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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1>의 정재숙이 장일순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어째서 ‘조 한 알’이라는, 그처럼 가벼운 호를 쓰십니까?”
장일순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대답했다.
“나도 인간이라 누가 뭐라 추어주면 어깨가 으쓱할 때가 있잖아. 그럴 때 내 마음을 지긋이 눌러주는 화두 같은 거야. 세상에 제일 하잘것없는 게 좁쌀 아닌가. ‘내가 조 한 알이다.’ 하면서 내 마음을 추스르는 거지.”
드라마 작가인 홍승연은 이렇게 말했다.
“글씨를 써서 주시며 장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이 기억나요. ‘추운 겨울날 저잣거리에서 군고구마를 파는 사람이 써붙인 서툴지만 정성이 가득한 군고구마라는 글씨를 보게 되잖아. 그게 진짜야. 그 절박함에 비하면 내 글씨는 장난이지. 못 미쳐.’”

농부인 한원식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뒤 장일순은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옳은 말을 하다 보면 누가 자네를 칼로 찌를지도 몰라. 그럴 때 어떻게 하겠어?”
한원식이 바로 대답을 못했다.
“그땐 말이지, 칼을 빼서 네 옷으로 칼에 묻은 피를 깨끗이 닦은 다음 그 칼을 공손하게 돌려줘. 돌려주며 ‘날 찌르느라고 얼마나 힘들었냐?’고 그 사람에게 따뜻하게 말하라고. 거기까지 가야 돼.”  - 책의 표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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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너나 나나 거지

밥집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자네 집에 밥 잡수시러 오시는 분들이 자네의 하느님이여.
그런 줄 알고 진짜 하느님이 오신 것처럼 요리를 해서 대접을 해야 혀.
장사 안되면 어떻게 하나, 그런 생각은 일절 할 필요 없어.
하느님처럼 섬기면 하느님이 알아서 다 먹여주신다. 이말이야"
학교 선생님에게는 누가 하느님인가? 그렇다. 학생이다.
공무원에게는 누가 하느님인가? 지역 주민이다.
대통령에게는 국민이 하느님이고, 신부나 목사에게는 신도가 하느님이다.
(46면)

3.좋은 대학 가려고 하지 마라

최혁진이 고등학교 3학년대의 일이다. 학교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학과를 바꿔라. 비인기 학과를 선택하면 너는 일류대도 갈 수 있다. 과가 마음에 안 들더라도 서울대를 나와야 네가 나중에 뭘 하더라도 할 수 있다"
고등학교 3학년이라면 누구나 더 나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때 아닌가? 그러나 장일순은 학교 선생님과 달랐다.
"어느 대학이냐에 매이지 마라. 무슨 말이냐 하면, 간판에 매달리지 말라 이말이야. 그런 것에 사로잡히면 세상을 옳게 볼 수 없어. 소위 일류대학 나온 사람들이 세상을 다 망치고 있지 않니?
다들 좋은 간판 얻어갖고 남 위에 올라서서 살면 잘사는줄 아는데 그런 건 다 허망한 거다. 그런 데 사로잡히는 데서 많은 문제가 생기니까 너는 그런데 휘둘리지 말거라" (52-53면)

4.도 닦기 좋은 곳

도 닦기 좋은곳이 세군데 있다고 한다.
첫째는 선방이고, 둘째는 감옥이고, 셋째는 병원이라 한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는 '아, 수행하라는가 보다'생각하고 자신의 삶을 돌아다보는게 좋다. 그것을 장일순은 '바닥을 기어서 천리를 갈 수 있어야 한다'는 그만의 언어를 써서 표현했다. 납작 엎드려서 겨울을 나는 보리나 밀처럼 한 세월 자신의 허물을 닦고 가다보면 언젠가는 봄날이 온다는 것이다. 겨울에 모가지를 들면 얼어 죽는다는 것이다. (63면)

5.젊은이, 자네가 바로 하느님이여!

금화가 말을 하고 금화가 사람 값을 매기는 세태 속을 살며 내 모습이 한없이 초라해질 때, 겉만 번지르르하고 존재의 내면은 가을 걷이 끝난 텅 빈 들판의 짚가리 같은 군상들 속에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할 때, 존재의 탈바꿈을 통한 영적 부요를 추구해야 할 종교마저 그 종지를 망각하고 장사치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을 볼 때, 더욱이 내가 이런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자꾸 바깥을 기웃거리며 막막함에 사로잡힐 때, 나는 지금도 선생의 생생한 육성을 다시 듣고 싶어 가끔씩 눈을 감곤 한다.
"젊은이, 자네가 바로 하느님이여!" -고진하 목사 (70-71면)

6.예수님은 그렇게 떠들썩하게 오시지 않을걸세

한국에 전 교황 요한 바오로2세가 왔을 때였다. 거리에서 우연히 만나 차 한잔을 나눠 마시는 자리였다. 원영택이 물었다.
"교황이 한국에 왔다고 난리던데 자네는 왜 그분을 만나러 서울에 가지 않았나?" 장일순이 성당에 다니는걸 알고 묻는 말이었다. 장일순은 그때 가톨릭 원주교구 평신도회 회장이었다.
"예수님은 그렇게 떠들석하게 오지 않으실 걸세. 뭐하러 그런델 가나?"
장일순은 계급장을 보고 사람을 대하지 않았다. 그가 교황 아니라 그 할애비가 되는 사람이라도 장일순이 보는 것은 단 하나, 그가 어떻게, 어떤 마음을 갖고 살고 있느냐였다. 교황 앞에서 껌뻑 죽는 시늉을 하며 발에 입이나 맞춰 될 일이 아님을 장일순은 잘 알고 있었다. 가톨릭이 해야 할 일은 그런 것이아니었다. (90-91면)  

7.가훈

가톨릭센터 지하에서 수족관을 하고 있는 양승학이 하루는 종이 쪽지 한장을 장일순 앞에 내놓으며 물었다.
"선생님 제가 가훈을 정해 봤는데 감정을 좀 해주십시오."
쪽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슬기로운 마음으로
슬기롭게
강하게 살자

장일순은 그 글을 보고 대뜸 말했다.
"강한 것은 좋지 않아. 모두가 강해지려고 세상이 온통 난리가 아닌가? 정말로 강한 것은 부드럽고 착한 것이야. 봄볕이 얼음을 녹이는 이치와 같은 것이지. '착하게 살자'로 해봐."
그리고 글씨 한 폭을 써서 주었다.
'수심청정(修心淸淨)'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닦으라는 뜻이다.
(132면)

8.땀내

김진성이 가톨릭 센터 근처 '치악공방'이라는 이름의 작은 목공예 공방을 운영할 때의 일이다. 그때 장일순이 오며가며 들렸다.
어느 더운 날이었다.
"얼굴을 좀 씻었으면 좋겠는데..., 어디서 하면 되냐?"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날이었다. 공방 뒤에 여러 집이 같이 쓰는 수도가 있었다.
장일순이 얼굴을 씻을 때 김진성은 수건 생각을 하고 가슴이 철렁했다. 깨끗한 수건이 없었다. 오래 써서 먼지와 때와 땀에 절은 수건이 하나 있을 뿐이었다. 장일순이 얼굴을 씻고 나왔을 때 김진성은 그 수건을 들고 어쩔 줄을 몰라하며 서 있었다.
"수건이 이것 밖에 없는데..."
장일순이 웃으며 그 수건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얼굴의 물기를 닦고 나서 웃으며 말했다.
"네 땀내가 아주 좋구나!" (131면)

9.똥통에 빠져있는 친구가 있으면

묵호 신용협동조합의 이상혁 전무가 전하는 장일순의 이야기다.
"친구가 똥물에 빠져 있을 때 우리는 바깥에 선 채 욕을 하거나 비난의 말을 하기 쉽습니다.
대개 다 그렇게 하며 살고 있어요. 그러나 그럴 때 우리는 같이 똥물에 들어가야 합니다. 들어가서 여기는 냄새가 나니 나가서 이야기 하는 게 어떻겠냐고 하면 친구도 알아듣습니다. 바깥에 서서 입으로만 나오라고 하면 안 나옵니다." (151면)

10.혁명

외국의 한 기자가 장일순을 찾아와 물었다.
"혁명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장일순이 되물었다.
"일반적으로 얘기하는 혁명을 묻는 거요, 아니면 내가 생각하는걸 묻는 거요?"
"당신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혁명이란 따뜻하게 보듬어 안는 것이라오."
기자가 놀랍다는 듯이 물었다.
"그런 혁명도 다 있습니까?"
"혁명은 새로운 삶과 변화가 젠제가 되어야 하지 않겠소? 새로운 삶이란 폭력으로 상대를 없애는게 아니고, 닭이 병아리를 까내듯이 자신의 마음을 다바쳐 하는 노력 속에서 비롯되는 것이쟎아요? 새로운 삶은 보듬어 안는 정성이 없이는 안되지요."  (157면)

11.치사하게 살지 말자

"자 우리 치사하게 살지 말자."
여기 보니 교회 다니는 사람이 많은데, 그렇다면 기도할 거 야냐? 그런데 기도란게 뭐야. 곧 치사하게 살지 않겠다는 뜻 아니겠어? 기도하며 만날 치사하게 살려면 기도는 뭐하러 해?" (165면)
12.신부라고 쓰지 말라

강태용은 러시아 정교회 신부다. 신부 서품을 받고 나서 바로 인사를 하러 온 강태용에게 장일순이 이렇게 말했다.
"이제, 신부가 됐지만 어떤 자리에서건 절대 신부라는 걸 앞세우지 마라."
평신도 위에 군림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위에서 거들먹거리지 말라는 것이었다. 오히려 아래서 평신도를 모시고 섬기라는 뜻이었다.
"특히 편지 쓸 때 신부 호칭 하지 마라. 이름 끝에 신부라는 말을 달지 말라는거야."
벼슬 자랑을 하는 사람이 있다. 어디서나 쉽게 그런 사람을 볼 수 있다. 그냥 이름만 대도 되는 곳에서 굳이 이름 뒤에 교수니, 상무니, 소장이니 하는 직함을 붙이는 사람들이 그렇다. 뻐기고 싶은 마음을 버리지 못해 그런 일이 벌어진다. 특히 신부와 목사와 승려 가운데 그런 사람이 많다. (191면)

13.믿음

"교회에서는 믿음이라는 말을 많이 하잖아. 그런데 믿음이란 말만큼 막연한 말도 없지 않은가? 그 믿음을 생명이란 말로 바꿔봐. 뜻이 훨씬 분명해질 거야." (215면)

14,부처님은 마흔 네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장일순이 최혁진에게 말했다. 최혁진이 대학에 다닐 때였다.
"도둑을 만나면 도둑이 돼서 얘기를 나눠야 해. 도둑은 절대 센님 말은 안 듣는다. 뭐냐 하면 저 사람도 나와 같은 도둑이다 싶으면 그때부터 말문을 열기 시작한다 이 말이야. 그때 '도둑질을 하려면 없는 사람 것 한두 푼 훔치려 하지 말고 있는 사람 것을 털고, 그것도 없는 사람과 나눠쓰면 좋지 않겠냐'고 하면 알아 듣는다.
부처님은 마흔네개의 얼굴을 갖고 계시다는 말이 있는데, 말하자면 이런거지. 누구를 만나든 그 사람과 하나가 된다 이말이야.
고린도전서에 보면 바울이 하는 같은 내용의 말이 나온다.
"실상 나는 모든이에 대해서 자유로운 몸이지만 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람을 얻기 위해 나 자신은 모든 이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을 얻기 위해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이 되었습니다. 비록 나 자신은 율법 아래 있는 몸이 아니지만 율법 아래 있는 이들을 얻기 위해 율법 아래 있는 이들에게는 율법 아래 있는 몸이 되었습니다. 저는 하느님의 율법이 없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그리스도의 법 안에 있는 몸이지만 율법이 없는 이들을 얻기 위해 율법이 없는 이들에게는 율법이 없는 몸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