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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우 말씀묵상

깊은데로가서

밤이 무척 길군요...그러나 이 어두운 밤도 끝날 때가 있겠지요? 그래요 해는 곧 뜰 것입니다. 밝아오는 새벽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마가복음7:1-23 한번 생각해볼 문제들 (2)

마가복음 마가복음21............... 조회 수 2577 추천 수 0 2002.04.23 00:5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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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구분 :  
7:1 바리새인들과 또 서기관 중 몇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예수게 모였다가 2 그의 제자중 몇사람의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았더라 3.(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이 장로들의 유전을 지키어 손을 부지런히 씻지 않으면 먹지 아니하며 4 또 시장에서 돌아와서는 물을 뿌리지 않으면 먹지 아니하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지키어 오는 것이 있으니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음이러라) 5 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유전을 준행치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 6 가라사대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7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는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8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 9 또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유전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성전건축(?)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장소를 교회라고 합니다. 미국에는 주일 하루만 임대를 해서 예배를드리는 형태의 교회가 많다고 합니다. 평일에는 카페나 사무실로 사용을 하고 주일 하루만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건물은 성도들이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린다는 장소의 개념 이외에 다른 의미는 없습니다. 교회당을 '성전'이라고 부르는 것은 천부당 만부당한 이야기입니다. 교회는 성전이 아닙니다. 그런데 특히 교회 건축을 할 때 '성전 건축'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데 '성전'이라고 하면 벌써 거룩한 곳이라는 느낌이 들므로 '성전 건축'에 대한 심리적 설득력을 노리는 심리전 이상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집을 잘 지어서 성도들이 그곳에 모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그런 논리이고 명분입니다. 그러나 정말 그렇습니까?  

건물을 가리켜 성전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웅장한 건물을 지어서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완전히 그 역할을 끝냈습니다. 구약에서는 성전에서 속죄의 제사를 드렸지만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를 위해 속죄의 제사를 단번에 끝내셨으므로(히9:11, 12:28) 이제는 참 성전은 예수님 자신이시고(요2:19, 21 계21:22)제사를 드리는 성전은 예수님과 연합한 우리 몸이 성전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어딘가에 건물로서의 '성전'이 남아 있고 그 성전을 인정한다면 그 사람에게는 아직 예수님이 오시지 않은 것이고 구원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성전이 더 이상 건물이 아닌데도 교회당 건축물을 지으면서 '성전 건축'이라고 부르고, 교회의 각 건물을 가리겨 바울성전이니 안산성전이니, 여의도성전이니 한다면 그것은 구속사의 흐름을 거꾸로 역류시키는 것이며, 교회당 건물 자체를 우상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러한 한국교회의 '잘못된 전통'은 교회의 능력을 교회 건물의 크기에 따라 평가하는 물신주의를 낳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너도나도 다투어 더 크고 보암직한 성전 건축을 힘에 겹도록 강행하는 어리석은 짓거리들을 부끄러움도 없이 자행하고 있습니다.
보기에 좋은 성전(?)을 하나님도 기뻐하실 것이라구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정말 그렇다면 기독교의 성전은 천주교의 그 화려한 성당에 비할 바 못됩니다. 그 화려한 성당에서 드리는 죽은(?) 미사를 하나님이 기뻐 받으신다고 생각합니까?

진정한 예배는 장소와 무관합니다. 참된 예배는 훌륭한 교회당을 짓는 것과는 전혀 무관합니다. 교회당은 예배를 드리는 곳이기는 해도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만큼 '신성'한 장소는 아닙니다. 그곳에서 장례식을 하면 그 순간은 '장례식장'이고, 결혼식을 하면 '결혼식장'일 뿐입니다. 민방위교육을하면 '교육장'이고 국회의원 투표를 하면 '투표소'일 뿐입니다.
교회당에 대한 편견을 버리십시오! 교회당은 '성전'도 아니고 '신성한 곳'도 아니고 아무리 아름답고 깨끗하게 치장을 한다고 해도 하나님은 기뻐 하시지도 슬퍼 하시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교회당 안을 꾸미는데 있지 않고 진짜 성전인 우리들의 마음을 다스리고 정결케 하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십일조(?)

십일조 제도는 우리나라 교회의 가장 대표적인 전통중의 하나입니다. 대부분의 교회에서 '십일조 제도'를 별 의심 없이 시행하고 있습니다. 십일조 제도를 언급한다는 자체가 그래서 더욱 조심스럽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좀 더 솔직해져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십일조 제도는 끝났습니다. 십일조 제도는 구약의 율법 제도에 속한 것이었습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한다면 성전제도가 있었던 당시의 의식법에 속한 것이었습니다. 십일조는 주로 레위 지파의 생계비로 사용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에 의해 성전제도가 폐지되면서 레위지파의 역할도 끝났고 그들을 위한 십일조의 제도도 끝났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전에 있던 율법의 규정은 무력하고 무익했기 때문에 폐기되었습니다. 율법은 아무것도 완전하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게서는 더 좋은 희망을 주셧고 우리는 그 희망을 안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느 것입니다."(공동번역 히브리서 7:18-19)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돌아가시니라"(요19:30)

십일조 제도를 계속 구약 율법에 근거해서 강조하거나 시행하는 것은 커다란 모순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로 다 이루어 폐지된 의식법을 아직도 유효하게 여기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러나 십일조의 의식법은 페지되었지만 오히려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십일조의 법은 구속받은 백성의 새로운 사랑의 법으로 되살아났다고 보아야 합니다. 즉 우리가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었으므로 이제는 십분의 일뿐만이 아니라 십분의 십 모두가 하나님 것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율법대로라면 하나님의 것 십분의 일을 구별하였지만 새로운 법칙은 십분의 일 뿐만이 아니라 나머지 십분의 구도 하나님의 것이니, 그것은 나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소유(롬12:1)라는 것입니다.

십일조에 대하여 말할 때 인용하는 성경은 말라기3장과, 마태복음 23:23절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 말라기의 이 성경구절은 성전 제사제도가 염연히 존재했던 구약의 교훈입니다. 성경을 한 구절만 빼내어 나에게 맞추지 말고 문맥으로 보면 우선 말라기서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보아야 합니다.
"나를 시험하여...보라"는 구절을 들먹이며 헌금을 많이 내라고 강조하는 표어로 사용하는 목회자가 있다면 가슴에 손을 얹고 솔찍하게 하나님 앞에 부끄럼이 없는지 자신부터 살펴야 할 일입니다. 이 구절은 말라기 시대의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으며 성전 제사를 등한시 하고 사리사욕에만 급급했던 한심스런 상황을 책망하면서 주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필요를 공급해주신다는 것을 믿으라는 촉구이지, 아까워 내지 않던 십일조를 내면 복이 쏟아진다는 의미의 성경구절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이 구절에는 또다른 영적인 깊은 의미가 담겨 있지만 오늘은 말하지 않겠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저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마23;23) 에수님게서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마치 예수님께서도 십일조를 강조하신 것처럼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해입니다.
신약성경의 기록이라고 해서 모두 신약시대에 해당되는 기록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신약시대가 시작되기는 했지만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하시기 전 까지는 구약의 율법이 유효했으며 성전 제도가 폐지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와 요셉이 모세의 율법대로 아기 예수를 위해 정결예식을 행했고 희생제물과 할례도 율법대로 행했습니다.(눅2:22-24) 또한 에수님께서도 문둥병자를 고치시고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제사장에게 가서 검진을 받으라고 하였습니다(마5:23-24)

그러므로 아직 성전 제사를 드렸던 시기에 예수님께서 십일조를 바치라고 하신 말씀을 성전 시대가 끝난 이후에까지 유효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과 부활사건 이후로 새 언약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새 언약시대에는 우리들의 소유 전체가 하나님의 것이며 우리들의 생명까지도 주님이 값을 치루고 사셨다는 것을 인정하고서 내 몸과 정성을 다해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영적인 예배이며 온전한 십일조인 것입니다.
신약시대에는 성전도 없고 레위 지파도 없습니다. 성전 제사 제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으로 다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구약 제도에 속했던 율법적인 십일조의 권장은 신약교회의 전통으로 인정될 수 없습니다. (십일조에 대한 견해는 이다음에 제가 한권의 책으로 정리해 내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주일성수(?)                                                    
구약시대에는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켰습니다. 그런데 신약시대에는 토요일 대신에 일요일을 안식일로 지킵니다. 일요일을 '주의 날'(계1:10), 이것은 예수님이 '안식후 첫날'(요20:1) 곧 일요일에 부활하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또 초대교회에서는 주일에 모여서 에배를 드렸다는 것을 근거로 안식일이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변경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구약의 안식일이 거룩히 구별되어 지켜졌듯이 주일 또한 거룩히 구별된 주의 날이므로 '성수'해야된다는 논리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구약의 안식일이 신약의 주일로 바꾸었다는, 또는 바뀌어야 된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일요일에 모여서 예배를 드린 것은 확실하지만(행20:7) 그날을 특별히 구별하여 안식하였다는 말은 없습니다. 모일 때마다 사도들의 가르침과 성찬과 코이노니아를 나누었지만 그런 일을 특별히 일요일에만 행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필요에 따라서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행했습니다. 날마다 가정집에서 모이기도 했고(행2:46), 연속집회를 일주일간 갖기도 했고(행2:6-7), 사기에 의하면 주일 낮에는 일을 하고 저녁에 모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은 의무적으로 무조건 모든 일을 멈추고 쉬어야 했으며, 그 절차와 방식도 보통 까다로운 게 아니었습니다. 도저히 안식일이 주일로 대치되었다는 것은 그 분위기가 맞지 않습니다. 오늘날 주일을 안식일처럼 철저하게 '성수'해야 된다는 개념은 그래서 모순입니다.  
신약의 주일 예배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 어느 특정한 날을 정해 모인 것이 아니라 성도들이 모일 때마다 그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이 살아나는 부활의 새생명을 공동체 속에서 나누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느 특정한 날을 특별히 구별해야 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너희가 날과 달과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갈4:10-11)
주일이라는 한 특정한 날을 정하여 성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날마다 누리고 나누어야 할 구원의 감격과 기쁨을 어느 한날에만 가두어버린 듯한 생각이 듭니다.

성경이 말하지 아니한 것을 전통과 관습에 따라 별 생각없이 지키는 것에 대하여 가장 중요한 세가지만 살펴보았습니다. 그밖에도 생각해볼 문제들이 수없이 많이 있지만 다음에 기회가 있겠지요.
사람이 만든 전통이나 교리는 처음에 교회 속에 들어올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귀히 여기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삶에 적용하고 순종케 하고, 예배를 돕는 다는 이름으로 무분별하게 수용되는 여러 가지 인간적인 방법들은 '장로들의 유전'이나 다름없습니다. 그것들이 예배의 구심점으로 등장하면 어느 틈엔가 하나님의 말씀 대신 그러한 형식이 자리를 잡아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처럼 주객이 전도되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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