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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신학자25] 케빈 밴후저(Kevin Vanhoozer, 1957~ )
더깊은신앙으로 samyoung.park............... 조회 수 6 추천 수 0 2026.07.13 21:48:22| 출처 : | www.facebook.com/samyoung.park.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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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케빈 밴후저(Kevin Vanhoozer, 1957~ )
신학자라기보다 연출가에 가깝다. 많은 신학자들이 교리를 벽돌처럼 쌓아 올릴 때, 그는 무대를 만들었다. 그리고 말했다. “성경은 규칙집이 아니다. 하나님의 드라마다.”
그의 신학은 책상 위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무대 위에서 시작된다.
밴후저가 등장하기 전까지 많은 복음주의 신학은 방어에 익숙했다. 진리를 지키기 위해 성벽을 높였다. 그러나 그는 다른 길을 택했다. 성벽 대신 극장을 세웠다. 그리고 신학자들에게 물었다. “당신은 성경을 읽고 있는가, 아니면 성경 속 이야기에 참여하고 있는가?”
그의 대표적인 통찰은 간단하다. 하나님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 말씀은 사건이 된다.
성경은 하나님의 데이터베이스가 아니다. 살아 있는 대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교리의 한 항목이 아니다. 무대 중앙에 등장하는 주인공이다.
교회는 관객석에 앉아 박수를 치는 집단이 아니다. 무대 위 배우들이다.
밴후저는 이 단순한 비유 하나로 성경 해석학과 조직신학을 새롭게 연결했다.
그는 현대 철학과도 정면으로 씨름했다. 특히 “텍스트에는 확정된 의미가 없다”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유행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대로 수용하지는 않았다. 그는 상대주의의 늪에 빠지지 않았다.
오히려 말했다.
“의미는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우리는 저자를 잊어버렸다.”
그에게 성경의 궁극적 저자는 하나님이다. 따라서 성경 읽기는 단순한 독서가 아니다. 저자의 의도를 경청하는 행위다.
이 점에서 그는 복음주의 전통을 지키면서도 가장 세련된 방식으로 현대 철학과 대화한 신학자가 되었다.
그의 문장은 학문적이다. 그러나 차갑지 않다.
그의 논리는 치밀하다. 그러나 건조하지 않다.
그의 책을 읽다 보면 철학 세미나에 앉아 있는 것 같다가도 어느새 연극 공연장 한가운데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밴후저의 신학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당신은 하나님의 이야기를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그는 신학을 지식의 창고에서 꺼내 삶의 현장으로 데려왔다.
그에게 교리는 박제가 아니다.
살아 움직이는 배역이다.
신앙은 의견이 아니다.
연기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다.
공연장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침묵하는 관객이 아니다.
드라마를 쓰고, 연출하고, 마지막 막을 완성할 극작가다.
그래서 케빈 밴후저는 조직신학자가 아니다. 그는 하나님의 대본을 손에 들고 무대 위로 올라오라고 외치는 신학계의 연출가다. 그의 신학은 읽는 순간 끝나지 않는다. 무대에 오르는 순간 시작된다.
박삼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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