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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예화 88편 모음

최용우............... 조회 수 28182 추천 수 0 2009.01.21 14: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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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예화 88편 모음

1.나의 변화

무너졌습니다. 무너졌습니다. 백화점이 무너졌습니다.
끊어졌습니다. 끊어졌습니다. 다리가 끊어졌습니다.
폭파되었습니다. 폭파되었습니다. 빌딩이 폭파되었습니다.
떨어졌습니다. 떨어졌습니다. 비행기가 떨어졌습니다.
무너졌습니다. 무너졌습니다. 내 자존심이 무너졌습니다.
끊어졌습니다. 끊어졌습니다. 내 나쁜 습관이 끊어졌습니다.
폭파되었습니다. 폭파되었습니다. 내 옛 삶이 폭파되었습니다.
떨어졌습니다. 떨어졌습니다. 나는 세상에서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는 새롭게 다시 태어났습니다. ⓒ최용우

2.변화

<사람은 변화되지 않는다. 태어날때부터 가지고 있는 그 사람의 고유한 특성, 예를 들어 기질적인 특성, 혈액형에 따른 특징, 성향적인 특성 같은 것은 변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특히 상담이나 심리학이나 그 분야에 대해 많이 알면 알수록 그렇게 믿어버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변화된다! 뒤집어진다!> 성경과 예수님은 사람은 변화된다고 말씀하시고 실제로 많은 사람을 변화시켜 주신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떠나라"(창12:1)
"나오라"(창19:17)
"버리라"(마19:27,마16:24)
"미워하라"(빌3:7-9)
"나를 따르라"(마19:21)
이런 명령들은 거기에서 지금 당장 긴급히 뛰쳐나오라는 '능동태의 명령'입니다. 옛 생활, 성품에서 벗어나라. 우울질,담습질,점액질,다혈질에서 뛰쳐 나와 '예수가 내 안에 사는 예수질'이 되어라! A형, B형, AB형, O형을 버리고 J형이 되어 몸 안에 예수의 피가 흐르게 하라!
옛생활과 성품에서 단 한발자국도 떠나지 않고 깔고 뭉개고 앉아서, 사람은 변하지 않네 어쩌네 말만 하는 사람은 예수 믿을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은 옛사람을 단호히 "버리고" 새사람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최용우

3.변화를 가로막는 26가지 고정관념과 말

"얼마나 가나 봐라”(불신주의)
"전에 안해본지 아나?”(경험제일)
“우리 회사가 하는 일이 별 수 있겠어?” (부정적 사고)
“빨리 크는 놈이 일찍 나간다” (뒷다리 잡기)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마라” (복지부동)
“또 바뀔 텐데, 뭘” (비관주의)
“그래, 너는 잘 될 것 같으냐?” (물귀신 작전)
“너나 잘해” (냉소주의)
“중간만 가면 돼” (평균주의)
“이럴 땐 납작 엎드려 있으면 돼” (복지안동)
“줄 잘 잡아야 해” (정실주의)
“시간이 약이라니까” (세월이 약)
“잘 될거야” (막연한 기대)
“그거 우리 부서일 맞아? (책임전가)
“하라면 해” (지시 일변도)
“구관이 명관이다” (과거 회귀)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 (지나친 보수주의)
“문서로 보고해” (문서 만능주의)
“어떻게 하겠어. XX지시 사항인데...” (지시의 설사)
“감히 누구 말씀인데...” (관료주의,성역의 존재)
“규정에 있나?”(규정 탓)
“윗대가리가 바뀌어야지...” (상사 탓)
“직원들은 우수한데 회사 때문에 안돼” (회사 탓)
“사업계획에 있나?” (경직된 사고)
“대충해” (적당주의)
“당신이 부장이야” (임파워먼트 부재)
출처/김종욱(한빛은행 수석부행장) http://pressian.com

4.히틀러 경호원의 고백

히틀러 경호원의 고백 히틀러의 경호원중에 쿠르트 바그너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히틀러를 신처럼 숭배했는데 전쟁이 끝날 무렵 히틀러가 자살하자 자신의 인생도 붕괴되는 것을 깨닫고 자살을 결심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커피 한잔을 마시려고 하던중 전도책자를 보고 집어들었다가 끝까지 다읽게 되었다. 그는 여기서 크게 변화되었다. 진정한 삶의 의미와 경배대상을 찾은 그는 바로 부근의 목회자를 찾아가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이때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고 한다.
"예수님은 구세주이시며 평화의 주인이십니다"

5 찌거기 인생의 대역전

미국 시카고에 있는 어느 한 교회에서 세살짜리 여자아이의 장례식이 있었다. 먹지 못해 굶어 죽은 아이였다. 그런데 이 불쌍한 여자아이의 장례식에 남루한 옷을 입고 충혈된 눈으로 찾아온 한 알코올 중독자가 있었다. 그는 사람들이 기도하는 틈을 타 죽은 아이의 신발을 벗겼다. 그걸 팔아 술을 마신 그 사람은 바로 죽은 아이의 아버지였다. 20년 후,시카고 제일장로교회에서는 수천명의 성도들 앞에서 한 사람이 외치고 있었다.
“죽은 딸의 장례식에서 신발을 훔쳤던 파렴치범은 바로 저였습니다. 만물의 찌꺼기 같은 나를 다시 살려주시고 하나님의 일꾼으로 삼아주신 분은 위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가 바로 시카고의 부흥사 멜 트라더 목사였다. 하나님은 인간이 볼 때 폐품같고 불량품 같은 그를 통해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영광을 다시 드러내는 놀라운 창조주이심을 기억하자.
/김의환 목사

6. 사형받는 것이 더 낫습니다

17명을 죽이고 사형을 언도받은 김대두는 전도를 받고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 그는 서울구치소에 있는 동안 수백 명을 전도하였고 만나는 사람마다 자신의 과거의 죄를 고백하였다.
"이건 제가 공연히 하는 말이 아니라 솔직한 저의 심정입니다. 누가 저에게 어느 큰 회사 사장자리를 줄테니 예수님 버리고 오라하면 확실하게 대답할 것입니다. '사형의 날을 기다리며 예수님과 영원히 함께 하는 기쁨을 기대하는 지금이 내게는 더욱 행복합니다'라고요."
이러한 고백은 그의 어쩔 수 없는 처지 때문에 나온 말이 아니라, 예수님을 만난 후 나온 진실한 마음이었다.

7 지존파 두목의 변화

94년 9월 "살인공장"을 차려 놓고 엽기적인 살인 행각을 벌여 국민에게 충격을 안겨줬던 지존파 사건의 우두머리 김현양이 지난해에 사형되었습니다. '1417번' 그는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참회합니다. 저같은 사람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는 이 신비를 온 천하에 전하고 싶습니다. 그 동안 저를 위해 수고하신 직원들과 사랑을 아끼지 않으신 자매, 목사님 모두에게 감사합니다. 그리고 … 하늘나라 갈 것을 확신합니다. 그곳에서 여러분을 만나고 싶습니다."
기독신우회 회원들이 찬송가 405장(나 같은 죄인 살리신), 545장(하늘가는 밝은 길이)을 부르는 순간 그는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95년 11월 2일의 일입니다. 그는 이백여명에 달하는 장기수들을 주님께로 인도했습니다. 주님 안에서 그는 천사로 변해 버린 것입니다.

8 영혼의 변화

현재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교수로 계시는 간하베 선교사는 한국에서 창녀들에게 전도를 했습니다. 창녀들을 전도하는 데는 그들의 환경에서 구원해 주고 교도를 하는 방범과 그들의 영혼을 구원해 주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나 전자의 방법으로 전도를 하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다시 창녀로 돌아가게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간하베 선교사는 창녀촌에 가서 그녀들과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낮에는 별로 할 일이 없는 그녀들은 한국말을 잘하는 외국인과 이야기하는 것이 재미있으니까 여기저기서 모여들게 됩니다. 그래서 그 분은 창녀들과 친해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성경 공부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호기심으로 그가 전하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듣던 창녀들이 일단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달라집니다. 창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기는 이런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합리화를 시킵니다. 그러나 간하베 선교사가 전도를 해서 예수님을 믿게 된 열 명의 창녀 중 여덟 명은 아무 말 없이 예수님을 믿게된 그날로 그곳을 뛰쳐나옵니다. 그리고 가정부 일을 하거나 공장에서 일하거나 길거리에서 행상을 벌여 놓고 장사를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숨어서 다른 사람들을 후원해 줍니다. 이렇게 달라집니다. 그러니까 속을 변화시키는 것과 겉만을 변화시키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것이 진정한 기독교의 전도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12:2)

9.변화된 인생

철저하게 기독교를 부인하고 그리스도인들을 우습게 여기며 사람 취급도 하지 않고 핍박하던 친척이 있었다. 그는 두 개의 회사를 경영하며 별 부족함이 없이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머리에 심한 통증을 느끼고 진찰을 받았는데 탁구공 크기의 뇌종양이 생겼고 말기로 판명되었다. 소생의 희망은 거의 없었고 그는 죽음에 대한 공포로 두려워 떨고 있었다. 그런데 수술 날짜를 정한 이틀 전 토요일 저녁에 한 전도자의 전도를 받고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으며, 통증이 멎었고 무엇인가 자기 몸에 큰 변화가 있음을 깨달았다. 월요일 아침 수술을 받기 직전에 의사들에게 간곡히 부탁하여 다시 사진 촬영을 했는데 놀랄 만한 일이 일어났다. 정상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새롭게 인생을 시작했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건강하게 생활하면서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그리스도께 붙들리면 누구나 변화되지 않을 수 없다.

10.성자가 된 도둑

미국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두 사람의 양 도둑이 있었는데 양을 훔쳐간 사람에게는 이마에 양 도둑의 약자인 S.T.(Sheep thief)라는낙인을 적습니다. 일생 동안 다른 데 가서도 양 도둑질을 못하도록 하는 너무도 잔혹한 청교도적인 형벌인 것입니다. 두 사람이 다 양 도둑질을 해서 이마에 화인을 받았습니다. 둘 중의 한 사람은 회개하지 않고 먼 곳으로 도망 다니면서 못된 짓을 했습니다. 그러나 또 한 사람은 마을 사람에게 불행한 일이 생기면 가서 다 도와 주고 대신 아파해 주고 대신 매맞아 주었습니다. 죽음의 자리가 있으면 대신 처해 주고 슬픈 사람 옆에 사흘이라도 같이 있어 줍니다. 그래서 그 동네와 이웃 마을에 서는 그 사람이 없으면 살 맛이 없어질 정도로 그는 동네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목사님보다 더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는 친아버지처럼 존경을 받았습니다. 나이가 많게 되자 양 도둑질을 하던 때 그에게 낙인을 찍었던 사람들이 다 죽고 그들의 2세들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만은 장수를 합니다. 2세들이 자라서 그 할아버지를 존경하고 국민학교나 중학교 입학식 때에는 으례히 훈사를 하는 유명한 분이 되었습니 다. 당시에 이마에 낙인을 찍는 풍속은 없어졌습니다. 할아버지 이마에 어째서 S.T.가 붙었느냐고 묻습니다. 양 도둑의 약자와 성자(Saint)라는 말의 약자는 같지 않습니까? 너무나도 그분이 거룩해서 성자라는 낙인을 찍었다고 사람들이 대답했습니다. 도둑놈이 성자가 된 것입니다. 그렇게 변할 수가 있습니다. 사람이 변해야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 : 20)

11.참된 변화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과 신자가 아닌 친구가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 자네, 그리스도인이 됐다지?" "그렇다네." "그럼 그리스도에 대하여 많이 알겠군. 어디 좀 들어보세. 삼위일체라는 말은 무엇인가? 설명을 좀 해보게." "글쎄, 잘 모르겠는걸."
"그리스도는 설교를 몇 번이나 했지?" "잘 모르겠는데..." "그럼, 수많은 사이비 종파들은 어떻게 된 거지?" "글쎄, 나도 마음이 아프기는 하지만 잘 모르겠는걸." "아니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하고선 그리스도에 관해 아는 것이 없잖아!"
"자네 말이 맞아. 아닌게 아니라 나는 별로 아는 것이 없네. 부끄러워. 하지만 이 사실 하나는 분명히 알고 있지. 3년 전, 내가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을 때는 난 주정뱅이였고 빚도 많았고 내 가정은 산산조각이 되가고 있었지. 저녁마다 처자식들은 내가 집에 오는 것일 무서워했지. 그러나 이젠 술도 끊었고 빚도 갚았고 우리 가정은 참으로 화목해 졌지. 저녁마다 아이들은 목이 빠져라 나를 기다리고 있게 되었거든. 이게 모두 그리스도가 나에게 이루어주신 것일세. 또한 나는 지독한 죄인이라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나를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신다는 것만은 분명히 알고 있지."

12. 발견과 변화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확실하게 변화된 사람들은 수없이 많습니다. 고아의 아버지로 유명한 죠지 뮬러도 그 중 한 사람입니다. 그는 16세 되던 해에 절도죄로 감옥에 들어갔었고, 대학에 들어간 후에도 술, 여자, 노름 등으로 방탕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20세가 되었을 때, 그는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후 뮬러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과 여러 성도의 유익을 위해 헌신하게 되었으며,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 기도의 사람으로 변화되어 갔습니다. 그는 그가 가진 13만 5천 달러의 돈을 모두 이웃을 위해 사용하였으며, 그가 죽었을 때 그에게는 1천 달러 상당의 재산밖에는 남은 것이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던 자였으나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난 후 이방인 전도의 제1인자가 되었습니다.
또한 가난한 자들의 재산을 토색했던 세리장 삭개오도 그리스도를 만난 후 구제와 공의를 결심하는 등 그의 삶이 180도로 변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한 우리 성도들은 지금 어떠한 변신으로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있습니까?

13. 한 영혼을 변화시킨 양고기

랙스 박사는 런던의 동부 지역에서 38년간 목회하던 감리교 목사였습니다. 어느 날 그는 한 노인이 몹시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를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그 노인은 고개를 돌린 채 말 한 마디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대화를 나누기 위하여 애쓰던 랙스 목사님은 냉랭한 난로와 바닥나기 시작한 식량을 알아챘습니다. 그 집을 나선 목사님은 두 덩어리의 양고기를 그 집에 배달해주도록 주문하였습니다. 며칠 후 목사님은 또 그 집을 방문했습니다. 노인은 전보다는 약간 다정하게 대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던 목사님은 또다시 양고기를 주문하였습니다. 세 번째 심방을 하게 되었을 때, 그 노인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 결과 랙스 목사님은 노인과 함께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랙스 목사님은 설교 부탁을 받아 며칠 동안 런던을 떠나 있게 되었습니다. 돌아온 목사님은 그 노인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노인은 마지막 순간에 이렇게 말하더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랙스 목사님에게 전해주십시오. 이제 나는 곧 하나님께 돌아갑니다. 이처럼 나를 변화시킨 것은 목사님의 설교가 아니라 목사님께서 나를 위하여 사 주셨던 양고기였다는 사실입니다! ”

14. 경찰과 죄수

비오는 날 재판소에서 두 사람이 나오고 있었다. 한 사람은 경찰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죄수였다. 경찰은 자신의 외투를 벗어 죄수에게 입혔다. 그 광경을 본 경찰부장이 다음날 아침 그 경찰을 호출했다. 그는 경찰 제복을 죄수에게 입혔다고 혼이 나는 줄 알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경찰 부장에게 갔다. 그러나 경찰부장은 의외로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어제 왜 자네의 외투를 벗어 죄수에게 입혔는가?" "저야 옷이 젖어도 집에 가면 갈아 입을 옷이 있지만 그 죄수에게는 갈아 입을 옷이 없지 않습니까?"
이 말을 들은 경찰부장은 그를 크게 칭찬하며 금일봉까지 내렸다. 그의 외투를 입었던 죄수는 복역을 마친후 그를 찾아와 감사의 인사를 했다. 한 경찰의 따뜻한 마음이 전과 10범의 사람을 진실되게 변화시킨 것이다.

15.점쟁이 출신 장로

경북 달성군 수성면 효목동교회 이영서 장로는 본대 대구에서 점치는 것을 업으로 삼았었다. 그러나 신자가 된 후 부인과 함께 남성동교회에 다니며 열심히 주일을 지키고 전도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생업을 포기하자 살아갈 길이 막막하여 하는 수 없이 짚신을 만드는 법을 배웠으나 사는 곳이 도시이므로 잘 팔리지 않아 너무도 생활이 어려워 시골인 효목동으로 이사하였다. 이 곳에 와서도 짚신을 만들며 열심으로 전도하여 믿는 사람이 많이 생기게 되었다. 그래서 노회의 허락을 얻어 교회를 설립하고 짚신을 만들어 번 돈 수백원으로 예배당을 지었다. 또 밭 5두락을 바쳐 예배당에 있는 사람이 이 밭에서 농사하여 지내고 예배당을 돌보게 하였으며, 교회에 종이 없음을 유감으로 여겨 밭 8두락과 논 1두락을 팔아 종도 사고 하나님 사업에 쓰려고 땅을 내놓기도 하였다. 이렇게 신실하게 주의 일을 잘 감당하는 이 장로는 노구에도 불구하고 교회 일에 항상 앞장서고 매년 20원씩 연보와 특별연보를 하였다.

16. 토끼의 지혜

숲속에 사는 여우 한 마리가 길을 걸을 때마다 돌부리에 차여 발이 성한 날이 없었다. 그래서 어느 날 여우는 토끼를 잡아 그 가죽을 도로에 깔아야겠다고 생각하고 토끼 한 마리를 잡아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사정을 들은 토끼는 펄쩍 뛰면서 말했다. “여우님,저희 토끼들을 잡아 언제 도로를 다 포장하려고 하십니까. 그냥 제 꼬리를 잘라 가죽신을 만들어 신고 다니면 될 텐데요.”
사람들은 자신이 불편할 때 남을 통해 자신의 삶이 바뀌기를 기대한다. 삶의 태도를 바꿀 생각은 하지 않는다. 변화란 안에서 잠근 문과 같아 안에 있는 사람이 문을 열지 않으면 밖에서 아무리 두드려도 들어갈 수 없다. 그러므로 남을 바꾸려고 하지 말고 나 자신이 먼저 변화되고자 노력해야 한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아끼고 배려하는 진실이 그 사람을 돋보이게 할 뿐만 아니라 성공의 길에 서게 만든다. 남을 먼저 생각하라. 그러면 인생이 달라진다./설동욱 목사(예정교회)

17. 변화시키는 교회

며칠 전 교회 사무실에서 글을 쓰고 있는데 큰 소리로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술에 취한 사람이 ‘왜 나를 사람 대접해 주지 않느냐’고 고함을 질러댔다. 이를 듣다 못한 청년이 그를 말리자 행패를 부린 것이다. 그는 교회에 자주 찾아오는 노숙인이었다. 가난과 멸시에 찌든 이들이 어디 가서 위로 받고 자신의 아픔을 내놓을 수 있을까. 나는 그들의 마음에 있는 분노가 사랑을 외치는 교회에 터져 나오는 것이라 생각하며 스스로 위로하지만 가끔은 너무 심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러나 과거 화려한 경험을 갖고 있던 교우들이 변화돼 말씀에 귀 기울이는 모습을 볼 때면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에 감사 드리게 된다. 앞으로도 이러한 사람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능력으로 더욱 무장해야 한다. 우리는 교회에 그 누가 오더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도록 복음을 전해야 한다. 교회는 세상 사람의 화풀이 장소가 아니라 그들을 변화시키는 곳이다. /장학일 목사(예수마을교회)

18.새 삶을 얻은 주정뱅이

한 주정뱅이가 있었다. 노름으로 재산을 날리고 부인과 자식들에게 폭행을 일삼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저런 사람이 교회를 다녀 봤자 달라질 게 있겠어?” 하며 회의적이었다. 어느 날 한 친구가 그에게 물었다.
“교회에서 목사님이 무어라 가르치시던가?” “착하게 살라고 하기도 하고 뭐 그런 말씀을 하신 것 같기도 한데 잘 모르겠어….” 친구가 또 물었다. “그럼 성경은 누가 썼다던가?” 그는 당황하며 대답했다. “글쎄, 잘 모르겠는걸.”
친구가 다시 여러 가지 질문을 했지만 그의 대답은 모두 신통치가 않았다. 그러자 친구는 답답하다는 듯이 물었다. “도대체 교회에 다닌다면서 자네가 배운 것이 뭔가?” 그러자 그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런 건 잘 모르겠는데 확실히 달라진 것이 있다네. 전에는 술이 없으면 못 살았는데 요즘은 술 생각이 별로 나질 않아. 그리고 전에는 퇴근만 하면 노름방으로 달려갔는데 지금은 집에 빨리 가고 싶고, 전에는 애들이 나만 보면 슬슬 피했는데 지금은 나랑 함께 저녁식사를 하려고 기다린다네. 그리고 아내도 전에는 내가 퇴근해서 집에 가면 나를 쳐다보지도 못했는데, 지금은 내가 퇴근할 무렵이면 대문 앞까지 나와 나를 기다린다네.”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만난 경험, 그 경험을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예수님과의 만남을 경험한 사람은 행동과 생활과 대인관계가 달라진다. 이러한 경험적 만남이 없는 사람은 지적 만족으로 공백을 채우려 하지만 그분과 진실한 만남을 경험한 자는 새로운 삶을 얻는다. 「30년만의 휴식」/ 이무석

19.변해야 산다

살기 위하여 변해야 한다. 변하지 말아야 할 불변의 진리를 사수하기 위하여 우리는 모든 변화를 수용해야 한다. 성경이 죄라고 말하지 않는 한 변해야 한다. 힘이 들고 어렵다 해도 변해야 한다. 변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급변하는 사회에서 능동적으로 변화를 주도하는 자만이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하고 영향력을 나타낸다. 디지털 시대를 살면서 아날로그만을 고집하는 사람은 도태한다. 제트 문화시대에 기마 문화만을 고집해서는 안된다. 유비쿼터스 시대에 수동만 고집해서는 안된다.
세계적인 유통기업 월마트의 기업정신이 변화,열정,그리고 정직이라고 한다. 변화는 모든 문명과 문화의 발전을 주도하여 왔다. 변화를 두려워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할 수 없는 정도가 아니라 멸망하고 만다. 변화와 적응, 이것이야말로 세계사의 흐름이다.
거대한 공룡이 멸종된 원인이 주는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고온 다습한 환경에 살던 공룡이 저온 건조한 기후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치도 경제도 사회 문화도 변해야 살아남는다. 문화와 예술 종교도 마찬가지다. 교회라고 예외일 수 없고 크리스천이라고 다를 리 없다. 오직 변화만이 살아남는 길이다. 변화 없는 성장이 있는가. 어제와 오늘의 모습이 같은,그런 성장이 있는가. 그리고 변화는 단순히 겉모양만 달라진 외적 변화를 넘어 내적 변화와 영적 변화가 있어야 한다. 눈에 보이는 가시적 변화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불가시적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내용과 성분 등 보이지 않는 무형의 변화가 진정한 변화인지도 모른다. 그러면 진정한 변화의 기준은 무엇인가? 목표가 있고 목적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무엇을 위하여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예수님처럼 변해야 한다. 주님의 존귀하심을 위하여,성경적 가치관과 성경에 나타난 창조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변해야 한다. 그 목표가 이루어지는 그날까지,그 목적을 이룰 때까지 중단 없이 변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네 인생 여정이 되어야 한다.
/고명진(수원중앙침례교회)

20.옛사람과 새사람

교회사의 위대한 인물인 어거스틴은 젊은 시절에는 방탕한 시간들을 보냈으며,결혼도 하지 않고 한 여자와 동거하여 아데오다투스라는 아들을 낳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거스틴이 32세에 밀라노에서 유명한 암브로스의 설교를 듣다가 회심하게 됐습니다. 회심한 후 성경도 부지런히 읽고 기도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던 어느 날,길가에서 옛날에 드나들던 술집의 여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여인은 어거스틴에게 “왜 요즘은 저희 집에 들르지 않나요”라고 유혹했습니다. 그러자 어거스틴은 “옛날의 어거스틴은 죽었고 나는 새 사람이 됐소”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이 된 존재들입니다(고후 5:17). 그러나 여전히 그 속에는 옛 성품이 우리 안에 남아서 지속적으로 우리의 새 사람을 방해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고달픕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죄에 넘어질 수 있는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날마다 변화의 삶을 이루어가야 합니다,/피영민 목사 (강남중앙침례교회)

21.강을 건너기 전

형 에서와 부친 이삭을 속인 야곱이 고향을 떠나 외삼촌집으로 도망한 후에 20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는 거기서 4명의 여자에게서 11명의 아들과 딸 하나를 낳았고,소와 양이 심히 많은 거부가 됐다. 그가 외삼촌집을 도망쳐 나와 얍복강 나루에 이르렀을 때,강 건너에서 에서가 400명의 병사들과 함께 칼을 빼들고 자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강을 건너기 전에 홀로 남았다. 인간의 관계를 깨달으며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살 길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여호와의 사자를 붙들고 자기를 축복해 달라며 매달렸다. 천사가 그의 환도 뼈를 쳐서 위골시켰다.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기를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라 하였다. 간교한 옛 야곱이 십자가에 못박힘으로써 부활생명으로 거듭났다.
내가 변할 때 상대방도 변한다. 역사의 강을 건너기 전에 구습을 좇는 옛사람이 십자가에 못박혀야 한다. 새 역사는 새 사람의 것이다. [국민일보]최낙중 목사(해오름교회)

22.변화하십시오

세계적인 최고 부자 빌게이츠는 어느 한 기자 인터뷰에서
"당신은 어떻게 뛰어난 두뇌로 세계적인 부자가 될 수 있었습니까?" 라는 질문을 받았을때 빌게이츠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빌게이츠는 "저는 유별나게 머리가 똑똑하지 않습니다. 특별한 지혜가 많은 것도 아닙니다. 다만 저는 변화하고자 하는 마음을 생각으로 옮기고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데 노력했을 뿐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어느 기업가의 어록이 생각납니다. "마누라 외 에는 다 바꾸어라"
세상은 변화하고자 열망하는 자에 의해 발전되어 왔습니다. 앞으로도 변화를 행동으로 옮기는 자가 세상을 발전시켜 갈 것 입니다. Change (변화)에 'g' 자를 'c' 자로 바꾸어 보십시오. Chance(기회) 가 됩니다. 변화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기회가 옵니다. 당신도 변화하십시오. 변화는 기회이며, 기회는 축복의 도화선입니다.

23.뉴톤의 변화

죤 뉴톤은 그의 어머니가 살아 계실 동안에는 신앙 훈련을 받아 경건하게 살았으나 어머니가 별세한 후로 그의 생활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뉴톤은 아버지를 따라 배를 탔습니다. 뱃사람이 된 후로 그는 세상의 못된 짓만 배우고 악행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뉴톤이 방탕하고 못된 짓만 하는 것을 보고 크게 실망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그를 내어 쫓았습니다. 그 후 뉴톤의 성격은 고쳐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회개하여 새사람이 되고 목사가 되어 일생을 경건하게 살았습니다. 그는 82세가 되어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할아버지 목사로 교회 일을 보았습니다. 젊었을 때 그는 너무 험악하게 살았기 때문에 기억력이 희미해져서 설교를 할 때 했던 말을 반복하며 쩔쩔매기도 했습니다. 뉴톤 목사님은 천국에 가기 직전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천국에 가면 세 가지 놀라운 일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는 내가 생각지 않았던 사람을 만나는 것이고, 다음은 분명히 천국에 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없는 것이고, 셋째는 나 같은 죄인이 천국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육체로 살다가 회개하고, 영으로 살다가 일생을 마친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24.존번연의 변화

레이 리치몬드(Leight Richmond)라는 사람이 길에 종교 관계의 소책자 를 떨어뜨리고, 어떤 좋지못한 사람이 그것을 집어가기를 바랬다. 과연 어떤 한 좋지 못한 사람이 그것을 집어갔으며 그가 감옥에 들어갈 때그 책을 갖고 들어가, 감옥 안에서 그것을 읽고 개종하게 되었다. 바로 그가 "천로역정(Pilgrim's Progress)을 써서 많은 사람들을 바른 길로 인도한 존 번연(John Bunyan)이다.

25.탐 스키너의 변화

지금 미국 교계에서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을 받고 있는 탐 스키너라는부흥사가 있습니다. 그는 뉴욕 할렘가의 불량 청소년 갱단 두목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홀연히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복음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그의 영혼과 삶이 뒤바뀌었으나 그가 변화되었다는 이 사실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옛날의 동료 하나가 탐 스키너를 시험했습니다. 지나가는 탐 스키너의 뺨을 한 대 후려쳤습니다. 탐 키너가 일어나면서 그 사람을 향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친구여 나는 너를 용서하노라."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자신을 죽음의 자리에 둔 사람만이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삶의 모습입니다.
우리의 본능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본능은 "복수하라"고 말합니다. 본능은 나에게 보복의 원리를 가르칩니다. 본능은 편리하게 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죄에 대해 자신을 죽은 자로 바라보기 시작한 사람만이, 겸허하게 순종할 수 있는 새로운 삶의 모습이 원수도 사랑할 수 있는 삶의 모습입니다.
우리의 본능의 원리에 의해서가 아닌 죽음의 원리에 의해서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만 합니다.

26.삶을 변화시키는 인생관

관광지에 위치한 호텔은 같은 평수의 방이라도 전망에 따라 가격차가 상당히 납니다. 똑같은 설계에 똑같은 재질을 사용하고, 똑같은 평수에 똑같은 인테리어를 해도 어느 쪽에 방을 만드느냐, 객실에서 창 밖을 내다볼 때 바다가 잘 보이느냐
산이 잘 보이느냐에 따라 가격차가 납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지오웰은 천재적인 머리를 가졌으나 부정적인 인생관 때문에 생긴 우울증과 폐결핵으로
젊은 나이에 인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러나 엘리너 루스벨트는 어릴 때 고아가 되었으나 미국의 역대 대통령 부인들 가운데 가장 호감 가는 여성으로 손꼽히게 되었습니다. 벌은 물을 마셔서 꿀을 만들고, 뱀은 물을 마셔서 독을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인생관을 갖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집니다. 지금 당신의 마음의 창을 열면 어떤 곳이 보이나요?
< 이진우 / 목사 >

27.나부터 변화되자

알콜 중독자와 결혼한 한 아내가 아래와 같이 말했습니다. "수 년 동안 저는 제 자신의 노력으로 남편을 변화시키려고 했습니다. 천성적으로 저는 의지가 강했고 제가 원하는 바를 위해 투쟁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포기하고 말았어요. 목욕탕 속에서 울면서 기도를 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저는 "주님, 저는 제 생을 다룰 수가 없습니다. 저를 맡아 주시옵소서. 제가 아무 것도 조정할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라고 기도를 드렸지요. 그것이 제 결혼 생활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둘이 다 변하게 된 것이지요! 변화는 천천히 되었습니다. 마침내 저는 저의 마음을 남편에게 쏟아 놓은 기회를 가졌고 제가 그의 사랑을 얼마나 필요로 하며 그의 생활에서 첫째 우선이 되기를 얼마나 원하는 가를 말했습니다. 그는 진지하게 받아들이더군요. 그는 술을 끊을 새로운 동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한 친구가 그를 금주단체로 데리고 갔습니다. 이제 그가 술을 끊은 지 7년이 되는군요. 저는 날마다 우리가 이제 서로에 대해 갖게 된 사랑과 존경을 인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렇게 되기 전에 먼저 저를 바꾸어 놓으셔야 했답니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들은 나의 작은 습관과 태도에서부터 언어에 이르기까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나를 바꾸자 놀랍게도 가족들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상대방을 바꾸어 놓으려 할 때는 그렇게도 힘들더니 나를 바꾸었을 때는 상대방이 바뀌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놀라운 변화의 원리입니다. /한태완 목사 설교 중에서(http://je333.com)

28.자기의 변화

유명한 안소니 멜로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청년 시절에는 세계를 변화시키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중년이 되어서는 내 이웃을 변화시키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렸다. 70세가 된 오늘은 나는 오직 하나 '하나님이여, 나를 변화시켜주옵소서'라고 기도하고 있다."
우리는 정치 문제에 너무 관심이 많다. 세계 문제에 너무 민감하다. 그것은 하나님께 맡기라. 내가 할 일이 무엇인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생활방식과 생각, 마음이 예수님의 성품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변화를 거부하는 기독교인들을 보게 된다. 변화되지 않는 기독교는 세상에 존재할 이유가 없다. 그 본래의 목적인 빛의 역할을 잃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은 세상의 변화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세상의 변화, 인류의 변화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변화를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톨스토이가 당시 러시아 기독교의 무력함을 바라보며 한 말이다. 나 자신의 변화를 위한 기도가 진정한 변화의 출발점이며 원동력이다. 우리는 먼저 나 자신을 변화시켜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내가 변해야 이웃이 변하고 세상이 변한다. 변함없는 인생은 고인 물과 같다. 그곳에는 악취가 풍긴다. 기도는 영혼을 정화시키는 묘약이다. 나부터 먼저 변화되어야 한다.
/한태완 목사(예화포커스)

29.놀라운 변화

몇 년 전에 그는 남부에서 가장 큰 제지공장을 견학한 적이 있습니다. 안내원은 종이제조 과정이 시작되는 곳으로 나를 인도해 주었습니다. 거기에서 나는 더러운 진흙 투성이 통나무들이 커다란 기계 속으로 들어가고 그 속에서 날카롭고 육중한 톱니바퀴에 쪼개지고 잘게 잘려지는 것들을 보았습니다. 나는 또 이 기계 속으로부터 냄새 지독한 액체가 흘러나오는 것과 종이제조과정에 있는 커다란 통에서 또 다른 액체가 흐르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액체는 계속 흘러나오는데 이 유출액 속에 여러 가지 화공약품을 가미하자 곧 이 유출액은 더욱 더 흰색으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불결한 것들이
깨끗해졌고 액체는 응결되기 시작했습니다. 다음과정에서 막기돌기가 회전하고 있었는데, 매끄럽고 흰 빛깔의 종이가
만들어져 나왔습니다. 과학이란 얼마나 놀라운 것입니까? 물질은 옛것과 동일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기적적인 조화로 인하여 낡고 더러웠던 통나무가 변하여 세계 전역에 산재한 뉴스를 보도하고, 사무를 기록하고 사랑의 편지를 전달하고 시와 산문을 써서 수천 마일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는데 사용되는 흰 용지가 된 것입니다. 중생(거듭남)도 이와 똑같습니다.

30.변화의 적, 게으름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변화되어야지!’라고 굳게 결심해 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변화되지 못합니까? 그것은 게으름 때문입니다. 미루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몇 가지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 좋아하는 스포츠는 낚시. 게으른 사람은 움직이는 것을 싫어합니다.
● 좋아하는 미술품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행동하지 못하고 생각만 합니다.
● 좋아하는 식품은 라면, 특별히 컵라면입니다. 쉽게 빨리 할 수 있는 것만 찾습니다. 그래야 게으름을 피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좋아하는 노래는 ‘Yesterday’. 과거의 추억에만 매여 있습니다. 내일을 위한 시도를 하지 않습니다.
● 즐겨하는 말은 “하면 되잖아.”
● 좋아하는 책은 주간지. 나에게 자극을 주고 비전을 주는 책보다는 가십이나 소문을 들을 수 있는 책을 선호합니다.
신앙 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매일 그 모습으로, 아니 점점 더 후퇴하는 모습으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일이 아니라 오늘, ‘하나님, 내가 지금부터 변화되겠습니다’ 하는 새로운 결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내일은 변화하는 자의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변화의 챔피언이 되십시오./유관재

31.변화에 관한 성경 말씀

0 (예레미야 32:39) 나는 이 백성의 마음과 생활 태도를 변화시켜 언제까지나 나를 공경하여 대대손손 잘되게 하여주리라.
0 (요한복음 3: 3- 5)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0 (로마서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0 (고린도전서 15:51- 52)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0 (고린도후서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0 (엡4: 22- 24)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32.변화에 관한 금언

0 현재의 모습대로 있어야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헤리 에머슨 포스딕)
0 주인이 바뀌면 모든것이 변한다.(강준민)
0 새는 알속에서 빠져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기를 원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헤르만 헤세) http://www.je333.com(한태완 목사 설교 예화 자료집)

33.새로운 존재(存在)

워싱턴시에 있는 링컨의 기념관은 국회 의사당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다. 그 기념과 안에 링컨의 좌상이 있다. 미국의 유명한 조각가 죤 보그룸의 작품이다.
그가 링컨의 좌상을 만들 때의 일화가 있다.
조각가 보그룸이 매일같이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 까지 링컨의 석상을 만드는데 한 흑인 여성이 고용되어 조각하는데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청소하는 일을 했다.
매일같이 보그룸이 땀을 흘리면서 큰 바위를 두둘긴다.
여러날 후에 한 덩어리의 바위속에서 훌륭한 링컨의 형상이 나왔을 때 이 흑인 여성이 깜짝 놀라면서
"어떻게 이 돌에서 링컨의 형상이 나왔는가?"
하고 묻게 되었다. 그때 조각가 보그룸은 대답하기를
" 이돌로 링컨의 형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이 돌가운데서 링컨의 형상이 아 닌 부분을 다 없애 버렸더니 이렇게 되었다"
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인간은 원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함을 받았다. 범죄,타락으로 그 형상이 파괴되고 만 것이다.
이제 하나님의 사랑으로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성령의 역사로 힘입고 다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그 파괴되었던 본래의 형상을 되찾게 된 것이다.
하나 하나 성령의 감동 감화를 통해 회개하며, 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쫓아 살게 될 때 하나님의 자녀로써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회복하므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골로세서 3:7-10)

34.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체는 하나님

피퍼라고 하는 사람은 구원의 범주에 속한 종교로서 대표적인 두 가지를 공산주의와 기독교를 들었다.
공산주의는 종교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이상이지만 어떤 면에서 볼때 주체사상,막스와 레님의 교조적 사상은 그 신봉자들에게는 하나의 절대적인 신앙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종교의 범주에 넣어도 과히 무리가 없을지경이다.
공산주의는 현재 삶의 여건을 운명으로 받아들이지 앟고 능히 개선할 수 있고 변혁시켜 나갈 수 있다고 강조해 왔다.
그런데 기독교에서도 역시 현실의 여러 어려운 조건들을 운명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이것을 변혁시킬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어떤 기독교 집회에 참석하는 것도 "어떻게 하면 현제보다 좀더 나은 생을 살아갈 수 있겠는가?""나의 불리한 조건들을 어떻게 개선해 나갈 수 있겠는가?"하는 희망을 갖기 때문이다.
또 성경의 결론 자체가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계21:5)
하는 변혁의 약속이기 때문에 기독교는 변혁을 상당히 강조하는 종교인 것이다.
인생 자체도 예수안에서 완전히 변화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것이 바로 거듭남이다.
공산주의와 기독교의 유사점은 바로 현실 부정과 인간 사회의 현실을 개혁할 수 있디고 보는 것이다. 즉 인간이 소외 상태에 있다고 하는 데에는 기독교나 공산주의가 모두 공감하고 있다. 그런데 인간이 소외 상태에 있기 때문에 인간 회복을 시도해야 한다는 데에서는 동의하면서도 인간 소외의 원인 규명에서는 양자가 서로 그 의견을 달리한다.
인간 소외의 원인을 자본주의 사회의 부조리에 두고 나름대로의 해결 방법을 제시하는 공산주의와는 달리 기독교에선 인간 소외의 원인을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부터 소외된 데 있다고 본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소외되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는 불안과 인격 분열과 고통을 경험하며 증오심에 사로 잡히게 되고 원치 않는 악을 자꾸 행하며 사회적으로는 구조적인 악이 나타나게 되었다고 본다. 하나님께서 하와에게 내리신 해산의 고통이 개인의 영역에 속한 심리적이 문제로,아담에게 노동을 하고 땀을 흘려야 밥을 먹을 수 있다고 하신 것이 사회적인 문제로 나타나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 소외의 문제에 대해 공산주의와 기독교 모두 매우 근본적이고 혁명적인 절대적인 변화를 주장하지만 그 실현 방법에서는 큰 차이가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계급 투쟁을 통해서 제도작으로 혁명을 일으켜서 해결하려는 것이 공산주의의 방식이다. 공산주의는 세상을 변혁시켜 나가는 동기 부여와 진행 과정에서 언제나 그 주체가 인간이 된다.
인간이 역사의 주체가 되어서 혁명이라는 방법을 통해 모순을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옛 사람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새 사람이 되는 것을 통한 문제 해결을 주장한다.
인간과 사회를 새롭게 하고자하는 이 동기는 인간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고 하니님으로부터 오며 변혁의 진행 과정에서도 하나님이 주체가 되시고 인간은 그분의 동역자로 참여한다는 생각이 바로 공산주의와 다른 차이점이라고 볼 수 있다.
공산주의는 무신론적 유물사관에 근거하여 필연적으로 자율적으로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사회 혁명을 이야기하며
기독교는 죄인 스스로 죄에서 구원받을 수 없기 때문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나는 타율적인 인간 변혁을 이야기 한다.
신약 성경을 보면 변혁의 동기를 가지 주체자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이 나타나 있다. 탕자 비유에서 아버지를 쩌나 돼지를 치며 고생하던 둘째 아들이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위대해서가 아니라 그로하여금 집으로 돌아 올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준 아버지의 모습 때문이었다.
그가 집을 떠나갈 때 그의 등 뒤에서 아버지는 돌아올 것을 기다린다는 의미를 부여해 주었다. 아들이 보이지 않을 때 까지 대문앞에서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탕자는 다시 돌아왇고 아버지는 자신을 받아 주실 것이라는 잠재 의식을 안고 떠나갔던 것이다. 아버지는 자신을 다시는 받아주지 않을 것이라는 인상을 받고 탕자가 집을 나섰다면 어찌 그가 다시 아버지를 향하여 갈 수가 있었겠는가?
그가 돌아갈 수 있었던 힘을 제공한 주체는 자신이 아니라 바로 아버지였다.
인간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대단한 착각인 것이다. 공산주의가 그래서 실패한 것이다.

35.변화

나는 주의 종이 되기 전에는 주의 종들에 대한 연민의 정을 느낀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용케도 자신의 욕망을 잘 눌러 참고 있다는 대견함 같은 것이었다.
가고 싶은 곳도 많을 것이고, 누리고 싶은 일들도 많을 것인데, 어느때는 술도 마시고 싶을 것이고, 어느때는 포르노 영화도 보고 싶을 것이고,어느때는 팝송도 듣고 싶을 텐데 어떻게 그렇게 재미없는 삶을 선택해서 그 고생을 하며 살까?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막상 주의 종이 되고 보니 나의 그러한 염려와 걱정은 모두 부질 없는 것이었음을 알았다.
내가 전도사이기 때문에, 내가 목사이기 때문에 소주나 맥주를 마시고,나이트클럽에도 가고,팝송도 듣고 싶은 욕망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것이 나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기 때문에 안하는 것이었다.
지금이라도 누가 은밀히 돈을 주면서 오늘 밤 나이트클럽에 가서 즐기고 오시오 한다면 돈을 받고도 가고 싶은 심정은 추호도 없다. 나에게 아무 의미를 제공해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의 종들이 술 담배를 안하는 이유도 그것들이 나에게 아무런 의미도 주지 못하기 때문에 안하는 것일 뿐이다.
결코 하고 싶어 견딜 수 없는 마음을 억압하고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안에서 가치관이 변화된 것이다.

36.기도의 능력

의학공부를 하는 한 미국의 여대생이 있었다. 대학 3학년 때 우연히 마약과 접하게 되었다. 그래서 피곤할 때 마다 마약을 복용하곤 했는데 나중엔 그것이 습관이 되어 버렸다. 인턴 과정, 레지던트 과정을 거쳐서 의사로 일하몀서도 매일 마약을 복용했다. 그것을 복용하지 않으면 환자를 진료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 버린 것이다. 나중에 그 사실이 직장 동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할 수 없이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는데 마약을 살 수 없는 가난뱅이가 되어버리자 절망에 빠지게 되었다.
그래서 자신의 의지로 마약을 끊어보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다했지만 허사였다.
그러던 어느 날 비오는 날 저녁에 자살을 결심하고 비를 잔뜩 맞으면서 뚝 옆의 저수지로 나아갔다. 뚝 위에 올라서서 여태껏 한번도 불러본 적이 없는 하나님을 향해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 오! 하나님,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나를 구해 주시옵소서]
비를 맞으면서 아주 간절하게 뜨겁게 기도를 했다.
그런데 갑자기 머리위가 뜨거워지면서 전신에 그 뜨거움이 전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양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무거운 짐을 누군가가 양 손으로 거두어 가는 느낌을 받았다. 순간 그녀는 날듯이 가벼워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하나님을 찬양하고 자살할려는 마음을 돌이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는 그 후로 깨끗이 마약을 끊어버렸고 지금은 마약과 알콜 중독으로 삶을 포기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고 한다.
옛것을 완전히 벗어 버리는 일은 내 의지로 할 수 없고 오직 성령의 도우심으로만이 가능하다. 그 도우심을 얻기 위해서는 기도하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37.거듭남이란

예를 들어 한 가정이 있다고 가정하자 남편은 예수를 믿지 않고 부인은 중간에 예수를 믿게 되어 남편의 허락을 얻어 열심히 교회에 나갔다. 부인이 교회에 나가는 것을 1년정도 지켜보던 남편은 부인이 과거와는 달리 순결한 양을 연상시킨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 부인은 예수를 아주 잘 믿은 것이다.
그런데 교회에 아무리 오래 나가도 볼 때마다 그 전과 다르게 자꾸만 여우 생각이 나고 살쾡이 생각이 나면 그 부인은 예수를 믿어도 헛것으로 믿은 것이다.
몸을 산 제사로 드리라는 것은 육체적인 완벽함이나 학벌 외모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는 삶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교회에 나가면서 양처럼 순결한 아내로 변화된 여성은 삶 속에서 하나님앞에 산 제물이 된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나타나서 우리 자신이 그리스도의 몸이고 향기이며 성전이라는 인상을 자꾸 풍기면 그것이 바로 산 제물인 것이다.

38.구원의 참된 모습

자신을 느끼고 있는 자아상이 문제이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주실만큼 귀한 존재인데도 노상 "나는 왜 항상 이모양인가?"라고 한탄한다. 하나님께서 나를 향해서 굉장한 인생의 계획을 가지고 계실 만큼 중요한 사람인데도 우리는 스스로를 보잘 것 없는 존재로 취급할 때가 있다. 예수 믿는다면서도 얼굴이 우거지 상인 사람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아직도 하나님이 주신 구원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사람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봐서는 비참한 인생같아 보일지라도 하나님을 알기 때문에 멋있게 사는 인생이 돼야 한다.
그것이 구원의 참된 모습니다.
헬렌 켈러는 벙어리였고 장님이었고,귀머거리였다. 사실 그 중에 하나만 가지고 있어도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그런데 그 분은 그렇지 않았다.
[산다는 것은 신나는 경험이야 더군다나 남을 위해서 산다는 것은 더 신나는 경험이야]
이것은 신앙의 진수를 아주 제대로 표현한 것이다. 그녀의 삶이 신나는 경험이었던 것은 바로 구원 받은 사실 때문이었다.
인간적으로 보아서는 비참한 것 같지만 하나님이 안에 게시기 때문에 자신을 멋있는 사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은 자기와 화평한 사람인 것이다.

39.그리스도인의 변화

바닷물은 대단히 짜다.그런데 그 바닷물에 들어있는 소금 함량은 고작 3.4%에 불과하다.소금이 3.4%만 있어도 바닷물은 석지 않는다.그런데 기독교라는 소금이 25%가 되는데도 학국 사회는 왜 썩어만 가고 있는가?
켐퍼스를 뒤흔들고 한국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학생운동은 실질적으로 1%미만의 학생들에 의해 이루어 지고 있는데...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만들었을 때 그리스도인은 9%밖에 되지 않았다.9%의 로마인들이 얼마나 멋지게 살았던지 황제까지도 자기를 신이라 하지 말고 저들이 믿는 신을 믿게 하자고 기독교를 국교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25%의 그리스도인이 있다는 우리 사회는 왜 이런 변화가 없는지.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길에서 밟힐 뿐이다.한국의 기독교는 세상의 길에서 밟히고나 있지는 않는지 반성해 봐야 한다.

40.말씀의 능력 <히4:12>

기차를 타고 여행하는 두 장교가 있었다. 한 사람은 잉거솔(Ingersoll)이라고 하는 대령과 또 한 사람은 루 월래스(Lew Wallace)라고 하는 장군이었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이야기는 예수님에 관한 모독적인 이야기였다. 잉거솔 대령이 말했다.
"그 예수라고 하는 친구말입니다. 예수쟁이들은 그를 하나님의 아들이니 하나님이니 하고 허튼 소리를 하는데 이 예수라는 친구를 멋진 연애장이로 만들어 에로틱한 소설을 쓰면 어떨까요? 그러면 돈을 많이 벌 수 있겠지요?"
"아 그것 참 좋겠는걸. 참 재미있는 소설이 되겠지."
그후 그들이 전역을 하고 이것저것 할 일을 찾아보았으나 별로 신통한 것이 없었다. 장군으로 전역을 했으니 아무 일이나 손댈 수는 없고...그래서 월래스는 생각다 못해 전에 기차 안에서 잉거솔대령이 한 말대로 예수를 주인공으로 한 에로소설을 쓰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을 읽어야만 했다. 직접 이스라엘까지 가서 자료를 수집하기도 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 생겼다. 성경을 읽고 자료를 모으면 모을수록 그의 마음은 변화되어가기 시작했다. 예수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며 역사적으로 실존인물임을 확신하게 된 것이다.
마침내 그가 목적한 소설의 원고가 끝났다.그런데 처음 계획한 것과는 전혀 딴판의 글이 나오고 말았다. 탈고를 한후 그는 자기도 모르게 의자에서 내려와 기도를 드리게 되었다.
"진실로 주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나의 구주이십니다."
그 소설의 이름이 바로 영화로도 잘 알려진 [벤허 Ben Hur]이다.
실로 하나님의 말씀의 변화시키는 능력을 입증해 주는 산 증거이다.

41.진정한 변화

하나님께 쓰임받기 위해 버릴 수 있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
1950년대 세계 선교의 영웅 짐 엘리어트가 정글에서 피를 흘린 후 발견된 그의 일기장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결코 놓쳐서는 안되는 일, 그것을 위하여 결국 끝까지 붙들고 있을 수 없는 그것들을 버리는 사람,그는 결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
이 역사속에서 하나님의 위대한 발자취를 남기기 위해서, 하나님게 쓰임받는 삶을 살기 위해서 청춘과, 부와 명예와 권력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은 결코 어리석지가 않다는 것이다.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고백한다.
"주님,오래 살기를 구하지 않습니다.다만 주님을 위해서 내 삶이 불타기를 원합니다"
이것이야 말로 우리가 겪을 수 있는 최고의 변화가 아니겠는가?

42.기독교의 역할

오늘 날도 기독교는 부족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기독교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전쟁이나 국제적인 상황을 살펴보라 당신네들의 기독교가 2,000년 동안 존재해 왔지만 오늘날 세상의 형태는 어떠한가 지금 이 시간에도 무서운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현실을 보라"고 말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기독교는 결코 "전쟁을 추방하는 것이 기독교"라고 세상에서 말한 적이 없다. 또 전쟁을 추방하겠다고 큰 소리 치거나 개혁을 위해 사회적인 또는 정치적인 운동에 앛장 선 적도 없었다. 기독교는 그것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기독교는 그리스도인을 만든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까지 어떠한 사람도 그리스도인의 체험을 할 수 없없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이르지도 못하고 기독교적인 어떤 것을 결코 얻지 못할 것이다.

43.세상을 변화시키고 개혁하는 복음인가?

사람들이 복음을 믿지 않기 때문에 아무런 체험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이 기독교가 실패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믿지 못하는 것이다. 오늘날 복음이 실패했다는 소리를 얼마나 자주 듣는가? 아마 우리 자신도 어느땐 그렇게 느끼기도 했을 것이다. 우리는 다 알지 못하는 사이에 어느 대인가 그렇게 말했다.
"우리에게 기독교를 전하는 것이무슨 소용이 있는가? 기독교는 거의 2천년동안 세상에서 존재했지만 세상의 상태를 보라 만일 당신네들의 복음이 참되다면 세상은 오늘날 같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신들의 복음은 실패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의 입장이다.
그러나 복음이 무엇을 약속하고 있는가를 안다면 당장 그런 입장을 버리게 될 것이다.
"기독교가 실패했다고 했는데 그럼 여러분들은 복음이 무엇을 약속했다고 보는가?"
그것은 분명히 묻고 지나가야 할 질문이다. 에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세상의 말대로 실패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마음속에 복음에대한 어떤 개념을 가지고 있기 대문일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복음은 전쟁을 종식시키고 궁핍과 고통을 몰아내고 세상을 바로 잡고, 불공평을 추방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고 약속했지 않은가? 복음이 그 역할을 다 하지 못했음은 이 세상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지 않는가? 타락한 현 세대가 바로 그 증거다."
그러나 그 말에 우리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복음은 결코 그런 것을 이루어 주겠다고 약속한 적이 없다. 결코 없다. 복음이 전쟁을 종식시켜 주겟다고 약속한 털끝만큼의 증거도 찾아볼 수 없다. 우리 주님께서 지상의 생애를 마치면서 [전쟁과 난리의 소문을 들을 것이다]고 말씀하셨다. 또한 [노아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소돔과 고모라에 있었던 일과 같이 인자가 나타날 때에도 그런 일이 있으리라] 주님은 전쟁을 불식시키겠다든지 세상을 고치시겠다고 약속하지 않으셨다. 그러한 증거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복음을 세상을 개혁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렇게 이해 한것은 사람들이다. 결코 복음이 약속한 사실이 아니다"
사람들은 아주 잘못된 개념을 갖고 있다.자기들이 생각하는대로 기독교가 해 주겟다고 한 일을 하지 않았기 대문에 자기들은 기독교를 기각시키고 그 은택들을 체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문제거리는 기독교가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복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44.생활을 통하여

어떤 사람이 이태리로 가서 그의 아내와 함께 알프스 산맥을 횡단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 태양 빛이 어찌나 뜨거웠던지 그의 아내의 얼굴이 심하게 탈 정도였다. 아내는 그에게 넓은잎 딱총나무 꽃의 꽃 물을 좀 구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약방을 찾아갔지만 그는 이태리 말을 몰랐기 때문에 그 상점에 있는 병들을 훑어보았다. 그러나 그런 부류의 꽃물은 발견할 수가 없었다. 프랑스 말로 무엇인가를 좀 중얼거려 보려고 시도는 하였으나 그 곳 사람은 조금도 알아 듣지를 못했다. 실상 나그 말은 언어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할 수 없이 밖으로 나와 그곳에 있는 한 작은 시냇물가를 걸어가다가 이윽고 넓은잎 딱총나무를 발견했다. 그는 그 넓은잎 딱총나무 꽃을 한웅큼 쥐고서 그 상점으로 다시 가서 꽃을 그사람에게 쳐들어 보였다. 그러자 그 즉시로 그 사람은 그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알아차렸다.
단순히 말로써 사람들의 마음 속에 복음을 전달하기는 어려운 것 같았다. 그러나 당신의 생활을 통하여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기쁨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훨씬 더 효과적으로 사람들을 회심시킬 수 있을 것이다.

45. 어머님의 유서

미국 어떤 동네에 어머니와 공장에 다니는 아들 모자가 사는 가정이 있었다. 어머니는 진실한 기독교신자이나 아들은 불량했다. 그러므로 어머니는 불량한 아들로 인하여 고심하며 아들의 회개를 위하여 늘 기도했다. 또 아들이 매일 공장에서 밤늦게 돌아옴으로 문앞에 늘 외등을 켜주었다. 그리하여 아들은 밤늦게 돌아와도 켜진 등 때문에 실족되지 않았다. 어머니는 평안할 때는 물론이요. 몸이 불편할 때에도 늘 외등을 밝혀 주었다.
어느날 어머니는 병이 들었다. 아들은 어머니의 병환을 간호했다. 그러나 공장에도 안갈 수 없었다. 어머님의 병세는 날로 더 하셨다. 하루는 밤 늦게 돌아와 보니 외등의 불이 켜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방에 뛰어 들어가 보니 어머니는 다시 오지 못할 저 세계로 가셨다. 눈물을 머금으며 울다가 눈물을 닦고 살펴보니 어머니의 유서 한장이 있었다.
“내 사랑하는 아들아 나는 너의 방탕한 생활을 회개키 위하여 매일 세 번씩 기도했다. 또 너로 하여금 광명한 빛되신 예수를 알게하기 위하여 매일 밤 늦게 돌아오는 네 앞길을 밝혀 주었다. 예수는 이 밤중과 같은 어두운 세상에 광명한 빛이시니 네가 예수를 믿고 의로운 사람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이 후 천국에서 너를 만나 보기를 바란다.”
이 아들은 어머니의 유서를 읽고 어머니의 지극하신 사랑과 기도의 감화를 받아 회개하고 예수를 믿어 진실한 신자가 되었다.

46. 나를 다듬어 주시는 주님

마르틴 웰스 내프는 한 때 심각한 시련을 겪은 일이 있었는데 남모르는 헌신 중에 하나님께 자기의 시련을 거두어 주십사고 구했습니다. 그가 주님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에 거칠은 대리석 한 조각을 갈고 다듬는 조각가의 환상을 보았습니다. 대리석에서 나오는 먼지와 파편이 이리 저리 가득히 날리는 것을 보고 있으려니 대리석에서 한 아름다운 형상이 조성되고 있는 모양이 눈에 비쳤습니다.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자녀야. 너는 저 대리석 덩어리이다. 나는 내 마음에 한 형상을 품고 있는데 그것을 너의 성품 속에 이루기를 지극히 원하며. 네가 그 가는 것을 견딘다면 그렇게 하려 하노라”
고 하셨습니다. 내프씨는 주저 앉아서
“주님. 다듬어 가는 일을 계속하소서”라고 말했습니다.

147. 거울

두 사람의 글뚝 소제부가 작업을 마치고 지상에 내려와 있다.갑의 얼굴엔 온통 재가 묻어 있고 을은 대체로 깨끗하다. 이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이 급히 세수를 하러 간다. 그가 누구일까?
그야 당연히 재가 많이 묻은 갑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실은 갑이 아니고 을이다.
자기 얼굴이 형편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갑을 쳐다본 을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상대를 통하여 자신의 모습을 본 것이다.
거울의 효용가치는 우선 그것을 들여다 보는 데 있데 지니고 있는 것 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거울을 본 사람은 그에 따라 어떤 행동이 따라야 한다. 보기는 보았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다는 것 역시 거울의 효용가치를 덜어뜨리는 것이다.

희랍 신화에 등장하는 나르시스는 잔잔한 호수가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 보고서 자기 도취에 빠져버렸다. 그리하여 침식을 잃은 채 자신의 모습만 감상하다가 차츰 여위어 갔고 그 결과 한 떨기 수선화로 변하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것은 거울의 역 작용을 꼬집는 한 토막의 이야기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즉 도(道)를 거울이라고 하고 이 거울을 소유한 사람을 신앙인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거울에 수시로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고 자기의 신앙인격을 다듬어서 점차 예수님의 모습으로 닮아가는 사람을 크리스챤이라고 부른다.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부르는 거울을 가지고도 무서운 저주의 대상으로 전락한 사람들이 있다.
바로 바리세인과 서기관과 같은 사람들이다.이들은 거울에 비친 자기의 모습을 보고 자신을 다듬어 갈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자신이 거울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만 도취되어 거울을 갖지 못한 사람들을 멸시하고 한 걸을 더 나아가서 그들을 아예 사람으로 취급조차 하지않는 무서운 영적 교만을 지닌 채 점점 더 더럽고 추한 몰골로 변해 가던 사람들이다.
하기야 그들의 영적인 모습이 나르시스처럼 선천적으로 아름답고 준수하다면 그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겠으나 진리의 거울에 비친 그들의 모습은 천하에 그 짝을 구할 수 없을 만큼 추악하고 악한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세상 그 누구보다도 더 훌륭하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가소로운 짓들을 하고 있으니 어찌 안타까운 사람들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크리스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로써 그들이 지닌 진리의 거울에 자신을 수시로 비추어 보고 때 묻은 자기의 영혼을 부지런히 씻고 단장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거울을 가지고 자신을 바로잡는 데 사용하지 않고 그것을 지니고 있다는 것 만으로 만족하면서 자신은 하나님 앞에서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터무니 없는 영적 교만에 사로 잡혀 있다면 차라리 거울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보다 하나도 나을 것이 없을 것이다.

48.인간성 회복

오늘 우리는 인간성이 극도로 타락한 시대에 살고 있다.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지켜야할 공복들을 비롯하여 선량한 시민들과 나라의 소망이어야 할 처오년들과 어린아이들까지 생명을 유린하고 파괴해도 양심의 가책조차 느끼지 못하는 어두운 시대에 살고 있다.
유해식품 제조,인신매매, 폭행,고문등은 인간 존엄성 경시의 결과로 나타난 사회작 병리현상이라고 하겠다.
인간성 회복의 필요성을 너도 나도 부르짖고 있다. 일부 학생들은 투쟁과 혁명과 사회개조에 의한 인간성 회복을 외치고 있으며 정부는 시회정의와 사회복지에 의한 인간다운 삶을 구호처럼 내세우고 있다.참다운 인간성 회복의 비결은 어디에 있는가?
인간이란 도데체 어떤 존재인가? 창세기의 인간 창조 기사에 의하면 인간은 동물과 같은 육체적 요소로만구성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신의 요소를 부여받아 살게된 독특한 영적 존재이다.
창세기 2:7에 의하면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고 했다. 생기는 하나님의 신을 말한다. 인간이 참된 인간 즉 영적 존재가 된 것은 하나님의 신으로 말미암은 것이다.하나님의 신을 받아 만들어진 사람은 동물과는 다르게 하나님의 모습과 하나님의 품성을 지니게 되었다. 감사하는 마음,사랑하는 마음,기뻐하는 마음, 존귀히 여기는 마음과 함께 의로움과 거룩함을 추구하는 성향을 품게 되었다.
그런데 창세기는 그 초두에서 부터 인간성의 타락을 기술하고 있다. 아담과 카인의 범죄이후 거짓과 두려움, 미움과 시기, 분노와살인, 탐욕과 정욕,포악과 강포가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게 되었다. 이들 인간성 타락의 근본적 원인은 인간이 [여호와의 앞을 떠난데] 있었고 그결과 하나님의 신이 사람과 함께 하시지 않게 된 것이다. 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신이 떠난 인간을 육체가 되었다(창6:3)고 기술했다. 또 [마른뼈](겔37:2)와 같이 되었다고 묘사한다. 하나님을 떠난 대다수의 현대인도 이와같이 육체가 되었고 하나님의 모습이 아닌 마귀의 모습을 닮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게서는 소망이 없는 타락한 인간에게 인간성 회복의 길을 열어 놓으셨다. 그 길은 다른 길이 아닌 하나님의 신을 타락한 인간에게 다시금 부어 넣는 길이라고 밝히 예언하셨다. 마른 뼈 무더기 인생을 향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겔37:5)고 하셨고,[그 후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너희 젊은이들이 환상을 보리라](요엘2:28)고 말씀하셨다.
그 약속이 2천여년전 오순절난 성령 강림으로 이루어졌다.
십자가 사건후 50일이 되는 날 하나님의 신이 바람같이 임하여 한 곳에 모여 잇던 120명의 신자들의 몸과 영혼속에 부어졌다.
저들이 모두 생령이 되었다. 참된 의미에서의 인간이 된 것이다. 사랑이 회복되고 평안과 기쁨이 다시금 넘치게 되었고 의로움과 거룩함이 회복되었다.
하나님의 신을 부어주신 인간성 회복의 사건이 예루살렘을 비롯하여 사마리아에서,가이샤라 고넬료의 집에서,그리고 에베소와 빌립보에서도 계속하여 일어났다.
영국과 미국이 도덕적으로 타락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조나단 에드워드나 죠지 휘트필드같은 전도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신을 부어주시는 영적 각성 운동과ㅣ 인간성 회복의 운동및 사회계혁의 운동을 일으키셧다.
1907년에는 어두움과 절망에 쌓여 있던 한국백성들 위에 하나님이 또다시 하나님의 신을 부어주시는 영적 각성 운동과 인간성 회복운동을 일으키셨다.
인간성이 극도로 타락한 오늘의 시대야 말로 하나님의 신의 부음을 받는 새로운 영적 각상 운동이 절실히 요청되는 것이다. 오직 영적 각성 운동만이 타락한 우리의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오늘도 자기의 신을 우리에게 부어주시기를 원하신다.
- 합동신학교 교장 김 명혁 목사 -

49.반성하지 않는 일본인

8.15일,일본의 모든 방송은 일제히 제 2차 세계대전으로 숨진 전몰 희생자를 위한 추도식을 보낸다. 희고 노라느 국화가 어마어마하게 장식된 무대에는 일본 왕 부부를 비롯한 총리, 범무대신,등이 영령들 앞에 흰 국화 한 송이식을 바치며 다시는 이런 희생과 비극을 되풀이 해서는 안된다고 다짐한다.
거대한 국화 꽃으로 가득찬 무대에 슬픔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는 일본 와 부처,그리고 무대 아래에는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이 검은 상복을 입고 손수건을 통해 조용히 눈물을 닦을 뿐이다. 2차대전때 숨진 일본인 희생자는 약 3백만명,물론 비공식으로는 2천망명을 육박하는 아시아인 희생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결국 일본인도 전쟁으로 커다란 희생을 치른 불행한 민족이다. 그들은 무모한 전쟁에 동원되어 가족을 잃고 큰 상처를 입었고 청춘을 잃고 웃음을 잃었다.
누가 그렇게 만들었는가? 누가 전쟁을 일으켰으며 누가 책임을 져야만 하나.멋모르고 주르르 바닷속으로 뛰어든 수천 마리의 생쥐처럼 일본일을 때죽음으로 이끈것은 누구인가?
전범 독일은 히틀러가 자살을 하고 전범에 대한 처형과 재판을 통해 전후 처리를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일들이 항상 내뱉는 말 가운데 하나가 전쟁의 책임을 어디에도 누구에게도 물을 수 없는 것이 일본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책임의 소재는 명확하다.수많은 일본인들은 "천황폐하"의 영광을 위해 기쁘게 죽어 갔다, 천황폐하의 이름하에 성스러운 전쟁에서 가족을 잃고 삶의 터전을 잃었다. 행복하게 살아야할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송두리채 빼았겼다. 그러나 아무런 일이 없었던 듯 1,068명의 전범을 재판하는 것으로 일본의 전 후 처리는 전시효과만을 낸 채 마무리 되어졌다.
일본은 절대로 과거 청산을 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를 비롯한 막대한 피해를 입힌 날에 대해서 일본이 배상을 하고 과거를 사죄하는 일을 일본은 절대로 할 수 없다.진주만 공격 이후 일본계 미국인을 강제 수용소에 격리한 것을 미국이 내내 사죄하며 2만 달러의 보상금과 대통령의 이름으로 된 사과의 편지를 전하는 일은 절대로 일본에서는 있을 수가 없다. 왜냐하념 일본인 스스로가 과거 청산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에 끼친 막대한 피해는 뒤로하고 일본인들이 왜 그런 일을 당해야 했으며 누가 그 전쟁의 책임자인가를 가려낼 필요가 있다. 자기 가족이 죽어야 했던 이유와 특히 그 모무함을 밝혀 내야만 한다.
집안에 있는 망나니가 강도짓을 할려고 집을 뛰쳐 나갔다. 동생들까지 한탕하자고 부추겨 같이 이웃사람들에게 칼부림을 했다면 그 이치는 간단하다. 그 살인을 다시는 있어서는 안될 일이라고만 할 것이 아니라 살인범을 응징해야 한다ㅣ. 물론 집안에서 그 살인자를 처벌하고 이웃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철저히 그 죄 값을 다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일본의 예를 보면 마치 이웃에게도 모른 척하고 "그 애는 우리와 상관 없는 버린 자식"이라고 하고 숨진 자식의 부모에게, 남편을 잃어 버린 아내에게도 이제는 그 일을 잊어 버리라고,그냥 흘려 버리라고하는 식이다.
살인을 저지른 자는 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목숨을 잃은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한은 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이제 모든 것을 묻어두고 한국일 비롯한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이 끈질기게 잊지 않는다고 외려 살금살금 비난하고 있다. 이제 한때 이웃집에 그토록 큰 피해를 입힌 그 집은 운이 좋아 졸부가 되었다. 그리고 거만해져서 우리가 뭐 그리 못할 짓을 했나교 으름장이다. 망나니 자식과 그를 뒤따라간 자식들을 놓고 못 가르친 부모부터 온 가족이 집안에서 잘잘못을 가리고 반성해야 함에도 입을 꽉 다물고 없던 일처럼 생글생글거리며 즐거운 듯이 산다. 아마도 죄의식 자체가 없어서 그럴 것이다.
죄 의식 자체가 없는 일본, 그 특이한 나라에서 반성이니, 회개니, 과거청산이니 하는 것은 있을 수 없을 것 같다.

50.슬픈 얼굴의 가해자

미국 유엔에 가보면 일본 히로시마 원폭 기념실이 있다. 유차한 영어를 구사하는 일본 아가씨가 그 안내를 맡고 있다. 그녀가 말할 때 그 단어 한마디 한마디에 감정을 담아 원폭이 20만명의 일본일 처참하게 죽였으며(그 가운데 2만 여명은 한국인임을 전혀 언급하지 않고)피폭자들은 오늘도 악몽같은 하루하루로 삶을 지탱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주어(主語)를 원폭으로 써서 이야기 했지만 그녀의 주어는 미국이었다. 아키다의 성모를 보여주며 수 많은 사람들이 다 죽고 건물은 가루가 되었지만 이 성모상은 말짱했다며 종교까지 동원해 일본이 얼마나 많은 피해를 보았으며 미국이 얼마나 천벌을 받을 나라인가를 눈물 가득 담은 가련한 표정으로 살명하고 있다.
곳곳에서 그 설명을 들은 미국 여성들은 "이렇게 잔인 할 수가.....부끄러운 일이예요"하면서 흐느긴다. 참으로 목구멍에서 분노의 뜨거움이 치솟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폭력과 살인을 찬양할 수는 없다. 더구나 원폭 투하를 함으로 많은 인명을 살상한 그 일을 잘했다고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미국이 원폭 투하를 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오늘의 경제 대국 일본은 없었을 것이다. 그대로 일본은 승리하고 있다고 열심히 썼던 언론과 그것을 철썩같이 믿고 있던 백성들, 그들은 파괴를 향해 야릇한 쾌감을 가진 채 갈때까지 갔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히로시마에 원폭이 떨어진 다음에야 수많은 아시아인과 일본이 목숨을 건졌다. 이곳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일본은 전 세계를 향해 자신의 피해 사실과 불행을 인도적인 차원에서 호소하고 죄없는 이들에게 죄의식을 강요하고 있다.
잔혹하기 이를 데 없는 전쟁범,가해자 일본은 어느 틈엔가 자리를 바꿔 철저하게 피해자의 슬프고 가련한 얼굴을 하고 있다.
그것은 마치 잔혹한 고문으로 살해 한 뒤 고문하던 방을 나와 화장실에서 손을 닦고 문을 나서려다가 문지방에 넘어져 발가락을 다쳤다고 아픔을 호소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히로시마 평화 공원에는 해마다 수십억원의 돈을 들여 가면서 초 호화판 기념식을 요란하게 펼치면서도 우리나라 피폭자들은 온갖 이유를 동원해 외면하는 일본인들, 히로시마 평화공원에 원폭 피해자 가운데 10분의 1에 이르는 우리나라 피해자들의 유해를 안치하는 것을 반대하고 평화 공원 근처에 있는 한국인 희생자 묘소에 해마다 불을 지르는 나라가 일본이다.
그들이 정말 피해자인가?
돈이 많은 일본은 엄청난 돈을 들여 일본이 원폭 투하로 얼마나 비참하게 당했는가를 영화로 만들고 각종 미디어를 동원해 선전한다.
일본은 유엔에 막대한 분담금을 내면서 가해저에서 피해자로 그들에 대한 이미지를 조성한다.
유태인들이 나치 독일의 학살에 대한 수많은 영화를 만드는 것 처럼 그들은 수많은 원폭 다큐멘타리를 만들고 미국과 함께 전쟁을 치르면서 고통을 겪었던 연합국을 향해 집요할 만큼 참회를 요구하는 어처구니 없는 짓을 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해자였다는 사실을 아예 잊어버릴려고 든다. 아니, 어쩌면 그들은 그것을 이미 잊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원폭을 맞고 기억 상실증에 걸리기라도 한 모양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은 미친 것이다.

51.반성은 안하고

일본인들은 한국인을 싫어한다.
싫어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한국인들이 일본 사람들의 죄악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일본 텔리비젼에서한국인과 일본인의 문제를 코메디의 자료로 항상 사영하는 코미디언 다마요라는 여자는 일본인이 한국인을 싫어하는 이유를 이렇게 표현했다.
[흑인 애인이 생겼다고 아빠에게 말했죠.그랬더니 아빠는 안된다고 하잖아요,그래서 저는 얼른 그러면 한국인을 애인으로 삼을래요, 했더니 얼른 아빠가 말하는 거 있죠. 얘야, 흑인으로 해라,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일본은 옛날에 한국에 지독한 일을 했단다.한국인들은 그것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지.그래서 일본은 한국이 싫은 거란다.하더군요]

52.컴퓨터 고해성사

카톨릭 신자의 고해 성사를 듣고 회개의 기도문을 지시해 주는 컴퓨터가 나와 성당이 이 컴퓨터를 채택할 경우 앞으로 컴퓨터에 고해를 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95.1.17-19일까지 독일의 프리드베르크에서 열리는 [크레도-비트95]컴퓨터 전시회에서 등장한 이 컴퓨터는 십계명 위반등 약 250가지의 비행에 알맞은 기도문을 고해자에게 제공할 수 있다고 한다. - 95.1.19일자 동아일보 해외토픽 -

53.인생의 화폭

화가인 죠수아 레이놀즈경은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자신이 그릴 화폭 전체에 흰 물감을 두껍게 바르곤 했다. 그는 그렇게 하는 것이 그림 전체에 밝음과 명료함을 준다고 말했다. 이 이야기는 당신을 위한 하나의 작은 비유이다. 당신은 이제 막 인생이라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예수님께서 당신 인생의 화폭을 깨끗하고 하얗게 만드시도록 하라. 보석으로 치장한 여왕 같은 여자도 결코 가져 보지 못한. 이슬로 장식하고 아침에 피어 있는 꽃을 보라. 그리고 그것을 한번 흔들어 보라. 그러면 그 구슬은 굴러 떨어질 것이다.
그런 후 당신이 원하는 대로 조심스레 그 꽃 위에 물을 뿌려 보라. 그러나 다시는 하늘로부터 이슬로 조용히 내려앉아 있던 것과 같은 그런 상태는 만들 수 없을 것이다. 서리가 내린 아침이면. 당신은 산과 호수 그리고 나무들이 아름답고 환상적인 그림으로 어우러져 있는 한 폭의 풍경화를 유리창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손으로 유리를 문지르거나 또는 당신의 손바닥을 유리 위에 가져다 대면 손이 따뜻하여 정교한 창문의 무늬를 지울 수 있으리라.
마찬가지로 젊음에는 아름다움과 순결함이 있으며. 일단 손에 닿아 훼손되면 그것은 다시는 재생되지 않는다. 그것은 유리창의 성에로 만들어진 작품보다 더욱 섬세하고 정교한 무늬고 한번 찢어지고 깨어지면 다시는 붙일 수 없다.

54. 기도의 능력

지적 재능이 매우 뛰어난 어떤 이교도의 판사 부인이 무디 선생에게 와서 자기 남편을 예수 믿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무디 선생은 이런 사람을 설득시키는 데 좀 주저했으나 매우 솔직하게 그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무디는 한 마디 덧붙이기를. “그러나 만일 귀하께서 개종하신다면 나에게 알려
주기로 약속하시겠읍니까.”라고 했다. 그 판사는 냉소하면서
“오. 그러죠. 만일 내가 개종한다면 신속히 알려 드리도록 하겠소”
라고 말했다. 무디 선생은 믿고 기도를 착수했다. 그 판사는 개종했다. 그것도 일 년이 못
가서였다. 그는 약속을 지켜 무디 선생에게 경위를 진술했다.
“어느 날 밤 나의 아내가 기도회에 나갔을 때 나는 매우 불안하고 슬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아내가 집에 돌아오기 전에 잠자리에 들어 갔죠. 그 날 밤새도록 한숨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이튿 날 아침 일찌기 일어나 아침을 먹을 수가 없다고 아내에게 말하고는 나의 사무실로 갔습니다. 직원들에게 휴무해도 좋다고 알리고는 나의 개인 방으로 돌아와 외부와 차단하고 들어 앉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은 점점 더 비참해짐을 보았습니다. 마침내 무릎을 꿇고 자포자기 상태에서 .오 하나님. 나를 도우소서 라고 외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때 나는 즉시 평화를 찾았습니다.”

55. 틈과 구멍

언젠가 한 조각의 목재가 잘리워 구멍과 틈 투성이로 되었다하여 지독히 불평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목재를 쥐고 가차없이 칼로 베어내고 있던 사람은 그 괴로운 불평을 묵살해버렸습니다. 그는 자기가 쥐고 있는 목재로 피리를 만들고 있었으며 매우 슬기로왔으므로 그렇게 해달라고 간청을 받았을 때 단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오. 어리석은 나무 조각아. 이 틈과 구멍이 없으면 너는 영원히 단순한 막대기에 불과하다. 음악을 켤 수도 없고 달리 쓰일 능력도 없는 딱딱하고 새까만 흑단 조각이란 말이야. 내가 만들고 있는 이 틈이 너를 망치는 것 같지만 너를 피리로 만들어 주면 네 아름다운 음악은 사람들의 혼을 매혹시킬 것이다. 내가 너를 자르는 일은 너를 만드는 일이고 그러므로 너는 세상에서 귀하고 가치있고 축복이 될 것이야.”
다윗이 괴로운 시련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절대 그의 가장 아름다운 노래들을 못 불렀을 것입니다. 그의 시련은 그의 생명을 하나님께서 당신 사랑의 음악의 숨결을 불어 넣으시는 악기로 만들어 사람들의 마음을 매혹시키고 위로하게 되었습니다. 생명이 부서지기까지는 그것이 주님의 사용을 위한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56. 위대한 변화

한 개인의 생애에 있어서의 비극을 무조건 하나님의 징계로 보기 보다는 영적인 여과기를 통하여 파악할 수 있어야 하겠다. 조니 이렉슨 타다와 같은 사람을 통해 불행 속에 임재해 있는 하나님의 탁월한 계획의 생생한 증거를 볼 수 있다. 조니 이렉슨 타다와 같은 사람을 통해 불행 속에 임재해 있는 하나님의 탁월한 계획의 생생한 증거를 볼 수 있다. 조니의 생애는 그녀가 아직 어린 10대 청소년이었던 어느 여름 오후에 완전히 뒤바뀌어지게 된다. 얕으막한 수영장 물에 뛰어드는 그 눈 깜박할 짧은 순간에 그녀는 불구가 되었다. 병원에서 수개월 동안 절망 속에 빠져 불안한 미래를 생각하는 그 소녀에게는 희망이 거의 없었다.
“하나님께서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하셨을까.”
라는 끝없는 질문이 밤낮으로 그녀의 입술을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그 소녀의 믿음이 점차로 그러한 고통과 쓰라린 의문들을 극복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 이후 몇 년동안 그 소녀는 이빨로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리는 놀라운 능력을 개발하였다. 하나님께로 향하는 그 소녀의 마음은 껑충껑충 성장하여 수백만의 사람을 전도하는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것은 실로 비극에서 탄생되고 자라난 전도의 성과였다. 그 소녀에 관한 책과 영화와 강의 그리고 특별히 장애자들에게 미친 영향으로 인해 그 소녀의 장한 이야기는 세계적으로 크리스챤들 사이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57 새로운 삶으로 변화 되려거든

어느 교회 젊은 집사님이 담배를 끊지 못해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명색이 집사라는 사람이 담배도 끊지를 못한대서야 체면이 서질 않는다고 생각한 끝에 고심하다가 금년 여름휴가를 기해 보따리를 꾸려가지고 철원에 있는 모 기도원에 들어 갔습니다. 자기 생각엔 기도원에 들어가 기도하고 담배를 끊을 작정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가 가도 이틀이 가도 남들 다 받았다고 날뛰는 성령도 못받고 담배는 여전히 피고 싶어서 숲속 깊은 곳으로 숨어 들어가 담배를 피우곤 했습니다. 그런데 피우긴 하면서도 자신의 모습이 그토록 처량할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왕에 결심하고 올라온 걸음이니 도중에 내려갈 수도 없고 해서 다시 도전하기로 하고 기도중 갑자기
“내버려라 내버려라”는 음성이 들려 오더라는 것입니다. 깜짝 놀라 뭘 내버리라는 걸까 생각하며 주머니를 뒤져보니 바지 주머니에 담배와 라이터가 들어 있더랍니다. 그는 변화를 원했지만 옛것을 버리지 않고 품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그것을 꺼내 유유히 흐르는 한탄강에 집어 던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바위 위에 엎드려 기도하다가 성령을 충만히 받았습니다. 한탄강 물과 함께 떠내려간 담배갑과 라이터처럼 그의 희미하고 흔들렸던 지난날의 신앙생활도 함께 떠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삶이 그에게 찾아 왔고 그는 찬송하며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그날부터 담배냄새만 맡으면 구역질이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58.한 장의 그림

한 장의 그림이 기독교사에 놀라운 영향을 주었다. 스텐버그의 명화 “십자가”이다. 스텐버그는 성 제롬 대성전의 유우고 신부의 요청으로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그리기 시작하다가 중단하고 시간을 끌었다. 이유는 화료가 너무 적기 때문에 흥정하려는 속셈이었다. 그러는 중간에 집시 여자인 페피타를 모델로 다른 그림을 착수하였다. 어느날 모델로 화실에 와있던 페피타가 초만 잡혀 있는 예수상을 보고 십자가의 내용 이야기를 해 달라고 졸라 댔으며 너무나 흔한 성경이야기를 하는 것이 시간 낭비였지만 소녀의 간청에 못이겨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대강 들려준 예수의 이야기에 페피타는 몹시 감동했던 것이다. 소녀는 화가에게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죽었다는 이 훌륭한 사람을 선생님은 무척 사랑하고 계시겠지요.”
라고 불쑥 말했다. 스텐버그의 양심은 몹시 찔렸으며 며칠을 생각하고 뉘우치고 기도한 끝에 전력을 다하여 예수상을 착수했고 주는 화료도 거절했다고 한다. 젊은 공작 진젠돌프가 제롬 대성전에서 이 그림을 보다가 감화를 받고 자기의 전 재산을 바쳐 선교회를 창립한 것이 모라비안교파가 되었고 감리교의 창설자 웨슬레는 그들의 뜨거운 신앙과 전도열에 자극되어 새 사람이 되는 계기가 되었다.

59. 변화

이탈리아의 어떤 도시에 아름다운 얼굴과 우아한 자태. 고상한 표정을 한 그리이스 소녀의 동상이 서 있었습니다. 하루는 한 가난한 시골 소녀가 그 동상을 마주 대하게 되었는데 소녀는 선 채로 그 동상을 빤히 쳐다 보다가 집에 돌아가서 세수를 하고 머리를 빗었습니다. 그 다음날 그 소녀는 다시 동상 앞에 서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서 그녀의 누더기 옷을 수선했습니다. 날마다 소녀는 변화되었고. 모습은 더 우아해졌으며. 얼굴은 더 세련되어 갔습니다. 소녀는 그 유명한 동상에서 풍겨나오는 아름다움의 영향을 대단히 많이 받게 되었습니다.
소녀의 외모가 변모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영적인 사람은 날마다 우리의 주님이시고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형상을 닮아 가기를 구해야 합니다.
당신은 한달 전보다 지금 더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있읍니까. 인간은 자연인. 육적인 사람. 영적인 사람의 세가지로 분류됩니다. 친구여. 당신은 어떤 부류에 속합니까. 만일 당신이 아직도 자연인에 속해 있다 할지라도 지금 당신의 죄를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구세주로 영접하십시오. 영적인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어쩌면 당신은 육적인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의 삶을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 맡기십시오. 그리고 이기주의를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삶 가운데 최상의 자리에 모시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지금 당장 영적인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60. 회개하지 아니하면

미국의 유명한 학자요, 또 목회자였던 에드워즈목사의 일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가 목회하던 교구 내에 주정뱅이고, 도박꾼이고, 교회에는 나오지 않는 타락자가 하나 있었습니다. 한 번은 그가 이른 아침에 파랗게 질려 에드워즈 목사에게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간밤에 꿈을 꾸었는데 천사가 나타나“너 만일 회개하지 않으면 내년 오늘에 너를 불러가겠다”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하여튼 그 날부터 그는 술을 끊고, 도박도 끊고, 교회에 충실했습니다.
그러나 몇개월 지나가더니 그의 발걸음은 교회에서 뜸해지고 점점 열심이 없어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술도 다시 조금씩 마시고 도박도 조금씩 손에 대기 시작했습니다. 에드워즈 목사는 그를 권하고 그가 본 꿈의 환상을 회상시켜 주었으나 그는 “글쎄요 글쎄요”하면서 더욱 교회에서 멀어져 갔습니다. 드디어는 완전히 이전 상태에 돌아가고 이제는 목사님께는 반항적으로 나오면서 “무얼요. 개 꿈을 가지고 그걸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지 않습니까”하더랍니다.
어느날 밤 그는 어떤 빠에서 술에 만취가 되어 계단을 내려오다가 실족하여 떨어져 목이 꺾이어 급사를 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에드워즈 목사가 일기책을 찾아보니 그날이 바로 1년 전 그가 자기를 찾아온 날이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주의 환상을 순종하지 않는 자를 모두 이런 식으로 징벌하시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는 회개하지 않는 경우에 대한 명백한 경고일 것입니다.

61. 노벨 평화상

1888년 한 유명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다이나마이트를 만든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다이나마이트를 제조한 다음에 일약 당대에 명사가 되었고 수많은 돈을 벌고 사람들의 관심과 촉망을 받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가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나 언제나 하던 버릇처럼 신문을 펴서 기사를 읽기 시작하는데, 깜짝 놀랄 만한 기사를 발견했습니다. 그 서두에 자기가 죽었다는 기사가 씌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신과 제가 만일 당신과 저의 죽음을 알리는 신문 기사를 읽는다면 우리는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요? 그 신문 기사의 보도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세계 최초로 다이나마이트를 발명한 유명한 알프렛트 노벨이 죽다.” 이 기사를 읽은 그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실 자기 동생이 죽었는데, 기자들이 혼돈하여 자기가 죽은 것으로 보도를 냈던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사망 기사 앞에서 이 사람은 깊은 침묵과 말할 수 없는 도전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수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폭탄을 만들어서 재물을 얻었고 명성을 얻었지만, 결국 내 인생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나고 마는 것이 아닐까? “많은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폭탄을 만든 제조업자가 드디어 죽다”라고 보도한 신문을 찢어 버리면서 그는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결심을 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훗날 그는 하나님과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재산을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그것이 저 유명한 알프렛트 노벨의 노벨평화상이 시작된 이유임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자신을 위해서는 돈을 벌지만 이것을 무엇을 위해서 써야 할지 알지 못하는, 철저하게 자기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 사람을 향한 주님의 마지막 도전은 얼마나 결정적입니까?

62. 변명

알렉산더 대왕이 어떤 날 노예선을 방문했다고 합니다. 여기는 많은 죄수들이 끌려와서 쇠사슬에 묶여 노를 젓는 비참한 노예선입니다.
여기 왕이 방문하게 되었을 때 많은 죄수들이 이거야말로 일생에 한 번뿐인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각각 자기의 결백을 말했읍니다. 나는 억울한 사람입니다. 나는 죄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억울하게 잡혀와서 이렇게 노예가 되어 고생합니다. 죄수들 전부가 왕을 붙들고 이러한 자기의 변명을 했더랍니다. 그 중에 한 사람만 아무 말이 없었읍니다. “자네는 왜 말이 없나?”하고 왕께서 물으셨을 때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읍니다.
“나는 참으로 죄인입니다. 여기서 이 고생을 해서 마땅한 죄인입니다.”
그 때에 알렉산더 대왕은 “여기 모든 사람이 다 의인인데 의인 속에 왜 너같은 죄인이 있느냐. 너는 집으로 가라”하고 보내 주었답니다. 우리는 저마다 옳다고 우깁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성경은 “스스로 속는 일이 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고 했읍니다.
어떠한 잘못을 저질러 놓고도 이것이 부모 탓이다. 형제 탓이다. 누구 탓이다. 조상 탓이다 하고 전부 다른 사람에게 돌려 버리는 그러한 변명으로 급급합니다. 이것이 현대인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동안은 절대로 그 마음에 평안을 얻을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63. 변화되지 않은 교인

우리에게는 언제나 복음을 하찮은 것으로 만드는 위험,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그리고 우리 안에서 하실 수 있는 것을 최소화할 위험이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에 대해 말할 때 마치 그것이 책장하나를 넘기는 것에 불과하느 것처럼,우리가 늘 해왔던 행동 유형에서 피상적으로 몇가지를 조정하는 일인 것처럼,그리고 조금더 종교적이 되는 것처럼말한다.
사실 표면을 열고 꺼질을 깨고 보면, 그 안에 있는 우리는 여전히 구속받지 않고 변화받지 않은 옛날 그대로의 이교도인 사람들이 얼마든지 될 수 있다.

64. 변화의 차이

3.1절이면 기억해 줄만한 인물이 하나 있다.
바로 신 철이라는 한국 사람이다. 1919년 당시 종로 경찰서 고등계 형사로 있던 그는 특히 수상한 조선인을 색출하는 데는 귀신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그 당시 그의 나이는 사십이었다. 종로 경찰서에 10년간 근무해온 고참이기도 했다.
신철, 그가 일본 경찰의 고위 간부들에게 인정 받기까지는 수많은 동족들의 피와 눈물이 필요했을 것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는 내놓은 민족 반역자였고 천황의 사냥개였다.
기미년 2월 26일께의 늦은 밤이었다.
지금의 안국동 자리에 있던 인쇄소 보성사에서는 불빛이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창문을 안에서 가리고 무엇인가를 찍어 내고 있었다.
그때 보성사 부근을 지나고 있던 신철은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인쇄소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인쇄 중이던 독립 선언문을 집어 들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독립선언문을 읽어 보고 놀란 표정의 인쇄소 사람들을 한번 둘러 본 후 말없이 그곳에서 사라졌다.
이 소식은 즉각 거사를 준비중이던 핵심인사들에게 전해졌다.
33인의 민족 대표 중의 한 사람이던 최린이 신철의 소재를 수소문해서 은밀하게 신철과 마주 앉았다.
{당신은 이제까지 우리 동족들에게 참으로 많은 나쁜 짓을 저질렀소, 이제 마지막으로 한번 우리 민족을 위해서 큰 일을 해 주시오. 당신만 입을 다물어 준다면 우리나라는 머지않아 독립할 수가 있을 것이오, 그러면 역사는 신철이라는 이름을 명예롭게 기억할 것이오}
최린은 당시 돈으로 거금인 5천원을 신철 앞에 꺼내 놓았다.
{ 이 돈이면 만주에 들어가 가족들과 함께 살 수 있을 것이오. 우리 민족 전체의 미래가 당신 ㅅ한 사람의 결정에 달려 있다고 생각해 보시오.}
최린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신철은 한순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사라졌다.
3월 3일로 독립선언은 서둘러 3월 1일에 앞당겨 행하여졌다.
3.1만세 운동이 일제의 잔인한 탄압에 눌려서 독립의 희망이 점차 사그라들던 두 달 후,신철은 자살로 자신의 삶을 마감하고 만다.
고등계 형사 신철과 관련해서 분명한 것 하나는, 그가 독립 선언 계획을 사전에 탐지했지만 이를 일본 경찰에 보고하지 않았기 때문에 3.1운동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최근 3.1운동 당시 33인 민족 대표로 불리는 이들 중 일부가 나중에 적극적인 친일 행각을 벌였다는 주장들이 대두 되고 있다.
청주시 3.1공원 안에 있는 청주 출신 33인 대표 한 사람의 동상이 시민 단체들에 의해서 강제 철거 될 위기에 있다고 한다.
해방 이후 이제 까지 우리 정부의 각료를 지낸 분들의 상당수가 친일 행위를 한 사람들이었다는 조사 결과가 몇일 전에 발표됐다.
그런 저런 믿기 싫은 이야기가 발표될 때마다 신철이라는 사나이가 생각이 난다.
그는 결코 훌륭한 인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의롭게 살다가 후에 변절한 사람들과, 개처럼 살다가 후에의롭게 죽은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
- 1995.3.1, 동아일보"어느 고등계 형사의 자살" -

65. 손때 묻은 벽돌 한장

레이몬드 릴리라는 난폭하고 악한 흑인 청년이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 목사는 거치장스럽고 꼴보기 싫은 존재이기에 목사를 때려 죽이겠다는 결심을 하고 벽돌을 한장 싸들고 교회에 들어갔다. 목사는 그것도 모르고 열심히 설교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성령은 말씀을 통하여 릴리 청년의 마음을 다루시는 것이었다. 드디어 벽돌로 목사의 머리를 치겠다고 들어간 그는 그것으로 자기의 마음을 치게 되었고 그 자리가 릴리 청년이 거듭나서 하나님을 발견한 놀라운 은혜의 자리가 되었다. 수년 후에 세계의 최대 자선병원인 시카고의 쿡크 카운티병원에는 가난한 가운데 질병에 시달리거나 죽어가는 수천의 사람들을 헌신적으로 돌보는 목사가 한명 있게 되었다. 이 흑인이야말로 '선한 사마리아의 흑인 릴리 목사'로 불리운 과거의 릴리 청년이었던 것이다. 릴리 목사가 하늘 나라에 간 장례식의 예배당에는 손때가 묻은 벽돌 한장이 전시되어 보는 사람마다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고 한다. 괴롭건 즐겁건 어느 때나 자기와 같은 살인자를 구원하시고 은혜 주신 것이 너무나 고마워, 레이몬드 릴리가 밤마다 어루만지며 그 위에 눈물을 떨어뜨리며 붙들고 기도하던 그 벽돌이었던 것이다.

66. 강도를 회개시킨 성경

일본의 한 여학교 기숙사에 강도가 들어왔다. “꼼짝마라. 그리고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중요한 것들을 다 내놔라.” 위협한 강도는 그 방에 값나갈 것을 다 챙겨넣고 나가려는데 한 여학생이 “아저씨. 중요한 것은 다 가져 간다면서 가장 중요한 저 책은 왜 안가져가요.”라고 하며 한 낡은 책을 가리켰다. 도둑은 그 책도 집어 넣었다.
그 도둑은 훔친 물건들을 파는데 그 책은 아무도 사려하지 않았다. “도대체 아무도 안사는 이 책이 무슨 책이기에 그 여학생이 가장 귀한 책이라고 했을까.”하며 그 책을 읽어 보았으나 도무지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러나 그 여학생이 한 말이 계속 귓전에서 사라지지 않아서 읽고 또 읽는 동안 그만 변화되고 말았다. 그는 회개하고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고 계속해서 열심히 믿다가 목사가 되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 그가 부흥목사가 되어 한 곳에서 부흥회를 인도하며 자기가 옛날 예수 믿게 된 동기를 이야기하자 앞에서 한 중년 부인이 마구 울어댔다. 분명히 자기 설교에서 은혜를 받아 우는줄 알고 간증을 요구했다. 그 여인은 나와서 기숙사에서 성경을 준 여학생이 바로 자기라고 하며 그 후 강도를 위하여 계속 기도했다는 것이다.

67. 계속적 결단

추운 겨울이 지나가고 따뜻한 봄 햇빛이 대지를 녹일 때면 목동들은 양들을 끌고 나가 겨울 동안 길게 자란 양털을 깎는다고 합니다.
지금은 기계화되어 아주 쉽고 빠르게 깎지만 옛날에는 하나 하나 사람의 손으로 깎는 중노동이었습니다. 이렇게 한 마리 한 마리 털을 깎고 있는 도중에 늦추위 몰아쳐와 눈보라가 날리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당황한 목동은 양들을 다 깎은 양, 절반 정도 깎은 양, 못 깎은 양으로 구별하여 우리에 몰아 넣은 다음 눈보라가 지나가고 다시 따뜻한 햇빛이 대지를 비칠 때 우리를 열고 양들을 끌어 낸답니다. 그럴 때 이상한 것은 다 깎은 양은 앙상한 채로 살아 있는데 오히려 절반 정도 깎다 만 양은 예외없이 감기에 걸리고 그 중 다수가 죽는 것을 경험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결단이 부족하여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앞으로 계속 전진하든지 아니면 차라리 뒤로 물러서든지 어느 쪽으로든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중간에서 어쩔 줄 모르고 방황하며 시간만 허비하다가 일을 그릇치는 경우를 민족적인 차원에서나 개인적인 일에서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란 것도 한 마디로 말해서 계속적 결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처음 전도하실 때 말씀하신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는 결단의 촉구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회개하라'란 말의 뜻은 결코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죄만을 뉘우친다는 개인적인 후회의 감정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난 날 우리가 살아 온 모든 생활 특히 우리가 섬겨온 주권에 대하여 완전히 부정하고 이젠 새로운 주권으로 하나님을 받아들이라는 뜻입니다.

68.새사람

알렉산더 대제 휘하에 알렉산더라는 졸병이 있었읍니다. 형편없는 그의 생활로 말미암아 알렉산더라는 이름이 마구 아무렇게나 불리워졌읍니다. 이 소식을 안 알렉산더 대왕은 예고 없이 졸병의 막사를 방문하여 겁에 질려 경례를 하고있는 졸병 알렉산더에게 "네가 알렉산더라지?" "녜" "내가 두 가지를 명령한다. 네 이름을 바꾸어라, 바꾸기 싫거든 네 삶을 바꾸어라."

69. 회개하라(행3:17-21)

회개는 신앙의 첫단계요(마14:13), 구원 얻는데 관문이요, 절대 조건이다.(요10:1) 복을 받는데 유일한 방편이다.
1. 회개란 무엇인가?
회개란 히브리 원어로 `나함'인데 이는 후회한다, 애통한다이며, 다른 말로는 `수브'로 돌아온다는 뜻이 있다. 신약에서는 `메타노이아'로 회개한다. 전환한다. 방향을 바꾼다는 뜻이 있다. 한자의 뜻으로는 잘못을 고친다는 것. 성경에서 말하는 회개 참조. (눅15:17) 탕자의 회개, (뉵18:13) 세리의 회개(뉵19:1) 삭개오의 회개, (눅23:43) 강도의 회개, (마26:75)베드로의 회개, (시51:1-17) 다윗의 회개.
2. 회개의 종류
(1) 국민적 회개, 이것은 어디까지나 부분적이 되어서 언제나 타락할 소지가 있다. *이스라엘 역사와 니느웨가 그랬음.
(2) 생명없는 일시적 감회로 하는 회개가 있다.
*구약에 사울왕과 가룟유다;양심에 도덕적으로 가책을 느끼는 것이며, 이것은 일시적 감동이지 생명있는 회개는 못된다.
(3) 진정으로 구원에 이르는 회개
가. 지성적 회개로 자기 무능을 깨닫고 죄를 인식하는 것. (눅18:13, 눅15:17, 눅23:43, 시 51:1-17)
나. 감정적 회개의 요소(슬퍼하는 것). (행2;37, 눅18:13, 마26:75)
다. 결의적인 요소 - 사죄를 바라고 하나님께로 돌아 가는것(눅15:18). 이것은 생명있는 회개이 다.
3. 무엇으로 회개하는가?
(1) 성령의 사역으로. 즉 하나님께서 회개하는 마음을 주시므로(딤후2:25), 성령의 원소를 주시므로(렘11:18, 딛3:5), 성령의 영을 주시므로(욥33:4).
(2) 말씀을 들으므로(마26:75, 히4:12, 느8:8-9)
(3) 기도하므로. 기도는 회개에 이르도록 한다.
4. 회개하는 자의 결과
(1) 죄없이 함을 받게 됨(행2:19, 요일1:9).
(2) 유쾌함을 받음(행3:19).
(3) 하나님께로부터 불쌍히 여김을 받음(잠28:13).
(4) 회복을 주심(시51:10, 골3:10).

70.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말씀:암5:4-15)

북왕국 이스라엘은 멸망이 가까워서 그 죄악이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채우고 있었다. 그들은 공법을 인진(쓴 풀)으로 만들며, 정의를 땅에 내동댕이쳤다. 그들은 어는 것이 선하며 옳으냐를 생각하지 않고 어느 것이 유익하며 돈이 생기는가를 생각했다.
그들은 정의나 선에 대해서는 비웃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정직히 말하는 자와 그들의 불의를 지적하는 사람들을 싫어했다. 그들의 정치와 사회의 풍토는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을 귀중히 여기기 보다는 물질 위주, 경제 제일주의, 생산과 산업 제일주의로 기울어져 있었다.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다 가능한 사회었고, 뇌물만 사용하면 불의를 정의로 바꿀 수 있고 무죄한 자를 유죄판결로 만들 수 있는 사회였다. 이러한 악에 대하여 하나님은 아모스를 통하여 예언케 하셨다.
1. 여러가지 징조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파멸이 눈 앞에 다다랐음을 보여 주고 있다.
8절 말씀은 하늘의 여러가지 징조와 정치적인 변혁을 말하며 큰 홍수로 물난리가 있었던 사실을 엿볼 수 있다. "바닷물을 쏟으시는 자를 찾으라"고 했다. 이러한 징조가 보일 때 하나님을 진심으로 찾는 사람은 이스라엘의 "남은 자"로서 살아남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2.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찾노라고 하면서도 잘못 찾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찾노라 하면서도 실상은 벧엘로 향하고, 길갈로 향하고, 브엘세바로 향하고 있다. 여기서 벧엘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세우고 예배를 강요한 곳이다. 이 곳은 곧 축복을 빙자한 종교적 기복주의 신앙의 대명사이다.
길갈은 가나안 정복의 사령부가 있었던 곳이요, 요단강을 건넌 기념돌 열 두개로 기념제단을 세운 곳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의 성지가 된 곳이다. 이곳은 인격적 신앙이 아니라 은사와 능력만을 추구하는 오순절적 비인격적 열광주의의 대명사라고 할수 있으며, 브엘세바란 옛날 지나가버린 은혜에 집착하는 복고 주의 신앙의 대명사라 할 수 있다.
한때 체험한 은혜를 믿고 안일주의에 빠져서 "나는 구원받았다."는 자만심에 매달려 있는 신앙이 곧 브엘세바적 신앙이다. 이러한 여러가지 신앙 태도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타성에 빠져버린 신앙의 매너리즘은 오히려 하나님을 멀리하는 죄가 될 것이다.
3. 진심으로 여호와를 찾는 자만이 살게 될 것이다.
마음을 쏟아놓고 회개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며 생활속에서 공의와 정의를 추구하며 선한 일에 착념할 때 하나님을 만나고 살게 될 것이다.

71. 그리스도인의 새 생활에 대한 권면 (말씀:엡4:17-24)

사도 바울은 옛 사람의 어두운 생활을 끊고 그리스도인다운 새 생활을 할 것을 권한다. 희망에 부푼 새해를 맞은 우리는 우리 안에 자리잡고 있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새 사람이 되기를 간구해야 한다.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지기를 하나님께 빌고있다. 그러나 우리 속에 있는 육의 모습이 우리를 그냥두지 않는다. 우리들의 노력으로 도덕적인 생활이 나아질지는 모르나 여전히 거기서 벗어나지 못함을 깨닫는다. 비평적인 눈을 떠서 내 속에 있는 또 다른 육의 모습을 지적함으로써 거기에서 벗어날 가능성과 새 사람이 되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를 찾아보아야 한다. 새 사람은 그리스도 예수 안의 사람이다. 거룩함으로 하나님께 새로 지음받은 작은 그리스도이다. "새 사람을 입으라"고 선포할 때 성령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새 사람으로 만드실 것이다.
1. 육의 모습
(1) 허망한 것으로 행한다(17절).
(2)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다(18절).
(3) 감각없는 자이다(19절).
그 이유는 죄악에 가리워진 영의 눈이 어두워졌기 때문이며, 마음이 굳어졌기 때문이다.
2. 예수의 사람은
진리가 그 안에 있음을 먼저 알아야 한다(21절). 그리고 그 안에서 진리를 듣고 배우는 사람이 바로 새로운 세계를 추구하는 예수의 사람이다. 그 이유는
(1) 예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기에(요14:6)
(2) 예수 외에 구원을 받을 만한 이름이 없기에(행4:12)
(3)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기에(마17:5)
3. 예수의 사람이 되는 구체적인 노력은
(1) 옛 사람을 벗어 버려야 한다 - 예수를 믿음으로(22절)
(2)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야 한다 - 이방인의 모습을 회개하므로(23절)
(3) 새 사람을 입어야 한다 - 성령을 통하여(24절)
결론
그리스도인의 새 생활은 날마다 자신을 부인하고(마16:24),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 사는 것이요(갈2:20),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기 위하여 성령을 쫓아 사는 생활인 것이다(갈5:16).

72.새로운 피조물 (말씀:롬12:2)

교회는 인간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도록 하여야 할 뿐만 아니라 신자들이 그러한 목표와 가치를 가질 수 있도록 해야하며 인간의 삶에 대한 새로운 방향과 목적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인간의 행위와 삶의 양식이 새롭게 되도록 교회는 부단히 노력하여야 한다(요3:3,고후5:17). 시간은 인간에게 깊은 의미를 준다. 새해를 맞이하는 기독교인은 자신의 육적, 영적 삶을 새롭게 결단하는 엄숙한 순간을 가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1. 인간은 새롭게 변화될 수 있는가?
성경과 역사 속에는 변화된 삶의 주인공들이 많이 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기독교의 박해자가 순교자로 변했으며, 어거스틴은 탕자에서 성자로 바뀌었다. 우리나라 초대교회의 김익두 목사는 깡패로 이름을 날리던 생애를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주님의 종으로 그 생애를 바꾸었다.
인간은 일생을 통해 어느 때나 변화의 가능성을 안고 산다.
2. 참된 변화의 원천은 어디인가?
인간의 학문과 지식, 사상 등에 기대를 걸었던 많은 사람들이 결국에 가서는 회의에 빠지기도 한다. 인간을 새롭게 변화 시키는 근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가능하다(고후5:17).
3. 기독교인에게는 영적인 변화가 우선이어야 한다(요3:3).
인간의 근본적인 요소가 악의 뿌리인 인생은 그 육신의 모습을 바꾼다고해서 마음 자체도 바뀌어지는 것은 아니다. 영적인 변화가 있는 사람은 그 마음과 육체의 생각이 현저히 달라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수를 영접한 후에 거듭났는가를 알아 보려면 그 사람의 행동에 변화가 있는가를 살펴보면 된다.
4. 기독교인의 삶의 모델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신자는 이 세상을 본받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본받아 새롭게 변화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고 이 지상에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무엇인가, 기뻐하시는 일은 어떤 것인가, 온전하신 뜻은 무엇인가를 분별하면서 살아야 한다(롬12:2).
5.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기독교인들은 소망 가운데 살아야 한다(고후4:16).
결론
니고데모를 만난 예수께서는 그에게 가장 먼저 거듭나야 할 것을 말씀하셨다. 예수를 통한 생의 거듭남과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은 바로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기독교인에게 주어진 의무요,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 또한 자신을 새롭게 하므로 세상을 새롭게 하는 빛된 삶을 추구하여야 한다.

73. 회개는 자각으로부터

회개는 먼저 자기가 죄인인 것을 자각함에서 생긴다. 어떤 주일하고 선생이 주일공과를 배워주면서 우리의 집이나 우리의 의복이나 우리의 몸이나 우리의 영혼까지 모두가 다 하나님께로 받은 것이요, 우리의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고 다시 학생들에게 묻기를 너희들 중에 너희들의 소유가 무엇이 있느냐고 하였다. 이 때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학생중에 13세쯤 나보이는 여학생 하나가 손을 들더니 나의 소유는 많습니다 하였다. 선생님은 너무나도 이상해서 너의 소유가 무엇이냐? 다시 물은즉 그 여학생은 눈물을 흘리면서 나에게는 죄가 너무 많이 있다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선생과 학생들은 이 말에 감격했다. 진실로 우리에겐 죄가 많은 줄 알 때에 회개가 생긴다.

74. 이것이 제 이름이요

어떤 흑인 신자가 성경을 읽는데 마태복음 9장 10절 이하에 있는 말씀을 보고 있었다. 때마침 목사가 이것을 보고 기특히 생각하여 그 뜻을 알고 읽는지 시험하여 알아보기 위하여 당신의 지금 읽는 그 곳에 누구의 이름이 씌어져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 때에 그 흑인은 말하기를 "예 이곳엔 제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고 하였다는 것이다. 이 말을들은 목사는 깜짝 놀랐다. 이 뜻을 모르고 읽는구나 탄식하면서 어느 것이 당신의 이름이요 물었다. 그 신자는 이것이 제 이름입니다 하며, 10절,11절,13절에 거듭 거듭 있는 죄인이란 말을 가르킨다. 이것을 본 목사는 참으로 감격했다. 죄인이 죄를 자각하기 전엔 회개할 수 없다.

75. 회개의 눈물

하나님께서 천사를 시켜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을 가져오도록 했다. 맨 처음 천사는 금덩어리를 찾다가 "아니야, 이런 것은 우리 하나님께서 충분히 가지고 있어." 하고 외쳤다 그래서 한움큼 쥔 다이아몬드를 버리고 말았다. 그 후 천사는 하나님께 바칠 귀중한 물건을 찾느라 세상을 두루 살폈지만 안타깝게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날 어떤 죄인의 부르짖음이 들렸다. 발끝을 들어올리고 살그머니 그가 꿇어 앉아 있는 곳으로 가서 조용히 지켜 보았다. 그 사람은 죄로부터 구해 주시고 사랑해 주신 하나님께 회개와 감사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옳지, 이제야 찾았다!" 천사는 금으로 만든 상자에다 눈물방울을 담아 하늘로 가지고 왔다. 천사는 이 땅에서 제일 귀한 보석을 찾아 온 것이었다.

76. 해적 두목의 머리

예날 로마시대 어거스트 대제 때에 이런 얘기가 있었습니다. 그 때에 아주 포악한 해적의 두목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아주 악한 일을 많이 한 나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놈을 잡을래야 잡을 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로마 황제는 현상금을 걸었습니다. 누구든지 그의 머리를 잘라오는 사람은 많은 상을 주고 높은 벼슬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잡아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한 번은 어거스트 대제가 촌으로 순시를 하는데 어떤 건장한 사람이 왕 앞에 나와서 절을 하면서 하는 말이
"제가 해적 두목의 머리를 가져왔습니다. 그러니 제게 어떤 상을 주시겠읍니까?"
이 황제가 깜짝 놀라면서, "네 과연 그의 머리를 가져왔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자기 머리를 가리키며"이 놈이올시다"라고 하면서 왕 앞에 끓어 앞드려서
"이 몸이 많은 죄를 지었는데, 이 죄를 한번만 용서해 주시면 이제 대왕의 충성된 종이 되겠습니다"
라고 해군 장교로 삼았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어떻게 충성을 다하는 지 그 다음에 로마 제국의 해군 사령관이 되었다고 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는 영생입니다. 이 은사를 받는 길은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내 구주로 믿고 온전해 내 생활을 바꾸는 것입니다.

77. 변화

크리스챤 센츄리 지의 편집장 마티 목사가 젊어서 주일학교 교사를 했을때, 3학년 반을 맡았는데 그 반에 학습지진아인 스티븐이 있었다. 부활주일을 앞두고 아이들은 숙제를 가지고 왔다."새로운 생명을 상자 속에 하나씩 넣어가지고 오라"는 숙제였다.
아이들이 상자를 열기 시작했다. 한 아이의 상자에는 꽃이 있었다. 다른 아이의 상자 속에서는 나비가 나왔다. 그 다음 아이는 파란 나뭇잎을 꺼냈다. 스티븐 차례가 되었다. 스티븐도 자기 상자를 열었다. 그러나 그 속은 비어 있었던 것이다. 마틴 선생님은 당황했다. 지능이 모자라는 스티븐에게 남들과 같은 숙제를 냄으로써 망신을 당하게 하는 실수를 범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입을 다물고 스티븐의 빈 상자를 바라보고 있을 때 스티븐은 싱글벙글 웃으며 이렇게 설명하였던 것이다.
"선생님, 예수님의 무덤은 비어 있었다고 하시지 않으셨읍니까? 이상자는 예수님의 무덤입니다.예수님은 이 상자에서 다시 살아나셨읍니다."
마틴씨는 스티븐을 껴안고"맞았다. 녜 숙제물이 가장 좋다"고 외쳤다. 마틴 목사는 그때를 회상하며
"정말 놀랬다.학습지진아가 그런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부활이 빈 곳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은 모든 크리스챤이 깨달아야 할 진리다"라고 종교지에 자기의 감격을 썼던 것이다.
새 옷을 입기 위하여는 먼저 낡은 옷을 벗어야 하는 것이다.
죽어야 부활한다. 나의 허물과 죄와 못된 버릇과 욕심과 교만을 다 십자가에 못박아 나의 옛 사람이 먼저 죽어야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78. 스펄젼의 회심의 경험

1850년 1월 6일, 영국의 콜체스터 시는 심한 눈보라로 도시 전체가 마비되어 버렸다. 그리하여 한 십대 소년은 그가 늘 다니던 교회에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가까이에 있는 교회에 들어가 예배에 참석하였다. 그 교회에서는 출타한 목사님을 대신하여 한 평신도가 서툴게 설교를 하였다.
그가 설교한 본문은 이사야 45장 22절의 말씀이었다.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여러 달 동안 이 소년은 마음의 곤고함과 죄에 대한 괴로움에 빠져 있었다. 비록 교회에서 자랐다 할지라도(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목사였다),그는 구원의 확신을 갖고 있지 못했었다. 그 서툴게 준비한 대리 설교자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은 채. 다만 본문을 반복해 외칠 뿐이었다.
“사람은 바라보는 것을 배우고자 대학에 갈 필요가 없습니다. 누구든지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어린아이라도 볼 수 있습니다.”
그 설교자는 이렇게 열변을 토했다. 그리고 그때, 이 설교자는 한쪽 구석에 앉아 있는 새 방문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그 방문자를 쳐다보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젊은이, 자네는 아주 피곤해 뵈는군.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그때 그 젊은 청년은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바라보았는데, 이것이 바로 위대한 설교가 스펄젼의 회심의 경험이었다.

79.젊은 병사의 서원

미국 남북전쟁의 치열한 전투 중 하나가 아틀란타 근처 산악지대에서 있었습니다. 전투가 끝난 밤에 연합군 소속인 스물 한 살의 젊은 장교가 중상을 입은 채 쓰러져 있었습니다. 위생병들이 이 장교를 쳐다보고는. “죽었어, 숨을 쉬지 않는 걸.”하고 말하면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이 청년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날마다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아들의 성격은 너무 과격해서 대학 시절에 항상 그는 종교적인 문제 밖에 있었으며 무신론자로 자처했습니다.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기도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젊은 장교는 누운 채로 의식을 회복하고 양친들의 믿음을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향하여 만일에 나를 살게 해 준다면 남은 인생을 하나님께 봉사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위생병이 돌아왔습니다. 아직까지 이 청년이 살아있음을 확인하여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는 군목을 불러 그리스도인이 되려 했던 얘기를 털어 놓았습니다.
무엇이 전장에서 부상당하고 쓰러진 젊은이를 위생병이 발견할 수 있도록 하였겠습니까? 위생병들도 그 가능성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청년에게 손을 뻗치시고 다시 고쳐 만드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봉사하기로 서약했던 그의 남은 삶에서 무슨 일이 나타났습니까?
그는 필라델피아의 템플 대학교와 세 개의 종합병원을 설립하였습니다. 필라델피아 침례교회도 그의 남은 생명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는 20여권의 저서를 내었고 수천명의 영혼을 구원시켰습니다. 그 청년이 곧 미국이 배출한 가장 기적적인 인물 중 한 사람인 러셀 콘웰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부셔뜨리고 나서 그에게 봉사하는 적절한 그릇으로 다시 고쳐 만드셨습니다.

80. 변화될 때까지

어느 교회에 처음으로 취임한 신임 목사님이 있습니다. 그는 첫 취임 예배에서 아주 멋지고 놀라운 설교를 했습니다. 교인들이 얼마나 기뻐했을까요. 우리가 정말 목사님을 잘 모셔왔다고 생각했겠지요. 그 다음 주일이 되었습니다. 이 목사님이 취임 예배에서 한 설교와 똑같은 설교를 또다시 했습니다. 고개를 갸우뚱하는 교인들이 늘어갑니다.
“저분이 지난 주일에 설교하신 것을 잊었나”하고 중얼거립니다.
그래도 이제 두번째이니까 혹시 잊었거나. 아니면 취임 예배로 너무 정신이 없어서 설교 원고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착각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이해할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세번째 주간에도 이 신임 목사님은 첫번째, 두번째 주간에 하신 설교를 똑같이 하셨습니다. 당신은 상상할 수가 있습니까? 똑같은 설교를 세 번 들었을 때의 교인들의 반응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모셔와도 단단히 잘못 모셔왔다”고 말할 것입니다.
한 용감한 교인이 목사님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목사님, 목사님은 언제 새로운 설교를 시작하시겠습니까?”
그래서 그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당신이 이 말씀을 정말로 삶 속에 적용할 때 그때 저는 새로운 설교를 시작할 것입니다.”
당신은 무슨 목적과 동기로 이 말씀을 받으십니까. 단순한 지적인 만족을 위해서 이 말씀을 받으십니까? 아니면, 행동의 변화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으로 이 말씀을 받으십니까? 우리가 이 말씀을 순종할 때 참 자유를 얻습니다.

81. 은총받은 생활

문학가“오스카 와일드”의 우화적 단편이 있다. 이 이야기는 예수께서 과거에 은혜를 입혀준 몇 종류의 사람을 그 후 다시 만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우화적으로 엮어본 것이다.
처음 예수는 한 주정꾼을 만난다. 그는 거의 폐인과 같이 된 젊은이였다. 예수께서 왜 그런 생활을 하고 있소 하고 물었더니 주정꾼은 이렇게 대답한다.
“당신이 내가 절름발이였을 때 나를 일으켜 걷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걸어 다닌들 무엇을 먹고 살라는 말이요, 그동안 직업을 구해 보았으나 만족한 직업 하나도 없었오.”
그 다음 예수는 한 여자가 창녀가 되어 남자들 사이에서 희롱받고 있는 장면을 보게 된다. 예수는 여자에게 말한다.
“어째서 이런 생활로 되돌아 갔오.”
창녀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나를 창녀에서 건져 새 사람을 만들어준 것 같았으나, 창녀에서 발을 씻은들 무슨 행복이 있단 말이오. 나는 더욱 고독해서 살 수가 없었기 때문에 다시 창녀의 생활을 시작했오.”
그 후 예수는 한 불량자가 정신없이 이웃과 매질을 하고 있는 장면에 부딪힌다. 예수는 그에게 묻는다.
“여보 청년. 어째서 이런 생활을 하고 있오.”
불량자는 예수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당신이 눈을 뜨게 해 준 소경이었소. 그러나 눈을 뜨고 무엇을 보라는 거요. 보이는 것이 모두 신경을 돋구고 귀찮고 화나는 세상이 아니오. 결국 나는 화풀이도 하고, 마구 치고 받고 하는 생활이 나에게 주어진 길이라고 생각하였소.”
이 단편은 은총을 은총으로 살려, 빛을 내지 못한 인간상을 그리고 있다.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은 참으로 거대한 것이다.
창녀에게서 구원되거나 소경이 눈을 뜨는 이상의 큰 은혜를 우리는 입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감사를 모른다. 감사란 입술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받은 바 은혜를 깨닫고 그 은혜에 보답이 되는 새로운 생활로 자기를 전환시킬 때 감사의 의미가 비로서 살아나는 것이다.

82. 변화된 기도

우리가 교회 생활을 하다 보면 때때로 바람직하지 못한 인간 관계의 위기를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목사와 집사 사이에도 그런 일이 가능합니다. 전에 제 속을 조금 썩이시던 집사님 한 분이 계셨습니다. 제 마음이 참으로 아팠습니다. 그래서 그 분을 위해서 30일 기도를 작정했습니다. 매일 새벽에 나와서 새벽 기도를 그렇게 하기 싫어하던 제가 그 집사님을 위해서 30일을 작정하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그 집사를 한번 혼내 주십시오”라는 그런 기도는 안했습니다.
겉으로는 “하나님, 그 집사의 마음을 좀 바꾸어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내 기도에 어떻게 응답하셔서 과연 저 집사의 모습이 어떻게 바뀌어 지는가를 확인하기 위해서 저는 주일마다 그 집사님의 모습을 눈여겨보기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그 분의 얼굴은 험상궂은 얼굴 그대로입니다. 저를 향한 태도가 조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을 바라볼 때마다 여전히 제 가슴은 떨립니다. 그러나 저는 그 기도를 계속했습니다. 그런데 한 3주간쯤 지나서 갑자기 제 기도의 내용이 변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제가 그것을 의도하지 않았는데 기도하다가 제 마음 속에 어느새 이런 기도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그 집사님을 사랑하지 못했던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어느 날 새벽 저는 울면서 이렇게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저를 변화시켜 주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 후 주일에 그 분을 보니 그렇게 달라 수가 없었습니다. 누가 달라졌는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기다리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83. 변화되지 않는 이유

어느 성도가 빨래비누 공장 주인의 친구였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신자 이고 또 한 사람은 신자가 아니어서 만나기만 하면 서로 논쟁을 벌였습니다.
어느 날 빨래비누 공장 사장이 성도인 친구에게 시비를 걸었습니다.
"자네가 믿는 복음이 그렇게도 귀하고 또 열심히 전하는데,왜 세상은 점점 죄악이 늘어나고 부조리가 날로 심하여 가는지 설명 좀 하게."
교회가 그렇게도 많은데 세상은 왜 악해지는지 말해보라는 것입니다. 성도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자네는 열심히 빨래비누를 많이 만드는데 왜 거리 에는 아직도 더러운 것이 많으며 더러운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는가?"
그랬더니 사장은
"그거야 그들이 빨래비누를 사다가 쓰지 않기 때문아니겠나?"라고 너무나 당연한 듯 자신있게 대답했습니다.
"바로 그거야! 복음은 분명히 복음이지만 사람들이 믿고 받아들이지 않으니 어찌하겠는가.자네도 복음을 믿지 않으니까 그 모양이지. 복음을 복음으로 받아 들이지 않는데 어떻게 변화가 있겠는가?"라고 재치있게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시어 그 사랑을 계시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입니다. 그러므로 성숙한 믿음을 가진 자는 하나님의 사랑의 방법을 인정하고 시인합니다.
내 방법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의 방법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미숙한 인격의 사람은. 즉 고집스럽고 어리석고 미련한 사람은 자기의 좁은 채널 안에서 사랑을 비판하고 평가합니다. 그래서 나의 소원. 나의 욕망.나의 이상대로 되어야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자기 손바닥만한 것을 딱 내어놓고 이대로 되어야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사랑하지 않는다고 채널을 좁게 한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84. 남을 변화시키는 삶

나는 우리 교회에 다니는 어떤 사람의 남편으로부터 자기를 방문하거나 교회에 참석하라는 말을 하지 말아달라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는 목사가 자기를 방문하는 것도 원하지 않았고 어떤 사람도 자기를 방문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편지를 써서 그의 요청을 존중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했습니다.
일 년 후 그 사람이 교회에 나타났습니다. 찬송을 마친 후 그는 앞으로 나와 자신의 삶을 헌신하고 교회 식구들과 교제를 나누는 삶으로 되돌아왔음을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그를 돌아오게 한 것은 그의 헌신된 그리스도인 아내의 거룩한 삶 때문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어떤 설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잔소리하거나 논쟁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그를 위해 기도했고 그 앞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녀는 그 가정에서 소금이었고 그녀의 삶은 남편으로 하여금 그녀가 가지고 있는 것을 갈망하게 만들었습니다.
교회에는 충실하게 다니면서도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고백을 하지 않는 다른 사람을 소개하겠습니다. 어느 일요일, 그는 복도를 내려와 믿음을 고백하고 교회의 일원으로 받아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나는 그에게 “무엇이 당신으로 하여금 이러한 중요한 결정을 하도록 했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는 나의 설교나 찬양 혹은 교회 가족들의 심방에 대해서는 전혀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회중 속에 있는 한 젊은 부부를 지적했습니다. 그들은 최근 무척 힘든 고난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나는 그들을 관찰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이 이 어려운 때에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보았습니다. 그후 나도 그들이 소유한 것을 갖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 부부가 그의 삶에 소금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그로 하여금 그리스도인의 삶의 축복을 갈망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소금은 부패를 막습니다. 소금은 삶에 맛을 가져다줍니다. 그리고 소금은 사람들을 목마르게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85. 풀잎

풀잎은
퍽도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어요.
우리가 '풀잎' 하고 그를 부를 때는,
우리들의 입 속에서는 푸른 휘파람 소리가 나거든요.

바람이 부는 날의 풀잎들은
왜 저리 몸을 흔들까요.
소나기가 오는 날의 풀잎들은
왜 저리 또 몸을 통통거릴까요.

그러나 풀잎은
퍽도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어요.
우리가 '풀잎', '풀잎' 하고 자꾸 부르면,
우리의 몸과 맘도 어느덧
푸른 풀일이 돼 버리거든요.

86. 내부(內部)의 문제

자신의 신변안전에 남달리 신경을 쓴 인물이 있다.과태말라 대통령 알폰소라는 사람이다. 그는 대통령 관저를 중심으로 반경 2KM안에 있는 건물은 무조건 관저ㅉ곡으로 난 창문을폐쇄시켜 버린 사람이다. 이런 인물이니 자신의 신변 안전을 위한 극성이 오죽했겠는가? 그가 취한 몇 가지 조처를 살펴보자. 친위대를 제외하곤 어느 누구도 무기를 휴대한 채 자기 관저에 출입하는 것을 급했다. 주치의는 하루 세 번씩 그를 검진했고 어떤 물건이라도 친위대의 엄격한 사전 검사 없이는 절대로 관저 안으로 가지고 들어갈 수 없었다. 음식물은 검사관이 시식한 다음이라야 그의 식탁에 오를 수 있었다. 대단한 극성이 아니겠는가? 이상과 같은 조처만가지고는 자신의 신변 안전을 보장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여 당시 150만불이라는 거금을 지불하고 대통령 전용의 방탄차를 구입했다. 이 차는 기관포로 습격을 당해도 끄떡없도록 설계된 것인데 경호용으로  완벽한 것으로 알려진 차이다. 그런데 이 방탄차를 인수하고 한껏 기분이 좋았던 그 다우  날 평소에 절대적으로 신임하던 친위대원의 총탄을 맞고 그렇게 가기 싫었던 지옥으로 급행하고 말았다.
우리나라 제 3공화국의 박정희 대통령이 떠오른다.
그 또한 자신의 신변 보호에 어지간히 신경 쓴 사람이다. 청와대 경호실 직속으로 3군 참모총장이 들어 있었다는 편제 하나만으로도 그간의 사정을 집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긴변 안전과 정권의 안전 보장을 위하여 세워 두었던 김재규에게 총탄을 맞고 최후를 고하고 말았다.
진시황을 생각해 보자.
그는 중국을 통일한 다음자기 나라를 영속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하여 문자를 통일했고 쓸데없는 공론을 없앤다는 생각으로 분서갱유라는 야만적인 정책까지 실시한 사람이다. 그리고 국가를 외적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하여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에서도 제이로 꼽히는 만리 장성을 쌓기가지 했다.
그러나 자신은 49세라는 한참의 나이에 과로로 쓰러져 죽었고그의 나라는 신임하던 환관 조고와 사랑하고 아꼈던 아들 2세 황제인 호해의 난정으로 그가 간 지 3년 만에 멸망하고 말았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를 망치는 요인은밖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로마가 망한 것은 외적 때문이 아니고 그들의 사치와 방탕, 허영과 무절제, 음란과 호사,게으름과 무빌서한 생활습성 등 로마정신의 부패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상의 모든 사례를 통하여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있다. 인간들의 근본 문제는 나라안에 있고, "나"라는 개체의 문제 또한 언제나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적에게 강토를 빼앗긴 덴마크의 선각자들이 밖에서 잃는 것을 안에서 찾자라는 슬로건을 걸어 놓고 오늘의 덴마크를 건설했다는 것은 형명하기 작이 없는 일이아니겠는가?
우리 기독교는 재물,권력 도는 사회적인 여건의 중요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런 기독교는 그다위 외적인 것에 문제의 핵심이 있는 것이 아니고 내적인 것, 즉 자신의 내면세계에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고 주장하는 종교다. 예수님이 독립운동을 하지 않고 노예들에게 인권쟁취를 위한 항쟁을 권하지 않으면서 사람들을 향항여 회개하라고 외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87.온전한 변화

고양이가 미남 청년을 사랑하게 되었다.
고양이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에게 자신을 여자로 만들어 달라고 간청했다. 고양이의 딱한 사정을 가엾이 여긴 여신은 고양이를 아름다운 처녀로 만들어 주었고, 청년은 첫눈에 그녀에게 마음이 사로 잡혔다.

이들의 첫날밤에 아프로디테신은 고양이가 외모만 변신한 것이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 신방에 쥐 한 마리를 넣어 보았다.
그러자 처녀가 된 고양이는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를 가맣게 잊은 채 침대에서 뛰어내려 쥐를 잡기 시작했다.
여신은 화가 나서 처녀를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려 버렸다. /한국컴퓨터선교회

88 깨끗한 공기로 강물을 정화시킨다.

스톡홀름 부근에 있는 한 강물이 대단히 오염되었었는데 압축 공기 기술로 정화되어 물이 본래의 질로 되살아나고 있다. 이 방법을 산소가 거의 없는 호수의 깊은 물을 압축기로 빨아들여 압축기 속의 공기와 섞어 새로운 산소를 만들어 다시 호수로 내보내는 것이다.
이런식으로 물에 산소를 공급하는 것은 호수의 기온에 아무 변화 없이 할 수 있으며 수년간 오염되어 있던 호수바닥을 정화하여 신선하게 통풍되어 산소가 풍부한 맑은 호수가 되었기 때문에 많은 물고기와 수중식물이 살 수 있게 되었다.
우리의 삶에도 여러 가지 오염되어 있는 부분이 많다. 그러한 것을 발견 하여 점진적으로 정화해 나가야 한다. /한국컴퓨터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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