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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신학자51] 게자 버메스(Géza Vermes, 1924-2013)
더깊은신앙으로 samyoung.park............... 조회 수 7 추천 수 0 2026.08.08 21:49:55| 출처 : | www.facebook.com/samyoung.park.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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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게자 버메스(Géza Vermes, 1924-2013)
게자 버메스는 신학자라기보다 제2성전기 유대연구자 또는 역사적 예수연구자이기도 한 성서학자였다. 그러나 현대 예수 연구의 지형을 바꾼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의 영향력은 많은 신학자들보다 더 컸다.
그는 예수를 교회의 교리 속에서 찾기보다, 1세기 유대인의 흙먼지 속에서 찾으려 했다. 버메스에게 예수는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존재가 아니었다. 그는 갈릴리의 언덕을 걸었고, 유대인의 언어를 말했으며, 유대인의 기도 속에서 숨 쉬었던 사람이었다.
버메스의 핵심 주장은 단순하다. “예수는 무엇보다 유대인이었다.”
그는 수 세기 동안 교회가 예수를 지나치게 헬라화하고 신격화했다고 보았다. 그래서 예수를 다시 그의 본래 자리, 곧 유대교의 역사와 문화 속으로 돌려놓으려 했다. 버메스가 보기에 예수는 철학자가 아니었고, 체계신학자도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며 병자를 고치고 사람들을 깨우던 카리스마적 유대인 성자였다.
대표작인 Jesus the Jew는 학계에 작은 지진을 일으켰다. 그는 예수를 에세네파나 혁명가로 보지 않았다. 대신 엘리야나 하니나 벤 도사 같은 유대 전통의 기적 행자들과 비교했다. 예수는 특별했지만, 완전히 낯선 존재는 아니었다. 그 시대 유대교가 낳을 수 있는 인물이었다.
버메스는 또한 복음서를 읽을 때 후대 교회의 신앙고백과 역사적 예수를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복음서는 역사 기록인 동시에 신앙의 문서다. 따라서 예수 자신이 말한 것과 교회가 예수에 대해 말한 것을 구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그는 전통적 기독교 신학과 충돌했다. 버메스는 예수의 신성을 역사 연구로 입증할 수 있다고 보지 않았다. 부활 역시 역사학이 아니라 신앙의 영역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보수적 신학자들에게는 지나치게 인간적인 예수상을 제시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공헌은 분명하다. 그는 예수를 교리의 황금 왕좌에서 끌어내리려 한 것이 아니라, 갈릴리의 먼지 묻은 길 위에 다시 세워 놓으려 했다.
흥미롭게도 버메스는 원래 가톨릭 사제였다가 나중에 사제직을 떠났고, 결국 자신의 유대인 정체성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그의 연구 전체에는 “예수를 기독교의 창시자가 아니라 유대교 내부의 인물로 이해하려는 시선”이 일관되게 흐르고 있다. 이것이 그를 다른 역사적 예수 연구자들과 구별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많은 신학자들이 “그리스도는 누구인가?“를 물었다면, 버메스는 더 급진적인 질문을 던졌다.
“예수는 실제로 어떤 사람이었는가?”
그 질문 하나가 현대 예수 연구의 방향을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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