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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읽어야 할 책

지난주 좋은 책 한 권 샀습니다. 함석헌 선생님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는 아주 오래 전에 읽었던 책이며, 너무 오래 되어서 옆구리의 제목이 바래어 사라진 책이 지금도 책꽂이에 있어서 가끔 꺼내어 보는데, 이번에 새 책을 다시 산 것입니다.
이 책은 제가 20대 청년 때 밤새워 읽고 큰 영향을 받은 책이며, 지금까지도 한국 역사에 대한 관점은 이 책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만큼 한국역사에 대한 탁월한 책입니다. 새 책은 젊은이들이 읽기 쉽도록 활자가 시원시원하게 커졌고 책 자체도 커졌네요.
이 책은 함석헌 선생이 1933년네 4일 동안 우리 역사에 대해 강연했던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 이후 제목을 '뜻으로 본 한국역사'로 바꾸어 출간되어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아직도 스테디셀러로 꾸준히 읽히는 우리시대의 명저입니다. 20세기 한국인의 저작물 10권을 선정했을 때 그 안에 들었던 명 작품입니다.
1930년대 초반, 청년 함석헌은 자기모멸과 절망에 빠져 신음하는 식민지 치하의 백성에게 희망을 복돋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머리말에 밝히고 있습니다. "지도교수가 있는 대학도 아니지, 도서관도 참고서도 없는 시골인 오지이지, 자료라고는 중등학교 교과서와 보통 돌아다니는 몇 권의 참고서를 가지고 나는 내 머리와 가슴과 씨름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내 머리와 가슴과 씨름하면서 30대의 햇병아리 역사교사가 써놓은 책이 변화무쌍한 시대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 '뜻'을 밝혀 다음 세대까지 읽힐 명저가 되었다는 것은 청년 함석헌의 정신이 얼마나 창조적이고 치열했는가를 보여줍니다.
이 책을 읽다보면 단군 조선시대에서 현재까지, 마치 5천년 우리나라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특히 이 책의 원 제목이었던 것처럼 '성경적으로' 조명되어진 기가 막힌 역사서입니다. 이런 시각으로 우리나라 역사를 제 조명 해 볼 수 있음에 상당히 흥미롭고,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역사에 대한 상식이 얼마나 수박 겉핥기인지 이 책을 보면서 그저 놀랄 것입니다. 각 분야에 제2의 함석헌이 나와서 '성경적으로 본' 경제, 사회, 문화... 등등의 책이나와야 하는데...
책을 읽으면서 아직도 변하지 않고 있는 이 나라 백성들의 수준천박하고 낮은 역사의식에 대해 또 분노하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읽기 좋게 몸단장하고 내게로 온 옛 애인 같은 이 책을 다시 읽을 생각을 하니 기분 좋습니다. ⓒ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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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무엇이고, 역사의 방향은 어떻게 결정되는가에 대한 문제는 인간의 철학과 종교와 사상에 관련된 중요한 질문으로써 인류의 역사는 애초에 그 원동력과 방향에 대한 탐구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때문에 유사 이래로 역사를 움직이는 원동력과 방향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존재해왔는데, 그 대표적인 논의로는 토마스 칼라일(Thomas Carlyle)의 영웅주의와 게오르그 헤겔(Georg Hegel)의 사회결정론을 들 수 있다.
칼라일에 의하면, 역사란 근본적으로 영웅들의 역사이며 그들의 창조물이다. 역사는 신성한 정신과 고결한 도덕을 가진 영웅들이 자신의 의지와 목적에 따라 주도해왔으며 대중은 그 영웅을 떠받들어주는 부수적 존재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에 반해서 헤겔은 아무리 위대한 개인이 있더라도 혼자의 힘으로만 역사를 움직일 수는 없으며, 그 위대한 개인의 능력도 시대의 조건, 환경, 문화 등이 유기적으로 도움을 주어야만 발휘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무엇이 정답이고 더 타당한지는 아무도 평가할 수 없다. 모두 틀렸다거나 모두 옳다거나 해도 상관없다. 그보다는 역사를 움직이는 원동력과 그 방향에 대한 어떤 분명한 틀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칼라일과 헤겔은 그들의 주장이 옳고 그르든 간에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렇다면, 칼라일과 헤겔만이 그런 주장을 펼쳤는가? 이들 이외에는 역사의 원동력과 방향에 대해서 다른 타당한 주장을 제기한 사람이 없다는 말인가? 애석하게도 나는 지금까지 칼라일의 영웅주의과 헤겔의 사회결정론을 무마시킬 만큼의 주장을 전개한 사람을 보지 못했다. 또한 그 이상의 역사책을 읽어보지 못했다.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읽기 전까지 말이다.
함석헌은 1901년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나 해방 전까지 교사생활을 하다가 해방이후 사상가, 민권운동가로 활약하면서 민중계몽운동을 전개한 인물이다. 그의 이력이 말해주듯 그의 사상적 기반은 민중에 가깝고, 그가 독실한 크리스트교 신자였기 때문에 그의 철학적 기반에는 크리스트교의 종교관이 짙게 깔려있을 것이다. 따라서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통해서 그가 주장하는 역사의 원동력과 방향은 “민중”과 “크리스트교의 종교관”으로써 일이관지(一以貫之)할 수 있다.

함석헌에 의하면, 역사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바로 “뜻”이다. “뜻”이란 무엇인가? 바로 민중의 뜻이며 하나님의 뜻이다. 민중의 역사적인 요구야말로 역사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며, 그 뜻은 일찍이 성서에 예정된 것이요, 하나님이 이끄시는 뜻이다. 그러므로 역사의 방향은 하나님이 인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니 하나님은 인간에게 기회도 주시며, 벌도 주시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단지 지켜만 보기도 한다.
따라서 역사의 원동력과 방향을 “뜻”이라고 본 함석헌의 사상은 영웅주의와 사회결정론을 모두 종합하고 있는 셈이다. 무슨 말인가? 사실, “뜻”은 사람이 행하는 행동과 의지라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민중의 뜻”으로써의 의미가 강하다. 그런데 민중의 뜻은 사회의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며, 시대적 요구를 부채질하기 때문에 함석헌의 [뜻으로 본 역사]를 사회결정론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뜻”에 어떤 전지적인 계시 즉 “하나님의 뜻”으로써의 의미를 부여하면 이는 영웅주의가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계시한 그 뜻은 인간의 행동으로 나타나고 그 계시와 힘을 받아 초월적인 용기와 고결한 정신을 발휘하는 인물이야말로 영웅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고려의 묘청(妙淸)이나 조선의 이순신(李舜臣)과 임경업(林慶業)이 바로 그러한 예다.(실제로 이 책의 원래 제목은 [뜻으로 본 한국역사]가 아니라 [성서로 본 한국역사]였다.)
따라서 우리는 역사의 원동력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이는 민중의 의지요, 신의 섭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신의 섭리에 대해서 무신론자나 크리스트교 신자가 아닌 사람들은 선뜻 동의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신의 섭리도 결국 민중의 뜻을 반영한다. 왜냐하면 신의 섭리를 받아들이는 것도, 거부하는 것도, 시험에 드는 것도 결국은 민중의 뜻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함석헌이 이야기하는 역사의 방향은 무엇인가? “민중의 뜻”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역사는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는가? 아니, 그보다 왜 역사의 방향이 중요한가? 사실 [뜻으로 본 한국역사]는 영웅주의와 사회결정론을 종합하여 역사의 원동력을 “뜻”으로 결집시켰다는 점에서도 충분히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역사의 원동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방향이다.
역사의 방향은 곧 그 역사를 만들어가는 사람들, 이를테면 국가와 민족의 방향을 결정짓고 그 방향이 그들의 역사적 사명과 정체성을 결정짓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뜻”을 통해 움직이는 방향을 알아야 제대로 된 역사적 사명과 정체성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그렇다면 함석헌이 이야기하는 역사의 방향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고난의 역사”다. 이쯤 되면 놀라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무릇 한 민족의 역사적 사명과 그들의 정체성을 고취시키고 용기를 북돋고자 한다면 “그들의 역사는 평화를 위한 역사며, 세계를 제패할 역사며, 하나님으로 부터 선택받은 역사이며 종래에는 마지막까지 남아서 구원받을 역사”라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그들은 위대한 민족이라는 식으로 부채질해도 모자랄 판에 그런데 뜬금없이 “고난의 역사”라고 한다.

혹 어떤 이들은 자기 민족의 역사를 고난의 역사라고 가르치는 함석헌의 역사관을 두고 자학사관(自虐史觀)이라고 비판할지 모른다. 그러나 자학사관은 역사의 과정도 비참하거니와 결과도 비참해야 한다. 그러나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함석헌이 이야기하는 고난의 역사는 비록 그 시작과 과정은 고난이되 그 끝은 고난이 아니다. 그래서 그 표면적인 문장의 해석에 매달려 그의 역사적 방향을 자학사관이라고 비판할 수 없는 것이다. 이를 더 자세히 알아보자.
함석헌은 우리의 역사는 하나님이 고난으로 예정해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민족이 아무리 좋은 기회를 맞이하고 영광의 순간에 도달하더라도 종래에는 다시 고난으로 돌아간다고 말한다. 그러나 마침내는 고난을 극복하고 세계에 평화를 가져오고 환희의 순간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어떻게 고난으로 얼룩진 약소국의 민족이 세계의 평화를 가져오는가?
이는 하나님의 계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고난을 경험해본 민족이야말로 평화의 중요성을 잘 알고, 평화를 가져올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동네 불량배들에게 돈을 빼앗겨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보다 자기 동네 치안의 중요성을 잘 알고 가장 앞장서서 치안을 부르짖을 자격이 있는 것이다.
혹 어떤 이들은 함석헌의 역사관을 두고 다시 선민의식(選民意識)이라고 비판할지 모른다. 그러나 선민의식에 휩싸인 민족은 유사 이래로 영원히 신의 보호를 받으며 풍족하게 지내고 그 결과로 남의 민족도 신의 이름아래 무참히 짓밟은 비행을 일삼는다. 그러나 함석헌이 이야기 하는 하나님의 계시는 우리 민족에게 고난을 줌으로써 민족을 깨우치게 하고, 우리 민족을 시험에 들게 함으로써 민족을 더욱 단련시키는 것이다. 이는 우리 민족이 남의 민족을 침략함으로써 평화를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이 겪어온 고난을 반성하고 경험삼아 다른 민족도 보호하고 세계가 영원히 고난에 빠지지 않게 구원하는 것이다.
진실로 함석헌이 주장하는 “고난의 역사”가 가리키는 방향이 고난을 극복하고 평화에 이르는 것이라면, 지금 우리가 겪는 고난은 얼마나 숭고하고 가치 있는 고난인가? 우리는 우리 민족이 당해온 고난과 지금 당하는 고난, 앞으로 당할 고난을 불평하고 부끄러워하기 보다는 당당히 드러내고 철저히 반성함으로써 종래에 다가올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고 그 순간 누구보다 먼저 달려 나가 평화를 위한 행진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일찍이 함석헌은 일본제국주의 시기와 해방이후 이승만 독재, 군사 쿠데타에 실망한 당대의 청년들을 계몽하기 위해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썼다고 한다. 참으로 값진 시도며 고마운 정신이라 할 것이다. 당시 그 누가 우리 민족의 이 같은 고난과 충격에 “고난의 역사”라는 긍정적이며 적극적인 의미부여를 하려했단 말인가? 모두가 비탄과 슬픔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허우적거릴 때 함석헌이 아니었던들 우리가 우리의 역사에 자긍심을 가질 수 있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함석헌이야 말로 하나님의 우리 민족에 계시한 또 다른 “뜻”일 것이다. 모두가 행동하지 않던 그 시기에 신성한 정신과 고결한 도덕으로 우리 민족의 정신적 자각에 나선 함석헌이야 말로 하나님이 우리 민족에 내리신 영웅일 것이다.
함석헌은 기본적으로 크리스트교 신자이기 때문에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는 성서를 기본으로 한 종교적 관념이 매우 짙게 깔려있다. 앞에서도 말했듯 역사의 원동력을 신의 섭리로 보는 것에 대해서 무신론자나 크리스트교 신자가 아닌 사람들은 쉽게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도 더러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함석헌이 우리 세대에게는 할아버지뻘 되는 분이요, 책을 쓴 때부터 시대가 오래되었기 때문에 요즘에 와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생각이나 말도 책 속에서 가끔씩 등장한다.
무엇보다 함석헌의 신성한 정신과 고결한 도덕은 요즘의 약아빠진 우리와는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그의 사상은 “영적(靈的)”이라고 말해야 할 만큼 쉽게 다가가지 못하며 그래서 이해하기 보다는 단지 느낌으로써 좇아가야 할 부분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뜻으로 본 한국역사]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독립 운동가이자 고려대학교 총장을 지낸 김준엽은 “정의는 반드시 지키는 자가 있고, 진리는 반드시 따르는 자가 있다.”고 했다. 김준엽의 말을 이 책에 빗대어 생각해본다면, 정의는 민중의 뜻이며, 진리는 신의 섭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할 수 없을 만큼 혼란스러워진 요즘, 다원성의 원리가 너무 강요되어 오히려 보편성과 원칙을 잃어가는 요즘, 어지러운 세상에서 길을 잃고 자포자기 하는 사람들이 참 많아졌다. 흉악한 사회범죄는 이 같은 자포자기 때문에 일어나며, 자포자기는 혼란한 세상을 더 혼란스럽게 만든다. 실로 민중의 뜻과 신의 섭리가 있는지 조차도 의심스러워지는 때다.
이런 때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는 우리 각자에게 어떤 말을 들려줄 수 있는가. 곰곰히 생각해본다.
출처/http://blog.aladdin.co.kr/highssi/10909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