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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신학자22] J. I. 패커(James Innell Packer, 1926~2020)
더깊은신앙으로 samyoung.park............... 조회 수 3 추천 수 0 2026.07.10 22:04:30| 출처 : | www.facebook.com/samyoung.park.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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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J. I. 패커(James Innell Packer, 1926~2020)
제임스 패커는 신학계의 조용한 정원사였다. 그러나 그는 수많은 복음주의 꽃과 나무를 심고 다듬어 수많은 복음주의 그리스도인의 사고방식을 바꾸어 놓았다.
1926년 영국에서 태어난 패커는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운동을 즐기지 못했다. 대신 그는 책과 가까워졌다. 그 불행은 뜻밖의 선물이 되었다. 그는 평생 읽고, 쓰고, 가르치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옥스퍼드에서 공부하던 시절, 그는 청교도 신학자들의 세계와 만났다. 특히 존 오웬은 그의 정신적 스승이었다. 다른 이들이 최신 유행을 좇을 때 패커는 17세기로 걸어 들어갔다. 그는 오래된 책 속에서 미래를 발견했다.
패커의 신학은 복잡하지 않았다. 그러나 결코 얕지도 않았다. 그의 핵심 질문은 단 하나였다.
“당신은 하나님을 알고 있는가?”
그 질문은 그의 대표작 《Knowing God》에 응축되어 있다. 이 책은 단순한 신학 교과서가 아니다. 하나님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책도 아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향해 독자를 밀어 넣는 책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신학이 이렇게 뜨거울 수 있는가”라고 놀랐다.
패커는 학자였지만 강단에 갇히지 않았다. 그는 목회자와 평신도를 위한 신학을 추구했다. 그의 문장은 명확했다. 어려운 개념도 안개를 걷어내듯 설명했다. 그는 지성을 믿었지만 지성주의를 숭배하지 않았다. 머리와 가슴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1979년 그는 영국을 떠나 캐나다 밴쿠버의 Regent College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수십 년 동안 가르치며 북미 복음주의의 정신적 멘토가 되었다. 영국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영향력은 대서양을 건너 더 크게 퍼졌다.
패커는 문화전쟁의 장군이라기보다 신학적 길잡이였다. 큰 소리로 싸우기보다 방향을 가리켰다. 칼을 휘두르기보다 나침반을 건넸다.
그의 신학은 개혁주의 전통에 뿌리를 두었지만, 냉혹한 체계가 아니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그리스도 안의 양자됨, 성령의 역사와 같은 주제들이 언제나 중심에 있었다.
2020년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살아 있다. 그는 새로운 신학을 발명하지 않았다. 대신 오래된 진리를 닦아 다시 빛나게 만들었다.
패커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이렇다.
“그는 하나님에 대해 많이 말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일이 얼마나 위대한지 평생 설득한 사람이었다.”
박삼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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