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혜령의 <첫사랑을 되찾고파>를 읽다.

매일 한편씩 읽을 수 있도록 아름다운 그림과 함께 편집된 오혜령 전도사의 영성 기도 묵상집 <강여울 풀씨처럼> 첫번째 책을 읽었다.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기 전 먼저 기도하는 마음으로 매일 한편씩 묵상하면서 읽었다.
차 한잔 마시고 일과를 시작하면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처럼, 이 한편의 기도문을 읽고 일과를 시작하니 마치 영혼이 차를 마신 것처럼 차분해지고 밝아져서 참 좋다.
1년 12권 시리이즈로 되어 있고 한 달에 한 권씩 읽게 되어 있는 책이다.
1월 31일 날짜의 기도문 한편을 쳤다. ⓒ최용우

□보고 싶습니다.

믿음으로 보라시는 주님,
믿음의 눈을 크게 뜨라시는 주님,
그 눈은 어디에 달린 것인가요?
그 눈은 가슴에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더 깊은 곳에 박혀 있는 것일까요?
분명히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살고 있는데
볼 눈이 없다고
믿음의 눈이 없다고 말씀하시니
어리둥절합니다.
하기야 저희들은 좋은 시력을 가지고도
세상 사물을 비뚤어지게 보고 삽니다.
똑똑히 보았건만
뒤돌아서면 그것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려낼 수 없습니다.
어떤 시각에서 보았는가
어떤 마음으로 보았는가
어떤 상태에서 보았는가
그 때마다 달라지고 흔들리는
세상 것들이 두렵습니다.

영안을 떠서 보라고 가르쳐 주시는 주님,
마음의 눈으로 보라고 일깨워 주시는 주님
그 마음의 눈은 마음에 있는 것인가요?
그 영혼의 눈은 영혼에 있단 말씀이신가요?
마음은 어디에 있는 것이며
영혼은 어디쯤에 있는 것일까요?
이렇게 말씀드리면 당신은 당혹해 하시며
몸과 마음, 영혼과 정신을 분리시키는
터무니없는 이론이라고 일축하시죠.
시므온은 성령이 충만하여
주님의 약속을 믿고 살았기에
그 눈으로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역사적 예수’를 자신의 눈으로 직격한 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가시적 구원의 목격이라니,
순전한 믿음의 눈으로 본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영적으로 매일 태어나시는
그리스도를 보라시는 주님,
‘신앙상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를 원하시는 주님,
마음 안에 순간마다 오시는
당신께서 베풀어주시는 구원을 노래하면
그것이 보는 것인가요?
만민 구원의 확신을 안고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이 되시는
구주를 볼 수 있는 눈이 믿음의 눈인가요?
시므온이 종말론적 구원의 완성까지 보았듯이
저희도 구원을 보는 감격과
그 구원이 저희에게 와 있는 기쁨을
체험하게 해 주옵소서.

오 주님,
구원을 볼 수 있는 눈을 주십시오.
전혀 안 보이던 것을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이전에는 희미하게 보이던 것을
또렷하게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거꾸로 보이던 것을
바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섞여서 혼란스럽게 보이던 것을
오직 하나로만 보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겉만 보던 눈으로 속도 보게 해 주시고
얕게 보던 것을 깊게 볼 수 있는 눈을 주십시오
좁게 보던 것을 넓게 볼 수 있는 눈을 주십시오
통찰의 눈과 직관의 눈,
그리고 혜안을 주십시오
시므온이 지녔던 예리한 영안을 주십시오
예언과 약속의 말씀을 믿는 자에게 주시는
믿음의 눈을 주십시오
저희는 보아야 살 수 있는 존재들입니다.
볼 필요 없는 것들엔 눈 감게 해 주시고
오직 당신 나라와 당신만을 보도록 해 주십시오
그리스도 현존과 성령의 현존
그리고 성부의 현존을 날마다 보게 해 주십시오
저희 자신의 내면도 정확히 보게 해 주셔서
참 겸손으로 이 세상을 이기게 해 주십시오
마침내 종말론적 구원을 얻게 해 주십시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