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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에 관한 예화 모음
▣ 곁에 있는 보혜사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신다고 약속하실 때, 그분이 사용하신 말은 성령이 단지 하나의 힘이 되거나 혹은 하나의 비인격적인 영향력이라는 오해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 것이었다. 예수님께서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요14:16)라고 하셨다.
희랍어의 '또 다른'이라는 말은 '동일한 하나'를 의미한다. 성령은 그리스도와 동일한 분이시며 하나의 인격이시다. '보혜사'라는 말은 '곁에 있는 사람'을 뜻하는 '파라클레테'라는 희랍어에서 온 것이다. 이 말은 요한일서 2: 1에 나오는 '대언자'로 번역된 말과 똑같은 말이다. 만일 이 말이 인격적인 존재에 적용된다면, 이 말의 의미는 더욱 분명해진다. 성령은 우리의 변호자시다. 그분은 우리를 돕고 가르치고 중재하기 위하여 보내진 분이시다. 그분은 인격체이시다.
* 참조: 요14:16, 15:26, 요일2:1, 행9:31
▣ 성령의 힘
고오찌 요시다로오는 17세 때 주인의 돈을 훔쳤습니다. 그리고 18세 되던 해에는 주인의 아내와 불륜의 관계를 맺은 후 그녀를 죽이고 집에 불을 질렀습니다. 그는 체포되어 무기징역 선고를 받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밤에 꿈을 꾸는데 환한 빛이 비취더니 천사가 그에게 왔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일꾼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러 왔다. 지금 내가 네게 보여 주는 성경을 읽고 말씀대로 행하여라.” 천사는 그에게 커다란 성경을 펼쳐 보여 주고는 곧 사라졌습니다.
며칠 후 그는 똑같은 꿈을 꾸었습니다. 그는 고민 끝에 성경을 구했습니다. 그는 밤낮으로 성경을 읽었습니다. 혼자 성경을 읽을 뿐 아니라, 사람들을 모아 놓고 읽어주기까지 했습니다. 그후 교도소 안에는 일대 변혁이 일어났습니다. 고오찌 요시다로오의 변화는 물론이요, 그와 동일하게 무서운 죄를 지은 죄인들이 하나 둘 변화되어 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성경은 모든 죄수들의 공동 소유물로써 그들로부터 가장 소중하게 여겨지는 물건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교도소 안을 변화시킨 장본인이자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고오찌 요시다로오는 특사로 가출옥되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 깨달음을 주시는 성령
유치원 선생님들의 가장 큰 애로점은 아이들과 말이 통하지 않는 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모든 말을 아이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까지 낮춰서 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말을 들려 줘도 듣는 사람이 그것을 깨닫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럴 때는 정말 답답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천국 복음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려 깨닫지 못한다면 세상의 의미 없는 다른 말들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우리 안에 계시는 성경을 기록하신 성령님께 간구하면 천국 말씀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우리는 이제 간절함과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성령님께 무릎을 꿇으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천국 말씀을 들려주실 때 "귀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를 믿고 성령님이 그 마음속에 있는 자는 들을 수 있는 귀와 깨달을 수 있는 머리를 가진 자입니다. 겸손함과 사모하는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오면 성령님은 분명히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십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천국 말씀은 우리를 변화시키는 능력이 됩니다. 듣지만 말고 깨닫는 자가 되십시오.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리운 자요"(마13:19)
▣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영국이 낳은 청교도 신앙가 존 번연 목사님이 국왕의 명을 어긴 죄로 감옥에 갇혔던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옥사장이 번연 목사님께 윗사람 모르게 옥문을 열어주면서 집에 가셔서 사모님과 식구들을 잠깐 뵙고 오시라고 하였습니다. 얼마쯤 가다가 목사님이 되돌아오기에 왜 오셨냐고 묻는 옥사장에게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호의는 고마우나 성령이 인도하시는 길이 아니라서 돌아왔습니다." 그로부터 한 시간 후에 이 나라 국왕이 직접 감옥을 시찰하면서 존 번연 목사님을 확인하고 돌아갔습니다. 이때 옥사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목사님께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행동하셨기에 목사님도 살고 나도 살았습니다. 이제 제가 언제 목사님께 가시라 오시라 하지 않을테니까 목사님의 마음에 비쳐오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시고 싶을 때 가셨다가 오시고 싶을 때 오시기 바랍니다."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노라면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설 때가 많습니다. 세상을 사는데 있어서 결코 내 고집이나 방법대로 생활하지 마십시오. 성령의 인도를 따라 생활하십시오. 양심에 비쳐오는 주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시고 내심에 비쳐오는 성령의 지시하심을 따라 행동하십시오.
* 기도: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아버지 하나님, 내가 성경의 기록된 말씀을 읽을 때에 밝히 깨닫게 하소서. 또한 깨달은 말씀을 사람들에게 나누고 지도할 수 있도록 기회를 허락하셔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용되게 하소서.
▣ 한국의 오순절 이야기
1907년 1월 6일부터 열렸던 평양 장대현교회의 저녁집회 열리는 날이 갈수록 더해 갔습니다. 그러다 14일 저녁집회 때 능력의 종으로 말씀을 선포하던 길선주 장로가 회중 앞에서 자신의 죄를 공개적으로 통회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나는 아간과 같은 자입니다. 나 때문에 하나님이 축복을 주실 수가 없었습니다. 약 1년 전에 내 친구 중 한 사람이 임종시에 나를 자기 집으로 불러서 말하기를 ‘길 장로, 나는 이제 세상을 떠날 것 같으니 내 재산을 잘 정리해 주시오. 내 아내는 셈이 약하기 때문이오’라고 부탁했습니다. 나는 내가 잘 돌보아 드릴 테니 염려 말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미망인의 재산을 관리하다 나는 미화 100달러 상당의 금액을 사취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일을 방해해 온 것입니다. 내일 아침에 그 돈 전액을 미망인에게 돌려 드리겠습니다.”
길선주의 예기치 않은 고백은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상한 심령을 주님께로 향하게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길선주의 회개가 있은 후 그렇게 무겁게 짓누르던 방해의 장벽은 별안간 무너져 버리고 거룩하신 하나님이 친히 임재해 주셨습니다. 이에 이길함 선교사는 “기도하기를 원하면 함께 통성으로 기도하십시다”라며 통성기도를 요청했고, 그곳에 모인 이들은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길선주의 회개가 마치 뇌관에 불을 붙인 것처럼 되어 청중 가운데 성령의 강한 임재와 통회의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곳에 참석한 한 선교사는 한국인들의 기도 소리가 마치 하늘 보좌를 향해 포효하는 것 같았다고 증언했습니다.
「평양 대부흥 이야기」/ 박용규
▣ 위로의 보혜사 성령
이스라엘의 아버지들은 가정교육에 매우 엄격합니다. 아들이 곁길로 가면 꾸중하고 무서운 체벌을 가합니다. 그러면 아들은 ‘저 사람이 정말 나의 아버지가 맞을까?’하고 의심한다고 합니다. 그때 어머니는 아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아들아,네가 잘못할 때마다 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아픈 줄 아느냐. 너를 때릴 때마다 아버지는 가슴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신다”고 말해준다고 합니다.
보혜사란 말은 이처럼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를 아름답게 이어주는 어머니의 역할을 의미하는 ‘파라클레이토스’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우리가 애매하게 당하는 고난이나 이해할 수 없는 고통으로 인하여 눈물 흘리고 있을 때 보혜사 성령께서는 아버지에게 맞은 아들을 위로하는 어머니처럼 눈물을 닦아주시고 위로해주십니다.
인생이 광야처럼 삭막하고 힘들 때 아무도 나를 돌아봐주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고독한 순간에도 내 영혼을 안아주시는 위로의 보혜사 성령님의 손길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소강석 목사(분당 새에덴교회)
▣ 바이러스와 백신
컴퓨터를 사용해본 사람이라면 한번쯤 컴퓨터 바이러스에 걸려 고생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컴퓨터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프로그램이 망가져서 그동안 수고해서 작업한 파일이 한순간에 사라져버린다.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도 바이러스에 걸리면 소용이 없다. 이때는 컴퓨터 백신으로 바이러스를 잡아 제거해야 한다. 이처럼 우리의 인생 역시 아무리 좋은 목표와 계획을 세웠다 해도 이를 방해하는 세력이 있다. 곧 마귀라는 바이러스다. 그것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성령의 백신뿐이다. 컴퓨터 바이러스는 아직 예방은 하지 못하고 치료만 가능하다고 하지만 성령의 백신은 예방과 치료가 동시에 가능한 최첨단 슈퍼 치료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항상 성령으로 무장하고 깨어 기도하여 마귀라는 바이러스를 물리쳐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김성혜 총장 (한세대)
▣ 왜 무디인가?
미국의 D L 무디(1837∼99) 목사만큼 기독교 부흥시킨 인물도 드물다. 그는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했지만 복음적이며 영감 있고 열정적인 설교로 수많은 영혼을 주께 인도했다. 그의 집회가 있을 때마다 은혜를 받으려고 모여든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한 지역에서 무디 목사를 초청,전도집회를 가지려는 준비모임이 열렸다. 이때 어떤 젊은 목회자가 벌떡 일어나 “왜 강사로 무디만 고집합니까? 무디 외에는 설교자가 없단 말입니까? 그가 성령을 독점하기라도 했단 말입니까?”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존경받는 원로 목회자가 조용히 웃으면서 말했다. “무디만이 성령을 독점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러나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이 시대에 무디를 독점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순간 장내에는 박수갈채가 터져나왔다. 이 시대에도 분명히 성령께서 쓰시는 사명자들이 있다.
/김상길 국민일보 논설위원
▣ 기도를 도우시는 성령님
옛날 이야기 입니다만, 희랍의 한 신이 왕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당신의 한 가지 소원을 말하면 이루어 주겠다” 고 하니, 왕이 곰곰이 생각하다가 “금을 많이 가졌으면 좋겠으니 내 손이 닿는 것 마다 다 금이 되게 해달라”고 소원을 말했습니다. 그러자 정말 놀라운 능력이 나타나는데, 마이크를 잡으면 마이크가 금이 되고, 종을 잡으면 종이 금으로 변했습니다.
너무 신이 나서 왕비에게 알리려고 가다가, 강아지가 반갑게 다가와서 껴안으니 강아지가 금 강아지로 변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꼭 껴안았더니 아내가 금덩이로 변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와서 안기니까 그 아들도 금덩이가 됐습니다. 배가 고파서 밥을 먹으려고 수저를 들었더니 수저도 금덩이요, 밥도 금덩이로 변해서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어서 쫄쫄 굶다가 굶어 죽고 말았다고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대로 다 된다면 오히려 우리에게 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로 바꾸어 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 기독교의 능력은 성령의 능력
여러 해 전에 어떤 사람이 미국에 와서 큰 인기를 얻으며 많은 추종자들을 끌어모았다. 그 방법은 가정에서 만든 ‘로자리오 묵주’(rosary)였다. “매일 아침 이 작은 줄을 어루만지며 ‘나는 날마다 더 좋아지고 있다’라고 중얼거리면 만사가 형통할 것이다”라는 그의 황당한 주장에 그토록 많은 사람이 놀아났던 것이다.
기독교는 이런 황당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권능은 다른 세계로부터 찾아오는 능력이요, 우리의 동의에 따라 우리의 삶 속으로 들어오는 능력이요, 우리의 삶의 뿌리까지 찾아와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이다. 이것은 미신의 능력이 아니다.
나는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이 성령님에 대해 정말 제대로 알았으면 좋겠다. 일부 신자들은 성령님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 그분에게는 비정상적이거나 무시무시한 것이 없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靈)이시다. 때문에 그분은 꼭 예수님 같은 분이시다. 예수님이 그토록 온유하고 겸손하실 수 있었던 것은 그분이 성령님의 능력으로 충만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날 하나님의 영은 홀대를 당하신다. 심지어 성령님의 능력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조차 광신자라는 손가락질을 받을까 봐 성령님의 능력을 제대로 전하지 못한다. 이 모든 것은 사람들이 성령님을 두려워하여 피하도록 만들려는 마귀의 속임수 때문에 생긴 현상들이다.
「세상과 충돌하라」/ A. W. 토저
* 기도: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을 허락하소서. 또한 말씀을 읽을 때마다 성령님을 의지하게 하시고 말씀을 바르게 깨닫고 적용할 수 있도록 매순간마다 인도자가 되어 주소서.
▣ 성령 충만 하지 않으면
강원도 예수원에서 사역하셨던 대천덕 신부님은 성공회 신부님이신데 그분 할아버지인 R. A. 토레이 목사님의 글에는 성령 충만이 자주 강조됩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성령 충만을 위해서 기도한다. ‘하나님! 성령 충만하게 도와주십시오.’ 왜냐하면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오늘 하루 나는 너무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또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 제가 성령 충만하다고 느끼지 못할 때 함부로 말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성령 충만하지 않을 때 말하면 실언이 되기 쉽고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 쉽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제가 성령 충만하지 않을 때 제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저의 결정은 잘못될 가능성이 항상 있기 때문입니다.” R. A. 토레이 목사님은 이처럼 성령 충만을 사모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우리 감정을 다스린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부패한 인간의 죄성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실패합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을 사모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령이 우리를 주관하시면 우리는 감정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분노를 넘어서서 자유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분노하는 이유는 죄의 소원을 다스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회개행전」/ 이동원
▣ 성령의 역사
성경: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인도의 개척 선교사였던 스코트 목사는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미개척 선교지를 향하여 가다가 적의를 품은 한 무리의 사람들에게 붙잡히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긴 창으로 그의 심장을 겨누었습니다. 이젠 꼼짝 없이 죽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는 하나님의 약속 위에 굳게 서서 늘 가지고 다니던 바이올린을 켜면서 원주민들의 언어로 찬송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주 예수 이름 높이어 다 찬양하여라. 그 앞에 무릎 끓고서 면류관 드리세. 금 면류관을 드려서 만유의 주 찬양" 스코트 목사는 잠시 후면 다가 올 죽음을 기다리며 눈을 감고 찬양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나 3절이 다 끝나도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눈을 떠보니 그를 겨누고 있던 사람들의 손에서 창이 떨어져 있었으며, 눈에는 눈물이 가득 교여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찬양을 받으실 그 높으신 이름이 누구인지 말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그들과 함께 집으로 가서 여러 해 동안 그들 가운데서 거하며 수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했습니다. 이것은 성령의 역사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오늘도 성령님을 의지하여 승리하시는 아름다운 날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내게 계시네
황의성 씨가 쓴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내게 계시네] 라는 책의 제목은 찬송가 427장 후렴 가사를 옮겨 놓은 것이다 그는 지난 2001년 3월에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427장의 찬송을 하루에 세 번 내지 다섯 번씩 불렀다고 한다 황의성 씨는 소년 시절부터 절도와 폭력, 강도, 강간, 등 닥치는 대로 죄를 저질렀던 사람이다. 그래서 교도소도 여러 번 다녀왔다 그런데 1970년 12월, 7개월의 복역 잔류 기간을 앞두고 안양 교도소로 이송되는 상황이 생겼다 새롭게 지정된 감방에 들어가니 고참들이 고통을 주기 시작했다 화가 난 황의성 씨도 육탄전으로 맞섰지만, 그때마다 눅실하게 맞고는 분을 삭일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감방 안에 변기통 옆에서 한 죄수가 그들의 싸움을 보며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기도를 마친 그 사람은 눈물도 닦지 않은 채 황의성 씨의 피를 닦고 간호를 해 주었다고 한다 그때 황의성 씨의 가슴은 마치 불덩이가 날아와서 불을 붙이는 것처럼 뜨거워졌다고 한다 그로부터 황의성 씨는 착실한 신자 죄수와 친하게 지내면서 그리스도를 영접했고, 성경을 읽으면서 뜨거운 성령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다 황의성 씨가 변화되는 모습을 본 교도소 측에서는 3개월을 앞당겨 출소시켜 주었다 이후 그는 날마다 이 찬송을 불렀다 "성령이 계시네, 할레루야 내게 계시네." 이렇게 성령은 불씨 중에 가장 위력 있는 불씨라서 한 죄수의 마음을 태우고, 그로 하여금 영혼 구원 역사에 동참케 했던 것이다.
/임해식
▣ 비둘기 같은 성령
젊은 크리스천 여성이 백화점에 취직했다.
주위 동료들이 모두불신자였으므로 그녀는 세속적이고 비속한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으려고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얼마 동안은 친구들에게 물들거나 무의식 중에 기독교인 티를 내는 말이 튀어 나올까봐 조마조마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은 친구들의 방식을 따르고 싶은 마음이 없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예전과 변함 없는 생활을 하고 있는 사실이 참으로 놀라울 뿐이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그런 환경 속에 있으면서도 전혀 더럽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그녀는 자신보다 먼저 기독교인이 된 믿음의 선배를 찾아갔다.
"제가 그런 곳에 있으면서도 물들지 않은 생활을 하는 것이 참 이상합니다. 이것만으로도 큰 기쁨입니다."
그녀의 말을 들은 선배는 조용히 말했다.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를 알지? 이 비둘기는 지상의 오물 가운데에 있어도 단 한 번도 더렵혀지지 않아. 항상 자신의 빛깔인 순백을 잃지 않고 있어. 왜냐하면 비둘기의 날개 밑에서 계속 기름이 흘러나와 더러움을 깨끗하게 씻어 주기 때문이야."
우리들도 비둘기처럼 끊임없이 성령의 기름에 의해 죄의 더러움을 씻고 있다. 그러기에 깨끗함을 유지할 수 있다.
▣ 성령 받은 증거
작가 이어령씨의 <아들이여 이 산하를>이란 책에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옛날 어느 시골에 수염을 길게 가꾸고 다니는 할아버지가 한 분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 동네에 사는 꼬마 아이 하나가 할아버지를 볼 때마다 궁금한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할아버지를 만나자 물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밤에 주무실 때 그 수염을 이불 속에 넣고 주무십니까. 아니면 끄집어 내놓고 주무십니까.” 할아버지는 이 질문을 받고 “얘야. 미안하다. 나도 미처 생각지 못한 일이니 하룻밤만 자보고 대답을 하마.” 그리하여 그 날 밤 수염을 붙들고 씨름을 합니다. 수염을 이불 속에 넣으면 답답하고 끄집어내면 쓸쓸하고. 그리하여 30년 동안 달고 다닌 수염이지만 수염의 위치를 알지 못하고 맙니다. 저자는 이 얘기를 통해. 30년 동안 내 몸에 달고 다닌 수염이 이불 속에 있어야 하는지 밖에 있어야 하는지. 철야를 하면서도 깨닫지 못하듯 내가 지금 예수 안에 있는지 예수 밖에 있는지. 내가 지금 진리 안에 있는지 진리 밖에 있는지 알지 못한 채 살아가는 자세를 꼬집고 있는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유일하고도 완벽한 대답이 성령을 받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오늘 한국 교회 안에 성령을 받는 것은 귀신들린 점쟁이와도 같이 공연한 열정과 열심을 내며 광신적으로 날뛰어야 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한국 교회 한 부분에서는 방언이 성령 받은 유일한 증거인 것처럼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느 교단에 들어가면. 또 어느 기도원에 들어가면 개도 다 방언을 한다고 가르칩니다. 개는 다 방언을 할지 몰라도 그리스도인이 다 방언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방언은 수많은 성령의 선물 가운데 하나이지 성령 받은 단적인 증거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예수를 주시라 할수 없느니라.”(고전12: 3)
▣ 성결한 언어
성령으로 충만한 자는 성령님의 인격에 감화와 영광을 받고 있는 자인데 그런 자의 마음에서 나오는 언어들은 성령님의 인격의 감화에서 나오는 언어들인 것이다. 그래서 성령으로 충만한 자의 말을 듣고 있으면 그 언어가 풍기는 사랑의 향기가 감미롭다. 그래서 기쁨으로 마음이 밝아져 옴을 느낀다. 그 자리에 평화가 감돌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성령충만한 자들의 모임에서의 대화는 모든 이의 마음을 하늘로 향하게 하고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성결된 언어들로 가득하다.
똑같은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해도 성령으로 충만한 자의 언어는 하나님의 빛 아래서 하나님을 향하는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에 감동이 있고 설득력이 있다. 그래서 그 언어에다가 곡을 붙이면 찬송이 되고, 그 언어를 소원의 형태로 다시 고치면 기도가 되고, 그 자리를 구별시키면 하나님 경배의 자리가 되는 것이다.
/한태완 목사(예화포커스)
▣ 성령의 열매를 맺으라
본문: 갈5:16-26 * 찬송: 177장, 178장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어떤 사람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밭 중에서 가장 기름지고 좋은 밭에다 구덩이를 깊이 파고 돌들을 다 제해 버리고, 거름을 잘 주고는 아주 품종이 좋은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 이 주인은 큰 기대를 걸고 포도나무가 자라고 포도가 열리면 여우가 와서 따먹을까봐 망대도 세우고 잘 자라서 열매를 맺도록 잘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열매가 잘 열리면 다 따먹을 수가 없으므로 그것을 따서 술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포도송이를 눌러서 짜는 집틀, 즉 술틀도 마련해 놓았습니다. 이 농부로서는 온갖 있는 정성을 다 들여서 나무를 가꾸고 좋은 열매를 맺으리라고 기대했었는데 열매를 보니 포도는 포도인데 들포도, 즉 머루를 맺어버렸습니다. 이것을 본 농부의 심정은 어떠했겠습니까? 기대를 하고, 만반의 준비를 해 놓았는데 기대에 어긋나는 열매를 맺었으니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포도나무를 파내고 싶은 심정이요, 그것을 지키는 울타리나 망대도 더 이상 관리할 의욕을 상실해 버렸습니다.(눅13:6-9) 이 말은 현대를 사는 성도들에게 하시는 교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님의 피로 구원해 주시되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고 내어 주시기까지 하면서 사랑해 주셨는데, 과연 우리의 마음과 생활에는 어떤 열매를 맺습니까? 결국 우리들도 주님이 원치 않은 들포도를 맺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하겠습니다. 즉 성령의 열매를 맺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육신의 열매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합니다. 성령의 열매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이웃을 기쁘게 합니다.(요3:5, 고전12:3)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6:8)
* 기도: 성령이여 강림하사 크신 권능과 능력을 주옵시고 주의 역사를 위하여 맡은 일을 헌신적으로 잘 감당하고 성령의 열매를 많이 맺게 하옵소서.
/한태완 목사(가정예배)
▣ 성령의 인도
본문: 에베소서 5:15-21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본문에서는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말씀은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풍부한 지식과 경험을 갖추었다고 하여도 악령의 권세를 이길 힘은 우리에게 없습니다. 악령의 지배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성령께서 우리 마음 속에서 역사 해야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길이 무엇입니까? 날마다 쉬지 않고 기도하면서 하나님과 영적인 교통을 끊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성경은 가르치기를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도의 능력은 우리의 생활이 성령 안에서 인도를 받게 하는 힘을 공급하기 때문입니다. 시편 31편15절에서 말씀하시기를 내 시대가 주의 손에 있사오니 내 원수와 핍박하는 자의 손에서 나를 건지소서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억압감정에서 자유함을 얻는 길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미국의 우주 항공국에서 아폴로 8호를 계획하고 진행시켰던 저명한 전자과학자 린드만 박사는 아폴로 8호가 우주 비행을 시작하기 위해서 발사대를 떠날 때에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우주 비행이 성공적으로 끝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임을 체험했던 린드만 박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발견하고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자연과학자가 그 후에는 목사가 되었고 지금은 신학교의 교수로 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을 때에 우리는 보람 있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 기도: 성령의 인도 없이 이 가정은 유지될 수 없아오니 오늘도 선한 목자께서 우리를 인도해 주옵소서
▣ 성령의 음성을 따라서
서른이 넘어서 군 생활을 하게 된 나에게는 너무나도 뚜렷하게 들렸던 성령의 음성이 있었습니다. 신병이 되어서 내무반에 신고식을 하게 될 때, 고참의 엄포와 함께 신고식에서 반드시 내무반장이 좋아하는 유행가를 불러야 한다는 요구에 괴로워하던 날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내 속에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찬송가 434장을 하라는 조용하지만 너무나도 강력한 음성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후에 벌어지는 어떤 불이익도 감수하겠노라는 각오로 성령의 음성을 따르기로 작정하고는 그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갈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상관들의 고함과 야유와 협박이 찬송을 중단시키려고 했지만, 어디선가 "조용히 해라, 찬송 좀 듣자" 하는 어떤 소리와 함께 나는 찬송을 끝까지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그 내무반에서 한 상관이 내게 다가와 성경에 대해 묻고, 성경공부를 인도해 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얼마 후, 그 상관은 제대 후에 어느 자그마한 교회에서 없어서는 안될 큰 일꾼이 되었습니다. 나는 그때 성령의 뜻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령께서는 때로는 잔잔하고 고요하게, 때로는 급하고 강하게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그러나 어느 경우에도 성령의 역사하는 힘은 너무나 강렬하여서 '바람에 의해 절로 날아가는 종이 비행기'같이 우리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그저 그 힘에 편승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 기도: 주님의 일에 함께 참여하도록 격려하시는 주님, 주님의 음성에 민감하여지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으로 최선을 다하게 하옵소서
▣ 성령은 승리자이다
이태리의 프란체스코의 수녀이며 신비 사상가인 안제라는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성령이 어떤 사람의 영혼에 부어지면 성령은 그 사람의 외양도 완전히 정숙하게 한다. 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거짓일 뿐이다." 오늘날 성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그들의 태도도 이 말로써 측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성령의 9가지 열매를 가르쳤습니다. 이것은 성령 충만함을 받을 때 맺을 수가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는 일은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근본적이며 중요한 일입니다. 믿음과 은혜의 성장은 성령으로 인해서만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충만하게 받지 못하면 우리는 불가불 하나님께 욕을 돌리고 교회에서는 무익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오스틴 오말리는 "반쯤 익은 설교는 영적인 소화불량을 일으킨다"고 말했습니다. "반쯤 익은 설교란 성령이 충만하지 못한 상태의 설교를 뜻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흔히 성령을 받기 위하여 기도하는데 그런 사람 중에는 순전히 이기적인 목적으로 기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의 뜻과는 상관없이 성령은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 기도: 온전케 하시는 주님, 말씀으로 나를 치유하시고 열매맺는 삶을 살도록 인도하옵소서. 주님의 영광을 내게 허락하사 나의 허영과 탐심, 욕망들이 성령충만함으로 버려지게 하옵소서.
▣ 희생과 열매
성령을 받아 거듭난 사람은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 열매들은 자기 자신의 힘으로 맺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속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역사로 맺어지는 열매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이런 열매들을 맺으려면 날마다 순간마다 죽어야 합니다. 이런 열매는 자아가 살아있을 때는 불가능합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음으로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요 12:24)
▣ 예배와 성령
예배를 드림에 있어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성령은 예배자의 마음을 예배에 집중하게 하고 매순간 은혜로 채우신다.
즉 예배자의 마음에서 세상 염려, 삶의 두려움, 분노, 좌절감 등을 제거하시고, 하나님을 알고 그분의 은혜를 덧입고자 갈망하는 마음으로 가득 채우신다. 그리고 예배를 방해하는 사탄의 공격(잡념, 육체의 통증, 두리번거리고 잡담하게 하는 것)을 차단시켜 주신다. 또 찬송을 부를 때 모든 노랫말이 진정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기도와 신앙 고백이 되게 하시며, 대표 기도자의 기도에 “아멘”으로 화답하게 하시고, 말씀을 들을 때 깨달음과 회개함과 전적으로 의지하는 마음을 주신다. 특히 성령은 설교 말씀이 각자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가르쳐 주신다.
따라서 성령의 기름 부음 속에서 드리는 예배에는 자유함과 기쁨과 능력과 평안이 임하게 된다. 그러므로 아무런 준비 기도 없이 예배에 임하지 말라. 예배를 드리고 난 뒤에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니라, 먼저 성령의 기름 부어 주시는 은혜를 받아야 참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이다.
생각하는 믿음 행하는 믿음 / 김인철
▣ 성령에 관한 성경말씀
0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딤후1:14)
0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전2:12)
0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
0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3:16)
0 우리를 구원하시되...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디도서3:5)
0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안에서 의와 평 강과 희락이라(롬14:17)
0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요한3서 2절)
0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5:22-23)
0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0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5:16)
0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3:5)
0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요3:8)
0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롬8:26)
0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12:3)
0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요일5:7)
0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마12:31)
0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1:21)
0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2:38)
0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행13:52)
0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4:3)
0 필경은 위에서부터 성신을 우리에게 부어주리니...(사32:15)
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엡4:30)
▣ 성령에 관한 금언
0 만약 우리가 런던을 복음으로 채우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기필코 성령과 동업하지 않으면 안된다.(몰간)
0 사마리아 성도들이 사도로부터 안수 받고 성령세례를 받으며 방언을 말하는데 우리들도 그것을 기대한다.(성 어거스틴)
0 성령은 우리들의 심령에 거하시는 동반자이시다.(c.e.카우맨)
0 성령은 훈련교사다.
0 우리가 이웃을 사랑할 때 그 시간부터 우리 생활의 본원이 되시는 성령이 우리에게 나타나리라(레오 톨스토이)
0 성령 받은 첫째 증거는 마음에 기쁨이 가득하다는 것이요, 두 번째 증거는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삶이 변화되고, 그리스도를 증거 하게 된다.
0 성령님은 우리를 가르쳐 말씀을 사랑하고 묵상하며 지키게 하신다.(앤드류 머레이)
0 영혼들에게 가라. 가되 최악의 영혼들에게 가라.(윌리엄 부스)
0 성령님은 우리를 가르쳐 말씀을 사랑하고 묵상하며 지키게 하신다.(앤드류 머레이)
성령, 하나님, 영과육, 계시
영적인 성장
울산에 사는 김현석 군은 '열성 이영양성 수포성 표피 박리증'이라는 조금 긴 이름의 병을 앓고 있는 청년입니다. 그는 어렸을 때 온 몸에 물집이 생기고 피부가 짓무르면서 거의 성장을 멈추었습니다. 지금 20살이 되었지만 몸무게가 10Kg밖에 나가지 않아 겉으로 보기에는 4 살난 아이같습니다. 김군의 어머니는 노동으로 20년간 그의 병수발을 들었으며 이번에 이웃 주민들의 따스한 온정으로 귀한 성금을 전달받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나이에 걸맞는 성장을 하지 못하며 중병에 걸린 것으로 판단합니다. 그리고 당장 이 병원 저 병원을 찾아다니며 병을 고치기 위해 애를 씁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병에는 무관심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 병은 가지가 그 나무에 붙어 있지 않아 영양을 공급받지 못해 열매를 맺지 못하는 병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예수님과 관계가 없다면 영적인 열매는 당연히 열리지 않습니다. 주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5)
기도: 충분한 영양을 공급받아 많은 과실을 맺게 하소서.
성령충만함을 받으라
신앙인들에게 가장 도전을 주는 말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성령을 받고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왜 성령을 받아야 하는지, 또 왜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바로 성경이 답을 주고 있습니다.
성령이 임할 때 하나님을 향해 어두워진 눈이 밝아지고 은혜 안에 거하게 됩니다. 육의 사람이 영의 사람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심이 확실히 믿어지는 것도 성령으로 가능합니다. 성화의 삶을 일평생 지속할 힘이 우리에게는 없으나 성령께서 그 힘을 주십니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그리고 말씀의 능력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먼저 성령을 소유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먼저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 능력은 세상을 포기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오직 주를 위해 이 패역한 세대를 포기할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막10:29-30). 주의 날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세상을 포기할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십일조를 드리지 못하는 것도 돈을 포기할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 발은 세상에, 한 발은 교회에 두지 말고 주님만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성령의 사람이 됩시다.
성령의 능력은 자기를 이길 수 있는 능력입니다. 자기를 이기는 능력을 받으면 주는 삶, 베푸는 삶을 살게 되며, 섬기는 삶을 살게 됩니다. 세상에서는 권세 있는 자를 섬기지만 복음은 자기보다 약한 자를 섬기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섬기러 오셨습니다(막10:45).
성령을 받으면 은사가 나타납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는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 고치는 은사, 능력 행함, 예언, 영분별, 방언, 방언통역 등의 은사에 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은사는 성령이 주시기 때문에 성령이 임하면 모든 은사가 각 사람에게 나타납니다. 무엇보다 은사는 사랑에 기초해야 합니다. 사랑에 기초하지 않은 은사는 은혜로 출발하지만 육신으로 마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주의 성령이 임하시면 표적과 기적이 일어납니다(막16:17,18). 신앙의 최고 적은 바로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론입니다. 우리가 거듭나기 전에는 이성을 좇아 살았습니다. 이성은 합리적이며 논리적입니다. 그러나 영은 합리와 논리를 뛰어넘는 믿음입니다. 중생한 후에 믿음으로 살고자 하지만 이성이 따라오지 않습니다. 예수 이름에 능력이 있다고 하지만 이성은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성이 영의 소리에 복종하기 위해서는 경험이 수반돼야 합니다. 이성과 영성의 공통점은 경험입니다. 이성도 경험한 것에 대해서는 인정합니다. 그러므로 경험된 것에 대해서는 이성이 꼼짝 못합니다. 모든 육의 생각을 파괴해야 깊은 은혜의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기적과 표적이 나타나야 합니다. 이성을 무력화시켜야 합니다. 이성을 무력화시켜 영의 소리에 순종케 하는 것은 기적과 표적, 즉 영적 경험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성령을 충만히 받아 하나님의 기적과 능력을 체험함으로써 신앙과 삶을 성공으로 이끌어 가시길 축원합니다. /박성배 목사
성령의 힘
로마 제국의 박해가 극심하던 초대교회의 일입니다. 로마의 원형경기장으로 끌려가 순교한 한 성도의 유시 한 편이 역사를 두고 모든 신앙인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습니다. "나를 저주하십시오. 당신들이 나를 저주하면 할수록 나는 당신들을 사랑할 것입니다. 내게 침을 뱉어보십시오. 그러면 나는 사랑의 숨결을 뿜어낼 것입니다. 나를 구타하십시오. 나는 신음소리로 사랑을 고백할 것입니다. 나를 찌르십시오.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절규할 것입니다. 나를 짐승의 먹이로 던지십시오. 나는 사랑의 제물이 될 것입니다. 나를 불태우십시오. 그러면 나는 사랑의 제물이 될 것입니다. 나를 불태우십시오. 그러면 나는 사랑의 열기로 당신의 증오의 가슴을 녹일 것입니다." 죽음의 형장에서 부른 사랑의 노래입니다. 죽음의 형장으로 끌려가는 사람이 무슨 힘이 있어서 사랑의 노래를 부를 수 있었겠습니까? 사람의 감정이, 지식이, 어떤 합리적인 생각이 이토록 강한 사랑의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만들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노래를 부르게 한 그 힘은 과연 어디에서 생겼겠습니까? 사람의 힘이 아니라 성령의 힘이 초대교회 성도들을 붙잡고 있었기 때문에 그토록 강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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