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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무척 길군요...그러나 이 어두운 밤도 끝날 때가 있겠지요? 그래요 해는 곧 뜰 것입니다. 밝아오는 새벽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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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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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
마21:21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 것이요 22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성 밖 베다니에서 하룻밤을 주무시고 이른 아침에 성으로 오신 예수님은 아마도 아침을 드시지 않은 모양입니다. 베다니에서 예루살렘성 까지는 약 십리쯤 되는 먼 거리입니다. 마침 길가에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열매를 찾았으나 찾지 못하고 그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십니다. 무화과 나무는 3월말쯤 되면 잎이 돋고 일주일정도면 잎으로 뒤덮이게 됩니다. 그런데 그 비슷한 시기에 진짜 무화과는 아니지만 작은 혹처럼 생긴 '탁트'라고 불리는 푸르스름한 열매가 생깁니다. 그것은 정말 배고픈 나그네나 따먹는 보잘것 없는 열매인데, 탁트가 전혀 없으면 6주 후에도 진짜 무화과가 하나도 열리지 않을 징표입니다.
예수님은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십니다. 그러나 이것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했던 것(렘19:1-15)과 같은 전형적인 행동비유입니다. 예수님이 무화과나무를 비유하여 책망한 사람들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습니다(마7:1-4)
무화과나무는 열매를 내지 못했기에 예수님에게 저주를 받아 말라버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또한 열매 없으니 무화과나무처럼 저주를 받을 것이 뻔한 일입니다. 열매가 무엇입니까? 무엇이 열매입니까? '기도의 응답'(22절)이 바로 열매입니다. 어떤 기도가 응답을 받습니까? '믿고 의심치 않는 마음'(21절)으로 드리는 기도가 응답을 받습니다.
오늘 나는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가 아닌가? 아니라면 '기도의 응답'이라는 열매가 있는가? 스스로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기도의 영광은 응답에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구하는 것은 다 주신다 하셨습니다.
이전에 저는 동양란을 한그루 키웠던 적이 있었습니다. 초봄에 약 한달정도 불쑥 솟은 줄기에 연분홍 꽃이 고고하게 피었다가 지는란이었는데 그 우아하고 청초한 꽃의 모습은 군자를 연상하게 해서 '군자란'이라는 이름을 얻었나봅니다. 그런데 관리를 잘 못했는지 한 해 꽃이 피고 그다음부터는 영 꽃이 없어서 버렸습니다. 기도에서 '응답'이란 바로 이 군자란의 아름다운 꽃송이와 같은 것입니다.
이렇게 과거를 회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도 한때는 말이야 새벽기도는 물론이고 금요철야, 작정가도 금식기도 밥먹듯이 했지" 그러나 그런 화려한 기도생활도 '응답'이 없으면 무용지물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맛보는 신비한 체험이나 경험도 '응답'이 없으면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중에 마음이 녹았습니다 .제 기도는 마치 하늘을 향해 타오르는 횟불과 같으며 말할수 없는 사랑의 감정 속에서 주님은 드디어 하늘의 문을 활짝 열어 응답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형편없던 나였는데 그나마 쓸만한 사람이 되었지 않습니까?" 이런 '응답'의 간증이 바로 '열매'입니다.
왜 예수님은 하필이면 무화과 나무에게 저주를 내리시고, 그걸 바라보며 신기해 하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믿고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며 기도하여 응답받는 비결을 알려 주셨을까요? 기도의 응답이 바로 예수님이 찾으시는 가장 아름다운열매이기 때문입니다.
'믿고' 고하는 기도에는 열매가 맺힙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마음속에 어떤 다짐이나 신념이 아닙니다. 믿음은 살아있는 어떤 존재를 말합니다. 바로 예수님 자체가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기도의 응답은 예수님을 의심하지 않을때만 옵니다.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래서 처음부터 열매를 맺을 수도 없었고, 그 거룩한 종교적인 모양만 무성해서 마치 잎만 무성한 무화과와 하나도 다를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늘 열매를 찾으십니다. 나에게는 기도응답의 열매가 있습니까? 기도응답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두가지입니다. 첫째는 응답해주시는 분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구했을 때이고, 또 한가지는 처음부터 나에게 기도를 응답해 주실 분(믿음)이 계시지 않았을 경우입니다. *
성 밖 베다니에서 하룻밤을 주무시고 이른 아침에 성으로 오신 예수님은 아마도 아침을 드시지 않은 모양입니다. 베다니에서 예루살렘성 까지는 약 십리쯤 되는 먼 거리입니다. 마침 길가에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열매를 찾았으나 찾지 못하고 그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십니다. 무화과 나무는 3월말쯤 되면 잎이 돋고 일주일정도면 잎으로 뒤덮이게 됩니다. 그런데 그 비슷한 시기에 진짜 무화과는 아니지만 작은 혹처럼 생긴 '탁트'라고 불리는 푸르스름한 열매가 생깁니다. 그것은 정말 배고픈 나그네나 따먹는 보잘것 없는 열매인데, 탁트가 전혀 없으면 6주 후에도 진짜 무화과가 하나도 열리지 않을 징표입니다.
예수님은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십니다. 그러나 이것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했던 것(렘19:1-15)과 같은 전형적인 행동비유입니다. 예수님이 무화과나무를 비유하여 책망한 사람들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습니다(마7:1-4)
무화과나무는 열매를 내지 못했기에 예수님에게 저주를 받아 말라버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또한 열매 없으니 무화과나무처럼 저주를 받을 것이 뻔한 일입니다. 열매가 무엇입니까? 무엇이 열매입니까? '기도의 응답'(22절)이 바로 열매입니다. 어떤 기도가 응답을 받습니까? '믿고 의심치 않는 마음'(21절)으로 드리는 기도가 응답을 받습니다.
오늘 나는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가 아닌가? 아니라면 '기도의 응답'이라는 열매가 있는가? 스스로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기도의 영광은 응답에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구하는 것은 다 주신다 하셨습니다.
이전에 저는 동양란을 한그루 키웠던 적이 있었습니다. 초봄에 약 한달정도 불쑥 솟은 줄기에 연분홍 꽃이 고고하게 피었다가 지는란이었는데 그 우아하고 청초한 꽃의 모습은 군자를 연상하게 해서 '군자란'이라는 이름을 얻었나봅니다. 그런데 관리를 잘 못했는지 한 해 꽃이 피고 그다음부터는 영 꽃이 없어서 버렸습니다. 기도에서 '응답'이란 바로 이 군자란의 아름다운 꽃송이와 같은 것입니다.
이렇게 과거를 회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도 한때는 말이야 새벽기도는 물론이고 금요철야, 작정가도 금식기도 밥먹듯이 했지" 그러나 그런 화려한 기도생활도 '응답'이 없으면 무용지물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맛보는 신비한 체험이나 경험도 '응답'이 없으면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중에 마음이 녹았습니다 .제 기도는 마치 하늘을 향해 타오르는 횟불과 같으며 말할수 없는 사랑의 감정 속에서 주님은 드디어 하늘의 문을 활짝 열어 응답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형편없던 나였는데 그나마 쓸만한 사람이 되었지 않습니까?" 이런 '응답'의 간증이 바로 '열매'입니다.
왜 예수님은 하필이면 무화과 나무에게 저주를 내리시고, 그걸 바라보며 신기해 하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믿고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며 기도하여 응답받는 비결을 알려 주셨을까요? 기도의 응답이 바로 예수님이 찾으시는 가장 아름다운열매이기 때문입니다.
'믿고' 고하는 기도에는 열매가 맺힙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마음속에 어떤 다짐이나 신념이 아닙니다. 믿음은 살아있는 어떤 존재를 말합니다. 바로 예수님 자체가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기도의 응답은 예수님을 의심하지 않을때만 옵니다.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래서 처음부터 열매를 맺을 수도 없었고, 그 거룩한 종교적인 모양만 무성해서 마치 잎만 무성한 무화과와 하나도 다를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늘 열매를 찾으십니다. 나에게는 기도응답의 열매가 있습니까? 기도응답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두가지입니다. 첫째는 응답해주시는 분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구했을 때이고, 또 한가지는 처음부터 나에게 기도를 응답해 주실 분(믿음)이 계시지 않았을 경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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