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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우 말씀묵상

깊은데로가서

밤이 무척 길군요...그러나 이 어두운 밤도 끝날 때가 있겠지요? 그래요 해는 곧 뜰 것입니다. 밝아오는 새벽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마가복음9:30-37 뒤로 돌아 뛰면 꼴찌가 일등!

마가복음 마가복음28............... 조회 수 3321 추천 수 0 2002.04.23 11:3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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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구분 :  
9:33 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새 제자들에게 물으시되 "너희가 노중(路中)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하시되 34 저희가 잠잠하니 이는 노중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爭論)하였음이라 35 예수께서 앉으사 열 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아무든지 척째가 되고자 하면 뭇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하시고 36 어린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37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성경은 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 동시에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이야기만 본다면 말씀이 삶과 분리되고 성경 속에서 사람의 이야기만 본다면 하나님의 능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오늘 말씀은 제자들의 실수(사람의 이야기)와 그 실수를 교정해주는 예수님(하나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온전하신 모습을 보고 우리 자신들의 일그러진 자세를 바로잡으라는 의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일에 몰두합니다. 제자들은 사람의 관점에서 자기들의 일에 몰두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동시에 예루살렘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기셨지만, 예수님의 관심은 십자가였고, 제자들의 관심은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었습니다.

가버나움으로 내려가는 길에 제자도 사이에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누가 크냐? 하는 문제였는데 2천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우리들 가운데 누가 크냐 하는 논쟁이 계속되고 있으니 그러고 보면 '키재기'는 인간들의 고유 기질인 듯 합니다.
예수님께서 특별히 세 제자들만 데리고 산에 올라가시자 남아있던 제자들 사이에서는 그들을 시기하는 사람이 생겨났습니다. 같은 동네에서 서로 고기잡이나 농사를 지었던 터에 자신들이 세명의 뽑힌 제자들보다 못난 것이 없다는 생각은 그들을 시기하는 마음으로 발전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누가 더 큰가 하는 논쟁을 벌였습니다.
직분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효과적으로 이루기 위한 도구로 주어진 것입니다. 직분은 감투가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교회 안에서는 직분이 감투가 된 지 오래입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불러 앉히고 "서로 누가 크냐"하는 문제에 대한 재판을 시작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그 문제를 언급하시자 옳지 이제는 예수님이 나의 편을 들어줄 것이야! 하며 기대하는 마음으로 귀를 기울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전혀 뜻밖의 말씀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35절)
예수님의 말씀대로라면 꼴찌가 되어야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꼴찌가 되는 것이 첫째가 된다는 말이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인간들의 기준으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하늘의 기준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늘나라에는 첫째가 없습니다. 또한 꼴찌도 없습니다. 모두다 섬기는 자들만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늘의 백성은 누구나 첫째이고 또 누구나 다 꼴찌입니다. 하늘나라에서는 그 누구도 첫째가 되고 싶어서 일부러 끝자리를 차지하려고 종노릇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열두 제자들의 잘못은 이러한 하늘 시민의 생활원리를 깨닫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늘나라에 없는 것을 원하였습니다. 그것은 첫째가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섬김을 받고 싶었습니다. 세상 원리에서는 섬김을 받는 자가 첫째이며 큰 자입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의 원리에서는 작은 자가 큰 자며(눅9:48), 첫째가 섬기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의 관심은 "누가 크냐"에 쏠릴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늘나라에 없는 주제입니다. 더구나 세상의 원리로서 첫째가 끝번을 놓고 다투는 일은 너무나도 어리석고 부끄러운 짓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 앞에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세우셨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어른들 앞에 혼자 서있는 어린아이의 존재가 무엇입니까? 그 아이에게 무슨 권위가 있으며 무슨 잘난 것이 있었겠습니까? 어른들이 들러선 곳에 가만히 서 있는 한 작은  아이에게 무슨 시기심이나 경쟁심이 있었겠습니까? 그 아이가 어찌 출세를 원해서 열심을 내고, 대접받기 위해 첫째의 자리를 노리며, 자신의 인기나 명예를 위해 동분서주했겠습니까? 그런 것들은 모두 어른들이나 하는 짓 아닙니까!
그래서 주님은 어른들을 가르치기 위해 어린아이를 실물 교재로 사용하셨습니다.  아이들이 어른들에게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이 오히려 아이들로부터 배워야 했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어른들 앞에서 자기를 내세우지 않습니다. 그들은 어른들에게 의존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결코 하늘 아버지 앞에서 자기를 내세우지 않습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을 의지할 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늘나라에는 어린아이들만 있습니다. 이것이 어린아이가 되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씀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수난에 대한 첫 번째 예고를 하실 때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8:34)

열두 제자들은 십자가 수난의 길을 걸어가시는 예수님을 따르는 노중(路中)에서 "서로 누가 크냐"고 쟁론하였습니다. 하지만 십자가는 고개를 숙여야만 지고 갈 수 있습니다. 십자가는 땅바닥을 바라보며 지고 가는 것입니다. 높은 곳이 아닌 낮은 곳을 바라보며 지고 가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를 지고서 달려가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십자가 길에서는 키재기도 없고 배타주의도 없습니다. 십자가는 누구의 독점물이 될 수도 없습니다. 각자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가기에도 너무나 무거운 것이 십자가인데 어찌 남의 십자가 가지 넘본단 말입니까. 오직 예수님이 지고 가신 겸비와 섬김과 희생과 자기부인의 십자가만이 각자의 어께 위에 놓여져 있어야 합니다.

저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러나 저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완전한 것은 아닙니다. 저는 자주 넘어지고 실족합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그런 저를 오히려 더욱 힘들게 하고 무너뜨리려 하지만 예수님은 꾸짖으시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든 다시 일으켜 세워 주시려 하십니다. 그리하여 다시 정상적으로 걷게 하십니다.
때때로 내가 실패했을 때 나는 예수님으로부터 책망과 정죄를 받을까 두려워 도망을 칩니다. 주변의 사람들도 어서 도망치라고 부축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히려 불쌍히 여기시며 "이렇게 해야 네가 성공할 수 있다" 혹은 "네가 실패한 이유는 이것 때문이다" 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나의 실패에 대한 정죄 보다는 어떻게 해야 그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 것인지 가르쳐 주시는데 더 관심이 있으신 분입니다. 할렐루야!  
오늘 말씀 속에서도 참으로 어리석은 논쟁을 하던 제자들을 따끔하게 벌하실 수도 있었을 터인데 어린아이까지 동원하여 쉽게 설명을 해주시는 부드러운 면을 볼 수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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