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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우 말씀묵상

깊은데로가서

밤이 무척 길군요...그러나 이 어두운 밤도 끝날 때가 있겠지요? 그래요 해는 곧 뜰 것입니다. 밝아오는 새벽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를 깊이 알자

누가복음 누가복음01............... 조회 수 5493 추천 수 0 2002.05.31 15:4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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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1:1-10 
구분 : 눅1 

누가복음1      
예수를 깊이 알자 
눅1:1-10  
2000.10.1 믿음교회 주일오전설교


 1.예수를 알기 원했던 누가
 2.알되 깊이 알자
 3.예수를 깊이 알려면
 4.예수의 임재와 충만
 5.알았다면 전하자

 1 <데오빌로 각하에게>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2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군 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3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4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로라


1.알기 원했던 누가
 예수에 대하여 진실로 알기 원하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수를 사람들에게 바로 보여 주기를 간절히 원하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안디옥에서 태어난 ‘누가’라는 의사입니다.
 그 당시에는 똑똑한 노예들을 선택하여 의학공부를 시켰기 때문에 누가도 누군가의 노예였으리라 추측됩니다. 누가는 당시에 고위층이었던 ‘데오빌로’에게 두 번의 서신을 보낸 것으로 보아 그와 친밀한 교분이 있었고(눅1:3,행1:1) 헬라문학에 정통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전설에는 주후 100년경까지 전도하다가 순교하였다고 합니다.
 누가가 어떻게 해서 예수를 믿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예수를 믿고 안디옥교회 교인이 되었고, 거기서 존경하는 스승이요 목회자인 바울과 바나바를 만났고, 이들 아래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누가는 바울의 세계선교여행에 동행하면서 성령의 기적의 역사를 보고, 예수라는 분에 대하여 더 알고 싶었고 예수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도대체 예수라는 분은 어떤 분이셨는가?”,
 “그분은 이 땅에서 어떻게 사셨는가?”
 “또 그분이 당한 고난과 십자가는 무엇이고 부활은 어떤 것인가?”
 누가는 예수에 대해 궁금한 것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예수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누가는 사도 바울이 로마황제의 재판을 기다리며 가이사랴 감옥에서 지낼 때 그 안에서 바울의 주치의로 고난을 함께 했습니다. 그때 감옥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 친히 예수에 대해 질문도 하고 듣기도 하면서 예수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습니다.
 누가는 또 로마로 재판을 받으러 떠나던 바울과 함께 동행 했던 사람입니다. 당시 법에는 죄수와는 아무도 동행할 수 없었습니다. 단 죄수의 노예만 가능했습니다. 그렇다면 의사 누가는 바울과 함께 로마 길에 동행하기 위해 바울의 노예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누가는 바울이 감옥에서 수감생활을 할 때부터 그가 사형을 당할 때가지 바울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가는 진정한 제자의 길, 진정한 배움을 위해 그의 노예가 되기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누가가 바울 사도를 돕는 가운데 가장 놀라운 사실은 역시 바울을 도우러 온 예수님의 제자 마가(Mark)를 만난 일입니다.(딤전4:11, 몬1:24) 마가는 훗날 마가복음을 기록한 사람일 뿐 아니라 예수께서 그의 집에 자주 들리셨고 예수를 따라다니며 예수님께서 일하시는 모습을 친히 목격하고 경험한 사람입니다. 특히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에 그의 집은 ‘마가의 다락방교회’로 변해서 신자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 장소가 되었습니다.
 누가는 마가와 함께 지내면서  마가를 통해 예수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었습니다.
 또 로마에 온 베드로를 만나서 그가 알고 있었던 예수에 대한 지식이나 사실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순교하는 모습을 보고 그 후에 붓을 들고 기록한 책이 바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입니다.
 누가는 직업이 의사였기 때문에 사건을 있는 그대로, 들은 그대로 본 그대로 자세하게 서술 할 수 있었습니다.
 누가복음은 4복음서 중 가장 먼저 기록된 성경입니다.
로마에 있는 누가상


2.알되 깊이 알자
 누가는 예수님을 알되 깊이, 자세히 알기를 원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알고 싶어 하면서도 그러나 자세하고 정확하게 더 깊이 들어가려고 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다른 학문들은 많은 돈을 들이고 시간을 투자하여 열심히 공부하면서 예수님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예수를 누군가에게 소개하기 위해서 우리는 누가처럼 예수에 대하여 좀 더 깊이, 좀 더 넓게, 자세히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를 바르고 정확하게 소개해 주어야 합니다. 누가는 의사이다 보니 굉장히 체계적이고 사실적으로 성경을 기록을 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기록도 4복음서중에 가장 상세하고, 어린이,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도 빠뜨리지 않았으며, 일어난 사건을 순서대로 기록을 했습니다.
 우리는 누가가 자세히 보고 경험한 예수님에 대한 기록을 지금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도 누가처럼 예수님을 자세히 알고 경험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누가는 예수님에 대해서 단순히 눈에 보이는 표면적 정보만을 전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성경을 기록하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세계는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습니다. 오직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볼 수 있고,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부활의 주님이 도마에게 나타나서 하신 말씀이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자는 더 복되다”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바라볼 때,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깊이 보는 것이요 깊이 아는 방법입니다. 누가는 예수님에 대한 단순한 정보전달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만나도록 우리를 예수님께로 인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누군가에게 소개해 주기 위해서는 예수를 바로 아는 지식과 예수님을 직접 만난 생생한 경험이 필요합니다.


3.예수를 깊이 알려면
 우리는 2천년전에 돌아가신 예수님을 지금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구름을 타고 하늘로 승천하시고 가시면서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같이 있게 하시겠다.”(요14:16)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 아시는 대로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님이 임하심으로 그때부터 성령시대가 시작되었으며, 우리는 성령님을 통해서 예수님을 깊이 만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깊이 이끌고 가시는 영이십니다.
 ①기도할 때 성령님은 우리에게 임하십니다. 주님을 바라보고 입을 열어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주님께 나아갈 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응답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부르짖는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때로는 함께 모여 열정적으로, 때로는 조용히 묵상하며 개인적으로 기도할 때 성령님은 오셔서 나를 만나 주십니다. 정소를 정해놓고 정해진 시간에 매일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몇 번 해보고 아무 반응이 없으면 포기해버리는 그런 얕은 기도로는 성령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받기 위해 기도하고 부르짖을 때, 어느 순간  마음속에 소원이 일어납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2:13) 그러므로 무슨 일이든지 먼저 성령님께서 소원과 확신을 주실 때까지 기도한 다음에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아 행하면 절대로 실패하지 않습니다.
 ②말씀을 묵상할 때 성령님은 우리에게 임하십니다.
 ③찬양할 때 성령님은 우리에게 임하십니다.
 ④환경 가운데 성령님이 그 환경을 이끌어 가십니다.
 
4.예수의 임재와 충만
 예수님을 깊이 안다는 것은 예수님에 대한 지식을 많이 습득하여 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경험하여 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만나주시는 그 순간을 ‘임재’라고 합니다. 오늘날은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거의 멈춘 시대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더 이상 사모하지 않습니다.
 토저는 “서기관은 자기가 읽은 것을 말하고 선지자는 자기가 본 것을 말한다. 그 차이는 상상적인 것이 아니다. 그 차이는 바다와 같이 넓다.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정통교리의 서기관들이 남아돌 정도로 많은데 선지자들은 도대체 어 디 있단 말인가? 서기관의 엄한 목소리가 복음주의를 지배하고 있지만 교회는 베일을 통과하여 내적 눈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목격한 성도의 부드러운 음성을 기다리고 있다. 거룩한 임재로의 살아있는 체험에 들어가는 것은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에게 열려진 특권임에도 불구하고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인터넷의 발달로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이 홍수처럼 그야말로 터져버린 댐처럼 엄청나게 쏟아지지만, 그러나 사람들의 영혼은 더욱 파리해져 가고 사람들은 더욱 더 타는 목마름으로 더욱 말씀을 사모하고 갈망하는 이 기이한 현상은 무엇 때문입니까? 설교가 사람들을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끌고 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설교는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 속에 들어가 살아있는 생명력을 끌어내오는 설교가 아니라 아카데믹한 상아탑에서 논리적이고 분석적으로 말씀을 연구한 학자들의 머리에서 나온 설교가 대부분입니다. 설교가 영혼을 적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지식만 증가시켜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임재 속에 들어가 방방 뛰기보다 그냥 점잖게 한 시간 설교 관람을 하고 돌아가는 것을 더 원합니다.


5.알았다면 전하자
 누가는 예수님에 대하여 바르게 알기를 원했을 뿐 아니라, 데오빌로라는 분에게도 배운 것을 확실하게 알려주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면 데오빌로라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데오빌로, 즉 헬라어 ‘데옵힐로스’는 문자적으로는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자’ 또는 ‘하나님의 친구’(데오스와 필로스의 합성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데오빌로는 누가가 복음을 전하기 전까지는 아직 예수를 잘 알지 못하는 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누가는 로마의 귀족에게 기독교는 로마를 반대하는 종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어 그도 예수를 믿고 로마인들도 저항 없이 예수를 믿도록 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를 만나기만 하면 사람이 변하게 됩니다. 인격이 변하고, 생각이 변하고, 생활이 변하고, 언어가 변하고, 자세가 변합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가난한 자들이 가난을 벗어나고, 교만한 자들이 낮아지고, 하나님을 모르던 자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이것이 정상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떻습니까?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예수님을 믿는 다고 하는 사람들의 대 사회적 신뢰도는 바닥 정도가 아니라 땅 속 지하로 내려가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를 잘못 믿어서 그렇습니다. 예수를 머리로만 믿고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데 이용하기만 하였지 실제로는 예수님을 믿지 않은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런 자들에 대해서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2-23)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라고 하신 말씀에서 ‘안다’는 헬라어 ‘기노스코’(ginosko)입니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남녀의 성관계를 표현할 때 사용한 말로(마1:25) 아주 ‘친밀함’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도무지 친밀하게 알지 못 한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8장 3절에도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주시느니라.” 여기에서 ‘안다’라는 말도 ‘기노스코’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을 친밀하게(깊이) 아십니다.
 우리는 예수를 바르게 알고 똑바로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를 볼 뿐 아니라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 안에서 살고, 예수 안에서 죽고, 예수 안에서 일하고, 예수 안에서 쉼을 찾는 진짜 ‘예수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지금처럼 유야무야 대충 예수 믿어서 될 일이 아닙니다.
 예수를 알되 깊이 알아야 합니다. “너희가 사랑 가운데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엡3:17-19)“ 궁금하지 않습니까?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의 사랑을 알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산다는 말입니다. 예수 사랑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은 아직 예수님을 모르는 것입니다. ⓒ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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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1.The Renovare Spiritual Formation Bible(두란노)
2.j.c.Ryle<누가복음서 강해1/CLC>p.11-16
3.윤희주<누가복음상/보문>p.7-24
4.교부들의 성경주해<루가복음서/분도출판사>p.56-59
5.토저<하나님의 추구/복있는사람>

6.2020.7.22 수요


예수를 깊이 알아가자


1:1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2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꾼 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3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4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로다

사람들은 사람에 대하여 알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개인신상에 관한 이야기들이 입에 쉬이 오르내리게 됩니다. 특히 유명한 사람일수록 그 사람에 대하여 더 알고 싶어지고 그 사람은 화제 거리가 되곤 합니다. 특히 청소년들은 거의 열광적으로 스포츠 스타나 연예인들에게 집착을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에 대하여 진실로 알기 원하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사람들에게 바로 보여 주기를 간절히 원하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바로 안디옥에서 태어난 ‘누가’라는 의사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똑똑한 노예들을 선택하여 의학공부를 시켰기 때문에 이 사람도 노예였으리라 추측됩니다. 그가 거기서 예수님을 믿었고 노예에서 해방을 받은 후, 안디옥 교회 교인이 되었고, 거기서 존경하는 스승이요 목회자인 바울과 바나바를 만났고, 이들 아래서 신앙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더욱이 바울과 세계선교에 동행하면서 이해할 수 없는 성령의 기적의 역사를 보았던 이 사람은 예수라는 분에 대하여 분명히 알고 싶었고 자신도 예수를 분명하게 전하고 싶었습니다.

“도대체 예수라는 분은 어떤 분이셨는가?”,
“그분은 이 땅에서 어떻게 사셨는가?”
“또 그분이 당했다는 고난과 십자가는 무엇이고 부활은 어떤 것인가?”
예수님에 대해 궁금한 것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사도 바울이 로마황제의 재판을 기다리며 가이사랴 감옥에서 지낼 때 그 안에서 바울의 주치의로써 고난을 함께 했습니다. 그때 그는 감옥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친히 예수에 대해 질문도 하고 듣기도 하면서 예수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습니다. 또 그는 로마로 재판을 받으러 떠나던 바울과 함께 동행했던 사람입니다. 그 당시 법에는 원래 죄수와는 아무도 동행할 수 없었습니다. 단 죄수와 동행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의 노예만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의사 누가는 바울과 함께 로마 길에 동행하기 위해 그의 노예가 되어서 그가 감옥생활과 함께 순교할 때까지 노예가 되었단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예수 제자의 길, 진정한 예수를 배움은 오직 그의 노예가 될 때만 가능합니다.

누가가 바울 사도를 돕는 가운데 놀라운 사실은 역시 바울을 도우러 온 마가(Mark)를 만난 일입니다. (딤전4:11, 몬1:24) 이 사람은 마가복음을 기록한 사람일 뿐 아니라 그는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집에 자주 들리셨고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예수님께서 일하시는 모습을 친히 목격하고 본 사람입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그의 집은 교회로 변해서 신자들이 모이기 시작했던 집안의 아들입니다. 이런 마가와 함께 그곳에서 지내면서 누가는 마가를 통해 예수님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또 로마에 온 베드로를 만나서 그가 알고 있었던 예수님에 대한 지식이나 사실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기회도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순교하는 모습을 보고 그 후에 붓을 들고 기록한 책이 바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입니다.

오늘날 대부분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알고 싶어하면서도 자세하고 정확하게 알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또 예수에 대해 알려고 하는 사람들도 ‘자기(I)’란 안경을 통해서만 예수님을 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세계는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습니다. 오직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볼 수 있고,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부활의 주님이 도마에게 나타나서 하신 말씀이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자는 더 복되다”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바라볼 때 인간의 안경은 벗고, 믿음의 눈으로 보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깊이 보는 것이요 깊이 아는 방법입니다.

누가는 예수님에 대하여 바르게 알기를 원했을 뿐 아니라, 데오빌로라는 분에게도 배운 것을 확실하게 알려주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면 데오빌로라는 사람은 과연 누구입니까? 데오빌로 아직 예수님을 잘 알지 못하는 분 같습니다. 그래서 그를 로마의 높은 신분을 가진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로마의 귀족에게 기독교는 로마를 반대하는 종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어 그도 예수님을 믿고 로마인들도 저항 없이 예수님을 믿도록 하려 했습니다.
‘예수님을 소개해 주자.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만나게 하자.’
이것이 누가의 근본 정신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만나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기만 하면 사람이 변하게 됩니다. 인격이 변하고, 생각이 변하고, 생활이 변하게 됩니다. 또 언어가 변하고 자세가 변합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가난한 자들이 가난을 벗고 일어서며, 교만한 자들이 낮아지고 하나님을 모르던 자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난한 사람에게도,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분들에게도, 부자라고 자만하는 분들에게도 예수님을 소개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들의 최고의 사명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소개해 주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들이 누가처럼 예수님에 대하여 좀 더 깊이, 좀 더 넓게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바르고 정확하게 소개해 주어야 합니다.
누가는 의사이다 보니 굉장이 체계적이고 사실적으로 성경을 기록을 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기록도 4복음서 중에 가장 상세하고, 어린이,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도 빠뜨리지 않았으며 일어난 사건을 순서대로 기록을 했습니다
누가 처럼 예수를 깊이 알아 가는 일에 힘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바로 아는 지식과 깊이 있는 말씀묵상과 기도를 통해서 날마다 믿음의 진보를 이루어야 합니다.

1장 5절에서 25절까지는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여인이 낳은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사람이 세례 요한이라고 했습니다. 신약과 구약을 이어주는 세례 요한의 위치가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세례 요한’에 대해서 먼저 알고 넘어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보통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는 불이 꺼지고 조용해집니다. 그래서 무대가 열릴 때 사람들이 집중하도록 해 줍니다. 큰 공연을 할수록 반드시 사회자가 나와서 “여러분, 오랫동안 기다리셨습니다. 이제 막이 오르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사라진 뒤 무대가 열리게 됩니다. 세례 요한은 바로 무대가 열리기 전의 사회자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지구라는 무대 위에서 이제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시는, 임마누엘 되어지는 그 순간에,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때에 세례 요한이 먼저 와서 “여러분, 많이 기다리셨죠. 이제 우리가 기다리던 그 메시야가 곧 나오시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사라지는 것입니다.

사라질 때도 잘 사라져야 합니다. 어떤 가정에 초대를 받았는데 저녁 식사도 하고 얘기를 어느 정도 나눠서, 주인이‘이제 그만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 전에 일어서야지 눈치도 없이 계속 있으면 미움을 받습니다. 아쉬움이 남아있는 순간에 딱! 가는 것이 좋습니다. 세례 요한은 그런 역할을 잘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등장하시고 공생에 사역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 세례 요한은 사라졌습니다.

마지막 선지자가 와서 메시야의 길을 예비해 주셨습니다. 이전에 하나님께서 계속 선지자를 보내셔서, 오실 예수님에 대하여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우리 인간이 어떻게 준비하고 살아야 되는지를 알려 주셨습니다. 그 일을 담당한 사람이 선지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모세, 엘리야, 이사야와 같은 선지자를 계속 보내어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고 메시야를 영접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시기 전 수 백년 동안 선지자가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 선지자가 와서 메시야의 길을 예비해 주신 것입니다. 그분이 바로 세례요한입니다. 예수님이 오시는 무대의 막을 올려 주었던 세례요한은 가장 마지막 선지자였고 가장 큰 선지자였습니다. 다른 선지자들은 예수님을 보지 못했지만 그는 예수님을 보고 직접 만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마지막 선지자로 세우셨고 그는 율법을 가장 잘 지키는 자였습니다.
세례 요한 자신 뿐 아니라 부모들까지도 성경에서는 의로운 부모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존경받고 혈통 있는 집안의 사람들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요한은 가문적으로나 인간적으로도 완벽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하신 하나님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살았고 옷은 짐승의 가죽이었으며 음식은 석청이었습니다. 왜 그는 그러한 생활을 하였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오시는 시점에서 그로 하여금 세상 인간들에게 정결케 살 것을 알게 하셨고 그로 하여금 메시야를 준비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절망을 가르쳐 주고 아무리 율법적으로 살아도 구원을 얻을 수 없음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인간이 도덕과 윤리를 아무리 외치며 살아도 그것이 구원을 주지 못함을 알도록 하신 것입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과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 똑같이 “공부가 전부는 아니다”라고 말을 하였을 때 어떤 이의 말을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도덕적인 사람과 비도덕적인 사람이 “도덕적으로 사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라고 말했을 때 어떤 이의 말을 신뢰하겠습니까? 세례 요한은 정결하고 율법적으로 살았으나 결국은 인간이 참되고 완벽하게 살 수 없음을 알림으로써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준 것입니다.
물론 율법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구원을 얻지는 못합니다. 교회를 나오는 이유가 도덕적으로 올바르게 살자는 설교를 듣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으로는 근본적인 생명을 얻지 못합니다. 바로 세례요한이 이것을 잘 정리해 주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께로 갈 자가 없느니라”예수 그리스도께로 안내한 세례 요한은 마지막 선지자요, 가장 위대한 선지자였습니다.

우리는 예수님를 바르게 모셔야 합니다.
그를 볼 뿐 아니라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살고,
예수님 안에서 죽고,
예수님 안에서 일하고,
예수님 안에서 쉼을 찾는 바로 이 사실을 깨닫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세례 요한을 보내셔서 말하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내가 곧 생명의 떡이다. 내가 곧 진리다. 내가 곧 모든 율법을 완성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제 예수님 안에서 자유함을 얻습니다. 우리는 이제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존재가 되어졌습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이제 새로운 존재가 되어진 것입니다.   Ⓒ 2000.10.1 믿음교회 주일오전설교


△로마에 있는 누가상

△ 에베소에 있는 누가의 묘


댓글 '1'

김용범

2003.01.10 22:05:17

전도사님께 감사드립니다. 귀하신 예수그리스도를 알게해주심에.
예수님에 대해서 조금더 보강한다면, 롬3:23에 말씀처럼 우리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앞에 나갈수 없는 원죄와 자범죄,등등 죄인이기때문에 예수님께서 사형틀 십자가에 우리의 죄를 대속하심으로(롬8:2), 그리고 죽으시고, 3일만에 부활하심으로 인하여 사망과 지옥권세를 가진 사단의 권세를 꺾으시고 우리를 사단의 권세에서 해방시키심으로(요일 3:8) 전도사님설교말씀처럼 (요14:6말씀처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하나님을 만날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알게 하신 성삼위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과 찬양을 돌리며, 귀하신 사역을 하시는 최용우전도사님께도 감사와 계속적으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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