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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우 말씀묵상

깊은데로가서

밤이 무척 길군요...그러나 이 어두운 밤도 끝날 때가 있겠지요? 그래요 해는 곧 뜰 것입니다. 밝아오는 새벽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믿음의 가정

누가복음 누가복음02............... 조회 수 4597 추천 수 0 2002.06.03 11: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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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1:11-25 
구분 : 눅2 

누가복음2

믿음의 가정

눅1:11-25


2000.10.15. 믿음교회 주일오후설교


1.경건한 가정(5절)

2.순종하는 가정(6절)

3.사랑의 가정(7절)

4.차례대로 봉사 (8절 상)

5.하나님 앞의 봉사(8절 하)

6.성전에서의 봉사(9-11절)

7.자녀를 위한 기도(12-23절)

8.말없는 기도(18-23절)

9.돌보시는 기도(24-25절)


하나님께서 세운 공동체가 셋 있으니, 그 첫 번째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이 가정이고, 그 다음에 교회, 그 다음에 나라입니다. 한 나라가 없어져도 교회와 가정은 남아 있고, 교회가 없어져도 가정은 남아 있을 것입니다. 교회나 나라는 내 맘대로 바꿀 수 있지만 피로 맺어진 가정은 내 맘대로 바꿀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가정이 가장 중요하고, 그 다음 교회, 그리고 나라입니다. 교활한 사탄은 가정이 무너지면 교회도, 나라도 저절로 무너진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가정’ 허물기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교회의 일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교회 안의 분주한 행사 때문에 가정을 소홀히 하지는 마십시오. 미국의 어떤 교단 총회장님은 우연히도 딸의 결혼식과 교단총회일이 겹쳤답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총회장이면 교단총회에 참석하는 것이 당연할 텐데, 이분은 딸의 결혼식이 훨씬 중요하다고 여기고 딸의 결혼식에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더 성숙한 교단 지도자들은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 자리에 없는 분을 총회장으로 재선출하였다고 합니다.

집은 물질이지만 가정은 정신입니다. 가정은 또 가족이 아닙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이 아니면 ‘가정’은 없습니다. 그냥 식구이고 가족일 뿐입니다. 가족이나 식구는 육체이고 가정은 영혼입니다. “가정이란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 그 사랑을 서로 교환하는 곳입니다. 그 때문에 그것은 교회(진정한 의미의)의 일종입니다. 다만 가정에서는 사랑이 일부 소수인에게 국한된다는 것, 영혼의 사랑에 다시 저절로 우러나는 육체적인 사랑이 보태어진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교회를 축소한 것이 가정이고 교회를 확대한 것이 국가입니다.”(우찌무라간조 전집9권 p29)

사람이 볼 때 저 사람은 참 의롭다고 여겨도 하나님이 보실 때는 아주 형편없는 사람이 있고, 사람이 볼 때는 별 것 아닌데 하나님이 보실 때는 참으로 칭찬할 만한 의로운 사람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표준과 사람의 표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표준으로 의로운 사가랴 가정을 자세히 살펴보는 것이 행복한 그리스도인의 자정을 이루는데 커다란 도움이 될 것입니다.


1.경건한 가정(5절)

“유대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하나가 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유다 나라에 사가랴라는 총각 하나가 있었는데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은 성전에서 봉사를 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보실 때 못 마땅한 것이 많아서 책망을 많이 받았던 ‘사두개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가랴는 더 이상 칭찬할 수 없다 할 정도로 칭찬을 많이 받습니다. 정말 훌륭하게 믿음 생활 잘하는 청년이었습니다.

그리고 처녀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 처녀의 이름은 엘리사벳입니다. 이 엘리사벳은 아론의 자손인데 여기서 아론의 자손은 제사장 가문임을 의미합니다. 역시 하나님을 잘 섬기는 가문입니다.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하나님을 잘 믿고 봉사를 잘 하는 처녀와 총각이 만나서 한 가정을 이루었다는 말입니다. 결국 이 가정은 처음부터 믿음으로 시작한 것입니다. 그 둘 사이에서 믿는 일에 다른 이유가 없고, 또 하나님을 섬기자는데 다른 이견이 없습니다. 말을 안 해도 다 통하고 봉사하는 일에는 손발이 척척 맞았습니다. 이렇게 볼 때 가난해도 참으로 재미있고 행복한 가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뜨겁게 믿고 봉사하려고 하는데 남편은 낚싯대나 들고 다니면서 아내에게 교회에 나가지 못하도록 훼방을 놓는다면 얼마나 괴로울까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므로 믿는 남녀가 한 가정을 이루어 믿음으로 산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복된 일입니다. 혹시 처음에 믿음으로 시작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낙심할 것은 없습니다. 처음에 믿지 않고 나중에 함께 믿어도 얼마든지 복된 가정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가정에서 두 내외가 믿음 생활을 열심히 하고 봉사를 잘 한다는 것은 참으로 복 중에 복입니다. 그것이 바로 경건한 가정이요, 의로운 가정입니다.


2.순종하는 가정(6절)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 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율법이란 하나님의 법 전체를 일컫는 말이고

계명이란 한 조목 한 조목을 가리키는 말이고

규례는 계명을 시행하는데 필요한 세칙들입니다.

이것은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하나님의 계명, 하나님의 법을 한 조목 한 조목 다 지켰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지 말라는 것은 남편뿐만 아니라 아내도 하지 않았고, 하라 하는 것은 의논 안 해도 의례히 할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순종하는 가정이었습니다. 이런 가정이 의로운 가정입니다. 의로운 사람의 가정은 하나님의 법에 대해서 철저하게 순종하는 가정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율법적인 의라고 해도 좋습니다. 물론 율법의 의로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구원을 이미 얻었으니 하나님의 법을 지키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한다는 증거라고 성경은 말합니다.(요일5:3)


3.사랑의 가정(7절)

“엘리사벳이 수태를 못하므로 저희가 무자 하고 두 사람의 나이 많더라.”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늙었습니다. 그러나 수태를 못하여 자녀가 없었습니다. 두 내외가 아들도 딸도 없이 나이 많아 늙기까지 살아오면서 무척 금슬이 좋았다는 것은 놀랍습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젊음을 사랑하지만

당신은 나의 백발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한용운<사랑하는 까닭에>

사람들은 웃는 모습은 사랑하지만 울고 짜증내고 역정내는 사람은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부부가 살아가다 보면 어떻게 항상 웃고만 삽니까? 때로는 역정도 내고 때로는 속이 상해 울기도 하고 또 바가지를 긁으며 짜증을 내기도 하는데 그럴 때에도 그 눈물까지 사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언제나 당신을 그리워합니다.’ 라는 뜻입니다. '내가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건강할 때 사랑하지만 당신은 나의 병든 몸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젊어서 건강할 때도 사랑했지만 병든 몸까지라도 사랑하는 이 사랑이 얼마나 멋진 사랑입니까.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바로 이런 부부입니다. 일평생 살아오면서 젊음은 다 갔고 지금은 늙음만 남았습니다.(눅1:36). 이들 부부는 젊음을 사랑했을 뿐만 아니라 늙음까지도 사랑했습니다. 이들 부부는 일평생 살아오는 동안에 어떻게 웃고만 살 수 있었겠습니까? 울고 짜증도 냈을텐데 울고 짜는 눈물까지도 사랑했습니다. 진실로 사랑이 충만한 가정입니다. 의로운 사람들은 이렇게 사랑이 충만한 가정 생활을 해야 합니다.


4.차례대로 봉사 (8절상)

“마침 사가랴가 그 반열에 차례대로 봉사하더라.”

그 당시 제사장들은 2만 명 정도였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제단 크기가 교실한칸 만도 못합니다. 이 많은 사람들을 봉사하게 하려고 스물 네 반열로 나누었는데, 1년에 두 번만 봉사할 차례가 돌아옵니다. 일년에 두 번밖에 없는 봉사의 기회인데 한 번에 일주일씩 봉사를 합니다. 그래서 사가랴는 자기 차례가 돌아오게 되면 기다리고 준비했다가 정성스럽게 봉사했습니다. 본문의 차례대로 봉사했다는 말은 이런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5.하나님 앞의 봉사(8절하)

‘예수’라는 영화를 보니, 십자가에 못 박힐 사람은 자기가 못 박힐 십자가를 죽을 장소까지 지고 가야 합니다. 로마 군병들이 예수님께 지워 골고다까지 가는데 가시 면류관을 써서 피가 흐르고 땀이 흘러 기진맥진해 쓰러져 가지를 못합니다. 이때 로마 군병이 할 수 없이 구레네 사람 시몬을 붙들어 십자가를 지워 언덕까지 올라갑니다.

구레네 시몬은 예수님의 고난의 현장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당하는 고난의 현장에 없었다면 십자가를 질 기회가 없었을 것입니다. 로마 군병들이 십자가를 대신 지울 사람을 찾았을 때, 건강하고 힘이 있어 보이는 시몬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것을 감당할 능력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그는 그 건강을 가지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져다드렸습니다.

시몬이 이렇게 십자가를 질 때 성경은 억지로 졌다고 했는데 영화를 보면, 싫으면 충분히 도망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시몬은 도망치지 않고 예수님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바로 예수님 앞에서 십자가를 지고 갔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앞서가는 시몬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6.성전에서의 봉사(9-11절)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고 모든 백성은 그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하더니 주의 사자가 저에게 나타나 향단 우편에 선지라.”

제사장의 전례대로 제비를 뽑았다는 것은 2만명을 24반열로 나누었을 때에 한 반열에 약 800명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1년에 두 차례 봉사하는데, 제비를 뽑힌 사람이 바로 반장입니다. 그래서 사가랴가 반장이 된 것입니다. 반장은 인원을 네 그룹으로 나눕니다. 그래서

한 그룹은 제단을 깨끗이 청소하는 일을 하고

두 번째 그룹은 양을 잡는 일을 하고

세 번째 그룹은 준비한 제물을 태우는 일을 하고

네 번째 그룹은 분향하는 일을 합니다.

제사를 드릴 때에 반장은 혼자서 성전 안으로 들어갑니다. 지성소 안에는 법궤가 있고 그 앞에 향단이 있고 향단 위에 향로가 있어서 분향을 합니다. 제물이 타고 향연이 점점 올라가 성소에 가득차면서 하나님이 좌정해 계신 지성소의 법궤 앞에 이르면 제사가 끝납니다. 이때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 제사를 열납하셨다고 기록합니다.


7.자녀를 위한 기도(12-23절)

“사가랴가 보고 놀라며 무서워하니 천사가 일러 가로되 사가랴야 무서워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12절)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나이 많은데도 자녀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혼했을 때부터 자녀를 달라고 기도하기를 늙을 때까지 계속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요한을 가리켜 증거 할 때 여자가 낳지 않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사람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중에 여자가 낳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즉 인류 역사 이래로 제일 큰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훌륭한 아들과 일꾼이 된 것은 기도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자녀는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훌륭하고 큰 사람의 뒤에는 반드시 기도하는 사람이 꼭 있습니다. 그래서 의로운 사람은 자녀를 위한 기도의 생활이 있다는 것입니다.


8.말없는 기도(18-23절)

사가랴가 천사를 통해서 놀라운 응답을 받았습니다. 너무 기뻐서 믿기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낳아서 요한이라고 이름 지을 때까지 벙어리 노릇 하다가 이름 짓고 난 후에 입이 열렸습니다. 이 사건이 주는 교훈은 이런 엄청난 체험적인 간증 거리가 있을 때 자칫 잘못하게 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보다는 자기가 영광을 받기 쉽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자랑하고 자기가 높아지기 쉬우므로 입을 다물고 조심하라는 뜻입니다.


9.돌보시는 기도(24-25절)

“이 후에 그 아내 엘리사벳이 수태하고 다섯 달 동안 숨어 있으며 가로되 주께서 나를 돌아보시는 날에 인간에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이렇게 행하심이라 하더라”

유대인 여자들은 아들이 없다고 할 때에 부끄러워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늙어서 공양 받기 위하여 아들을 기다리는 경우가 많지만 유대 사람들은 그것이 아닙니다. 혹시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이 땅에 보내실 때에 자기의 가정을 통해서 보내실 런지 누가 아느냐는 것입니다. 대가 끊어지면 그 가문에서 메시야가 나지 못한다는 것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들 낳기를 그렇게 바랐고 아들을 못 낳으면 부끄럽게 여겼던 것입니다. 엘리사벳이 아기를 낳은 후 하나님이 나를 돌보셨다,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셨다고 선언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결론

참으로 그리스도인 가정의 본보기가 될 만한 아름다운 스가랴의 가정은 경건하며, 순종하며, 사랑이 충만하였습니다. 그리고 차례대로 성전에서 하나님 앞에 봉사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자녀를 위해서 기도하고 돌보아 주심을 받았습니다. 무너지지 않는 견고한 그리스도인의 가정을 이루는데 스가랴 부부의 삶이 본보기가 됩니다. ⓒ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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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2]1:11-25 그리스도인의 가정


눅1:6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7 엘리사벳이 수태를 못하므로 저희가 무자하고 두 사람의 나이 많더라  8 마침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제사장의 직무를 하나님 앞에 행할새  9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고

  하나님께서 세운 공동체가 셋 있으니, 그 첫 번째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이 가정이고, 그 다음에 교회, 그 다음에 나라입니다. 한 나라가 없어져도 교회와 가정은 남아 있고, 교회가 없어져도 가정은 남아 있을 것입니다. 교회나 나라는 내 맘대로 바꿀 수 있지만 피로 맺어진 가정은 내 맘대로 바꿀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가정이 가장 중요하고, 그 다음 교회, 그리고 나라입니다. 교활한 사탄은 가정이 무너지면 교회도, 나라도 저절로 무너진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가정' 허물기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가정'을 지키는 일에 최선을 다 하십시오. 교회의 일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교회 안의 분주한 행사 때문에 가정을 소홀히 하지는 마십시오. 가정일 보다 교회 일이 더 우선이라고 말하는 소리는 참이 아닙니다. 미국의 어떤 교단 총회장님은 우연히도 딸의 결혼식과 교단총회일이 겹쳤답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총회장이면 교단총회에 참석하는 것이 당연할 텐데, 이분은 딸의 결혼식이 훨씬 중요하다고 여기고 딸의 결혼식에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더 성숙한 교단 지도자들은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을 차기 총회장으로 재선출하였다는 이야기를 어느 예화집에서 읽었습니다.

가정이란 집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집은 물질이지만 가정은 정신입니다. 가정은 또 가족이 아닙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이 아니면 '가정'은 없습니다. 그냥 식구이고 가족일 뿐입니다. 가족이나 식구는 육체이고 가정은 영혼입니다.
"가정이란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 그 사랑을 서로 교환하는 곳입니다. 그 때문에 그것은 교회(진정한 의미의)의 일종입니다. 다만 가정에서는 사랑이 일부 소수인에게 국한된다는 것, 영혼의 사랑에 다시 저절로 우러나는 육체적인 사랑이 보태어진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교회를 축소한 것이 가정이고 교회를 확대한 것이 국가입니다."(우찌무라간조 전집9권 p29)

   여기 참으로 그리스도인 가정의 본보기가 될만한 아름다운 가정이 있어 소개합니다. 1:6절을 보게 되면 "이 두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사람이 볼 때 의로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실 때 의로운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사람이 볼 때 저 사람은 참 의롭다고 여겨도 하나님이 보실 때는 아주 형편없는 사람이 있고, 사람이 볼 때는 별 것 아닌데 하나님이 보실 때는 참으로 칭찬할 만한 의로운 사람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표준과 사람의 표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표준으로 의로운 사가랴 가정을 자세히 살펴보는 것이 행복한 그리스도인의 자정을 이루는데 커다란 도움이 될 것입니다.

1. 가정 생활(5-7절)

첫째, 경건한 가정(5절)

  5절 "유대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하나가 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좀 더 자세히 설명을 드리면 유다 나라에 총각 하나가 있었는데 그 총각의 이름은 사가랴인데 그 사가랴는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하나님의 성전에서 봉사를 하면서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보실 때 못 마땅한 것이 많아서 책망을 많이 받았던 계층 즉 사두개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상할 정도로 본문의 사가랴라 하는 제사장은 더 이상 칭찬할 수 없다 할 정도로 칭찬을 많이 받습니다. 이것을 보면 이 사가랴라고 하는 제사장이 얼마나 하나님을 독실하게 믿었고, 또 얼마나 정성을 다해 봉사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정말 훌륭하게 믿음 생활 잘하는 청년이었습니다. 그리고 처녀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 처녀의 이름은 엘리사벳입니다. 이 엘리사벳은 아론의 자손인데 여기서 아론의 자손은 제사장 가문임을 의미합니다. 역시 하나님을 잘 섬기는 가문입니다.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하나님을 잘 믿고 봉사를 잘 하는 처녀와 총각이 만나서 한 가정을 이루었다는 말입니다. 결국 이 가정은 처음부터 믿음으로 시작한 것입니다. 그 둘 사이에서 믿는 일에 다른 이유가 없고, 또 하나님을 섬기자는데 다른 이견이 없습니다. 말을 안 해도 다 통하고 봉사하는 일에는 손발이 척척 맞았습니다. 이렇게 볼 때 가난해도 참으로 재미있고 행복한 가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뜨겁게 믿고 봉사하려고 하는데 남편은 낚싯대나 들고 다니면서 아내에게 교회에 나가지 못하도록 훼방을 놓는다면 얼마나 괴로울까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므로 믿는 남녀가 한 가정을 이루어 믿음으로 산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복된일이라 하겠습니다. 혹시 처음에 믿음으로 시작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낙심할 것은 없습니다. 처음에 믿지 않고 나중에 함께 믿어도 얼마든지 복된 가정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가정에서 두 내외가 믿음 생활을 열심히 하고 봉사를 잘 한다는 것은 경건한 가정이요, 의로운 가정입니다.

둘째, 순종하는 가정(6절)

  6절 "이 두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 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율법이란 하나님의 법 전체를 일컫는 말이고
  계명이란 한 조목 한 조목을 가리키는 말이고
  규례는 계명을 시행하는데 필요한 세칙들입니다.
  이것은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하나님의 계명, 하나님의 법을 한 조목 한 조목 다 지켰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지 말라는 것은 남편뿐만 아니라 아내도 하지 않았고, 하라 하는 것은 의논 안 해도 의례히 할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순종하는 가정이었으니 얼마나 복 되었겠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잘 믿는 가정이냐 그말입니다. 이런 가정을 성경에서 의로운 가정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의로운 사람의 가정은 하나님의 법에 대해서 철저하게 순종하는 가정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율법적인 의라고 해도 좋습니다. 물론 율법의 의로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구원을 이미 얻었으니 하나님의 법을 지키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한다는 증거라고 성경는 말합니다(요일5:3).

셋째, 사랑의 가정(7절)

7절 "엘리사벳이 수태를 못하므로 저희가 무자 하고 두 사람의 나이 많더라."
세월이 지나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늙었습니다. 그러나 수태를 못하여 자녀가 없었습니다. 두 내외가 아들도 딸도 없이 나이 많아 늙기까지 살아오면서 무척 금슬이 좋았다는 것은 놀랍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변함없이 사랑했다는 증거입니다. 전혀 다른 여자에게는 관심이 없었고 자기 아내만 아는 사랑스러운 가정, 즉 두 내외가 늙기까지 변함 없이 사랑을 주고받는 사랑이 충만한 가정이었습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젊음을 사랑하지만
당신은 나의 백발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한용운<사랑하는 까닥에>중에서

사람들은 웃는 모습은 사랑하지만 울고 짜증내고 역정내는 사람은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부부가 살아가다 보면 어떻게 항상 웃고만 삽니까? 때로는 역정도 내고 때로는 속이 상해 울기도 하고 또 바가지를 긁으며 짜증을 내기도 하는데 그럴때에도 그 눈물까지 사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내가 언제나 당신을 그리워 합니다라는 뜻입니다. '내가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건강할 때 사랑하지만 당신은 나의 병든 몸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젊어서 건강할 때도 사랑했지만 병든 몸까지라도 사랑하는 이 사랑이 얼마나 멋진 사랑입니까.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바로 이런 부부입니다. 그네들이 일평생 살아오면서 젊음은 다 갔고 지금은 늙음만 남았습니다(눅 1:36). 이들 부부는 젊음을 사랑했을 뿐만 아니라 늙음까지도 사랑했습니다. 이들 부부는 일평생 살아오는 동안에 어떻게 웃고만 살 수 있었겠습니까? 울고 짜증도 냈을텐데 울고 짜는 눈물까지도 사랑했습니다. 진실로 사랑이 충만한 가정입니다. 의로운 사람들은 이렇게 사랑이 충만한 가정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가랴의 가정은 경건한 가정, 순종의 가정, 사랑의 가정입니다.

2. 봉사생활(8-11절)

첫째, 차례대로 봉사 (8절 상반절)

  8절 "마침 사가랴가 그 반열에 차례대로 봉사하더라"
  우리는 차례대로 봉사해야 합니다. 이 말의 역사적인 배경을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당시 제사장들은 2만 명 정도였습니다. 2만 명이 성전에서 어떻게 한꺼번에 봉사합니까.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의 제단 크기가 교실한칸 만도 못합니다. 이 많은 사람들을 봉사하게 하려고 스물 네 반열로 나누었는데 1년에 두 번만 봉사할 차례가 돌아옵니다. 일년에 두 번밖에 없는 봉사의 기회인데 한 번에 일주일씩 봉사를 합니다. 그래서 사가랴는 자기 차례가 돌아오게 되면 기다리고 준비했다가 정성스럽게 봉사했습니다. 본문의 차례대로 봉사했다는 말은 이런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하면 교회 봉사는 질서를 지키며 빠짐없이 정성스럽게 봉사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앞의 봉사(8절 하반절)

  8절"차례대로 제사장의 직무를 하나님 앞에 행할새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이 말을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이 지켜보는 앞에서 봉사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지켜보는 앞에서 성가대원으로 봉사한다면, 교회학교 교사를 한다면 얼마나 잘 하겠느냐는 말입니다.
  "예수"라는 영화를 보니, 십자가에 못 박힐 사람이 자기가 못 박힐 십자가를 죽을 장소까지 지고 가야 합니다. 통나무로 만들었기 때문에 엄청나게 무겁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십자가를 대신 져다 줄 수 없습니다. 로마 군병들이 예수님께 지워 골고다까지 가는데 예수님이 가시 면류관을 써서 피가 흐르고 땀이 흘러 기진맥진해 쓰러져 가지를 못합니다. 이 때 로마 군병이 하는수 없이 구레네 사람 시몬을 붙들어 십자가를 지워 언덕까지 올라갑니다.
  구레네 시몬은 예수님의 고난의 현장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당하는 고난의 현장에 없었다면 십자가를 질 기회가 없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영광 받는 자리에만 있어서는 안됩니다. 고난의 현장에도 참여해야만 합니다.
  로마 군병들이 십자가를 대신 지울 사람을 찾았을 때, 건강하고 힘이 있어 보이는 시몬이 눈에 띄였습니다.. 그것을 감당할 능력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그는 그 건강을 가지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져다드렸습니다. 시몬이 이렇게 십자가를 질 때 성경은 억지로 졌다고 했는데 영화를 보면, 싫으면 충분히 도망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시몬은 도망치지 않고 예수님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바로 예수님 앞에서 십자가를 지고 갔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앞서가는 시몬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주님이 보는 앞에서 하는 봉사를 주님은 어떻게 생각해 주실까요?

셋째, 성전에서의 봉사(9-11절)

  9-11절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고 모든 백성은 그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하더니 주의 사자가 저에게 나타나 향단 우편에 선지라."

  제사장의 전례대로 제비를 뽑았다는 것은 2만 명을 24반열로 나누었을 때에 한 반열에 약 800명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1년에 두 차례 봉사하는데, 제비를 뽑힌 사람이 바로 반장입니다. 그래서 사가랴가 반장이 된 것입니다.
  반장은 인원을 네그룹으로 나눕니다. 그래서
  한그룹은 제단을 깨끗이 청소하는 일을 하고
  두번째 그룹은 양을 잡는 일을 하고
  세번째 그룹은 준비한 제물을 태우는 일을 하고
  네번째 그룹은 분향하는 일을 합니다.
  제사를 드릴 때에 반장은 혼자서 성전 안으로 들어갑니다. 지성소 안에는 법궤 가 있고 그 앞에 향단이 있고 향단 위에 향로가 있어서 분향을 합니다. 제물을 타고 향연이 점점 올라가 성소에 가득차면서 하나님이 좌정해 계신 지성소의 법궤 앞에 이르면 제사가 끝납니다. 이 때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 제사를 열납하셨다고 기록합니다. 이 때 비로소 자기의 봉사는 끝납니다.
  이렇듯 교회 안에서도 하나님을 위하여 봉사하라고 분담해 주시면 책임을 지고 봉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 본문의 교훈입니다. 성가대원 그룹으로 봉사하라는데 연습 시간에 빠지거나 예배시간에 빠지면 어떻게 합니까? 그것은 무책임한 일입니다. 교사그룹, 식당봉사그룹, 안내 그룹 등등 다 마찬가지입니다. 성전 안에서 자신에게 주어지는 사명은 책임을 지고 봉사해야만 합니다.

3. 기도생활(12-23절)

첫째, 자녀를 위한 기도(12-23절)

  12절 "사가랴가 보고 놀라며 무서워하니 천사가 일러 가로되 사가랴야 무서워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자녀를 위해 도해야 합니다. 자기 아들 딸을 위해서 기도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도 못하는 법입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나이 많은데도 자녀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혼했을 때부터 자녀를 달라고 기도하기를 늙을 때까지 계속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오랜 후, 늙은 다음에 응답이 왔습니다. "아들을 낳을 것이니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요한을 가리켜 증거할 때 여자가 낳지 않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사람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중에 여자가 낳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즉 인류 역사 이래로 제일 큰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훌륭한 아들과 일꾼이 된 것은 까닭이 있습니다.
  기도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 아들 딸들이 훌륭한 사람, 훌륭한 일꾼이 되기를 원하신다면 자녀를 위한 간절한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기도의 아들은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훌륭하고 큰 사람의 뒤에는 반드시 기도하는 사람이 꼭 있습니다. 그래서 의로운 사람은 자녀를 위한 기도의 생활이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말없는 기도(18-23절)

   사가랴가 천사를 통해서 놀라운 응답을 받았습니다. 너무 기뻐서 믿기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주경 신학자들은 하나같이 큰 '기쁨의 회의' 라고 표현합니다. 너무 기뻐서 믿기지 않을 정도의 기쁨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아들을 낳아서 요한이라고 이름 지을 때까지 벙어리 노릇 하다가 이름짓고 난 후에 입이 열렸습니다. 이 사건이 주는 교훈은 이런 엄청난 체험적인 간증 거리가 있을 때 자칫 잘못하게 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보다는 자기가 영광을 받기 쉽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자랑하고 자기가 높아지기 쉬우므로 입을 다물고 조심하라는 뜻입니다. 기도 많이하고 체험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경우에 따라서 간증해서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려야 되지만 자칫 잘못하여 자기가 높아질 경우에는 입을 다무는 벙어리가 되어야 합니다.

셋째, 돌보시는 기도(24-25절)

24절 "이 후에 그 아내 엘리사벳이 수태하고 다섯 달 동안 숨어 있으며 가로되 주께서 나를 돌아 보시는 날에 인간에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이렇게 행하심이라 하더라"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꼭 돌보아 주십니다. 엘리사벳이 아들을 못 낳을 때에 너무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자기를 돌보셔서 아들을 주시니 자기는 이제 부끄러움이 없다는 말입니다. 유대인 여자들은 아들이 없다고 할 때에 그렇게 부끄러워 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늙어서 공양 받기 위하여 아들을 기다리는 경우가 많지만 유대 사람들은 그것이 아닙니다. 혹시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이 땅에 보내실 때에 자기의 가정을 통해서 보내실 런지 누가 아느냐는 것입니다. 대가 끊어지면 그 가문에서 메시야가 나지 못한다는 것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들 낳기를 그렇게 바랐고 아들을 못 낳으면 부끄럽게 여겼던 것입니다. 엘리사벳이 아기를 낳은 후 하나님이 나를 돌보셨다,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셨다고 선언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결론

  참으로 그리스도인 가정의 본보기가 될만한 아름다운 스가랴의 가정은 경건하며, 순종하며, 사랑이 충만하였습니다.
  그리고 차례대로 성전에서 하나님 앞에 봉사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자녀를 위해서 기도하고 돌보아 주심을 받았습니다.
  무너져 깨어진 가정을 주변에서 넘 쉽게 볼 수 있는 이때에, 무너지지 않는 견고한 그리스도인의 가정을 이루는데 스가랴 부부의 삶을 본받아, 우리도 하나님 앞에 의롭다 인정 받아야 하겠습니다. *   최용우 2000.10.15.주 믿음교회 주일오후설교 2002.6.1.수정


△폰토르모(Pontormo 1494-1557),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만남', 유화, 카르미나뇨 성 미카엘 성당, 피렌체, 이탈리아
이 그림은 아기 예수를 잉태한 마리아가 세례자 요한을 잉태한 엘리사벳을 방문하는 장면이다. 엘리사벳은 문 앞에서 따뜻한 눈길과 자세로 마리아를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그들 앞에는 이 거룩한 만남의 '증거자' 역할을 하는 두 여인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맨발인 것은 하느님 앞에서 겸손한 사람들임을 상징하며 적색과 녹색은 이들이 간직한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생명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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