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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신학자42] 레슬리 뉴비긴(Lesslie Newbigin, 1909~1998)
더깊은신앙으로 samyoung.park............... 조회 수 2 추천 수 0 2026.07.30 22:31:29| 출처 : | www.facebook.com/samyoung.park.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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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레슬리 뉴비긴(Lesslie Newbigin, 1909~1998)
레슬리 뉴비긴은 평생 두 번 선교사가 된 사람이다.
첫 번째 선교지는 인도였다. 두 번째 선교지는 영국이었다.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복음을 들고 서구에서 비서구 세계로 떠난다. 그러나 뉴비긴은 오랜 세월 인도에서 사역한 뒤 고향 영국으로 돌아와 충격을 받았다. 그가 떠났던 영국과 돌아온 영국은 완전히 다른 나라가 되어 있었다. 교회는 남아 있었지만 기독교 세계관은 무너지고 있었다. 그는 그 순간 깨달았다.
“이제 서구도 선교지다.”
이 단순한 통찰은 현대 선교학의 흐름을 바꾸었다.
1909년 영국에서 태어난 그는 젊은 시절부터 선교사로 부름받았다. 이후 수십 년 동안 인도에서 목회자와 선교사, 그리고 교회 지도자로 섬겼다. 그는 단순히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다양한 종교와 문화가 공존하는 현실 속에서 기독교 신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깊이 고민했다.
뉴비긴은 복음을 사적인 취미로 축소하는 것을 거부했다. 그에게 복음은 개인의 영혼만을 위한 메시지가 아니었다. 복음은 세상을 이해하는 새로운 방식이었다. 정치와 경제, 문화와 교육까지 비추는 공적 진리(public truth)였다.
그의 가장 유명한 질문은 이것이다.
“왜 현대인은 복음을 믿기 어려워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그 이유를 교회의 부족함에서 찾을 때, 뉴비긴은 더 깊이 들어갔다. 그는 현대 서구 사회가 이미 특정한 믿음 체계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과학주의, 세속주의, 개인주의 역시 하나의 신앙 체계라는 것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그것을 신앙으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데 있었다.
대표작인 The Gospel in a Pluralist Society, Foolishness to the Greeks, Proper Confidence은 모두 같은 싸움을 담고 있다. 복음은 현대 문화의 손님이 아니라 주인으로 다시 말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뉴비긴은 또한 교회 일치 운동의 중요한 지도자였다. 그는 교단의 벽이 복음보다 커지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복음은 사람들을 하나로 부르는데, 교회는 종종 서로를 갈라놓고 있다고 보았다.
그의 신학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그는 서구 문명이 더 이상 기독교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직시한 선교사다.
뉴비긴의 글에는 이상한 힘이 있다. 그는 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그러나 읽고 나면 익숙했던 세상이 낯설어진다. 그는 복음을 변호하기보다 복음의 빛으로 문화를 해부했다. 그래서 그의 책을 읽는 일은 답을 얻는 경험이라기보다 새로운 눈을 얻는 경험에 가깝다.
많은 신학자들이 교회를 연구했다. 많은 선교사들이 선교지를 연구했다. 그러나 뉴비긴은 문화 자체를 선교의 대상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복음을 해외로 수출하는 방법보다, 복음이 한 문명을 어떻게 다시 상상하게 만드는지를 탐구했다.
그래서 레슬리 뉴비긴은 단순한 선교사가 아니다.
그는 현대 서구라는 거대한 선교지를 발견한 사람이다.
박삼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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