀을 청종하는 자세
언젠가 조지 윗필드가 설교를 할 때 한 사람이 중간에서 열심히 졸고 있었습니다. 윗필드는 설교를 멈추고 단 아래로 내려가서 졸고 있는 그 사람에게 이렇게 충고하였습니다. “만약에 내가 하는 설교가 윗필드 자신의 말이라면 주무셔도 좋습니다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데 어떻게 졸 수 있습니까?” 윗필드는 심하게 꾸중하고 난 다음에 후반부 설교를 다시 이어 갔습니다. 졸음에서 깨어난 그 사람이 일생 일대의 큰 은혜를 받았다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설교를 듣고 난 후에 들은 메시지는 잊어버리고 오직 설교 중에 동원되었던 재미있는 예화만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설교는 끝났는데 나중에 교인들의 마음속에 남은 것이라고는 배꼽을 잡고 웃게 만들어 주었던 예화밖에 없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돌아다니는 수많은 예화가 우리의 마음과 삶을 바꿔 놓을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입니다. 설교를 듣는 시간이 강연을 듣는 시간과 같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청교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당신이 설교를 들으면서 그 속의 재담이나 일화에 귀를 기울이고 즐거워하고 있다면 그것은 마치 배고픈 사람이 화려하게 차려 준 밥상에서 밥 대신에 밥그릇의 무늬를 보면서 즐거워하는 것과 같다.”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귀기울여 들어야 할 것이 바로 하나님 자신의 목소리라는 점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여! 무엇이든 말씀하시옵소서. 종이 듣겠나이다” 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 예배의 감격에 빠져라 / 김남준
▣ 갈매기의 죽음
영국을 여행하는 한 나그네가 관광지로 유명한 해안지대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 바닷가에 많은 갈매기가 죽어 있는 것이었다. 그는 죽은 갈매기떼를 치우고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되어 그에게 물었다. "이 많은 갈매기가 왜 죽게 되었습니까?" 그는 대답했다. "여기는 관광지가 되어서 여름 한철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데 관광객들은 늘 갈매기들에게 빵과 과자와 사탕을 줍니다. 갈매기들이 사람들의 손바닥에 올라 앉아서 그런 먹이를열심히 쪼아 먹지요. 사람들은 그게 재미있어서 더 열심히 그런 먹이를 주곤 합니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갈매길들은 입맛이 달라졌고, 그래서 이제는 자연의 먹이에는 식욕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이제 철이 바뀌어서 관광객들의 발길이 뚝 끊어지고 보니 갈매기들은 별 수 없이 굶어 죽고 만 것입니다." ...누가 이 갈매기들을 죽이자고 과자를 주었겠는가? 갈매기를 향해서 총을 쏘는 사람들에게는 나쁜 사람들이라고 나무라지만 갈매기에게 과자를 주는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고 나무라는 사람은 없다. 그런 먹이가 결국에는 갈매길들을 떼죽음시킨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었다. 갈매기가 먹어야 할 음식은 따로 있다. 갈매기는 갈매기로서의 길을 가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나름대로 즐기느라고 이렇게 갈매기에게 먹여서는 않되는 먹이를 준 결과로 이러한 일이 생겼다는 것이다.
사람은 분명히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면 꼭 먹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 목회 사회학자가 연구해 보았는데, 넉 주일만 교회 나오지 않으면 하나님의 존재가 안보인다고 한다. 먹어야 할 것은 먹지 않으면 안 먹어야 될 것을 먹게 된다.
/곽선희 목사 설교예화
▣ 가장 큰 지혜
손으로 물을 건져 올려 보라. 이내 새어 나가 버리고 말 것이다. 그러나 그릇으로는 얼마든지 퍼 올릴 수 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지 않으면 보배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의미 없이 새어 나가 버릴 1초를 영원으로 건져 올려 담는 그릇이다. 허망하게 사라져 버릴 1분 1초를 영원이란 보배로 꿰어 주는 사슬이다. 부디 어떤 경우에도 잊지 말기를 바란다. 인생은 절대로 거창한 데 있지 않다. 지금 당신을 스쳐 지나가고 있는 1초가 바로 인생이다. 그 1초를 어떻게 맞느냐에 따라 당신의 일생이 결정되는 것이다.
지금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그릇 삼아, 그 1초를 영원으로 건져 올려라. 하나님의 말씀을 당신 삶의 씨줄로 삼아라. 그리고 그 씨줄에 당신을 스쳐 가는 1초를 날줄로 엮어 가라. 그때부터 당신의 삶은 절대적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 절대적 의미는 영원하신 절대자인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만 움트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은 결코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한줌의 흙에 지나지 않을, 바로 당신 자신을 위한 것이다. 그렇기에 청년의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보다 더 큰 지혜는 없다.
- 참으로 신실하게 / 이재철
* 기도: 하나님, 전심으로 하나님을 구하고 말씀을 지키기 원합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자들에게 복에 복을 더할 줄 믿사오니 청년의 때에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행동으로 제 자신을 관리하게 하시며, 주님의 말씀을 근실히 지키도록 도와주소서.
▣ 지혜의 말씀
“지혜 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이요 명철한 자는 모략을 얻을 것이라 잠언과 비유와 지혜 있는 자의 말과 그 오묘한 말을 깨달으리라”(잠 1:5,6)
영국 왕 제임스 1세는 킹 제임스 성경을 번역한 독실한 신자였는데 그는 작은 범죄도 엄하게 다스렸습니다. 한 번은 암스트롱이라는 좀도둑이 양을 훔치다 붙잡혀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이 때 암스트롱은 사형을 피하기 위해 한 가지 묘안을 짜낸 후 간수를 불렀습니다. “나는 어차피 죽을 몸, 마지막으로 성경을 읽고 싶소. 임금께 내 뜻을 전해주시오” 제임스 1세는 그 소식을 듣고 대답했습니다. “참 기특한 죄인이로군. 그에게 성경을 주어라. 그리고 성경을 모두 읽은 후에 사형을 집행하라” 암스트롱은 그날부터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나도 사형을 집행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루에 딱 한 절씩만 성경을 묵상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제임스 1세는 그를 풀어주며 말했습니다. “집에 가서 성경을 읽어라” 암스트롱은 그 후 새사람이 되어 봉사의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항상 지혜의 말씀에 귀기울이고 마음에 새기는 지혜로운 자는 잠언이 주는 교훈을 열린 마음으로 듣고 순종하여 더욱 지혜로워집니다. 또한 선악과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능력이 있는 명철한 자는 잠언의 말씀을 통해 모략을 얻습니다. ‘모략’이란 인생의 진로를 바른 방향으로 인도하는 길잡이의 역할을 합니다. 잠언은 명철한 자의 인생을 성공의 길로 인도해 주는 것입니다.
* 기도: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무지했던 제 모습을 고백합니다. 저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소서. 날마다 말씀을 묵상함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더 깊이 알아가게 하소서.
▣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이제 아침 큐티 시간은 식사 시간처럼 제게 자연스런 습관이 되었습니다. 아침 5시 20분 자명종이 울리면 무조건 일어나 세수로 정신을 차린 후, 식탁에 앉아 큐티를 합니다. 아침밥이 그렇듯이 때로는 꿀맛 같은 큐티 시간을 갖지만, 많은 경우 의무적인 식사 시간처럼 지나가 버리곤 합니다. 하지만 제게는 이 시간이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시간입니다. 아침 큐티 시간에 주시는 말씀이 오늘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 때로 한 번의 큐티로 잘 알아듣지 못할 때는 몇 번에 걸쳐 같은 메시지를 주십니다. 한동안 보직 해임 통보로 실망하고 힘들어할 때 하나님은 시편 61-66편에 걸쳐 계속해서 ‘저를 단련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게 하셨습니다. 직원들의 업무 평가를 앞두고 있을 때는 디모데전서 5장 21절 말씀을 통해 “편견과 편벽 없이 하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흐트러져 있는 청년부의 부장을 맡게 되어 걱정과 염려가 생겼을 때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시 46:10)라는 말씀으로 마음을 강하게 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주님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으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저에게 큐티 시간은 절대로 놓칠 수 없는 귀하고 귀한 시간입니다.
/ 방선오
* 기도: 제 인생의 등불 되시는 주님, 저를 위해 예비하신 약속을 찾아 말씀을 볼 때 제 마음에 성령의 빛을 비추소서. 환난이나 곤고에 처할 때 읽었던 말씀을 생각나게 하사, 필요할 때마다 주님의 약속을 적용함으로 올바른 기도를 할 수 있게 하소서.
▣ 신앙과 말씀
우리의 신앙이 성장하고 우리의 삶이 변화되는 것은 우리가 받는 말씀을 사람의 말로 받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면서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은, 사람을 통해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지 않고 그 말씀이 자신을 변화시키리라는 믿음을 갖기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선포된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을 때 우리의 믿음이 굳게 설 수있고 그 믿음의 그릇에 하나님의 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데살로니가전서 2:13)
* 기도: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도 우리 가운데 살아서 역사하고 계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들이 언제나 성경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믿음 위에 굳게 서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말씀 묵상속에서 영감을 얻은 하이든
오스트리아의 하이든은 <천지창조>와 같은 오라토리오<종교적 아극>를 발표한 위대한 작곡가이다. 언젠가 그의 교회음악이 어쩌면 그렇게 감동적일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할 때면 풍성한 기쁨으로 인해 곡조들이 춤추듯이 떠오르며, 그러면 나는 펜을 움직여 용서받은 기쁨과 감사하는 영혼으로 주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음악을 작곡합니다" 라고 말했다. 하이든은 말씀을 묵상함으로 아름다운 오라토리오를 발표할 수 있었던 것이다.
▣ 집에 놔둔 칼
옛날 어떤 검객이 집에다 칼을 놔둔 채 밖으로 나왔다가 강도를 만났다. 칼을 든 강도가 “있는 것을 다 내놓으라”고 하자 검객은 “네 이놈! 내가 누군 줄 아느냐?”고 소리쳤다. 강도는 웃으면서 “잘 모르지만 내게 귀중품을 바칠 사람으로 안다”고 조롱했다. 검객은 “우리 집에 칼이 있다. 나는 검객이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강도는 “칼도 없는 검객이 입만 살았구나”라면서 달려들어 검객이 가지고 있던 것을 다 빼앗았다.
하나님의 말씀은 검이다(엡 6:17). 말씀을 깨달았으나 삶에 적용하지 못하는 성도는 집에 칼을 놔둔 검객과 같다. 또한 ‘살았고 운동력이 있는’(히 4:12) 능력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원수 마귀에게 꼼짝 없이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성도는 언제나 말씀의 검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군인이 무기 없이 보초를 설 수 없다. “에브라임 자손은 병기를 갖추며 활을 가졌으나 전쟁의 날에 물러났도다”(시 78:9).
- 김상길 논설위원 (국민일보)
▣ 말씀에 관한 성경 말씀
0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시12:6)
0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시119:9)
0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시119:50)
0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하나이다. (시119:103)
0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 105)
0 내가 새벽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주의 말씀을 묵상하려고 내 눈이 야경이 깊기 전에 깨었나이다.(시119:147-148)
0 너희는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 말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 말씀은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니 너희는 말하지 말라 하였으나 너희가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 하였은즉(렘23:38)
0 여호와께서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선한 말씀, 위로하는 말씀으로 대답하시더라(슥1:13)
0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마4:4)
0 말씀이 길 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막4:15)
0 예수께서 가라사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눅11:28)
0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
0 또 말하되 조금 있으면이라 하신 말씀이 무슨 말씀이냐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거늘(요16:18)
0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 하더라(행12:24)
0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벧전1:25)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