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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우 말씀묵상

깊은데로가서

밤이 무척 길군요...그러나 이 어두운 밤도 끝날 때가 있겠지요? 그래요 해는 곧 뜰 것입니다. 밝아오는 새벽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사가랴의 축복송

누가복음 누가복음05............... 조회 수 4385 추천 수 0 2002.06.06 10:43:06
.........
성경본문 : 눅1:57-80 
구분 : 눅5 

1:68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아보사 속량하시며 69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70 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71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구원이라 72 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 73 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신 맹세라 74 우리로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입고 75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 76 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예비하여 77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78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을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79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취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

 

누가복음 1장에는 세 편의 찬송이 나옵니다.
 ①엘리사벳의 감격에 넘치는 기쁨의 노래 (42-45절)
 엘리사벳은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했고,
 ②마리아의 송가 (46-55절),
 마리아의 송가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고백이며
 ③사가랴의 축복송 (67-79절)

 
 사가랴의 축복송은 축복의 약속에 대한 ‘소망’으로
 오늘날 예배의 끝 순서에 있는 목사의 축도와 일치합니다. 사가랴의 축복송은 마치 조직신학의 구원론(救援論)을 요약해 놓은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사가랴의 축복송만 자세히 들여다봐도 신학교에서 몇 학기동안 배운 공부를 단 몇 분 만에 끝내버리는 셈입니다.
①구원의 뜻 - 원수의 손에서 건지시는 것(74절)
②구원의 이유 - 긍휼(78절)
③구원의 내용 - 죄사함(77절)
④구원의 방법 - 속량, 대속(68절)
⑤구원의 수단, 도구 - 뿔, 십자가(69절)
⑥구원의 과정, 경과 -언약, 예고 (72절)
⑦구원의 목적 - 섬기게 (75절)


1.구원이란 무엇입니까?

 
 ‘우리가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입고’(눅1:74)
 구원은 ‘원수의 손에서 건짐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를 망가뜨린 원수의 손에서 우리를 건져내어 물건을 수리하듯 우리를 원래 상태로 수리하는 것이 구원입니다. 원수의 꾀에 넘어가 지은 죄로 인해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 구원입니다.
 죄로 인해 끊어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헝클어진 인간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구원입니다. 질병과 고통과 죽음에서 벗어나서 애통도 눈물도 없는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는 것이 구원입니다. 원수 사단의 속박으로 인한 고통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나라의 기쁨과 평안을 누리는 것이 구원입니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죽어가는 사람에게 생명줄을 던져 잡으면 끌어올려 그 생명을 살려주는 것이 구원입니다. 원수의 방해로 하는 일마다 망하고 실패하고 떨어지고 파괴되는 삶에서 벗어나 하는 일마다 잘되고 성공하고 올라가고 붙어버리는 삶으로 바꾸는 것이 구원입니다.
 구원이라는 단어에는 대적으로부터의 해방, 보호, 죄로부터의 구속, 영생, 그리고 성화의 과정이며, 구원에는 치유, 건강, 염려로부터의 해방 그리고 평안이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2.구원의 이유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눅1:78)
 구원의 이유는 하나님의 긍휼(78절)입니다. 긍휼은 사랑과 자비의 마음에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합쳐진 것입니다. 가엽게 여기고 동정하는, 물기 있는 축축한 사랑을 긍휼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눅7: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싶거든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나는 죄인입니다.”(눅18:30)하고 가슴을 치며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이유가 우리의 선한 행실이나, 공로나, 봉사나, 헌금도 아니고 그 어떤 것도 구원의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시시어 구원받을 자를 선택하는 것을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이라고 합니다. 참된 믿음은 하나님이 주셔야만 얻게 되는데, 누구에게 참된 믿음을 줄 것인지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에는 아무런 조건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냥 하나님께 속한 결정권입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를 우리 대신 내주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시면서 까지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는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사43:4) 우리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습3:17) 우리가 무엇이기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사랑하시는가! 보배롭고 존귀할 것이 없는데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겨주시고, 사랑할 것이 없는데 사랑해주시니, 그저 감사하며, 황송할 따름입니다.


3.구원의 내용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눅1:77)
 죄 사함(77절)입니다.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우리 힘으로는 풀 수도 없고 묶을 수도 없는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세상에 죄가 없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습니다. 심지어 뱃속에 있는 아기도 뱃속에서 엄마를 발로 차고 머리로 들이 받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는데 엄마 품에 안긴 작은 아이가 우유를 쪽쪽 빨아 먹고는 더 이상 안 나오자 짜증을 내며 우유병을 땅바닥으로 ‘휙’ 던졌습니다. 아이의 얼굴을 보니 ‘한 성질’하게 생겼더군요. 아이는 그게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면서 잘못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아이라고 해서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어리기 때문에 어른들이 이해하고 봐주는 것일 뿐입니다.
 알고 지은 죄는 어떻게든 해결한다고 쳐도, 모르고 무심결에 지은 죄는 도무지 해결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죄를 누적하며 살고 있습니다. 가톨릭에 비해 기독교에서는 죄에 대해 조금 더 관대한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교부들이나 가톨릭에서는 죄에 대해 훨씬 더 깊은 생각과 여러 가지로 세분화해서 죄의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는 자세를 배워야 합니다.
 만약 우리의 영혼이 깨어나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우리는 죄악의 쇠사슬에 묶여있는 처참한 모습을 보고 경악할 것입니다. “죄로다 죄로다” 하고 가슴을 치면서 재위에 올라앉게 될 것입니다. 영혼이 깨어날수록 우리의 죄악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우리는 그렇게 죄의 깊은 바다에 빠져서 허우적이고 있는 존재들입니다.
 인간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이러한 죄의 수렁에서 우리를 건져 주셨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면 우리는 다시 수렁으로 들어가는 죄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치게 될 것입니다. 


4.구원의 방법


 ‘그 백성을 돌아 보사 속량하시며’(눅1:68)
 구원의 방법은 속량, 대속 입니다. 속량하시며(개역성경) 해방시키셨으며(공동번역) 대속하셨으며(킹제임스)
 속량, 대속이라는 말은 ‘대신’ 죄의 대가를 치루어 주셨다는 뜻입니다.
옛날엔 짐승을 잡아 대속 제물로 사용했는데, 거룩한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여러 차례 예언하신 대로(70절) 때가 차매 그 아들 예수를 보내사 대신 죄의 대가를 치르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넓습니다. 그 큰 사랑으로 인간들의 죄를 모두 없애 버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공의의 법칙에 어긋납니다. ‘죄’의 문제는 반드시 그 대가를 치루어야만 끝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이 세우신 공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의 죄 값을 치루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내어놓으시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십니다.
 죄를 용서받는 대속은 하나님께서 선민 이스라엘과 맺은 계약입니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지도 아래 성막에서 짐승을 잡아 죽여피를 흘림으로 자신의 죄를 대속받았습니다. 큰 죄를 지은 사람은 큰 짐승을, 작은 죄를 지은 사람은 작은 짐승을 잡아 피를 흘리게 함으로서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스스로 제정하신 제의법을 하나님 스스로 어길 수는 없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인류의 죄를 다 감당할 만큼 큰 대속물이 필요했고  예언자들을 통해 당신의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어 속죄의 큰 제물로 삼으시겠다고 예언합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 사실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 ‘복음’이며, 대속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5.구원의 수단, 도구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눅1:69)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사용한 도구는 뿔(십자가) -십자가입니다.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심으로 단숨에 죄의 문제를 끝내버리신 것입니다. 당시에 가장 최악의 사형 집행 방법이었던 십자가 형벌을 지게 함으로 한방에 죄의 문제를 해결하신 것입니다. 내가 달려야 될 십자가 형틀에 당신의 아들을 대신 달아버리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셔야 했는가? 과연 그 방법 외에 다른 수단은 없었을까요? 그렇습니다. 그 방법 외에는 없었습니다. 인간의 엄청난 죄악을 합당하게 상쇄시킬 방법은 십자가뿐이었습니다. 이는 우리가 그 이유를 온전히 이해해서 그렇다고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방법은 모두 옳다는 믿음으로 하는 대답입니다. 개인적으로 저에게 묻는다면 “저야 모르죠.”
 저는 하나님을 이성으로 이해되는 것만 믿는 사람이 아니라 이해되지 않는 것이라 할지라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기에 그분이 하신 일에 무조건 신뢰를 둡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체적인 삶을 일상 안에서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시는 바는 충분히 ‘이해’ 가능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팔과 가슴을 매다는 가로축인 ‘파티불룸(patibulum)’은 사형수가 사형장까지 직접 메고 가는데, 고문을 받으신 예수가 그것을 지지 못하자 지나가던 구레네 사람 시몬이 대신 지고 갔다는 신약성경을 근거로 유추해 보면, 예수님에게 사용되었던 십자가는 가로 세로가 분리되는 타우식(T자)이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천주교에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있는 ‘십자고상’을 쓰고,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이 없는 ‘라틴십자가’를 쓰고, 예수님이 부활했으니 십자가는 필요 없어졌다고 해서 십자가를 아예 안 쓰는 교파나 교단도 있습니다.


6.구원의 과정, 경과


 ‘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눅1:72) 하나님의 구원 작업은 어느 날 아침, 아무도 모르게 뚝딱! 번개처럼 이루어진 사건이 아니고 이미 아브라함 때부터(73절) 예고되어진 사건입니다. 오랫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고, 전승으로 전해져 내려왔고, 많은 사람들이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은 불공평하거나 비합리적인 방법이 아니라, 지극히 상식적이고 공평하게 이루어집니다. 누구나 예측 가능하게 이루어집니다. 예수 십자가의 흘린 피로서 우리가 속량함을 입게 된다는 것을 이미 예고하였고, 그 예고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십자가 이후 부활승천하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재림’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기독교인들이 공중에 함께 올라가 그분을 만나는 것을 휴거(携擧,rapture)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성령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7.구원의 목적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눅1:75)
 세상만사 다 목적이 있기 마련인데, 하물며 하나님의 구원에 목적이 없을까... ‘하나님을 섬기게 하려고’ 이것이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선명한 목적입니다. 어떻게 섬깁니까? ‘㉠하나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 없이(75절)’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기준에서, 하나님의 감독을 받아서,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생각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성결(聖潔)과 의(義)로 
 지극히 아름답고 깨끗한 모습입니다. 성결은 심령의 깨끗함이고 의는 언행의 깨끗함입니다. 성결은 하나님을 향한 중심의 진실, 곧 1-4계명에 대한 무흠(無欠)이요, 의는 인간을 향한 생활의 선, 즉 5-10계명에 대한 덕성을 뜻합니다. 성결은 영적 표준이요, 의는 도덕적 표준입니다. 그런데 심각한 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의 힘으로는 성결과 의로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애를 쓰면 쓸수록 그만큼 위선자가 되어 갈 뿐입니다. 애초부터 성결과 의로 살아가려고 노력조차 안 하는 사람은 구원과 상관없는 사람이라는 뜻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하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 도다”(롬7:24)라고 바울과 같은 고백을 하며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두려움 없이
 두려움을 느낄 때, 한계를 느낄 때, 나를 구원하신 그분의 사랑을 동시에 느낍니다. 내 한계를 인정할 때 비로소 하나님을 인정하고 의지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진리가 주는 자유(요8:32)를 알게 되고 비로소 두려움 없이 되는 것입니다. 두려움이 없음은 실로 커다란 기쁨과 평안함입니다. 그야말로 강 같은 평화 샘솟는 기쁨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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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자료
1.The Renovare Spiritual Formation Bible(두란노)
2.2002.6.9 들꽃피는교회 주일예배
3.2020.8.19. 햇볕교회 수요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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