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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지 문구 101편 모음
1.기쁜소식을 전해드립니다.
당신에게 좋은 일이 있을 것입니다.
어느 분께 "왜 사느냐?" 고 물었더니 "혹시나......" 해서 산답니다. 왜 사는가 하는 질문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세상은 여관, 당신은 잠깐 다녀가는 나그네! 사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근심, 걱정,죄악의 짐을 지고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삶이란 너무나 허무합니다.
이것이 당신 인생의 전부라면 얼마나 비참할 것입니까?
그러나 여기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이 글을 읽고 믿는 순간이 당신 생애 최고의 순간이 될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바로 지금, 하나님의 도움이 꼭 필요합니다.
"당신도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구원이란 무엇입니까?
구원은 당신의 양심을 괴롭히는 모든 죄를 하나님께 용서받는 것입니다.
구원은 죄를 요서받은 당신의 영 혼속에 하나님이 자기의 평강의 영을 부어 주셔서 지금까지 당신이 맛보지 못한 기쁨과 평안과 안식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이웃들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힘과 당신의 원수까지도 용서할 수 있는 힘을 얻게 합니다.
구원은 항상 당신의 마음속에 불안과 불행감을 일으키고 죄를 범하도록 유혹하는 마귀가 당신 속에서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은 언젠가 당신이 이 세상을 떠나는 날 또는 온 세상이 심판을 받게 될 때, 이것에 상관없이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힘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사람은 스스로 죄를 씻을 수 없습니다.
사람은 죄중에서 잉태되었고 죄악 중에서 출생했기 때문에(성경시편51:5) 양심대로 살수도 없습니다.사람이 선 한일을 하거나 많은 돈으로 구제사업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는 구원받을 수가 없습니다.
윤리, 도덕이나 어떤 종교라도 당신의 죄를 해경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그 누구도 마귀의 세력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당신의 죄는 하나님에 대한 죄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당신을 용서해 주실 때까지는 당신은 죄인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구원받기 위하여 당신이 노력해야 할 일은 없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당신의 구원에 필요한 모든 일을 다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단 한가지 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을 받는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자신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우리 모든 사람의 죄를 대신 용서받게 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제물로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모든 사람의 새생명의 주인이 되셨습니다.
당신은 지금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당신은 기독교에 대하여, 성경에 대하여, 하나님에 대하여 잘 몰라도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구원은 지식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받습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약의 성분을 잘 몰라도 약시를 믿고 약을 먹으면 그 약이 약효를 내는 것과 같습니다.
이 시간 당신이 예수님을 영접하면 당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예수님의 생명의 영이 당신을 변화시켜 새 사람으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영접하십시오. 그리고 그분께 당신의 인생을 의탁하십시오
성장과 성숙은 평생 걸리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바로 그 순간에 이루어 집니다.
당신이 진신으로 구원받기를 원하신다면........ 다음 기도를 따라 읽어 보세요
하나님, 나는 죄인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이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음을 믿습니다. 이 시간부터 예수님을 나의 주인님으로 마음 중심에 영접하니다. 이제부터 나의 삶을 주 예수님께 맡깁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위의 기도를 진심으로 드렸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의 모든 죄는 용서되었습니다. 정말입니다. (골로새서1:14)
당신은 이제 구원 받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요한복음1:12)
당신의 이름은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되었습니다.(계시록20:15
당신이 이시간 죽는다고 하더라도 당신은 천국으로 들어갑니다. 예수님과 함께 처형되었던 한 강도는 죽음 직전에 믿고 그 순간 구원 받았습니다. (누가복음23:42)
기뻐하십시오!
당신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입은 사람입니다.
이 후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풍성한 삶을 누리십시오. 그러기 위해선 하나님에 대하여, 예수님에 대하여 더 많이 알아야 합니다. 그분의 뜻과 인도하심이 무엇인지 배워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 가까운 교회에 나가셔서 도움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혹 우리 교회로 오시면 더욱 친절하게 상담하여 드리고 앞으로 신앙생활을 잘 하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도와드리겠습니다. 편집/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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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도대체 예수는 왜 믿는 겁니까?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 갈릴리에서 떠나 요단강 건너 유대 지경에 이르시니 큰 무리가 좇거늘 예수께서 거기서 저희 병을 고치시더라 (마태복음 19장 1절 - 2절)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시며 하늘나라 말씀을 가르쳐 깨닫게 하고 병자들을 고치시니 그 소식이 전파되어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마다 큰 무리가 따르고 큰 무리가 모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모인 큰 무리 중엔 여러 종류의 생각과 소원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을 수 있는데,
1. 예수님으로부터 병 나음을 받았으니 고마워서 병 나은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고 싶어서 예수님의 일을 돕는 사람.
2. 병 낫는 이적 기사가 일어나니 그것 보고 싶어서 구경만 하며 따라 다니는 사람.
3. 예수님으로 인해 예수님 덕으로 뭘 얻어서 살고 싶은 사람. 예를 들면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라다니니 물건을 팔려면 그 무리에게 가서 팔려고 하는 것. 마치 소풍갈 때 장사꾼이 소풍 행렬을 따라가듯이.
4. 예수께서 하시는 그 기술을 잘 배워 써먹으려는 사람. ‘예수님이 어떻게 병을 고치나, 병 고칠 때 예수님의 손은 어떻게 하나’ 등을 배워서 자기도 써먹으려고.
5. 자기의 사회 지위문제나 종교적 지위나 명예 영광의 이득을 얻기 위해 따르는 사람, 또는 예수님의 활동을 따다가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따르는 사람.
6.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고 싶어서 따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 중에는 병 고쳐주니 따랐고, 인간과 세상을 깨닫게 해주니 따랐고, 천국을 깨닫게 해주니 따랐고 하는 등 따르는 사람들의 종류가 여러 종류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따르긴 따르는데 자기 생활형편, 시간형편, 개인형편에 따라 예수님을 따르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어느 동리에 예수님이 들어갔을 때 그 동리 사람들이 예수님을 쫓아내는 것을 봤는데도 불구하고 따르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죽이는 것을 봤는데도 따르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예수 믿는다고 얻어맞으면서도 따르는 사람이 있고, 또 어떤 사람은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따라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왜 그토록 예수를 믿고 따르느냐? 꼭 그렇게까지 하면서라도 예수를 믿고 따를 필요가 있는 것인가? 인간이 예수를 믿고 따르면 예수님에게 무슨 유익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예수 믿는 자기에게 무슨 유익이 있는 것인가? 자기에게 유익이 있다면 무슨 유익이 있으며, 얼마나 큰 유익이 있는가?
성경에 보니 ‘저희 병을 고치시더라’ 라는 말씀이 있는데 인간은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서 지음 받았다고 합니다. 인류 시조 아담과 하와가 죄짓기 이전의 그 때 그 사람은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고 합니다. 고로 인간은 인간 차원에서 완전한 존재로 지음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완전한 존재로 지음 받았다고 해도 하나님의 본질적인 온전, 완전에 비하면 인간은 이질적이라서 하나님에 비하면 질적으로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여기서 이질적이라는 말은 ‘나쁘다’ 라는 의미가 아니고 질적으로 다르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면 개는 개대로 개 차원에서는 개로서 완전히 지음을 받았고, 돼지는 돼지대로 돼지 차원에서는 완전한 것입니다. 그러나 개, 돼지, 새, 인간 할 것 없이 피조물이라는 차원에서는 같으나 개, 돼지, 새 등과 비교해 볼 때 인간은 질적으로 완전히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또한 같은 짐승 차원이라도 지렁이와 개와의 차원이 다릅니다.
개나 돼지나 새들이 각기 차원이 다른데 이런 것들이 아무리 높은 차원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이런 것들보다는 월등히 차원이 높은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비하면 인간은 불완전입니다. 타락 전이라도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생명과 따먹고 하나님의 본질, 온전으로 성장했어야 할 인간임에도 그렇게 안 하고 선악과를 따먹고 저주를 받았습니다. 저주받았다고 해서 하나님의 인간창조의 본 목적에서 인간이 이탈이 된 것은 아닙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을 닮았다고 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지은 여러 피조물들이 있지만 인간만은 특수한 존재라고 하는 뜻입니다. 다른 피조물들과는 달리 인간에게는 어떤 특수목적이 있어서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인간을 지으실 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본질적 온전으로 인격과 성품이 성장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영원 궁극의 신령한 세계에서 실력대로 누리게 했습니다. 인간 자기가 알던 모르던 모든 피조물 중 오직 인간만 이런 특수한 목적으로 지으셨습니다. 우리 인간이 예수님을 믿고 따라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예수님을 믿고 따라야 할 이유를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본다면,
1. 질적, 성분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따라야 합니다.
2. 인간은 영육 결합으로 지음 받았다는 자체나, 세상을 거쳐 신령한 천국에 갈 자인고로 예수를 믿고 따라야 합니다.
3. 이 물질세상을 만든 것은 인간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부지런히 영적 실력을 키우라고 만들고, 이 면을 독촉하려고 육신의 죽음을 만들어 놓았으니 세상에 살고 있는 동안 부지런히 영적 실력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고로 인간은 예수 믿어도 되고, 안 믿어도 되고가 아니고 반드시 믿고 따라야만 하는 나로 창조 받은 존재입니다.
4. 우리 인간이 아직도 믿지 않고 있는 미신자(택자이나 구원받을 때가 아직 되지 않은 자)는 아직 영이 살아나지 못한 상태에 있는 것이지만 예수를 믿는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죽은 영이 살아났으나 영적인 기능, 지능 면에는 병자요, 하나님의 진리 말씀으로 고침 받아야만 하나님을 바로 섬길 수가 있고, 또 신앙이 본질적으로 성장할 수가 있는 것이기에 예수님을 믿고 따라야 합니다.
5. 육적인 면에서도 병자들입니다. 육적으로도 병들면 교회에서 육체적 봉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죄로 죽은 우리 영을 예수로 말미암아 살렸는데 우리 육신의 어떤 병이라도 능히 고치실 수가 있습니다. 죽은지 나흘이나 되어 썩은 냄새나는 나사로도 살렸는데, 그리고 당신 자신이 스스로 신령체로 부활했는데 육신의 병을 못 고치실 게 있겠습니까?!
그런데 ‘왜 현재적으로 병든 자기의 육신의 병을 고쳐주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있을 수 있는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 자기에게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나의 마음을 나보다 주님이 더 잘 알고, 내 앞날을 주님이 더 잘 아십니다. 나의 앞날의 그 날에 그 사건 환경에서 나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일지 인간 나는 잘 몰라도 하나님은 더 잘 아십니다.
우리가 히스기야의 기도에서 그 기도가 이루어짐으로 되어진 그런 결과를 미리 당겨 놓고 본다면 히스기야의 그 기도를 들어주면 안 됨을 알 수 있습니다. 들어주니 히스기야에게는 한이요, 남조 유대민족에게는 한이 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보고 ‘너는 죽을 준비를 하라’고 했지요. 그렇게 하니 히스기야 자기는 자기의 과거의 선행을 말하면서 살려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안 듣고 벽으로 돌아앉아 자기 고집대로 살려달라고 떼를 쓰니 하나님께서 살려준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히스기야는 그 증표를 달라고 했고, 하나님께서 해를 뒤로 10도 물러가게 했습니다. 그렇게 해 주었더니 그 결과는 사선 넘어가서도 두고두고 마음 아픈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기도로 낳은 아들 므낫세는 가장 악한 왕이 되었습니다.
이런 면을 깨닫고 보면 하나님께서는 나의 궁극적인 성화구원, 이룰구원을 위해 육신의 병을 있게도 하고, 없게도 하고, 그냥 두기도 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적으로 육신에 병이 들어 있는 것은 영적 건강을 깨닫게 해주려 육신의 건강을 잘 돌보라는 뜻이 있을 수도 있고, 또는 건강한 육신을 줬더니 죄짓는데 썼다고 책임추궁을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 못 고치시는 게 아니고 우리의 이룰구원을 두고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고로 우리가 지금 육신의 병이 있던, 없던 육신의 병에 집착하는 소원성보다 인간은 영적 면에서 100% 다 병들어 있다, 약하고 자라지 못하고 있다고 하는 것을 깨닫고 이런 영적 병에서 나으려고 해야 하는데 이것은 모르고 육신의 병만 인식을 하고 고침을 받으려고 하니 그런 생각으로 예수를 믿는다고 열심을 내면 낼수록 주님의 의사성과는 대립이 된 채로 믿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 앞에서의 패역성입니다.
예수님께서 무리의 병을 고치심은 단순히 육신의 병을 고쳐주려는 것으로만 알면 잘못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활동하신 것은 우리의 영을 위해 계시목적으로 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죽었던, 병들었던 영적인 기능과 지능 면을 깨닫게 하는 말씀임에도 영적인 병은 모르고 육신의 병만 목적하고 믿다가 고침 받은 자들 중에는 하나님을 멀리하고 죄를 더 짓다가 죽는 사람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예수 믿으며 영적인 면에서 고치고 갈 병이 없습니까? 육신의 병만 알고 영적인 병은 없습니까? 우리가 영적인 면에서 병이 있다면 예수 믿고 나서 몇 가지나 고침을 받았습니까? 다 고침을 받았습니까, 하나도 고침을 받지 못했습니까? 영적인 면이 자라지 못하고 힘없고 병든 상태를 몇 가지나 고침을 받았습니까?
자기가 예수 믿기 전에 의식하지 못하고 했던 그 면을 예수 믿고 나서 깨우침, 깨달음을 받고 민감하게 움직이는 그 면이 있다면 몇 가지나 있습니까? 그런 게 있다면 그게 살아난 것이고, 고쳐진 것이고, 고쳐지는 중이고, 그것이 신앙이고 믿음인데, 생각은 그렇다고 의식이 되는데 그 면이 확고히 정돈이 안 된 채 있는 것이 자기 속에서 발견이 됩니까?
오늘날까지 예수 믿으면서 그런 면이 하나도 없습니까? 영적이던 육적이던 고쳐야겠다는 그것은 있습니까, 아니면 고칠게 영적 육적으로 하나도 없습니까? 고쳐야 될는지 안 고쳐야 될는지 그것조차도 전혀 모르고 예수 믿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예수 믿으며, 교회 다니며 육신의 병이 나아가는 사람만 보았습니까? 예수 믿으므로 영적인 병이 나은 사람을 못 보았습니까? 자신에 대해 이런 점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이게 성령님께 감화된 사람입니다.
성경에 무리가 예수님으로부터 병 고침을 받는데 자기도(나도)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면 무리 중 한 사람인데 자기는 언제 고침을 받을는지? 자기가 병자라는 것을 알고나 있는지?
나는 장소적으로 예수를 믿고 따르고 앉아 있는 것뿐이지 큰 무리 중 한 사람에 불과합니까? 몇 가지나 고침을 받았습니까?
예수 믿는 건 하나의 종교생활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 건 실재요 실상입니다. 종교적인 어떤 큰 업적이나 성과를 이뤄서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얻고 종교적인 어떤 감투를 얻는 것이 아닌 실상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예수 믿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의 인격과 성품으로 얼마나 실상화 시켰습니까? 이것이 없다면 아무리 어떤 큰 이력을 이뤄놨다고 해도 예수 믿은 효력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는 것은 인간의 본 목적에서 이탈된 채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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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예수 그리스도-구원(救援)의 유일한 방법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행 4:12)
구원이란 말 속에는 죽은 후에 천국 가는 것만이 아니라 살아서 당하는 모든 삶의 고통과 환란으로부터 건짐을 받는 의미도 포함됩니다.
그러나 현실속에서 세속적인 구원은 "영혼이 잘되는 것"이 최우선이기에 그 사람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또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에 의해 많은 제한을 받습니다. 살아생전 삶의 모든 고통과 환란으로부터의 구원은 한시적인것이기에 여기서 본질적이고도 궁극적인 구원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이 구원을 얻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 앞에 내 죄를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내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는 믿음으로만 얻게 된다는 점도 살펴 보았습니다. 그리고 구원의 궁극적인 의미는 “천국에서 하나님과 영원히 사는 것” 즉, 지옥의 영원한 형벌로 인한 고통으로부터 건짐을 받아 하나님과 영원히 연합(Union)하는 것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일평생 얻을 수 있는 선물 중 가장 큰 선물-그것도 전혀 받을 자격이 없는 죄인이, 그리고 그것도 우주의 주인 되신 하나님으로부터 그것도 순전히 공짜로 받은 엄청난 선물-구원을 약속 받은 성도들이 살아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것이 바로 이 사이트가 주장하는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는 문제입니다. 따라서 죽은 후에 천당 가기 위해서만 예수를 믿는다면 그 것은 50점 밖에 되지 않으며, 살아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 사명을 감당할 때 비로서 100점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사명을 포기하는 것은 직무유기에 해당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법은 인간의 눈 높이에서 베풀어졌으나, 하나님의 공의의 법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 기준에서 아무런 자비와 긍휼이 없이 철저하게 집행될 것입니다. 아무 공로도 없이, 또한 자격도 없이 순전히 공짜로 이 두렵고 무서운 형벌을 면제 받는 구원이라는 값진 선물을 받았으니 그에 상응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지극히 마땅한 것입니다. 그에 상응하는 마땅한 삶이란 어떤 삶일까요?
◈ 예수 그리스도(Jesus Christ)라는 이름의 의미
처음 예수를 영접하신 분들 중에 예수는 성(姓)이고 그리스도는 이름인 줄 알았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의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그분의 메시아로서의 사명에 관하여 그분이 태어나시기 약700년전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사 53:4-9)
(참고)헬라어(그리스어)로 표기된 "예수 그리스도"를 히브리어로 표기하면 "여호수아 메시아"가 됩니다. 기독교(基督敎)라고 말할 때 "기독"은 그리스도를 한자로 표기한 것을 우리말로 읽은 것입니다. 즉, 기독교는 그리스도교라는 말의 한자어 표기입니다. 기독교인을 지칭하는 크리스천(Christian)이라는 말은 Christ Like Man(예수를 닮은 사람)이라는 영어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연대를 기록할 때 기원전에 해당하는 BC는 Before Christ의 약자라는 사실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영어의 역사에 해당하는 단어 History는 His (Jesus’:그의)+Story (이야기)의 합성어 입니다.
예수님께서 우신 적은 있으나 웃으신 적은 성경 기록상에는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누구를 향하여“I love you”하고 직접 사랑을 말씀하신 적이 없으며, 다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와 같은 간접화법을 사용하였습니다.
◈ 예언을 통해 본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적인 모습
예수님의 인간적인 모습에 관하여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사53 :2-3)
예수님의 인간적인 외모에 관하여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화가들이 그린 예수님의 유명한 초상화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한결 같이 그럴싸한 모습으로 그렸으나 이는 예수님에게 대한 화가 자신의 신앙으로 인하여 다소 미화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 화가들의 표현보다 성경의 표현을 믿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말씀은 전혀 딴 판입니다. 한 마디로 전혀 볼품 없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찌든 가난 속에서 고생하며 자라난 30세 안팎의 촌스러운 시골청년 모습을 상상하면 거의 틀림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 대하여 대단히 외람된 표현이지만 성경이 그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메시아가 저 사람이란 말인가..? 말도 안돼…”
이스라엘민족은 백만 대군과 함께 백마를 타고 와서 유대나라를 로마의 식민지로부터 구해 줄 600만 불의 사나이와 같은 메시아를 기다렸던 것입니다. 수 천년간 조상대대로 그렇게도 기다리고 기다리던 민족의 영웅-메시아가 달동네에서 자라난 이름 없고 볼품없는 시골 청년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 통하여 성경에 자세하게 그 풍모를 설명하셨고 그들 또한 그 기록을 수도 없이 읽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열린 마음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인간의 보편적인 성향이기에 더더욱 그랬을 것입니다.
"사상이 있는 신앙"에서도 언급한바 있습니다만 인간의 마음은,
보이는(보아야 할) 것을 보지 않고 보고 싶은 것을 보며,
들리는 것(들어야 할 것)을 듣지 않고 듣고 싶은 것을 들으며,
해야 할 것을 하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며,
믿어야 할 것을 믿지 않고 믿고 싶은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기도가 응답될 때, 그 응답에 놀라거나 가장 거부하는 사람은 바로 기도한 장본인입니다.
그 분이 지금 여러분과 내 곁에 와 계신다면 우리는 볼품없고 매력 없으며 꺼칠한 그 모습에 별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모두 얼굴을 돌리고 만다는 말씀입니다. 속사람의 됨됨이는 어찌되었던 우선 남에게 보이기 위한 외모 가꾸기 유행 속에 세계에서 성형수술이 가장 유행한다는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배척 받으셨을 것입니다. 전혀 주목 받고 인기 끌만한 외모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 예수님은 어떤 환경 속에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감당하셨는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할 때 주로 십자가의 육체적인 고통에만 촛점을 맞추기 쉽습니다.
이것은 바로 영화 The Passion of the Christ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분은 육체적인 고통이외에도 정신적인 고통과 영적인 고통을 포함하는 전인격적인 고통을 묵묵히 감내하였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 예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분이 사역을 감당하면서 겪어야만 했던 환경적 고난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분을 둘러싼 주변의 사람들은 그분을 어떤 인물로 생각했던가를 살펴보는 것도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감당하시기 위해 겪어야만 했던 정신적인 고통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주변 사람들은 그 분을 어떤 시각으로 보았는가?
그 분이 어떤 환경 속에서 구속의 역사를 이루셨는지 잠시 살펴 봅니다.
① 정치인들 : 로마제국의 식민지배 받고 있는 유대인들 내부 종교문제에 연루된 자로 귀찮게 여김
② 종교 지도자들(목사,장로들) : 자신들의 권위와 기득권에 도전하는 이단 세력으로 치부
③ 제자들(평신도들) : 정치적 메시아로 생각하여 자신들의 출세의 수단으로 이해
④ 백성들(비신자들) : 이적과 기적을 행하는 선지자
⑤ 병든 자들 : 자기의 병을 치료해 줄 수 있는 초능력자
⑥ 서민대중 : 자신들의 배고픈 것을 해결해 주는 기적의 사나이
⑦ 가족중 일부 : 정신 이상자로 여김
아무도 예수가 누구인지, 왜 오셨는지, 무엇을 위해서 일하시는지 알지도 못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오직 자기 자신의 권위와 신분과 모든 사회적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배척하던가, 입신출세의 기회로, 그리고 병 고침과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는 해결사로서의 예수를 따라 다니기도 하고, 또는 귀신 들린 사람으로 오해하기도 하고, 결국은 죽이기까지 하였던 것이다. "그 사람들 해도 너무 했어" 누구나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는 대목들입니다.
그런 와중에서도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본격적으로 감당하시기전 자신의 정체를 분명히 해두실 필요을 느끼셨습니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이웃들인 제자들을 통해 마침내 자신의 정체를 분명히 해 두십니다.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시니라 (마 16:15-17)
예수님께서는 바닷가에서 고기 잡던 학문 없는 평범한 사람으로부터 나온 이 위대한 신앙고백이 있은 후에 비로서, 이스라엘 백성이 수천년간 고대하며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아로서의 사명을 말씀하시기 시작했습니다.
베드로를 향하여 물으신 이 질문은 예수님께서 오늘도 전 인류를 향하여, 우리 모두에게 묻고계시는 질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왜 예수를 믿느냐?" 라는 질문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란 결국 예수님의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마음으로부터 베드로와 같은 신앙고백을 할 수 있는 믿음의 훈련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우리도 예수님께서 왜 나를 위해 죽으셨는지, 많은 사람들 가운데 왜 나를 부르셨는지, 지금 나의 삶을 통하여 이루시기를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가기를 원하시는지 그분의 뜻에는 아무 관심이 없고, 다만 나의 요구 조건만을 들어 주시고 해결해 주시는 분으로 생각하고 예수를 믿는다면, 그들의 모습이 바로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 우리 아들 금년엔 대학교 꼭 합격되어야 만 합니다. 벌써 삼수째입니다. 금년에도 안돼면 큰일납니다. 바쁘시더라도 이것만은 잊지 마시고 꼭 처리해 주셔야만 합니다. 년초 송구영신 예배때도 잘 봐 주십사고 특별감사헌금 드린 것 아시쟎아요. 합격만 시켜 주시면 십일조 헌금 많이하고 예수 더 잘 믿을께요."
"예수님 이번 건은 꼭 성사시켜 주십시오. 회사의 사활이 걸린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IMF 겪어 보지 않으셨죠? 그때 부터 회사 자금사정 어려운 것 아시쟎습니까? 이것마져 성사되지 않으면 부도납니다. 이것이 저의 마지막 희망입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건만은 우리가 따내야 합니다. 꼭 한 번만 더 봐 주십시오"
"예수님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는 제발 당선 좀 시켜 주십시오. 벌써 몇 번째 도전인지 아시지요. 이제 재산도 다 날리고, 더 이상은 버틸 힘도 없다는 점을 꼭 명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저를 국회로 보내만 주신다면 썩은 정치 도려내고 이 나라를 개혁하는 일에 앞장 서겠습니다. 저를 믿어 주십시오."
"예수님 이번 총회회장선거에 출마했는데 꼭 당선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총대들에게 이미 촌지도 다 돌렸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교회도 이 만큼 부흥시켜 놓았고 저도 이제는 나이도 있고 그런 직함 하나쯤 따야 체면이 서지 않겠읍니까? 어디 세상 일 하려고 그럽니까? 다 주님 일에 충성하기 위한 것이 아니겠읍니까?"
현실 속에서 나타나는 우리 삶의 적라나한 실제 모습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너희는 왜 나를 믿느냐?
출세하여 잘먹고 잘살기 위해 나를 믿느냐? 너의 신앙고백을 통하여 나의 이 질문에 답하라."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우리들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친히 가르쳐 주십니다.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나를 따르라. 그리고 내 증인(순교)이 되라!"
◈ 예수님의 탄식
더욱 놀라운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 세우시고 머리 되신 교회 조차도 여기서 예외일 수 없습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처형한 진범(?)은 로마 군인들이나 빌라도가 아니라 바로 당시 종교 지도자들-지금으로 말한다면 목사,장로들이기에 별로 놀라운 사실이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좀더 정직하고 사실적인 표현을 빌린다면 예수님은 "예수 믿으시오" 하며 전도하다가 목사들과 장로들 손에 의해 순교하신 것입니다.
상한 심령을 위로하고 죄 아래 종 노릇하는 자들에게 자유를 주며,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영생을 선포하시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을 철저하게 사랑하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지금 교회에서 찾아보기 힘들다는 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한 생명, 한 생명을 위해 하나님께서 죽기까지 사랑하셨던 성전된 사람이 교회성장의 척도, 숫자의 대상으로 전락되어 가는 느낌을 지을 수가 없으며, 성도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베어 있는 성도들이 바치는 헌금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멀쩡한 예배당 건물부수고 이태리 대리석 수입하여 집 짓는 일과 시설과 설비에 과감히 투자해온 한국교회, 당회장 목사의 총회장감투 얻기위해 수억원씩 선거자금을 뿌려가면서 용감하게 사용했던 한국교회는 지금 그들이 뿌린데로 세상으로부터 비난의 열매를 거두고 있습니다.
작은 교회로부터 출발하여 밤낮으로 부르짖고 부르짖어 세계적으로 유명할만큼 성장한 대형교회들이 이 세상으로부터 쓴 소리를 듣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예수를 믿기위해 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작은 교회들 또한 이런 교회가 되기위해 몸살날 정도로 교회성장을 부르짖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리고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기위해 귀한 마음으로 출발한 한국교회는 교회성장이라는 중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작은 교회의 젊은 목회자들이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한국 대형교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는 사라지고 사람 냄새만 진하게 풍기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장이 아니라 비만이었기 때문입니다. 비만은 살을 빼야만 정상이 됩니다. 그 비만 속에는 예수님의 사랑대신 인간의 욕심과 탐욕만 도사리고 있습니다. 탐심은 곧 우상숭배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7:21-23)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목자들을 쳐서 예언하라. 그들 곧 목자들에게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자기만 먹이는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 있을진저 목자들이 양의 무리를 먹이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냐. 너희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의 무리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 너희가 그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어 주지 아니하며 쫓긴 자를 돌아오게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 다만 강포로 그것들을 다스렸도다 (겔 34:1-4)
그러나 아직도 이 나라에는 한 마을 전체 모두 합쳐도 몇 십 가구 되지 않는 농어촌이나 산골에서, 한 달 주일헌금이 10만 원이 채 안되는 교회를 지키며 하나님의 참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인생을 투자하는 남은 자 들이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잔뿌리인 이들이야말로 한국교회의 내일의 희망입니다. 전도지 제공 : 광양 초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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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예수님의 일생
예수님이 태어나신 배경을 성경(기독교의 경전으로 예수님의 일생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도 담고 있다)은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서라고 설명하고 있다.
마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세상은 불합리 하여 억울함을 당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많지만 계급이 있고 노예가 있었던 그당시는 더 불합리하게 억울함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비단 우리나라만 해도 불과 90년전에는 백정(가축을 도살하는 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는 이유로 멸시를 당하고 잘한일을 하고도 누명을 쓰는가 하면 양반이라는 이유로 잘못을 저질러도 용서받던 때가 있었다. 자신이 양반이었다면 억울함도 풀 방도가 있었겠지만 천한 상놈이었다면 어디에도 그억울함을 풀어줄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 유난히 홧병이 많은 것도 그러한 이유가 아니었겠는가...
이스라엘민족과 우리나라 민족은 비슷한 면이 많이 있고 역사적인 경험도 비슷하다.당시 이스라엘 민족은 로마에 의해 삭민지상태에 있었다. 마치 우리나라가 일제식민지로있었던 것과 너무나 흡사한 상황이 아닌가 생각 / 이스라엘 민족은 그들을 구원할 메시야가 곧 탄생하실 것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에도 정감록같은 책들에의하면 정씨도령이 나타나 우리나라를 구한다는 얘기가 비슷해 메시야 사상비슷한 것을 가지고 잇었던지 아니며 정감록같은 책들이 성경의 사상을 인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아이러니한 생각이든다.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성경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적힌 경전을 가지고 있었는데 여기에 메시야 사상(그들의 구원자가 나타나실거이라는..)이 예언되어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민족적인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메시야를 고대했다. 그러한때 예수는 이스라엘땅의 베들레헴에 태어났다.
그런데 바로 그 예수의 탄생은 너무도 초라하고 처참했다. 당시 로마는 지금의 인구총조사 같은 것을 시행하였는데 지금처럼 사는곳에서 가족신고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태어난 고향에서 반드시 신고를 해야하고 이를 어겼을 때는 가혹한 형벌이 따랐다
눅 2:2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 되었을때에 첫번 한 것이라 / 눅 2:3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 눅 2:4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인고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 눅 2:5 그 정혼한 마리아아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되었더라....
그래서 마리아와 요셉은 고향인 베들레헴에 들렀으나 일가 친척이 전혀 그지역에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요셉은 묵을려고 여관을 찾았다고 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찾는 여관마다 만원사례를 이루고 잇었다. 묵을 곳을 못찾은 그들은 할수 없이 여관의 마굿간에 들어가 노숙하게 되고 이때 예수꼐서 태어나신 것이다. 태어나신 상황은 처참했을 지라도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태어나신 예수의 탄생을 예견하고 그분의 탄생을 보려고 찾아온 현자들이 있었다.
마 2:1 헤롯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 마 2: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성경을 그들을 동방에서 온 박사라고 소개하고 있다.그들은 모두 3명이었는데 별을 연구하는 학자들로 보인다. 그들은 별을보고 예수님의 탄생장소를 찾아왔다.
마 2:10 저희가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 마 2:11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드리니라
예수님의 유년기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성경이 그부분을 매우 짧게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누가(그는 의사로서 엘리트 계급에 속한 사람이었고 역시 엘리트 계급이엇으나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그리스도를 전파한 사도 바울의 주치의로 활동)라는 사람이 하나님의 영감(하나님의 직접교통-특별한 목적에 의해 인간에게 임한다)으로 예수님의 어린시절을 기록하였다.
눅 2:40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
해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에게 제사(지금의 교회예배)를 드리기위해 예루살렘을 방문하였다. 지금도 성지순례라 하여 예루살렘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으나 그때 당시의 예루살렘 방문은 지금보다 훨씬 강제력이 잇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 제사(지금의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무데서나 가능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아무곳에나, 어떠한 상황에서도 예수의 이름으로 교회를 세우고 예배드릴수 있다.- 아무데나 성전을 지을수 없었고 또한 제사는 오직 제사장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드릴수가 있었다. 그래서 모든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께 경배하기위해 예루살렘으로 반드시 모였다. 그중에 유월절(이스라엘 민족의 최대 경축일-하나님의 도움으로 애굽<지금의 이집트>를 탈출한 것을 기념)을 당하여 예수님과 그의 부모가 예루살렘을 방문하엿다. 이때 예수님은 열두 살이었다. 일을 마친후 예수님의 부모는 예수님이 에루살렘에 남겨진 것을 모른채 고향으로 돌아가게된다. 그것은 일행(친족들)이 무수히 맣았기 때문에그 동행중에 잇는줄 알고 하룻길을 간후에 친족과 아는사람중에서 찾다가 예수님이 없는 것을 발견하였다. 지금도 추석이나 명절 때 고향에 가기위해 기차역에 가보면 아이를 잃어 버리는 부모들이 많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 그때 당시는 얼마나 경황이 없었을지 짐작이 가진다. 예수님을 찾아헤맨지 사흘만에 예수님을 성전안에서 발견하였다. 보통 어린아이들은 부모를 잃고 사흘이 지났다면 불안과 공포에 떨며 어찌할바를 모르고 닿황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당시 상황을 이렇게 표현하고잇다.
눅 2:46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저희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 눅 2:47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기이히 여기더라
예수님은 평안한 마음으로 그곳의 선생들중에 앉아 듣기도 하시고 묻기도 하시고 계셨으며 듣는 사람들이 모두 그 지혜와 대답을 기이히 여겼다고했다.. 그부모는 그것을 보고 놀랐고 어머니 마리아는 "어찌하여 이렇게 잇었느냐. 우리가 근심하며 너를 찾앗다"라고 물엇다. 예수님께서는 여기에서 다음과같이 대답하셨다.
눅 2:49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예수께서는 이미 이시점부터 자신의 하여야 할 사역에 대해 깨닫고 계셨던 듯하다..바로 예수님은 부모를 순종하며 따라 나사렛으로 돌아갔고 그곳에서 부모를 공경하였다. 어쨌던 인간의 신체를 가지고 계셨던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이 자라는 과정을 경험하신 듯하다.
눅 2:51 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모친은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 눅 2:52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왜 예수님의 어린시절에 대한 이야기가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면 성경은 위인전이나 단순히 일대기가 아닌 하나님의 특별한 메시지를 전달하기위한 책이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본격적으로 예수님의 사역이 시작된 것은 그의 나이 30세 때였다. 그때당시 이스라엘지역에 세례요한이라는 사람이 사람들에게 세례(기독교의 의식으로 하나님을 믿는사람으로 거듭난다는 의미와 죄를 씻어낸다는 의미를 내포)를 행하고 있었다.
마 3:1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가로되 / 마 3: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였으니 / 마 3:5 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 마 3:6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예수님은 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본격적인 자신의 사역을 시작하신다. 예수님은 사역에 앞서 사탄(또는 마귀)에게 시험을 당하시는데 이것은 지금 우리에게 깊은 상징적의미를 준다. 예수님은 왜 사탄에게 굳이 시험을 당하셨는가. 많은 학자들이 예수님은 시험을 회피하고자 했다면 받지 않으셔도 됐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광야(이스라엘의 사막지역)로 이끌려 나가시는 것을 거부하지 않으셨다. / 마 4: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 예수님은 광야에서 40일을 아무것도 먹지 못한채 지내셨다. 지금도 많은 기독인들이 이것을 모방하여 40일 금식기도를 행하고 있는데 찬반양론이 있다. 이때 사탄은 첫 번째 시험으로 예수에게 다가왔다.
마 4: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사탄은 예수께 하나님의 권능으로 지금의 굶주림을 해결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깊은 상징적의미를 주고 있는데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왜 굶어죽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으냐고 반문하는 것을 보면 굶주림의 문제는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문제인 것 같다 이것은 또다른 문제와도 연결이 되는데 그것은 예수님은 기실은 하나님 자신이었다는 문제이다 성경은 이것을 명확히 하고 있다. 성경 요한복음 첫머리에 예수님을 소개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요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 요 1: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 요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여기서 말하는 말씀은 예수님을 가르킨다. 결국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한 인간의 모습을 입고 이세상에 태어나신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 일인가 이부분은 참으로 인간의 지식으로 이해하기 난해한 부분이 아닐수 없다. 하나님은 직접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나심으로서 인간의 고통을 직접 체험하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예수의 모범이라고 말하고 있다. 예수님이 친히 인간이 되심으로 인간의 모든면에 하나의 모범을 제시하셨다는 것이다. 많은 기독인들이 예수를 닮아가자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할수 있다. 사타의 첫 번째 시험에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눅 4: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하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이말씀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던진다. 인간이 사는목적이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생각하게 하는것이다. 우스개 소리로 먹기위해 사느냐 , 살기위해 먹느냐라는 질문이 회자된다.먹기위해 사는 것은 짐승과 같다. 짐승은 오로지 먹고 싸고 잠자는 것외에는 아무런 목표라는 것이 있을수 없다. 인간은 짐승이 아니다 우리의 마음이 그것을 알려주고 있지 않은가. 보람있게 살다 죽고싶은 것은 인간의 마음속 깊이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살기위해 먹는다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아무런 대답도 해두지 못한다. 사람이 의식주에 매달릴 때 추하고 비참해진다. 삶의 의미를 잃어 버리고. 다투고 싸워서 쟁취하는 삶이 되어 버린다. 예수님은 인간은 왜 태어났는가에 대한 의미를 던짐으로서 그시험을 이기신 것이다.
이에 사탄은 두 번째 시험을 던진다
눅 4:5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 눅 4:6 가로되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 눅 4:7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사타은 권세와 영광의 문제로 예수께 접근한다. 요사이 출세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출세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다른사람보다 더 잘살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렇다면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나라 교육중 가장 잘못된점의 하나가 상대 평가제도라고 생각한다 . 상대평가는 오직 소수만이 승리하는 제도이다. 내가 아무리 90점을 맞았더라도 남이 나보다 더많이 맞추었다면 나는 낙오자가 되는 것이다. 왜 다같이 승리하는 방안을 찾지 못하는가 . 많은 사람들이 모두다 승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누군가 승리한다면 누군가는 패배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저자가 가장싫어하는 프로그램으로 동물의 왕국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이 프로그램은 은연중에 어린이들에게 세상를 약육강식의 세게로 바라보게 한다. 약자는 강자에게 잡아먹히고 당할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그러나 간과하고 있는 것은 그 약자라고 생각한 동물들이 더 많은 먹이를 얻고 더 많은 새끼를 살지게 키우고 번성하며 강자라고 생각한 동물이 더 배고프고 더 고통속에 있으며 죽음에 이른다는 사실이다. 나는 모든 것이 절대 평가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절대평가란 60점만 넘으면 모두 합격하는 것이다. 다른사람을 신격쓸 필요도 없고 함께 승리할수도 있고 다른사람을 격려하고 도와주면서 함께 합격할수 있다..기독교가 뿌리를 내리수록 바로 이 절대평가의 나라가 되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60점만 넘는다면 다 똑같은 것이다. 60점이 낸 아이디어나 100점이 낸 아이디어나 다 똑같이 값어치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경쟁이 없으면 발전이 없다고 말한다. 물론 그말은 일리가 있어보인다. 그러나 누구와 경쟁하는가가 관건이다. 자기자신과 경쟁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경쟁이다 바로 60점이 그 최소한의 경쟁을 보장해 준다. 60점을 따기 위해 노력하고 그것이 넘는다면 모두 똑같은 것이다. 그이후는 각자의 창의력과 도움으로 함께 발전하는 것이다. 출세하기 위해, 남을 누르기 위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겠다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바로 이 경쟁과 출세의 문제에대해 다음과 같이 대답하신다
눅 4:8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일견 이대답은 문제에 대해 전혀 해답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대답도 본질을 찌르고 있다 다같이 승리하고자 해도 세상은 분배의 문제가 남아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희망이 없는 상황 극복할수 없는 문제들이 항상 우리에게 닥쳐온다. 그래서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신을 찾게 되는지도 모른다. 이세상에서 우리를 도와주고 인간의 함으로 해결할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실분은 하나님밖에 없다는 신앙고백의 중요한 답변을 예수님은 하신 것이라고 볼수 있으리라. 이에 사탄은 세 번째 문제로 예수를 시험한다
마 4: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 마 4:6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사탄이 세 번째로 제시한 문제는 죽음의 문제와 하나님에대한 시험의 문제이다. 죽음은 인간에게 가장 걸리는 문제이며 모든 문제의 근본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죽음후에는 어떤세계가 있을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며 어떤이들은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은 죽음이 끝이 아니며 죽음은 또다른 시작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사작은 심판으로 시작된다고 말하고 있다. (히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시험의 문제이다. 지금세상에는 하나님을 보여주면 믿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증거를 보여주면 그때 믿겠다고 한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왜...라는 질문으로 자신의 마음을 닫아 버린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히 11: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예수님은 다음과 같은 답변으로 사탄의 질문에 대답한다 / 눅 4:12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말씀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
예수님은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가장먼저 찾아가신 사람들은 소외되고 병든 나약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기적의 사역이 시작되엇다. 그가 가는 곳마다 기적이 일어났으며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구름떼같이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마 4: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 마 4:24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색병과 고통에 걸린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저희를 고치시더라
그리고 예수님은 그중에 12제자를 선택해 세웠다. 12제자중 가장 수제자에 속했던 베드로와의 만남을 성경은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 마 4:18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 제자 베드로는 거친 어부였다. 예수님은 그런 베드로에게 다음과 같이 초청한다. / 마 4: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 그리고 차례로 12제자가 선택을 받았다. 이들은 후에 예수님의 죽음후 부활을 목격하고 자신들의 목숨을 바쳐 예수님을 전파하는 선봉에 선다. 12제자와 함께한 예수님의 사역은 위로와 치유라는 두단어로 요약된다. 그리고 그러한 예수님의 심정을 성경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마 9:36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예수님은 그러한 무리를 보고 무한한 슬픔과 아픔을 느끼셨다. 동시에 예수님은 보통사람들과 다른 여러 가지 신적인 능력등을 나타내셨다. 물위를 걸어 제자들에게 간 것이라든지 미래에 대해 정화히 알고계셨던점등....그러면서도 동시에 따르는 무리들에 대해 언제나 무한한 연민의 마음을 나타내셨다. 당시는 여자들이 상대적으로 천대받던 시대였다. 한번은 간통을 한 여인이 사람들에게 체포되었다. 예수님의 사역과 그를따르는 무리들로인해 그를 시기하던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에게 이것을 어떻게 처리할지를 물었다. 이것은 신각한 시험이었다. 당시는 이러한 범죄를 한사람은 길거리에서 돌로 쳐죽이는 것이 일반적인 형벌이었다. 로마는 식민지에 매우 관대한 정책을 폈는데 그것은 그민족의 어떤이의 범죄가 로마와 관계가 없다면 그들의 법으로 처리하도록 간섭하지 않았다. 사랑을 전파하던 예수님이 법대로 그여인을 돌로 쳐죽이라고 한다면 예수님의 가르침은 땅에 떨어지게 될 것이고 용서하라고 한다면 범죄를 용서하라함으로 공의에 배치되는 행위였다. 이에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요 8:7 저희가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죄없는자는 이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성경의 기본 전제이다. 우리는 흔히 법없이도 살사람이라는 말과 죄 한번 짓지 않고 착하게 살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본다. 그러나 성경은 이세상에 죄 짓지 않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전제하고 있다. / 롬 3:10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땅에 오신 이유를 그러한 죄인을 구원하시기위해서라고 성경은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죄지은 사람을 무조건 용서하기는 매우 힘든일이며 처벌하지 않는다면 악인이 활개를 칠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용서받는 길을 제시하러 오신 것이지 악인을 감싸기 위해서 이땅에 오신 것은 아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은 자기죄에 따라 분명히 심판을 받을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주님은 용서받을수 없는 죄인에게 용서받을수 있는 길을 선포하러 오셨고 성경은 그것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행 16:31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주님은 3년동안 이스라엘을 누비며 약하고 병들고 천한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그렇다고 부자들을 주님이 멀리하신 것은 아니다.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대화하시고 치유하셨다.
예수님은 또한 교회예배당의 변질됨에 대홰서도 깊은 관심을 나타내셨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던 성전(지금의 교회예배당)은 제사의 특성상(당시 예배는 동물을 제물로 드리는 제사였다) 제물로 삼을 양이나 비둘기같은 동물을 가지고 와야 했다. 그러나 상당히 교통수단이 불편하고 내왕이 힘들었던 당시는 동물까지 데리고 여행을 하기가 번거로웠다. 그래서 성전근처에서 동물을 돈으로 사서 해결하곤 햇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다보니 이런한 것을 장사의 수단으로 삼아 상당한 폭리를 취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제물의 가격을 문제 삼을수 없었던 점을 더욱 악용하여 예배를 드리러온 여행자들에게 큰 부담이 아닐수 없었다. 예수님은 성전안에 까지 들어와 그러한 장사를 하는 사람들에게 분노를 느끼셨다. 당시의 상황을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요 2:14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의 앉은 것을 보시고 / 요 2: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 요 2: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예수님은 이유없는 미움을 이스라엘 미족에게 당하셨다. 그런데 성경은 이것이 예언되어잇었다. 그것은 장차 메시야가 오셨을 때 어떻게 되실 것을 무려천년전에 이미 예언자들을 통해 예언하신 것이다. 그중 이사야라는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예언했다.
사 53:3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 지 아니하였도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당시 로마총독인 빌라도에게 데려가 사형에 처할 것을 요구하였다. 빌라도는 폭동이 무서워 예수를 사형에 처한다 사형.은 로마의 법에 따라 가장 중죄인에게 내려졌던 십자가형에 처했다. 십자가 형은 서서히 죄인을 죽이는 가장 혹독한 형벌로 죄인은 고통을 느끼며 수시간에 걸쳐 죽음을 당하게 된다 만약 이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면 예수는 단순한 현자중의 한명으로 역사속에 남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놀라운 일이 3일뒤에 벌어졌는데 그것은 주님의 시신을 보기위해 찾아간 여인들에 의해서 전하여 졌다. 그가 다시부활하여 제자들에게 찾아오신 것이다. 주님은 자신이 귀신이나 유령이 아님을 확실히 하셨다. 성경은 처음에 제자들도 그것을 믿지 못했다고 자세히 적고 있다
마 28:17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 / 막 16:11 그들은 예수의 살으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왜 성경은 제자들이 의심했다는 것까지 적고 있을까 그것은 성경이 있는 그대로를 사실적으로 적고 있기 때문일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신들이 작접 본 것들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후에 예수에 제자가된 사도바울도 이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는 이부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고전 15:4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 고전 15:5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 두 제자에게와 / 고전 15:6 그 후에 오 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 / 고전 15: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 고전 15: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그는 자신의 편지에서 주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의 명단을 적고 있는데 약 600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그것을 목격하였음을 적고 있다. 바로 이들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예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데 앞장섰다. 그후 예수님은 약 40일뒤 하늘로 승천하신다.그리고 다음괴 같은 말이 성경에 남겨졌다.
행 1:11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 http://home.paran.com/ryou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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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는 증거를 보여주세요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는 증거를 보여주시든가 아니면 이해시켜 주십시오.
1) 이런 사람들에게는 한 과학자가 하나님을 믿는 10가지 이유를 설명해 주십시오.
언젠가 <리더스 다이제스트>를 읽고 있었는데, 그 책에서 미국의 유명한 한 과학자가 자신이 하나님을 믿는 10가지 이유를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동전10개를 보이지 않는 주머니에 넣고 흔든 후 꺼낼 때, 순서대로 1부터 10가지 계속해서 나올 확률은 100억분의 1입니다. 이런 미세한 확률이 우주에는 존재하고 있습니다.
① 지구의 돌아가는 속도의 정상화입니다. 지구는 시간당 1,600㎞로 돌고 있습니다. 이런 지구가 만약 한 시간당 160㎞오 돈다면 사람들은 낮에는 타 죽고 밤에는 얼어 죽을 것입니다.
② 지구와 태양과의 떨어진 거리가 신비스럽게도 아주 알맞은 거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③ 지구가 23도로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4계절이 나타납니다.만약 지구가 수평이라면 ,하루에 두 번씩 물에 잠기게 되어 대양 증발 수증기로 남북은 얼음 덩어리로 되어 있을 겁니다.
④ 지구와 달이 80,000㎞라는 알맞은 거리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지구는 하루에 두 번씩물에 잠기는 일이 없습니다.
⑤ 지구의 두께가 3m만 더 두꺼웠으면 산소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 모든 동식물은 존재할 수 없을 겁니다.
⑥ 대기권의 두께가 지금보다 얇았더라면 지구는 별똥들에 의해서 날마다 불바다가 된다고 합니다.
⑦ 연어의 행로입니다. 연어는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바다에서 태어나 강물로 올라갑니다.
⑧ 장어의 행로입니다. 장어가 바닷가에서 알을 낳고 죽으면 새끼들은 다시 호수나 강으로 돌아옵니다. 아메리카 뱀장어가 유럽에서 잡힌 일이 없고,유럽 뱀장어가 아메리카에서 잡힌 일이 없답니다.
⑨ 호주의 선인장이 빠른 속도로 번식되는 것을 억제 시킬 수 있었던 것은 선인장만 갉아 먹고 사는 곤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⑩ 사람은 폐를 가지고 있으며, 곤충은 관을 가지고 있습니다.그런데 이 관은 성장을 억제시킵니다.만약 곤충도 폐를 가지고 있다면,사람만큼 성장할텐데,다행스럽게도 곤충은 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2) 이런 10가지 사건들이 우연히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런 일들은 결코 우연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이 우주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역으로 입증하고 있습니다. 그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야고보서 2장19절에서는 마귀도 하나님이 한 분이신 것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마귀도 믿는 하나님을 어째서 선생님께서는 믿지 않습니까?"
라고 역 질문을 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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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인간은 어떤 존재입니까?
1 당신은=========언젠가 세상을 떠납니다
2 당신은==========언제 세상을 떠날 지 모릅니다
3 죽음후=========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4 심판후=========천국 아니면 지옥에서 영원을 보내게 됩니다
5 당신의 생명은====온 세상 보다 귀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기에 영(spirit)을 가지고 있고, 성경에는 이를 '마음 중심'이라고 합니다(롬10:10). 또 두번째로 혼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자의식을 가리키는 말이요, 마음이라 불리우는 것의 진수입니다. 또 하나 인간은 이 둘을 그 안에 감싸고 있는 육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영,혼,육의 세 가지가 인간의 구성 요소입니다. 하나님의 인간의 영이 끊임없이 하나님의 영과 교제를 갖도록 창조하셨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인간의 영이 혼과 육을 통하여 바깥 세상에 나타나지도록 하신 것입니다(여기서인간의 본질을 3분법으로 나누느냐 혹은 2분법으로 나누느냐는 신학적인 의미는 담지 않았습니다. 만약 이러한 내용을 성경의 답으로 한다면 오히려 2분법이니 3분법이니 하는 것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세계가 당면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육의 감각을 통하여 들어오는 외적인 자극들을 좇아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식욕, 성욕, 명예욕, 자만과 같은 육적인 것들이 지배적인 요인이 되고, 그 육적인 것이 혼을 조절하고, 혼은 육을 행복하게 하기 위한 계획을 가지게 됩니다. 그 결과 인간의 영은 이기심에 의하여 어디론가 사라져 없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최초 인간의 영은 거울과도 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고 있었습니다.
즉 그 속에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격적으로 그에게 나타나시고, 그에게는 하나님의 가르치심이 최 우선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죄를 지어 그 거울이 구름 낀 것과 같이 흐려진 후로는 더이상 하나님을 분명히 보지 못하게 되고, 그 결과 하나님의 영에 의하여 인도를 받기보다, 악으로 향하여 있는 육과 혼에 의해 조종되게 되었습니다. 창세기에서는 이를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고 말씀합니다(창8:21).
인간이 최초로 창조되었을 때는 하나님 앞에서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길 능력도 있었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웠습니다. 인간의 영이 제대로 작용을 하면 하나님을 섬기게 되고, 따라서 선한 것을 지향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자기 보존이 시급한 문제가 되어 자기의 명예와 자존심과 생명을 지키기 위하여 속이고, 거짓말하고, 도둑질하며, 해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선을 행할 능력도, 악을 행할 능력도 매우 크게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일단 악을 행하게 되면 다른 어떤 동물보다도 더 큰 피해를 끼치게 됩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예수님은 누구든지 위에서 나지(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3:3). 인간의 영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깨끗하게 회복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영의 작용으로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의 지배 아래 있는 인간의 영에 의하여서만 인간 존재의 다른 부분, 즉 혼과 몸도 외부의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속에 있는 것에 의하여 지배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http://cafe.daum.net/fulls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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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천국과 지옥은 실제로 존재하는가..
천국과 지옥은 실제로 존재하는가..
지옥은 어떤 곳일까?....
하나님의 자녀로서 어두움을 버리고 빛 가운데 거할 수 있도록 오늘부터 몇 주간에 걸쳐 지옥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증거하고자 합니다.
오늘은 첫 번째 시간으로 천국과 지옥의 구조 및 천국에 속한 윗음부는 어떠한 곳인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분명히 존재하는 천국과 지옥
천국과 지옥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사람이 죽은 후에는 반드시 심판을 받아(히 9:27) 천국이나 지옥 중 어느 한 곳으로 가게 됩니다.
그런데 아담 이후로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인류 가운데 한 사람도 결코 지옥에 가지 않기를 원하시는 것이 바로 우리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로마서 5:7-8을 보면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독생자 아들을 화목 제물로 주심으로 증거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곧 흠도 점도 없으신 독생자 예수님께서 죄인 되었던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이를 믿고 빛 가운데 사는 사람은 누구나 구원받도록 천국의 문을 활짝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천국과 지옥에 대해 이야기하면 무관심해 하거나 ‘과학이 발달했는데 그런 말을 어떻게 믿느냐?’ 혹은 ‘당신이 천국이나 지옥에 가 보았느냐?’ 하며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천국에 대한 소망이나 지옥의 두려움이 실감나게 마음에 와 닿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세상을 사랑하고 범죄하면서 어두움 가운데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입니다.
2.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본교회 대부분의 성도님들은 하나님께서 분명히 살아 계시며 천국과 지옥을 말씀하시는 성경 66권이 분명히 참인 것을 확실히 믿고 전파할 수 있습니다.
교회 개척 이래 끊임없이 나타나는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과 진리에 대한 무수한 증거들을 성도님들이 직접 목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중한 질병이라도 깨끗이 낫게 하시며 소경이 눈을 뜨고 벙어리가 말을 하고 앉은뱅이가 걸으며 바다의 짠물이 단물이 되게 하시고, 바람과 파도가 잠잠하며 별이 이동하는 등 천기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화기(火氣)나 치명적인 독극물의 독성 그리고 연탄가스와 같은 무생물도 주의 이름으로 명하면 물러가는 하나님의 권능을 무수히 경험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14:11을 보면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고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으로서 나타낼 수 없는 하나님의 권능이 따를 때에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사람이요, 그가 증거하는 말씀이 참되신 하나님의 말씀인 줄을 믿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람을 통하여 권능을 나타내시며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본교회에서 증거되는 지옥에 관한 말씀을 통하여 더욱 많은 사람들이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사후의 세계인 영적인 세계에 대해 궁금하게 여기고는 있지만 사람의 능력만으로는 밝히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경에 기록된 말씀들을 통해서 부분적으로는 알 수 있지만, 오직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는 성령의 감동하심 가운데 풀어지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깊은 영계의 말씀을 증거할 때에 천국과 지옥을 분명히 믿고 오직 빛 가운데 거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3. 영의 세계인 천국과 지옥
구약 성경을 보면 야곱이나 욥과 같은 믿음의 선진들은 자신들이 죽으면 음부로 가게 되리라고 말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사람 모세를 대적한 고라의 무리도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산 채로 음부에 빠졌다 했습니다(민 16:33).
본문 누가복음 16:22-26에도 부자와 나사로가 죽어서 음부에 간 것을 기록하고 있는데 두 사람이 거하는 곳의 형편이 서로 전혀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자는 불꽃 속에서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받고 있는 반면, 나사로는 부자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안식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다시 말하면 부자가 간 곳은 지옥에 속한 아랫음부요 나사로가 간 곳은 천국에 속한 윗음부인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단순히 천국이나 지옥도 각각 하나의 동일한 공간으로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도 여러 가지로 분류되어 나옵니다.
정녕 구원받은 성도들이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마음에 할례하여 아버지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은 만큼 새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 가까이에 거하게 되지요. 그렇지 못한 만큼 믿음의 분량대로 3천층, 2천층, 1천층, 그리고 구원만 간신히 받은 사람이 거하는 낙원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나 악한 영들이 갇힌 곳에 대해서도 역시 음부라 하기도 하고 불못이나 유황못 그리고 무저갱이라고도 하는 것을 볼 수 있지요.
이는 바로 천국이 단계별로 나뉘어져 있는 것처럼 지옥 역시 얼마나 이 땅에서 악을 행했는가에 따라 거하는 곳이 서로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천국과 지옥이 어떻게 생겼는지 쉽게 이해하려면 마름모꼴인 다이아몬드 형태를 떠올려 보면 됩니다. 마름모(◇)를 가로로 반을 자르면 위에는 바로 놓인 삼각형(△)이 되고 그 밑에는 거꾸로 세워진 삼각형(▽)이 나오게 되는데 위에 있는 삼각형을 천국이라 하고 아래에 있는 삼각형을 지옥이라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영의 세계는 세상에서 토지 경계를 정하는 것처럼 한계를 그을 수도 없고 그 형태를 단정지어 말할 수도 없는 것이지만 육의 한계를 가진 사람이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을 의미하는 위의 삼각형에서 꼭지점 부분이 새예루살렘이 되고 제일 아랫부분이 윗음부가 되며 위로 갈수록 더 좋은 천국이 위치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반면에 위의 삼각형과 대칭인 아래에 있는 삼각형(▽)을 보면 위의 제일 넓은 부분이 아랫음부가 되며 아래 꼭지점에 가까워질수록 더 깊은 지옥이 되는데 그 꼭지점이 누가복음이나 계시록에 나오는 무저갱 곧 가장 깊은 지옥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4. 지옥에 속한 아랫음부와 천국에 속한 윗음부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위의 삼각형과 아래의 삼각형 즉 천국과 지옥은 서로 인접해 있는 것이 아니라 육으로는 측량할 수 없는 거리로 떨어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천국과 지옥에 거하는 영혼이 서로 오고갈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본문의 부자와 아브라함이 서로 대화하는 것처럼 서로 보거나 대화는 나눌 수 있지요.
이는 오늘날 과학이 발달하여 인간의 능력으로도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 화상으로 얼굴을 보며 대화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땅에서는 육의 한계가 있어 불가능한 것이라 해도 영의 세계에서는 불가능한 것이 없어서 아무리 거리가 멀다 해도 영으로 그것을 뛰어넘어 나사로가 평안히 거하는 것을 부자가 볼 수 있었고 아브라함과 대화를 나눌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지옥에 속한 아랫음부와 달리 이곳 윗음부는 천국에 속한 장소입니다.
그런데 이 윗음부의 역할은 각각 구약시대와 신약시대마다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앞으로 구원받을 영혼들이 윗음부에 거하면서 대기하고 있었으며. 윗음부를 관리했던 사람이 바로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 선지자이므로 본문에 나사로가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있다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에는 윗음부에 있는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낙원에 들어가 주님의 품에 안기게 됩니다.
요한복음 14:2에 보면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하신 말씀처럼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부활 승천하신 후로는 낙원에서도 제일 가장자리 부분에서 대기하면서 인간경작이 다 마쳐진 후 각자의 처소로 흩어져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때도 구원받은 영혼들이 죽었다고 해서 곧장 낙원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3일 간을 윗음부에 거하다가 낙원에 들어가게 됩니다.
혹자는 천국과 지옥이 존재한다면 아담 이후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태어났을 텐데 그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만한 공간이 있겠느냐고 말하기도 하지요. 낙원만 해도 사람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공간이 매우 넓으며, 그 곳에서 선지자들로부터 영의 지식들을 배우게 됩니다. 우선은 영의 세계에 적응하면서 기본적인 것들을 배울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며, 이렇게 구원받은 영혼이 낙원에 들어가기 전 3일 동안 임시로 머물면서 적응하는 대기 장소가 바로 윗음부인 것입니다. 다음 주에 이어서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 누가복음 16:22-26에 보면 부자가 세상에 있을 때 지옥을 믿지 않다가 결국 타오르는 불꽃 속에 떨어져 자신의 어리석음을 후회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고통 속에서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부탁하기를 나사로를 다시 살려서 자기 형제들에게 보내어 그들은 이 지옥에 오지 않도록 알려 달라고 하지요.
그가 만약 어떤 말을 형제들에게 전할 수 있었다면 “내 형제들이여, 너희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서 결코 이 무서운 지옥에 오지 말라” 하고 애절하게 당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죽은 사람은 다시 살아 돌아 올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천국과 지옥을 먼저 믿은 우리가 대신하여 열심히 전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 자신 또한 세상을 사랑하고 범죄하여 그 무서운 불 가운데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회복하여 천국 중에서도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새예루살렘에 더 가까이 들어가야 하는 것이지요. 오늘 말씀을 통해 거룩하고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또 많은 영혼을 전도하여 구원받게 한 일꾼으로서 새예루살렘에 들어가 영원히 거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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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만일 지옥이 없다면
믿음=천국·불신=지옥
『만일 지옥이 없다면 성경책은 다 불태워 버려야 하고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예배당을 건축할 필요도 없고 있던 예배당도 오락장소로 개조해야 한다』
D.L.무디가 천국과 지옥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남긴 말입니다.오늘날 사단이 사람들의 마음에서 궁극적인 목적인 천국과 지옥에 대한 믿음을 무너뜨리려고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는 것도 불꽃에 들어갈 때가 심히 가까워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지식인들이 지옥의 존재를 믿지 않고 있습니다.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하나님을 마치 선물이나 갖다주며 웃고 있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로 만들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아버지도 아니며 모든 사람을 다 구원하시는 분도 아닙니다.요한복음 8장 44절에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고 말했습니다.
분명히 세상에는 마귀의 자식이 있고 하나님의 자녀가 있습니다.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영접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며 그들은 결코 지옥에 가지 않습니다.그러나 마귀의 자식들,예수를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은 마귀들과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지옥의 사실을 부인할 수는 있어도 지옥의 실재를 없앨 수는 없습니다.지구는 믿든지 안 믿든지 둥글고 회전하는 법입니다.이와 같이 지옥은 실재합니다.그리스도를 거절하면 믿든지 안 믿든지 그 사람은 지옥에 가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말은 한번만 말해도 고스란히 이루어졌습니다.이사야 7장 14절에는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예수님이 오시기전 7백여년 전에 예언한 말이 있습니다.그러나 7백여년이 지난 후에 이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져 예수님이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되어 탄생하셨습니다.
하물며 성경에 수백번씩 기록된 지옥에 관한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겠습니까? 천국에 대한 말씀보다 지옥에 대한 말씀이 성경에 더 많이 기록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지옥이 존재한다는 것은 무신론자들의 최후고백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많은 무신론자들이 하나님이 없다고 하나님을 한껏 조롱했지만 죽는 순간에 육신의 눈이 못보게 되고 영의 눈으로 지옥을 바라보게 되면서 공포에 쌓여 지옥의 존재를 증명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프랑스의 무신론 철학자이자 계몽주의 철학자인 볼테르는 『기독교가 생겨나기까지 수백년이 걸렸지만 이제 프랑스의 한 사람이 50년안에 기독교를 다 파괴해 없애버리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장담했고 『1백년안에 성경은 다 없어지고 만다』고 큰소리를 쳤습니다.
그러나 어느날 이 사람에게도 죽음의 날이 다가왔습니다.그는 『나는 멸망으로 들어간다』고 하며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유명한 무신론자 프란시스 뉴턴도 임종하면서 『나는 영원히 정죄받았구나.하나님이 나의 원수가 되었으니 누가 나를 구원하리요? 아! 지옥과 저주의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나는 받게 되었노라』고 했습니다.
지옥은 확실히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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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천국과 지옥을 보고 온 간증
(박용규 목사의 간증을 소개합니다 )
박용규목사 약력 신학박사, 1938년 6월 3일 황해도 옹진군 출신 총회신학, 대학원,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 졸업 성남제일교회 18년 창립 목회자.(5,000명 교인) 송림중, 고등학교 교장, 이사장 역임.(4,600명 학생) 총회 선교 100주년 사료분과 위원장,(한국 교회사가) 총회 신학대학 이사,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외 57권 저서의 주인공
1.죽음에 이르는 병 나의 아버지는 황해도 해주 부자였다. 전재산을 팔아 1.4후퇴때 월남하였으나 아버지 품에 든 돈을 뺏으려고 인천 모 고등학교 체육선생님이 아버지를 죽였다. 그때부터 어머니와 나는 고아원에서 생활하며 형극의 가시길을 걸어 성남 제일교회를 세운 목사가 되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라는 책이 수 십만권 팔려 그 돈으로 성남에 중,고등학교 셋을 설립하고 교회도 5,000명 교세로 부흥시켰다. 박정희 대통령이 문교부 장관 추천을 하였고 신민당 총재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성남에서 국회의원 출마하라고 할 정도였으니 교만할대로 교만한 내 영혼을 보시고 주님은 저주의 채찍을 내리치셨다. 그 때가 1987년 12월 19일 오후2시 반 고혈압으로 쓰러져 의식을 잃었으며 내 몸은 구운 오징어 같이 뒤틀려 저주받은 몸 그 자체였다. 영동 세브란스 병원에서도 살 가망이 없다고 하여 10일만에 퇴원해 가족들 가슴을 도려내는 아픔을 주면서도 나는 의식을 찾지 못했다. 하나님은 나의 교만이 그렇게도 미웠는가 보다. 그러길래 눈뜨고는 볼 수 없는 흉칙한 모습으로 죽어갔던 것이다. 1987년 12월30일 10시경 나는 가족들 눈에는 죽은 시체가 되어 딸 아이들은 임종 찬송을 부르고 아들은 졸도하였으니 그것은 내 몸이 얼음장 같이 차고 심장 고동소리가 멈췄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시간에 꿈을 꾸듯 두 천사의 방문을 받았다.
2. 두 천사를 따라 은하수 저 건너편에 가다. 병들어 꼬부라진 내게 연한 녹두색 통옷으로 손과 발까지 가리고 나타난 두 천사는 내 평생에 처음 본 것이다. 눈은 사람과 같이 동자가 있지 않고 불빛이 나와 압도를 하였다. 오른편 천사는 주님 곁에서 심부름하는 천사라 한다. 그들이 온 목적은 주님의 부르심이 계시기 때문이란다. 날 주 앞으로 데려가 천국과 지옥을 보여 이 세상에 알려서 지옥 오는 수를 줄이고 천국 갈 자를 더 많게 하시려는 주님의 계획이 계신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병든 몸으로는 갈 수 없으니 고쳐서 데려 가라 해도 듣는 체도 않고 내 옷을 벗기고 천국에서 가져온 흰 실크 같은 통 옷을 입힌다. 그 천국 옷을 입자 내 몸이 공중에 뜰 려고 하니 두 천사가 내 양쪽 어깨와 팔을 잡자 번개 같이 하늘로 솟아오른다. 한 2분 정도 올라가니 지구가 축구공 만큼 작아진다. 그리고 우리 일행은 북극에 도달했고 그곳에서부터 천국가는 황금 길이 곧게 깔려 그 위에 날 내려 놓자 저절로 천국을 향해 간다. 앞을 보니 수 많은 흰 옷입은 무리들이 가고 있어 천사에게 물으니 그들은 땅에서 하나님 잘 섬기고 예수님 잘 믿고 성령님 잘 모시고 충성하다가 죽어 육체를 벗고 가는 영혼들이라고 한다. 나는 천국이 얼마나 멀리 있느냐고 물으니 은하수 건너편에 있으며 여기서부터 하룻길 걸린다 한다. 수많은 별도 있었다. 천국별이 눈에 들어 왔을 때 빛은 킙빛과는 달리 거룩하고, 신비로운 빛이였다. 천사는 찬송을 불러야 천국문이 열린다고 하며 찬송을 가르쳐 주어 3절까지 부르니 금새 천국 남쪽문을 통과하였다. 천국에 들어 가자마자 '땅의 사람 박용규목사야 먼길 오느라고 수고 많니 했구나'라고 땅이 울린 듯 주의 음성이 들렸다. 음성만 들리고 주님은 보이지 않았다.
3.주님이 내게 물으신 다섯가지 질문 나는 주님의 음성을 듣자마자 꿇어 엎드려 통곡을 하며 인사를 울려다. '주님 꿈에도 그리운 주님 이 죄인이 왔습니다. 죄값으로 저주 받아 병든 몸이 되어 왔습니다. 용서해 주소서' 너무나 통곡을 하니 옆에 섰던 천사가 '울음 뚝'하며 소리쳐 울음을 그치고 주님 모습 한번만 보고 싶다고 했더니 주님이 음성으로 말씀하시기를 '땅의 사람 박용규 목사야 너는 여기서 하나님과 나 예수의 보좌를 보려하지 마라 너가 다시 땅에 내려가서 일 많이 하고 구원 받아 올라오면 그때 나를 볼 수 있을 것이다.'하셨다. 그리고는 주님이 내게 다섯 가지의 질문을 하셨다. '너는 땅에서 성경을 얼마나 읽었느냐?' '너는 헌금을 얼마나 했느냐?' '너는 땅에서 전도를 얼마나 했느냐?' '너는 십일조를 어떻게 했느냐?' '너는 기도 생활을 얼마나 하였느냐?' 이렇게 다섯가지를 물으신 주님은 네가지는 칭찬을 하셨으나 큰 교회되고 유명한 목사되어 바쁘다는 핑계로 기도를 게을리 하였다고 책망을 하셨다. 그러나 네가지는 칭찬을 들었다. 나는 주님이 가르쳐 주시기 전에는 내가 세례를 준 성도가 몇 명인지 알지 못했다. 주님은 1,026명에게 세례를 주었다고 말씀하셨다. 나중에 당회록을 보니 주님이 말씀한대로 1,026명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주님은 내게 말씀하시기를 두 천사의 안내를 받아 천국과 지옥을 마음껏 구경한 후 땅에 내려가서 열심히 전하라 하셨다. 그리고 구원받아 천국에 올 때까지 양로원을 만들어 목회자 50명을 잘 보살피면 현재보다 20배의 상을 주신다고 하셨다.
4.지옥에서 만난 영혼들 지옥 색깔은 붉은 색과 검은색 뿐이다. 천사는 지옥 가는 수와 천국가는 수가 천대 일 이라 한다. 천국에 겨우 하나 가면 지옥은 천명이 간다는 것이다. 얼마나 교회 사명을 못하면 그렇게 많은 영혼들이 지옥으로 갈까? 지옥은 두 종류의 사람들이 오는데 예수 안 믿는 불신자나 우상숭배자들은 100% 지옥 들어가며 교회는 아녔으나 형식적으로 다닌 자, 외식으로 믿은 자, 탐욕으로 사는 자들도 지옥에 간다고 한다. (1)유황 불못에서 고생하는 영혼들 유황 불 못은 세상 도시처럼 수천 수만 개나 된다.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다. 이 곳에 온 영혼들은 땅에서 성경 말씀을 믿지 않고 교회와 교인들을 업신여기며 조롱하고 핍박하던 자들이며, 또 세상의 부귀와 권세를 위해 신앙을 저버리고 주일을 범하는 등 교회 안에서 분열과 분쟁을 조작하고 교회를 자기 권세의 장소로 삼아 싸움을 일삼았던 자들이 온다고 천사는 말한다. 그러니 주여 주여 한다고 다 천국 간다는 생각을 버리고 아버지의 뜻을 행해야겠다.(마7:21) 아버지의 뜻은 예수를 진실로 보고, 믿어서 영생을 얻는 것이다.(요6:40) 천사는 내게 소리치기를 '박목사 저기 유황 불 속에서 아우성치며 고통 당하는 영혼들 중에 본적이 있거나 아는 자가 있는가?'하고 물었다. 그래서 자세히 보니 한국교회에서 이름 있던 목사, 장로, 권사, 집사들이 많이 있었다. 신사참배(일본 태양귀신)를 강요하고 교권과 명예와 권세를 위해 신앙을 떠나 자기 유익을 구한 나머지 교회와 총회에서 싸움과 분열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찢고 부순 자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유황 불못에 왔다고 천사는 말한다. 큰 교회 교만한 목사, 교만한 부자 장로, 스스로 잘난 권사 집사들은 유황 불 못을 알려거든 부엌에 들어가 가스렌지 불피워 얼굴을 그 불 위에 올려 놓아 보면 그 고통을 알 것이다.
(2)벌레들에게 고통 당한 영혼들 두 번째 인상 깊은 지옥은 벌레 지옥인데 벌거벗은 몸으로 벌레들에게 모질게 고통을 당하는 영혼들이다. 이들은 땅에 살면서 갖은 더러운 일과 추한 일들을 한 자들로 음행 불의, 추악, 욕설, 거짓, 부정이 가득하여 정욕대로 산 자들이라 한다.
(3)갖은 도구로 고통 당한 영혼들 시뻘겋게 달군 쇠 송곳으로 배꼽을 깊이 쑤시며 고통을 당한 영혼들은 땅에서 육체를 쾌락의 도구로 만 사용했으며 낙태 살인을 자행하고 그 낙태를 집도한 의사들과 낙태를 허락한 가족들이라고 한다. 입에 칼을 물고 쇠 방망이 든 괴물에게 두들겨 맞는 자들은 그 입으로 교회를 욕하고 교인들을 욕하고 주의 종들을 욕한 자 들이라 한다. 온 몸을 무 자르듯 칼로 난자를 당하는 영혼들은 땅에서 남을 구차하고 폭행하며 폭력을 써서 돈을 빼앗고 목숨을 빼앗는 천인 공노할 죄를 지은 영혼들이라 한다. 목사가 지옥에 갈 정도라면 평신도들은 더 말 한 나위가 없다. 죄는 불신자들의 전매 특허가 아니다. 가짜로 믿으면 불신자나 다름이 없다. 주일 성수 못한 교인, 십일조 못한 교인, 구제 봉사, 전도 안한 교인이나 교회 지도자들은 회개하여야 지옥을 면할 것이다. 부하 직원들의 노동력을 착취한 부자들의 영혼들은 펄펄 끓는 더러운 물 속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권력은 가지고 남을 희생시킨 독재자들의 영혼은 높은 곳에서 한없이 뛰어 내리며 죽음을 맛본다. 교인들을 많이 죽인 대원군과 조대비는 유황 불못 중앙에서 물 !물! 물!하며 소리치는 것을 보았다. 일본의 전쟁 미치광이 이등박문, 모택동, 소련의 레닌과 스탈린 독일의 히틀러가 지옥 불 속에서 고통 당하는 것을 보았으며 우리나라 역대 왕들도 보았다.
5.천국에서 만난 영혼들 나는 찐 계란을 반으로 짜른 타원형 비행체를 탔다. 양 옆에 두 천사도 함께 타고는 하늘을 오르니 늦은 가을 고추 잠자리들 처럼 수도 없는 타원형 비행체들이 공중을 날고 있다. 맘만 먹으면 맘 먹는대로 날아간다. (1)어린이 천국 천국 공중에서 본 어린이 천국은 집이 없고 꽃밭에서 천사들의 도움을 받으며 평화롭게 살고 있는데 유치원 다닌 어린이 또래들이다. 그들은 일찍 죽임을 받아 온 영혼들이기 때문에 땅에서 봉사할 시간이 없어 자기 집을 지을 재료가 올라오지 못해 집이 없이 산다고 한다. 그래도 지옥 가지 않아 기쁨이 충만하다.
(2)수용소 천국 지구보다 100배나 큰 천국 별 인지라 변두리가 있다. 그곳에는 수용소 같은 큰 막사들이 지어져 있는데 수많은 영혼들이 산다. 그들은 땅에서 물질 축복 많이 받았으나 자기가족, 자기 배만 위하고 봉사나 전도에는 너무나 인색하였기에 천국에 집을 지을 재료를 올리지 못하고 땅에만 보물을 쌓기에 겨우 영혼만 구원받아 집단으로 모여 사는 수용소 생활을 한다고 한다. 그 수가 너무 많아 천국에 집이 있는 성도들과 어린아이들을 다 합해도 수용소 영혼들의 반절도 안 된다고 했다.
(3)신 개발 지역 천국 나는 천사에게 졸라서 내집 있는 곳을 보여 달라고 했더니 처음엔 안 된다고 매정하게 대하다가 너무나 간절히 애원하니 주님이 허락하셔서 겨우 내가 살 천국 집을 향해 날아갔다. 얼마나 멀리 멀리 가는지..... 얼마를 가니 이제 터를 닦고 신축을 시작하는 집 세채가 있는 곳이 나왔다. 그런데 짓다가 중단된 작은 3층집이 내 집이었다. 너무나 실망이 커서 안들어 가겠다고 했더니 가서 보아야 된다고 욱박질러 할 수 없이 들어가 보았다. 3층 방에 상장 2개만 벽에 붙어 있다. 하나는 18세때 고아원에서 성탄절을 지키러 교회 가다가 추위에 떨고 있는 거지 할아버지에게 잠바 준 것하고 헌금할 돈으로 다 식은 붕어빵 두 개 사서 드린 것이 상으로 기념되어 있었다. 나는 400명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었고 아파트를 교회 옆에 건축하여 50세대에게 나누어 주었으며 가난한 신학생 39명에게 돈을 주어 목사가 되게 하였다. 뿐만 아니라 목사가 되어서는 집을 팔아 교회를 설립하여 5,000명 교인으로 부흥을 시켰으나 그런 것들은 하나도 상으로 가록되지 않아 있 기에 나는 천사에게 따져 물었더니 천사 왈 땅에서 국민훈장 받았고 문교부장관 상 받았으며 신학생들에게 명절 때 마다 감사를 받아 버렸으니 천국에는 상이 되지 못했다고 가르쳐 주었다.
6.천국 처소(집)에서 사는 성도들을 만나다. 천국은 마치 이세상 도시들과 같은 주택들로 만들어진 도시가 있는가 하면 빌딩들로 이루어진 곳도 있다. 어느 곳을 가니 높은 빌딩 네채가 눈에 들어 왔다. 나는 천사에게 저 높은 빌딩들은 누구의 집이냐고 물었다. 가장 높은 빌딩은 미국의 전도왕 무디선생의 집이고 두 번재 높은 집은 감리교의 창설자 영국 출신 웨슬리 집이며 세 번째는 이티리 성자 성 프렌시스의 집이라고 한다. 네 번째 집이 한국 목사 최권능 전도 왕의 집이었다. 나는 최봉선(권능) 목사님 전기를 책으로 펴내 영화를 만들었던지라 최목사님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자 벌써 최목사님이 마중을 나오셨다. 나는 어찌하여 최목사님의 집이 이렇게 클까 궁금해하고 있을 때 주님은 최목사님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그가 전도한 사람만 해도 1만명이 넘어 78개 교회를 세웠고 하루 2시간 자고 새벽부터 밤 10시까지 온거리를 다니면서 '예수 믿고 천당 마귀따라 지옥'을 외치며 살 때 가정을 돌보지 않는다고 부인은 세 자녀와 최목사님을 버리고 떠나버려 평생을 홀로 살면서 오직 주의 일에만 몸바쳐 살았기에 삼남매를 모두 국민학교도 졸업 못시켰다는 것이다. 그랬기에 2,000년 교회사에 네 번째로 큰집을 상으로 받는 영광을 누린 것이다. 한국 교회 평신도 중 가장 큰집을 천국에서 누리고 사는 성도는 황해도 제령 동부교회를 건축한 정찬유 장로님이다. 그는 자기 집보다 교회를 먼저 건축하여 봉헌하였다. 그는 동양에서 제일 큰 제령 동부 교회를 건축하여 봉헌하였다. 1년에 3천 가마의 쌀을 헌물하였고 수천의 교역자들의 생활비와 신학비를 은밀히 도왔으며 교인들이 배척한 담임목사님을 65세 은퇴하실 때까지 잘 모시다가 은퇴 10년 전에 배 밭 농장을 만들어 호수를 파고 정자를 만들어 은퇴 후 그곳에 모시고 1달에 100가마의 쌀을 드렸다고 한다.
주기철 목사님 집에는 '주를 위해 죽은 자는 이와 같이 하늘의 상급이 크다'고 쓰여 졌다. 손양원 목사님 집은 순교상과 나병환자를 사랑한 상급이 커서 그 영광은 주기철 목사님보다 컸다. 그 외도 수많은 목사님들, 장로님들, 권사님들을 만나 보았는데 이미 천국에는 내가 올라 온다는 뉴스가 보도되어 날 기다리고 있었다. 7. 천국에 재료가 올라 온다고 소리치는 천사 나는 천국 여행을 다 끝날 즈음에 신개발 지역에서 천사의 외치는 고함소리를 들었다. '천국재료가 올라온다.' 나는 내 오른편 천사에게 그 연유를 물은 즉 전라북도 무주에 사는 시골교회 권사의 봉사가 매일 두 가지 재료로 천국에 올라 온다는 것이다. 가난한 권사는 물질로서 봉사할 수 없어서 매일 새벽 기도에 나와 87명의 교인들을 위해 기도하는 일과 교회당을 매일 청소하는 일이다. 그런데 '재료가 올라온다'라고 하던 천사가 이번에는 '특수 재료가 올라온다' 라고 소리친 것이다. 물은 즉 그 가난한 권사의 딸이 가난한 집으로 시집을 가 살다가 친정에 와서 어머님께 용돈 조금 드리고 갔는데 권사님은 그 용돈으로 계란 5개와 양말 2켤레를 사서 목사님께 드리고 목사님은 받을 수 없다고 사양하는 중인데도 벌써 그 선행이 천국 재료가 되어 올라 온 것이다. 주님은 냉수 한 그릇도 상을 잃지 않는다 하셨다. 이 전도지를 받아 본 형제 자매들이여 나는 목사로서 책을 팔아 그돈으로 학교 셋을 지어 성공한 자로 교만이 하늘을 찌르다가 저주 받아 병신되어 그 재산 다 나라에 헌납하고 모든 재산 다 나눠준 후 작은 집에서 나같이 되지 말라고 우둔한 입으로 천국을 전하고 있습니다. 나는 율법주의 목사요. 신비주의를 배척한 경건주의 목사였으나 이제는 그 신비한 천국을 보고 그 무서운 지옥을 본 이상 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불신자로 지옥 가는 건 당연하지만 교회 다니다가 지옥 가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믿으려면 생명 내놓고 예수 믿으세요. 따르려면 전 소유를 주께 드리고 따르세요. 나는 무서운 지옥에서 수많은 목사 장로를 만났기에 가는 곳마다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으로 외치다가 탈장이 되어 25센티미터나 창자를 잘라냈습니다.
죽기 전에 예수를 잘 믿어야 합니다. 지옥 가는 것은 너무나 쉽고 천국은 너무 좁기 때문입니다. 지금 가까운 교회에 속히 나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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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왜 모든 사람은 지옥에 갈 죄인인가?
전도를 하다보면 재미있는 일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얼굴이 흥부처럼 선해보이고 대화를 할 때는 순한 양같이 부드럽게 대해줍니다. 그러나 제가 "모든 사람은 죄인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죄 때문에 죽은 후에 지옥에 갑니다. 아저씨도 예수님을 믿지않으면 죄 때문에 지옥에 갑니다"라고 하면 갑자기 인상이 180도로 바뀌어 버립니다.
눈꼬리가 치켜올라가 살모사 눈이 되고 콧구멍의 평수는 두배나 넓어지고 벌렁거리며 불같이 화를 냅니다. 그리고 억울하다는 듯이 씩씩대며 대듭니다.
"뭐요? 여보시오. 그 따위 소리를 할려면 썩 꺼져버리시오. 나는 이날 이때까지 평생 남에게 피해를 끼치며 살아온 적도 없고, 남에게 나쁜 짓 한 적도 없이 살아왔소.
나는 법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고 살아온 사람이요. 그런 내가 죽으면 지옥간단 말이요? 재수없는 소리말고 썩꺼져버리시오." 라고 말합니다.
심지어 교회에 다니는 사람 중에도 믿음이 약한 사람은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후라이보이 곽규석이라는 분은 한국의 일류코메디언이었습니다. 그는 T.V에 많이 나오다가 나중에 목사가 되어 미국에서 목회를 하다가 소천(세상을 떠남)을 했습니다.
그분이 젊은 시절에 교회에 성가대를 하면서도 장로님들이 대표기도를 할 때
"하나님 아버지, 저희 죄인들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면
성가대석에 앉아서 마음 속으로'아니, 저, 저, 저 노인네가. 내가 왜 죄인인가? 자기가 죄를 지었으면 '이 죄인을 용서해 달라.'고 할 것이지 왜 죄없는 나까지 도매금으로 죄인이라고 하는가?'라고 몹시 기분나빠했다고 합니다.
교회 다니며 명색이 성가대까지 하는 청년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교회에 다니지 않는 비기독교인들이 콧구멍의 평수를 넓히며 "내가 왜 죄인이요?"라고 화를 내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기독교의 전도자들이 왜 모든 사람은 죄인이라고 말할까요? 이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보겠습니다.
죄인의 기준은 나라마다 다릅니다. 또한 시대마다 달라집니다. 예를 들면 북한의 간첩들은 남한 사회에 오기 전에 남한 말을 배웁니다. 남한 말 중에도 특히 경상도 사투리나 전라도 사투리를 잘 배웁니다. 그래서 완전히 남한사람화 되어서 넘어옵니다. 그렇게 해서 남한에서 간첩생활을 합니다.
간첩 중에서 남한의 큰 기밀을 빼내어 북한에 넘겨준 사람은 북한에 가면 북한의 법에 의해 최고의 애국자로서 영웅칭호를 받고 훈장까지 받고 평양시내의 광복거리나 창광거리의 최고 아파트를 선물로 받고 일생이 보장됩니다. 그러나 남한의 법에서는 그 북한간첩은 철천지 웬수이며 잡히기만 하면 즉각사형에 해당되는 극악한 죄인입니다.
또 음주운전자에 대한 법의 기준도 나라마다 다릅니다. 어떤나라에서는 음주운전이가벼운 벌금형의 죄에 불과하지만 어떤 나라에서는 평생운전면허를 딸 수없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남미의 어느 나라에서는 음주운전자를 사형에 처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음주운전에 대한 법도 나라마다 각각 다릅니다.
한국에서는 뇌물을 받은 사람을 사형시키지는 않지만 대만에서 장개석총통이 통치할 때에는 뇌물을 받으면 사형을 시킵니다. 장총통이 뇌물을 받은 며느리를 총으로 직접 쏴 죽여버렸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은 뇌물을 받을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싱가포르에서도 뇌물받은 사람은 중죄로 다스립니다.
간음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어떤 나라에서는 관대하지만 옛날 이스라엘에서는 사형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미국의 초기의 청교도들도 간통죄인들을 사형시켰었습니다. 북한에서는 평민이 허락없이 외국인과 대화를 해도 처벌을 받습니다. 이와같이 인간이 만든 법에는 나라의 사상체제나 환경에 따라 다르고 시대에 따라서 구구각색 천차만별로 달라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라의 법을 어기지 않았다고 "나는 나라의 법을 한번도 어긴 적이 없기 때문에 죄인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나라의 법을 범하지 않아도 각 사회가 규정하고 있는 윤리 도덕의 불문율의 법을 어기면 나라의 감옥에는 들어가지 않아도 사람들에게 지탄을 받고 욕을 먹는 죄인이 됩니다.
그리고 나라의 법과 윤리 도덕의 법을 범하지 않고 다 지키는 사람도 하나님의 법을 범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법 앞에서는 죄인이 되고 맙니다.
성경에서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했을 때 그 뜻은 나라의 법과 인간사회의 윤리 도덕의 법은 다 지켜서 흠이 없고 양심적인 성인군자라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법 앞에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법을 범한 죄인이라는 뜻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된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인류의 시조 아담과 이브가 우주의 여신(女神)과 우주의 남신(男神)이 되고 싶어서 우주의 왕이신 유일신 하나님을 반역하다가 우주의 대반역죄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반역죄인이 되어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인류의 시조 아담과 이브가 자녀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후손들이 세상에 퍼져나갔습니다.
그런데 백인의 후손은 백인을 낳고 황인의 후손은 황인을 낳고 흑인의 후손은 흑인을 낳는 것처럼 반역죄인이 되어 죄가 영혼에 들어온 죄인인 아담과 이브의 후손들은 모두 죄인으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백인이 백인을 낳고 황인이 황인을 낳고 흑인이 흑인을 낳는 것처럼 죄인이 죄인을 낳게 되었습니다. 개가 개를 낳고 소가 소를 낳고 닭이 닭을 낳는 것처럼 '죄인인 인간'이 '죄인인 인간'을 낳게 되었습니다.
'죄인인 인간'의 가장 큰 특징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이기주의(利己主義)'와 '욕심'과 '거짓'과 '교만'입니다. 이 죄들은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고 미워하는 무서운 죄입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에 대한 반역죄를 지은 것도 욕심과 이기주의와 교만 때문입니다.
그리고 죄를 짓고도 거짓말로 변명하려고 했습니다. '죄인인 인간'으로 태어난 아기들은 지독한 이기주의자요 욕심장이이며 교만하기 짝이 없는 죄인들이요 거짓말장이입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선천적으로 '지독한 이기주의자'로 '욕심장이'로 '교만한 인간'이요 거짓말장이로 태어납니다.
그래서 '기독교교육학'에서는 이러한 것을 인정합니다. 아기때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지독한 욕심과 이기주의와 교만과 거짓을 신앙교육을 통하여 점점 도덕 윤리적인 인물로 변화시키는 것이 기독교교육학의 목적입니다. 아기들이 부모의 가정교육이나 교회의 신앙교육이나 학교의 도덕윤리교육이 전혀없이 자란다면 그들은 점점 비뚤어진 길, 타락의 길로 나아가게 됩니다.
왜냐하면 선천적인 죄인인 모든 인간들은 도덕과 윤리는 가르쳐야 행하지만 죄는 가르쳐주지 않아도 잘 지을 수 있는 죄성을 타고나기 때문입니다.
아기들은 가르쳐주지 않아도 욕심을 부리며, 지독한 이기주의적인 행동을 하며 욕심 때문에 싸우며, 나쁜 일을 한 뒤에는 혼날까봐 거짓말을 하며 다른 아이를 멸시하며 때리며 욕을 제일 먼저 배우는 등등 죄인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제 딸이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동네 언니들과 놀면서 욕을 하나 배워왔습니다. "은선이 언니가 나한테 '시파노마'라고 했어."라고 하길래 " 그것은 나쁜 욕이니 나혜는 절대로 그 욕하면 안된다."고 단단히 주의를 주었습니다. 어느 날 차를 타고 목포에 갔는데 큰 트럭이 벼락같은 소리를 내며 저희 봉고차 옆을 확 지나가자 제 딸이 놀랐는지 갑자기 "시파노마!"하며 큰 트럭을 향해서 욕을 했습니다. 동네언니들에게 배운 욕이 저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온 것입니다.
아기들은 선천적인 죄인으로 태어나기 때문에 욕심이나 거짓말이나 이기주의같은 나쁜 것은 굳이 가르치지 않아도 저절로 잘배웁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아기를 낳아서 기르는 부모라면 그 아기가 욕을 못하거나 거짓말을 못하거나 욕심을 못부린다고 고민하거나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욕도 잘하게 되고 욕심도 잘 부리게 되고 거짓말도 능숙하게 될 날이 옵니다.
'법없이도 살 사람'이나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았던 사람'도 아기때부터 욕심과 이기주의와 거짓말과 교만의 죄를 지으며 살아왔습니다. 그것이 바로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증거입니다.
사람들이 짓는 죄의 종류를 열거해볼까요?
부모님에게 불순종하는 것, 부모님을 무시하는 것, 부모님에게 반항하는 것, 미움, 당사자가 없는 곳에서 그를 비난하는 것, 욕설, 낙태, 음란영화, 음란비디오,음란만화,음란사진,음란그림을 보는 것, 음란소설을 읽는 것, 자위행위, 음란한 공상, 성추행, 성폭행, 혼전동거, 혼전성관계, 간통, 기타 공식 결혼한 부부관계이외의 모든 남녀관계(단 강제적으로 성폭행을 당한 경우만은 죄가 아니라고 성경에 쓰여있음),매매춘, 원조교제, 술취함, 싸움, 동성연애, 도둑질, 과일서리, 곡식서리, 사기 ,속임수, 노름(도박),시기,질투, 탐욕, 미움,물욕, 교만, 자랑, 뇌물수수, 아내구타, 게으름, 남녀차별, 지역차별, 동남아 근로자 차별 멸시, 흑인 차별…
이러한 죄들은 '하나님의 법'인 십계명의 제5계명부터 10계명까지를 범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평생 살아오면서 이상에 열거한 죄를 단 한가지도 짓지 않은 '완벽한 성인'이라고 합시다.(지구상에는 그러한 사람은 단 한명도 없지만)
그렇다고 당신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 아니라고 인정을 받을까요?
그러면 당신이 다음에 열거하는 죄들은 짓지 않았는지 한번 살펴보십시오.
하나님외에 다른 신들을 믿은 것, 하나님을 믿지않은 것, 조상신을 섬기며 제사를 지낸 것, 조상신위를 세워 놓고 절을 한 것, 제사를 지내지 않는 기독교인들을 비난하고 욕한 것, 기독교를 비판한 것, 전도하러오는 사람들을 쫓아낸 것, 교회다니는 사람들을 미워한 것, 교회와 교인들을 헐뜯은 것, 우상을 섬긴 것, 무당을 불러 굿을 한 것, 점쟁이에게 가서 점을 친 것, 컴퓨터 점을 친 것, '하느님도 무심하시지'라며 하나님을 원망한 것, 주일을 지키지 않은 것, 예배를 드리지 않은 것, 하나님께 기도를 하지 않은 것등등
당신이 앞서 열거한 제 5계명부터 10계명까지의 죄를 단하나도 짓지 않은 '완전한 성자'라도 이상에 열거한 '하나님의 법'인 십계명 제 1계명부터 4계명까지의 지었다면 당신은 하나님 앞에서 더 이상 변명할 수 없는 죄인입니다.
위의 죄들 중에 정말 크고 무서운 죄는 제 5계명부터 10계명까지의 죄가 아니라 제 1계명부터 4계명까지에 열거한 죄입니다. 즉 1계명부터 4계명까지의 죄를 하나님에 대한 반역죄라고 한다면 5계명부터 10계명까지는 반역죄인의 신분으로 태어나기 때문에 짓는 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가의 법을 범하면 감옥에 갑니다. 마찬가지로 우주의 법인 십계명을 범하면 지옥에 갑니다.
그러므로 죄인인 모든 사람들이 지옥에 가는 이유는 위에 열거한 제 1계명부터 10계명의 죄를 범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법인 십계명중에 하나라도 범하면 지옥에 간다고 했습니다.
더구나 예수님은 산위에서 가르친 교훈인 산상수훈에서 십계명을 행동으로 범하는 것뿐만 아니라 마음으로 범하는 것도 다 지옥에 갈 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약성경 마태복음 5장 22절에 보면 사람들에게 의로운 분노가 아닌 '이기적인 화'를 내는 것과 다른 사람에게 '라가'라는 욕을 하는 것은 지옥에 갈 죄라고말씀하십니다. '라가'라는 욕은 우리 한국식으로 말하면 '바보천치녀석' '머리가 빈 녀석' '새대가리' '닭대가리' '쓸데없는 인간' '썩을 놈' '오살년' '빌어먹을 놈' '미친놈' '개XX'등 상대방을 무시하는 욕을하는 것입니다. 도움이
그러므로 사람을 멸시하는 교만죄도 살인죄와 같으며 지옥에 갈 무서운 죄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5장 28절에는 여성을 보고 마음 속으로 '아름답구나.' '예쁘구나.'라고 생각하는 차원을 넘어서 여성과 마음 속으로 간음하는 음욕의 죄를 품는 것도 간음죄와 동일한 죄라고 규정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법의 기준은 이처럼 엄격하고 까다롭고 철저합니다.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왜 사소한 욕이나 마음의 음욕같은 죄도 지옥에 갈 무섭고 큰 죄로 만들어 놓았느냐?" "왜 하나님은 이처럼 법을 까다롭고 무섭게 만들어 놓았느냐"고 반발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법을 정하는 것은 입법자의 권리입니다. 법을 만드는 입법자가 죄를 얼마나 싫어하느냐에 따라서 법의 기준이 달라집니다.
음주운전을 사형에 해당하는 죄로 규정한 나라에는 법을 만든 분이 음주운전 때문에 국민들이 당하는 고통과 피해를 절실히 느꼈기 때문에 사형죄로 규정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나라의 국민이 "왜 음주운전을 사형죄로 규정했느냐? 너무한 것 아니냐?"라고 반발해보았자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음주운전을 하지 않으면 됩니다.
우리나라에도 북한에서 온 간첩중에 주동자는 사형을 시킵니다. 그런데 사형을 당해야 하는 간첩이 "왜 법을 그렇게 까다롭고 엄하게 만들어 놓았느냐?"고 아무리 반발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나라 국민의 생명이 달리고 나라가 망하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달렸기 때문에 간첩은 사형을 시키는 것입니다. 법은 법을 만드는 사람이 죄에 대해서 혐오하는 마음이 클수록 법은 더 까다로와 집니다.
하나님은 사소한 거짓말이나 음욕이나 욕설도 무한히 큰 죄로 보시고 끔찍이 싫어하실 만큼 죄가 없고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에 그만큼 법을 엄격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법이 아무리 까다롭고 엄하고 무서운 것처럼 보여도 그것은 인간쪽에서 왈가왈부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법을 만든 것은 우주와 천국을 다스리는 하나님이 판단에 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위에 열거한 죄들을 다시 한번 읽어보십시오. 그래도 당신은 하나님의 법 앞에서 죄인이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법앞에서는 지구상에 태어난 모든 인간들이 죄인입니다.
그러면 위에 열거한 모든 종류의 죄들을 용서받고 지옥의 영원한 형벌을 받아야 할 죄인의 신분을 벗고 의인의 신분으로 변화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위에 열거한 모든 죄들을 어느 누구에게 고백하고 용서를 빌어야 할까요?
당신의 죄를 용서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한분 밖에 없습니다. 그분은 바로 우주의 법인 십계명을 만드시고 집행하시는 유일하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외아들 하나님인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죄인인 인간들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인들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 위에서 못박혀 돌아가셨다가 삼일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 예수님을 믿고 죄를 회개하기만 하면 지옥에 갈 죄에서 해방되어 천국으로 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법을 범한 죄인들이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아 천국에 갈 수 있는 길은 오직 한 길,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믿는 길 밖에 없습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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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기독교가 배타적인 이유
불교는 인간의 곤경이 죄보다는 고(苦)에 있는 것으로 본다.
그리고 고난의 뿌리라고 보는 욕(欲)에 있는 것으로 가르친다.
그러기에 스스로의 노력(참선이나 수도)에 의해 욕망을 없애는 것을 통해서만 해방될 수가 있다.
불교에서는 하나님도 구세주도 구원도 없다.
"쉬지 말고 노력하라."는 것이 부처가 죽기 전 그의 제자들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철학적 힌두교는 우리의 문제가 '마야'(maya)에 있다고 본다. 이는 시공간적 경험이라는 '환상'으로 이해된다. 대중적 힌두교는 '카르마'(karma) 곧, 환생을 통한 응보라는 교리를 가르친다.
각 사람은 자기 자신의 악행의 열매를 먹어야 한다. 끝없는 윤회(samsara)로부터 용서받아 벗어나는 길은 없다. 단지 개인적 존재가 소멸되어 신적 실체로 흡수되는 것을 포함하는 '열반'(Nirvana)이라는 최종적 해방만 있다.
회교에서는 분명 하나님(알라)의 자비를 선포한다.
코란 114장은 '동정심 많고 자비로운 알라의 이름으로'시작하나 자세히 보면 그것은, 공적이 있는 사람들,기도하는 사람들 구제금을 내는 사람들, 라마단(Ramadan)때 금식하는 사람들에게만 자비로운 것을 발견하게 된다. 다른 죄인들에게는 심판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것외에는 아무런 메시지도 주어져 있지 않다.
일본의 도요히코 가가와는 기독교의 유일성을 발견했다.
"나는 여행하는 순례자였다. 나는 지쳐 있었다.
인생이라는 반환점이 없는 길을따라 여행하는 순례자였다.
비극이 두텁게 깔린, 어둡고 음침한 세상을 방황하고 있었다.
불교는 대자대비를 가르친다. 나는 모든 종교에 대해 감사한다.
그러나.... 태고 이래 그 누가... '이는 많은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 주기 위해 뿌리는
나의 언약의 피..'라고 단언한 사람이 있었던가?"
심지어 부활하신 주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 두 세명이라도 나의 이름으로 함께 모일때
'나도 너희중에 함께 있느니라'고 말씀하신다. 뿐 아니라 그분은 우리가 모든 족속으로 제자로 삼기위해 나갈때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그의 약속을 반복하여 확실히 하시고 계신다.
이것은 기독교만의 유일한 것이다.
이 세상의 그 어떤 종교의 창시자도 이같은 약속을 하지 못했다.
불교도들은 부처와 교제한다고 주장하지 못하며, 유교도들은 공자와, 회교도들은 모하멧을, 마르크스 주의자들은 칼 마르크스와 교제함으로 알거나, 실제로 함께 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 못한다.
주예수만이 다시 살아나신 분이시며, 우리의 구세주이신 까닭이다.
신자와, 신자가 믿는 대상, 상호간의 친밀하고 개인적인 사랑과 신뢰와 교제와 약속의 관계..이런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다른 종교에는 이에 비길 만한 것이 없다. 이런 사실은 수천년전의 과거의 무수한 기록에서 뿐만 아니라. 지금도 무수한 성도들을 증언을 통해 생생히 증거되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오직 한 길!, 오직 한 이름!, 오직 한 하나님!,
오직 한 주님!, 오직 한 중보자! 가 있을 뿐이다.
이런 성경의 주장은 배타적인 주장임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절대, 진리라면 배타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은 필연이다.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사건에 있어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었다고 주장하는 기독교의 성경과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회교, 코란의 주장이.. 둘 다 모두 사실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실이나, 절대진리에 있어서는 하나가 참이면 하나는 거짓이다.
"진정으로 유일한 것은, 보편적인 중요성을 가지며 보편적으로 알려져야 한다.
유일한 사건(십자가 사건)이 없다면 보편성은 없다. 따라서 유일성은 보편성과 한데 결합되어 있다고 비서트 후프트는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세주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어디에서나 그분을 선포할 책임이 있다고..." 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 /존 스토트 著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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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비상구
살다 보면 생각지 않은 위기가 닥쳐올 때가 적지 않습니다.
건물을 지을 때마다 비상구를 미리 설치하는 이유는 인간의 생명은 소중한 반면 언제라도 잃을 수 있는 연약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야고보서 4:14).
그런데 성경은 당신이 미처 생각지 않은 더 큰 위기에 직면해 있음을 말합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브리서 9:27).
심판이 있는 것은 죄 때문입니다.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전도서 7:20).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다 심판을 받습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로마서 14:10).
그리고 심판의 결과는 이와 같습니다.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 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요한계시록 21:8).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심판을 피하는 비상구가 있는 것입니다.
그 비상구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요한복음 5:24).
예수를 믿는 자가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는 이유는 그가 우리의 모든 죄에 대한 형벌을 이미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이사야 53:6).
지체하지 마십시오.
지금 곧 예수를 믿고 영접하십시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린도후서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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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을 삼킬 것 처럼 무섭게 흘러 넘치는 붉은 흙탕물, 한마을을 통채로 삼켜버리고 잠자던 생명들을 순식간에 매장시킨 무서운 바윗덩어리들과 토사, 집집마다 쳐들어온 토사와 뻘들, 평생의 노고와 땀이 배어 있는 공장과 가게를 순식간에 삼켜버린 누런 물들, 그리고 냇가의 모래 속에 쳐박힌 자동차들, 산사태로 막힌 길과 떠내려간 철길들, 골목마다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들, 황토빛으로 변한 수많은 농경지들, 또한 차를 타고 가다가 다리가 무너져 그 안에서 죽은 사람들, 산사태로 사랑하는 부모를 잃고 혼자 남은 어린 아이들. 이런 무서운 일들이 우리의 목숨을 일식간에 멎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모든 인생사가 이렇게 예고 없이 닥쳐옵니다. 예고 없이 태어나고, 예고 없이 병들며, 예고 없이 망하고, 예고 없이 헤어지며, 예고 없이 죽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런데 예고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 중에 가장 무서운 것은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브리서 9:27).
심판이 있는 이유는 모든 사람이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로마서 3:23).
사람 앞에서는 의를 자랑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죄 없는 의인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로마서 3:10).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 (전도서 7:20).
그런데 이렇게 예고 없이 오는 심판을 피할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한복음 5:24)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셔서 당신을 위해 (죄악을 담당하심)
죽으시고 부활/승천하신 후 다시 오실 것입니다
믿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지만 믿지 않으면 영원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당신은 참으로 존귀한 사람입니다=그만큼 온 천하를 주고도 당신 생명을 바꾸지 못합니다)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심판을 이미 받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키셨도다”(이사야 53:6).
우리가 받아야할 죄 값을 받으시고 우리의 죄 짐을 대신 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나의 구세주로 믿고 영접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을 받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한복음 1:12).
그러므로 지금 곧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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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소중한 생명
아현동 가스폭발 대 참사가 있었던 날, 한 모자가 당했던 아픔이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거여동에서 세살박이 어린 아들을 데리고 아현동의 언니집을 찾았던 어느 젊은 엄마의 이야기입니다. 미리 연락을 하지 않아 언니의 집의 문이 굳게 닫혀 있자, 근처 분식 집에서 음식을 먹는 둥, 마는 둥하고 칭얼대는 아들을 달래기 위해 가스기지를 위장한 공원으로 아이를 데리고 들어간지 10분도 못되어 꽝하는 폭발음과 함께 두 명의 소중한 생명이 불길에 휩싸인 가슴아픈 사연입니다.
사실 이와 같은 불행이 나에게도 닥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내가 밟고 있는 땅 밑에 폭발할 가스탱크가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이보다 더 무서운 일이 있습니다. 당신의 가슴속에 언제든지 폭발할 수 있는 죄의 탱크가 있습니다. 죄의 심판은 피할 수도 없으며 그것은 가스폭발보다도 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요한계시록 21:8).
그러므로 빨리 죄문제를 해결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아무리 돈이 많고 똑똑해도 모든 사람이 존경하는 성인군자나 영웅호걸이라 할지라도 스스로 죄 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어야만 합니다.
“그가 우리 죄를 없이하려고 나타내신 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요한일서 3:5).
어떻게 우리의 죄를 없이하셨습니까?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으니”(베드로전서 2:24).
그러므로 예수를 믿기만 하면 죄로부터 구원을 얻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로마서 10:10).
지금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십시오. 그리고 심판의 불이 붙게 될 당신 안에 있는 죄의 탱크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신속히 제거야만 합니다.
“사람이 불을 품에 품고야 어찌 그 옷이 타지 아니하겠으며”(잠언 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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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재난과 구원
하루아침에 무너져 홀연히 폐허화 된 도시, 엿가락처럼 휘어져 버린 철로, 손을 댈 수 없는 가스폭발과 온 도시를 삼킬 듯이 불붙는 화재, 어떤 지진에도 끄떡없다고 자랑하던 고속도로가 무너져내려 달리던 차량들이 내동댕이쳐저 버리고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다가 무너져 버린 건물들, 그리고 그 안에 묻혀서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던 사람들과 서서히 죽어갈 수밖에 없던 오천이 넘는 고귀한 생명들, 눈 깜짝할 사이에 사랑하는 피붙이들을 땅에 묻고 울부짖으며 찾아 헤매는 사람들, 하룻밤 자고 나서 소중한 보금자리를 잃어버린 수십만의 이재민들
일본 고베의 한신대지진에서 단 3초 동안에 일어난 처절한 모습입니다. 잠깐만 땅이 흔들려도 이토록 무서운 재앙이 임하는 것을 보면 인간의 나약함을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그러나 지진의 안전지대는 없다는 말과 같이 이런 일이 내일 아침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같이 이르겠고”(잠언 1:27).
지진뿐만이 아니라 한쪽에서는 가뭄과 기근으로 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하는데, 한쪽에서는 홍수로 물에 잠겨 고난을 당하고, 한쪽에서는 혹한으로 수많은 생명이 희생을 당합니다.
“패망에 패망이 연속하여 온 땅이 탈취를 당하니 나의 천막은 홀연히 파멸되며 나의 휘장은 잠시간에 열파되도다”(예레미아 4:20).
이와 같이 끊임없는 인생의 재난과 두려움의 근원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인간의 죄악과 그에 대한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벽력과 지진과 큰소리와 회리 바람과 폭풍과 맹렬한 불꽃으로 그들을 징벌하실 것인즉”(이사야 29:6).
그러므로 우리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심판으로부터 구원을 받아야만 합니다. 그러나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구원할 수가 없습니다.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커도 스스로 구하지 못하는 도다”(시편 33:16).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당신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대신 받아 당신을 구원하신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셔서 당신을 위해 (죄악을담당하심)
죽으시고 부활/승천하신 후 다시 오실 것입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베드로전서 2:24).
그러므로 지금 당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마가복음 16:16).
당신의 지혜로 내일이면 이미 늦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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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stop
길을 가다가도 빨간 불이 들어오면 멈추어야 합니다.
또한 살다보면 아무리 바빠도 멈추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상을 당하였을 때, 병들었을 때, 사고가 났을 때 등등 가던 길을 더 이상 갈 수 없이 내 의지와 상관이 없이 무조건 정지해야 합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옛말과 같이 사실 인생의 모든 길은 죽음으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부자도, 거지도, 배운 자나 무식한 자, 지혜자나 어리석은 자, 모두가 성격도 다르고, 습성도, 문화도, 가문도 다르고, 사는 방법도 다르지만 인생의 결국은 같습니다. 끝내 죽음의 종착역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 날이 언제인지 아는 사람이 없으며 하루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아는 이가 없습니다 인생의 빨간 불 앞에 지금 당신은 무조건 멈추어 서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죽음 후에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브리서 9:27).
심판이 있는 것은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로마서 3:23),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로마서 3:10).
그렇습니다. 죽음을 피할 사람이 없음같이 심판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심판을 받지 않는 길로 돌아서야 합니다.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요한복음 3:18).
예수를 믿으면 심판을 받지 않는 이유는 그가 이미 당신을 위하여 심판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베드로전서 3:18).
아마도 당신은 스스로 옳은 길을 가고 있다고 자부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도 즉시 돌이켜야 할 사망의 길입니다.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잠언 16:25).
그러므로 지금 예수께로 돌이켜 그를 믿어 사망과 심판의 형벌로부터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린도후서 6:2).
지금 예수를 구주로 믿어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으십시오.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셔서 당신을 위해 (죄악을 담당하심)
죽으시고 부활/승천하신 후 다시 오실 것입니다
믿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지만 믿지 않으면 영원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당신은 참으로 존귀한 사람입니다=그만큼 온 천하를 주고도 당신 생명을 바꾸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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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경주
인생은 경주와 같습니다.
이기기 위해서는 빨리 달려야 합니다. 그러나 규칙을 무시한 채 빨리만 달리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빨리 달리는 데만 전력을 다하는 나머지 보이지 않는 인생의 법칙을 무시합니다.
그것은 영혼의 법칙입니다. 인생의 결국은 죽는 것입니다.
빨리 달린 자도 죽고 승리자도 패배자도 죽습니다. 부자도 가난한 자도 권력 있는 자나 없는 자나 그 결국은 같습니다. 그러나 그뿐이 아닙니다. 죽음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브리서 9:27).
심판이 있는 이유는 영혼의 법칙을 어겼기 때문이며 그것을 성경에서 죄라고 말합니다.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전도서 7:20).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 말과 같이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힘으로는 죄를 없이 할 수도 이길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 하셔셔 당신을 위해 (죄악을 담당하심)
죽으시고 부활/승천하신 후 다시 오실 것입니다
믿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지만 믿지 않으면 영원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당신은 참으로 존귀한 사람입니다=그만큼 온 천하를 주고도 당신 생명을 바꾸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죄에 대한 심판을 옮기셨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예수)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린도후서 5:21).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이 받아야 할 죄에 대한 심판을 대신 담당한 것이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사도행전 16:31).
당신의 인생의 경주가 물거품이 되기 전에 지금 곧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어 당신의 죄를 용서받고 영생을 소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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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또 하나의 이산가족
이산가족의 아픔은 우리 모두의 아픔입니다.
전쟁 때문에 헤어져 생사를 모르고 오랫동안 그리던 부모형제를 찾아 헤매는 혈육의 정은“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을 실감나게 해줍니다.
길고 긴 세월에 잊었던 그리움이 다시 소용돌이치고 서로를 찾아 헤매다가 오래 전에 멈추어버린 지친 발길들이 이제 생기를 되찾게 되었습니다. 너무도 긴 세월에 몰라보게 변한 얼굴 속에 깊이 패인 주름사이로 흘러내리는 눈물은 우리 모두의 눈물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깊은 이산의 아픔이 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과의 헤어짐입니다. 본래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의 계획대로 살도록 창조함을 받았으나 사탄의 속임에 넘어가 사랑하는 아버지의 품을 떠났습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이사야 53:6).
우리는 아버지를 잃고 죄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입니다. 부모와의 헤어짐이 수많은 비극과 눈물을 낳은 것처럼 아버지 하나님을 떠난 우리의 삶은 나름대로 선하게 살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참된 해답과 만족을 얻지 못한 채 “이래서는 안 되는데...”, “나는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데...”, “다른 길은 없을까?”, “더 나은 삶이 있을텐데...” 라고 끊임없는 의혹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부모 없는 자식이 그 어떤 것으로도 부모의 사랑을 대신할 수 없는 것처럼 아버지 하나님을 잃은 우리의 마음은 돈, 명예, 권력, 쾌락, 사람... 이 세상의 어느 것으로도 채울 수 없음을 잘 압니다. 또한 선을 행하기보다는 그르치고 실수하며 죄를 짓기 쉬운 자신임을 부정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진지하게 자신을 돌아본다면 정상궤도에서 벗어나 있는 자신의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로마서 3:23).
일단 길을 잘못 들어선 우리는 그 결과가 좋으리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브리서 9:27)곧 우리가 이 길을 계속 고집하고 있다면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음을 성경은 알려 줍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이 우리를 찾기 위해 아버지께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을 마련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 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6)하나님을 떠남으로 우리가 받아야 할 죄에 대한 모든 형벌을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대신 담당하시고“다 이루었다”(요한복음 19:30)고 선언하심으로 아버지께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십자가에서 마련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한복음 3:16) 이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장애물은 제거되었습니다.
당신의 결정만이 남았습니다.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간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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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꽃이 주는 교훈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베드로전서 1:24).
풀과 같이 마르고 꽃과 같이 떨어질 것을 위해 살고자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죽음과 함께 없어질 것들과 한줌의 흙으로 돌아갈 육신을 위해 뛰면서 자신의 영혼 문제는 제쳐두고 살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성경은 모든 사람의 영혼이 죄로 인해 죽어 있기 때문임을 밝힙니다.
“범죄 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에스겔 18:4).
영혼이 죽어 있는 사람은 육신의 일에만 몰두하면서 살게 마련입니다.
“저희는 육체뿐이라 가고 다시 오지 못하는 바람임을...”(시편 78:39).
그러므로 참 생명은 영혼에 있으며 육신에 있지 않습니다. 영혼의 생명을 잃은 자는 살았지만 실상은 죽은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오늘이라도 육신의 삶이 끝나면 죄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지옥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는 것이 당신의 영혼이 직면하고 있는 엄연한 현실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브리서 9:27).
이러한 당신에게 영생을 주어 살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16). 예수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됨은 그가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이미 받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누가복음 9:25). 온 천하보다도 소중한 것은 당신의 영혼입니다. 주 예수를 믿음으로 영생을 소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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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인생의 항해
인생은 항해와 같습니다.
목적 없는 항해는 없는 것처럼 인생에는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사십니까? 배를 위해 항해하는 것이 아니라 항해를 위해 배가 있는 것처럼 단지 먹고사는 것이 인생의 전부라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진정한 삶의 목적 없이 죽음과 함께 없어질 것들을 위해 사는 것은 우리의 영혼이 죽어 있기 때문입니다.
“범죄 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에스겔 18:4).
곧 죄로 인해 모든 사람의 영혼이 죽은 것이며 한 사람의 예외도 없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로마서 3:10).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브리서 9:27)라고 인생의 결국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애써 수고하고 산 결과가 죽음이고 하나님의 심판이라면 당신은 지금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심판이 기다리는 죄의 항해를 계속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구원의 밧줄을 붙드시겠습니까?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린도후서 6:2).
망설일 시간이 없습니다.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요한복음 3:18).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심판을 받지 아니함은 우리의 모든 죄에 대한 심판을 십자가에서 그가 대신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우리 범죄 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로마서 4:25). 지체하지 말고 다시 사신 예수를 구주로 믿어 영생을 소유하심으로 진정한 목적이 있는 인생의 항해를 시작하십시오.
믿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지만 믿지 않으면 영원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당신은 참으로 존귀한 사람입니다=그만큼 온 천하를 주고도 당신 생명을 바꾸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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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영생찾기
오늘날을 흔히 ‘자기상실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친구나 재산, 돈은 잃어버려도 나를 잃어버리면 안됩니다. 나를 잃어버림은 생명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지금 당신은 육체는 살아 있지만 영혼이 죽어 있습니다. 겉 사람은 살아 있지만 속 사람이 죽어 있습니다. 알맹이가 빠진 껍데기만 있습니다. 그것을 성경은 영적인 죽음이라고 말합니다. 영혼의 죽음이 왜 왔습니까? 그것은 죄 때문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로마서 5:12).
죄 없는 사람이 없음같이 모태로부터 나오는 모든 사람은 영적인 죽음 아래 있습니다. 몸만 가지고 사는 사람은 진정한 행복도, 기쁨도, 만족도 없을 수 밖에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로마서 3:23).
또 사람들마다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죄의 결과로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요한계시록 20:13),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마가복음 9:43)을 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당신에게 있어서 돈을 벌고 세상을 얻는 일보다 더 급한 것은 잃어버린 생명 곧 영원한 생명을 다시 찾는 것입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마가복음 16:26).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죄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런데 땅을 밟고 사는 사람은 누구든지 죄를 안 지을 수도 없고 지은 죄를 씻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죄를 가지고 가신 분이 있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한복음 1:29).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죄 없고 흠 없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심은 바로 당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죄의 심판과 형벌을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키셨도다”(이사 야 53:5~6).
그러므로 이 사실을 믿기만 하면 잃어버린 영생을 찾습니다.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한복음 5:24).
지금 곧 예수를 구주로 믿고 마음 속에 영접하십시오.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 하셔서 당신을 위해 (죄악을 담당하심) 죽으시고 부활/승천하신 후 다시 오실 것입니다 믿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지만 믿지 않으면 영원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당신은 참으로 존귀한 사람입니다=그만큼 온 천하를 주고도 당신 생명을 바꾸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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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피뢰침
천둥치는 날 피뢰침이 없는 빌딩에 있다면 두려움에 떨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것이 당신의 영혼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로마서 1:18).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인이며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음을 분명히 말합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브리서 9:27).
사람이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처럼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피할 길을 주셨습니다.
그 길이 곧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가 십자가에서 세상죄를 담당하여 당신을 대신하여 심판을 받으심으로 죄로 원수된 하나님과의 관계를 화목케 하여 죄사함 받는 길이 되어 주신 것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이사야 53:5~6).
천둥 번개 치는 날 애써 피뢰침이 없는 빌딩을 찾아다닐 사람이 없는 것처럼, 더 이상 죄 가운데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기다릴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혹 온 세상을 소유할 것처럼 살아왔다 하더라도 당신의 영혼은 온 천하보다 훨씬 소중합니다.
그러므로 고집과 회개치 아니하는 마음을 버리고 지금 곧 예수의 이름으로 죄없이 함 받는 하나님의 사랑을 영접하십시오.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르게 될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한복음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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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물보다 무서운 것
“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세상이 온통 누런 황토빛 흙탕물 천지였습니다.”
홍수에서 구조된 사람이 두려움에 떨며 했던 고백입니다.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지는 물 난리였습니다. 수마는 뱀같이 혀를 널름거리며 다리와 길과 마을들과 집들 거의 모든 것을 집어 삼켰습니다. 싯누런 흙탕물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죽음속에 몰아 넣었으며 보금자리를 물에 잠기게 했습니다. 소중한 논밭이 흙더미에 파묻히고 축사가 떠내려가고 귀한 재산들이 일순간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물이 그렇게도 무서웠던 이유는 죽음을 무서워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죽음을 무서워합니다.
죽음을 무서워하는 이유는 심판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브리서 9:27).
사람이 심판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죄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로마서 5:12).
그러므로 물보다, 죽음보다 더 무서운 것은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이 하나님의 심판은 지체하지 않는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저희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저희 멸망은 자지 아니하느니라” (베드로후서 2:3).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심판을 받아야 할 죄인들에게 피할 길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받아야 할 죄에 대한 심판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그리스도가 대신 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린도후서 5: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를 믿기만 하면 물보다도, 죽음보다도 더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고 영생을 얻게 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한복음 5:24).
물에서 건짐을 받은 사람도 한 번 정해진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으면 영원한 죽음도, 물보다 더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도 피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곧 예수를 당신의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십시오.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셔서 당신을 위해 (죄악을 담당하심)
죽으시고 부활/승천하신후 다시 오실 것입니다
믿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지만 믿지 않으면 영원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당신은 참으로 존귀한 사람입니다-그만큼 온 천하를 주고도 당신 생명을 바꾸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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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끊어진 다리
새벽에 집을 나서다가 끊어진 다리에서 희생된 사람이 있습니다.
인생은 끊어진 다리를 질주하는 차와 같습니다. 어디서 언제 떨어질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끊어진 다리가 좋은 차, 나쁜 차, 비싼 차와 값싼 차를 구별하지 않고 삼킴과 같이 언젠가는 부자도, 가난한 자도,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배운 자나 못 배운 자 할 것 없이 모두가 죽음의 끊어진 다리에서 떨어져 내려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야고보서 4:14).
하나님과 인간의 사이도 끊어진 다리와 같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이사야 59:2).
죄로 말미암아 끊어진 다리에서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질주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하여 심판의 강물로 깊이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브리서 9:27).
육체를 가진 사람이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처럼 죄를 가진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심판을 피할 수 있는 구원의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17)
하나님이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어떻게 당신을 구원하셨을까요? 그는 당신의 죄짐을 짊어지고 당신이 받아야 할 죄에 대한 하나님의 무섭고도 맹렬한 심판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베드로전서 3:18).
그리고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선포하심으로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예수를 믿고 영접하기만 하면 죄악과, 언제 임할지 모르는 심판으로부터 구원을 받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집이 구원을 얻으리라”(사도행전 16:31).
지체하지 마십시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린도후서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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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잘못탄 버스
잘못 탄 버스는 갈아타야 합니다.
당신의 인생의 버스는 어떠합니까?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로마서 3:23)라고 말함으로 모든 인생이 죄로 잘못되었음을 지적합니다.
인생의 죄의 결과는 저주와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입니다. 죄에는 형벌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브리서 9:27).
모든 사람은 죄의 결과인 심판을 향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버스를 빨리 갈아타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우리에게 죄의 심판으로부터 피할 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느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16).
예수를 믿는 자마다 심판에 이르지 않고 멸망하지 않는 이유는 그가 이미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에 대한 심판과 형벌을 담당하심으로 우리의 죄의 값을 다 갚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베드로전서 3:18).
그러므로 지금 곧 인생의 버스를 갈아타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을 모든 죄의 결과로부터 피할 길을 주셨다는 사실을 믿고 받아들이면 됩니다.
망설이지 마십시오.
지금껏 타고온 버스라도 잘못된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을 알면서 그대로 앉아 있을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당신의 영혼은 이보다 훨씬 소중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사도행전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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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이중지불
세상에 두 장밖에 없는 우표가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한 장씩 가지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 중에 한사람이 다른 한사람으로부터 거액을 지불하고 그 우표를 샀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 하나를 그 자리에서 찢어 버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놀랬지만 그 사람은 태연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제 하나밖에 없는 그 우표는 부르는 게 값이고 이전에 두 장의 우표 값을 합한 것보다도 더 비싸게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한 장밖에 없는 우표가 이렇게 귀하다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당신은 얼마나 귀한 존재일까요?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가 귀한 존재인 줄을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죄 때문입니다. 성경은 죄로 인하여 나를 값싸게 팔았다고 말합니다.
“오직 너희는 너희의 죄악을 인하여 팔렸고”(이사야 50:1)
죄로 인하여 영생을 잃어버리고 죄의 고통과 사망과 심판의 두려움 가운데 사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런데 이 생명의 값을 갚아주신 분이 있습니다.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히브리서 9:12).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죄의 삯은 사망”(로마서 6:23)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저희를 음부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사망에서 구속하리니”(호세아 13:14).
이렇게 말씀하신 그분이 당신의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당신이 받을 심판을 대신 담당하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여호와께서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이사야 53:5~6).
자, 이제 당신의 죄값이 청산되었습니다.
만일 친구와 함께 버스를 탈 때 친구가 내 차비까지 내주면 나는 돈을 낼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당신의 죄와 심판의 값을 다 지불하셨기 때문에 이 사실을 알고 믿기만 하면 죄와 심판의 값을 치룰 필요가 없습니다. 친구가 차비를 낸 줄을 모르고 이중지불하였을 때에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후회가 됩니까? 차비도 그러한데 하물며 계산할 수도 없이 귀한 생명의 값을 이중지불 한다면 이는 돌이킬 수 없는 무서운 일일 것입니다. 당신의 죄값이 지불되었습니다. 지금 믿고 구원을 받으십시오.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 같이 제 죄를 안개의 사라짐 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이사야 4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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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포로
당신은 “산다는 것의 포로”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으십니까? 살지 못해 죽는 사람, 죽지 못해 사는 사람, 나름대로 재미있게 사는 사람, 모두가 삶의 포로인 것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로마서 7:15).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요한복음 8:34).
실상 모든 사람은 죄의 종입니다.
종은 그 삶의 내용이 좋을 리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로마서 3:23).
죄로 인해 하나님의 창조하신 본래의 모습을 잃고 낮은 수준에 나름대로 만족하며 사는 것이 인생입니다.
뿐만 아니라 종이나 포로는 그 결과도 좋지 못합니다.
죄에는 값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로마서 6:23).
죄의 값은 분명히 계산되어야 합니다.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마태복음 5:26).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죄인은 아무도 없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브리서 9:27).
그러나 온 세상에 미칠 기쁜 소식은 우리가 당해야 할 죄에 대한 심판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대신 담당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하려 하심이니라”(고린도후서 5:21).
이것이 세상 모든 사람을 죄로부터 자유케 하는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요한복음 8:36).
지금 곧 죄로부터 당신을 자유케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영접하십시오.
죄의 포로는 죄와 그 결과로부터 자유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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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모르는 것 세 가지
우리에게는 모르는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아무리 지혜자라도 자기가 언제 죽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루를 살면서도 영원히 살 것처럼 욕심도 부리고 다투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오늘 저녁에 신발을 벗고 내일 다시 신는다는 보장을 받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야고보서 4:14).
그러므로 지혜있는 자는 시작보다도 항상 끝을 생각합니다.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宴樂)하는 집에 있느니라”(전도서 7:4).
당신이 모르는 두 번째의 것은 죽음 후에 심판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브리서 9:27).
심판이 있는 것은 모든 사람이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로마서 3:10).
죄의 값은 심판입니다. 그것은 죄에는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모르는 세 번째의 것은 이 진노의 형벌을 대신 받으신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한복음 3:16).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하는 당신을 건지기 위해 하나님이 예수를 보내 주셨고 그가 당신의 모든 죄에 대한 심판을 십자가에서 대신 받으셨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히브리서 9:28).
이것이 바로 예수의 사랑이요, 이 사랑을 의지함으로 죄사함 받고 영생을 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이제 이 예수를 믿고 당신 속에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일만 남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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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행복한사람
행복해 보이는 사람은 많지만 행복한 사람은 없습니다.
웃고 떠들고 즐거워하는 것 같아도 근심이 있고 걱정이 있습니다. 실속있게 사는 것 같아도 돌아서면 공허합니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밤늦게 자리에 누우며 재물이 늘어도 만족이 없습니다. 많은 친구 속에서도 외로움이 있고 사람들의 칭찬과 갈채 속에서도 참 내 모습이 없음을 절감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영혼을 잃어버리고 몸만 가지고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몸만 가지고 세상에 나와서 먹고 사는 일과 육체를 즐겁게 하는 일에 빠져서 살아온 것이 당신의 인생이 아닙니까? 혹 정신세계와 사상과 철학을 추구하고 종교에 심취한다 하더라도 결국은 먹고 사는 범주를 넘지 못하고 내몸 하나 주체할 수 없는 한계에 부딪혀 ‘이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닌데’ 하면서 어찌할 수 없는 삶의 흐름에 떠내려 가면서 허덕거리는 것이 인생
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영적인 죽음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의 속사람이 죄로 인하여 죽었습니다. 죄로 인하여 생명을 잃음으로 나를 잃어버리고 하나님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죄 문제를 해결한 사람입니다.
그 이유는 죄사함을 받아야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시편 32:1).
그러나 사람이 스스로 죄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네가 잿물로 스스로 씻으며 수다한 비누를 쓸지라도 네 죄악이 오히려 내 앞에 그저 있으리니”(예레미아 2:22).
“용사가 힘이 커도 스스로 구하지 못하는도다”(시편 33:16).
죄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심판을 받게 됩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브리서 9:27).
사람이 죽는 날이 정해진 것같이 선악간에 행한 모든 행실로 받는 심판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당신이 받아야 할 심판을 대신 받으신 분이 있습니다. 그분이 곧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고린도후서 5:21).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고린도후서 5:19).
“그의 피로 우리를 죄에서 해방”(요한계시록 1:5) 시키고자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베드로전서 2:24)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한복음 3:16).
그러므로 지금 이 시간에 예수를 구주로 믿고 영접하십시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한복음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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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인생의 짐
“인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길을 가는 것과 같다”라는 옛사람의 말과 같이 수도 없고 끝도 없는 무거운 짐들이 당신의 인생 길에 놓여 있습니다. 공부의 짐을 비롯하여 온갖 질병, 치열한 생존경쟁과 먹고사는 문제, 돈 문제, 사람문제, 자식문제 또 각박한 세상에서 성공해야 한다는 부담 등 일일이 들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짐들이 짓누르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포츠와 영화, 노래와 춤에 빠지고, 바둑을 두고, 관광을 다니고, 친구를 만나고, 술을 먹고 때로는 마약으로 쾌락을 찾는 이유가 이러한 인생의 짐을 잊고 잠시나마 해방감을 맛보려는 어리석음 때문입니다. 하룻밤 지나고 나면 또 다시 냉엄하고 괴로운 현실의 짐앞에 억눌릴 수밖에 없습니다.
인생의 짐가운데 가장 무거운 짐은 죄의 짐입니다. 온갖 질병도, 미움도, 살기에 힘들고 세상이 각박해지는 것도 죄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죄 문제가 해결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순서입니다. 그러나 수많은 영웅호걸들과 지혜자들 조차도 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한 사람은 한사람도 없었습니다.
“내가 원하는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은 행하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로마서 7:19, 24).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감당할 수 없나이다”(시편 38:4).
그 이유는 죄에는 형벌이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인생은 예외 없이 죄와 심판의 짐을 지고 죽음을 향해 한걸음씩 다가가고 있음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를 들으라... 깨달으라... 귀를 기울이라 너희에게 심판이 있나니”(호세아 5:1).
그런데 당신의 이 무겁고 힘들고 무서운 죄짐을 대신 짊어지고 가신 분이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28).
그 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히브리서 9:28).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베드로전서 2:24).
그렇기 때문에 예수를 믿기만 하면 죄의 짐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입니다.
“내가 그 어깨에서 짐을 벗기고 그 손에서 광주리를 놓게 하였도다”(시편 81:6).
그러므로 지금 예수를 믿고 당신의 마음 속에 구주로 영접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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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인생예보
사람들은 예로부터 날씨에 큰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왜냐하면 비가 오고 안 오며, 가뭄이 들고 흉년이 들며, 홍수가 나는 등 사람의 생명이 죽고 사는 것이 날씨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전쟁터에서 싸우는 군인들이나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나 큰 산에 오르는 등산가들은 자신들의 생명이 날씨에 좌우됨을 너무나 잘 압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사람들은 다가올 날씨를 미리 알기 위해서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그러나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마가복음 16:3)라는 말씀과 같이 하루의 일기예보보다 인생의 결국을 미리 아는 인생예보가 더 중요합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브리서 9:27).
사람이 죽음을 피할 수 없음같이 하나님의 심판도 피할 수 없는 것은 모든 사람이 예외없이 모든 죄의 구름 아래에 있기 때문입니다.
“구름에 비가 가득하면 땅에 쏟아지며”(전도서 11:3)라는 말씀과 같이 이 땅의 모든 인생의 죄악이 빽빽한 구름과 같아서 하나님의 심판을 예고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죄 있는 뭇사람의 결국을 이렇게 예보합니다.
“저희는 아침 구름 같으며 쉽게 사라지는 이슬 같으며 타작마당에서 광풍에 날리우는 쭉정이 같으며 굴뚝에서 나가는 연기 같으리라”(호세아 13:3).
이 일이 언제 임할는지, 아침 안개처럼 은밀하게 임할는지, 저녁 광풍처럼 갑자기 임할는지, 아무도 아는 이가 없기 때문에 죄사함을 받는 것 이상 급한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죄를 없이 하는 길은 오직 예수밖에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죄에 대한 심판을 그가 담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히브리서 9:28).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한 이유가 바로 당신의 죄를 담당하신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당신을 지금 이렇게 부르고 계십니다.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 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 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이사야 44:22).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요한복음 5:24).
지금 곧 주께로 나아와 예수를 믿음으로 죄사함을 얻으십시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사도행전 3:19).
당신의 인생예보가 쾌청해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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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왜 우리는 구원을 받아야 하는가?
당신은 "구원받으셨습니까?"라는 다소 이상한 질문을 받아본 적이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질문을 받아본 적이 있었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를 몰랐을 것입니다.
왜냐 하면 그 질문자의 질문하는 의도나 '구원받다'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도로변의 빌딩이나 간판에 '예수께서 구원하십니다'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고, 그 말의 구체적인 뜻이 무엇일까 생각해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또 '구원받다'나 '구원'이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 책자를 받아본 적도 있지만, 그런 말들에 대해서 아주 막연한 생각만 했기 때문에 매우 당황했을 것입니다.
이 글의 목적은 성경에서 말하는 매우 중요한 주제인 하나님의 구원의 도리를 밝히 알려 주는 데 있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구원받다'와 '구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구원'이라는 말은 임박한 위험으로부터 구출 또는 구조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수영을 할 줄 모르는 한 사람이 강물에 빠져 익사할 위험에 처했을 때, 스스로 헤엄쳐 나오려는 모든 노력은 헛수고일 뿐인데, 능숙하게 수영을 할 줄 아는 어떤 사람이 그의 위험을 보고 강물 속으로 뛰어들어 그를 물에서 구해준다면, 구조 받은 사람이 후에 그의 경험을 얘기할 때 '익사의 위험으로부터 구원받은' 자로서 그것을 얘기할 것이고, 그를 구조해 준 사람을 '구원자'라고 부를 것입니다. 이와 같이 '구원'이라는 말은 곧 위기, 구원자, 구출의 개념을 떠오르게 합니다.
우리에게 보내 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구원에 관해서 많은 말씀을 합니다. 성경에는 '구원자', '구원받다','구원'이란 말들이 여러 번 나타납니다. '구원자'는 물론 구원하는 사람입니다. '구원받는' 자들은 그들의 위험으로부터 구출 받은 사람들이고, '구원'은 그 구출의 시작으로부터 끝날 때까지의 전체 과정입니다. 성경이 구원에 대해서 그렇게 많이 언급하는 이유는 모든 사람이 위험에 처해 있고, 그 위험으로부터 구원받을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자, 이제는 그 위험이 무엇이며 왜 우리가 그 위험에서 구원받아야 하는가를 성경 말씀에서 알아보겠습니다.
우리 모두는 날 때부터 죄인이기 때문에 구원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즉, 우리 모두는 우리 안에 죄의 본성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납니다. 우리는 이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왜냐 하면 우리는 우리의 부모로부터 그것을 유전 받았으며, 그들은 또 그들의 부모로부터 유전받았고…, 그것은 우리의 첫 조상인 아담과 하와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우리는 '본성'에 의해서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실제를 보여줍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생각하고, '우리가 말하는 것'을 말하고, '우리가 행동하는 것'을 행합니다.
즉 우리 내부의 본성이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말과 우리의 행동을 통해 드러납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보고 '성품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즉 이 말은 그의 생애를 통해 친절함과 같은 특성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한 사람의 타고난 성품은 그의 생활 속에서 나타납나다.
예를 들어, 작은 벵갈 호랑이 새끼는 매우 예쁘고, 새끼고양이 만큼이나 위험하지 않습니다.
이 어린 호랑이는 어릴 동안에는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비록 어리다 해도 그 속에는 피를 갈망하는 호랑이의 타고난 성품이 있고, 이 사나운 성품은 그것이 성장함에 따라 그의 행동에 의해서 증명되고, 곧 정글에서 공포의 존재가 됩니다. 다시 말해서, 필요한 시간이 지난 후에는 그 진정한 본성이 드러납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범죄는 한 때는 누구에게도 해를 끼칠 수 없던, 사랑스런 아기였던 사람들에 의해서 자행되었습니다. 무엇이 이 어린아이들을 위험한 범죄자로 만들었을까요? 그들 속에 있던 죄의 본성이 방해받지 않고 발달해 마음 속의 생각과, 입술에서 나간 말과, 생활 속에서 행해지는 행동과, 하나님께 대항하는 태도를 통해 드러난 것입니다.
창세기 3장은 우리가 어떻게 태어날 때부터 이런 죄악된 본성에 사로잡히게 되었는가를 말해줍니다. 첫번째 사람이며 인류의 조상인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해 에덴 동산에서 죄를 지었을 때, 자기 뿐 아니라 그에게서 이어져 내려올 온 인류가 죄를 지은 것입니다.
즉 아담은 모든 사람을 그와 함께 그의 타락 속으로 끌어 내렸습니다.
아담은, 그의 불순종으로 그가 얻게 된 죄의 본성을 자손에게 전달했으며, 그의 자손은 또 그들의 자손에게… 이렇게 전달하기를 현재까지 계속해 온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들 각자는 태어날 때부터 죄인으로 만드는 죄스러운 본성을 갖고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로마서 5:12에서,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말한 것과 같은 뜻입니다.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서 무엇을 예비하셨는가?
하나님은 어느 영혼도 영원히 잃어버리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자, 하나님은 우리가 죄로 인한 결과에서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그분의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빛이시라'고 말하므로, 그분은 죄를 그대로 내버려두실 수 없습니다.
또 '하나님은 사링이시라'고 말하므로, 그는 죄인을 그 상태대로 내버려두실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한 치의 어긋남도 없는 그의 말으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고 말했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고 그것을 벌해야만 하지만, 또한 죄인을 사랑하고 그들을 구원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심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은 그 자신이 사랑이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합니다.
사람이 사랑을 받지 못하고 죽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이런 모습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마치 폭군으로 여기고, 조금이라도 율법을 어긴 자들을 처벌하지 못해 안달하는 분으로 생각하지만, 성경은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을 말합니다. 성경은 그분이 '그 크신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는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임을 말하고, 그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합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생들의 구원자로 그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심으로 그분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그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는 우리에게 주신 그분의 선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등하며 영원부터 아버지와 함께 했던 아들이 세상에 온 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를 확실히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구주 그리스도는 죄인의 구주가 되기 위해서, 밝고 아름다운 천국을 떠나 죄와 어둠과 죽음과 파멸과 절망의 이 땅에 왔습니다. 그의 놀라운 은혜로 인해, 사람의 몸을 입고, 성령으로 잉태되어, 베들레헴의 한 처녀에게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우리가 갖고 있는 것과 같은 죄의 본성이 없는 분입니다.
성경은, 그는 죄가 없으며, 죄를 알지도 못하며, 죄를 짓지 않은 분이라고 말합니다. 그의 생애에는 생각이나 말이나 행함에 있어서 어떤 오점도 없었습니다. 그는 '거룩하고 악이나 더러움이 없는' 분입니다. 단 한 분의 죄 없는 구주가 죄 많은 인류를 구원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출생의 놀라운 기적과 신비를 생각하십시오. 만물의 창조자였던 그가 베들레헴의 작은 아기가 되셨습니다. 영원한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지고, 우리가 받을 형벌을 받고, 우리 대신 죽으려고 사람이 되셨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고 구주께서 말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낸 것은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다시 한 번 밝혔습니다. 셋째, 주 예수는 죽음과 부활함으로 말미암아 그분을 구주로 믿는 모든 사람들의 구원을 가능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 복음의 핵심이며, 이 큰 진리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당신의 구원에 반드시 필요합니다.
주 예수는, 사람으로 사셨던 이 땅에서의 완전한 삶과, 그가 전파한 놀라운 말과, 능력 행하심으로 그가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했습니다.
그 구원은 오직 우리를 위해 자기를 희생함으로써만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죄의 삯은 사망이요, 범죄하는 자는 죽으리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공평하고 의로우므로 죄를 반드시 벌해야만 합니다.
그러면 죄인은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단 한 가지의 길이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대신한 '대속의 희생'과 '승리의 부활'에 의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죄 없는 아들이, 기꺼이 자신을 희생물로 십자가 위에 드렸고,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안 하나님은, 그 죄악을 모두 그에게 담당시켰습니다. 그것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리스도는 이 죄로 인한 벌로 가장 커다란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가 십자가에 달렸을 때 하나님의 모든 심판이 그에게 내려졌습니다.
우리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의 파도와 소용돌이는, 그 죄를 짊어진 한 사람에게 덮쳤습니다. 쏟아질 모든 형벌을 그가 친히 남김 없이 받고 견뎠으며, 죄와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모든 요구를 만족시켰고 , 제 3일에 그는 부활함으로 '그를 믿는 죄인들 모두를 구원하기에 필요한 일을 완성'했습니다. 당신은 이 놀라운 사실을 마음으로 깨닫고 믿습니까? 나의 모든 죄는 예수 위에 놓여지고,그는 나무에 달려 이를 담당했으니, 이는 나의 모든 죄악을 안 하나님이 친히 그에게 담당시키사 나를 자유케 하심이로다. 구주는 죽기 전에 '다 이루었다'고 승리의 말을 했습니다. 무엇이 완성되었다는 뜻일까요?
그가 이 세상에 와서 하고자 했던 모든 일은, 전적으로 그가 완성한 일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그를 자기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거저 주는 완전하고 영원한 구원을 준비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3일째 되는 날 예수님을 죽음에서 끌어올림으로, 예수가 죄의 값을 갚고 구원을 완성함에 대해서 온전히 받았음과 만족함을 표시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의 부활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필요한 모든 일이 단번에 영원히 수행되었음을 세상에 공표하는 하나님의 승인이며 증표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나 구원을 받을 만한 공로는 오로지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신 일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믿고 그분을 구주로 모시는 사람들의 구원을 가능케 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단순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당신이 어떤 사람에게 많은 돈을 빌렸다고 가정합시다.
빚을 갚을 때가 되었는데, 당신에게는 빚을 갚을 만한 한 푼의 돈도 없습니다. 그는 당신을 고소하겠다고 협박하고, 이것은 자연히 당신을 매우 곤란하게 하는데, 한 부유한 친구가 그 곤경을 듣고 와서 그 빚에 대해 더이상 염려하지 말라고 합니다.
"내가 너의 채권자에게 가서 너의 빚을 모두 갚고 영수증을 가져다 줄게."
곧 채권자는 빌려준 돈을 모두 돌려 받았고, 친구는 채권자가 발급한 영수증을 가지고 잠시 후 돌아옵니다.
물론 당신은 말할 수 없이 큰 감사를 그 친구에게 표시할 것입니다. 당신은 그 채권자에게 빚이 있습니까?
당신은 지불할 아무 것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당신은 그 많은 빚에서 자유롭게 되었습니까?
"나의 친구가 나의 궁핍함을 알았고, 나를 위해서 빚을 갚았습니다."
이것이 구주 예수가 갈보리에서 했던 바로 그 일입니다. 그는 우리의 모든 죄를 알았고 지셨으며, 그에 대한 모든 율법의 요구를 그의 죽음으로 처리했습니다. 당신은 이 복된 소식을 믿으신 적이 있습니까? 없으시면, 믿으십시오.
한 번 더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당신은 죄를 범했고 그에 대한 형벌은 사형이라고 가정합시다.
당신은 체포되고 재판을 받아 교수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사형집행일 아침 단두대로 끌려갈 때 놀랍게도 당신에게 사형을 언도한 판사가 나타납니다.
사형집행자가 밧줄을 당신의 목에 둘러매려고 접근할 때 그 판사가 앞으로 나와서 그 집행자에게 말합니다
"나는 이 사람을 그의 범죄의 결과인 사형 집행에서 구원하기 의해 왔다.
나는 그의 범죄의 책임을 지고 그 대신 죽음으로써 그에 대한 법률의 모든 요구를 만족시키겠다. 그 대신 내 목에 밧줄을 매달라." 그와 같은 교환이 일어날 수 있다면, 밧줄은 그 판사의 목에 매어지고 그가 당신 대신 매달립니다.
그 판사가 한 일을 당신은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그 판사는 나를 사랑했습니다.
나에게는 그럴 만한 가치가 없는데도 나의 죄를 지고 나를 위해서 죽었고, 이렇게 해서 나의 범죄로 인한 형벌에서 나를 구했습니다." 이것이 예수가 갈보리에서 우리를 위해 한 일입니다.
우리는 우리 죄 속에서 죽어야만 하고, 하나닝이 계신 곳에서 영원히 추방 받았어야만 했지만, 창조주시며 온 세상의 재판장인 그리스도가 우리의 대속물이 되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죽음으로써 그 죄를 해결했으며, 승리로 부활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용서받고, 자녀로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서 그는 십자가 위에 달리고 버림받았습니다. 그는 우리가 받아야 할 모든 형벌을 대신해 받았고 우리는 자유로워졌습니다.
당신은 거룩한 구주께 당신을 위해서 한 일로 인해서 감사해 본 적이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해 하나님께 김사하노라'고 했고 하나님의 아드님께서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기 몸을 버렸다'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모든 잃어버린 죄인들에게 어떻게 구원이 가능하게 했는가를 분명히 보여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하나님은 그 아들을 구주로 세상에 보냄으로 그의 사랑을 모두에게 나타냈고, 그리스도는 십자가 상에서의 사역과 승리의 부활로써 모든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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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회개하고 죄에서 돌아서십시오.
성경 전체는 우리가 회개하고 죄에서 돌아오면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누구든지 아무라도 어떤 사람이라도」그리스도께 나아오면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성경은 죄책감에서 구원받는다고 약속했습니다.로마서 3장23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한 말씀대로 우리는 다 범죄했고 죄책감을 가지고 있습니다.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모든 사람은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죄보다 더 크셔서 그리스도께 나아오기만 하면 우리 죄를 용서해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의롭다고 해주십니다.마치 죄를 하나도 범치 않은 것같이 의롭게 봐주십니다.
성경은 죄의 권세에서 구원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1865년 1월 1일에 아브라함 링컨이 3백만명의 노예를 해방시켰으나 예수님은 온 세상 만민을 죄의 사슬에서 해방시킬 수가 있습니다.
성경은 죄의 형벌에서 구원하신다고 약속했습니다.죄의 형벌이란 무엇입니까?
요한계시록 21장 8절을 보면 그것은 너무나 무서운 것입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지옥)이 바로 죄인들과 믿지않는 자들이 받을 형벌이요,영원한 운명입니다.
어떻게 지옥갈 운명에서 구원받을 수 있겠습니까? 성경은 거듭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어느날 밤 러시아의 한 병사가 테이블 앞에 앉아서 자기가 빚진 목록을 다 쓴뒤 그 아래에 『누가 이 모든 빚을 갚아 줄까?』하고 쓴 종이쪽지를 써놓고는 잠이 들었습니다.
그날밤 황제가 지나가다가 그 쪽지를 읽고는 『나,러시아의 황제 니콜라스가 갚아 준다』고 써놓고 갔습니다.그 병사가 깨어나 그 글을 보고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여러분이 일평생 지은 죄를 다 낱낱이 기록해서 물어 보십시오.『누가 이 모든 죄의 값을 치러 주실까?』 그러면 십자가로부터 해답이 들려 옵니다.『나,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나의 피로 이미 다 갚았노라』고.
성경은 자유함과 아들됨과 썩지 아니할 유업을 얻는 구원을 약속하셨습니다.주의 이름을 부를때 우리에게 참 자유를 주시고 하늘과 땅의 모든 부요함을 가지신 하나님의 가족이 되어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됩니다.
이 세상에는 특정한 사람만 가입되는 클럽이 있고,어느 정도의 재산을 가진 사람들만 집을 짓고 살수 있는 동네가 있고 어떤 단체에 소속된 사람만이 묻힐 수 있는 묘지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천국 문을 활짝 열어놓고 『누구든지 죄를 회개하고 나를 믿는 자는 들어올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어떤 사람은 『나는 크리스천이 되고 싶지만,용서 받을 수 없는 죄를 지어서 소망이 없습니다』라고 합니다.
그 사람이야말로 구원받기에 합당한 자리에 있는 사람이며 준비가 된 사람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해 주신다고 성경은 분명하게 약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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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죽음과 심판의 준비는 '바로 지금'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하나님의 말씀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 중요한 단어가 둘이 나옵니다. 첫째 단어는 죽음입니다.죽음은 확실한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힘도 죽음의 손을 멈추게 할 수 없습니다.의술이 아무리 발달했어도 한사람도 죽음에서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돈을 다 가지고도 죽음의 때가 올때 죽음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착함도 죽음을 막지 못합니다.다윗은 『죽음과 나 사이는 한 발자욱 거리밖에 안된다』고 말했습니다.두번째 단어는 심판입니다.이 세상에서는 죄를 숨기고 피하여 다닐 수도 있고 구원에 대해서 무관심할 수도 있고 그리스도께 나아오라는 목사님의 호소를 비웃을 수도 있지만 그러나 어느날 하나님을 대면해 일생의 죄를 다 내놓고 계산할 때가 반드시 옵니다.
성경은 두가지 심판을 말하고 있습니다.첫째는 크리스천들의 심판입니다.이 심판은 구원이냐 멸망이냐를 결정하는 심판이 아닙니다.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했으면 이미 구원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그러므로 이 심판은 구원받느냐 못받느냐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성도가 지상에 사는 동안 행한 일에 대한 심판을 하는 것입니다.즉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한 모든 것에 대해서 상급이 주어질 것입니다.구원받지 못할 이들을 위한 심판은 『크고 흰 보좌의 심판』이라고 합니다.그 자리에서는 사람들은 천국이냐 지옥이냐를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모두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왜냐하면 예수님 믿기를 거절했기 때문입니다.오직 지상에서 행한 모든 행실에 대해서 어느정도의 형벌을 받느냐를 결정하는 심판입니다.하나님은 누구나 어느날 심판에 직면해야 한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하나님 만날 준비를 하라』고 말씀하십니다.어떻게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해야 될까요? 세상은 『착하게 살면 천국에 간다』고 할 것입니다.또는 『다른 사람을 바르게 대하라.네돈을 남에게 주라.빚을 갚으라.그러면 천국에 간다』고 세상은 말할 것입니다.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하나님은 우리가 반드시 그리스도를 통해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우리가 진심으로 죄를 회개하고 성실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의지해야 하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죽음과 심판이 확실하기 때문에 우리는 준비가 필요한 것입니다.언제 준비할까요? 그때는 바로 「지금」입니다.많은 나라에 가 본 경험을 갖고 있던 영국군장교가 어느날 친구들이 모여서 경험담을 말해달라고 해서 여러나라에서 본 것들을 얘기 해주고 나서 그의 말에 홀린 청중에게 말하기를,『나는 이것들보다 더 놀라운 일을 기대하고 있습니다.그것은 내가 죽어서 주님앞에 선후 5분 후에 일어날 일입니다』라고 했습니다.여러분은 죽은 후에 어떤일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까? <국민일보 미션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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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임금님의 초대장
대통령이 주최한 연회에 초대된 적이 있으신가요?
없으시다구요?
그보다 더한 영광이 없겠다구요?
설마 널뛰기하는 주식시세 살피느라고, 데이트 약속 때문에,
등산가야하기 때문에, 박사논문 준비중이라서
못 가겠노라고 거절하지는 않으시겠지요?
여기 잔치를 베풀고 당신을 초대하시는 임금님이 있습니다.
온 세상의 왕이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위해 한 잔치를 계획하셨습니다.
수천 년 인간 역사의 모든 축제와 카니발,
연회와 파티, 웃음과 향연들을 다 합쳐도
그 축제의 경이와 영광과 기쁨과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이 잔치를 위해 하나님은 비싼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이지요.
초대받은 모든 이들이 주저함 없이 참여해서
영원토록 그 잔치를 즐길 수 있도록.
당신이 스스로 아무 자격이 없다고 느끼거나,
아무리 예수님과 멀리 있어도
이 초대는 바로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당신의 영혼을 위해 준비된 잔치가 있습니다.
당신에게 보내시는 초대장입니다.
와서 예수 믿고 구원받으라는 하늘 임금님의 초대장입니다.
그러므로 가까운 교회에 출석하셔셔 신앙 생활하시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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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천국이 보이십니까?
우리 모두는
보이지 않는 영혼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우리의 영혼은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육체가
죽은 후에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천국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지옥으로,
그 영혼은 들어갑니다.
천국과 지옥은
지금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반드시 존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당신은 천국을 소유하게 됩니다.
예수 믿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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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창조에 대한 성경의 기사는 창조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공동의 사역이었음을 선포합니다. 성자인 예수 그리스도는 이미 영원 전에 성부, 성령님과 함께 계셨고 삼위의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그리고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계획도 삼위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2000년전 유대 땅에 내려오셨을 때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저 한 아기가,
그저 한 인간이 태어난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영원 전부터 계셨던 예수님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예수님께서 베푸신 수많은 기적들도 그들의 눈에는 인간의 마술이나 속임수로 보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능력이 하나님의 능력임을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신 그분은 죽음에서 부활하셔서 구원을 이루셨고
지금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십니다.
이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신 분,
창조물인 인간을 사랑하시어 구원하시기 위하여 육체를 입으신 분,
그리고 그 인간에 의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분
그러나 부활하셔서 하늘로 올라 가셨으며 장차 심판하러 다시 오실 그 분, 예수님은 하나
님이십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여러분의 구원자로 받아들이세요.
그러면 천국이 여러분에게 선물로 주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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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삶에 지치진 않으셨나요?
눈망울 초롱초롱한 일학년 사십여명과 함께 시작한 새학기
유난히 힘겹게 느껴지는 삼월입니다.
집에 돌아오면 팔 한 짝도 들어올리지 못할 만큼 지치게 됩니다.
재작년보다 작년 새학기가 더 힘겨웠고, 작년보다는 올해가,
올해보다는 내년이 더 힘에 부칠 것 같습니다.
한 해 한 해 몸이 다르다고 하던 선배들의 말이
이제야 온전히 이해가 됩니다.
생각해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의 육신이 연약해 지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건만 괜시리 마음도 덩달아 약해지더군요.
사람의 육신이 도무지 자랑거리가 되지 못할 뿐 아니라
신뢰할 만한 것은 더더욱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비록 힘겨운 한 달이었지만
낙심하지 않고 보낼 수 있었던 비밀을 털어놓고 싶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 안에 있는 생명의 양식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지요.
사람이 밥만 먹고사는 것이 아니라 그 입의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그 분의 말씀은 나의 지친 영혼에 쉴만한 물가가 되며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필요한 지도서가 되기도 합니다.
상한 마음을 치료하는 좋은 약이며
내게 맡기신 아이들을 사랑하게 하는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을 믿으세요
삶에 지친 여러분의 발걸음을 힘차게 하실
생명의 양식을 먹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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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구원은 모든 사람들의 의지에 달린 것이다
예수님만 구원이 있습니다
구원은 모든 사람들의 의지에 달린 것이다 (행10:43,롬10:13,계22:17).
인간은 자신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것인지 또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인지에
대한 선택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선물이신 예수 그리스도 믿어야합니다'
예수님을 (엡2:8)를 주셨으니 예수님을 믿는가? 아니면 거절하느냐는
본인의 결단의 순종과 개인의 믿음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으시고 구원을 받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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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천국과 지옥
82세로 세상을 떠나신 존 뉴턴 목사님은 “내가 이 세상을 떠나 천국에 가면 세 가지 일로 놀랄 것이다. 첫째는 예상치 못했던 분이 그곳에 있는 것을 보고 놀랄 것이며 둘째는 예상했던 분들이 천국에 없다는 사실에 대해 놀랄 것이며 셋째로 내가 그곳에 가게된 것에 대해서 놀랄 것이다”고 했습니다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성경은 너무나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건만 오늘의 강단에서는 천국과 지옥이야기는 사라져가고 텔레비전 연속극이나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나 듣고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에 관한 설교는 염세적인 설교가 아닙니다. 무식한 설교도 아닙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겐 매력 없고 인기 없는 설교일 수 있지만 천국과 지옥에 관한 설교는 성경적인 설교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9절에는 “만일 그리스도 안에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고 천국이 없다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부자와 거지 나사로에 대한 말씀인데 이 말씀에 핵심은 천국과 지옥에 관해서 예수님 자신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천국과 지옥은 인간이 죽으면 즉시 가는 곳입니다. 거지 나사로와 부자 두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산 것은 하늘과 땅 차이만큼 다르나 죽음의 순간만은 똑같은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거지 나사로는 죽었다는 말만 있고 부자에겐 장사되었다고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장례식이 없었든 아무리 굉장했든 간에 그것이 그리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 두 사람 모두 죽음 앞에는 싸늘한 시체만 남을 뿐입니다.
그런데 본문 말씀은 거지 나사로가 죽자 천사가 임재하였습니다. 우리도 예수 잘 믿다가 이 세상 떠나면 천사들이 와서 우리를 하나님이 계신 천국으로 안내해주실 줄 믿습니다.
둘째로, 천국과 지옥생활에서도 의식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본문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가는 천국 생활은 기쁨이요 감사며 그저 찬송하고 또 찬송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지옥에서는 고통속에서 신음하고 괴로워합니다. 참으로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셋째로,천국과 지옥은 이 세상과는 확실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본문 25절에 “아버지가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예수를 믿는 자는 구원받을 것이고 믿지 않는 자는 심판을 받습니다. /김진호 목사(도봉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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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구세주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구세주이십니다.
죄인들을 위해 사랑으로 대하시는 주인이십니다.
진정으로 죄인인 인간의 주인이 될 수 있는 분은 십자가 죽음으로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구세주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죄 용서를 받으십시오.
예수님을 영접하여 신자가 되십시오.
예수님을 여러분의 구세주로 모십시오.
예수님을 통한 구원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로다. (신약성경 요한복음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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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세상 쉬운 것이 천국 가는 길!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예수 그리스도)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은 그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어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우리의 죄값을 감당케 하시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십자가 다리를 놓아 지옥에 갈 수밖에 없었던 죄인인 우리를 의인으로 만들어 천국에 가게 하셨습니다.
1. 죄인은 지옥행! 의인은 천국행!
죄인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 불에 떨어지게 되고, 의인은 생로병사가 없는 영원한 천국에 가게 됩니다.
2. 모든 사람은 죄인!
모든 인간은 죄인이므로 지옥에 가게 됩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선행, 철학 등 자기 힘으로 천국에 가려고 하나 결국은 허사입니다.
천국은 결코 선행, 지식 등으로는 갈 수 없습니다.
3. 죄인이 의인되는 길
· 예수의 피를 믿으면 모든 죄인은 의인이 되어 천국에 갑니다.
' 피 흘림 없이는 죄 사함이 없느니라. '
·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모든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습니다. 착한 일을 많이 했다고 천국에 가는 것은 아니며, 오직 구원의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입니다.
Q : 당신의 생애세서 돈, 명예, 출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A : 영원한 내세(천국)를 준비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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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지옥은 존재하는가?
프랑스의 무신론자 볼테르는 지옥을 없앨 수 있다는 사람에게 축하한다면서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무신론자 리치(M.F.Rich)는 영원히 끔찍한 지옥에 가는 것보다 난로 위에서 백만년 동안 고통받는 것이 더 낫다고 지옥의 무서움을 토로했습니다. 지옥! 말만 들어도 숨이 막히고 현기증이 납니다
지옥은 어떤 곳인가?
지옥은 한마디로 말한다면 표현이 불가능한 고통의 현장입니다. 천국의 아름다움을 한마디로 나타낼 수 없듯이 지옥의 처참한 고통도 인간의 언어로서는 표현할 수 없습니다. 영적으로 직접 체험해 보지 않고서는 지옥을 말할 수 없겠지만 성경이 계시한 지옥에 대한 말씀을 통해 간략하게나마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① 지옥은 의식이 또렷한 곳입니다.
지옥은 고통을 느낄 수 없는 의식불명의 상태나 정신이 혼미한 영혼들의 거처가 아니라, 이 세상에서보다 더 처절하게 슬픔과 절망을 느끼고 정신이 또렷한 상태에서 아픔과 고통을 더욱 생생하게 느끼는 곳입니다.(눅 16:23,24).
② 지옥은 고통스러운 곳입니다.
지옥에서 당하는 고통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는 각 사람에게 행한 대로 심판을 내리고 지옥에 던진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계20:11~15, 계21:8). 불교에서는 팔열지옥과 팔한지옥 등 136종의 지옥이 있다고 가르치지만 성경에는 그런 말이 없고 단지 각 사람에게 행한 대로 심판하여 불못에 던진다고 하였습니다. 물론 행한 대로 보응 하여 심판을 내릴 때 고통의 강도는 틀리겠으나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다'(마 22:13)는 말로 미루어 그 것은 사람의 상상을 불허하는 곳으로 여겨집니다.'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 하여 저희로 이 고통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눅 16:24 ~ 28).
③ 지옥은 어두운 곳입니다. 지옥은 어둡고 음산한 것이 특징입니다. (마8:12).
여기저기서 타고 있는 유황불에 비쳐오는 어스름한 불빛 외에는 빛이라고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빛을 싫어하고 어두움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지옥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8:12)
④ 지옥은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 곳입니다.
지옥에서는 죽음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곳은 영원히 살아서 고통을 받는 곳입니다.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막9:48,49)
⑤ 지옥은 그리스도인들과 영원히 분리되는 곳입니다.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나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눅13:28)'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눅16:26)
⑥ 지옥은 풀려 날 희망이 전혀 없는 곳입니다.
지옥에 가는 것은 '영원한 심판'을 받아 가는 것이기 때문에 일단 지옥에 들어 가면 다시는 나오지 못합니다. '영벌'이란 말이 그것을 입증해 줍니다 (마25:46) 성경에는 구원을 얻은 사람은 죽을 때 낙원 (눅23:43)에 가며,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죽으면 영혼이 음부(눅 16:23)로 간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심판의 부활로 부활할 때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의 영혼이 음부에서 나오고 육체가 바다에서, 땅에서, 무덤에서 부활되어 재결합되어 심판을 받고 불못에 덜어지는데 이곳이 지옥입니다. 예수님은 지옥에는 영혼뿐 아니라 몸도 같이 가게 됨을 말씀하셨습니다 (마 10:28)
당신은 하나님 만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예수님을 믿어야 지옥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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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성경이란 무엇인가?
각기 다른 시대, 다른 직업을 가진 40명의 기자들에 의해 1,600년에 걸쳐 기록된 책.그러나 제1권에서 66권까지 한 사람이 쓴 듯 일관된 책.모든 문학 형태 즉 산문, 시, 소설, 신화, 전기, 과학, 역사로 표현되는 모든 있을 법한 주제들을 포괄하는 책..전세계 2300여 언어로 번역되고 출판된 책.인류 역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바로 성경은 그 자체에 붙는 수식어만 보아도 충분히 읽어 볼 만한 책이다.
31,173절, 774,746단어, 3,567,180글자(흠정역 성경 기준)를 가진 66권을 만들기 위해서 1,551장소에서 2,930명을 등장시켜서 20가지 직업을 가지고, 10개국에서 살며, 3개 언어를 사용하는 40명의 독자적인 기자들이 1,600년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일괄적으로 지도한 편집자나 출판사가 없었다. 성경이 초자연적인 책이라는 한 증거는 기자, 문화, 표현 형태의 광범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놀라운 통일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줄거리가 무엇인가?
성경은 시종일관 하나의 완전한 주요 줄거리를 갖고 있다. 거룩하신 사랑의 하나님을 거역해서 한 사악한 원수가 에덴의 완전한 환경을 더럽힌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형태로 선악이 대립하며 때로는 악이 승리할 것같이 기세를 떨치기도 한다. 주인공의 승리를 바라는 소망은 더욱 간절해지고, 마침내 그 분이 임하셔서 악을 이기신다. 그 주인공은 영구히 그 전쟁을 종결짓기 위해 큰 백마를 타고 돌아올 것을 약속하신다. 더욱 많은 영적 전쟁이 있은 후, 하나님은 완전한 처소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고 있는 자들과 함께 결국 승리하신다.
제 1권부터 제 66권까지 성경전서는 다음과 같이 일관성 있게 말씀하신다.
모든 생명과 선의 근원이신 유일하시고 신실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
이상적인 상태에서조차 하나님께 충성하지 못하는 무능력한 인간
인간을 자신과의 관계로 이끌기 위해 한결같이 노력하시는 하나님
어둠의 권세를 이끄는 악한 권세자 믿음으로 받은 은사인, 죄와 사망으로부터의 하나님의 구원 예수 그리스도.
구약은 그리스도의 강림을 고대하고
신약은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음, 부활 그리고 그 분의 재림에 대한 예언을 보고한다.
오직 하나님만이 이처럼 일관성 있고 완전한 책을 인간에게 주실 수 있었다.
어느 부분을 읽을지라도, 당신은 하나님의 계획,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 성령의 능력과 마주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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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가증하고 부패한 인생
“사람이 무엇이관대 깨끗하겠느냐 여인에게서 난 자가 무엇이관대 의롭겠느냐 하나님은 그 거룩한 자들을 믿지 아니 하시나니 하늘이라도 그의 보시기에 부정하거든 하물며 악을 짓기를 물 마심 같이 하는 가증하고 부패한 사람이겠느냐”(욥기 15:14∼16).
파란 하늘과 죄악으로 가득 찬 사람의 마음을 비교해 봅시다. 하늘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깨끗하지 못한데, 하물며 악을 짓기를 물 마심 같이 하는 가증하고 부패한 사람이 어찌 하나님 앞에 깨끗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의 모든 종교는 사람에게 선행을 가르칩니다. 착한 일 많이 하면 곧 선을 많이 쌓으면(적선:積善) 복 받고 극락에도 간다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성경은 사람에게 선행을 하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악행을 가르친다는 말입니까? 그런 것은 물론 아닙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무엇을 말합니까? 선행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에게는 참된 의미에서 선을 행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선을 행하기 이전에 인간은 이미 진정한 의미의 선을 행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 태어나면서부터 죄인이어서 마음은 완전히 타락되었으므로 그 더러운 마음으로부터 선은 나올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나무로 말하자면 나쁜 나무입니다. 나쁜 나무보고 좋은 열매 맺으라고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성경은 인간에게 먼저 선한 일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 전에 인간은 하나님의 기준에서 볼 때 선을 행할 수 없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반박하며 “아니 사람이 죄만 짓나, 선한 일도 하지 않는가”라고 말합니다. 인간이 행하는 선이 사람이 볼 때는 선한 것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사람 볼 때 선일 뿐 하나님 보실 때는 선이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한문에 사람 인(人) 자 옆에 할 위(爲)자를 쓰면 거짓 위(僞=人+爲) 자입니다. 사람이 하는 선은 위선(僞善), 즉 거짓 선이라는 것입니다. 선은 선인데 죄가 발린 선입니다. 그것으로는 하나님 앞에 설 수가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그러므로 먼저 구원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죄 가운데서 먼저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생명에 접붙임 받아야 합니다. 나쁜 나무에다 거름을 많이 주고 물도 많이 주면서 좋은 열매를 맺으라고 공을 들일 것이 아니라, 좋은 나무에 접을 붙이라는 말입니다. 좋은 나무에 접 붙이면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구원받을 때, 거듭날 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 용서함을 받는 동시에 하나님의 생명에 접 붙임을 받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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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영혼이 돌아갈 곳
'영혼은 과연 어디로 갈까요?' 참으로 허황(虛荒)되고 막연한 생각이라고 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나'는 이 글을 읽고 있는 이 현실 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분명히 나는 그 어디에서부터인가 왔다는 이 사실은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어디에서부터 왔는지에 대하여는 알 수 없기 때문에 죽은 후에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알 필요가 없다는 사람이 참 많은 듯합니다.
그리고 쉽게 알 수 없는 일이라며 '그걸 알 수 있다면 내가 당장 유명한 철학자가 되게?' 혹은 '죽으면 그만이지', '모두들 이렇게 살아가고 있으니까 나도 그냥 이렇게 사는 거야'. 천국이 어디 있고 지옥이 어디 있어? 당신은 가 봤어?'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는 말이 있습니다. 닭이 없는 데 달걀이 생겨날 수 없고 달걀이 없는데 닭이 어떻게 생겨날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말은 해결할 수 없는, 팽팽히 맞선 어떤 논쟁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합니다. 어느 것이 먼저였느냐에 대해서 아무도 알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느 것이 먼저냐에 대해서는 조금만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입니다. 닭이 먼저 라면 그야 당연히 달걀을 낳을 수 있지만 달걀이 먼저라면 달걀은 절대로 닭이 될 수가 없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즉 달걀은 반드시 닭이 적당한 온도에서 적당한 시간 동안 품어 주어야만 부화가 되고 병아리가 되는 까닭이기 때문입니다. 그냥 두면 썩어 버리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닭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지구상에 있는 모든 종류의 동물의 최초의 조상들은 모두가 한 쌍의 똑같은 모양의 성숙된 어미들이 먼저 생겨나지 않고는 지금의 동물 후손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최초의 어미들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고는 생겨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최초의 어미들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고는 생겨날 수가 없으므로 우리 인간들은 그 만든 자를 '창조주' 또는 '조물주'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창조주께서 흙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넣고 만물의 영장으로서 자연을 다스리며 살아가도록 하심으로 이 세상의 역사(歷史)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역사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을 것이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진행 과정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역사의 진행 과정 속에서 이 순간 살고 있으며 그 목적이 모두 이루어지면 창조의 대상은 영원 속으로 들어갑니다. 결국 인간이 죽으면 육체는 흙으로 되돌아가고 그 영(靈)은 창조주께서 도로 찾아가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 분 '창조주'께서는 '영혼'을 사람의 육체에 넣었다가 도로 찾으시는 것일까요? 거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인간은 그 이유를 반드시 알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 이유를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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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사람은 영생을 얻으러 세상에 왔음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전도서 3: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때를 따라 아름답게 지으셨는데 봄에는 꽃이 피고, 여름이 되면 시원한 수박이나 참외 같은 과일이 있습니다. 여름 과일은 열량이 적으며, 사람이 땀을 많이 흘리므로 수분을 공급받으라고 수박 같은 과일 속에 물기도 많습니다. 그리고 부패하기도 쉬우므로 빨리 먹어 없애야 합니다.
가을의 열매는 겨울에 두고 먹을 수 있도록 저장이 가능하며 밤 호도 같은 것도 있으며 겨울양식을 주십니다. 그것이 떨어지면 또 이듬해에 새 것을 주십니다. 삼라만상의 모든 것이 이치에 합당하게 잘 만드신 것입니다.
모든 것을 때를 따라 아름답게 지으신 하나님이 사람에게만은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는데, 무엇이든지 사모하는 마음이 있을 때는 그 대상이 있도록 되어있습니다.
목이 마르면 갈증을 해소하는 물이 있고 배가 고프면 먹을 것이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태어나면 젖을 찾습니다.
젖이 있는지도 모르고, 젖 빠는 방법은 배우지 않았지만 젖을 찾습니다.
어린아이에게 젖을 빨아먹고 싶어하는 마음을 하나님이 주셨으며 그 어린 아이가 엄마 품에 편안히 안겨 빨 수 있는 젖을 엄마 가슴에 달아주셨습니다. 온도와 양분과 맛도 그 아이에게 가장 적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같은 엄마 젖이지만 금방 낳은 아이와 백일 된 아이, 열 달된 아이가 먹는 젖의 영양이 각각 다르다는 연구보고가 발표되었습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솜씨입니다.
사춘기가 되면 이성(異性)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고 짝이 있습니다.
사모하는 마음이 있을 때에 반드시 대상이 있는 것입니다. 마음의 요구가 있으면 그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대상이 있습니다.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람에게는 영원히 살 수 있는 영이 있고, 영원한 세계가 있고, 영원한 진리와 영원한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영원하고 완전하고 거룩한 그 세계,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주시려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셨고 영원한 것을 추구할 수 있는 마음도 주신 것입니다. “영원히 영원히 그대와 살고 싶소”라는 노래가 있듯이 사람 속에는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려는 욕구가 있습니다.
사람은 영생을 갈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무엇을 하러 왔습니까?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으러 왔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왜 오셨습니까? 인간 세계에서 영원한 하나님께로 나가는 길을 열어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 14:6)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생으로 나아가는 길, 그 길을 가르쳐 주는 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이 성경에서 진리를 깨달으면 생명입니다. 우리는 그 길을 찾으러, 그 진리를 깨달으러, 그 영원한 생명을 얻으러 왔습니다. 다른 것은 혹 잃어버리고 양보할지라도 주님이 주시고자 하시는 영원한 생명은 잃지 말아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아마 앞으로 몇 십년 안쪽에 이 세상에 한사람도 없게 됩니다. 이 세상을 떠나 영원한 곳에 가 있게 될 것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브리서 9:27).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지만 영혼은 하나님을 만나서 심판을 받고 그 다음에 영원한 곳으로 갑니다. 천국도 영원한 곳이고 지옥도 영원한 곳입니다.
천국은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영광을 누리는 곳이고 지옥은 세세토록 마귀와 함께 고통 받는 곳입니다. 빛과 어두움, 생명과 죽음, 진리와 거짓, 행복과 불행이 영원히 나눠지는 그 두 곳 중 한 곳으로 가야 합니다. 곧 주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얻음으로 천국에 가든지 영원한 생명을 잃음으로 지옥에 가든지 둘 중의 하나를 결정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디로 가시렵니까! 여러분들은 영원을 어디서 보내시렵니까!
이 육신이 몇 십년 사는 것을 위해서는 그렇게 애쓰고 고생하고 준비하고 그것은 당연한 줄 알면서 왜 영혼을 위해서는 준비하지 않습니까!
이 세상의 몇 십년은 영원한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 과정입니다. 오늘 이후에 내일이 있듯이 금세 후에 내세가 있습니다. 오늘은 내일을 위한 준비입니다. 영원한 세계로 나아가는 길을 발견하러 왔고 그 길을 발견한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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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인간의 의는 더러운 옷과 같음
“대저 우리는 다 부정(不淨)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義)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 가나이다”(이사야 64:6).
우리는 다 부정한 자, 즉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사람이 죄가 더럽다는 것은 다 알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인간의 의(義)도 더럽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인간의 의(義)조차도 하나님 보시기엔 죄와 마찬가지로 더럽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행하는 선, 인간이 행하는 의로운 행동도 하나님 보실 때는 옷은 옷인데 더러운 옷입니다. 그 더러운 옷으로는 자기의 부끄러움을 가릴 수 없습니다.
사람 속에는 타락된 마음, 양심의 부끄러움,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한 죄책감 등이 있습니다. 그래서 선한 일을 하면 죄에 대한 양심의 부끄러움과 가책 감이 없어질 줄 알지만, 그것은 더러운 사람이 더러운 걸레 조각을 걸치고 자기 수치를 가려보려고 하는 것과 같이 쓸 데 없는 짓입니다.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과 같아서 결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가리지 못합니다.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창세기 3장에 보면,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고 선악과(善惡果)를 따먹고 난 후, 벌거벗은 수치를 발견하고 무화과 잎을 엮어 치마를 만들어 입은 내용이 나옵니다.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창3:7). 아담, 하와 두 사람 밖에 없었지만 옷을 만들어 입었습니다. 인간이 최초로 만든 옷은 동물들에게 자신들의 벌거벗은 모습이 부끄러워서도 또 추워서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죄에 대한 수치를 가려보려고 옷을 만든 것입니다.
날이 서늘할 때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부르셨고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네가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시자, 아담이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창세기 3:8-10).
아담과 하와는 무화과나무 잎으로 만든 옷을 입고 있었는데 벗었다고 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낮에 선악과를 따먹고 무화과나무 잎사귀로 치마를 만들어 입었습니다. 그런데 낮 햇볕에 금방 잎이 마른 데다가, 왔다 갔다 하면서 앉았다 일어섰다 몇 번 하니까 나뭇잎 옷이 다 부서져 버렸습니다. 저녁 때 하나님이 부르실 때쯤 해서는 줄기만 앙상하게 남았었을 것입니다. 입기는 입었지만 실은 벗은 것입니다. 인간이 행하는 모든 선행과 열심은 마치 무화과 잎사귀로 치마를 만들어 자기 수치를 가리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무화과가 옷이 되지 못했다는 것은 인간이 행하는 윤리 도덕과 종교생활, 그리고 인간의 모든 의로운 행동들이 자기의 죄에 대한 부끄러움을 덮지 못함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우리의 선행과 열심으로도 우리의 죄악을 가릴 수 없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지옥까지 몰아갑니다. 이 운명을 아무도 피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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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부자가 지옥에 가서 깨달은 것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누가복음 16장 31절)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4복음서에는 천국에 대하여 114번 지옥에 대하여 31번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 하나님의 말씀에 지옥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까?
도로의 신호등에 빨간 불이 있는 것은 가서는 안 된다는 경고입니다.
그 신호를 무시하고 가면 사고가 나기 쉽습니다.
특히 철길 건널목에서 빨간 신호를 무시하고 가면 대형사고가 일어납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에 지옥이 기록되어 있는 것은 지옥에 가서는 안 된다는 경고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자 중에 한 사람도 지옥에 가지 마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그러면 본문의 부자가 지옥에 가서 깨달은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진리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평소에 부자는 먹고 마시고 쾌락을 추구하며 인생을 즐기며 살아갈 줄만 알았지 자신에게 죽음이 찾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막상 죽어 지옥에 떨어져서야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진리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요 죄의 값으로 죽고 심판 받아 지옥 고통 받는 곳에 간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은 사람들의 기분을 맞추어 주는 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단지 선하게 살라는 종교나 도덕책이 아닙니다.
성경을 기록한 목적은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20:31)
인생이 반드시 알아야 할 사실은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는 사실입니다.(히브리서 9장 27절)
부자도, 가난한 자도, 많이 배운 자도, 못 배운 자도, 권력자도, 백성도 사람은 다 죽습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의학기술이 발달해도 다 죽습니다. 천지는 변해도 영원히 변치 아니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공동묘지에 서 있는 수많은 비석들은 너도 반드시 죽는다라고 무언의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길거리에서 장례차를 보시거든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되겠구나' 라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신문이나 TV, 뉴스시간에 사고로 사람들이 죽었다는 기사가 나거든 '나도 언젠가는 죽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나에게도 죽음이 찾아온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본문의 부자처럼 지옥에 떨어져서야 성경이 진리라고 깨달은 어리석은 자가 없기를 바랍니다.
둘째, 부자가 지옥에 가서 깨달은 것은 죽음 후에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을 기억하라(925절) 너는 살았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언제까지나 이 땅에서 살 것처럼 먹고 마시고 쾌락을 즐기면서 살아온 너의 죄 때문에 지금 네가 이 지옥에서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사랑하는 여러분!
마귀사단에게 속지 마십시오.
죽음이 결코 끝이 아닙니다.
죽음 후에 반드시 심판이 있습니다.
본문의 부자는 살아있을 때는 쾌락에 취하여 죽은 후에 심판이 있다는 전도자들의 말을 묵살하고
지옥 고통 속에 빠져서야 뒤늦게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깨달았지만 이미 때는 너무 늦었습니다.
그가 세상에 살 때는 예수 믿는 것과 안 믿는 것이 이렇게 엄청난 차이가 날줄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믿는 것과 안 믿는 것은 자유가 아닙니다.
물론 선택은 자유이지만 결과는 천국과 지옥의 차이입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한 사람도 지옥을 택하는 자가 없기를 바랍니다.
셋째, 부자가 지옥에 가서 깨달은 것은 마음대로 다닐 수도 없고 그 어떤 소원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23~26절)
그가 세상에 있을 때는 마음대로 다녔습니다. 맛있는 음식집, 경치 좋은 곳, 쾌락을 추구하는 곳으로...... 그러나 지옥에 들어가서는 한 발짝도 거기서 나올 수 없었습니다.
또한 얼마나 불꽃가운데 고통스러웠던지 물 한 방울을 소원했으나 그것 마져 거절당했습니다.
단테의 신곡에 보면 지옥문 위에 이런 문구가 쓰여 있습니다.
너의 모든 희망을 버려라
지옥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곳인지 마가복음 9장 43~49절에 잘 설명해 놓았습니다. 손발을 찍어 버리고 눈을 뽑아 버리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지옥, 죽을 수도 없는 지옥에 한 사람도 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넷째, 부자는 지옥에 가서야 복음 전도자가 얼마나 귀중한가를 깨달았습니다.(27~31절)
지옥에 간 부자는 자기를 위하여 제사를 지내 달라고 부탁한 것이 아니라 세상에 살고 있는
내 형제들에게 이 고통받는 지옥에 오지 않도록 전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의 것 다 가져도 지옥에 오면 아무 소용이 없다.
학벌도, 권세도, 명예도, 부도 지옥에 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제발 예수 믿고 이 고통받는 지옥에 오지 말 게 해 달라(마태복음 16장26절)
사랑하는 여러분
전도자들의 말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죽음이 분명 있습니다. 죽음 후에 심판이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이 분명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복음을 증거 해 주시는 분들을 귀하게 여기십시다.
그리고 지옥에 가서야 깨달은 어리석은 부자가 되지 마시고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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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노아의 때와 같으리라
톨스토이(Tolstoy)의『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천사 하나가 하나님께 죄를 짖고 벌을 받아 땅으로 떨어져서 미하일이라는 이름으로 구둣가게의 점원 일을 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털외투를 입은 건장한 신사 한 분이 구둣가게로 들어와서 보자기로 싼 물건을 내밀었습니다. "이건 20루불이나 준 아주 귀중한 가죽인데, 이것으로 내 발에 꼭 맞는 구두를 만들 수 있겠나?"
덩치 큰 신사에게서 가죽을 받아 펴본 주인 세몬은 "오, 정말 훌륭한 가죽이군요. 이렇게 좋은 가죽은 처음입니다. 이것으로 손님의 발에 꼭 맞는 구두를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신사는 엄숙하게 다시 말합니다. "함부로 쉽게 대답하는 게 아냐, 만일 내 발에 맞지 않거나 1년쯤 뒤에 구두가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당신은 감옥에 갈 것이고 벌금을 내게 될 꺼야. 그러니 구두 만든 삯은 내가 1년을 신어본 뒤에 줄 테니 그리 알게."
옆에서 지켜보던 미하일은 일을 맡아도 좋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빙그레 웃었습니다.
신사가 나간 뒤 미하일은 곧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미하일은 가죽을 펴서 구두를 만든 것이 아니라 구멍을 크게 뚫어서 슬리퍼 한 켤레를 만들었습니다.
밖에 나갔다 돌아온 주인 세몬은 그 슬리퍼를 보고 깜짝 놀라면서 "자네, 큰 일을 저질렀네. 그것은 구두가 아니라 슬리퍼가 아닌가. 이제 나는 망했구나."
탄식을 하는데 그때 누군가 급히 가게로 뛰어들었습니다. "조금 전에 맡긴 구두 때문에 왔는데요. 실은 우리 주인께서 방금 돌아가셔서 구두가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마님께서 시체에 신길 슬리퍼를 만들어 오라고 해서 왔습니다."
미하일은 기다렸다는 듯이 슬리퍼를 내어 주었습니다. 미하일은 그 오만한 신사가 왔을 때 그 뒤에 죽음의 사자가 따르는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톨스토이는 이 작품에서 우리 인간이 자기 인생에 대하여 한치 앞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마지막 때를 '노아의 때와 같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럴까요? 노아의 때와 소돔 고모라 때는 어떤 때를 말합니까? 인류는 개인이든 민족이든 지나간 역사를 돌아보고 보다 나은 내일을 준비하는 교훈으로 삼을 때 인류는 발전하고 복되게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를 통해서 배우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다면 더 어둡고 비참한 흑암과 멸망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말씀하신 노아의 때는 어떤 때를 말합니까?
1. 하나님을 부인하는 시기입니다.
아담 하와의 선악과를 따먹고 시작된 거역과 불순종의 역사는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심해졌고 마침내 하나님을 대적하는 바벨탑의 사건이 일어났으며(창 11:1~9) 마침내 노아의 시대는 하나님께서 인류를 물로 심판할 수밖에 없는 인본주의에 극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창조자 하나님, 섭리자 하나님이 부인되고 피조자가 주인이 되는 시대입니다. 주인은 없고 나그네가 주인 노릇 하는 시대, 어른은 없고 아이가 어른 노릇 하는 시대, 이는 하나님을 부인하는 모든 나라, 민족, 국가가 그러한 것입니다.
어린아이는 어른의 간섭이 없으면 자유롭고 편할 것 같습니다. 하나님 없이 사람이 주인이 되는 평등한 나라를 이룬다면 사회주의 국가의 현실이 그렇게도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노아 시대는 하나님 없는 인간들만 사는 세상이었습니다. 마지막 때는 모든 인간들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부인하는 인간 사회는 망하게 됩니다.
2. 세속 영광에 도취된 시대였습니다.
인간의 두뇌, 과학 문명을 앞세워 하나님을 부인하는 세대도 문제이거니와 향락에 도취되어 하나님을 잃어버린 세대도 병들고 망할 세상입니다.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들고, 집을 짓다가 멸망이 갑자기 찾아왔습니다. 물질이 풍부하다는 것입니다. 먹고 마시고 살아가는데 염려가 없는 세대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나태해지는 때가 언제입니까? 배고플 때입니까? 배부를 때입니까? 배부를 때 기도가 형식이 되고, 배부를 때 주일도 잘 지키지 않고, 배가 불러지니 감격과 감사도 없어지지 않습니까? 가난해서 먹고살기 위해서 신앙을 버리는 것도 문제이지만 배불러서 하나님을 버리는 것은 더욱 큰 문제입니다.
성도 여러분, 부유해지는 것은 축복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타락의 요인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다윗도 평안해질 때 범죄 하게 되고 솔로몬도 부귀 영광의 때에 타락했습니다. 가나한 자가 더 귀해서 응답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가난한 자의 기도가 간절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물질에는 부유함의 축복을 받으시고 은혜에는 심령의 가난, 사모하는 가난을 받으셔서 영육이 복을 받는 성도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윤리 도덕의 타락의 시대입니다.
노아의 시대를 한 마디로 죄악이 관영한 시대(창 6:5)라고 표현합니다. 상하의 질서가 없습니다. 부모, 자식간의 질서가 무너지고, 어른과 아이의 질서, 이웃과 이웃간의 질서가 무너졌습니다. 지도자가 따로 없습니다. 인도자가 없는 양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놋의 딸들이 아버지와 동침하여 후사를 얻고자 하는 생각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이는 그 시대상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물로든, 불로든, 핵무기로든 심판할 수밖에 없는 무질서한 세대, 더럽고 추한 세대, 바로 이것이 노아의 시대요, 소돔 고모라의 시대요, 마지막 심판의 시대라는 것입니다.
현대는 음란하고 패역한 시대입니다. 현직 교사 부부가 자신들의 나체 사진을 인터넷에 올리고 문화, 예술을 운운하는 미친 시대가 지금입니다.
어린 십대들을 돈으로 미혹하고 성 관계를 가져도 죄 없다고 무죄 판결 받는 시대, 이 시대를 무엇이라 말해야 될까요? 음란한 시대요, 광란의 시대요, 멸망의 시대입니다.
한쪽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부인하며 인본주의로 세상을 온통 굶주림과 헐벗음의 거지로 만들고 그래서 하나님을 짠하게 만들고, 또 다른 한쪽은 부유함과 자유를 진리 안에서 누리지 못하고 방종과 타락으로 하나님을 상실하고 음란과 패역으로 하나님의 최후 심판을 향하여 달음박질하고 있습니다r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으면 영원한 생명(영생)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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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큰 사랑을 알고 계십니까?
안녕하십니까?
저는 남대문교회에 다니는 이일모 집사입니다.
저는 잠시 동안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사람들 중에 어떤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관심이 없으며,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무서운 분으로 생각하며,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알고 믿기를 원합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계십니까?
1. 나는 하나님을 이러한 분으로 믿습니다.
1). 하나님은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십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
2). 하나님은 흠이 없는 거룩하신 분입니다.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벧전1:16)
3).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시고 축복해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일4:16)
2. 그런데 사람은 어떠한 존재입니까?
모든 사람은 불완전하고 연약한 존재입니다.왜냐하면
1). 선을 알고도 행치 못하고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약4:17)
2). 마음에 하나님이 없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찾지도 않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3:11-12)
3). 오히려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자기 마음대로 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이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롬1:28)
그 결과,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고 죽음과 불안, 허무 속에 살 게 된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죄라고 하며, 타락한 인간의 모습이라고 말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
3. 이러한 인간의 죄는 죽음을 가져 오며, 마침내 심판에 이르게 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6:23)
1).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죄를 미워하십니다.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유하지 못하며 오만한 자가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시5:4-5)
2). 사람은 죄에서 벗어나려고 하나 불완전하기 때문에 죄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내가 내 마음을 정하게 하였다 내 죄를 깨끗하게 하였다 할 자가 누구뇨(잠20:9)
3). 죄는 결국 하나님의 사랑을 누릴 없게합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2:1)
-한번 죽는 것은 삶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4. 하나님은 이런 인간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1). 하나님은 죄 가운데 있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그의 외아들 예수님을 사랑의 중보자로 보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또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2:5)
2).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벧전3:18)
3). 예수님의 죽으심은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고, 부활하심은 사망을 폐하고 영생의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나셨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딤후1:10)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5.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영생을 얻으려면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1). 이것은 생명의 주되신 예수를 나의 주님으로 영접하는 것을 뜻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2). 그리고 우리가 예수를 믿으려면 죄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됩니다.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같이 망하리라(눅13:3)
3). 그리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가 되어 영생을 얻고 복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
성경은 이것을 구원이라고 말합니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롬5:10)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당신은 지금 이 시간에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영접할 수 있습니다.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기도는 하나님과 이야기하는 것인데, 지금 간절한 마음으로 함께 기도하시지 않겠습니까?
사랑의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를 용서해 주옵소서.
저는 예수님이 저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것을 믿습니다.
이제 저는 죄로부터 돌아서서 예수님을 제 마음과 삶 가운데 모셔
들입니다. 이제부터는 예수님을, 나를 사랑하시는 구주로 믿고 주님의 뜻대로 살 게 하여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예수 믿고 구원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영생을 누리는 축복을 얻습니다.
1. 예수 그리스도는 항상 당신의 마음에 거하십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 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2:20)
2. 당신의 모든 죄는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 아들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사함을 얻었도다(골1:14)
3. 당신은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4.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
바로 이 주일부터 시작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전하는 가까운 교회에 나가서 목사님의 지도를 받고 교회에 출석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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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여러분을 주님께로 초대합니다.
지금 당신의 삶은 무엇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
역사상 모든 사람들은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죽음을 정복하고 부활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공자 석가, 마호메트, 소크라테스도 다 죽고 살지 못했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지고 다 누리며 살았던 진시황제도 그의 평생 소원이었던 영원히 늙지 않는 영약을 구하지 못하고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정복하고 부활하신 단 한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예수님은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로 세상에 오셔서 모든 사람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사 만인의 구세주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우리도 그와같은 삶을 누릴 자격을 얻게 되었습니다. 천국에서 영원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신도 영원한 삶을 누리기를 원하지 않으십니까 ?
사망을 정복하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장차 우리들을 사망에서 건져 내어 주실 분이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마음에 영접하면 우리 영혼을 살려내어 구원해 주시고 세상 끝날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에는 우리 몸도 부활시켜 영생을 얻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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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
경북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수학선생님이신 김성화 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김성화 선생님은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데 보람과 만족을 느끼지 못하셨습니다.
인생이란 이렇게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처럼 살다 가야 하는 것인가? 너무 허무한 것이 아닌가 느꼈습니다. 그래서 머리를 깎고 도를 닦으러 절로 들어갑니다.
스님이 된 그는 불교계의 중요 요직인 교육국장, 포교국장 및 해외 선교국장을 맡아봅니다. 많이 배우시고 강직한 선생님 출신이라 불교계의 안 좋은 관행을 바로 잡고 개혁을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불교 대학을 세워서 스님들을 올바로 잘 양성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불교계 안에 내분으로 인하여 이분이 교도소에 갇히게 됩니다.
복역 중에 교도서 안에서 도서관에 있는 책들을 대출해서 읽기 시작합니다. 스님이시기 때문에 주로 불경을 읽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해주는 교도소 경비원이 자신이 신청하지 않은 신약성경을 넣어 주더라는 겁니다.
“아니 내가 신청한 불경은 왜 안 가지고 오고 신청하지도 않은 책을 왜가져 왔소?”
“불경은 다른 사람들이 다 대출을 해가서 한 권도 없기 때문에 스님께서 심심할 것 같아서 이 책이라도 가져왔습니다”
그러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믿고 있는데 한번 읽어보시지요?”라고 말하였답니다.
스님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심심하다고 저 기독교책을 보면 부처님을 배신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무아미타불만 수 천번 외우며 마음을 가다듬었습니다.
그래도 옆에 있는 기독교 책에는 도대체 무슨 내용이 있을까? 궁금해서 읽어보기 시작했답니다. 그는 성경을 읽는 중에 누가복음에 나오는 나인성의 어느 과부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고 합니다.
남편을 잃고 아들하나에게 모든 소망을 걸고 살아왔던 나인성 과부의 아들이 죽었습니다. 과부는 통곡을 하며 아들의 시체를 관에 넣고 성밖으로 나가는 중이었습니다. 마침 예수님께서는 길을 지나가시다가 이일을 목격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청년의 관을 멈추게 하시고,
“청년아 일어나라!”
말씀하시자 죽었던 청년이 그 자리에서 일어난 내용을 읽으면서. 스님은 전율을 느끼며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와 똑같은 내용이 불경 안에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불경에 보면 인도 구시라성에 시다림이란 한가한 숲 속을 석가모니와 제자들이 함께 걷고 있었는데 한 젊은 과부가 통곡을 하며 울고 있는 것을 목격합니다.
석가모니가 사유를 물은즉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였습니다. 이때 석가모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고을에 가서 한번도 사람이 죽은 일이 없는 집의 쌀을 한줌 얻어다가 죽을 끓여 먹이면 살아날 것이라" 하였습니다. 젊은 과부는 기뻐서 뛰어 갔습니다. 그리고 하루종일 모든 집을 다 돌아 다녔지만 그러한 집은 한집도 없었습니다. 젊은 과부는 빈손으로 석가모니 앞에 섰습니다.
“부처님 하루종일 돌아 다녀도 사람이 죽은 일이 없는 그런 집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빈손으로 왔습니다.”
그때 석가모니는 “자매여! 생자 필멸 이라 사람이 나면 반드시 죽는 것 인연 따라 일어나서 인연 따라 없어지는 것이니 너무 슬퍼 할 것이 없느니라”고 말하고 그 과부를 보냈다는 내용입니다.
죽은 자를 보자마자 살리신 예수님과 죽음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이는 석가모니와의 한계를 그는 발견합니다. 불교는 돌고 도는 종교이지만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요 살리는 종교인 것을 발견하고 그는 지금 목사님이 되어 생명의 종교인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며 살고 있습니다.
성도여러분 기독교가 왜 생명의 종교인지 아세요? 하나님께서 태초에 우주만물과 인간을 창조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우주만 물과 인간은 우연이 생긴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으시고 구원을 받으십시요
사도행전 4장 12절에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10장 13절에 보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을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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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여러분! 여러분의 가던 발걸음이 아무리 바쁠지라도 잠깐 발걸음을 멈추시고 저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여러분 생애에서 가장 중대한 날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똑같이 가지고 있는 공통된 문제가 무엇인지 여러분은 아십니까? 그것은 죄 문제입니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은 그가 누구이든지 간에 죄 문제를 안고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첫 번째 출생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첫 조상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죄가 세상으로 들어오게 되었으며, 아담 이래로 태어난 모든 사람은 죄 가운데서 태어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이런 연유로 한 사람에 의하여 죄가 세상으로 들어오고 그 죄에 의하여 사망이 왔으니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전달되었느니라.』(롬 5:12)
여러분 모두는 부모로부터 죄성을 유전 받아 태어났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로부터 태어난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죄인인 것입니다. 『이는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롬 3:23).
여러분! 이 시간 여러분 안에 있는 죄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셔야 합니다. 죄는 매우 심각한 결과를 낳게 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라고 하나님께서는 경고하고 계십니다(롬 6:23).
여러분은 생애 동안 이런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오직 성경만이 죄에 대한 결과를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에 대한 삯은 사망입니다.
여러분은 주위에서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까? 만일,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죄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죽음을 맞이하지 않습니까? 저는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이 영원히 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언젠가 반드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죄는 반드시 죽음을 가져옵니다. 사람이 모두 죽는다는 것은 그가 죄인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육신의 죽음은 그것으로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고 그 뒤에는 심판이 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히 9:27).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또 내가 죽은 자들을 보니, 작은 자나 큰 자 또 내가 죽은 자들을 보니, 작은 자나 큰 자나 하나님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져 있으며 또 다른 책도 펴져 있는데 그것은 생명의 책이라. 죽은 자들은 자기들의 행위에 따라 그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더라....그들은 각자 자기들의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으며....누구든지 생명의 책에 기록되지 않은 자는 불 못에 던져지더라....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 20:12-15) 여러분! 사람이 죽게 되면 그 몸은 흙으로 돌아가 썩어 없어질지는 몰라도 여러분 자신인 “혼”은 절대로 죽지 않으며 심판에 처해지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 심판은 바로 지옥의 심판입니다.
들어보십시오. 『너희 저주받은 자들아, 내게서 떠나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하여 준비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마 25:41) 하나님께서는 죄의 형벌의 장소인 지옥에 대해 여러분에게 경고하고 계십니다. 죄는 이처럼 심각한 결과를 낳게 됩니다. 여러분은 죄에 대한 심판으로부터 구원 받으셔야 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죄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셔야 합니다.
여러분 여기 그림판을 주목해 주십시오. 여기 벌거벗긴 채로 양손과 양발에 녹슨 못에 못 박히고, 옆구리에 창에 찔려 붉은 피를 쏟고 있는 한 청년을 바라보십시오. 이 분은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분은 죄인처럼 취급되어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그러나, 이분에게는 죄가 없었습니다. 이분은 인류의 죄를 제거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 바쳐지는 한 마리 희생양이셨습니다. 침례 요한은 『보라, 세상 죄를 제거하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요 1:29)고 외쳤습니다.
여러분! 여기 인류의 죄를 제거하기 위해 희생 하신 주 예수님을 보십시오. 이분은 여러분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 여러분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
죄의 삯은 사망』이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대신하여 사망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이렇게 외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요 19:30) 예, 예수님은 다 이루셨습니다. 여러분을 그 죄 문제로부터 해결할 수 있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다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을 지금 초청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여러분의 구세주이십니다. 그분만이, 오직 그분만이 여러분의 유일한 구세주입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을 부르고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그러면 내가 너희에게 쉼을 주리라.』(마 11:28) ,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아무도 없느니라.』(요 14:6),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 것이며 또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누구나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 11:25,26) 지금 주 예수님을 여러분의 구세주로 믿으십시오.
예수님은 여러분의 죄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었다가 살아나신 구세주이십니다. 여러분은 구원받으셔야 합니다. 이제,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자신이 죄인인 것을 시인하고 예수님이 여러분의 죄를 대신해 죽으신 구세주로 오직 그분만이 여러분의 죄로부터 구원해 주실 구세주로 마음에 믿으면 여러분은 그 자리에서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구세주로 받아들이시겠습니까? 믿고 구원받으십시오. 그렇다면 저와 함께 기도합시다. 용기를 내십시오. 제가 여러분을 위해 기도할 때 진지하게 기도를 따라해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보고 계십니다. 진실된 마음으로
“주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이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저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실을 오늘 알았습니다. 저는 이 시간 예수님만이 저의 죄로부터 구원해 주실 구세주이심을 마음으로 믿습니다. 저의 죄들을 용서해 주시고, 저를 구원해 주옵소서. 제 마음에 이 시간 들어오셔서 저의 구세주가 되어 주옵소서. 저를 구원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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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죽음은 확실합니다
사람들은 제각기 열심히 살아갑니다. 그러나 행복한 사람이나 불행한 사람이나, 성공적이 삶을 사는 사람이나 실패의 삶을 사는 사람이나, 또 건강한 사람이나 병든 사람이나, 이 모든 사람들에게 인생의 시간만은 똑같이 줄어들어 가고 있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모두가 죽는 다는 사실입니다. 연수를 다 채우고 죽든, 병들어 죽든, 사고로 죽든, 전쟁에서 죽든, 분명한 사실 한 가지는 사람은 모두 죽어 그 생을 마감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죽음이지만 이 죽음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죽는다는 전제 하에 살아가는 인생을 자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가소로운 일이겠습니까? 그 시기에 차이가 있을 뿐,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입니다.
인생은 짧습니다
행복한 사람일수록 시간은 더 짧게 느껴집니다. 오십이 넘은 사람은 인생이 가속도가 붙어 지나가는 것처럼 빠르게 느낄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이러한 인생을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수증기라고 말합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수증기니라'(야고보서 4:14).
사람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심지어 내일 죽음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바로 내일 안개처럼 사라질지도 모르는 그 인생에 무슨 가치와 소망을 부여할 수 있겠습니까? 인생을 낙관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죽음은 확실하고,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인생은 결코 낙관적이 될 수 없습니다.
그 뒤에는 심판이…
인간에게 죽음이 확실한 사실이라면 죽고 난 후에는 어떻게 될까요? 우리는 이에 대한 해답을 우리와 같이 유한한 존재인 철학자들의 말에서 얻을 수 있을까요?
아니면 우리와 같이 죽게 되는 어떤 종교 지도자의 말을 신뢰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말도 안됩니다. 죽은 이후에 어떻게 되는 가에 대한 해답은 성경에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뒤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브리서 9:27).
사람이 죽는 다는 사실은 누구나 받아들이겠지만, 그 뒤에 있을 심판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요? 그것은 죄에 대한 심판입니다. 한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되어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로마서 5:18,19). 우리는 죄인으로 태어났기에 죽어 심판을 받게 됩니다. 왜냐하면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로마서 6:23a).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구원의 길 - 당신의 죄는 이미 용서함 받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죄인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어 동정녀에게서 태어나게 하시고 죄 없으신 그분에게 우리의 죄를 정하여 십자가에서 죽게 하심으로 우리의 죄를 모두 용서해 주셨습니다(로마서 5:8-10; 베드로전서 2:22-24). 이렇게 해서
당신의 죄는 깨끗해 졌습니다. 따라서 당신은 당신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분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에게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정죄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요한복음 5:24).
죽음을 향해 살아가고 있는 절망적인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제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놓으셨습니다. 얼마나 기쁜 소식입니까!
이제 당신이 해야 할 일은 한 가지, 이 사실을 믿는 일입니다
당신은 성경에 기록된 이 사실, 즉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습니까? 이에 대한 설명이 여기에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범죄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대속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게 되었느니라. 이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그분의 피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화해 선물로 제시하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심으로 과거의 죄들을 사면하
사 자신의 의를 밝히 드러내려 하심이요, 내가 말하거니와 이 때에 자신의 의를 밝히 드러내사 자신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님을 믿는 자를 의롭게 하시는 이가 되려 하심이라.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 있느냐? 있을 수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로마서 3:23-27).
그렇습니다. 이 사실을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게 됩니다. 이 사실을 믿는다면 당신은 심판과 사망에서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죽음을 피할 수는 없지만 오직 이 방법으로만 심판과 사망을 피할 수 있으며, 영원한 생명으로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악한 세력들은 당신이 지옥에 가서 멸망 받기를 원하기 때문에 갖은 방법을 통해 당신으로 하여금 바른 믿음을 갖지 못하도록 방해해 왔습니다. 그래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이후로 지금까지 약 40억 명으로 추산되는 사람들이 이 복음을 믿고 구원받아 부활의 소망을 지니고 죽었고, 그 일부는 동일한 소망을 가지고 이 지상에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한복음 11:25,26).
당신도 이것을 믿습니까? 믿어야 합니다.
'이는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기 때문입니다'(로마서 10:10).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십시오
당신이 이 사실에 동의하고 예수님을 당신의 유일한 구세주로 믿고 영접한다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회개'는 당신이 죄인이라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께서 당신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음을 전적으로 동의하고, 자신의 죄를 자백하며, 당신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마음을 전환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영접하신 후 알고 싶은 것이 있으시면, 가까운 교회로 찾아가십시오. 그러면 당신이 구원에 이르는 길을 친절하게 도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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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왜 당신은 예수를 믿어야 합니까?
1.당신은 구원을 필요로 하는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
죄의 삯은 사망이라(롬6:23)
2.당신 자신의 힘으로는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쫒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딛3:5)
하나님이 세상을 이 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3.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구원의 길은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길뿐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4:12)
4.지금 당신이 예수를 구주로 믿고 고백하면 영생을 얻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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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한복음 3:16)
-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로마서 5:8)
●모두가 죄인입니다.
-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로마서 3:23)
- 기록되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로마서 3:10)
●죄에 대한 하나님의 구제책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로마서
6:23)
-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한복
음 1:12)
●모두 지금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요한계시록 3:20)
-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로마서 10:23)
●신자로서의 확증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
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로마서 10:9)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
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니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한복음 5:24)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한일서 5:13)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한복음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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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기독교에 대한 7대 질문
Q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A: 복잡하고 질서 정연한 우주 만물들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그를 하나님이라 부릅니다.
Q 기적은 가능한 것입니까?
A: 기적은 인간에게는 초자연적인 것이지만 하나님에게는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기독교최고의 기적은 예수그리스도의 성육신과 부활입니다.
Q 성경은 믿을 만한 것입니까?
A: 고고학적인 발굴과 검증, 신구약 66권의 일관성과 통일성, 예언대로 성취된 사건 등은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졌으며 믿을 만한 책임을 확증합니다.
Q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께 이르는 길입니까?
A: 하나님 앞에서 모든 인간은 병든 것만 아니라 영적으로 죽은 존재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영적인 죽음에서 구원받는 유일한 길은 영이신 하나님 자신이 대신 죽으시는 것입니다.
Q 착한 행위로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
A: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모든 사람은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됩니다. 천국 가는 데 선행이 필요하지는 않으나 말씀을 쫓아 가는 믿음 생활을 하다 보면 점점 삶이 성화되기 때문에 선한 행위는 따라오게 됩니다.
Q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A: 믿는 것은 영접하는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즉 예수 그리스도를 나 개인의 죄의 대속주로 받아드리고 신뢰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는 천국에 가기 위해 단지 예수를 믿기만 하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값을 치뤄 주셨고 구원과 천국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천국이 믿기만 하면 얻는 것이라고 해서 무가치하고 값이 싸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치른 값은 너무 비싸서 인간의 유한한 정신으로는 거의 이해하기 힘듭니다.
Q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면 왜 고통의 세상을 만드신 것입니까?
A: 하나님께서 고통 없는 세상을 창조하심과 동시에 사람들에게는 스스로의 선택으로 하나님을 거부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사랑은 선택을 요구합니다. 선택 능력이 없는 인간은 로봇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고통은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삶 2001.10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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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1.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다.
죄인이란 - 하나님을 떠나서 자기 마음대로 사는 사람을 일컫는다.
죄는 - 살인, 미워함, 속임, 시기, 질투, 교만, 자랑, 음란, 위선적, 악독, 분냄 등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땅에서 뽑힌 나무와 같다. 뽑힌 나무는 시들수 밖에 없다.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죄를 범하는 것이다.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에 아무리 노력해도 늘 죄를 범한다. 죄를 짓지 않을 수는 없으나(꽃게가 옆으로 걷는 것이 정상이듯이...) 용서받을 수는 있다. 가출한 아이는 부모님께 나쁜 짓을 많이 해서 불효자가 아니라, 이미 가출한 것 자체가 불효이다.
2. 죄의 결과는 사망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죄로 하나님께 심판을 받아 지옥에 떨어져 멸망을 받는다.(로마서 6장 23절 '죄의 삯은 사망이요...')
3.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나, 죄인은 사랑하신다.
그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이 땅을 찾아오셨다. 그리고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주셨다.
4. 누구든지 이제 자기 잘못을 회개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면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지 않고 천국에 갈 수 있다. 불교를 포함한 대부분의 종교는 선해야 구원을 받으나, 기독교는 죄인이 구원을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기쁜 소식이다. 단, 용서를 구한 죄인이어야 한다.
5. 기독교의 구원은 자기 노력이 아니라 예수님의 죽으심을 통한 그분의 용서하심과 공로로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우리는 태평양을 헤엄쳐서 하와이 섬까지 갈 수는 없어도(인간의 능력으로 안됨) 배를 타고는 갈 수 있다. 나의 선한 행위로는 천국에 갈 수 없지만 예수님의 도움으로는 가능하다.
(즉, 예수님이 배와 같은 역할을 하셨다.)
6. 이제 내가 할 일은?
내가 죄인 됨을 인정하고 그분께 나아가 지난날의 죄에 대한 용서를 구하고,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며 순종하겠다고 기도로 고백하는 것이다.
'저는 죄인입니다. 지금껏 제 마음대로 살면서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저의 죄와 잘못을 용서해 주십시오. 이제는 내 마음대로 살지 않고 주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나를 받아 주셔서
이제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해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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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기독교와 타종교의 차이점
불신자가 보기에는 기독교도 다른 종교와 비슷한 종교의 하나로 보인다. 그들은 사실 자세히 알지 못하면서도, 종교들은 모두 비슷하기 때문에 어느 것이나 하나를 택해도 무방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를 제외한 다른 종교들은 서로 비슷한 점들이 많지만, 유독 기독교는 타 종교들과 다른 점이 너무 많다. 그래서 독선적인 종교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미국 콜로라도 주에 산 불이 났을 때 헬기가 나타나 조난 당한 사람들에게 빨간 밧줄을 내려주며 "살 길은 오직 하나요. 이 줄을 잡으시오"라고 한 적이 있다. 이것이 독선적이라고 거부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나의 길이 제시되어 있는 것은 독선이 아니라 축복이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 신앙이 이처럼 다른 타 종교와 구별되는 것은 우리에게 큰 확신과 은혜를 주고 있다.
다음에 기독교와 타 종교의 중요한 구별점을 몇 가지 정리한다.
1. 타종교는 대개 인간이 신을 먼저 찾아가서 정성을 드려 신의 마음을 감동하여 신에게 무엇을 얻어 내는 것이나, 기독교는 죄인인 인간에게 하나님이 먼저 찾아 오셨다.
2. 타 종교는 대개 선행이 구원의 하나의 조건이지만 기독교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고 신자로서 선행은 구원 받은 자의 삶의 열매로 이해한다.
3. 타 종교는 인간의 죄에 대하여 별로 취급하지 않지만, 기독교는 인간의 죄 문제를 깊이 다루며 이 죄 문제에 대한 분명한 해결책까지 제시한다. 바로 하나님 자신이 인간의 죄를 사하기 위해 희생되셨다는 속죄제도이다.
4. 타 종교는 대개 이원론적 사상을 가지고 있다. 즉 영적인 세계와 세상을 극단적으로 구별하여 영적인 것은 모두 선하지만, 육적인 것은 모두 악하고 불필요한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기독교
는 이원론 사상을 배격한다. 하나님 자신이 세상에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고 믿음으로 하는 일은 모두 거룩한 것이다.
5. 기독교는 타 종교와는 달리 우리 육신이 성령이 거하시는 전이라고 한다.
6. 타 종교는 영생에 대한 분명한 해답이 없으나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이다.
7. 타 종교는 종교의 창시자의 가르침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지만, 기독교는 예수님의 가르침도 중요시하지만, 예수님 자체를 더 중요시한다.
*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기독교의 근본적인 믿음은 다음의 5가지로 정리할 수 있는데, 세상의 어떤 종교도 이와 일치하는 점이 하나도 없다. 반대로 이것중 하나라도 부인하면 이단이라고 할 수
있다.
1. 하나님께서 육신이 되셔서 예수님으로 이 땅에 오셨으며
2.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서 돌아가심으로 인류의 죄를 대속하셨으며,
3.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정복하시고 부활하셔서 그가 하나님이심을 증명하셨고,
4. 그가 세상 끝날에 재림하여 천국과 지옥으로 인류를 심판하실 것이며
5.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쓰여진 권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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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예수님이 길이십니다
옛날 진나라에 완적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특별한 볼일이 없으면 서도 매일 말을 타고 여행을 했다고 합니다. 그때마다 그는 좁은 길을 피해 큰길로 다녔는데 길을 가다가 길이 끊기거나 막히면 그 자리에서 대성 통곡을 하고 되 돌아 오곤 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길이 끊기거나 막힐 때마다 거기서 인생의 유한성과 제한성을 깨달았기 때문에 통곡을 하였던 것입니다.
옛부터 인생을 나그네라고 하였습니다. 나이가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고 하였습니다. 나그네란 고향을 떠난 사람을 말합니다. 그리고 어디론가 가야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인생을 나그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인생들이 살아 가야하는 이 세상은 고해 바다라고 표현하였습니다.
항상 파도가 넘실거리는 바다 말입니다. 그런데 갈곳이 막혀 버렸다고 하면! 그 길을 잃어 버렸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세상은 길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동차나 기차나 선박이나 비행기가 지나갈 수 있는 통행로들이 있는데 이것을 길이라고 합니다. 이 길은 나라의 동맥과 같아서 이 길이 활발하게 뻗어 있는 나라는 부강한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길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지켜야 할 도리를 길이라고 합니다. 우리 사람은 하나님께서 지으실 때에 도덕적인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때문에 지켜야 할 윤리적 도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길이라고 하고 도(道)라고도 합니다. 바로 이것이 사람과 짐승과 다른 점입니다. 예를 들면 개나 되지는 체면이니, 양심이니, 도덕이니, 윤리 같은 것이 없습니다. 그런 규범들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가야 할 길이 있고 지켜야 할 윤리와 도덕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이 이런 것을 벗어난 행동을 할 때에 사람들은 말하기를 '사람 같지 않다!'라는 마음 아픈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사람이 가야하는 길이 있는데 이 길을 따라 한평생 어디론가 가고있는 존재입니다. 여기에 중요한 몇 가지가 있습니다. 길을 가는 사람은
Ⅰ. 목적지가 분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매일 말을 타고 어디론가 가다가 길이 막히거나 끊어지면 대성 통곡을 하였다는 완적 처럼 살수는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나온 곳이 있으면 가는 곳이 있는 것입니다. 출발점이 있는가 하면 종착역이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흙으로 지으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흙으로 지음 받은 인간은 흙집이 오래되면 무너지듯이 결국 무너지고 그를 지으신 하나님께 돌아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정신 분열증에 걸린 사람이라면 그는 목적지 없는 하루 하루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건전한 정신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라면 하루의 일과가 있고, 시간을 정하고 일을 할 것입니다. 부산가는 기차를 타면 분명히 부산까지 갈 것이며, 일본가는 비행기를 타면 분명히 일본을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목표가 분명하면 반드시 그 목적지로 향하여 가고 말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로 가야 할 인생들이 항로를 바꾸고! 또는 잃어버리고 다른 곳으로 가고 있다면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이것은 비행기가 항로를 잃어버리고 다른 곳으로 간 것 보다 더 무서운 일이 아닐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인생은 너무나 불행해 지기 때문입니다.
우리 앞에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성경은 그 길을 좁은 길과 넓은 길이이라고 합니다. 좁은 길은 좁기 때문에 가기가 힘이 들어가는 사람들이 별로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 길은 가면 갈수록 평해지고 넓어지고 평안해 집니다. 반대로 넓은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은 넓고 평평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그 길을 갑니다. 그러나 그 길은 가면 갈수록 좁아집니다. 어려워집니다. 그리고 절망과 좌절이 기다리는 길입니다. 이것이 넓은 길입니다. 여기서 좁은 길은 천당 가는 길이고 넓은 길은 지옥 가는 길입니다.
교도소에 가 있는 사람들과 상담을 해 보면 이런 말을 많이 합니다. '목사님! 한 번만 참았더라면!'이라는 말과 '목사님! 제가 길을 잘 못 들었습니다.!'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길을 잘 못든 사람들이 교도소에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 은 길이 두 길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어떤 길을 걷고 있습니까!
Ⅱ. 길을 갈 때 안내자가 필요합니다.
사람들이 길을 잘 못 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른 안내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행을 하려고 해도 안내자가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배가 항해를 하려고 해도 나침반이 있어야 안전한 항구까지 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높은 산에 등산을 하려고 해도 안내자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험한 길일수록 든든하고 노련한 안내자가 필요합니다. 하물며 나그네 같은 인생 길을 가는 사람에게 안내자가 없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성경에 보면 쌍둥이가 나옵니다. 형의 이름은 에서이고 동생의 이름은 야곱이었습니다. 형은 늠름한 사냥꾼이었고 동생은 그 이름과 같이 꾀쟁이에다 여성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욕심이 많았습니다. 그는 늘 자기가 형이 되어 먼저 나오지 못한 것을 한탄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장자의 명분을 형으로부터 빼앗고 싶은 마음 때문에 궁리하다가 어느 날 어머니를 도와 팥죽을 쑤고 잇는데 허기에 지친 형이 사냥에서 돌아 왔습니다. 마당에서 맛있는 팥죽을 쓰는 동생에게 팥죽 한 그릇을 달라고 합니다. 그때 야곱은 때는 이때라고 생각했는지 장자의 명분을 내게 팔면 내가 팥죽 한 그릇을 주겠다고 합니다. 형은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그렇게 하라고 하고 팥죽 한 그릇을 얻어먹었습니다.
아버지가 나이 많이 들어서 큰아들에게 축복 기도를 해 줄 터이니 별미를 해 가지고 들어오라고 하여 사냥을 나갔습니다. 그 이야기를 어머니가 듣고 작은 아들 야곱에게 그 축복을 가로채게 합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형이 노발대발해서 동생 야곱을 죽이려고 합니다. 하는 수 없이 야곱이 외삼촌 집으로 야밤 도주합니다.
가다가 날이 저물었습니다. 요즘 같으면 여관도 많고 쉴 곳도 많겠지만 그때는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광야 길을 걸어 가다가 밤을 만났습니다. 날이 어두워지자 여기 저기서 짐승의 우는 소리도 들립니다. 두렵고 무섭습니다.
자리를 펴고 누웠습니다. 그런데 비몽사몽간에 환상을 보는데 하늘로부터 사닥다리가 내려옵니다. 그리고 거기에 천사가 오르락내리락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리라...너를 떠나지 않으리라'라고 하시지 않습니까!
인생이 얼마나 위험하고 힘이 들고 험악합니까! 그리고 우리는 얼마나 약하고 힘이 없습니까! 안내자가 필요하시지 않습니까! 짐을 덜어 주실 분이 필요하시지 않습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고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무엇인가?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질병, 기근, 괴로움, 고통, 죽음... 그 짐을 가지고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말씀하십니다. 이 땅에 아무도 그런 말을 한 사람이 없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이 우리의 인생을 안내해 주시면 우리 인생 길은 안전합니다. 평안합니다. 행복합니다.
마8:23 이하에 제자들이 예수님을 모시고 갈릴리 바다를 지날 때 예수님은 너무 피곤하셔서 주무시는데 큰 풍랑이 일어나서 배가 뒤집힐 것 같았습니다. 너무 다급하고 무서워서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웁니다. 그때 예수님이 일어나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하시면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도대체 그가 어떤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 그분이 도대체 누구이기에 이런 능력이 있는가? 그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사람이 볼 수 없고 또 보면 죽으므로 사람의 몸을 입고 우리에게 오셨는데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 보면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인생길에 도적을 만나면 가정이 파괴됩니다. 손해를 봅니다. 불행해 집니다. 생명을 빼앗깁니다. 가정에 도적 맞지 않는 것이 얼마나 복입니까! 여러분 우리 인생 길에 도적이 있습니다. 그 이름은 마귀입니다. 마귀는 도적입니다.
마귀가 하는 일은 행복해야 할 인생들의 행복을, 평안을, 생명을, 안식과 축복을 도적질해가서 불행하게 만들고 염려, 근심, 불안, 공포, 질병, 괴로움, 우울증을 가져다 주고 끝내는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합니다. 지금도 사단은 우는 사자 같이 삼킬 자를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은 우리 인생들에게 생명을 얻게 하고 더욱 풍성한 사람을 살게 하시기 위해서 오셨답니다. 그분은 우리 인생들의 보호자요, 구원자요 참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분은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고 계신 분이십니다.
그분이 말씀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십니다. 불 가운데로 지날지라도! 물 가운데서도! 강 같은 위험 속에서도 너를 보호해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어떤 환란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위험이나 무서운 재앙에서도 너를 보호해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십니다.
우리는 지금 대단히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미래의 불확실함이 우리에게 두려움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겐 절대 보호자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너를 지켜 모든 환란을 당하지 않게 하시며 내 영혼을 지키시리라'(시121:7)고 하셨습니다. 요14장에서 '내가 너희를 버리지 않고 지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에 길이 있습니다. 실패한 자가 성공하는 길! 낙심한 자가 소망을 얻는 길이 있습니다. 외롭고 고독하며 사람에게 버림받고 밀려난 사람들이 위로 받고 사랑 받는 길이 있습니다. 잘 사는 사람이 더 잘살게 되고, 행복한 사람이 그 행복을 지켜 나가는 길이 있습니다.
왜 사는가, 어디로 가는가, 어떻게 사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것인가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올바르게 사는 길이 있습니다. 가난하고 병들고 가정에 우환 질고가 끊어지지 않는 사람이 그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이 있습니다. 이런데서 다시 태어나는 길이 있습니다.
갈등과 증오와 불평이 사라지고 사랑과 용기가 넘치는 가정과 사회를 만드는 길이 있습니다. 이 어렵고 힘든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벗어나며 다시 힘있는 조국 대한 민국을 건설하는 길이 있습니다.
이 놀라운 축복을 누리는 길은 바로 내가 길이라고 선언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지금 영접하는 길입니다.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잠27:1)고 말씀하셨습니다. 인생은 날이 많이 있고, 기회가 많은 것 같지만 사실은 기회가 올 때에 기회를 잡지 못하고 미루고 핑계 대다가 기회를 잃어버리고 육체와 영혼의 때에 돌이킬 수 없는 불행에 빠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보라 지금 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이라고 하셨습니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 문필가며 장군이었던 류웰리스(Lew Wallace)는 기독교의 허구성을 책으로 써서 만천하에 공개하리라는 결심으로 그의 친구 한사람과 함께 도서관에서 2년 간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기독교의 잘못된 것을 주장하는 책을 1장과 2장 첫 페이지까지 쓰다가 도저히 부인할 수가 없다는 사실 앞에 그는 엎드려 무릎을 꿇고 외친 말! '당신은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 예수님을 만난 사건이후에 그는 벤허라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유명한 소설을 쓰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한결같이 말하기를 어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지은 죄가 아무리 무겁고 크다고 해도 주님께서 다 받으시고 용서하여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전능하신 축복의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만나고 싶다는 말씀입니다. 이 놀라운 축복을 어떻게 누릴 수가 있습니까!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시면 됩니다. 저는 이 시간에 예수님을 마음에 모셔드려서 이 놀라운 축복된 생애를 살기를 원하시는 분을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예수님이 주인이 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물이 포도주가 되듯이 내 생애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내 생애가 예수 때문에 축복됩니다. 승리합니다. 성공합니다. 더욱 좋아집니다. 때문에 예수 이름 그 자체가 축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생애가 빛나시고 기적과 변화의 축복이 있으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저는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셔서 이 놀라운 축복을 누리는 기회를 받았습니다. 이 세상에서뿐만 아니라 내세에 영생 복락을 누리는 이 놀라운 축복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시간 영접함으로서 시작됩니다.
이 놀라운 축복이 이 시간에 이 자리에 참석한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넘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멘 †
'사랑의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의 죄를 대신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믿습니다. 저는 지금 제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영접합니다. 내 마음의 중심에 들어오셔서 이제부터 영원까지 다스려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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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크게 기뻐하는 한국
크게 기뻐하는 한국 (가정) 가정이 잘돼야 사회가 잘되고 나라고 잘됩니다
(사도행전16장25-34절)
하나님이 직접 이루시고 친히 축복한 곳은 가정과 교회뿐입니다.
그래서 부부로 시작 된 가정과 주님과 성도가 하나된 교회는 하나입니다.
인류역사의 최초의 가정이 최초의 교회였습니다.
하나님은 그곳에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창2:28)고 하셨습니다.
1. 행복한 가정이 행복한 사회를 이룹니다.
가정은 고달픈 인생살이에 있어서 편히 쉴 수 있는 안식처입니다. 가정은 생존경쟁이라는 싸움에서 이길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하는 훈련장이요 사랑을 배우고 실천하는 학습장입니다.
부부 사랑에 행복이 있습니다!
자녀 사랑에 행복이 있습니다!
부부 순결에 축복이 있습니다!
가정이 평안할 때 만사를 이룹니다. 사람의 몸을 이루는 세포가 건강하면 온몸이 건강하듯 건강한 가정이 복된 사회, 부강한 나라를 이룹니다. 그러므로 가정보다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소중한 가정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2. 흔들리는 가정, 병든 가정이 많습니다.
로마가 세상을 통치하고 있을 때 빌립보의 한 간수가 있었습니다. 죄수를 지키는 간수에게는 엄한 책임이 주어졌습니다. 감시 소홀로 죄수가 도망갔을 때에는 해임 당하였고 도망한 죄수가 받게 된 형벌을 대신 받도록 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밤 지진으로 인하여 감옥 문이 다 열렸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간수는 죄수들이 다 도망간 줄로 생각하고 자살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옥문이 다 열렸음에도 도망을 가지 않은 죄수가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전도인이었던 바울과 실라였습니다.
간수는 자기 생명의 은인이 된 두 사람의 권유로 그 가족과 함께 다 예수를 믿음으로서 큰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예수 믿기 전의 간수와 그의 가정은 늘 불안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언제 사고가 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는 불안전한 직업으로 불안에 떠는 집이 많습니다. 땅속에서 석탄을 캐는 광부, 운전기사, 소방사, 119구조대, 바다에서 고기 잡는 어부, 절도강도를 쫓는 경찰관, 나라를 지키는 군인, 기계를 다루는 사람들. 따지고 보면 100% 안전한 직업이 없습니다.
요즘 흔들리는 가정이 많습니다.
성공을 원하나 실패가 있고, 건강을 원하나 병들고, 안전을 원하나 사고를 당합니다.
경제적 어려움이 사나운 인심이 되게 하고, 절도, 강도, 사기꾼, 불량배가 늘어나고, 이혼율이 높아가고 가출한 인구가 증가되고 있습니다.
경제적 어려움보다 더 큰 문제는 사람들의 마음에 이해와 용서, 사랑이 매말라진 것입니다. 술 취한 남편, 한숨쉬는 아내, 가출한 자녀로 가정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3. 크게 기뻐하는 집이 되는 길이 있습니다.
감옥 문이 열려도 도망가지 않은 바울과 실라로 인하여 간수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만일 그들이 도망을 갔더라면 자기 인생은 끝났을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도망가지 않은 이유는 간수와 그 가정에게 나타날 화를 막으려 함이요 또한 그와 그 집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여 그들을 구원코자 함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그리스도인은 자기의 유익보다는 남의 유익을 먼저 생각합니다. 감동 받은 간수는 바울 앞에 무릎을 꿇고 '선생님! 제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고 물었고,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간수는 바울과 그 일행을 자기 집으로 모셔들이고 복음을 들은 후 전 가족이 세례를 받음으로서 크게 기뻐하는 집이 되었습니다.
인생 문제 해결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세상 죄를 담당하는 하나님의 속죄양이십니다.
하나님을 떠나 사는 인생들은 목자 없는 양 같아서 늘 불안합니다. 예수님은 양을 위해 생명 바친 선한 목자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리고 죽으심은 우리 인생들의 죄와 허물을 용서하고 또한 가난과 질병으로 구원하고 영원한 지옥 형벌을 면케 하려는 데 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자는 구원을 받습니다.
4.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빌립보 감옥의 간수 구원은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택하신 자를 구원키 위해서 한 사건을 허락하셨습니다.
그것은 귀신들려 점치는 여인 사건과 그 일로 인해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갇히도록 하였습니다. 이는 감옥을 지키는 간수를 구원키 위한 하나님의 계획으로 된 일입니다.
전도자 바울과 구원받은 간수 모두다 위기가 구원받는 기회로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이 고난을 당할 때 낙심치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산모의 진통으로 한 아이가 태어납니다. 한사람의 전도인의 수고로 간수와 그의 가족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썩어가는 한 알의 밀이 많은 열매를 거둡니다.
양초는 자기 몸을 희생하여 어둠을 밝히고, 소급은 자기 몸을 노여서 짠맛을 냅니다. 먼저 믿는 그리스도인은 불신자 영혼 구원을 위해 몸과 마음, 시간과 물질을 희생하여 흔들리는 가정, 불안한 가정을 구원하는 평화의 사자가 되는 것입니다.
- 결 론
예수님이 인생문제 해결사이십니다.
가난한 자, 실패자, 병든자, 모두 예수 앞에 나아오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는 천국과 행복과 승리의 길이시오. 자유케 하시는 진리요. 믿는 자에게 영원한 생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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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예수님이 곧 오실 징조들을 보시고 예수님을 믿으세요
주님은 곧 오십니다
여러분이 지식이 매우 빠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21세기는 20세기보다 주님의 재림이 가까워진 세기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21세기를 맞이하여 주님의 재림보다는 물질의 풍요와 지식의 정보화에 더 관심을 갖고 있으며,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이룩하실 신천신지 보다는 인간이 이룩할 지상의 밀레니엄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성경에 분명히 약속되어 있는 사건입니다. 거듭남에 관해서는 9회, 세례에 대해서는 20회, 회개에 대해서는 70회, 그러나 재림에 대해서는 380회나 언급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2000년이 되어도 재림이 있지 않으니 사람들은 재림을 의심하며 부인하려 합니다. 그러나 바로 이런 때가 주님이 재림하실 수 있는 위기인 것입니다. "안전하다", "평안하다" 할 때, 인간이 "생각지 않은 때"가 인자가 오실 때입니다.
1.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오늘 날 보여지는 재림의 징조들입니다.
예수께서는 재림의 징조로 전쟁을 말씀하셨습니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10절), 요한 계시록 16장 여섯째 대접에서는 아마겟돈 전쟁이 세계적 전쟁이 될 것을 말했습니다.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계 16:16). 그런데 20세기의 모든 전쟁들은 세계 대전이었습니다. 1차 대전, 2차 대전, 한국전, 월남전, 중동전, 걸프전 등. 전쟁은 아브라함 시대에도 있었고, 다윗 시대에도 있었고, 이조 시대에도 있었으나, 그런 전쟁들은 어디까지나 국지전이었고, 세계 대전은 아니었습니다. 20세기에 들어 이러한 세계 대전들이 일어난 것은 특이한 현상이라 하겠습니다. 그것은 곧 여섯째 대접이 벌써 실현된 것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마겟돈 전쟁은 어떤 사람들의 말 같이 앞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고, 20세기에 일어난 전쟁들이 아마겟돈 전쟁인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재림의 징조로 내란을 말씀하셨습니다. "난리와 소란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 말라"(9절), 그런데 20세기 들어 특히 내전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보스니아 내전, 소말리아 내전, 르완다 내전, 쿠르트 내전, 코소보 내전, 알바니아 내전 등. 소련은 분열하여 15개 나라가 되었고, 유고슬라비아는 분열하여 7개이 나라가 되었습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유럽 공동체는 앞으로 75개의 나라가 되며, UN은 1000개 나라가 될 것이라 합니다. 내란과 분열의 종족 바이러스가 세계적으로 번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기근이 있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처처에.... 기근과 온역이 있겠고"(11절). 기근은 인류 역사상 없었던 때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20세기의 기근은 과거의 기근과 달리 전세계적인 기근이 되고 있습니다. 적도를 중심으로 한 8억의 인구가 기근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한 UN 보고서는 "인간의 긴 역사에서 이러한 식량위기가 전 세계에 걸쳐 한번이라도 있었는지 의심스럽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또한 지진이 있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처처에 큰 기근과..."(11절), 20세기 들어 지진현상은 두드러지게 그 빈도가 심해지고 있습니다. 학자들의 조사한 바에 의하면, 역사상 지진이 14세기엔 137번, 15세기엔 174번, 16세기엔 253번 있었던 지진이 20세기에 와서는 2250번이나 일어났습니다.
예수께서는 일월성신에 징조가 있을 것이라 하셨습니다(25절). 즉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잃을 것이란 것입니다(막 13:24). 요한계시록의 넷째 나팔, 다섯째 대접 재앙은 이 세상에 어두움이 임할 것이라 했습니다. 일찍이 요엘은 마지막 날에 지구에 검은 연기가 가득 차고 달이 핏빛 같이 될 것이라 했습니다(욜 2:30, 31). 그런데 오늘 날 대기 오염으로 인한 스모그 현상은 이 예언의 성취를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달과 태양이 오염된 대기에 가려 노란 색깔로 보이는가 하면 이를 필터를 통해 볼 경우 핏빛 색깔이 된다고 합니다.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둘째 나팔, 셋째 나팔, 둘째 대접, 셋째 대접 재앙으로 인해 바다가 피가 되며, 강이 쑥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해양오염, 수질오염은 이 예언의 성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마구 버리는 각종 쓰레기로 인해 바다가 붉어지는 적조 현상이 일어나고 있으며, 방사능 핵실험으로 인해 바다가 오염되고, 그리하여 바다의 많은 생물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또한 요한계시록에 보면, 넷째 대접시에 넷째 천사가 대접을 해에 쏟으리니 해가 사람을 태우더라는 말씀이 있습니다(계 16:8). 그런데 오늘 날 지상에서 올려보내는 아황산 가스의 증가로 인해 오존층이 파괴되고 태양의 직사광선으로 인해 사람들이 각종 피부암에 걸리고 있습니다. 또한 지구의 온도가 급격히 상승하여 지구 온난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같이 볼 때, 20세기, 21세기는 요한계시록의 여섯째 대접 재앙까지 일어나고 있는 세기라 하겠습니다.
2.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님께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볼 때에 "머리를 들라"고 하십니다(28절). "머리를 들라"는 말은 세 가지 뜻이 있는 줄 압니다.
첫째, 주님 맞을 준비를 하라는 뜻이 있습니다(시 24:7절 참조). 주님 맞을 준비는 오직 한가지 "기름"즉 "예복"을 준비하는 것입니다(마 25:4, 22:12).
둘째, 당당해지라는 뜻이 있습니다("머리를 들라"는 말은 바로 앞의 "기절한다"는 말과 대조됨). 성도는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워질수록 당당해질 수 있습니다.
셋째, 더욱 많이 힘쓰라는 뜻이 있습니다. 씨름선수들은 이기려 할 때 머리를 들고 전력을 다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재림이 가까워졌기에 여러분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십시요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고 믿지 않으면 심판을 받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고 믿지 않으면 심판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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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스스로 계신 하나님
하나님은 계십니다. 또한 우리 인간들로부터 가까운데 계십니다. 우리들은 하나님 안에서 살고 움직이고 또는 존재하고 있습니다 (행17:27-28). 그러나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이분이 하나님입니다"라고 보여 드릴 수는 없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우주의 존재는 목적이 있다... 별들의 운행, 계절의 변화, 동식물의 구성 등을 본다면 다만 우연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이것이 소경이 아닌 이상 한 분의 주관자가 있다고 말할 증명이 된다"고 했습니다. 아리스토 텔레스도 "우주의 현상과 원인을 보면 절대자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칸트는 "인류가 도덕 본성을 향상시킬 의지로 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심리학자들은 인간에게 종교 본능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1. 우주의 신비와 질서를 보면
우주 만물과 그 질서를 보면 하나님의 존재를 알 수 있습니다.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히3:4). 조그만 집이라도 세운 사람이 있는데 그보다 큰 태양, 달, 별, 지구상의 모든 것을 지은 분이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중국의 만리장성을 볼 때 약 2천년 전에 이것을 계획하고 추진했던 진시황제를 생각하게 됩니다. 우주 만물도 이것을 계획하고 지으신 분이 있는데 이분이 곧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 도다』(시19:1). 『네가 묘성을 매어 떨기 되게 하겠느냐? 삼성의 띠를 풀겠느냐? 네가 열두 궁성을 때를 따라 이끌어 내겠느냐? 북두성과 그 속한 별들을 인도하겠느냐?』(욥38:31-32). 이 말씀은 하나님의 능력의 신비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천문학자들의 말을 들어 보아도 우주계의 신비는 놀랍습니다. 그 많은 별들이 한치의 오차없이 각자의 궤도를 운행하는 것이나, 지구상에 있어서의 사계절의 정확한 변화나, 자연계의 각종 현상들이 질서있게 일어나는 것들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따라서 우주 만물의 존재와 이것들이 질서있게 유지되어 있다는 것을 보아도 하나님의 존재를 알수 있습니다.
2. 생명의 신비를 보면
생명은 경이롭습니다. 많은 과학자들이 연구했지만 아직도 생명의 본질에 관한 정확한 지식을 파악하고 있지 못합니다. 일체의 생명은 제 나름대로 생명력을 가지고 생활하며 번식하고 있습니다. 이것에 관해서도 아직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합니다.
인간은 인공위성을 만들고 우주까지 왕래할 수 있는 정도로 지혜가 발달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 작은 식물의 종자 한 알도 만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죽이는 일은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공적으로 생명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성경에는 『이제 짐승에게 물어보라. 그것들이 네게 가르치리라. 공중의 새에게 물어보라. 그것들의 또한 네게 고하리라. 땅에게 말하라. 네게 가르치리라. 바다의 고기도 네게 설명하리라. 이것들 중에 어느 것이 여호와의 손이 이를 행하신 줄을 알지 못하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욥12:7-9). 따라서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을 잘 살펴보면 이것들을 지으시고 다스리고 계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3. 인간에게 있는 종교심을 보면
인간은 만물의 영장입니다. 또한 인간이 동물과 크게 다른 것 중에 하나는 종교심(宗敎心)에 있습니다(행17:22-23).
세계 어느 곳을 가더라도 문명인이든 미개인이든 종교를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의 가르침이 없어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어째서 일까요? 이것은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얼굴을 못 본 고아가 마음속에서 "나를 낳아 준 부모는 누구일까?"라는 의문을 가지는 것은 자기를 낳아 준 부모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처럼 인간이 하나님을 찾는 종교심이 있는 것도 하나님으로부터 지음을 받은 것을 무의식적으로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많은 것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뜻밖의 재난과 위기를 만났을 때 숨겨져 있는 종교심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는 종교심이 있다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왔고 하나님이 분명히 계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4. 기적을 보면
성경에는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히2:4). 하나님은 많은 기적을 세상에 나타내 주시고 하나님 자신의 존재를 실증하셔서 세상 사람들이 믿고 따르도록 했습니다.
약 3천5백년 전에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 모세를 통해서 열가지 큰 재앙을 나타낸 일,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홍해를 나누어 길을 내신일, 시내 반도의 신광야에서 40년 간 만나를 내려서 약 200만명의 이스라엘 백성을 먹이신 일, 기타 많은 예자를 통하여 나타낸 기적 등....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또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 많은 기적을 행하셨고 제자들과 말세의 참 교회를 통하여 많은 기적을 나타나 보이셨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의 능력을 초월한 초자연적인 기적의 신비한 역사는 전능한 하나님이 아니면 행할 수 없는 일입니다. 따라서 이와 같이 나타난 표적과 기적은 그것을 행한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합니다.
5. 예언의 성취를 보면
『내가 종말로 처음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사46:10). 이 말씀과 같이 하나님은 장래의 일을 처음부터 예언하시고 실제 그와 같이 성취하셨습니다. 그 가운데서 세 가지 실례를 들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에게 장래에 될 일을 꿈으로 보이셨습니다(단2:28-45). 이 꿈을 통해 보이신 예언은 그 후 약 2.500년에 걸쳐 바벨론, 메디아, 페르시아, 그리이스, 로마 등에 의해서 성취되었습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가 처녀에 의해 출생한다는 예언이 있었습니다(사7:14). 이것은 700년 후 예수 그리스도가 처녀 마리아로부터 출생함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셋째, 유대국이 멸망할 것과 때가 이르면 재건 될 것이라는 예언이 있었습니다(마23:37-38, 24:1-2, 겔39:27-29). 유대국은 주후 70년에 로마 군에 의해 멸망되었지만 1878년이 지난 1948년에 이스라엘 나라가 재건됨으로써 이 예언이 성취되었습니다.
이상의 사건에서와 같이 하나님은 2천년 혹은 2천 5백년 후의 미래의 일을 예언하고 그와 같이 성취하십니다. 전지 전능한 하나님 이외에 그 누가 이와 같은 능력을 흉내라도 낼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이러한 예언의 성취는 하나님의 존재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
6. 성령이 내리는 것을 보면
하나님은 영이십니다(요4:24). 그리고 하나님의 영을 성령이라고 합니다. 이 성령이 사람의 안에 거하게 됩니다. 성경에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14:17).
또한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요일3:24). 성령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자안에 거합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은 자는 방언을 말하게 됩니다(막26:17, 행10:44-46, 19:6). 따라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성령을 받는 것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물이 보이지 않아도 그 그림자를 보면 그 사물의 존재를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하나님은 영적 존재자이므로 우리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이 창조한 우주 만물을 통해 또는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키 위해 주어진 성경의 가르침을 통해서 하나님의 존재를 핑계치 못할 것입니다(롬1:20).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너희가 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렘29:13). 하나님을 아는 지혜와 계시의 영이 여러분에게 내려 하나님을 알게 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놀라운 축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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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실상
저는 오늘 로마서 1장 18절로 32절의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실상"이라는 제목으로 여러분과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는 믿지 않고, 그 머릿속에 세상의 지식으로만 가득 채운 어떤 사람들은 복음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면서, 예수 믿으면 구원받아 천국 간다는 말은 무식쟁이나 하는 말이라고 조롱합니다.
그리고 예수를 안 믿어도 윤리와 도덕에 어긋나지 않게 살고, 인류를 위한 봉사를 잘 하면 천국간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복음은 이런 것이 아닙니다. 복음이란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거듭나 영생을 얻음으로 영원한 천국에 깊이 뿌리박고, 죄책과 정죄에서 해방되어 자유와 기쁨을 맛보며, 허무와 무의미에서 벗어나 삶의 가지를 얻게 되며, 죽음에서 부활을 가져오는 하나님의 능력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죄와 마귀와 절망을 이기고, 질병과 가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창조하고 건설해 나가는 것이 복음입니다.
또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합니다. 믿어서 의로움을 받고 나면 체험이 다가오기 때문에 더욱 믿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인이 되는 것은 믿음으로 되는 것이지 우리의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는 법적인 위치를 얻은 후, 성령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행위에 열매를 맺게 됨으로 날이 갈수록 성결의 생활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복음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의를 받아 들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게 됩니다. 성경 로마서 1장 18절에는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음으로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감사치도 아니하는 자들은 어떤 상태에 빠지게 될까요?
저는 오늘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의 실상이 어떠한가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은 우상숭배의 더러움에 빠지게 됩니다.
사람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저 아프리카 정글에 살면서 알려져 있지 않은 족속에게까지라도 종교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육신의 세계를 초월하여 영원자를 찾는 심정이 그 마음속에 분명히 새겨져 있습니다.
또한 자연만물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우리는 사실 밤하늘에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을 보게 될 때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비한 창조의 숨결을 느끼게 됩니다. 조그맣고 아름다운 꽃들, 그 넓은 바다와 그 가운데 풍성하고 다양한 어족들, 이러한 자연만물은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비춰주는 거울의 역학을 합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께서 리에게 부여해 주신 본래의 심성을 죄악으로 짓밟지 않고 정결케 하여 천지와 만물을 바라보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분명히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진실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알고 그를 영화롭게 하고 찬미 드리기는 커녕 우상사신에게 절합니다.
세계 모든 종교의 절대다수가 우상사신을 섬깁니다. 또한 그렇지 않으면 권력이나 돈을 우상으로 섬깁니다. 이 세상의 불신자시고 권력이나 돈이나 쾌락등을 우상으로 섬기지 않는 자가 과연 얼마나 있겠습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이 세상에서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을 섬기고, 그렇지 않으면 권력과 돈 쾌락과 우상을 섬기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은 자신 속에 분명히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양심의 소리를 듣지 않고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양심의 소리를 듣지 않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아담과 하와이래 마귀의 음성을 들은 수많은 인간들이 우상숭배의 더러움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은 음란의 죄악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가 정말 마음 중심으로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 중심에 하나님 두기를 우리가 원치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버려 두심으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의 자랑대로 살도록 방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마음 중심에 하나님 모시기 원치 않는 자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 두심으로, 그들은 자신의 몸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떠나게 되면 반드시 음란이 뒤따르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음란이 깊어지면 이제는 동성애로 타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수년 전에 제가 파리에 갔을 때 샹제리제 에서 식사를 하다가 기절초풍할 광경을 보았습니다.
두 남자가 식당에 들어왔는데 한 남자는 입술을 새빨갛게 바르고 얼굴은 여자처럼 핸드백을 들었는데 정말 가관이었습니다.
그 남자는 블루진 블라우스를 입고 하이힐을 신고서 남자 팔을 잡고 마치 여자처럼 따라다닙니다. 그런데 그런 쌍이 한둘이 아니라 여럿이었습니다. 정말 눈뜨고 보기가 힘들 정도였습니다. 미국에도 동성애에 빠진 사람이 수없이 많습니다. 동성애를 합법화시키기 위한 법적 투쟁을 하고 있을 정도인 것입니다.
구약성경에는 동성연애자는 돌로 쳐죽이라고 명하고 있고, 신약시대에도 이방인의 죄 가운데 무섭게 심판을 받은 죄가 바로 동성연애입니다.
동성연애자들은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게 되는 것입니다. 즉, 사회적 비난과 심리적 보응을 그 자신에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는 교회는 동성연애를 절대로 허락할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자는 음란의 더러움에 빠지게 되고, 그것이 더 타락하여 동성연애로 전락하여 여자끼리 살고 남자끼리 사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가장 무서운 죄중의 하나입니다. 만일 이런 죄 가운데 있는 사람이 있다면 속히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은 합당치 못한 갖가지 일을 하게 됩니다.
성경 로마서 1장 29절로 31절에는 하나님께서 상실한 마음대로 버려둔 사람들의 온갖 더러운 타락의 실상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취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이러한 여러 가지 죄를 분류해 보면, 인간 심성에 뿌리박고 있는 근본적인 죄와, 다른 사람에 대한 마음의 죄와 외부적인 행동으로 나타나는 죄, 그리고 인간의 기본적인 윤리, 도덕을 무시하는 비인간적인 죄로 나눠집니다. 우리는 우상 숭배나 살인, 간음 등만을 큰 죄로 여기고 그 외의 다른 여러 가지 죄들은 사소하게 여겨서 방치해두거나 무시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살인죄나 남을 비방하여 수군수군하는 죄나, 부모를 거역하는 죄나, 스스로를 자랑하는 죄 등의 모든 죄가 똑같이 사형에 해당하는 것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큰 죄나 작은 죄나 모든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수많은 사람들은 이런 죄들을 옳다고 하고 있습니다. 죄를 지어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뻔뻔스러운 도를 취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실상인 것입니다.
여러분,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먹으면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된다고 마귀의 유혹에 빠져 선악과를 따먹는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로 범죄한 인간은 선악을 알지라도 결코 선을 행할 수 없는 죄의 수렁에서 헤매다가, 끝내는 죄의식 가운데서 멸망하고 마는 처참한 상태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과연 누가 이 죄와 사망의 세력에서 우리를 건져낼 수 있겠습니까?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죄책과 낭패와 불안과 허무로 고통당하는 분들은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나오십시오.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죄악에서 벗어나 생명에 이르는 길이 결단코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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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영원한 기쁨의 근원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기쁨은 우리의 삶에 활력을 가져다 줍니다.
그래서 마음에 기쁨이 충만하면, 삶의 의욕과 용기가 솟아나 세상을 힘있게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에서 기쁨이 사라지면, 삶의 의욕이 없어지고 조그만 일에도 쉽게 좌절하거나 낙심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쁨을 소유하려고 온갖 애를 다 쓰지만, 이 세상에서 얻는 기쁨은 일시적이고 순간적이기 때문에, 참된 만족과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참되고 영원한 기쁨을 소유할 수 있을까요?
영원한 기쁨의 근원은 바로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받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그래서 인간만이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영원하신 창조주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 때, 하나님의 기쁨이 충만하여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 기쁨을 성경 시편 16편 8절로 9절에서 표현하기를“내가 야웨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한다”고 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기쁨의 근원 되신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야지, 그렇지 못하면 기쁨은 사라지고 쓰디쓴 인생의 허무와 절망만 남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그러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자, 그로 인해 인간은 영이 죽고 그들과 하나님 사이에는 죄악의 담이 가로놓이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교제가 단절되자, 그 마음에서 기쁨은 사라지고 불안과 두려움이 몰아쳐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불안과 두려움을 이기고 참되고 영원한 기쁨을 소유하려면, 먼저 하나님과 의 관계를 회복해야만 합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가로막혀 있는 죄악의 담을 허물고 우리 영혼이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 로마서 3장 23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누가 이 죄의 담을 허물 수 있습니까?
하나님만이 우리 죄악의 담을 허무실 수 있습니다. 그 때문에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되셔서, 낮고 천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죄사함과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시고 마지막에는 우리 죄악의 담을 허무시기 위하여, 온 인류의 죄짐을 홀로 지시고 십자가에서 피흘려 돌아가신 것입니다.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우리는 과거, 현재, 미래의 죄를 모두 용서받고, 성령으로 거듭나서 다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성경 히브리서 10장 19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시대의 성전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만나 주시는, 기쁨과 은혜의 장소였습니다.
솔로몬 왕의 가장 기릴만한 업적은,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한 일입니다.
솔로몬 왕은 7년동안 성전을 건축한 뒤, 낙성식을 거행했습니다.
왕과 온 이스라엘 백성은 야웨의 전 앞뜰에 모여, 성전을 거룩히 구별하여 하나님께 봉헌하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솔로몬은 낙성식이 끝나고 백성들을 집으로 다 돌려보낸 후에도,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성경 열왕기상 8장 66절에 보면“야웨께서 그 종 다윗과 그 백성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모든 은혜를 인하여 기뻐하며 마음에 즐거워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이 성전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임마누엘”평강의 왕으로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 가운데 성령으로 임재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큰 기쁨과 은총을 맛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신약성경 사도행전 8장 7절에는 초대교회의 빌립 집사가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복음을 증거했을 때 “많은 사람에게 불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지리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으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고 했습니다.
이와같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 용서함을 받아야,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우리 영이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서,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눌 수 있고, 하나님의 영원한 기쁨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쁨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을 통해 영원토록 솟아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경 요한복음 7장 37절로 38절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생수의 강” 이란 성령께서 주시는 영원한 기쁨을 의미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충만히 임하시면, 하나님의 의와 희락과 평강이 우리 속에서 생수의 강같이 흘러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공부함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성령님은“진리의 영”이시기 때문에, 항상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는 결코 성령의 충만함을 힘입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도가 성경을 읽고, 공부하고, 그 말씀을 들을 때, 성령께서 역사하사 영적 기쁨으로 충만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께서 넘치는 기쁨을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경 요한복음 16장 24절에“지금까지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려면, 무겁고 힘든 짐을 져야 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때로 좌절되고 낙심될 때도 솔직히 많습니다. 태산 같은 염려 근심 때문에 잠못 이루는 밤도 있습니다. 그러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기도로 주님 발 앞에 다 내려놓고, 성령께 그 짐을 내어 맡기면, 근심 걱정은 떠나가고 우리 마음에 기쁨이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쁨을 잃어버리면 삶은 가물고 메마른 광야와 같이 무미건조합니다.
돈이나 명예나 지위, 권세가 우리에게 영원한 기쁨을 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만이, 영원한 승리와 행복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야웨를 기뻐하시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께서는 영원한 기쁨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을 모시고 복되고 기쁘게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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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죽음 건너편의 세계
누가복음 16장 19∼31절
사람들은 이 세상의 삶이 전부인 줄 알고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이 세상의 삶이 결코 끝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삶은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안개며 죽음 건너편에는 영원한 세계가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누리든지, 영원한 멸망을 받든지 양당간에 심판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어떤 부자와 거지 나사로에 관한 이야기를 가지고 죽음 건너편에 관한 실제적인 몇 가지 사실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이 세상에서는 부유했으나 하나님께 대해서는 극히 가난했던 어떤 부자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① 권력가였던 어떤 부자는 세상적인 것에만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에 영적인 삶은 극도로 비난해지고 말았습니다.
② 이 세상이 좋고 즐겁다하여 영원히 세상에 안주해서는 안됩니다.
2. 이 세상에서는 가난했으나 하나님께 대하여 부유했던 거지 나사로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① 나사로는 극심한 가난과 질병으로 싸우면서도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았습니다.
② 낭패와 절망과 질병으로 깨어지고 부서진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와 영원한 삶 에 대해 진지한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3. 죽음 건너편 세계의 실상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① 죽은 나사로는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 품에 들어갔고 부자는 죽어 음부에서 고통 중에 있다고 기록되고 있습니다.
② 음부에서는 기도가 거부당하는, 즉 모든 희망이 없어진 절망적인 세계에 영원히 있 어야 한다는 그것이 뜨거운 불보다 더욱 괴로운 것입니다.
③ 나사로는 아브라함 품에서 세상에서의 모든 고통을 위로 받고 기쁨과 평안 속에 안식하 고 있습니다.
결 론
우리가 세상을 사는 동안에는 이것이냐 저것이냐 선택의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삶의 종착역에서는 선택권이 주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늦기 전에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십시오. 예수님 앞에 엎드려 믿음으로 은혜를 간 구하면 예수님께서 자비한 손으로 붙잡아 주시고 그 영원한 나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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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우리들의 고향
창세기 2장 4∼17절
아담과 인류의 고향인 에덴 동산에는 어떤 것이 있었는지 의미를 알아봄으로써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생명 나무가 있었습니다.
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것인가,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만으로 살 것인가 선택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예수 그 리스도를 영접한 우리에게도 오늘날 이 문제가 대두되었습니다.
② 생명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말씀에 절대 순종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생활을 하라고 말 씀하십니다.
③ 선악과로 유혹했던 마귀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유혹하여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 게 합니다.
④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의 법을 물리쳐 이겼습니다(로마서 8 : 2).
이 말씀을 굳게 의지하여 마귀의 유혹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을 따라 가십시오.
2. 보기에도 아름답고 먹기에도 좋은 실과 나무가 풍성히 있었습니다.
①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활에 필요한 것을 예비하셨습니다.
②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사업 문제, 물질 문제, 생활 문제로 고민하거나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3. 네 개의 강이 흘렀습니다.
① 강은 성령님을 의미합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 와서 마셔라(요한복음 7 : 37).
② 비손강이 여러분 삶에 임하면 정금과 진주와 호마노와 같은 보화와 축복이 넘치게 됩니다.
③ 기혼강은 솟아오른다는 뜻으로 기혼강이 여러분 심령에 흐르면 지혜와 명철이 넘쳐 머리되고 꼬리되지 않 고 위에 있고 아래 있지 않게 됩니다.
④ 힛데겔강이 여러분 삶 속에 흐르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풍성해 집니다.
⑤ 유브라데강은 크다는 것을 의미하며 유브라데강이 여러분의 심령 속에 흐르면 신앙이 성장하고 인격이 고 상해지며 생활이 창대해지게 됩니다.
결 론 :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에덴 동산을 우리의 마음 속에 옮겨 주셨습니다. 에덴은 기쁨이라 는 뜻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모신 우리는 에덴 동산의 기쁨과 부요와 축복이 넘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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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복음은 민족을 살리는 생명입니다
민족이 잘 되는 길은 오직 복음을 살리는데 있습니다. 복음을 잘 받으면 흥하고 복음을 거절하면 망합니다. 서구의 역사를 살펴보면 러시아나 프랑스에서는 혁명이 일어났고,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러시아 정교회는 교회는 있었으나 살아 있는 복음의 증인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러시아는 공산당에 의해 혁명이 일어났고 기독교인을 핍박하고 교회를 폐쇄할 때 세계에서 가장 살기 힘든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영국에서는 존 웨슬레(John Wesley)와 찰스 웨슬레(Charles Wesley)의 부흥운동이 영국을 피의 혁명에서 구해낼 수 있었고, 독일은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의 종교개혁이 독일을 발전시켰으며, 미국에서는 찰스 피니(Charles G. Finny)와 무디(Dwight L. Moody)의 부흥운동이 미국을 문명국으로 발전시킨 것입니다.
이처럼 세계의 역사는 복음을 받아 그 정신으로 살아간 사회와 국가는 흥했으나, 그렇지 못한 나라는 쇠퇴의 길을 걷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 줍니다. 복음은 다름 아닌 민족을 살리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정의를 실현하는 선구자입니다.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민족이 어려울 때 끝까지 고난의 종이 되어준 교회에 이런 찬사를 보냈습니다. "히틀러가 나치스를 만들어 독일을 독재화할 때 나는 대학의 지성인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대학 교수들은 즉시 현실과 타협하며 아첨을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신문과 언론에게 기대를 걸어보았습니다. 그러나 며칠이 못되어 이들은 필봉을 놓고 말았습니다. 나는 평소에 교회에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교회만에 독재자에게 항거하여 줄을 지어 감옥으로 향하는 것을 보고 나는 교회에 한없는 찬사를 보냈습니다." 함석헌 선생은『뜻으로 본 한국역사』라는 책에서 유교는 관혼상제에 영향을 주었고, 불교는 성황당을 짓고 아들을 낳아주는 믿음을 주었지만, 기독교는 복음을 이 땅에 전파하여 이 민족을 어두움에서 구해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이 민족을 지켜 온 것은 복음이었습니다. 우리 민족을 우매한 미신에서 구해낸 것은 바로 기독교 복음이었습니다. 일제시대 민족의 독립운동을 주도한 세력이 바로 교회였고, 해방 이후 혼란한 사회주의 사상에서 민족을 지켜온 것도 역시 교회였습니다. 갖가지 구조악과 사회악, 부패와 타락, 어둠의 세력과도 맞서 싸운 것도 역시 교회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민족이 오늘에 이른 것은 바로 기독교 복음의 힘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부흥은 역사의 최대의 사명입니다. 그러므로 가까운 교회로 가셔서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으십시요 - 이중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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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미국의 유명한 통계학자로서 국가 재정에 관련한 책을 쓴 로저 밥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국가의 번영은 그 나라 국민의 지적 영적인 성장에 달려 있다. 돈이나 부유함에 달려 있지 않다.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스페인 등과 같은 나라들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했던 나라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몰락했다. 그들이 부가 자신을 구하기는 커녕 멸망을 재촉했다는 사실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우리나라(미국)는 지금 가장 부유한 선진국가지만 머지 않아 곧 2류 국가로 전락하고, 그 다음엔 땅으로 곤두박질치게 될 것이다."
프랑스 사람 토크빌은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가서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습니다.
"나는 미국의 위대성을 발견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미국의 항구, 비옥한 토지, 광산이나 상업이 번창하고 있는 곳에서는 그 위대함을 찾을 수 없었다. 미국의 한 교회에 들어가 목사가 외치는 정의로운 설교를 듣기 전까지는 미국의 위대한 힘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말하거니와 미국은 위대하다. 왜냐하면 미국은 선하기 때문이다. 만약 미국이 그러한 선함을 계속 간직한다면 미국은 영원히 위대할 것이다."
그렇습니다. 한 나라의 위대한 힘은 경제력이나 군사력에 있지 않습니다. 큰 경제력이나 군사력은 오히려 멸망으로 인도하는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진정 힘있는 나라가 되려면 그 나라의 정부와 국민이 정직하고 선을 추구해야 합니다. 진리가 큰소리 치는 나라, 윤리와 도덕이 살아있는 나라, 백성이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아는 나라가 강한 나라입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에서 시인은 "여호와로 자기 하나님을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빼신 바 된 백성은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군대나 많은 말들이 구원하는 힘이 되지 못하며 오히려 하나님이 우리의 도움과 방패가 되신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오늘은 봉독한 본문을 중심 하여 "여호와로 하나님을 삼은 나라"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국가란 무엇인가?
먼저 "여호와로 하나님을 삼은 나라가 복이 있다"는 말씀을 드리기 전에 국가란 무엇인가를 살펴보겠습니다. 본 헤퍼 라는 독일의 신학자는 국가를 하나님의 위임으로 이해했습니다. 국가는 교회와 가정과 더불어 하나님이 세우신 제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회에 말씀을 주셨고 국가에게는 칼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인간 세상의 현실은 칼도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국가를 세워 사자로 삼으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이 정하신 바라...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롬13:1-4)
이처럼 국가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선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자입니다. 국가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선한 목적을 이루는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국가의 정부는 부패하고 타락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는커녕 백성들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니버는 서로 상반되는 듯한 국가에 대한 두 가지 견해를 말했습니다.
첫째, 사회의 질서와 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튼튼한 정부가 요청된다. 둘째, 권력이 집중된 국가나 정부는 부패하기 쉽다. 그러므로 교회는 국가 정부가 튼튼하기를 기도함과 부패를 방지하기 위하여 예언자적인 비판을 던져야 합니다. 그래서 튼튼한 정부가 사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과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애쓸 때 복 있는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구원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묻습니다. 구원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요?
이 질문에 대한 확실한 답은 성경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는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논리 정연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째, 당신이 죄인임을 인정하십시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다가』(롬3:23).
먼저 당신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죄의 결과는 저주, 비참함, 어두움, 타락, 파멸 그리고 영원히 불 속에서 고통받는 지옥입니다.
『범죄하는 혼은 죽으리라』(겔18:4).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말미암은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이라』(롬6:23).
둘째, 당신의 죄를 회개하십시오
『너희는 회개하고 돌이키라. 그러면… 너희 죄들이 지워지리라』(행3:19)
당신은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란 지금보다 조금 더 잘하기 위한 결심 정도가 아닙니다. 단지 죄를 자각하여 깊이 깨닫는 것도 아닙니다. 자신이 죄를 지었다는 것을 머리로는 깨달아 알고는 있으면서도 정작 그 죄를 마음으로부터 회개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복음전도자 무디는 진정한 회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대적하여 등을 돌린 채로 태어난다. 그러나 그가 진정으로 회개할 때는 몸을 돌이켜 하나님께로 얼굴을 향하는 일이 일어난다. 회개는 생각의 변화이고 마음의 변화이므로 반드시 행동의 변화를 가져온다."
성경은 죄인인 당신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악인은 자기의 길을, 불의한 사람은 자기 생각들을 버리고 주께로 돌아오게 하라…그가 넘치게 용서하실 것임이라』(사55:7). 당신은 지금까지 마음대로 생각해 왔던 죄에 대한 잘못된 생각들을 버리고 하나님의 기준인 성경을 통해 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늘 당신 곁을 떠나지 않는 죄들로부터 구원해 주시도록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당신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 죽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그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당신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완전히 이루어 놓으신 일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죄 때문에 당신을 대신해서 죽으시고 삼 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당신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해 놓으셨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의 화평을 위한 징계가 그
에게 내려졌고, 그가 맞은 채찍으로 우리가 치유되었도다』(사53:5).
당신의 죄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것입니다.
누구든지 구원받기를 원한다면 해야 할 일이 딱 한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는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안이 구원을 받으리라』(행16:31).
이제 선택하십시오
『네가 네 입으로 주 예수를 시인하고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롬10:9)
당신이 죄와 지옥으로부터 구원받으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개인적인 구세주로 영접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그를 영접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즉 그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니라』(요1:12).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영접하고자 원한다면 다음과 같이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제가 죄인이라는 것과 예수님만이 저를 구원하실 수 있는 유일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저의 죄악된 삶을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지금 마음으로 믿습니다. 저를 구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국전도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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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영원한 사랑으로의 초대
1. 영원한 사랑으로 초대
여러분은 요즈음 눈으로 무엇을 살피시며 살아가고 계십니까?
혹시나 복잡한 세상살이에 부딪혀 자신을 되돌아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한번쯤 이 세상살이의 복잡한 것들을 떨쳐버리고 이 지구의 신비로운 생명의 율동과 온 우주의 찬란한 영광 속에 살아 움직이는 사랑의 빛을 기쁜 마음으로 바라보시지 않겠습니까. 바로 하늘에 계신 전지전능하시고 위대한 창조주의 눈과 마주치게 될 것입니다.
그때에 창조주께서는 사랑의 빛으로 귀하신 여러분의 영혼 속에 스며들어 영원한 사랑의 향기를 나누며 기쁨을 함께 하실 것입니다.
그분은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을 자신의 자녀로써 사랑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진심으로 그분과 함께 행복하고 평화스런 가운데 기쁨과 희망이 가득한 삶이 되었으면 합니다. 참 생명의 빛이신 그분의 진리와 길 가운데로 오시어 사랑의 주인을 발견하시고 그분의 축복을 받는 삶을 통하여 사랑이 가득한 영원한 생명의 열매가 맺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영원한 행복과 생명을 위해 사랑이 가득한 초대의 말씀을 드리오니 기쁜 마음으로 끝까지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다.
사랑하는 여러분! 창조주가 어떤 분인지 알고 계십니까?
이 세상은 스스로 또는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창조주는 자신의 형상과 닮은 인간을 지어내셨습니다. 특별히 인간에게는 영혼을 불어넣어 주셨으며 참된 생명의 진리로 소망과 사랑을 간직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게 해주셨습니다.
우주의 땅과 동식물과 인간을 만들어 내신 위대한 창조주!
그분은 모든 영광을 드러내 보이시고 다스리심은 물론 섭리하고 계십니다. 사실상 인간은 창조주로부터 물려받은 이 세상의 것을 경작 재배하며 살아감은 물론 개척, 발굴, 활용, 이용, 사용 그리고 응용할 따름입니다. 지금도 사랑으로 끊임없이 인간에게 생명을 이어가도록 지혜와 축복을 내려 주시고 계십니다. 이로써 인간 모두가 그분의 영광을 받아 누리고 그분을 찬양하며 영광을 드리는 삶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바로 그분이 유일한 신이시며 통치자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참으로 위대하시고 영원하시며 전지전능하신 그분은 사랑의 하나님, 창조의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 나를 지어내신 하나님,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기회에 살아 계신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분과의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충분히 깨닫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3. 당신의 삶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사과나무가 자라는 목적은 열매를 맺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인간의 삶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인간에게는 천하보다 고귀한 영혼을 지닌 생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능력이 없고 반드시 죽는다는 것과 그 때를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돈, 명예, 권력...등이 인간의 생명을 보장해 주지는 못합니다. 자신을 창조해 주신 주인을 제외하고 인간이 스스로 신을 만들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생명과 운명조차도 해결할 수 없는 아주 미약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을 떠나 영원한 생명을 위해 무엇을 해야할지 모른다면 이는 매우 비참하고 허무한 것입니다.
바로 헛된 것에 속지말고 영원한 생명을 위한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은 생명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고 또한 그분의 은혜와 진리로서 영원한 생명의 열매를 맺기 위하여 그 분 뜻에 합당하고 올바른 신앙생활을 갖추어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4. 인간은 왜 신앙이 필요한가?
인간은 왜 신앙을 갖고 살아가야 하나요?
먹고, 자고, 번식만 한다면 동물과 다를 게 없죠. 영혼을 지닌 인간은 세상에서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하고 귀중한 존재입니다. 바로 인간은 하나님의 신비로운 생명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삶과 죽음, 즉 어떻게 살아야 하고 죽어야 하는가를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을 창조하시고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고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인간은 주어진 존엄한 생명과 그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통해서 구원을 향해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의 길로 돌아와 그 분의 진리를 믿고 의지하는 삶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진실로 신앙을 갖도록 자신의 생명적 가치를 발견하고 그 생명을 위해 하나님의 뜻을 깊이 깨닫고 그 분을 섬기고, 경외하고, 순종하며 그분 뜻대로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에는 온갖 세속적인 수많은 종교, 철학, 미신, 마술, 주술, 비술, 악기(惡氣)...등등으로 인간이 혼돈되어 생명의 주인을 찾지 못하고 우상숭배와 잘못된 판단으로 어두움(죄악)의 길로 빠져 들어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생명의 주인과 함께 올바른 신앙으로 행복한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5. 당신의 생명의 주인은 누구이십니까?
지금 당신은 어떤 주인을 모시고 계십니까?
내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은 내 생명의 주인이 계시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내 생명의 주인을 모르고 방황하여 혼자서 잘못 살아 이 세상을 마친다면 죽은 후에 어디로 가는지 생각해 보셨나요? 동물, 식물과 달리 인간의 영혼은 영원불멸한 것입니다. 바로 영원불멸의 주인이 계신 것입니다.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영원히 죽지 않고 천하보다 귀중한 목숨을 주신 나의 생명의 주인이 곧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내 생명의 주인은 내가 아니고 하나님이시니 그 분을 주인으로 맞아드림으로써 사랑이신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아가는 영광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번 기회에 내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을 발견하여 사랑의 빛이시며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로 돌아오시기를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
6. 나는 누구인가?
정말 여러분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계십니까?
우리를 창조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복음)을 불순종하고 믿음 없이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믿음과 진리도 없이 생명력을 잃은 삶, 이는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이 이르지 못한 것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이로 인해 인간이 하나님과 멀어진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함으로써 범죄하고 타락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과연 인간으로써 생각과 말과 행위로 한점의 흠도 없이 살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참으로 겸손해야겠습니다. 바로 내 자신이 죄악에 물든 죄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인간이 자신만을 믿고 죄악에 머물러 산다는 것은 생명도, 구원도, 희망도 보장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생명의 권능을 부여받을 수 없는 것을 믿고 무관심 속에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이지요. 이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진정 내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이 있는 길을 따라 참된 삶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 현명한 지혜라 봅니다.
7. 공의(公儀)로우신 하나님
여러분은 때로 하나님을 원망해 본 적은 없습니까?
나 자신의 삶은 과연 올바르다고 생각하는지요. 만약 이 세상에 공의가 없다면 사랑의 질서가 무너지겠지요. 사실상 지금도 이 세상은 헤아릴 수 없는 인간의 죄악과 타락으로 사랑의 질서가 무너지고 있는 것입니다. 미움, 살인, 속임수, 이간행위, 전쟁, 음행, 불효, 부정, 욕심, 온갖 죄악들... 이와 같이 인간의 불의로 인한 "죄의 삯(대가)은 사망"입니다. 바로 지옥의 삶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이지요. "사람은 단 한번 죽게 마련이고 그 뒤에는 심판을 받게 됩니다. 죄악에 머물러 있는 자는 형벌을 받는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자비로우시어 인간에게 형벌하시기를 원치 않으시고 사랑과 자비로움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인간 모두가 죄악을 버리고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계십니다. 바로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며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죄악으로 하나님과 멀어진 인간을 다시금 하나님께로 인도해 주어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8. 인간구원의 중보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지금 당신은 누구를 의지하고 생명을 이어가고 있습니까?
인간의 능력과 마음만으로 영원한 생명력을 지탱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과 하나님과의 멀어진 관계를 누군가가 해결해줘야만 생명을 구원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의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성령의 능력으로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바로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해 주시고자 중보자로 오신 것입니다. 실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죄악으로부터 구원해 주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이는 죄악의 인간을 구원해 주시려는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입니다.
9.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계십니까? 죄악에 물든 인간을 구원하여 주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제물로 내어주신 것입니다. 참으로 죄 없으신 예수님은 죄악에 물들어 심판받고 형벌을 받아야할 인간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구원하여 주시기 위해 온갖 고통과 수난으로 대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이는 다시 말해서 죄악에 물든 인간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피를 흘리시고 죽으셨을 때 그 분은 십자가의 피로써 인간의 죄값을 치루어 주셨고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그 사이에 구원의 다리를 놓아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하나님)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여 하나님의 진리대로 계명을 지켜 실천하고 열매 맺는 사람은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지옥의 멸망으로부터 해방시켜 영원한 생명으로 구원
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저버리지 마시고 기쁜 마음으로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이 생명의 진리는 인간 모두에게 주어지는 기쁨의 복음입니다.
10. 당신은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선택을 망설이십니까? 진실로 천국과 지옥은 있습니다. 인간을 창조해 주시고 이 땅에 모든 것을 내어 주시고, 죄악의 인간을 위해 인간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화목제물이 되시어 십자가로 목숨까지 바쳐 구원해 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저버린다면 인간으로서 천국의 참생명과 구원을 어디서 누구한테 얻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영원한 사랑의 향기를 기쁘게 받아 주십시오. 진실로 깊이 깊이 생각하시고 자신의 진로를 선택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천국의 희망과 길을 잃고 이 세상 죄악의 속임수로 이끄는 악마의 우두머리인 사단과 그를 따르는 무리(마귀)들 속에 잠겨 산다면 영원한 지옥의 고통이 따르고,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는다면 영원한 부활생명으로 천국의 삶이 보장되는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빛으로 여러분을 감싸주시고 계십니다. 천국은 사랑, 기쁨, 평화, 공의 그리고 영광이 가득찬 곳이고 지옥은 인간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유황불과 여러 종류의 고통이 가득한 곳입니다. 1초라도 늦기 전에 죄악의 어두움으로부터 벗어나시어 천국을 향해 사랑의 빛 가운데로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 살아있을 때 영원한 생명의 구원을 받는 중대한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11. 구원받은 자의 영원한 부활 생명
전능하신 예수님은 우리 인간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나 그 분은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부활하시고 승리하셨으며 모든 권한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 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특권)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 어떤 죄인이라도 누구든지 진실로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바라며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심은 물론 구원의 기쁨을 함께 하고 선하게 하시어 구원의 영광을 함께 하시려는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 인간 모두를 사랑하시어 인간의 죄로 희생되신 예수님의 사랑을 겸손하게 받아들여 믿음으로 섬기고 회개해야 옳은 줄 압니다. 이로써 하나님의 은총으로 죄악의 사람으로부터 해방되고 영원한 부활 생명과 천국의 삶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천국의 소망을 간직하시고 믿음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12. 예수님을 믿는 신자가 되려면
혹시 내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 하고 의심한 적은 없습니까?
인간의 그 어떤 죄라도 용서하시고 구원해 주시는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사랑으로 이 땅과 인간을 창조해 주신 하나님과 영원한 부활 생명으로 이끌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기독교 신앙생활을 하겠다는 결심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이는 새롭게 내 자신을 설정하고 영원한 천국의 기쁨과 희망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인 교회 문을 두드리십시오. 또는 이웃의 예수님을 믿는 성도에게 문의하여 주십시오. 사랑으로 잘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모두가 항상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계십니다. 천국을 놓치지 마십시오. 이 세상의 삶은 잠깐이고 부활 생명의 영광은 영원한 것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우리에게 죽음을 이기게 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예수 그리스도처럼 부활하여 영원히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족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아 영원한 기쁨의 장소인 천국에서 살아가게 되기를 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 드리겠습니다. 이제 죄악을 멀리하고 화해와 용서로서 온 인류와 나라를 사랑하며 살아가십시오. 모두가 한가족이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여러분 가정에 하나님의 평화와 축복이 있기를 빕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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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불구하고도의 사랑을 아십니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창조주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며 당신의 삶을 위한 목적을 갖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자기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1:27)
-인간의 목적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가운데서 진정한 삶의 목적을 찾게 됩니다.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고전1:9)
-죄(하나님과의 분리)
그러나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합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반역하고 떠나갔습니다.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사59:2)
-죄인된 우리
그 결과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과 평안을 누리지 못하고 죽음, 불안, 허무 등에 시달리게 된 것입니다. 성경은 이런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죄인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6:23)
-죄의 결과
심각한 문제는 이와 같은 죄로 인해 사람에게 죽음과 심판이 오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이런 죽음의 현상들(심리적, 사회적, 환경적 소외)를 보게 됩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며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죽음의 영향 밖에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즉 죄가 있는 모든 사람은 자신의 죄로 인해 죽게 되며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길은 어디에?
어떤 이는 돈, 선행, 철학, 쾌락, 종교 등으로 그들은 자기가 보기에 옳은 대로 최선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잠14:12) 죄를 지은 사람의 노력으로는 완전하신 하나님 앞에 도무지 도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나님 편에서 하나의 해결책을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길은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주신 죄(죽음)의 해결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받아야 할 죄의 형벌을 그로 하여금 대신 받게 하셨습니다(롬5:8). 예수님만이 우리의 죄를 해결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회복케되기를 기뻐하심이니라(골1:20)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9,10) 앞의 사실들이 당신에게 의미있는 일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 예수님을 당신의 주인으로 모셔들여야 합니다.
-함께 영접기도를 합시다
예수님, 저는 죄인임을 시인합니다. 예수님께서 저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죽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이제 예수님을 제 마음에 모셔들입니다. 제 마음에 들어오셔서 제 삶을 다스려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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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당신은 지금 어디로 가나요?
무엇을 위해 일하세요?
우리의 인생을 24시간으로 볼 때 당신은 지금 몇 시쯤에 이르셨는지요?
잠시,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세요.
과연 무엇을 위해 일해 오셨습니까?
그래서 만족함을 얻으셨습니까?
성경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 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시90:10)
당신이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이만큼 살아왔듯이 그렇게 삶은 지나가 버릴 것입니다.
이렇게 날아가는 듯한 삶의 시간 속에서 정말 가치있고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재물이나 명예나 성공 쾌락은 죽음과 동시에 소멸된 것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당신과 함께 하실 분이십니다.
바쁜 일상에 쫓겨서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오는 것을 미루어 오셨습니까? 지금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들이십시오.
내일이면 너무 늦을지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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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지금 당신은 이런 착각 속에 살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없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다"
"내세는 없다"
"나는 죄인이 아니다"
"양심 껏 착하게 살면 구원받을 것이다"
라는 착각 속에 살고 있지 않습니까?
당신은 이제 그 착각 속에서 벗어나십시오.
선행과 철학, 미신 등으로 구원을 받으려고 노력하지만 이 모두가 헛된 것이며 어
리석은 행동인 것입니다. 이미 예수께서 당신의 죄값을 다 치르시고 영생을 주셨
는데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스스로 멸망을 자초한다면 그 책임은 당신에게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예수님을 향해 마음을 활짝 여십시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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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천국과 지옥
작성자:윌리암 맥도날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들은 미래에 대해서 적잖은 관심을 가지고 살아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미래에 대한 관심은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제기하게 하였습니다.
모든 것은 죽음에서 다 끝나는 것인가?
죽은 자들은 어디에 가 있는가?
우리가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럼 먼저 다음과 같은 질문을 생각하여 보겠습니다.
1. 사람이 죽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무엇보다 먼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사람은 삼중적인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즉 사람은 몸과 혼과 영의 셋이 합쳐져서 이루어진 존재입니다(살전 5:23). 몸은 유형적인 존재이고, 혼과 영은 무형적인 존재입니다. 사람은 영으로 하나님을 의식할 수 있으며 혼으로는 자아를, 그리고 몸으로는 외계를 의식할 수 있습니다(히 4:12) .
그런데 사람이 죽을 때에는 혼과 영이 다 몸을 떠납니다. 그리고 몸은 무덤 속에 매장됩니다. 이때 믿는 자의 몸은 잠을 잔다고 묘사되고 있습니다(행 7:59,60; 8:2). 그러나 구원받지 못한 사람의 몸은 죽은 것으로 말씀하셨습니다. 혼과 영은 잠을 자는 일이 없습니다. 만약 죽은 그 사람이 구원을 받은 사람이었다고 하면, 그의 혼과 영은 즐거운 보금자리인 천국으로 가는 것입니다(고후 5:8; 빌 1:21,23).
그러나 만약 그 사람이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이었다고 하면, 그의 혼과 영은 슬픔과 형벌의 처소인 음부로 가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6:19-31에서 우리 주님은 죽은 사람들에게도 의식이 있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가르치셨습니다. 위에 인용된 누가복음 16:19-31에 있는 이 중대한 말씀을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2. 지옥이란 어떤 곳인가?
이미 우리가 상고한 대로 불신자의 영과 혼은 죽자마자 음부로 가게 됩니다. 음부는 의식 가운데 고통의 형벌을 받는 곳입니다(눅 16:23-25). 음부에 들어간 영혼은 눈과 혀와 귀와 손가락의 감각과 기억력을 가지고 있는 하나의 사람처럼 묘사되었습니다. 성경은 음부의 형벌에 관하여 여러 가지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음부 이외의 고통받는 또 하나의 다른 처소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다른 처소는 "지옥" 혹은 "불못"이라고 불리우는 곳입니다 크고 횐 보좌의 심판 때에 음부에 있는 영혼들은 무덤에서 부활 될 몸들과 연합될 것입니다. 그때 그리스도께서는 악인들에게 최후의 심판을 선고하실 것이며, 선고받은 그들은 악인들의 영원한 처소가 될 "불못" 가운데 던짐을 받게 될 것입니다(계 20:11-15).
음부는 마치 죄수가 최후의 언도를 기다리는 구치소에 비유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불못은 대법원의 확정 판결로서 종신형을 받아 복역하는 죄수의 교도소와도 같습니다. 이 지옥을 가리켜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 곳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막 9:43-48). 지옥은 의식 가운데 고통의 형벌을 받는 곳입니다.
1) 죄에 대한 형벌은 영원한 것인가?
계시록에 보면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받을 영원한 고통을 묘사할 때 "세세토록"이란 말이 쓰였습니다.
2) 사랑의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랑들로 하여금 지옥에 가도록 허락하실 수 있는가?
① 하나님은 사람들이 멸망받기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게 하면서까지 사람들의 구원을 준비하셨습니다(롬 5:6,8). 따라서 만약 사람들이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를 거절한가면, 그들은 그들 자신의 선택에 따라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②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요일 4:8). 그러나 하나님은 동시에 거룩하신 분이십니다(벧전 1:16). 그러므로 하나님은 죄를 벌하지 아니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③ 사람들은, 병든 사람들을 병원에, 죄수들을 교도소에 그리고 시체는 공동 묘지에 넣는 일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그들에게 사랑이 없음을 말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3) 복음을 전혀 들어 본 일이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들도 다른 사람들처럼 똑 같이 길 잃은 죄인들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만이 그들을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들은 창조물과 그들 자신의 양심을 통하여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롬 1:20; 2:15 시 19:1). 그들이 만약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이 빛을 따라 산다고 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더 많은 빛을 주실 것입니다. 이에 대한 예는 사도행전 10장과 11장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으니 친히 찾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3. 천국이란 어떤 곳인가?
성경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며,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마련된 복지가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천국은 하나의 일정한 장소입니다. 이 "하늘"이란 말은 성경 가운데 세 가지의 다른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첫째로 구름에 둘러 싸여 있는 영역을 가리켜 하늘이라고 불렀습니다(창 1:8). 둘째로는 별들이 있는 영역을 가리켜 하늘이라고 불렀습니다(창 1:17). 마지막으로는 하나님께서 거처하시는 처소를 가리킬 때 사용되었습니다. 바울은 이 하늘을 가리켜 "셋째 하늘" 혹은 "낙원"이라고 불렀습니다(고후 12:2-4).
하늘은 언제나 "위에" 있는 것처럼 언급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단은 이사야 14:13-14에서 "내가 하늘에 올라"라고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 주님께서 현재 천국에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살과 뼈를 가지고 영화로운 몸으로 부활하셔서 천국에 올라 가셨습니다. 누가복음 24:38,39,51; 베드로전서 3:22; 히브리서 1:3을 찾아 자세히 읽어보십시오.
천국에는 현재 수많은 신자들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참 그리스도인은 죽을 때,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기"(고후 5:8) 때문입니다. 이 신자들은 지금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으니, 이 세상에서 사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을 것입니다(빌 1:23).
천국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성경을 쓴 저자들은 천국을 묘사할 적절한 말을 찾지 못하였습니다. 계시록 21:10-27에서 요한은 천국도성의 기초와 벽과 문과 거리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아름다움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그 아름다운 곳에는 질병도, 슬픔도, 눈물도, 고통도, 죽음도 없습니다(계 21:4).
그러나 가장 기쁜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기에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주 예수님은 모든 신자의 마음에 가장 큰 기쁨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믿으십시요)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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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예수님이 누구냐구요?
예수님은 하나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은 이 세상이 존재하기 영원 전부터 계셨습니다.
그 예수님은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죽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죽으실 수 없기 때문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예수님은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 죽음은 비참한 죽음입니다. 저주받은 죽음입니다.
고통스런 죽음입니다. 죄값입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습니다.
그런데 저주 받은 죄인이 죽는 그 치욕스런 죽음을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들의 죄를 대신한 죽음입니다.
그들이 받아야할 죄의 형벌을 대신 짊어지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은지 사흘만에 살아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의 승리입니다.
우리가 다시 살아날 것을 친히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하나님 우편에 계십니다.
예수님은 그곳에서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다시 오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당신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나를 믿어라.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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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인생은 어디로 가는가?
많은 사람들이 인생은 나그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갈 곳도, 길도 알지 못한 채 알려고도 한지 않고 있습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갈 곳을 분명히 알고, 가야할 길을 가고 있습니까?
당신의 목적지는 어디입니까?
당신은 어디로 가고 계십니까?
당신의 친한 친구가, 당신의 사랑하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당신 곁을 떠나 어디론가 가버린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모두 무덤에 묻혔지만 그는 어디로 갔습니까? 당신의 차례가 되었을 때, 당신은 어디로 갈까요? 영원히 말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예수 그리스도 만이 유일한 참 길이십니다.
만고의 진리 되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게 예비하신 구원의 길, 인생의 영원한 숙제인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해답이 제시되어 있는 것입니다.
1. 하나님께로부터 온 인생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1:27).
적잖은 사람들이 사람의 조상이 원숭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것이 얼마나 중대한 일인지 간과한 채 몇몇 과학자들의 주장을 아무런 비평 없이 단순히 인정해 버립니다. 과거 신분사회의 경험이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자신의 조상들이 과거에 어떤 벼슬을 했는가에 대한 자부심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조상은 양반이었다고 믿고 싶어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의 조상이 동물원과 서커스의 구경거리가 되고 있는 원숭이라는 말에 아무런 굴욕감 없이 동의해 버립니다.
그리고 [만물의 영장]이라 자부하기도 하는 앞뒤가 맞지 않는 의식의 혼돈가운데 있다는 것은 실로 개탄스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의 근원은 하나님께 있다고 선언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 되었다고 말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이성적이신 것과 같이 인간을 이성적 형상으로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또한 인간은 선악을 알고 있습니다. 인간의 도덕적 법칙, 윤리적 이상과 그 체계는 모두 하나님의 도덕적 성품을 닮은 것입니다. 인간은 어떤 것을 느끼며 사랑의 감정을 품습니다. 이 또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이와 같은 성경의 선언은 실로 인간이 [만물의 영장]임을 증명해 줍니다. 우리는 바로 하나님에 의해 존재케 되었습니다.
2. 하나님을 떠난 인생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2:17).
하나님은 인간을 교제의 대상으로 사랑의 대상으로 창조하셨고 또한 이들로부터 영광을 얻기를 원하셨습니다. 이는 창조주로서의 마땅한 권리였습니다.
하나님은 최초의 사람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께서 무엇을 요구하실 권리와 순종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계심을 가르치셨습니다. 선포된 내용은 생사가 걸린 의미심장한 것이었습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창3:6)
그러나 첫 사람은 사단의 꾐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식욕의 자극이 아니라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야욕이었습니다. 그런즉, 불순종의 행위는 하나님을 버리고 반항한 철저히 더러워진 마음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 대가는 아담이래 현대에 이르기 까지 전 인류사에 걸친 비극적 역사와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약육강식의 원리는 동식물계 뿐만 아니라 인간들에게서 조차 지배받는 원리가 되었습니다. 인생의 고뇌와 슬픔, 그리고 고통은 최초의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면서 시작된 비극입니다.
많은 이들이 자신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슬픔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의도가 아니었고 바로 인생이 하나님을 떠나면서 자초한 비극의 연속이라는 사실입니다.
열악해져가고 있는 자연환경은 인간의 타락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가를 잘 보여줍니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롬8:22).
우리 인생은 심각하게 고장나 있습니다. 언젠가 "나에겐 무언가 문제가 있다"라는 책을 아는 사람으로부터 소개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 책의 제목처럼 우리는 바로 이 사실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느 자동차 정비사가 여행 도중에 차가 고장나서 고생을 하고 있었습니다. 스스로 자동차에 대해서는 뭐든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기술자였지만 고장난 차를 고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차를 몰고 가던 어떤 노신사가 다가와서 말했습니다. "도와 드릴까요?"
정비사는 무뚝뚝하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차 정비사요."
그는 다시 차 여기저기를 만졌지만 고칠 수 없었습니다. "도와 드릴까요?" 노신사가 다시 물으면서 차의 한 부분에 손을 대자 차는 곧 시동이 걸렸습니다. 노신사는 바로 그 차를 만든 포오드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어느 부분이 잘못되었는지, 또 무엇이 필요한지 잘 아십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당신에게 물으십니다.
"도와 드릴까요?"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시103:14).
우리 인생에게는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아주 큰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생의 심령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죄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
당신의 마음 속에 있는 이 죄는 당신을 결국 영원한 죽음과 심판으로 이끕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3. 인생의 결말
당신은 죽음과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또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아무런 힘도 없습니다. 이렇게 무력한 당신의 필요를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기회를 주셨습니다.
전 대륙이 제 2차 세계대전의 피비린내 나는 살육의 불길에 싸여있을 때, 일본 히로시마 상공에 재빠른 비행기의 편대가 나타나 수 없이 많은 삐라를 하늘에 날리고 사라졌습니다.
"히로시마 시민에게 경고한다! 모든 시민은 8월6일 아침 00시 까지 50리 밖으로 대피하라"
시민들은 영문모를 경고장에 대하여 각기 나름대로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거짓말이다", "설마 무슨 일이 있을려구?", "그 때 가봐야 알지"
그러나 그 중 몇몇 소수의 무리는 급히 가산을 정리하여 가족과 함께 정든 히로시마를 떠나 50리 밖으로 대피했습니다.
1945년 8월6일 아침
서쪽에서 날아온 비행기는 상공을 두어번 선회하더니 조그만 물체 하나를 떨어뜨리고 사라져버렸습니다. 잠시 후 폭음과 함께 죽음의 구름은 온 시가지를 뒤덮었고, 마지막 시간까지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불신은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순식간에 히로시마 시민 30여만 명의 생명과 재산이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비록 원자폭탄의 위력은 잘 알지 못하였지만 종이쪽지의 경고를 받아들인 소수의 무리들은 오십년이 지난 지금도 이 사건의 증인들로 살아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 미공군의 경고보다 더 무서운 경고가 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그 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벧전3:6,7).
모든 인생의 남아있는 길은 죽음과 심판, 곧 파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생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주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모두가 멸망에 이르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4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5,6).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으로 죄 씻음을 받고 새 생명 가운데 살게 됩니다 이 새생명은 부활의 생명이며, 영원한 생명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
또한 죄에서, 심판에서, 해방된 생명입니다(요5:24).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10:28).
하나님이신 주 예수님은 당신의 구주이십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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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인생은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기독교의 핵심은 진리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다고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문의 말씀 안에서 우리 인생은 무엇인가? 라고 생각해 볼 때에 인생은 어디서 왔고, 무엇하려고 살고, 또 얼마나 살다가? 어디로 가는가? 하는 사실은 누구나 한 번은 생각 해 볼 만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이 사실을 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 인생은 어디서 왔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부모님으로부터 더 나아가 할아버지로부터 즉, 조상으로부터 왔으며 이런 과정을 구체적으로 생각하면 진화론에 의해서 원숭이로부터 왔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우리민족은 단군인 곰에게서 왔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 이유에서 단군을 신화라고 주장하는 일각의 사람들이 단군 신전 건립을 위해 힘쓰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한편, 한국 교회들은 지난주간에 대구에서 만명의 신도가 단군상 건립 반대를 위한 궐기대회도 했습니다.
우리의 조상은 결코 곰이나, 원숭이가 아닙니다. 만약 원숭이나 곰이 우리의 조상이라면 지금도 어디선가 원숭이나 곰이 사람으로 변화하고 있어야 할 것이 아닙니까?
그러면 사람은 어디서 왔는가?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흙을 재료로 사람을 만듬으로 인생이 출발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흙에서 왔기 때문에 우리 인생은 언젠가 흙으로 돌아가야 만 합니다.
또한 인생은 무엇하려고 사는가? 먹고, 자고, 낳고 하는 것이 인생인가?
어떤 사람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손이 장례를 지내고 비석을 세우려고 석공에게 찾아갔습니다. 석공이 무엇이라고 적을까요? 라고 물으니 자녀들은 무엇이라 적어야 할지 몰랐습니다. 석공이 묻기를 당신들의 아버지는 무엇을 하시다가 세상을 떠나셨나요? 라고 묻자, 대답하기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 세상 오셔서 그럭저럭 살다가 가셨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석공이 비문에 새기기를 "이 세상에 와서 먹다가 죽다"라고 비문을 섰다고 합니다. 이 얼마나 불쌍한 인생입니까? 만약, 인생이 먹다가 죽는 것이라면 인생은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생의 가치에 대해 말씀하기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겠습니까?
삶의 목적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데 둘때만이 존귀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삶의 목적을 잃어버린 인생은 마치 길 잃어버린 아이와 같이 방황하고, 슬퍼하는 것입니다. 인생은 몇세를 살것인가? 구약에 므두셀라는 969세를 살았습니다.
모세는 120세를 살았고 시편에는 강건해야 80이고 그렇지 못하면 70이라 했습니다. 예로 지금 사람의 수명을 100세로 잡으면 적게 잡았다고 말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100세를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날짜로는 3만6천5백날, 시간은 8십7만6천시간입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누구나 이 만큼 살면 죽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면서도 많은 사람들은 이런 날도 못살고 죽는 것이 80-90%는 될 것입니다. 천년 만년 살 것처럼 생각 하지만 짧은 세월을 사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살다가 어디를 가느냐? 하는 문제가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개중에는 죽으면 무덤에 묻혀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육체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그 영혼은 어디로 가는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환생한다고 생각해서 윤회설을 말합니다. 그 결과 사람이 죽은 후에 소, 돼지, 말 등 동물로 태어나기도 하며 착하고 의롭게 산 사람은 사람으로 태어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살생을 금하고 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기독교의 인생관은 그렇지 않습니다. 인생이 살다가 죽으면, 의인들은 영생의 나라인 천국에 들어가고 악인(죄인)은 영벌을 받는 지옥으로 간다고 마25:46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혹자는 말하기를 천국과 지옥이 있는지 어떻게 아느냐? 가보았느냐? 묻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과 지옥이 분명이 있다고 성경과 예수님 자신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도 보지 않고 믿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설명 할 수가 없습니다. 의사가 되려면 의학 공부를 해야 하고, 과학자가 되려면 과학에 관한 책을 보고 배워서 알게 되듯이 성경을 배우지도, 읽어보지도 못한 사람이 천국과 지옥이 있다, 없다 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죄를 범한 사람은 교도소에 가두어 격리를 하고, 죄를 범하지 않은 사람은 자유로이 살아가는 것은 이 땅에서 천국과 지옥이 있는 것을 보여주는 그림자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죽은 후에 가야 하는 곳을 알고 살아야 합니다. 천국에 확신이 있는 자는 소망을 찾고 인내하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긍지와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게 됩니다. 방향을 모르고 사는 사람은 적당하게 살고 형편에 따라 행동하게 됨으로 바른 인생을 살 수 없습니다. 이러한 결과 무서운 범죄와 부도덕한 일들을 낳게 되기도 합니다.
톨스토이는 인생을 정의하기를 "앞에는 벼랑이고 뒤에는 죽음의 사자가 잡으려고 쫓아오는 상황에 어쩔수 없이 벼랑중간에 있는 칡넣쿨을 붙잦고 있는데 옆에 벌들이 나뭇잎에 꿀을 발라놓은 것을 보고 혀로 맛을 보니 달고 좋아서 꿀맛에 심취해 있는 상황"을 인생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일시적인 향락과 즐거움에 취해 죽음을 생각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생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라는 교훈입니다.
솔로몬의 인생관은 헛되고 헛되며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이며 베드로의 인생관같이 안개와 같이 잠깐 있다 없어지는 인생의 길에서 분명하고 명확하게 확신 있는 삶을 살다가 주님에 부르심이 있을 때 아멘 주 예수여! 하며 고백할 수 있는 기쁨의 인생이 되어야 한다고 성경은 가르쳐 줍니다. 인생은 어디로 와서, 무엇을 하다가, 어디로 가는가? 하는 문제 앞에서 우리는 반드시 인생에 대한 분명한 자세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이 있느냐? 하는 문제는 많은 사람의 관심거리입니다. 불교에서는 극락과 지옥이 있다고 믿습니다. 공자도 역시 역천자는 망하고 순천자는 흥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역천자와 순천자가 가는 곳이 따로 있다고 말합니다. 기독교에서는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믿습니다. 모든 종교는 천국과 지옥을 말하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성경이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죽음에 직면한 사람이 말하기를 하늘 문이 열리고 천사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보인다고 기뻐하는 것을 볼 때 천국이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합니다.
또 하나의 증거는 천국에서 오신 분의 증언입니다. 예수님이 천국에서 오셔서 천국에 대해 증거해 주셨습니다. 또한 계시를 통해 천국에 대해 말씀하는 사도들도 많이 있는 것을 볼 때 분명 천국과 지옥은 있습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나사로와 부자의 대화 속에서도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힘있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분명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기름을 넉넉히 준비한 슬기로운 다섯 처녀만이 신랑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깨어 근신하며 준비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왜 예수를 믿어야 하는가? 저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는 축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의심하기 때문에 믿음을 갖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믿는 자는 영생을 얻고 믿지 않는 자는 영원한 형벌의 심판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왜? 구원이 우리에게 필요하게 되었는가?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생은 죄 값으로 영원
히 멸망하는 지옥에 가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셔서 죄에 빠진 인생을 구원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증거하시고 모든 사람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며 살을 찢으셔서 대속의 제물로 우리를 위해 자신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대속을 믿으면 나의 죄가 속죄함을 받아서 구원함을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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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두 갈래 길
당신은 어디서 왔습니까?
창조주 하나님은 우주만물을 지으시고 인간을 가장 귀한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이 일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으며 당신이 이루어야 할 귀중한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무엇을 위해 사십니까? 기쁨과 즐거움을 찾아 사십니까? 돈이나 명예를 얻기 위해서 입니까? 아니면 성공하여 권력을 얻는 것입니까? 건강하고 장수하는 것입니까?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얻었다 하여도 이 세상을 떠날 때는 모두 다 버려 두고 빈손으로 가는 것입니다. 인생은 헛되고 또 헛된 것입니다. 언제 떠나십니까?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는 시기는 오직 하나님만 아십니다.
언젠가는 부모, 형제, 처, 자식과 그 아끼던 모든 것을 다 버려 두고 떠나야 만 합니다.
중요한 것은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을 때 사망을 이기고 영생을 얻습니다.
어디로 가십니까? 어느 길로 가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달라지고 목적지가 달라집니다. 이 세상을 떠날 때 어디론가 가야 합니다.
그 길은 사망의 길과 생명의 길, 지옥의 길과 천국으로 가는 길입니다.
이 두 갈래 길에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아 영원한 생명과 풍성한 복된 삶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육체의 풍랑을 만나 고통 중에 신음하는 이들이여
인생의 풍랑을 만나 절망의 늪을 헤매이는 이들이여
영혼의 풍랑을 만나 참 평안과 자유를 모르는 이들이여
십자가의 사랑으로 당신을 구원하신 예수 이름을 믿고 지금 부르십시오.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 지더라"(눅8:24)
예수 믿고 지금 구원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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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지금 당신의 삶에 진정한 행복과 평안이 있습니까?
당신은 마음과 육신의 질병, 생활의 문제로 고통 받고 있지는 않습니까?
당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질병을 치료해 주시고, 참된 평안과 안식을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1.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건강하고 형통한 삶을 사는 것을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한삼서 1:2)
2. 인간의 범죄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삶을 누리지 못할까요? 그 이유는 인간의 죄로 인한 삼중 형벌 때문입니다.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이사야 59:2) <죄>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을 말합니다.
가. 환경적 저주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창세기 3:17-18)
나. 육적 죽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세기 3:19)
다. 영적 죽음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창세기 2:16-17)
3.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온전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가. 환경의 저주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갈라디아서 3:13)라고 저주에서 대속해 주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린도후서 8:9)고 가난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나. 몸의 구원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이사야 53:4-5)라고 신체적 질병에서 치료해 주셨습니다.
다. 영혼의 구원
“그(예수님)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임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이사야 53:5)라고 영적 죽음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4. 믿음의 결단
이제 당신에게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로마서 10:9-10)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영원히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5. 영접 기도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구주로 영접하기로 결단하셨습니까? 당신은 다음의 기도를 소리내어 고백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 저는 죄인입니다.
어디에서 와서 무엇 때문에 살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방황했습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저를 씻어 주옵시고, 저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를 위하여 죽으시고 저를 위하여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 구주로 모셔들입니다.
지금부터 천국갈 때까지 저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저를 구원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당신은 진심으로 위의 기도를 드리셨습니까? 그렇다면 이제 당신은 구원받았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한복음 1:12) 지금부터 당신은 전지 전능하시고 부유하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신분으로 바뀌었습니다.
6. 영적 성장
이제 당신은 영적으로 갓 태어난 새 생명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린도후서 5:17)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당신이 영적으로 계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것들이 필수적입니다.
가. 매일 성경을 읽으십시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디모데후서 4:16-17) 성경은 영적 양식입니다.
나. 매일 기도하십시오.
“쉬지 말고 기도하라.”(데살로니가전서 5:17) 기도는 영적 호흡입니다.
다. 전도하십시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디모데후서 4:2) 전도는 영적 운동입니다.
라. 교회에 출석하여 성도와의 교제를 나누십시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에베소서 1:23) 그리스도인은 정기적으로 함께 모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드려야 합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브리서 10:24-25)
축하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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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당신이 꼭 아셔야 할 4 가지 사실 !
제 1 단계 : 행복한 인간 (창세기 1-2장)
1) 창조시 우리 인간은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알고 계십니까?
2)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흙으로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었을 때에 인간은 "생령", 즉 살아있는 영혼이 되었습니다 (창2:7).
3) 그리고 우리 인간은 온전한 영·혼·육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살전5:23).
4) 그 때 우리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과 가장 인격적이며, 사랑과 축복의 관계의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창1:27-28).
제 2 단계 : 타락한 인간 (창세기 3장)
1)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었을 때, 즉 타락했을 때 우리 인간에게 어떠한 변화가 일어났는지 알고 계십니까? (창3:1-6)
2) 영이 죽었습니다.
3) 영이 죽은 인간은 죽은 자와 같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겔18:4,20; 엡2:1)
4) 왜 이러한 일이 일어났는지 아실 수 있습니까?
5)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창2:17).
6) 이처럼 불순종은 죄인 것입니다 (롬5:19). 그런데 이러한 죄를 우리 인간 모두가 지니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롬5:18).
7) 이러한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우리 인간과의 인격적이며, 사랑과 축복의 관계가 끊어지게 되었습니다 (사59:2; 롬3:23; 엡2:14-15).
8) 그리하여 우리 인간 모두에게 불행, 질병, 저주, 죽음(지옥)이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창3:16-19; 롬5:12).
9) 어떠한 그림이 지금 당신의 모습이라고 생각하십니까?
10) 우리 인간이 예수 믿기 이전에는 모든 사람의 모습이 이처럼 영이 죽은 존재였던 것입니다(엡2:1)
11) 지금 당신은 현재의 타락한 인간<그림 2>의 모습으로 계속 사시겠습니까? 아니면 행복한 인간<그림 1>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원하십니까?
12) 이제 행복한 인간<그림 1>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한 매우 간단한 방법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제 3 단계 :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
1)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불순종과 죄로 인하여 발생한 불행, 질병, 저주, 죽음(지옥)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하여 그의 독생자 예수를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요3:16-17; 막10:45).
2) 그리고 그 예수를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롬5:8; 고후5:21; 딛2:14) : <그림 3> 참조.
3) 왜냐하면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을 통해서만이 우리 인간의 죄, 불행, 질병, 저주, 죽음(지옥)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1:29, 6:35, 10:10; 고후1:10; 갈3:13; 골1:13-14).
4) 그러므로 지금 당신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하여 당신의 이러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고 진심으로 믿고, 또 그 예수를 당신의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면 당신의 영이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며, 또한 당신의 이러한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입니다(요1:12, 3:6) (예:돈 빚진 자의 비유)
5) 그러면 그 예수님을 지금 당신의 구주와 주님으로 진심으로 믿고 영접하시겠습니까? (아래의 영접 기도를 꼭 드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저의 모든 죄, 불행, 질병, 저주,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제가 믿습니다.
이 시간 제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합니다.
이제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구원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지금부터 영원까지 저의 삶의 주인이 되어 주옵시고,
천국갈 때까지 저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제 4 단계 : 구원의 확신
1) 당신은 위의 영접기도문을 진심으로 하나님께 드렸습니까?
2) 그렇다면 이제 당신의 영이 아래와 같은 상태로 다시 살아났습니다 (요3:6).
3) 지금 예수님은 어디에 계신다고 생각하십니까?(자신의 마음에)
4) 이제 당신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오늘 죽어도 천국에 가실 수 있습니다 (요5:24).
5) 지금부터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요1:12; 롬8:15-16).
6)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영원토록 사랑하실 것이며, 또 당신의 어떠 한 기도도 들어 주실 것입니다(롬8:35-39; 요14:13).
7) 그러나 지금 당신은 영적으로는 갓 태어난 어린아이와 같기 때문에 계속 자라가야 한다는 사실(벧전2:2)과 이제부터 마귀와의 영적인 싸움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꼭 잊지 말기 바랍니다(엡6:12).
① 주일을 성수해야 합니다(출20:18).
② 매일 성경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마4:4).
③ 매일 기도를 해야 합니다(살전5:17).
④ 하나님과 이웃을 위하여 봉사를 해야 합니다(고후5:15).
⑤ 전도를 해야 합니다(막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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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생명책과 심판의 기준 (계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책에 기록된 사실을 근거로 하여 불신자들을 심판하시게된다
그러면 도대체 생명책이란 어떤 책인가?
우리는 이 생명책에 대하여 성경의 가르침을 받아 알고 있어야한다
이 생명책은 우리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해주기 때문이다
1. 먼저 생명책은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 된 책이다. (요12:48)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불신 자들은 그들이 일생동안 들어왔던 진리의 말씀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하였는지에 대하여 심판대 앞에서 계산을 하게된다
2. 또한 생명책에는 불신자들이 행하였던 일생의 모든 행위가 기록되어있다
물론 사람이 자기가 행한 선한 일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는 없다.(엡2:8-9)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사람이 중생하게 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하심 때문이다 (딛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 크고 흰 보좌 앞에서 사람의 행한 선한 일과 악한 일을 따지게 되는 것일까?
그 이유는 그들이 지옥에 떨어져 심판 받게 될 고통의 견딤의 차이 즉 지옥 불의 온도를 결정하기 위함이다
정말 지옥에는 심판을 견디는 고저의 차이가 있는가?
성경은 이 사실을 분명하게 기록하고있다
예수님께서 고라신과 벳새다를 향해 책망하실 때 견디기 쉬운 것과 어려운 것을 언급하셨다(마11:20-24)
20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을들이 회개치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21 화가 있을찐저 고라신아 화가 있을찐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22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23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면 그 성이 오늘날까지 있었으리라
2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불신 자들은 의롭고 공정한 심판관 앞에서 아무런 변론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들은 자기가 행한 그대로 공정하게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의 행위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알고 계시기 때문에 생명책에 다 기록해 놓으셨다. 생명책에는 오직 진리만 있을 뿐이다
예수를 어떻게 믿나?
아래 영접기도를 따라 하시고 교회와 상담하셔서 예배를 드립시다.
영접기도
사랑의 예수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의 죄를 대신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사실을 믿습니다. 지금 저는 제 마음 문을 열고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나의 구세주로 영접합니다. 내 마음의 중심에 들어와 이제부터 영원까지 나를 다스려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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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복음이란 무엇일까요?
복음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네...
1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 질문1. 당신은 신의존재를 믿습니까?
* 질문2.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창조주 하나님은 인간과 세상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또한 당신을 사랑하시며 당신의 삶을 위한 목적을 갖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 1:27)
2 인간의 목적은 무엇인가?
* 인간은 어떤 존재일까요?
인간은 관계 중심적 존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교제 가운데서 진정한 삶의 목적을 찾게 됩니다.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고전1:9)
당신은 지금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고 있습니까?
3 죄란 무엇인가?
* 하나님과의 분리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합니다.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과 분리되었습니다. 이런 하나님과의 교제의 단절, 곧 목적의 상실에 대해 성경에서는 "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사 59:2)
* 당신은 죄를 지어 본 적이 있습니까?
그 결과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과 평안을 누리지 못하고 죽음, 불안, 허무, 등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이런 목적을 상실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죄인"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 3:23)
5 죄의 결과는 무엇인가?
*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심각한 문제는 이와 같은 죄로 인해 사람에게 죽음과 심판이 오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이런 목적 상실로 인한 죽음의 현상들 (심리적, 사회적, 환경적 소외)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죽음의 영향권 밖에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즉, 죄가 있는 모든 사람은 자신의 죄로 인해 죽게 되며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6 길은 어디에?
* 당신은 지금 잃어버린 목적을 되찾고자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어떤 이는 돈, 선행, 철학, 쾌락, 종교 등으로, 자기가 보기에 옳은 대로 최선의 추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죄를 지은 사람의 노력으로는 완전하신 하나님 앞에 도무지 도달할 수 없습니다.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할 길이니라" (잠 14:12)
7 하나님의 사랑
*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때문에 하나님 편에서 관계 회복을 위한 하나의 해결책을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예수님은 하나님이 주신 죄(죽음)의 해결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받아야 할 죄의 형벌을 그로 하여금 대신 받게 하셨습니다.
8 길은 여기에 있습니다.
* 당신은 예수님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성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오직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 14:6)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한 번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불의한 자를 위해 대신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목적을 상실한 당신이 선택해야 할 유일한 관계 회복의 길입니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골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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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하나님의 사랑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우리가 섬기는 창조주 하나님은 영원(시작과 끝이 없음)하시고, 전지, 전능(모르는 것이 없으며, 능력의 한계가 없음)하시며, 불변(거짓되지 않고 바꾸시지 않음)하실 뿐만 아니라 편재(아니계신 곳이 없음)해 계시고, 완전(부족함이 없음)하시며, 거룩(죄와 분리되심)하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을 알아야만 한다.
알지 못하고는 하나님을 섬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럼 성경을 통해 계시된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여 보자.
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사랑을 곡해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사랑이 기독교의 복음이라고 할 때, 우리 인류가 죄 때문에 하나님과 원수가되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아래 있었음에도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나 크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케 하셨다는 선언(약속)을 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화목은 하나님의 아들을 치욕적인 죽음에 까지 내어주는 대속(그의 피)으로 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이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주심이다.
고로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 하나님의 사랑을 논할 수 없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떠난 하나님의 사랑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독생자를 주심" 이 하나님의 사랑인데, "주셨다" 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땅에 오심만을 두고 하는 말씀이 아니라 참혹한 죽음에 까지 내어주셨음을 뜻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 아니다.
그의 교훈(가르침)으로 구원하신 것도 아니다.
그리고 그의 모본으로 구원하신 것도 전혀 아니다.
오직 우리가 받아야할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대신받으시는 대속사역 곧 죽음(희생)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구원사역이 왜 이렇게 이루어져야만 하는가?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다(레17:11). 그런데 피흘림이 없이는 사함이 없다. 왜 사함이 없는가?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이다(롬6:23).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 죄에 대한 하나님의 선고는 죽음(사망)이다. 그러므로 죽음을 떠나서는 죄를 처리할 수 없고, 피흘림(끝난 생명이요, 버린 생명)을 떠나서는 죄사함이 없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내신 구원(구속)의 방법이요, 하나님의 사랑이며, 복음이다.
죄를 미워하시며 심판하시는 분이 죄를 용서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에 합당하지 않으므로 거기에 합당한 증거가 있어야만 하는데, 여인의 후손으로 약속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사역은 하나님은 결단코 죄를 용서하지 않으시며 죄에 대하여 분노하시는 분이심을 증거한다. 그리고 왜 하나님께서 의로우시며 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자들을 의롭다고 하시는 지를 천명하신 것이다(롬3:25-26).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희생안에서만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함께 공존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그의 인격과 그의 사역을 믿는다는 것이다.
먼저 그가 누구신지를 믿는 것이다(피조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심을 고백하는 것).
그리고 그의 사역(고난, 죽음, 부활, 승천, 성령강림, 통치, 재림)을 믿는 것이다.
그의 사역을 믿는다는 것은 그 사역이 나와 관련해서 어떤 일인지를 승인하고 고백하는 것을 말한다(단지 역사적인 사실로서 승인하고 인정하는 것을 뜻하지 않음).
아울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신 모든 사역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승인하며 믿음으로 받는 것을 뜻한다.
오직 하나님께서 내신 이 사랑에 의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을 승인하고 믿는 것이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구원섭리를 수용하는 것은 이 길 외에는 또다른 구원의 길이 없음을 시인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말은, 회개(삶을 돌이킴)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주인)로 고백하고 이젠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인으로 섬기며 그를 위해서 살겠다는 고백이요 선언인 것이다.
피조물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섬기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만 가능하다.
고로 우리 인류는 오직 아담안에 있든지,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지 중간에 있거나 동시에 함께 있을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의 언약에 순종하는 것이고 언약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언약백성인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없이는 기독교가 존재할 수 없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이 아니면 기독교가 아니다.
다른 길이 있을 수가 없다. 천하인간에 구원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일이 없기 때문이다(행4:12). 다른 구원을 주장하는 것은 이 하나님의 은혜를 망령되게 하는 일일 뿐이다.
그래서 기독교의 교리는 배타적이며 타협이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진리이다.
이 기독교의 교리를 용납못하는 진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인류는 오직 하나님이 내신 구원의 방법에 의해서만 구원을 받으며, 그 구원을 받는 것도 우리의 믿는 행위를 통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즉 믿게하시므로(믿음이 하나님의 선물) 믿는 것이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선물은 누구에게나 주신 것도 아니어서 믿는자도 있지만 믿지 못하는 자도 있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물을 선물로 받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도저히 받을 수 없는 자들이 있다.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의 선물을 받은자는 감사하고 찬양하지만, 받을 수 없는 자의 입장에서는 반발이 있고 대적하는 일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본성의 일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피조물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요, 신의 영역에 속하는 일이므로 인간의 권한 밖에 속하는 일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믿음을 어떻게 선물하시는가?
우리가 노력해서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은 노력한 댓가이지 결코 선물이 아니다.
고로 열심히 기도해서 .. 능력을 받으므로 가능한 것도 아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 는 말씀을 바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즉 말씀과 함께 사역하시는 성령의 사역으로 받는 것이다.
하나님은 오직 진리(복음)로 우리를 거룩케 하시고 또 진리로만 모든 죄에서 자유(해방)케 하시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기독교의 교리는 우리가 예수를 믿는 믿음의 행위로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의 구원섭리를 알고 깨닫고 인식(믿음)하는 것 뿐이다.
그리고 알고 깨닫고 인식하며 확신하면서 그 놀라운 사실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 찬송하고, 그리스도안에서 우리의 것이되게 하신 것들을 친히 누리고 행사하는 영광된 삶을 사는 것이 우리의 구원이며 영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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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죽음의 순간에서...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
모든 사람은 결국 죽습니다. 이것은 확실한 사실입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이것도 확실한 사실입니다. 지혜의 왕 솔로몬은 살아있을 때 죽음의 문제 를 도외시하지 말라고 권고했습니다. 죽음은 새로운 소망의 시작이냐 영원한 절망이냐를 가르는 도구입니다. 신자와 불신자의 극적인 차이는 죽음의 순간부터 펼쳐집니다. 그 죽음의 입구에서 발한 여러 사람의 외침은 이 사실을 더욱 명백히 보여 줍니다.
1. 유명한 무신론자 토마스 홉즈는 죽을 때 외쳤습니다.
"나는 무서운 어둠 속으로 떨어지고 있도다"
2. 미라보는 죽을 때 공포에 떨며 말했습니다.
"더 아픔을 주시오. 영원에 대해선 생각하기도 싫소."
3. 잔인한 독재자 촬스 9세는 죽을 때 부르짖었습니다.
"내가 어디 있는가? 나는 영원히 길을 잃었다."
4. 무신론자 볼테르는 죽을 때 자기의 무신론적 철학을 후회하며 말했습니다.
"나는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했다."
5. 시인 바이런은 죽을 때
"나는 하나님께 자비를 구하도록 할까?" 하고 한참 침묵 후에 말하기를 "자, 연약한 생각은 필요없어. 최후까지 남자답게 사는 거야." 하고 절망속의 몸부림을 표현했습니다.
6. 성경의 모순되는 사실을 집대성해 "이성의 시대" 라는 책을 쓰고 "10년 이내에 성경은 더 읽히지도 출판되지도 않으리라!"고 호언한 토마스 베인느는 죽을 때 "하나님! 저를 지옥의 어두움에 던지지 말아 주세요" 하고 눈물의 고백을 했습니다.
7. 주후 70년 예루살렘 성전을 불태운 로마 장군 타이투스는 죽을 때 "내가 죽은 후 나의 육체를 불태우고 그 재를 일곱 군데 바다에 흩뿌려서 유대 민족의 하나님이 나를 발견하지 못하도록 하여 나를 지옥의 심판에서 자유롭게 하시오"고 하며 지옥의 공포를 벗어나고자 안간힘을 썼습니다.
소망이 없는 불신자들에게 죽음은 참기 힘든 괴로움을 넘어 절망입니다.
1. 반면에 유명한 부흥사 무디는 죽을 때 환희의 소리를 발했습니다.
"땅이 물러나고 천국이 열리는구나. 오! 주님이 나를 부르시는도다."
2. 종교 개혁가 루터는 죽을 때
"주의 손에 내 영을 바치오니 진리의 주가 나를 구원하였습니다"고 하며 평안히 눈을 감았습니다.
3. 요한 웨슬레는 죽을 때
"무엇보다 기쁜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이라"고 하며 즐거워했습니다.
4. 스코틀랜드 종교 개혁가 죤 낙스는 죽을 때
"오시옵소서 내 주여! 내 몸과 마음과 영혼을 그대 손에 맡기나이다. 이제 가야 할 천국의 즐거움을 내가 아나이다."고 하며 소망의 외침을 발했습니다.
5. 칼빈은 죽을 때
"사람은 다만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Soli Deo Gloria) 을 목표로 살아야 해" 라고 하며 주위 사람들을 권면했습니다.
6. 카디날드 머시어는 위암으로 죽을 때
"병든 몸이지만 내 영혼 깊이에 하나님께 드릴게 있어서 감사합니다. 나의 소원은 오직 하나, 하나님께서 나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 값이 무엇이라도 말입니다." 라고 하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7. 독일 신학자 본 회퍼가 나치주의자들에게 1945년 4월 8일 교수대에서 죽을 때
"오늘은 나의 삶이 새롭게 시작되는 날이니 참으로 기쁜 날입니다" 라고 하며 진리를 위해 죽는 것을 기뻐했습니다.
소망이 있는 신자들에게 죽음은 기쁨을 넘어 환희가 됩니다.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 여러분은 불신자의 이름을 소유하고 있습니까? 신자의 이름을 소유하고 있습니까? 먼 훗날 당신의 삶을 회고해 볼 때 당신의 삶은 아름답게 펼쳐졌고 끝맺어졌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매일, 매달, 매해를 정리하며 인생을 최종적으로 정리하는 그 순간을 연상해 본다면 좀더 의미있는 새 하루, 새 달, 새 해를 창출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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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하나님의 선물인 영생
이 글은 성경의 핵심적인 메시지인 복음을 소개하는 글입니다.
짧은 글이지만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글이기도 합니다.
바로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자신에게 보내어진 하나님의 사랑의 편지라고 여기고 관심 깊게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또한 그 결과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믿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1. 하나님은 왜 우리를 존재하게 하셨는가?
"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 1:27>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Image, Character)대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본래 우리와 인격적인 사귐을 가지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친한 친구와의 인격적인 관계가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는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를 통해 참으로 풍성하고 만족스런 삶을 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2. 우리의 상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 3: 23>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렘 17:9>
이 말씀은 하나님 앞에서 당신은 죄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과연 죄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의 본질적인 참 모습을 숨김없이 살펴본다면 어떨까요? 우리의 진짜 모습을 하나님 앞에서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면 우리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숨김없이 보여주는 정직한 말씀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9:27>
우리의 죄의 결과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죽음 이후에 심판에 서게 될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정의로우신 분이시기에 죄를 묵과하실 수 없습니다.
" (모든 죄인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계21:8>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심각한 상태에 처해 있음을 성경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 죄의 결과로 인해 우리들의 삶은 공허하고, 만족하지 못하며, 두려운 것입니다.
3. 하나님의 해결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해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의 문제를 친히 해결하신 것입니다.
"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8>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는 분이셨지만 우리 죄에 대한 형벌을 대신 받으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이로써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공의가 만족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죄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셨음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 내가 받은 것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고린도전서 15:3,4>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었던 우리가 하나님께로 갈 수 있도록 하는 다리를 놓아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공로로 우리는 값없이 이 다리를 건널 수 있게 된 것입니다.
4. 우리의 책임
다리는 놓여졌지만 이 다리를 건너는 것은 우리가 선택해야 할 일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어떻게 이 다리를 건널 수 있는지 명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한복음 5:24>
당신은 여기서 소개하는 복음의 말씀을 지금 듣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들은 말씀을 믿기만 하면 당신은 하나님과의 영원한 관계(영생)를 회복하며,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고 생명으로 옮기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믿는 것일까요? 당신은 어떻게 믿음을 시작할 수 있을까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2>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계시록 3:20>
믿는다는 것은 당신의 마음 문을 두드리고 계신 예수님을 진심으로 의지하고 당신의 마음과 삶에 모셔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할 때 당신 마음속에는 생명되신 그리스도께서 들어오셔서 당신의 삶을 변화시켜 주실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셔서 당신 마음문을 두드리고 계시는 예수님을 마음에 모셔들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신은 바로 지금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원하십니까?
그러면 바로 지금 다음의 기도문을 따라 하나님께 진실 된 마음으로 기도하십시오.
"예수님! 저는 죄인임을 시인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저를 사랑하셔서 저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이제 예수님을 저의 구주로 믿고 제 마음에 모셔 들입니다. 제 마음에 들어 오셔서 제 삶을 다스려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 멘! "
당신이 진실된 마음으로 이 영접기도를 올리셨다면 지금 예수님은 어디에 계실까요? 당신은 무엇을 소유하게 되었을까요?
"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요한일서 5장 11절>
당신이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풍성한 인생을 누려 가시고 열매 풍성한 삶을 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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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
1.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
인생은 나그네길? 당신은 지금 어디로 가고 계십니까?
가는 목적지도 모르면서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어디론가 가고 있지 않습니까?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잠언27:1)
인생은 급속히 무정히 왔다가 가버립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찬란한 기회들도 가버립니다.
당신은 지금 어디로 가고 계십니까?
당신의 친한 친구가, 당신의 사랑하던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당신 곁을 떠나 어디론가 가버린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몸은 무덤에 묻혔지만 그는 어디로 갔습니까?
당신의 차례가 되었을 때, 당신은 어디로 갈까요? 영원히 말입니다.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전도서12:1)
늦기 전에 예수님을 영접하십시오. 영생의 길이 있습니다.
2. 행복을 찾고 계십니까 ?
많은 사람들은 돈, 쾌락, 건강, 명예, 권력들을 도구로 삼아 행복을 누리려 합니다.
그러나 행복의 길은 ......
돈이 행복의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돈이 많으면 행복할 것 같지만 막상 돈을 가지고 보면, 돈으로 인한 문제들이 더 많이 발생하게 됩니다.
돈 때문에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재산상속으로 형제가 싸우며 친구를 버리는 것을 보십시오.
그럼 쾌락에 있을까요?
쾌락 속에는 언제나 허전함이 뒤따르고 더 큰 쾌락을 추구하다가 인생을 망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권력과 명예도 아닙니다.
권력자들은 자기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불안과 초조 속에 지냅니다.
세상의 명예를 얻어도 마음의 공허를 메울 수는 없습니다.
예수 안에는 평화와 만족과 기쁨, 그리고 생명이 있습니다.
지금 예수 안에서 행복을 발견하십시오.
그분은 말씀하십니다. “너의 행복과 기쁨을 너로부터 앗아갈 자는 없느니라”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사도행전 16:31)
3. 착각속에 살고 있지 않습니까 ?
지금 당신은 이러한 착각 속에 살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없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
“내세는 없다.”
“나는 죄인이 아니다.”
“양심껏 착하게 살면 구원받을 것이다.” 라는 착각 속에 계실런지 모릅니다.
당신의 그 착각이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선행과 철학, 미신등으로 구원을 받으려고 노력하지만 이 모두가 헛된 것이며 어리석은 행동인 것입니다.
당신은 이제 착각에서 벗어나야 됩니다.
이미 예수께서 당신의 죄 값을 다 치르시고 영생을 주셨는데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스스로 멸망을 자초한다면 그 책임은 당신 자신에게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예수님을 향해 마음의 문을 활짝 여십시요!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사도행전 4:12 )
4. 당신의 인생버스는?
사람들은 어디론가 열심히 달려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타고 있는 인생버스는 어디를 향해가고 있을까요?
죄악과 절망, 그리고 분노와 고통으로 점철된 멸망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모든 사람은 죄의 결과인 심판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브리서 9:27)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우리를 죄의 심판으로부터 피할 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망설이지 마십시오. 지금껏 타고 온 버스가 잘못된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다면 영생으로 달려가는 인생버스로 즉시 갈아타십시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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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예수님은 누구이신가?
(Who Is Jesus)
예수님은 역사적으로 존재하셨던 인간이시다. 동시에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하시다. 예수님의 생애, 사역, 성품 그리고 그의 모든 가르침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완벽하게 증명하고 있다.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정확히 아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기초이다.
1. 역사는 예수님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는가?
1) 세상 역사가 예수의 실재를 증거한다
2) 성경이 예수의 실재를 증거한다
3) 예수님은 실재하는 완전한 인간이셨다
4) 예수님은 단지 위대한 인간일 뿐인가?
2. 예수님은 자신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셨는가?
1) 예수님은 자신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가르치셨다
(1) 나는 생명의 떡이다 (요 6:35)
(2) 나는 세상의 빛이다 (요 8:12)
(3)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요 11:25-26)
(4) 마 11:28; 막 1:17; 마 10:40; 막 9:37; 요 14:9
2) 예수님은 자신에 대해서 간접적으로 증거하셨다
(1)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막 2:5)
(2) 세상을 심판하고 보좌에 앉으리라 (마 25:31)
3) 예수님은 자신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증거하셨다
(1) 나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다 (막 14:61-64)
(2)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되도다 (요 20:28-29)
3.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지지하는 증거가 있는가?
1) 예수님의 가르침이 지지한다
2) 예수님의 행동이 지지한다
3) 예수님의 성품이 지지한다
4) 예수님의 부활이 지지한다
(1) 무덤이 비어 있었다
(2)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3) 세상에 충격을 주었다
(4) 신자들이 경험하고 있다
우리는 예수님에 대해서 선택을 해야 한다.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선택하든지, 아니면 예수님을 미치광이로 선택하든지 해야 한다. 예수님이 옳다면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며,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세주이시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사탄에게 점령된 이 땅에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다.
**영접 기도문**
주 예수님 저는 제가 지금까지 죄를 지어 온 것을 알고 이제 진실로 저의 죄를 회개합니다. 주님! 제 마음 속에 오셔서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저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주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지금 이 시간 주님을 저의 구주로 영접합니다. 저를 사랑해 주시는 주님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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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모든 생물은 흙으로 만들어졌다.
Ⅰ. 모든 생물은 흙으로 만들어졌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 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창 2:19)
(1) 사람이 흙으로 만들어졌다니!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은 흙으로 질그긋을 만들거나 흙벽돌을 만들어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흙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마 10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사람이 흙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면 곧이 들을 사람이 별로 없었을 것입니다. 죽은 생물체가 썩어서 변하는 것을 누구나 눈으로 볼 수는 있었지만 흙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창세기에 이 사실을 기록해 두었습니다. 창세기는 모세가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모세는 B.C. 1446년에 출애굽하여 B.C. 1406년에 느보산에서 죽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창세기는 지금부터 약 3400년 전에 기록되었음이 틀림없습니다. 지금부터 3400년전에 모든 생물이 흙으로 되어 있다고 이해하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고 하겠습니다. 성경에는 단순히 "사람과 모든 생물은 하나님께서 흙으로 만드셨다"고 선언한 것이 아니라 상당히 논리적으로 전개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2) 생물이 흙으로 만들어졌다는 성경적 증거
먼저 풀과 채소나 과일 등 모든 식물은 하나님이 흙으로부터 나게 하셨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가진 열매맺는 과목을 내라하시매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11-12).
말씀이 증언하는 바와 같이 식물은 흙으로부터 나서 흙으로부터 영양을 섭취하고 사는 이상 흙으로 되어 있음이 분명합니다.
다음 흙으로 만들어진 동물은 (창 2:19) 흙으로 된 식물을 먹고 산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식물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창 1:30)
말씀에서처럼 흙으로 만들어진 동물이 흙으로 된 식물을 먹고 살게 되니 동물은 역시 흙일 수밖에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흙으로 만들어진 사람은 (창 2:7) 역시 흙으로 된 동물과 식물을 먹고 산다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맺는 모든 채소와 씨가진 열매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될지라 채소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창 9:8)
사람에게도 처음에는 식물인 채소와 과일만을 양식으로 주셨으나 노아 홍수 후에 하나님께서는 동물도 사람의 양식으로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해서 결과적으로 식물과 동물과 사람은 모두가 흙으로 된 양식을 먹으므로 말미암아 흙으로 된 존재인 것입니다. 즉 모든 생물은 흙으로 된 존재인 것입니다.
(3) 생물이 흙으로 만들어졌다는 과학적 증거
현대과학은 사람을 비롯한 생물이 흙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생물은 그 구성 원소를 분석해보면 흙의 성분과 거의 같기 때문입니다. 생물체의 모든 원소의 구성비(무게%)는 아래 표와 같으며 생물의 종류에 관계없이 거의 일정합니다.
한편 지각(암석)의 구성 원소는 산소(O), 규소(Si), 알루미늄(Al), 철(Fe), 칼슘(Ca), 나트륨(Na), 칼륨(K), 티타늄(Ti), 수소(H), 인(P), 구리(Cu), 크롬(Cr), 니켈(Ni), 납(Pb), 아연(Zn), 망간(Mn), 주석(Sn), 우라늄(U), 텅스텐(W), 은(Ag), 수은(Hg), 금(Au), 백금(Pt) 등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중 생물체와 흙(지각)에 공통으로 들어있는 성분은 산소, 수소, 칼슘, 칼륨, 인, 나트륨, 마그네슘, 철, 구리, 망간, 크롬 등입니다. 그리고 생물체에 두 번째로 많이 포함된 탄소(C)는 지각 성분에는 없으나 실제로 흙(토양)에는 유기 화합물로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생물체의 모든 성분은 빠짐없이 흙속에 들어있는 성분입니다.
이상과 같이 원소로 분석해 볼 때 생물체는 분명히 흙으로 되어져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4) 결론
결론적으로 모든 생물체는 화학적으로 성분을 분석하면 흙인데 다만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부여받아서 존재하기 때문에 흙과 구분이 됩니다. 따라서 모든 생물체도 생명을 잃으면 다시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네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식물을 먹고, 필경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니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 3:19)
이 하나님의 말씀이 과학적으로 얼마나 명쾌한 말입니까? 약 3400년 전에 기록된 말씀이라면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말씀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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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천국과 지옥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들은 미래에 대해서 적잖은 관심을 가지고 살아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미래에 대한 관심은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제기하게 하였습니다.
모든 것은 죽음에서 다 끝나는 것인가?
죽은 자들은 어디에 가 있는가?
우리가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럼 먼저 다음과 같은 질문을 생각하여 보겠습니다.
1. 사람이 죽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무엇보다 먼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사람은 삼중적인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즉 사람은 몸과 혼과 영의 셋이 합쳐져서 이루어진 존재입니다(살전 5:23). 몸은 유형적인 존재이고, 혼과 영은 무형적인 존재입니다. 사람은 영으로 하나님을 의식할 수 있으며 혼으로는 자아를, 그리고 몸으로는 외계를 의식할 수 있습니다(히 4:12) .
그런데 사람이 죽을 때에는 혼과 영이 다 몸을 떠납니다. 그리고 몸은 무덤 속에 매장됩니다. 이때 믿는 자의 몸은 잠을 잔다고 묘사되고 있습니다(행 7:59,60; 8:2). 그러나 구원받지 못한 사람의 몸은 죽은 것으로 말씀하셨습니다. 혼과 영은 잠을 자는 일이 없습니다. 만약 죽은 그 사람이 구원을 받은 사람이었다고 하면, 그의 혼과 영은 즐거운 보금자리인 천국으로 가는 것입니다(고후 5:8; 빌 1:21,23). 그러나 만약 그 사람이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이었다고 하면, 그의 혼과 영은 슬픔과 형벌의 처소인 음부로 가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6:19-31에서 우리 주님은 죽은 사람들에게도 의식이 있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가르치셨습니다. 위에 인용된 누가복음 16:19-31에 있는 이 중대한 말씀을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2. 지옥이란 어떤 곳인가?
이미 우리가 상고한 대로 불신자의 영과 혼은 죽자마자 음부로 가게 됩니다. 음부는 의식 가운데 고통의 형벌을 받는 곳입니다(눅 16:23-25). 음부에 들어간 영혼은 눈과 혀와 귀와 손가락의 감각과 기억력을 가지고 있는 하나의 사람처럼 묘사되었습니다. 성경은 음부의 형벌에 관하여 여러 가지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음부 이외의 고통받는 또 하나의 다른 처소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다른 처소는 '지옥' 혹은 '불못'이라고 불리우는 곳입니다 크고 횐 보좌의 심판 때에 음부에 있는 영혼들은 무덤에서 부활 될 몸들과 연합될 것입니다. 그때 그리스도께서는 악인들에게 최후의 심판을 선고하실 것이며, 선고받은 그들은 악인들의 영원한 처소가 될 '불못' 가운데 던짐을 받게 될 것입니다(계 20:11-15). 음부는 마치 죄수가 최후의 언도를 기다리는 구치소에 비유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불못은 대법원의 확정 판결로서 종신형을 받아 복역하는 죄수의 교도소와도 같습니다. 이 지옥을 가리켜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 곳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막 9:43-48). 지옥은 의식 가운데 고통의 형벌을 받는 곳입니다.
1) 죄에 대한 형벌은 영원한 것인가?
계시록에 보면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받을 영원한 고통을 묘사할 때 "세세토록"이란 말이 쓰였습니다.
2) 사랑의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랑들로 하여금 지옥에 가도록 허락하실 수 있는가?
① 하나님은 사람들이 멸망받기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게 하면서까지 사람들의 구원을 준비하셨습니다(롬 5:6,8). 따라서 만약 사람들이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를 거절한가면, 그들은 그들 자신의 선택에 따라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②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요일 4:8). 그러나 하나님은 동시에 거룩하신 분이십니다(벧전 1:16). 그러므로 하나님은 죄를 벌하지 아니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③ 사람들은, 병든 사람들을 병원에, 죄수들을 교도소에 그리고 시체는 공동 묘지에 넣는 일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그들에게 사랑이 없음을 말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3) 복음을 전혀 들어 본 일이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들도 다른 사람들처럼 똑 같이 길 잃은 죄인들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만이 그들을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들은 창조물과 그들 자신의 양심을 통하여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롬 1:20; 2:15 시 19:1). 그들이 만약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이 빛을 따라 산다고 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더 많은 빛을 주실 것입니다. 이에 대한 예는 사도행전 10장과 11장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으니 친히 찾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3. 천국이란 어떤 곳인가?
성경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며,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마련된 복지가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천국은 하나의 일정한 장소입니다. 이 '하늘'이란 말은 성경 가운데 세 가지의 다른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첫째로 구름에 둘러 싸여 있는 영역을 가리켜 하늘이라고 불렀습니다(창 1:8). 둘째로는 별들이 있는 영역을 가리켜 하늘이라고 불렀습니다(창 1:17). 마지막으로는 하나님께서 거처하시는 처소를 가리킬 때 사용되었습니다. 바울은 이 하늘을 가리켜 '셋째 하늘' 혹은 '낙원'이라고 불렀습니다(고후 12:2-4).
하늘은 언제나 "위에" 있는 것처럼 언급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단은 이사야 14:13-14에서 "내가 하늘에 올라"라고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 주님께서 현재 천국에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살과 뼈를 가지고 영화로운 몸으로 부활하셔서 천국에 올라 가셨습니다. 누가복음 24:38,39,51; 베드로전서 3:22; 히브리서 1:3을 찾아 자세히 읽어보십시오.
천국에는 현재 수많은 신자들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참 그리스도인은 죽을 때,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기'(고후 5:8) 때문입니다. 이 신자들은 지금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으니, 이 세상에서 사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을 것입니다(빌 1:23).
천국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성경을 쓴 저자들은 천국을 묘사할 적절한 말을 찾지 못하였습니다. 계시록 21:10-27에서 요한은 천국도성의 기초와 벽과 문과 거리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아름다움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그 아름다운 곳에는 질병도, 슬픔도, 눈물도, 고통도, 죽음도 없습니다(계 21:4).
그러나 가장 기쁜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기에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주 예수님은 모든 신자의 마음에 가장 큰 기쁨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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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얼마나 더 사십니까?
1.언제 떠나십니까?
.......이 세상에서 말입니다.
.......그 누구도 말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당신과 나는 언젠가는 떠나야만 합니다. 그렇게 정들었던 친구와 가족과도 말입니다.
2.지금 어디로 가십니까?
.......당신이 타고 가는 그 배의 도착지 말입니다.
.......당신은 위험합니다.
.......멸망의 길! 과연 그대로 가도 좋은가요?
3.지금 누구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새벽부터 밤까지 말입니다.
.......오늘밤 하나님이 당신을 부르신다면, 애써 모아 둔 모든 것은 누구의 것이 되겠습니까?
.......빈손 들고 왔던 몸! 빈 손 들고 갈 뿐입니다.
4.예수 그리스도를 아십니까?
.......사람의 힘이나, 돈이나, 명예나, 권세로도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을 예수 그리스도만이 해결해드립니다.
5.지금, 오십시오.
.......지금 곧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십시오.
.......주 안에는 끝없는 참사랑과 기쁨과 축복이 있으며 당신을 위한 영원한 집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오! 형제여 내일이면 너무 늦습니다.
6.지금, 결단하십시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요한 14:6)고 하시며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 11:28)고 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당신의 생애에 안내자로 삼으십시오.
.......여기에 하나님께 사랑받는 교회 사랑의 공동체가 있습니다.
.......주님 오실 때까지 일생을 같이 기도하며 희·노·애·락을 나눌 그대를 찾습니다.
.......진심으로 환영하며 당신을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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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인생의 근본 문제는 무엇인가요?
어떤 이는 사람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 빵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공산국가에서는 이 빵 문제를 해결해 준다고 하는 약속을 가지고 전 국민을 노예와 기계로 삼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의, 식, 주"가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민주주의 국가로 자유를 누리면서 이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한 선진국 사람들도 참된 만족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살의 통계는 잘사는 나라일수록 많다는 것입니다. 만일 사람이 육신만 이라면 생의 기본적인 욕구 즉 생리적인 욕구, 사회적인 욕구, 성적인 욕구가 충족될 때 만족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영적 만족이 없으면 언제든지 공허감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모든 사람에게는 궁극적으로 충족되어야 할 근본적인 욕구와 관심이 있습니다.
1. 사람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사람이 금수와 다른 점은 종교적 동물이라는 점입니다. 누구에게나 종교성이 있어 무엇을 숭배하고 동경하게 됩니다. 이와 같은 종교성이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영광을 위해 인간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으며(창1:26-28) 또한 영적인 존재입니다.(창2:7) 뉴욕의 생화학자 바인다박사에 의하면 인간을 조직 요소에 의하여 물질로 값을 환산했을 때 1불 98센트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가치는 육체에 있지 않다는 좋은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다른 동물과는 달리 하나님과 교제하도록 창조하셨습니다.(고전1:9). 하나님과 진정한 교제가 이루어질 때만이 참 만족과 평안이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보람있는 삶을 원하고 행복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 보람과 행복을 주구하는 사람의 욕망은 건강, 지식, 돈, 명예, 권력, 덕망 등으로 채우려 하지만 끝없는 욕망은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하게 되며 인생을 웬만큼 산 사람들은 이 세상의 행복은 영원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당신의 생사는 하나님이 주관하십니다. 예를 들면 출생(出生), 부모(父母), 복(福), 조국(祖國), 성(性) 등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생은 무엇인가? 인생은 어디로부터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를 반문하게 됩니다.결국 사람들의 근본적인 욕구는 더 깊은 곳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사람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영혼의 구원이 필요로 하게 됩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마4:4)
2.사람은 누구나 죄인입니다.
죄란 하나님의 말씀으로 불 순종하는 것입니다. 죄란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입니다(출20:3-17). 그리고 불법, 거짓말, 분쟁, 시기, 살인, 탐욕, 음탕, 교만, 술취함(롬1:29-31) 등을 비롯 많이 있으며 또한 행동으로 옮기지 않은 마음의 악한 생각도 죄라고 말합니다(마5:27-28).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나 다 죄인입니다. (로마서3장10절)
3.죄인은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입니다.
창세기2장17절 로마서6장23절에는 "죄의 값은 죽음"임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죄로 인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한가지 분명한 운명은 죽음입니다. 이 세상에 탄생하는 것은 순서가 있지만 죽는 것은 순서가 없습니다. 죽음은 인간 최대의 절망입니다. 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많은 사람들이 노력해 왔습니다. 죄로 인해서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했습니다.
4.죽은 후에는 반드시 심판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히브리서 9장27절에 보면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죽음 후에는 내세가 있다는 사실입니다(눅16:1-31). 이 땅의 삶이 잠깐이라면 죽음 후의 삶은 영원한 거이며 죽은 후의 심판의 결과에 따라 영생과 영 벌의 두 길로 나누어집니다(오3:16). 영원한 복락을 누리는 천국과 영원한 형벌을 받는 지옥으로 나뉘어집니다
따라서 이 땅에서의 삶의 참된 의미는 어떻게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여 죽음 후의 삶을 위하여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죽음에 대한 문제를 해결받고 내세에 대한 보장을 받는 사람만이 참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죽음을 앞에 놓고 구원을 청하는 간수의 이 물음이야말로 인간의 근본적인 종교적 물음인 동시에 나와 당신의 문제입니다(행16:30).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 이십니다. 그를 믿으면 죄 사함을 얻고 영생을 얻습니다.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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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귀하를 향한 하나님의 큰사랑을 아십니까?
사람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 관심이 없으며,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무서운 분으로 생각하며,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고 믿기를 원합니다.
귀하는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계십니까?
저는 하나님을 이러한 분으로 믿습니다.
1. 하나님은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십니다.
[창세기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 하나님은 흠이 없이 거룩한 분입니다.
[베드로전서 1:16]"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3.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시고 복을 주시는 분입니다.
[요한1서 4: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는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잘 보여주는 성경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하려 하심이라."(요3:16) 고 말씀하시고 있으며 여기서 세상은 모든 인간을 가리키십니다.
그런데 사람은 어떤 존재입니까?
(모든 사람은 불완전하고 연약한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
1. 선한 것을 알면서도 행하지 않습니다.
[야고보서 4:17]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2.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찾지도 않습니다.
[로마서 3:11,12]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 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3. 오히려 하나님을 떠나 자기 마음대로 살려고 합니다.
[로마서 1:28] "또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성경은 이것을 죄라고 말합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복을 누리지 못하고 불안과 허무 가운데 살다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죄를 지은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성경말씀이 있습니다.)
"모든 인간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로마서3:23) 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 모든 사람속에는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 모두가 포함됩니다.
이해가 가십니까?
이러한 인간의 죄는 죽음을 가져오며, 마침내 심판에 이르게 됩니다.
1.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죄를 미워하시며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시편 5:4,5]"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유하지 못하며 오만한 자가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
2. 사람은 죄에서 벋어나려고 하나 불완전하기 때문에 결코 죄에서 헤어 나올 수 없습니다.
[잠언 20:9] "내가 내 마음을 정하게 하였다 내 죄를 깨끗하게 하였다 할 자가 누구뇨."
3. 죄는 결코 인간에게 죽음을 가져왔고 하나님의 사랑을 누릴 수 없게 하였습니다.
[에베소서 2: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렸으니-"
(죄를 지은 인간의 결과를 보여주는 성경말씀이 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브리서 9:2)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주신 것입니다.
1. 예수님은 죄 가운데 있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디모데전서 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2.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베드로전서 3:18]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인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였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여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았으니-"
3. 예수님만이 인간의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시는 유일한 분이며 이것이 하나님의 해결책입니다.
[디모데후서 1: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잘 보여주는 성경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6)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영생을 얻으려면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1.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생명의 주인이 되시는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영접하는 것을 말합니다.
[요한복음 1: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2. 그리고 예수님을 의지하고 죄된 생활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이것을 회개라고 말합니다
[누가복음 13:3]"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3. 그리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가 되어 영생을 얻고 복있는 삶을 살다가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성경은 이것을 구원이라고 말하며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한복음 1:12) 라고 말씀하시며,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태복음 28:20 ) 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우리 마음에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 이 시간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십시오.
"볼찌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기다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요한계시록 3:20)
기도는 하나님과 이야기 드리는 것인데, 지금 함께 기도하시지 않겠습니까?
"사랑의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를 용서해 주옵소서. 저는 예수님이 저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것을 믿습니다. 이제 예수님을 제 마음과 삶 가운데 모셔 들입니다.
이제부터는 예수님을, 나를 사랑하시는 구주로 믿고 주님의 뜻대로 살게하여 주십시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영생을 누리는 복을 얻습니다.
1. 예수님은 항상 당신의 마음에 거하십니다.
[갈라디아서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밈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2. 당신의 모든 죄는 사함을 받았습니다.
[골로새서 1: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3.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였습니다.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4.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어 천국에 갑니다.
[요한복음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귀하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셨음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너희가 그의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함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에베소서 2:8-)
지금 교회에 나가시기로 결심하시고 오는 주일에는 가까운 교회에 나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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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어떻게 구원 받나요?
일단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께 마음을 드려서, 당신의 삶에서 모든 죄를 회개하면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과거에서부터 미래까지의 모든 죄를 없애 주실 것입니다.
당신이 어떤 죄를 범했든간에, 그분은 그 죄들은 전혀 기억치 않으시고 그분의 성령이 당신 안에 들어와 당신과 함께 살게 됩니다.
당신은 세상이 결코 줄 수 없는 평안과 기쁨을 갖게 될 것입니다. 진심으로 천국에 가기를 원하게 되고,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축복 받게 됩니다.
교회에 가는것은 주님께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고, 그분께서는 그분의 사람들이 그를 찬양하는 것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교회에서 찬양하는 동안 매우 다양한 축복을 받습니다. 치료를 받거나, 악한 것들에게서 해방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과 크리스천들과의 친교도 중요합니다. 이것이 그분께서 우리가 구원 받고 난 후에 우리가 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책을 매일 읽고 가능하면 하루에 여러 번 기도하는 것은 예수님과 교제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이 방법으로 당신은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목소리를 높여서 기도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소리 죽여 기도하는 대신 큰소리로 찬양하세요.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당신에게 말씀하십니다. 성경책의 모든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어떤 크리스찬들은, 그리고 크리스찬이 아닌 이들도 글자 그대로 '하나님의 음성' 을 듣습니다. 때때로 속삭임으로 다른 때에는 하나님의 영이 우리의 영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에는 마치 두 사람 간의 평범한 대화와 비슷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 마음을 드린 후에는 우리는 구원받기 전에 하던 세상 적인 것들을 포기함으로써 우리의 구원을 매일 이루어 가야 합니다.
만약 당신이 당신의 삶의 모든 곳에서 예수님께서 당신을 강하게 해 주시도록 노력한다면 당신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기쁨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은 이 기쁨과 결코 비교도 될 수 없습니다.
당신이 성실하다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순종을 시험해 보시고, 당신에게 당신의 믿음을 넘어서는 축복을 해 주시기 시작하십니다. 어떤 축복은 매우 빨리 오고, 반면에 다른 것들은 늦게 옵니다. 이것이 당신이 계속해서 기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고서 삶을 주님께로 성결하게 이끄는 것과 주님을 예배하는 것과 축복 받는 것은 매우 힘듭니다.
만약 당신이 예수님께 예배하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면, 그것은 당신에게 측량할 수 없는 축복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자신들을 위해 생명을 포기하신 예수님을 너무나 예배하고 싶어합니다. 예수님은 한번에 죽어버리시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오랜 시간을 강하게 고통 받으셨으며, 그분이 흘린 피가 우리의 죄를 덮었습니다. 이 일을 불못으로부터 모든 사람을 구하시기 위해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미워하십니다. 당신이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당신이 의도하였던 죄나 모르고 지은 죄를 지었다면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살펴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하세요. 우리는 매일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미치지 못합니다.
하나님과 함께라면 불가능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을 인정한다면 어떤 것이라도, 모든 것이라도 할 수 있으시지만 우리가 그분에게로 오도록 강요하시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우리 의지로 구원받고 그것은 개인적의 선택의 문제이며 모든 사람들은 그에게로 오거나 그를 거부합니다. 그분은 우리가 세상이 아닌 그분을 선택하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의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증인이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말 속에 계시는 예수님을 알게 해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죽은 뒤의 느낌은 전혀 알수 없습니다. 오직 몸만이 죽고, 영혼은 우리가 살아있을 때처럼 영원토록 살아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이 구원 받기를 원하시는 이유입니다.
만약 당신이 구원은 받았지만 자꾸 뒤로 미끄러진다면, 당신의 마음을 살피고 하나님과 함께 바로 잡으세요. 우리의 삶이 끝나는 시간과 날짜, 예수님께서 교회를 위해 다시 오실 날을 알지 못하니 너무 오래 지체하지는 마세요.
인생에서 가장 슬픈 것은 예수님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아픈 이유는 그 불행한 사람들이 어디로 가는지 알기 때문입니다. 나는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믿지 않는 자들로 인해 매 순간 아픕니다. 하지만 그분께서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 해 주실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믿지 않는 자들은 영원토록 사탄의 손안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축복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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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8주간 보내는 전도편지
안녕하십니까?
이렇게 편지 드리는 무례를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비록 내일 세상의 끝이 온다 할지라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는 심정으로 자그마한 이웃사랑의 정을 가꾸어나가고 싶습니다.
가정에서나 직장에서 어떤이로부터 매주 한 장씩 아름다운 내용이 담긴 편지를 받는다는 것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시인, 작가, 교수, 상담자들이 순수한 인간애와 인생의 지혜를 담은 [생명의 서신]을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매주 한통씩 보내드릴 [생명의 서신]에 대해 부담은 조금도 느끼지 마시고 읽어보신 후 맘에 맞지 않거나 관심이 없으시면 쓰레기통에 던져 넣으셔도 상관없습니다. 다만 과히 나쁘다고 여겨지지 않으신다면 가까이 두셨다가 생각 나시는대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귀하신 가정에 하나님의 사랑이 날로 더하시기를 기원합니다.
1주 -땅만 보고 산 인생
미국의 어떤 소년이 길에서 5달러 짜리 지폐를 주웠습니다. 그는 그것을 줍고나서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행여 또 이런 일이 있을까 하여 땅만 쳐다보고 다녀 그만 그것이 습관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일생 동안 길에서 줍는데 큰 취미가 생겨 그가 주운 것을 보면 단추가 29,519개, 머리핀이 54,172개와 수천 개의 동전, 그 외에 수많은 자질구레한 것들을 많이 주웠답니다. 그런데 그는 그런 것들을 줍느라고 푸른 하늘이나 지상의 꽃과 새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볼 기회를 많이 잃었던 것입니다. 그 일생이 결국 넝마주이 인생으로 끝나고 만 것입니다.
어느 구두닦이 소년은 구두를 닦을 신발을 찾기 위하여 하루종일 지나가는 사람들의 신발만 쳐다보았습니다. 그는 그렇게 함으로 생계는 유지할 수 있었으나 그 이상의 것을 쳐다볼 기회를 잃었습니다. 결국 그의 인생은 구두닦이로 마치지 아니하면 안되었습니다.
사람은 무엇을 쳐다보고 사느냐에 따라 그 인생이 결정됩니다. 땅을 보고 사는 자는 땅의 것으로 살 것이요, 하늘을 쳐다보고 사는 자는 하늘의 것으로 살 것입니다.
미래를 쳐다보고 사는 자는 미래에 올 꿈과 소망으로 기쁨을 누릴 것이요, 땅의 것만 바라보고 사는 인간은 저속해지고 비열해지나 하늘의 것을 보는 인간은 거룩해집니다.
우리에게 하늘의 소망과 희망을 주신 주님,
이 땅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거룩한 삶을 사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2주 - 가장 쉽게 망치는 방법
아름다운 화단을 망쳐 버리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 꽃밭에 불을 지르면 될 것입니다. 물 속에 잠기도록 물을 퍼부으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수고를 하지 않고도 쉽게 망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화단을 그냥 내버려두면 되는 것이지요. 잡초가 무성해지면 저절로 망쳐지는 것이니까요.
어떻게 하면 친구간의 우정을 망쳐버릴수 있을까요? 돌아다니면서 그 친구를 마구 헐뜯고 다니면 될 것입니다. 그 친구의 우정을 크게 배반하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수고할 것이 없습니다. 그 친구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지요, 저절로 망쳐질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내 인생을 망쳐버릴수 있을까요? 방탕하고 법을 어기고 타락해 버리고 건강을 마구 상하게 하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수고를 하지 않아도 세상 돌아가는 대로 나를 그냥 편하게 두면 나는 저절로 망할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내 영혼을 망쳐서 멸망에 떨어질까요? 하나님의 진리를 철저하게 반대하고 나서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수고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내 영혼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그렇게 내버려두고 살면 될 것입니다.
진주가 어떻게 생기는지 아시지요? 조개 속으로 모래알이 한 개 들어갑니다. 그 부드러운 조개의 살 속에 거칠은 모래알이 들어왔으니 조개는 얼마나 아프고 쓰리겠습니까?
고통스러운 조개는 몸의 진액을 짜내어 그 모래알을 싸 견디며 참습니다. 이렇게 한 해가 가도 또 가고 하는 중에 그 영롱하고 아름다운 진주가 생기는 것입니다.
당신에게 혹 고난이 있는 것은 당신 인생의 참 진주를 형성하는 계기인 것입니다.
참고 견디고 이기세요.
3주 - 신앙과 이성
종교와 과학은 대상을 보는 관점부터가 다르다. 종교는 대상을 볼 때 "왜"라는 의문에서 시작하여 대상의 존재 이유와 가치에 대해서 말하고, 과학은 "어떻게"라는 방법에서 시작하여 대상의 분석과 현상을 논한다.
종교는 사물을 신앙의 눈으로 보고 과학은 이성의 눈으로 본다. 이렇듯 두 영역은 출발부터가 다르기 때문에 종교를 비이성적이라 해서도 안되고, 과학을 비신앙적이라 매도해서도 안된다. 서로 약점을 보완해나갈 뿐이다.
하나님은 과학적 이성을 분석, 비평해서는 도무지 알 수 가 없다.
소련 우주비행사 티토프가 시애틀에 와서 기자 회견을 하는 중에 "내가 이 지구 위에 올라가서 지구를 몇 바퀴 돌아보았지만 하나님은 보이지 않더라."라고 했다. 얼마 후에 같은 장소에서 미국의 우주비행사 글렌이 말하였다. "나는 우주여행을 하면서 우주의 찬란한 광경을 구경하였는데 지구 위에나 똑같은 자연법칙이 운행되어서 우주여행을 완전히 마치고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을 보니 과연 하나님은 계시더라."고 했다.
똑같은 광경을 보았지만 그들의 관점은 이렇게 차이가 있다.
신앙은 이성으로 먼저 알고 믿는 것이 아니라 먼저 믿고 아는 것이다.
터툴리아누수는 "나는 불합리하기 때문에 믿는다." 라고 했다.
모든 것 을 이성적으로만 보는 사람은 하나님을 만나기가 힘들다.
우리의 이성 넘어에 계시는 주님.
우리의 믿음의 눈을 밝게 하사 늘 주님을 보게 하옵소서.
4주 -안녕하십니까?
또다시 글월을 드리게 되어 정말 기쁘게 생각합니다.
부담은 조금도 느끼지 마시고 읽어보신 후 맘에 맞지 않거나 관심이 없으시면 쓰레기통에 던져 넣으셔도 상관없습니다. 다만 과히 나쁘다고 여겨지지 않으신다면 가까이 두셨다가 생각나시는 대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흔히 '예수 믿고 싶어도 꼴보기 싫은 사람 때문에 안 믿는다'는 말을 듣습니다. 이런 말을 들을 때 먼저 저희는 몸둘 바를 모릅니다. 그런 사실을 부인할 수도 없고, 변명하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다만 이해하는 눈으로 보아주신다면 만일 그런 사람이 예수를 믿지 않았었다면 얼마나 더 큰 아픔을 다른 사람에게 주었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내가 의인(義人)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罪人)을 부르러 왔노라."(마가복음2:17)
여기서 죄인이란 사회적인 법을 어긴 사람뿐만 아니라, 예수를 믿지 아니하는 사람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필립 디 네리는 성자로도 불리우는 16세기의 위대한 사람입니다. 하루는 네리가 당시의 최고의 대학이었던 컨티넨탈 대학의 교정을 걷고 있는 동안에 어떤 청년을 만났습니다.
그 청년의 말인즉 자기는 유명한 그 대학에서 법률 공부를 하기 위해서 왔다고 하였습니다. 네리는 그 청년에게 묻기를 "대학 공부를 다 마치면 무엇을 할 것인가"
했더니 청년의 대답인즉 "박사 학위를 얻겠다"고 했습니다. 네리는 계속 질문하길 "박사 학위를 받고 나면 무엇을 하겠는가?"했더니 청년은 대답하기를, "아주 힘든 문제를 몇 개 맡아 웅변과 지식으로 멋지게 변호 처리해서 뭇사람들의 관심과 명성을 얻겠다"고 했습니다.
네리는 다시 "그 다음에는 또 어떻게 되느냐"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청년은 "그 후에는 상당히 높은 지위를 차지하여 돈을 많이 벌고 드디어 부자가 될 것이다"고 대답했습니다. 네리는 계속해서, "그 다음에는 또 어떻게 되느냐"고 했습니다.
청년은 답변하기를 "명성과 재물을 소유한 중에 평안히 살 것이다"고 했습니다.
네리는 다시 물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또 어떻게 되지?" 그러자 그 청년은 대답하기를 "그 다음에는 내가 아마 늙어 죽게 되겠지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네리는 한 번 더 물어 보았습니다.
"그 다음에는 또 어떻게 되는 것이지?" 이 말에 무슨 대답을 해야 좋을런지 몰라 하는 청년은 고개를 숙인 채로 가 버렸습니다.
밤사이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을 생각해 본 청년은 인생의 허망함을 크게 깨닫고,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에다 자기의 일생을 맡겼다고 합니다.
귀하신 가정과 직장, 그리고 사업에 하나님의 은총이넘치시기를 기원합니다.
5주 - 하나님은 과연 존재하는가?
어떤 분은 하나님이 어디있느냐?고 묻습니다.
그들은 눈으로 보는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바람, 공기, 마음등).
하나님은 영(신)이심으로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분입니다.
1.모든 피조물이 증거 합니다.
많은 천문학자들이 천체의 신비함과 기묘하게 조직된 것과 운행되는 것을 보고 우주 만물은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라 창조주의 창조로 되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2.인간의 양심이 증거 합니다.
어느 누구든지 위급할 때에는 하나님부터 찾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교육이나 권유를 받은 일이 없는데도 하나님을 찾는 것은 양심의 고백이요, 인간 본심의 부르짖음입니다.
3.예수께서 증거 하셨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예수는 천하에 없는 사기꾼이나 거짓말장이나 정신병자중 한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는 사기꾼도 거짓말장이도 정신병자도 아님을 역사와 온 인류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성자 예수의 전 생애가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그분은 역사를 주관하시고 섭리하십니다.
그 하나님을 믿고 영접할 때 혼돈 속에 방황하던 우리의 삶에 질서가 잡히고 도무지 의미도 없는 공허한 삶에 사랑과 희락과 화평의 열매가 맺히고, 죄와 고독과 고통의 연속에서 참 자유와 기쁨과 감격의 삶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6주 - 나는 누구인가?
어느 공원 벤치에 어떤 사람 하나가 밤늦도록 앉아 있었습니다.
밤이 되어 공원 지기가 순찰을 돌다 이 사람을 발견하고 "당신은 누구요?"하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러나 도무지 응답이 없어 큰 소리로 "이 사람아 누구야. 이 사람 어디서 왔어!"하고 고함을 쳤더니 일어나면서 하는 말이 "내가 누구냐고? 아 내가 그걸 알면야 나는 그것을 몰라서 지금까지 생각을 하고 있는데"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는 독일의 유명한 철학자 쇼펜하워였습니다.
"나는 과연 누구인가?"
이 질문이 풀려야 공부를 하든, 사업을 하든 이 한목숨 받쳐 뭔가 한 번 해보겠는데 풀리지 않는 질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 질문을 풀어 보는 것을 아예 포기해 버리고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친구가 죽었다든지, 입시에 실패했다든지, 큰 불행한 일이 닥칠 때, 또는 내 자신도 알 수 없는 큰 실언, 큰 실수를 저질러 놓고 잠못이루는 밤이면 이 질문은 어김없이 또 찾아옵니다.
"나는 누구인가?"
성서에 보면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놓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2:7)고 사람의 현주소를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람은 본래 영혼과 육체를 가진 영적 존재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위로는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고 동료 인간과는 인격적 사랑의 교제를 나누고, 아래로는 만물을 다스리며 행복하게 살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이제 나의 살길은 내 영혼이 생명의 시냇가에 심겨져 사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로 돌아가 하나님의 품안에 안기는 것입니다.
여기 참 평안의 안식처가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11:28)
7주 -어느 여인의 목마름
또 ... 또 ... 무려 여섯 번이나.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 도다"
현대인들이 텅빈 마음을 채워 보고자 음악, 영화, 스포츠 등을 추구합니다.
그러다가 자칫 잘못하면 술, Sex, 도박 등으로 빠져들어 갑니다.
그러나 아무리 이것저것 해 보지만 참 만족이 없습니다.
심령의 갈등은 더욱 심해 갑니다.
성경은 그 까닭을 마음에 하나님을 두기를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가르쳐 줍니다. 마음의 첫 자리에 하나님이 계셔야 하는데, 사람들은 하나님 대신 다른 것으로 그 자리를 메우려 하나 도무지 만족할 만큼 채워지지 않습니다.
사마리아 여인도 남편을 여섯 번이나 바꾸어 보았으나 참 만족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물인 예수님을 마음 자리에 모시게 되니 기뻤습니다.
참 만족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물동이를 내버려두고 손가락질을 한 그 동네 사람들에게 전도했습니다.
삶이 변화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마음 첫 자리에 모시고 그분께 나의 사랑과 온 마음을 드릴 때 내 영혼에 참 만족이 옵니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빈 부분이 있습니다.
그 텅빈 무저갱 같은 마음을 채워 보고자 이것저것을 해 봅니다.
성경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은 자기 마음을 채워 줄 멋있는 남자를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나 얼마 동안은 마음이 채워지는 것 같았지만 날이 갈수록 마음이 허전함이 심해졌던 것입니다. 참 만족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또 다른 남편을 찾게 되었습니다. 또 참 만족이 없었습니다. 영혼의 목마름은 더욱 심해 갔습니다. 그래서 또 다른 남편을 찾게 되었었습니다.
8주 - 어느 재벌의 변신
사람들은 자기 행복을 찾기 위하여 행복에 이르는 조건을 만들기위해 전 인생을 투자합니다. 돈을 버는데, 권력을 잡는데, 학문을 쌓는데 온 인생을 바칩니다. 그러다가 자기 건강을 잃어버리고, 자기 가정을 잃어버리고, 자기 이웃을 잃어버리며 자기 영혼을 잃어버립니다. 성경 [누가복음]에 나오는 삭개오가 그러한 사람입니다.
뽕나무에 올라간 삭개오!
그 모습은 돈을 모아 재벌이 되었지만 자기 영혼을 잃어버린 비극적인 인간상의 한 단면입니다. 돈은 벌었지만 매국노로 낙인찍히고, 모든 사람들로부터 소외되어 생명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뽕나무에 올라간 삭개오의 고독한 모습을 보시고 삭개오를 부르셨습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이 사랑의 음성은 시들어 가고 있는 삭개오의 영혼에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 아무도 돌아보는 이 없건만 예수님은 삭개오를 친구처럼 불러 주시고 사랑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삭개오의 얼어붙었던 마음은 예수님의 사랑 앞에 봄눈 녹듯 녹았습니다. 그 동안 자기 삶의 무가치함을 뼈저리게 느낀 삭개오는 지난날의 죄악을 회개하고 예수님처럼 사랑을 베푸는 삶으로 새생활을 시작할 것을 다짐합니다.
우리는 이상의 말씀을 통해서 인간의 참 행복은 물질의 풍요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죄악된 성품을 버리고 예수님같은 아름다운 삶을 배워 가는 곳에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은 지금 이 시간도 당신의 고독한 모습을 보시고 사랑의 음성으로 이렇게 부르십니다.
" ○○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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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생명줄 편지
6월 중순 이후가 되면, 주일학교는 여름철 교육행사 준비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교사들은 6월 첫째∼세째 주간에 여름 성경학교 교사강습회에 참여하여 강습을 받는다. 여름성 경학교는 성경의 보충적인 교육기회이지만, 이를 전도를 위한 계기로 삼을 수 있다. 사실상, 많은 어린이들이 성경학교를 통해서 교회에 첫발을 내딛는다.
여름철 교육행사를 앞두고, 효과적인 전도활동을 벌이기 위해서 생명줄 편지 보내기를 하도록 하자. 전도 편지를 쓰는 작업이다. 편지의 형태로는 엽서가 적합하다. 우편요금도 저렴할 뿐 아니라 편지(봉함편지)에 비하여 아이들이 갖는 부담도 작기 때문에서다.
1. 연속적으로 보내어지는 전도 편지
여기에서는 전도대상자에게 편지를 보내되 한 번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전도되어서 주일학교에 첫발을 내딛을 때까지 보내도록 한다. 이 날 오후에는 어린이들이 다함께 엽서를 써서 보내지만, 한주간을 단위로 하여 전도할 어린이가 주일학교에 첫발을 내딛을 때까지 계속해서 엽서를 보낸다.
어린이들이나 교사 모두 전도에 대한 경험이 많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품으로 인도하겠다고 생각한 전도대상자를 교회로 데려 오기까지 전도 활동을 꾸준히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러므로 어린이들이 전도대상자를 정하고, 그에게 엽서를 보냄으로써 계속적으로 복음을 들려 주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하는데 목적을 두고 시행하도록 한다.
이 엽서는 전도대상자로 하여금 주일학교에 첫발을 내딛을 때까지 보내야 하는 것이므로 한 번에 너무 많은 내용을 담으려고 서두를 필요는 없다. 또한 보내는 이나 받는 이가 어린이므로 엽서를 여러 가지의 컷이나 모양을 꾸며 예쁘게 만들어도 좋을 것이다.
2. 전도를 위한 엽서의 예문 몇가지
<예문 1 /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를 강조한 글>
사랑하는 친구 ○○에게
오늘도 잘 지내고 있겠지? 나는 네가 건강하게 자라고 나의 아주 좋은 친구가 되기를 바라고 있어. 또 나도 너에게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서 애쓰고 싶어.
○○아, 오늘은 너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알려 주고 싶단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만드시고 또한 지켜 주신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머리카락 숫자도 아시고 계신 만큼 우리를 보호해 주셔. 오늘 아침에 우리가 잠자리에서 깨어난 것도 하나님께서 일으켜 주신거란다.
너도 나와 함께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품 안에서 지냈으면 좋겠다. 그럼, 오늘은 이만 쓸께.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2006년 월 일
너의 친구 ㅇㅇㅇ씀
<예문 2 / 사람의 죄인됨을 강조한 글>
○○아 보아라.
요즈음도 잘 지내니? 네가 다른 학교로 옮긴 뒤로는 날마다 너를 보고 싶다. 너의 부모님도 안녕하시겟지? 우리도 잘 지내고 있어.
○○아, 우리는 모두 죄인이야. 하나님께서 맨 처음에 사람을 만드셨을 때 하나님만 믿고 따르도록 했거든. 그런데 사람들은 어떠니? 하나님을 믿지 않고 또 다른 신들을 믿고 있어. 그래서 모두 지옥에 갈 수 밖에 없게 되었단다.
내 친구○○아. 너도 나처럼 예수님을 모시고 교회에 다니기를 기도하고 있어. 너의 집 가까운 곳에 교회가 있을 거야.
꼭 교회에 다녔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의 죄를 하나님께 용서받고 하늘 나라에 가자. 그럼 또 편지쓸께. 안녕.
2006년 월 일
너를 사랑하는 ○ ○ ○ 보냄
<예문 3 / 예수님의 사랑을 강조한 글>
친구○○에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고 계신단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고 지낸단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시려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어. 우리는 다같이 죄인이고, 지옥에 갈 수 밖에 없었거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살려 주시고, 또 하늘나라에 가게 해 주시려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거야.
우리 엄마가 나를 사랑하시지만 나를 대신해서 아파 주실 수 있니? 없지.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죄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던 거야. 그리고 지금은 하늘 나라에 계셔.
너도 빨리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좋겠다.
○○야 또 편지 보내기로 약속할께. 그 때까지 잘 있어. 안녕.
2006년 월 ㅇ일 ㅇㅇㅇ씀
3. 어린이들이 스스로 준비하는 엽서
우리는 어린이들에게 엽서를 나누어 주고 전도 편지를 쓰도록 할 수 있다. 그러나 생명줄 편지를 보냄에 있어서, 어린이들이 스스로 엽서를 마련하도록 하자. 만일, 어린이들이 한 친구를 구원하기 위하여 것자신의 드림(희생)겄이 뒤따름을 체험한다면 바람직한 것이기 때문이다.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헌신을 체험하는 것도 교육의 한 방편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어린이들은 너무 받는 것에만 익숙해져 온 것이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학교에 갈 때는 학습할 수 있도록든 것들은 준비해 가는데, 주일학교에 갈 때는 빈 손으로 가는 예가 허다하였던 것이다.
왜 그럴까? 여기에는 교사들의 탓도 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오는 어린이들에게 연필을 비롯하여, 도화지, 크레파스 등을 빌려 주어 오고, 거져 주어 왔기 때문에 으레히 빈 손으로 온다. 이를 바로 잡기 위해서라도 개인준비물을 마련하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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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이웃 초청 예배를 위해 발송한 편지
모두 4번에 걸쳐 편지를 보내고 마지막에는 초청장을 청첩장처럼 만들어 보내려 합니다.
자기가 초청하고 싶은 사람을 위해 열심히 기도해 주세요.
우선 가족부터, 그리고 가까운 이웃에게 열심히 전도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 전도 편지가 꼭 읽히길 위해 기도해 주세요.
전도 편지는 4영리를 기본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4번에 걸쳐 보냅니다.
그런데 요즘 전도란 것이 단순히 예수 천당, 불신 지옥과 같은 외침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왜 믿어야 하는지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 등에 대해 어느 정도 교리적인 내용도 전할 수 있으면 전해야 하는데 이런 노력이 별로 없었고, 또 그런 내용을 얘기하려면 시간도 많이 걸리므로그런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지요.
그래서 이번에 보내는 전도 편지는 좀 깁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보지도 않고 버릴까봐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더욱 기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전도란 단순히 그리스도를 전해 예수를 믿게 하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 알고 계시죠?
전도란 어쩜 심판의 선언이라는 것 말입니다.
이 편지를 받고도 읽지도 않거나 읽고도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으면 나중에 하나님 앞에서 핑계할 수 없겠지요. 초청 대상자를 위해, 그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이 편지가 잘 도착되어 읽히길 기도해 주세요.
1.첫 번째 편지
안녕하십니까?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합니다.
태풍 한 번 지나가지 않은 가을 들판은 풍성한 열매를 맺어 수확의 기쁨을 드릴 추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형제 자매의 가정도 하나님의 은혜로 넉넉하고 풍성한 가을, 영생의 기쁨을 수확할 수 있는 가을이 되길 기원합니다.
이렇게 편지를 보내드리는 것은 먼저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너무 좋은 것을 누리고 있어서 이것을 전하지 않을 수 없고, 또 그것을 당신에게 알려 드리며, 함께 나누고 싶어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당신에 대해 가지고 계신 섭리를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끝까지 잘 읽어 주시고 하나님의 초대에 응해 주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우선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며, 당신을 위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예수 그리스도)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 했습니다. 또 요한복음 10장 10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온 것은 양(당신)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처럼 우리를 사랑해 주시고 영생을 주시고자 하는데 우리는 왜 이 풍성한 삶을 누리고 있지 못할까요?
그 이유는 다음 편지에서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두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누구입니까?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우리 춘천성도교회에서는 당신의 이름을 걸어 놓고 당신의 가정과 당신의 영혼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이 당신의 가정과 당신에게 풍성히 내려지기를 기원합니다. 2008. 10. 15 춘천성도교회 교우 일동
2.두 번째 편지
안녕하십니까?
주님의 이름으로 다시 문안드립니다. 당신의 가정과 당신의 영혼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에 이르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첫 번째 편지에서 ‘나는 누구인가?’,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란 질문을 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가운데 이런 질문에 진지하게 생각해 보신 적이 없으시다면 이번 기회에 깊이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서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했습니다. 우리 인간은 언젠가는 죽을 것이고, 그 후에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나는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답입니다. 그런데 죄인으로 심판대 앞에 선다는 것은 끔찍한 일입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본래 사람은 하나님과 사귀며 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살려고 했기 때문에 마침내 하나님과의 사귐은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로마서 3장 23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없이 제 마음대로 사는 사람은 적극적일 때는 하나님께 반항하게 되며, 소극적일 때는 하나님에 대하여 무관심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죄의 증거입니다
그런데 로마서 6장 23절에서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여기서 사망이란 영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지만 사람은 죄에 빠져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 둘 사이에는 커다란 간격이 생겼습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선행, 철학, 종교 등의 자기 힘으로 하나님께 도달하여 풍성한 삶을 누려 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 유일한 길을 다음 편지에서 말씀드리기로 하며 이만 줄입니다.
당신의 가정과 당신의 영혼 구원을 위해 온 교회가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히 내리시길 기원합니다. 2008. 10. 25 춘천성도교회 교우 일동
3.세번째 편지
안녕하십니까?
주님의 이름으로 또 다시 문안드립니다. 당신의 가정과 당신의 영혼에 하나님의 축복이 가득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앞서 우리 인간은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만이 사람의 죄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성경을 읽고 교회에 다니게 되면 당신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을 알게 되며, 또 그것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쁨을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전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는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로마서 5장 8절에서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는 또한 죽음에서 살아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6절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께 이르는 유일한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기를 요한복음 14장 6절에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어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우리의 죄값을 담당케 하시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다리를 놓아 주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이 어떻게 나의 구원자가 되시는지 다음 편지에서 말씀드립니다.
당신의 가정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에 이르길 온 교회가 기도하겠습니다.
2008. 11. 1 춘천성도교회 교우 일동
4.네번째 편지
안녕하십니까?
주님의 이름으로 네 번째 문안을 드립니다. 당신의 가정과 당신의 영혼에 하나님의 축복이 가득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앞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원자가 되신다 했는데 그 방법을 말씀드립니다.
우리 각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 각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을 알게 되며, 또 그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라고 약속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
어떻게 영접합니까? 우리는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합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2장 8,9절)
그리고 우리는 각자의 초청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기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그리스도를 영접한다는 뜻은 나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이며, 내 안에 들어오셔서 내 죄를 용서하시고 그 분이 원하시는 사람이 되도록 그리스께 나를 맡기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지적으로 동의한다든가 감정적인 경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의지의 행위인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합니다.
이러한 영접은 가정에서 혼자서도 할 수 있으나 영접 후에는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과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서로 교제하고 신앙 훈련을 통해서 그 믿음을 확고히 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필요한 것입니다.
세상에 수 많은 교회가 있지만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기도의 후원자가 있는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우리 춘천성도교회로 초대합니다.
11월 30일은 그 초대의 날입니다. 그날은 우리 교회의 창립일이기도 합니다. 성도의 가정과 교회는 천국의 모형입니다.
11월 30일에 당신을 초대하오니 천국 잔치에 오셔서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히 누리시길 기원합니다. 2008. 11. 10 춘천성도교회 교우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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