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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신학자21] 데이비드 트레이시(David Tracy, 1939~2025)
더깊은신앙으로 samyoung.park............... 조회 수 4 추천 수 0 2026.07.09 22:37:47| 출처 : | www.facebook.com/samyoung.park.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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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데이비드 트레이시(David Tracy, 1939~2025)

트레이시는 강단 위의 신학자가 아니다. 그는 도서관과 신문, 철학 세미나와 영화관을 동시에 드나드는 신학자였다.
많은 신학자들이 교회의 언어를 지키려 했다. 트레이시는 세상의 언어와 대화하려 했다. 그에게 신학은 성채가 아니었다. 광장이었다.
그는 미국 가톨릭 신학이 가장 자신감에 차 있던 시기에 등장했다. 그러나 그는 승리의 깃발을 흔들지 않았다. 오히려 질문을 던졌다.
“신학은 교회 안에서만 말해야 하는가?”
그의 대답은 단호했다.
아니다.
신학은 대학에서도 말해야 한다. 예술 앞에서도 말해야 한다. 철학 앞에서도 말해야 한다. 심지어 신을 믿지 않는 사람 앞에서도 말해야 한다.
그는 신학을 교회 담장 밖으로 끌고 나왔다.
그의 대표작 《Blessed Rage for Order》는 제목부터 흥미롭다. “질서를 향한 거룩한 분노.” 트레이시는 인간 안에 있는 의미 추구의 갈망을 포착했다. 사람들은 혼란 속에서도 질서를 찾는다. 상실 속에서도 의미를 찾는다. 신학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고 그는 보았다.
트레이시의 책을 읽으면 마치 거대한 교차로에 서 있는 느낌이 든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지나간다.
프로이트가 지나간다.
니체가 지나간다.
불교가 지나간다.
현대 소설과 영화도 지나간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서 그는 묻는다.
“이 모든 대화 속에서 하나님은 어떻게 들리는가?”
그는 진리를 독점하려 하지 않았다. 진리를 탐색하려 했다.
그가 자주 사용한 개념 가운데 하나는 “고전(classic)“이다.
고전은 늙은 책이 아니다.
시대를 초월해 계속 말을 거는 작품이다.
성경도 그렇다.
셰익스피어도 그렇다.
도스토옙스키도 그렇다.
고전은 독자를 해석하는 텍스트다. 우리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다. 어느 순간 책이 우리를 읽는다.
트레이시는 바로 그 순간에 주목했다.
그는 가톨릭 신학자였지만 부족주의자는 아니었다. 개신교와 대화했다. 유대교와 대화했다. 세속 철학과도 대화했다. 그는 신학을 방어하는 변호사가 아니라, 서로 다른 세계를 연결하는 통역사에 가까웠다.
그의 영향력은 강의실보다 더 넓었다. 그는 학문과 문화, 종교와 공공담론 사이를 오가며 현대 가톨릭 지성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었다. 신학자는 수도원의 은둔자가 아니라 공적 지식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데이비드 트레이시는 거대한 체계를 세운 건축가라기보다 도시의 길을 설계한 사람처럼 보인다.
그가 만든 것은 건물이 아니다.
대화의 지도다.
그리고 그 지도 위에서 신학은 더 이상 교회 안에 갇혀 있지 않다. 세상 전체를 향해 걸어간다.
박삼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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