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역자 : 성 아우구스티누스/조호연  | 출판사 : 크리스천다이제스트
판매가 : 35,000원31,500원 (10.0%, 3,500↓)
인류 최초로 시도된 역사철학서이자 역사신학서!초대 교회가 낳은 천재 아우구스티누스의 대작!크리스천다이제스트 ‘세계기독교고전’ 제26번. (구판에서 표지만 변경되었고, 본문은 동일)성 아우구스티누스의 『하나님의 도성』은 서양 사상사의 획기적인 작품들 중의 하나이다. 그리스도교에서는 2,000년 역사상,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과 칼빈의 『기독교 강요』와 더불어 가장 위대한 3대 저서 가운데 하나로 꼽고 있다.410년 게르만족은 로마를 초토화했다. 그 소식을 지중해 건너편에서 듣고 큰 충격을 받은 아우구스티누스는 로마가 이교도의 손에 의해서 파괴된 그 원인을 분석하는 동시에 로마가 파괴된 책임이 절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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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막하게 요약합니다. 총 22권 662챕트 방대한 양입니다.

2년 계획으로 하루에 한 챕트씩 읽고 네줄 정도로 요약하겠습니다.

 

제1권 시대의 재앙과 하나님의 섭리 -------------------------------------

 

1.피난처
로마가 노략질 당할 때 순교자들의 거룩한 처소와 사도들의 교회당은 그리스도인이든 이교도이든 상관하지 않고 모든 피난민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했다. 피에 굶주린 적들은 아주 극도로 흥분 된 상태에 있었지만, 이곳에서만큼은 그들의 야수 같은 광적 행동을 삼갔다. 다른 장소에서 적군이 보여줄 수 있는 온갖 만행도 이곳에서는 극악무도한 그들의 폭력적인 열정이 갑작스럽게 억제되며, 포로를 잡으려는 그들의 열망이 신기하게 사라졌다.

 

2.트로이의 미네르바
트로이(도시)가 소멸된 것은 미네르바(그들이 섬기던 여신)을 잃어버렸기 때문이 아니었다. 미네르바는 어떻게 손실당했는가? 그녀를 지키던 호위병들이 살해당하자 그녀도 도난당했다. 사실은 미네르바 신상이 호위병들을 지켜주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호위병들이 신상을 보호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자기 나라와 그 시민들을 위한 보호수단으로 그 여신을 숭배했지만 오히려 그녀가 보호를 받아야 한다면 그 여신을 숭배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3.배은망덕
로마인들은 트로이를 지켜줄 수도 없는 여신상을 잃어버리고 순교자들의 거룩한 처소와 사도들의 교회당에 와서 보호를 받았다.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적군의 폭력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를 받다가 피난처로부터 나가자마자 적개심 가득한 욕설로 자기들을 보호해 준 주를 공격하기 위하여 자기들의 혀를 마음껏 놀리고 있다.

 

4.신당과 교회당
그리스인들은 미네르바 여신상이 있던 화려하고 거대한 신전을 점령하여 자기들의 탐욕과 오만을 과시하는 장소로 사용하였던 반면에, 비록 소박하고 투박하지만 그리스도의 교회당은 겸손과 친절을 보이는 곳으로 선택했다. 말하자면 그렇게 위대한 여신에게 봉헌된 장소는 포로수용소가 되었지만, 사도들을 기념하여 세운 작은 교회당은 적군에게 조차 존중받는 곳이 되었다.

 

5.약탈하는 적군들
역사가인 살루스티우스는 로마의 여신상이 있던 화려하고 거대한 신전이 어떻게 약탈되었는지를 증언하였다. 도성을 약탈하는 적군들은 소년 소녀들을 끌고 갔고, 젖먹이들은 부모에게서 떼어냈고, 여인은 정복자들의 쾌락의 도구가 되었으며, 신전은 노략질 당했다. 곳곳에서 화재가 발생하고 학살이 자행되었다. 싸우는 사람들, 시체들, 유혈과 애곡소리로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6.로마도 신전을 파괴했다.
로마인들은 자신들이 다른 나라의 도성을 정복했을 때 ‘굴복하는 자들을 살려 주고 교만한 자들을 때려 눕혔다. 로마가 당한 악행을 복수하기보다 용서해 주었다.’고 했지만 그들이 시라쿠사시나 타렌툼을 정복했을 때의 악행은 그리스인들보다 훨씬 더했다. 로마는 자기들의 영역 확대를 위하여 수많은 강력한 도시들을 장악하고 습격하여 전복시켰다.

 

7.교회당이 보호받은 이유
로마가 그리스에 의해 약탈당하고 파괴되었을 때 자행되었던 온갖 잔인한 행위들은 일반적인 전쟁 때 벌어졌던 관행들과 똑같았다. 그런데 만행을 저지르던 야만인들이 대 교회당들에 대해서는 아주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그곳에 있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난폭하게 다루지 않다. 이런 행위는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과 그리스도교의 영향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8.하나님의 자비
종종 선인과 악인에게 차별 없이 임하는 축복과 불행에 대하여- 왜 교회당에 들어왔던 악한 로마인들은 해(害)를 입지 않았나? “그 해(日)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시는”(마5:45) 그분의 자비(慈悲)이다. 어떤 악인들은 이런 사실을 깨닫고 자기들의 불경건을 회개하고 고치지만, 어떤 악인들은 끝까지 깨닫지 못하고 ‘진노의 날에 임할 진노’를 쌓는다.(롬2:4-5)


9.선인과 악인이 똑같이 고난을 당하는 이유
욥의 경우를 보아 알 수 있듯이 선인이 현세에서 고난을 당하는 이유는, 고난을 통하여 인간의 영혼이 검증되며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이 어느 정도로 순수한지 각자 스스로의 힘으로 알 수 있다는 것이다.

 

10.성도들은 세상 재물을 빼앗겨도 잃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이 세상에서 재물을 내놓기를 주저하는 사람은 그만큼 그것을 잃어버릴 위험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께서는 “너희는 스스로를 위하여 재물을 땅에다가 쌓아 두지 말아라. 땅에서는 좀이 먹고 녹이 슬어서 망가지며,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서 훔쳐 간다. 그러므로 너희 재물을 하늘에 쌓아 두어라. 거기에는 좀이 먹거나 녹이 슬어서 망가지는 일이 없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서 훔쳐 가지도 못한다.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이 있다.”(마6:19-21)고 말씀하신다.

 

11.인생의 종결에 관하여
성도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죽음 이후에 더 나은 삶이 기다리고 있다면, 죽음은 재앙으로 간주될 수 없다. 왜냐하면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죽음 이후에 받게 되는 응보(심판) 때문이기 때문이다.

 

12.시신의 매장에 대하여
자색옷을 입은 부자는 그의 식솔들이 사람들의 눈에 화려한 장례식을 베풀어 주었다. 그렇지만 가난한 성도들은 매장조차 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나 그들은 사람들이 대리석 무덤으로 호위해가지는 않았지만, 대신에 천사들이 아브라함의 품안까지 인도해 가시는 하나님 보시기에 훨씬 더 화려하고 멋진 장례식이 영계에서 벌어진다.

 

13.매장되지 못한 성도들이 슬퍼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성도들이 때로 음식과 의복 같은 생활필수품이 부족하여 많은 불편을 겪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그에게 인내심을 갖고 참아내려는 용기를 빼앗아갈 수 없고, 그 영혼에게 헌신된 마음을 몰아내지 못하며, 오히려 훈련을 통하여 그의 마음을 강하게 한다. 그러한 성도들은 일상적인 방식대로 장례되고 매장되는 영예를 얻지 못하였다고 해서 슬퍼하지 않는다. 죽은 성도들이 거하는 은밀한 처소에서 평화를 누릴 자들이 매장되지 않음을 슬퍼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14.사로잡힌 성도들에 대하여
대적들은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믿지 않는 이들과 똑같이 포로로 끌려갔지 않느냐? 하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처지에 있는 그리스도인들도 결코 하나님께서 버린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포로로 잡혀간 세 소년(단4장), 다니엘(단1:6), 요셉(창세기), 요나도(욘2:1) 그냥 내버려주지 않으셨다.

 

15.거짓 신
로마의 장군인 레굴루스는 카르타고인의 손에 포로로 잡혀 말할수 없는 끔찍한 고문을 당하다 죽었다. 그런데, 레굴루스가 섬기고 있던 신은 ‘자기들에 대한 숭배를 멈추면 재앙을 내린다’고 하는 신이었다. 그리고 카르타고인은 그 신들에 대한 숭배를 금지시킨 장본인들이었다. 그렇다면 끔찍한 고문을 당하다 재앙을 받아 죽어야 할 사람들은 레굴루스가 아니라 카르타고인이 아닌가?

 

16.적에게 정절을 잃은 처녀들에 대하여
포로로 잡혔다가 정절을 잃은 성별된 처녀들과 다른 그리스도인 처녀들에 관하여, 이들은 자의로 그런 행위에 동의하지 않았는데도 그들 영혼이 더럽혀질 수 있는가? -성별된 육체는 성별된 의지의 도구이다. 의지가 흔들이지 않고 굳게 서 있었다면, 불가피하게 다른 누군가가 육체를 가지고, 혹은 육체에 대하여 어떤 짓을 하든지간에 피해자에게 책망할 거리가 없게 된다. 우리는 이들을 위로하는 문제에 더 관심을 두어야 한다.

 

17.정절을 잃지 않기 위한 자살에 대하여
자신을 죽이는 자살은 자기가 자기를 죽이는 명백한 ‘살인’이며 이는 어떤 나라 어떠한 법도 이를 허용하고 있지 않다. 유다는 예수를 판 죄도 모자라 자기가 자기를 죽이는 살인죄를 더했지만 그의 배신행위가 보상받거나 용서받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들 앞에서 자신의 정절을 지키기 위해 자살을 선택한 처녀들에 대해 그 누구도 그녀들을 우매하다고 판단하거나 정죄할 자격은 없다.

 

18.정신은 침해당하지 않고 남아있지만
다른 사람의 정욕에 의하여 육체에 가해질 수도 있는 폭력에 관하여 -육신은 그 자체가 원상 그대로 남아 있다거나, 성기가 접촉되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에 정결한 것이 아니다. 아무리 고결하고 순수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의지의 동의 여부를 통제할 수 있을 뿐, 항상 자기 육체를 자기가 지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가 몸이 억류당하고 강요받아 자기에게 속하지도 않은 욕망을 만족시키도록 사용된다고 하여, 순결을 상실했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19.한 사람만
고대 로마의 귀부인 루크레티아는 왕의 아들에게 육체를 겁탈당했다. 그녀는 남편과 친척 ‘브루투스’에게 알리고 이후에 모멸감을 참아낼 수 없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우리는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는가? 그녀는 부정한가 정숙한가? 재판관은 두 육체가 결합된 광경에서 한 사람의 역겨운 음행과 다른 한 사람의 정숙한 의도를 관찰했고, 두 사람의 정신의 상이함을 보고 “그 곳에는 두 사람이 있었지만 오직 한 사람만이 간음을 범했다.”고 판결했다.

 

20.그리스도인은 어떠한 경우에든지 자살을 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지고 있지 않다.
거룩한 성경 어디에도, 영생을 보장 받기 위해서나 어떠한 악을 피하거나 모면하기 위하여 자살하라는 계명이나 그에 관한 허가가 발견되지 않는다. 9계명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언하지 말라 처럼 “네 이웃”이라는 말이 살인하지 말라는 제 6계명에는 없다. 이로보아 ‘살인하지 말라’는 말 속에는 이웃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포함되었다고 볼 수 있다. 

 

21.살인죄가 되지 않으면서 사람을 죽이는 경우에 관하여
명령을 받아 사람의 손에 쥐어진 칼에 불과한 당사자는 자기가 초래한 죽음에 대하여 직접적인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이 때문에 하나님의 권위로 전쟁을 수행하는 사람들이나, 아주 정당하고 합리적인 권력의 근원인 국가의 법에 따라 국가의 권위를 대변하면서 범죄자들에게 사형을 집행하는 이들이 살인을 금하는 계명을 어겼다고 할 수는 없다.

 

22.자살은 정신력이 강하다는 것을 증명해주지 않는다.
자살한 자들에 대하여 정신력이 강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의 곤경이나 다른 사람들의 악행을 참아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하며, 또한 육체적인 억압이나 대중들의 어리석은 견해를 참아낼 수 없을 정도로 사실은 정신력이 약하다는 뜻이다. 우리는 인생의 어려움을 당하여 도망치는 대신에 그것을 인내하는 사람들, 또한 거짓에 사로잡힌 암흑과도 같은 대중들의 판단을 순수한 빛과 선한 양심으로 무시해버릴 만한 힘을 가진 사람을 진정 정신력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23.카이사르의 승리를 참아낼 수 없었기 때문에 자살한 카토
카이사르와의 일전에서 패한 카토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가 목숨을 끊기 전에 아들에게 “카이사르의 자비에 모든 소망을 두라.”고 한 것으로 보아 본인도 살아서 카이사르가 혹시 자비를 베풀지도 모르는 기대를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친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결은 선택하였고, 그것은 강한 정신력의 징표가 아니라 굴욕을 참아낼 수 없는 허약함의 증거라 할 수 있다.

 

24.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아주 뛰어나다
그리스도인들의 하나님은 아주 높은 곳에서 그들을 위하여 낮은 곳으로 내려오신 분이시기 때문에, 어떤 치욕적인 상황에서도 그들을 버리지 않으신다.

 

25.우리는 죄로써 죄를 회피하고자 노력해서는 안 된다.
육체적인 쾌락에 굴복하여 수치스런 일에 동의할 수 있는 정신은 그리스도인의 정신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믿고 소망을 그에게 두며 그의 도움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26.어떤 특별한 경우에는 성도들의 행동이 본받을 만 하지 않다.
군인이 자기가 복무하는 합법적인 권위에 순종하여 어떤 사람을 죽인다면, 그 나라의 법에 의하여 그는 살인죄로 기소당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명령을 거역한다면, 항명죄와 반란죄로 고발당한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의사대로, 또한 자신의 권위로 그런 일을 저지른다면, 당장에 살인죄로 체포당할 것이다.

 

27.죄를 피하기 위하여 자살을 선택해야 하는가?
자살은 자기가 자기를 죽이는 사악한 행위이다. 자살을 하기 위한 타당한 이유가 있을 수 없다. 강간을 당하여 자살을 하려 한다면, 강간한 그 사람이 자살을 해야지 억울한 일을 당한 그대가 왜 자살을 해야 하는가?

 

28.적군은 하나님의 어떤 판단에 정결한 그리스도인들의 몸에다가 자신의 정욕을 충족시키도록 허락을 받았는가?
신실한 그리스도의 종들이여, 당신들의 정조가 적에 의하여 놀림감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인생을 짐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만약 당신이 당신에게 죄를 짓는 그 자들에게 동의하지 않았다고 양심 속에서 확신한다면, 당신은 하나님의 크고 진정한 위로를 받을 것이다.

 

29.하나님이 적군의 흉포함으로부터 그리스도인들을 구원하지 않았다고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불신자들에 대하여 그리스도의 종들은 어떤 답을 해야 하는가?
“나의 하나님은 어디든지, 온전히 어디든지 계신다. 그를 제한하는 경계는 전혀 없다. 그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도 계실 수 있다. 그는 움직이지 않고도 다른 데로 가실 수 있다. 내가 곤경을 당하여 고통당할 때, 그는 나의 믿음을 시험하고 계시거나 나의 잘못을 벌주고 계신다. 그리고 그는 내가 현재의 고통을 충성스럽게 인내하고 나면, 그 보답으로 주실 영원한 상급을 예비하고 계신다.”

 

30.그리스도교에 대하여 불평하는 자들
당신들이 그리스도교에다 불평을 터트리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당신들이 방해받지 않고 악을 즐기며, 당신들이 고통이나 책망도 받지 않고 타락 속으로 함몰되기를 바라기 때문이 아닌가? 당신들이 평화와 번영을 바라는 이유도 당신들이 겸손과 절제와 자제와 경건으로써 그런 축복들을 고귀하게 사용하기를 원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광기 어린 방종으로 무진장 다양한 쾌락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신들의 번영은 적의 온갖 분노보다도 훨씬 더 악한 도덕적 타락을 낳고 있다.

 

31.권력을 향한 열정
오만한 사람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권력욕은 이 직책 저 직책 거친 후에 마침내 최고 통치권에까지 다다를 때가 아니고서야 어떤 단계에서 잠자코 있을 수가 있겠는가? 그리고 그렇게 높은 지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제한적인 야망이 반드시 필요하다. 무제한적인 야망은 바로 탐욕과 색정에 의하여 타락한 사람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다. 사람들은 번영에 의하여 탐욕스럽고  사치스럽게 된다.

 

32 연극 공연물
파렴치하고 어리석고 방종을 보여주는 연극은 인간들의 악한 욕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방 신들이 내린 명령에 의해 로마에 자리 잡게 되었다. 로마의 원형 경기장은 수많은 사람들이 이방 신과 사람들의 즐거움을 위해 목숨을 잃은 곳이다.

 

33.로마인들은 로마가 붕괴되었어도
자기들의 악을 교정하지 않았다. 아! 정신 나간 사람들이여! 당신들의 행동은 잘못이 아니라 미친 짓이다. 당신들은 적에 의하여 나라가 짓밟힌 지금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당신들은 극장으로 몰려들어 그곳을 완전히 채우고 이전보다 더 심하게 정신 나간 타락한 일들을 벌이며 쾌락을 억제하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도 당신들이 지금 당하고 있는 나쁜 일들에 대해 그리스도인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당신들은 재앙으로부터 교훈을 배우지 못했고, 아주 비참한 상태가 되어 세상에서 가장 무가치한 존재가 되었다.

 

34.로마의 완전한 파멸을 막은 하나님의 자비에 관하여
당신들이 아직도 살아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 덕분이다. 그분은 당신들을 살려 주셨을 때, 당신들이 회개를 통하여 잘못을 고치도록 권고하고 있다.

 

35.사악한 자들 사이에 숨어있는 교회의 아들들에 관하여, 그리고 교회 안에 있는 거짓 그리스도인들에 관하여
우리는 반대자들을 대할 때, 이 반대자들 중에 미래의 동료가 될 사람이 숨어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그들과 맞설 때 그들의 적대감을 잘 인내해야 한다. 또한 이 세상에서 함께 순례의 길을 걸어가는 동료들 가운데 지금은 알 수 없지만 몇몇은 영원한 본향까지 함께 갈 수 없다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36.1권 요약
로마의 신들에게 희생제를 드리지 못하게 했다고 해서 로마의 재난을 우리 종교 탓으로 돌리는 자들에게, 희생제가 금지되기 이전에도 겪었던 수많은 재난들에 대해서는 뭐라고 변명을 할 것인가.

 

제2권 그릇된 도덕을 낳은 다신숭배 ---------------------------------------

 

37.반대자들에게 주는 대답
만약 그들이 진리에 대한 명확한 증거에 고집스럽게 저항하려 들지 않고, 건전한 가르침에 자신의 연약함을 내어맡겨서, 그 믿음과 경건을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을 치유하기에 은혜를 받는다면, 이런 상세한 변명도 필요 없을 것이다.

 

38. 2권 예고
하나님의 축복이 어떤 이유로 경건치 않으며 감사치 않는 자들에게도 미치게 되는가? 그리고 적들이 가한 곤경이 어떤 이유로 경건치 않은 자와 경건한 자에게 동일하게 임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인간이 당하는 재앙 뿐 아니라 일상적인 하나님의 축복이 선한 생활을 하는 자들에게나 악한 생활을 하는 자들에게 차별 없이 일어난다는 사실로 인해 항상 고민스러워 하기 때문에, 나는 충분한 답변을 주기 위하여 많은 지면을 할애할 것이다.

 

39.우리는 그리스도교가
다른 신들에 대한 숭배와 분쟁을 일으키기 시작하기 전에 로마인들이 어떤 재앙을 당했는지 알기 위해서는 오직 역사를 읽어보기만 하면 된다. 아직도 무지한 자들, 너무나 무지한 자들은 어이없게도 “비가 내리지 않는 것은 전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의 잘못이다”라고 한다.

 

40.우상을 숭배하던 로마인들은
자신들의 신들로부터 어떤 건전한 교훈을 받지 못했고, 숭배행위를 하는 동안 온갖 종류의 부정한 행동이 저질러졌다. 나는 어렸을 때 종종 신성모독적인 연극과 구경거리를 보러가곤 했다. 그들은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어떤 망나니들도 행하지 않는 음란한 행위를 신 앞에서 버젓히 행했다.

 

41.신들의 어머니를 기념하여 행해진 외설에 관하여
나는 이 타락한 의식의 외설적 관습에 대해 저항하지 않고 오히려 즐기기에 열심을 내는 사람들과, 그것을 용납한 원로원 늙은 원로들에 대해 역겨운 생각이 든다.

 

42.이교도의 신들은 결코 거룩한 생활을 가르치지 않는다.
오, 가련한 자들이여, 배우라. 그리고 사물의 원인을 알라.
우리 인간이 무엇이며 우리가 태어난 목적이 무엇인가,
우리가 인생에서 성공할 수 있는 법도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 난파당하지 않고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는가,
간단히 말하여 배우라.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어떤 인간이 되도록 의도하시는지,
그리고 그분이 당신들에게어떤 역할을 감당하도록 명령하시는지를.

 

43.철학자들의 주장은
신적인 가르침에 속한 권위를 갖고 있지 않았고, 또 사람들이 본성적으로 인간의 교훈에 순종하기 보다는 신들의 모범을 따르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어떤 도덕적 영향을 행사할 수 없었다.

 

44.신들에게 수치스러운 행동을 발표한 극장 공연물들
그런데 그 수치스러운 극장 공연물들이 신들의 명령에 의한 것이 아니고, 역병이 맹위를 떨치자 신들을 무마하는 뜻에서 대 제관들의 권위에 의해 로마의 공연 축제가 제정된 것이다. 인간들이 제정한 것이기에 신들과는 상관이 없다.

 

45.그리스인들이 자기 신들에게 순종하여 허락했던 시적인 방종을 고대 로마인들은 방종을 제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46.거짓이든 참이든 악마들은 자기들에게 혐의가 가는 죄악을 참아내면서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고자 의도했다.
사실상 악마들은 인간들의 잘못을 통하여 기쁨을 얻고, 인간들이 그런 오류를 더 많이 저지름으로써 파멸과 속임수를 위하여 고안된 수천 가지의 술책을 통하여 숭배받을 수 있다.

 

47.그리스인들은 신들을 즐겁게 해주는 사람이 동료인간들에 의하여 모욕적인 취급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배우들에게 공직을 허용했다.

 

48.로마인들은 신들의 경우에 시인들에게 방종을 허락했으면서도 인간들에 관해서는 동일한 일을 금지시킴으로써, 신들에 관해서보다 인간들에 대해서 더 민감한 반응을 보여 주었다.

 

49.로마인들은, 음탕한 공연물로 숭배 받고 싶어 했던 신들이 신적인 명예를 받을 자격이 없음을 이해했어야 했다.
그리스인들은 그런 신들이 경배 받아야 한다면, 배우들도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는 대전제를 제시한다. 로마인들은 그런 사람들이 결코 존중받아서는 안 된다는 소전제를 첨가한다. 여기서부터 그리스도인들은 “그러므로 그런 신들은 결코 숭배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50.시인들을 질서정연한 국가로부터 배제시켰던 플라톤은 연극 공연물에 의하여 숭배받고자 했던 신들보다 더 뛰어나다. 시인들이 위대하고 현명한 교사의 칭찬인 양 대중들로부터 열광적인 인정을 받을 때, 사람들의 정신에다가 얼마나 심한 흑암을 불어 넣으며 얼마나 큰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며 얼마나 사악한 열정을 불붙이는가!

 

51.로마인들이 몇몇 거짓 신들을 선택하게 된 데에는 이성이 안라 허영심이 더 크게 작용하였다.

 

52.로마인들이 그 신들로부터 생활을 위한 법률을 받아들일 수 있었더라면, 로마가 건국된 지 수년 후에 그렇게 했듯이 아테네인들로부터 솔론의 법을 차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53.로마는 사바니족 여인들을 강제로 약탈
하는 등 불의한 일들을 저질렀다. 로마는 사바니족 여인들이 그렇게 탐이 났다면 차라리 전쟁을 선포하고 그들을 포로로 잡아갔다면 전쟁중이니 그럴 수 있다고 인정하겠지만, 그러나 그들은 전쟁 중이 아닌데도 이웃나라 여인들을 자기들 마음대로 잡아가고 약탈하는 무자비한 죄를 저질렀다.

 

54.로마인들은 지극히 사악한 풍속들로 인해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만큼 타락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타락은 로마에 그리스도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신 때문에 타락했다고는 말하지 않으면서, 어째서 이제 와서 그 타락이 그리스도교인들의 신 때문이라고 하는가? 오히려 그분은 사람들의 모든 사악하고 해로운 욕망을 비난하고 그에 대한 혐오감을 나타내시면서, 타락과 파멸로 치닫는 세상으로부터 우리를 서서히 이끌어내시는 분이시다.

 

55.만약 세상의 왕들과
모든 백성과 방백과 땅의 모든 사사며 청년 남자와 처녀와 노인과 아이들(시148:11-12)이나 나이에 관계없이 남녀를 불문하고, 세례 요한이 소리쳤던 세리나 군병이나(눅3:12) 모두 의롭고 덕스런 생활에 관한 그리스도교의 교훈에 귀 기울이고 그것을 실천했더라면, 로마는 그 자신이 가진 행복으로 온 세상을 아름답게 장식하며 영원한 생명 가운데 위엄 있는 영광의 정점에 도달해 있을 것이다.

 

56.그리스도교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행복을 누리고 싶어 하고 어떤 방식으로 살고 싶어 하는 것일까? 저들은 이렇게 말한다. “크고 화려하게 장식된 건물들이 세워지도록 하라. 거기에서 원하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밤이나 낮이나 먹고 마시고 토해내고 주색에 빠져 있을 수 있는 성대한 연회를 개최하라. 곳곳에서 무용수의 시끄러운 소리와 극장의 크고 음란한 웃음소리가 들리게 하라. 가장 잔인하고 가장 관능적인 쾌락이 계속되어 사람들을 끝없이 흥분시키도록 하라. 이런 행복을 싫어하는 사람은 공적으로 낙인찍고 그것을 교정하거나 폐지하려는 사람은 자유를 사랑하는 다수의 힘으로 침묵시키고 축출시키고 생명이 끊어지도록 하라. 사람들에게 이런 것들을 가능하게 해주고 또 그것을 계속 유지하도록 해주는 이들을 신으로 떠받들어라.”

 

57.로마공화국에 대해 시인 키케로는 로마가 ‘최악이자 가장 수치스런 상태’에 빠져 들었기 때문에 부패한 로마는 급격하게 소멸될 운명에 처해 있다고 견해를 밝혔다. 그 탓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시인 키케로의 말은 그리스도교가 로마에 들어오기 전 시대에 한 말이기 때문이다.

 

58.로마의 신들은 로마가 악습으로 파멸하지 않게 만드는데 아무런 관심도 영향력도 없었다. 그 많은 신전들에서, 그 많은 제관들에게, 그 숱한 종류의 희생 제사를 받으면서, 그토록 다양한 의례로, 장엄한 축제로, 그 수많은 경기 거행으로 숭배를 받았던 로마의 신들은 숭배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자신들이 숭배 받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고 오히려 두려움을 주어서 그들을 망하게 하였다.

 

59.인간의 생사화복은 악마들의 호의나 적의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참된 하나님의 의지에 달려 있다. 사악한 사람들이 아무리 힘과 권력이 있다고 해도 이 땅에서 자기들이 원하는 모든 일을 다 할 수 없는 것처럼, 이런 악마들도 자기들이 원하는 일을 전부 할 수는 없다. 하나님의 정하심에 따라 허락된 한에서만, 그렇게 할 수 있을 따름이다.

 

60.악마들의 도움을 받았다고 자랑하던 술라의 행위 - 술라왕이 천인공로 할 인륜 파괴 행위를 하다가 멸망당한 것은 악마가 그를 도운 것이 아니라 그의 추잡한 짓을 선동한 것이다.

 

61.사악한 영들은 사람들에게 자기들의 행동에 대한 거짓된 신적 권위를 부여함으로 사람들이 악행을 저지르도록 얼마나 강력하게 선동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수많은 교훈을 말하여 덕성을 심어주고 악덕을 억제시키신다.

 

62.악마들은 자기들을 위란 의식을 통하여 공개적으로 온갖 악행을 주입시키면서, 어떤 모호한 도덕적 교훈은 아주 은밀하게 말한다. 마치 정결함이 얼굴을 붉혀야 하고 부정함이 자랑되어야 하는 것처럼 사악한 행동은 무수한 관중들을 끌어들이지만 덕스런 말은 조롱을 받게 한다.

 

63.로마인들이 자기들의 신들을 달래려고 봉헌한 외설스런 공연으로 인해 로마 공화국의 기강이 다 무너졌다. 아주 호색적이고 불결하며 부정하며 아주 사악하고 추잡한 행위들은 로마인들이 본래 가지고 있던 도덕적 명예심을 없애버리고, 그들을 수치를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런 행위들을 모방하면서 즐기게 만들었다.

 

64.그리스도교는 건전한 종교이다.
많은 로마인들이 그런 더러운 악마의 소름끼치는 멍에와 그들이 받을 형벌들로부터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받아, 해로운 불경건의 어둠으로부터 빠져나와 아주 건전하고 경건한 빛 가운데로 빠져 나왔다. 그러나 사악한 영에 굳게 잡혀 있으며 피렴치하고 배은 망덕한 자들은 이런 사실에 대해 불평을 하며 빠져나간 자들을 비난하였다.

 

65.로마인들이여 이교를 포기하라! 당신들이 강력히 바랄만한 종교는 바로 그리스도교이다. 우리가 당신들을 초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도성의 시민 수에 당신 자신들을 보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의 도성에는 진정한 죄 사함을 안겨주는 피난처도 마련되어 있다.

 

제3권 로마사의 비판적 회고 -------------------------------------------

 

66.로마의 건국 이후 저들의 거짓 신들이 유일하게 숭배될 때 조차도 로마인들은 항상 재앙으로부터 아무런 구원도 받지 못했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해악들에 대해 그들의 신은 속수무책이었다

 

67.로마 민족의 발생지인 트로이가 왜 같은 신을 섬기는 그리스인들에 의해 정복당하고 탈취당하고 파괴당했는가? 로마의 신은 왜 자기를 섬기는 그리스인들의 공격을 막지 않고 그대로 두어서 자기를 섬기는 자들에 의해 자기가 파괴당했는가?

 

68.로마인들은 트로이의 신들이 파리스의 간통에 의하여 기분이 상해 그리스인들의 공격을 허용하였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그들의 신들은 질투심을 느끼지 않으며 오히려 인간들과도 예사로이 아내를 공유하고 있다.

 

69.신화에 대해 바로의 견해
로마의 신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는 믿지 않는다. 로마인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학식을 가진 바로도 로마 신들의 이야기가 모두 거짓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는 거짓이라고는 해도 사람들이 스스로 신의 후손들인 척 하는 편이 나라를 위해 이롭다고 주장했다.

 

70.로마의 신들은 간통을 저지른 파리스에게는 벌을 내리면서 왜 로물루스의 어머니는 벌하지 않는 것일까? 로마의 신들은 자기들이 저질렀을 때에는 로멘스이고 인간들이 저질렀을 때에는 불륜인가?

 

71.다른 남자의 아내를 빼앗아간 사람이 로마 신들의 진노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그런데 왜 자기 동생의 생명을 빼앗아간 로물루스는 그 동일한 신들이 보호를 했는가? 내가 알기로 로물루스는 로마의 신들이 파괴되도록 내버려 두었고, 로마의 신들이 그를 보호할 만큼 선을 행하지도 않았다.

 

72.로마의 신들은 또 다시 트로이를 버렸다. 로마가 내란으로 한창 치솟았을 때, 불행하게도 트로이는 가엾은 일리움이 마리우스 무리 가운데에서도 누구보다도 흉악스러운 핍브리아의 손에 과거 그리스인들에게 당한 것보다 훨씬 잔혹하고 모질게 당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동안 로마의 신들은 어떤 일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모든 신상들이 성과 함께 무너져 불타고 말았다.

 

73.로마를 지켜달라고 트로이 신들에게 비는 것은 불합리하다. 트로이를 잃어버리고 자신들의 나약함을 드러냈던 트로이 신들에게 로마를 맡기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리라.

 

74.누마왕이 통치하던 시대 43년간의 오랜 평화는 신들의 덕분이 아니고 이웃나라들의 여러 사정 때문이었다. 누마가 다스리는 동안 악한 이웃 국가가 침입해 왔던가? 그러한 공격이 없었기 때문에 저절로 평화가 지켜질 수 있었던 것이다.

 

75.로마 제국은 누마왕처럼 이웃 나라들을 침략하지 않고 조용하게 안전하게 평화를 누릴 수 있었는데, 누마왕 이후의 미치광이 같은 왕들이 그토록 광적인 전쟁을 수행하여 나라를 확장시키면서 로마 전체를 혼란과 불안에 몰아넣었다.

 

76.왜 누마왕은 새로운 신들을 불러 들였는가? 트로이 신들이나 예전에 로물루스와 함께 로마로 들어온 신들이 결국은 로마를 끝까지 지켜줄 수 없음을 알고 다른 신들을 더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그는 참되고 전능하며 가장 으뜸이신 하나님이 이 땅을 돌보아 주신다는 생각은 도무지 하지 못했다.

 

77.로마인들은 누마왕에 의하여 신들 외에도 엄청나게 많은 신들을 세계 곳곳에서 들여왔지만 그런 신들은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다. 누가 로마를 보호하도록 위임받은 신들을 다 열거할 수 있겠는가? 로마는 커다란 제단의 연기로서 마치 봉화를 피운 것 같이 하였다.

 

78.사비니인과 부당한 싸움
로마인들은 사비니인들을 무참하게 죽이고 피로 얼룩진 그 손으로 불쌍한 소녀들을 강제로 잡아와서 포옹했고 결혼을 했다. 소녀들은 승리한 남편들이 무서워 죽은 자기 부모들을 위하여 눈물도 흘리지 못했다. 남편들이 다시 사바니인들과 전투가 심해졌을 때 그녀들은 기도를 했지만 누구를 위해 기도해야 할지 몰랐다. 이상한 결혼, 남편과 장인이 서로 죽이는 이상한 전쟁, 수많은 신들이 바글거렸던 로마의 모습이 이러했다.

 

79.알바인과의 싸움에서 일어난 비극
누마왕 이후 다른 왕들이 다스리던 시기에 알바인들이 전쟁에 관련됨으로써 그들 자신 뿐만 아니라 오마 백성들 까지 얼마나 불행했던가? 알바인과의 전쟁이 얼마나 치열했던지 전쟁에 나갔던 다섯사람중에 한 사람 꼴로 살아서 돌아올 수 있었다.

 

80.로마의 왕들은 어떤 방식으로 살았으며 죽었는가
로물루스 왕은 원로원에 의해 몸이 절단당하여 죽었고, 풀루스 왕은 자신의 집이 번개에 맞아 불에 타 죽었고, 프리스쿠스왕은 선왕들에 의해 살해당했고, 세르비우스왕은 사위에게 살해당했다. 로마의 왕들이 그렇게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면서도 버리지 않았던 ‘성소와 제단’의 수많은 신들은 243년 동안 로마의 땅을 20마일도 확대시키지 못했다.

 

81.집정관 제도의 비극적 발단
잦은 전쟁을 치러야 했던 로마는 통일된 지휘 계통이 필요한 상황이 잦았고 브루투스의 주도하에 2명의 집정관(consul)을 뽑아 1년씩 통치를 맡겼다. 초기의 집정관은 연임을 할 수 있어서 능력있는 집정관이 나타나자 혹 모를 반역에 대비하기 위해 집정관이 1년에 여섯번이나 바뀌기도 하였다.

 

82.집정관 제도 뒤에 일어난 많은 재앙에도 신들은 무력했다.
참으로 많은 소동과 반란, 끝에는 내란이 일어났다. 그리고 로마 군대가 10년 동안 계속해서 베이인들과의 전쟁을 통해 심각한 손실을 입고 나중에는 완전히 붕괴될 지경에 이르렀을 때에 신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었는가? 로마를 구원한 것은 로마에 의해 추방당했던 푸리우스의 도움이었다. 골인들이 로마를 장악하고 약탈하고 불태울 때 신들은 어디에 있었는가? 질병이 만연하여 기승을 부리고 있는 동안 신들은 어디에 있었는가?

 

83.포에니 전쟁 때 로마인들이 겪었던 재앙은 신들의 보호에 의해 경감되지 못했다. 로마에 무서운 화재가 일어나 광장 주변 높은 건물과 신전들을 불태웠다. 불의 신 베스타 신전에서 신녀들이 신에게 영원한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끊임없이 장작을 던져 넣고 있었다. 그러나 불이 나자 불의 신은 무력하게도 잿더미가 되어 버렸다. 불의 신은 불을 다스리지 못한 것이다.

 

84.칸나이 패전
제2차 포에니 전쟁은 오랜 세월 드넓은 지역에서 벌어지며 이긴자나 진 자가 아무 의미가 없을 정도로 양쪽 모두 치명상을 입고 수많은 사상자와 피해를 입었다. 잔혹한 인물이었던 한니발 장군조차도 너무나 비참한 적 로마의 피해에 싫증나서 이제 살려주라는 명령을 내리고 전쟁을 끝냈다.

 

85.사군툼인들은 로마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였다. 한니발이 사군툼 도성을 포위하자 로마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로마의 도움을 받을 수 없게 되자 8,9개월 만에 한니발의 포로로 잡히는 치욕을 모면하고자 광장에다가 높다랗게 장작을 쌓아 올리고 불을 붙인 뒤에 자기 가족과 자신을 칼로 찌르고는 불길 가운데로 몸을 던졌다. 그들은 충성을 맹세한 로마와 로마 신들에게서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고 멸망당하고 말았다.

 

86.로마를 구해 낸 스키피오에 대한 로마의 배은망덕과 그 뒤 도덕적 타락에 대하여 - 2차 포에니 전쟁을 종식시켰던 대 장군 스키피오는 오히려 로마에 의해 파면당하여 로마를 떠나 리테르눔에 망명하여 그곳에서 죽었다. 이후 적국의 군사들보다도 더 파괴적이었던 아시아의 사치스런 풍습을 로마로 도입한 시기가 바로 이때였다. 스키피오는 한니발의 말발굽에서 로마의 신전을 지켜냈으나 그가 추방당할 때 신들은 그를 지켜주지 못했다.

 

87.아시아의 미트리다테스 왕의 로마시민을 학살하라는 칙령 - 아시아에는 많은 로마인들이 개인사업에 종사하고 있었는데 처참한 광경이 눈 앞에서 벌어졌다. 로마인들은 눈에 띄기만 하면 가차없이 무자비하게 살해당했다. 로마의 신들이 도대체 이들에게 어떠한 도움을 주었는지 저들로 하여금 어디 말해보도록 하라.

 

88.재앙들에 대하여
동맹국이었던 라틴이 로마에 반란을 일으키기 전 개와 말, 당나귀, 소등 고분고분하던 이런 저런 동물들이 갑자기 사나워지더니 온순한 성질을 잊어버리고 우리에서 뛰쳐나와 제멋대로 돌아다니면서 낯선 사람뿐만 아니라 주인까지 무는 일들이 벌어졌다. 정말로 끔찍한 재앙의 전조였다.

 

89.그라쿠스 형제의 반란
그라쿠스 형제의 내란으로 귀족이든 평민이든 법적 결정이나 절차 없이 무장한 군중과 폭도에 의하여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하였다. 집정관 루키우스는 그라쿠스 세력들을 추적하여 3천명이나 처형하였다. 그라쿠스를 암살하고 그 머리를 잘라 바친 사람과 그 집정관이 그의 모든 자녀들과 함께 암살당하기도 했다.

 

90.이런 소란과 학살이 자행되었던 장소에 원로원의 결의에 의하여 콘코르디아(조화)의 여신을 모시는 신전이 세워졌다. 그러나 콘코르디아는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분풀이로 황금사과를 보내 신들끼리 다투게 하였고 그 결과 베누스가 승리하고 힐렌이 강간당하고 트로이가 멸망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녀는 조화의 신이 아니라 분열의 여신이었던 것이다.

 

91.콘코르디아 신전이 세워진 후 발생된 갖가지 전쟁에 대하여
그라쿠스 형제의 징벌과 죽음에 대한 기념물로서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는 언덕에 세워진 콘코르디아 신전은 ‘반란을 막는 요과’를 얻었는가? 아니다. 그 뒤에 발생된 수많은 반란자들은 오히려 그라쿠스 형제의 반란을 능가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92.마리우스와 술라의 내전
마리우스와 술라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을 때 도성 밖에 전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 넘어졌을 뿐만 아니라 도심 가운데 있는 도로와 광장과 극장과 신전 역시 시체로 가득 찼다. 승리한 마리우스의 병사들이 승리를 거두기 위해 사람을 죽였고, 승리한 이후에는 승리자로서 맘껏 사람들을 죽였다.

 

93.술라의 복수로 일어난 살육
마리우스의 잔악행위에 대해 술라가 보복전쟁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 승리는 엄청난 피를 흘리고서 끝났다. 전쟁이 끝났어도 전쟁 중의 잔혹행위가 그대로 계속되었다. 마리우스는 술라가 접근해오자 그들을 이길 수 없음을 알고 친구와 적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 학살을 자행하여 로마 구석구석을 피로 물들였다.

 

94.마리우스와 술라는 야만족보다 더 잔혹했다.
어떠한 외국 민족의 포악, 어떠한 야민인의 흉포함도 같은 동족인 마리우스와 술라의 잔혹함보다 못하였다. 마리우스와 술라는 그 어떤 정복자들도 접근하지 않았던 카피톨 신전까지 무너뜨리고 수많은 원로원 원로들까지 무차별적으로 살해하였다. 이방 민족들도 하지 않은 짓을 같은 동족이 같은 동족을 쓸어버린 것이다.

 

95.술라에서 아우구스투스까지 일어난 내전
그들은 이런 재앙들을 자신들의 신에게 그 책임을 돌리지 않고, 오늘날 그 파렴치하고 뻔뻔스러우며 거만하고 어리석은 태도로 우리 그리스도의 탓으로 돌리는가! 역사가들도 인정했듯, 이 비참한 내전은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기 훨씬 전에 일어난 일이다.

 

96.이교도들의 비난은 부당하다.
로마인들은 엄청난 재난을 불러온 자신들의 신들을 비난해야 한다. 신들의 제단에는 밝은 불꽃이 피어올랐으며 아라비아 향신료와 신선한 화환 향기로 그윽히 넘쳤다. 신관들은 존경을 받았고 성소는 이루 말 할 수 없이 화려하였다. 신전마다 제물이 바쳐지고 연극도 공연되며 사람들이 미쳐 날뛰었을 때, 바로 그때 신전 밖에서는 시민들의 피가 강을 이루었다. 그들의 신들은 전혀 재앙을 피하게 하지 못했다.

 

제4권 제국 성장에 아무것도 못해 준 많은 신들 ---------------------------------------

97.제1권 요약

 나는 이 세상에서의 쾌락만을 좇으며 덧없음으로 달려가다가 그 안에서 겪게 되는 온갖 불행한 일들 -이런 일들은 그들의 죄를 묻고 벌하려는 하나님의 엄격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용서하고 주의를 주려는 하나님의 자비에 의한 것이므로-에 대해, 오로지 유일하고 참된 구원의 종교인 그리스도교에 비난을 퍼붓는 반대자들에게 응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98.제2권 제3권 요약

 우리는 로마 공화국이 겪은 온갖 재난을 우리 종교 탓으로 떠넘기는 사람들에게 반박해야만 한다. 우리는 그들이 그들의 신들에게 희생제사를 드리면서도 그들이 재앙들을 당한 것을 알고 있다. 만일 그들이 희생제사를 드릴 때 우리가 그들의 제사를 막았다면 틀림없이 그들이 당하는 재앙의 원인을 우리에게 돌렸으리라.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제사를 막지 않았음에도 그 탓을 우리에게 돌리는 것으 ㅣ부당함을 2권과 3권에서 충분히 다루었다고 생각한다. 

 

 99.정복으로 과연 행복해질 수 있는가

 로마는 어떻게 그토록 크게 영토를 넓히고 오래 이어질 수 있었는가? 그들은 저속하고 비열한 인간들이 외설적인 행태와 봉사로 자기들의 신들을 적절히 섬겼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겉으로 보이는 ‘양적인 행복’에 불과할 뿐이다. 선인은 비록 노예라 할지라도 자유롭다. 하지만 악인은 지배권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노예, 그것도 한 사람이 아니라 더 슬프게도 자기가 저지른 악행의 수만큼 많은 주인을 둔 노예이다. 

 

 100.정의가 없는 왕국은 큰 강도떼나 다름없다

 정의가 없는 왕국은 강도떼가 아니고 무엇인가? 강도떼 또한 하나의 작은 왕국이지 않은가? 강도떼도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 무리는 두목의 권력으로 다스려지고, 결합체의 규약으로 조직되며, 약탈물은 일정한 원칙에 따라 나눠진다. 

 

 101.검투사 집단은 큰 위협이었다

 로마가 이미 많은 나라들을 굴복시켜 큰 나라가 되었고 다른 모든 나라의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을 무렵, 컴파니아 양성소로부터 도망친 적은 수의 검투사들이 이탈리아 여러 곳을 잔인하게 짓밟은 사실이 있다. 이에 크게 놀란 로마는 그들을 두려워하여 파멸을 피하기 위해 크게 걱정했다. 도대체 어떤 신이 저들을 도왔기에, 한낱 작고 비열한 강도떼에서 왕국으로 발전해 그토록 큰 위세와 온갖 요새를 갖춘 로마인들조차 무서워할 형편이 되었던 것인가? 

 

 102.아시리아왕 니누스의 정복욕

 아시리아왕 니누스는 끊임없는 정복 활동으로 이미 빼앗은 지역에서 막강한 권력을 세워나갔다. 그는 주변 국가를 차지한 뒤에 얻은 자원으로 힘을 키워 다른 지역으로 나아가 동방의 모든 국가를 복종하여 따르게 했다.

이웃나라를 쳐들어가고 그 침략을 바탕으로 삼아 또 다른 지역으로 나아가, 자신에게 아무런 피해를 입히지 않은 이웃 민족을, 오직 자기 탐욕을 채우기 위해 강제로 빼앗고 무릎 꿇리는 것은 무자비한 정복욕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103.아시리아 신들은 아시리아 멸망을 막지 못했다 

 아시리아의 번영이 신들의 도움으로 가능했다고 내세운다면, 나는 어떤 신들의 도움을 받았는지 묻고 싶다. 그렇다면 그들이 제국을 잃었을 때는 그 신들이 모두 죽었다는 말인가? 아니면 그 신들이 보수를 받지 못했다거나 더 많은 보수를 약속하는 미디아인에게로 넘어갔다는 말인가? 아니면 페르시아의 키루스가 한결 더 좋은 조건을 내세웠기에 페르시아 편에 서기라도 했단 말인가?

 

 104.신들은 저마다 맡은 일이 바빠서 나라 전체를 위해 일할 수 없었다.

 로마인들은 자신들이 섬기는 그토록 다양하고 많은 신들 가운데 특별히 어떤 신들이 제국을 보다 더 드넓게 만들고 보존했다고 믿는지 물어보고 싶다. 그런데 나는 로마인들이 너무나 많은 신들을 사랑하기에 오직 한분이신 하나님을 정결하게 품지 못하고 악마 무리에게 자신을 내던진 불쌍한 영혼들이라고 생각한다. 

 

 105.신들의 왕 유피테르

 로마인들은 유피테르(주피터-로마 신화에 나오는 최고의 신,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에 해당)야말로 모든 남신과 여신의 왕이라고 내세운다. 그렇다면 유피테르는 왜 자신을 위해 우상을 만들어 로마나 다른 나라들에게서 그토록 형편없는 대우를 받는가? 바로도 이 일을 크게 못마땅하게 여겼다.

 

 106.많은 신들의 역할과 유피테르 예배의 관계

 로마의 신들은 각각 자신들이 맡아 다스리는 영역이 있다. 새로운 영역이 생각날 때마다 새로운 신들이 만들어진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신들이 생겨날 것인가 그러다 보니 하늘 높은 곳에서 빛을 비춰 주면서도 음란하게 벌거벗은 채 벌렁 드러누워 있는 프리아프스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무시당하는 신들이 생겨난다. 그 신들의 분노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나님은 모든 영역과 세계를 한꺼번에 다스리시는 신이다. 그런 하나님을 받든다면 잃을게 대체 무엇인가? 

 

 107.신들은 우주의 모든 역역을 나눠서 맡았다

 유피테르와 배우자 유노는 사실 서로 오누이관계이다. 이 두 신은 하늘의 신인데, 유피테르는 하늘의 상층부, 유노는 하층부를 다스린다고 한다. 또 다른 살라키아신은 바다의 아랫부분을, 프로세르피나는 땅의 아랫부분을 차지한다고 한다. 우리는 그런 지어낸 이야기를 믿지 말고, 신들에 대해 한결 가치 있는 생각을 해보자.

 

 108.신을 우주영혼이라 생각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신은 곧 우주의 영혼이며 우주는 그의 몸이라고 한다면, 그는 영혼과 몸을 이루는 하나의 살아있는 존재여야만 한다. 생명과 영혼이 저마다 탄생의 운명에 따라 태어난다면 그때는 신의 일부가 아닌 것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된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사람이 무엇을 하찮게 보든 그것은 곧 신을 하찮게 보는 것이며, 산 생명체를 죽일 때 신의 일부를 죽이는 것과 다름없게 된다.

 

 109.로마 종교에 따르면 유피테르가 나라를 발전시킨 게 된다

 모든 신들이 제 직책과 직무에 매달려 있어 너무나도 바쁠 뿐 아니라, 다른 영역에는 참여할 수 없는 형편인데, 유피테르(주피터)가 아닌 다른 어떤 신이 로마제국을 세우고 다스릴 수 있겠는가? 그리고 로마인들이 그것을 어찌 믿지 않을 수 있겠는가?... 라는 생각을 로마인들이 믿게 했기 때문에 로마는 크게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110.빅토리아가 있다면 유피테르(주피터)의 도움은 필요 없다

 로마는 몹시 사악한 동기로 전쟁을 벌였고, 지배 영역을 넓힐 목적으로 평화롭게 살기를 원하는 이웃나라들을 제멋대로 쳐들어갔다. 그리고 이제 와서 유피테르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고 있다. 그런데 만약 로마에 ‘승리의 여신 빅토리가아’ 있었다면, 과연 로마에게 유피테르가 무슨 필요가 있는가? 

 

 111.로마 발전에는 부정도 한몫했다

 선한 사람들은 나라의 땅을 넓히는 일에 그저 기뻐하지만은 않았다. 이웃 민족들이 평화를 지키고 언제나 정의롭게 행하며 결코 악으로써 전쟁을 부르지 않았는데 로마는 전쟁을 일으켜 이웃나라들을 정복하였다. 그리고 이제 와서 그것이 유피테르(주피터)의 은혜라고 믿기를 강요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112.왜 여신 콰이에스에게 공공의 제사를 올리지 않는가?

 로마인들은 사람을 평안하게 해준다는 콰이에스 라는 여신을 받아들여 성밖에 신전을 세웠지만 이 신전을 ‘국가 제단’으로 채택하는 것은 거절했다. 어떤 신은 채택하고 어떤 신은 거절하는 그 기준이 무엇일까? 그것은 그들이 만든 그 어떤 신도 확실하게 마음을 평안하게 해 준다는 확신이 없기 때문 아니겠는가? 

 

 113.왜 빅토리아를 섬기는가?

 빅토리아가 정말 ‘승리의 여신’이라면 로마인들은 자신의 남편이나 형제 또는 아들들과 결합하도록 해야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인가? 빅토리아가 아무리 여신이라 해도 유피테르(주피터 신들의 왕) 아래 있는 한 함부로 그 뜻을 펼칠 수 없기 때문인가?

 

 114.왜 행복과 행운을 구별하는가?

 펠리치타스(행복의 여신)도 여신이라는 것은 대체 무슨 말인가? 그녀는 정말 행복을 주기나 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포르투나(행운의 여신)을 또 만든 이유는 무엇인가? 도대체 로마는 또 무슨 신을 얼마나 더 만들 것인가?  

 

 115.여신 포르투나 이야기

 그들은 포루투나(행운의 여신)라 부르는 이 상상의 신에게 온갖 영애를 돌린다. 그랬더니 그 여신의 상이 입을 열어 “로마 기혼녀들이 충성심으로 자신을 기쁘게 했다고”고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왜 벙어리인가? 

 

116.비르투스와 피데스의 신전은 있는데 

 왜 다른 신들의 신전은 없는가? 그들은 비르투스(德)을 여신으로 만들었다. 실제로 덕이 여신이라면 다른 많은 신들보다 앞세워야 했으리라. 그러나 무슨 까닭으로 피데스(믿음)을 또 여신으로 만들어 신전과 제단을 쌓았는가? 몇몇 로마 지도자들이 ‘절제’로 적지 않은 영예를 얻었음에도 그 ‘절제’는 왜 여신이 될 자격을 얻지 못했을까? 또 ‘신중함’과 ‘용기’는 무슨 까닭으로 여신이 될 수 없단 말인가? 

 

117.많은 신들은 결국 덕과 행복으로 돌아간다.

 이런 여신들을 만든 것은 진실이 아니라 공상이다. 이것들은 참된 하나님의 선물이며 그 자체로 신이 될 수 는 없기 때문이다. 덕과 행복이 있는 곳에서 무엇을 따로 찾겠는가? 덕과 행복은 여신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118.바로가 자만하여 가르친 신들의 역할

 바로는 로마인들이 섬겨야 할 신들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그것을 자랑했다. 그러나 만일 바로가 사람들에게 진리를 보여줄 수 있으며 사람들에게 선의 바탕이 되시는 한 분 참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고 가르쳤다면, 누가 그에게 감사하지 않겠는가? 

 

119.로마인들은 행복의 신만을 숭배해야 한다

 펠리치타스(행복)가 참된 여신이라면, 그 여신이 모든 것을 내려주며 쉽게 사람들을 행복하게 있었음에도 어떻게 하나뿐인 숭배 대상으로 정해지지 않은 것일까? 어느 누가 행복해지는 것 말고 다른 희망이 있겠는가? 그럼에도 왜 그렇게 늦게, 그렇게 많은 통치자가 지나간 뒤에 루쿨루스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신전이 지어지게 된 것인가? 

 

120.신들의 이름의 어원

이교도들은 ‘이런 선물들이 어느 너그러운 신들로부터 왔다. 그러나 그 신들의 이름은 모른다’고 말하면서 그냥 자신들의 느낌대로 이름을 지어 불렀다고 고백한다. 

 

121.유피테르(주피터)는 행복을 주는 참된 신이 아니다

 경배 받으며 행복을 주시는 하나님께 만족할 수 없는 사람은 행복을 얻고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이 행복에 만족한다면 그로 하여금 행복을 주시는 오직 한 분 하나님을 섬기게 하라. 이 하나님은 그들이 유피테르(주피터)라 부르는 신이 아니다. 유피테르는 다른 사람의 아내들을 간통하는 자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미소년을 유혹하고 납치하는 자로 그려진다.

 

122.신들은 외설적인 연극 재개를 강하게 요구했다.

올바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은총 말고는 그 사악한 악마들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 것이다. 바르게 판단한다면 부끄러워하며 정죄해야 할 연극을 그런 신들에게 어쩔 수 없이 공연했다고 고백해야 할 것이다.

 

123.신들의 세 구분

지식이 깊은 제사장 스카이볼라는 신들의 종류가 셋으로 첫째, 시인들에 의해, 둘째 철학자들에 의해, 셋째 통치자들에 의해 전해졌다고 한다. 그는 시인들이 신들에 대해 온당치 못하게 꾸며냈기에 첫 번째 신들은 쓸모없는 부류라고 선언한다. 두 번째 신들은 쓸데없는 것들, 민중이 알면 해가 되는 것들을 담고 있기에 국가에 알맞지 못하다고 선언한다. 세 번째 신들은 어떠한가? “참된 신은 성(性)도 나이도 특정한 몸도 없기 때문에 정확한 신상을 갖고 있지 않다.”라고 한다. 구원이 필요한 약자들이 도움을 구하러 달려가는 종교는 얼마나 훌륭한가! 어떤 이가 구원받기 위해 진리를 찾고 있다면, 속는 것도 유익하다고 믿어볼만 하다.

 

124.로마 제국이 커진 것은 신들 덕분이 아니다.

그런 명예나 연극으로 달래야 했거나, 거짓된 내용을 보고 기뻐하는 것이 더 큰 범죄라는 사실 때문에, 고소당해야 마땅한 그런 신들은 로마 제국을 키우거나 지킬 수 없었다. 로마인들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결코 그런 드넓은 영토를 차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125.신화에서 말하는 로마 제국이 지지 않는다는 예언은 어긋났다.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시기 전에, 로마 군대는 여러 번 패해 흩어지거나 달아남으로써 그 예언이 거짓임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제국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도 스스로 그 신들을, 신전에서뿐만 아니라 숭배자들 마음에서 지워 버리셨다.

 

 126.키케로의 미신과 종교 구별은 아무런 이득이 없었다. 

 아카데미학파 철학자였던 키케로는 그의 저서에서는 미신을 믿는 자들을 비난하였지만, 정작 그 사람들 앞에서는 두려워 입도 뻥긋하지 못하면서 오히려 그들을 옹호하는 말을 했다. 그런 이중적인 비겁한 학자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 

 

 127.바로는 미신을 멀리했지만 

 오로지 하나뿐인 진정한 신을 믿는데 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바로는 로마의 축제에 신들을 위한 연극을 포함시켜서 미신들을 숭배하게 하였다. 비록 그것이 바로 스스로 내판 판단이 아니라 로마의 관습이라 하더라도 매우 유감스럽다. 

 

 128.지배자들은 종교로 사람들을 속여서 복종시켰다.

 바로는 또 기만하고 속이는 악령들의 말에 사람들이 더 솔깃한다는 것을 알고, 백성들이 이런 악령들을 섬기고 닮도록 부추겼다. 바로는 실제로 이렇게 해서 사람들을 얽어매어 그들을 신민으로 소유하려 했다. 나약하고 무지한 사람들이 이 속임수로부터 빠져나갈 수 있었겠는가? 

 

 129.신은 시간의 질서에 따라 지배자들에게 정치적 권위를 주었다.

행복을 빚고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은 땅 위 왕국들을 선인에게도 악인에게도 주신다. 그분은 아무 때에나 우연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에게는 숨겨진 그분만이 알고 있는 사물과 시간의 질서에 따라 다스리신다. 

 

 130.유대인은 이교도 신들의 도움 없이 발전했다.

 로마인들이 수많은 거짓 신들에게 하나하나 구해서 얻어야 한다고 여긴 모든 것은 유대인들은 하나님 한분으로부터 한결 더 행복하게 받아 누릴 수 있었다. 

 

제5권 운세의 이치가 있는가 없는가-----------------------------------------------

 

131.운명은 별의 위치에 따라 결정되는가?

 어떤 사람들은 태어나거나 잉태되는 일이 별들의 특정 위치에서 생긴 영향력이라 고 한다. 만일 그렇다고 쳐도 그 별들마저 최고 주권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그러한 능력을 받았을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명령으로 필연의 결과를 적용한다면 별들은 이런 일들을 불러 온다기보다 그들의 위치로써 앞날의 징조를 나타내는 예시적인 언어일 뿐, 직접 실행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많은 지식을 갖춘 학자들이 이런 견해를 밝혀왔다.

 

132.점성술은 쌍둥이의 서로 다른 건강상태를 설명할 수 없다.

 저명한 의사 ‘히포크라테스’는 ‘어떤 형제가 함께 병들었는데 동시에 병세가 위기로 치달은 다음 진정되었다. 그런데 그들은 쌍둥이다.’라는 기록을 남겼다고 했다. 같은 별자리의 영향을 받아 태어난 쌍둥이이기 때문에 운명도 같았다는 얘기이다. 그러나 쌍둥이는 한 엄마의 뱃속에서 자라기 때문에 같은 체질을 가지고 태어나며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공기를 호흡하고, 같은 물을 마시니 병세도 같을 수밖에 없는 것이지 점성술의 영향이 아니다.

 

133.물레 이야기는 점성술의 증명이 되지 못한다.

 토기장이가 물레를 돌리면서 빠르게 먹물로 두 개의 점을 찍었을 때, 그의 눈에는 같은 곳에 찍힌 것처럼 보이지만 물레를 멈추고 보면 그 점은 거리를 두고 멀리 떨어진 가장자리에서 발견된다. 천체는 매우 빠른 속도로 돌기 때문에 쌍둥이라도 그 짧은 시차는 천체에 있어 커다란 차이를 만들어낸다고 주장한다. 

 

134.야곱과 에서는 쌍둥이지만 성품과 행동은 전혀 달랐다.

 야곱은 에서의 발뒤쿰치를 붙잡고 태어났을 만큼 점 하나 만큼도 차이가 없이 태어났지만 그 둘의 생활습성은 완전히 달랐고, 그들의 운명도 정 반대였다. 이런 사실을 점성술은 물레판 이야기 말고 다른 설명을 할 수 있는가? 

 

135.점성술은 성립하지 않는다.

 쌍둥이는 같은 시간에 태어나서 같은 별자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병도 같이 걸려야 하는데 히포크라테스는 그런 예는 거의 없다고 했다. 그들은 쌍둥이가 태어나는 시간적 차이가 꽤 크기 때문에 그들에게 적용되는 별자리가 다를 수밖에 없다고 설명하지만 그러나 일란성 쌍둥이는 잉태시간이 똑같다. 하나의 정자에서 두 사람이 되었으니 잉태시간이 같은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136.남녀 쌍둥이의 논증

 같은 순간에 수태되어 같은 별자리의 운명을 지닌 쌍둥이조차 하나는 아들이고 하나는 딸인 경우도 있다. 그들은 성별이 다른 만큼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사람의 운명은 별자리의 천궁도에 의해 결정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와 하나님의 뜻대로 결정되어지는 것이다. 

 

137.날을 고르는 것 또한 헛된 일이다.

 어떤 특별한 날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운명이 결정된다는 것 또한 어리석은 주장이다. 내가 듣기에는 사람들이 결혼 날짜가 불길한 날과 길한 날을 가려서 한다는데 그렇다면 출생시에 별들이 이미 정한 운명은 어떻게 되는가? 이미 정해진 운명이 날을 바꾼다고 바뀐다면 그것은 모순이 아닌가?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것을 ‘운명’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완벽하게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것이지 인간들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138.스토아 철학의 운명론

 운명이라는 단어를 하나하나의 생명이 어머니 뱃속에 깃들다 태어나 삶을 시작할 때 존재하는 별들의 위치라고 말하지 않고, 존재가 생겨서 이루어지게 하는 모든 원인이 이이어지는 길이라 부른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원인들의 질서와 결합을 가장 높으신 하나님께 두기 때문에 그들과 논쟁할 필요가 없다. (어거스틴은 스토아 철학의 운명론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스토아철학을 옹오하고 있다. 칼빈의 예정론도 그 뿌리는 스토아철학이다.-최용우)

 

139.하나님의 예지를 부정하는 키케로를 비판

창조는 하더라도 창조되지 않은 만물의 원인은 하나님이다. 그밖의 모든 다른 원인은 만들기도 하고 만들어지기도 한다. 모든 만들어진 영들, 특히 이성적인 영들이 그렇다. 따라서 창조한다기 보다는 창조되어졌다고 말할 수 있는 물적인 원인들은 현상을 일으키는 원인에 속할 수 없다. 그런 원인은 영적 존재의 의지가 물체적 원인을 통해 행하는 데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의지도 여러 원인의 질서 속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이 예지하신 확실한 원인의 질서가 있다고 해서 우리 의지로는 아무것도 생겨나지 않는다고 하겠는가? 그렇다면 키케로는 이런 원인의 질서를 운명적이라고 부르거나, 운명이라고 이름붙인 사람들과 논쟁하는 셈이다.

 

140.인간의 의지는 필연성에 의해 죄우되는가?

우리가 미래에 무엇을 할지 하나님이 알고 계신다고 해서, 우리의 의지가 허무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를 아시는 하나님이 아무것도 없음(허무)을 예지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우리의 의지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아시는 하나님께서 그 의지마저 이루게 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예지를 감싸기 위해 불경하게도 신이 미래를 안다는 사실을 부인할 필요가 없다. 신의 예지 능력을 인정함은 올바르게 신을 믿기 위함이고, 의지의 자유로운 선택을 인정하는 일은 우리가 바르게 살기 위해서이다. 

 

141.모든 것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다.

가장 높고 진실하신 하나님은 그 말씀으로 성령과 하나가 되는 분이다. 그분은 영혼과 모든 육체의 유일한 창조자이신 전능하신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신에게 자신을 맡김으로써 거짓이 아니라 진실된 행복을 얻을 수 있다. 신은 사람을 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진 이성적인 동물로 만드시고, 사람이 죄를 지으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반드시 벌하시며, 또한 자비를 베풀어 보살피셨다.

 

142.참된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옛 로마인은 

 어떤 덕으로 나라를 크게 만들었는가? 역사가들에 따르면, 초기 고대 로마인들은 히브리인들을 제외한 다른 민족과 마찬가지로 거짓 신들을 섬기면서, 하나님이 아니라 악령들에게 희생제사를 바쳤다. 그러나 집정관 제도가 시작되면서 유명한 살루스키우스와 카토같은 지도자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영광과 명예와 권력을 얻고자 할 때 기만적 야망이 아니라, 덕으로 그것들을 얻어내는 것이 바로 선한 기술이라고 했다. 그들은 비르투스(덕)와 호노르(명예)신전을 매우 가까이에 세우고 하나님의 주신 선물이라 여기고 섬겼다. 카토는 ‘덕으로 명예와 영광과 권력을 얻고자 노력했던 몇몇 사람들’ 덕분에 국고가 부유하게 되었다‘ 라고 말했다.

 

143.명예욕은 악덕이지만 다른 덕을 억제하기도 한다.

명예가 학문과 예술을 낳고 기른다. 모든 사람들은 명예욕으로 학문을 연구하도록 자극 받는다. 경건한 믿음으로 얻은 성스러운 영과 지성적 미에 대한 사랑으로 비열한 욕망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기껏해야 사람들로부터 칭송받고 싶은 마음의 욕망을 억제한 사람들은 사실 거룩하지는 않지만 비겁한 정도는 덜한 셈이다. 

 

144.로마인의 덕과 그리스도인의 덕

거룩한 사도들은 “사람들의 인정을 받지 못하므로 배척당한다.”는 키케로의 말대로 인정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더할 수 없을 만큼 배척당했지만 그리스도 이름을 널리 퍼트릴 때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리스도 이름을 혐오하는  곳에서도 마음의 의사이자 선한 스승이 되시는 분에게 들었던 말씀, 곧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하겠다.’(마10:33, 눅12:9)는 말씀을 잊지 않았다.  

 

145.하나님은 로마인에게 그 덕에 어울리는 보답을 주셨다.

하나님은 로마인들에겐 ‘영원한 생명’을 주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나는 분명히 말한다. 그들은 이미 받을 상을 다 받았다.’(마6:2) 로마인들은 대부분 민족에게서 명예와 권력과 영애를 얻었다. 이 땅에서 제국의 법으로 많은 나라들을 다스리며 부귀영화를 누렸다. 그러므로 ‘그들은 받을 상을 이미 땅에서 다 받았기 때문에’ 하늘에서 받는 ‘영원한 생명’을 주지 않으신다는 더할 수 없이 높고 참되신 하나님의 판결에 불평할 이유가 없다. 

 

146.로마제국의 발전은 하나님 나라 백성에게도 교훈을 준다.

이 세상에 애착을 더 갖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싫어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를 위해 현세에서 비난을 달게 받고있는 성도들이 받을 보상은 로마인들과 크게 다르다. 하나님 나라는 영원하다. 그 나라에서는 죽음을 맞이하는 이가 없으므로 태어나는 이도 없다. 그곳에는 하나님의 선물인 참되고 오롯한 행복만이 존재한다. 로마인들의 제국과 영광이 그토록 두드러지게 드넓혀졌던 것은 로마인들은 이 세상에서 영애를 얻기 위하여 애를 썼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은 하늘의 영애를 얻기 위해 로마인들처럼 애를 써야 한다.

 

147.로마인이 땅 위의 영애를 위해 치른 희생은 

 그리스도인에게 기운을 북돋아 준다. 겨우 며칠이면 끝나는 삶, 언젠간 죽기 마련인 이 삶에서, 지배자들이 불경하고 부당한 행동만 강요하지 않는다면 곧 죽을 사람이 누구의 지배하에 있든 무슨 상관인가? 우리가 다스리기로 약속받은 그 나라는 이 세상 나라와는 하늘과 땅 만큼이나, 영원한 생명과 순간적인 기쁨 만큼이나, 확실한 영애와 공허한 칭찬 만큼이나, 천사들의 사회와 인간 사회만큼이나, 타양과 달을 창조하신 분의 영광과 태양과 달의 빛만큼이나 커다란 차이가 있다. 

 

148.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희생해도 

 자랑하지 않는다. 오직 참 하나님을 섬기는 이유는, 착한이나 악한이를 나누지 않고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섭리로 세속적이고도 현세적인 축복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 변치 않는 선물인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함이다. 로마인들에게 희생된 유대인들의 영광을 드높인 것은 마땅하다 할 수 있는데, 로마인들은 덕성으로 세속적인 영광을 좇았기에 참된 영광과 영원한 나라를 주신 분을 죽이고 배척한 유대인을 정복할 수 있었다.

 

149.명예욕과 지배욕의 차이

 하나님의 자비로 진정 경건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다른 자들을 다스리는 기술을 갖추고 권력을 갖는 경우가 인간사에서 가장 다행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이승에서 아무리 큰 덕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것은 순전히 자신들이 소망하고 믿고, 간절히 구한 것에 대해 하나님이 내려주신 큰 은총이라고 여긴다. 

 

150.참된 덕은 쾌락의 시녀도 명예의 시녀도 아니다.

 진정으로 독실하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고 그분께 소망을 품는 사람이라면 자기 마음에 드는 그런 덕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보다는 마음에 들지 않는 부족한 부분에 더 주의를 기울이고, 자신이 만족해 하기 보다는 진리를 채우는데 애써야 한다. 그리고 자신 안에 기쁨을 주는 무엇이 있다 해도 하나님의 마음에 들지 않을까 두려워하면서 모든 것을 하나님의 자비 덕으로 돌리고 , 치유받은 부분은 그분께 감사드리며, 아직 치유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간절히 기도드릴 것이다. 

 

151.하나뿐인 전능한 하나님이 땅 위의 모은 나라를 주셨다

왕국과 제국에 주어지는 힘은 오직 참된 하나님에게서만 나온다. 하나님은 하늘나라에서는 경건한 이들에게만 복을 주시지만, 지상의 나라에서는 당신의 마음에 드시는 대로 경건한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 모두에게 베풀어 주신다. 물론 바르지 않은 것이 하나님 마음에 드는 일은 없다. 하나님은 공정하게 판단하시고 보살핌을 주시는 분으로 원하는 때에 바라는 만큼 로마인들에게 왕국을 주셨다. 

 

152.전쟁 기간과 그 끝을 결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이다.

전쟁 기간 또한 정의로운 심판으로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줄 것인지 또는 자비로 사람들을 위로할 것인지 판단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 때문에 어떤 전쟁은 더 오래 걸리고 또 어떤 전쟁은 비교적 빨리 끝난다. 사람들은 받아들이기 싫어도 인정해야 하고, 하나님에 대해 허황되게 입을 놀려 스스로를 파멸시키지도 말 것이며 무지한 사람을 속이지도 말라. 

 

153.라다가이수스의 기적적인 패배

고트족 왕인 라다가이수스는 막강한 군대를 이끌고 로마 가까이에 주둔하면서 로마인들을 크게 위협했으나 오직 하룻만에 너무도 빨리 그리고 완전히 참패했다. 이때 로마군 쪽에서는 단 한사람도 부상하거나 죽지 않았지만 라다가이수스 군대는 10만명 이상이나 다쳤고 그와 아들도 포로로 잡혀 죽임을 당했다. 

 

154.그리스도인 황제의 바른 모습

통치자들이 바르게 다스린다면 우리는 그들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들이 자신들에게 최고의 명예로 찬사를 보내며 지나치게 굽실거리는 사람들의 아첨을 듣고도 우쭐대지 않고 자신들 또한 인간임을 잊지 않고 만일 그들이 자신들의 능력을 최대한 하나님에 대한 경배를 단단히 하는데 쓰며 그분의 위엄을 섬기는 일에 그것을 쓴다면 말이다. 

 

155.그리스도인 여러 황제들의 삶

선하신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삶을 위해 당신을 섬겨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이 세상의 최고 지위와 지상 왕국에 대한 권한을 악령들이 가지고 있다고 여기며, 악령을 섬겨야만 그런 것들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라셨다. 그래서 그분은 악령을 섬기지 않고 참된 하나님을 섬긴 콘스탄티누스 황제에게 어느 누구도 감히 바라지도 못할 만큼 가득한 선물을 채워 주셨다.

 

156.테오도시우스 황제의 신앙과 업적

콘스탄티누스의 뒤를 이어 그 아들 그라티아누스가 왕위를 이어받았으며 특별히 테오도시우스를 공동통치자로 세웠다. 테오도시우스는 그라티아누스가 죽자 단독으로 왕위에 올랐다. 그는 이집트 사막에 머물던 예언자 요한에게 사신을 보내 그의 예언을 받았다. 그리고 찬탈자 유니게우스를 무기가 아니라 기도로 그의 강력한 군대를 물리친다. 승리를 거둔 그는 알프스산 한 가운데 세워진 유피테르(쥬피터)신전을 헐어버린다. 

 
제6권참 행복에 아무 도움도 못 되는 신들 -----------------------------------
 
162.바로의 신화적 국가적 신학구별은 알맞지 않다
바로여! 그대는 모든 사람 가운데 가장 예리하고 의심할 바 없이 박식한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사람이지 하나님이 아니며, 또한 하나님의 영에 따라 신적인 것을 보고 알릴 만큼 진리와 자유에 이르지는 못했다. 
 
163.신화적 신학과 국가적 신학, 이 둘은 닮았다.
배우가 무대에서 연기해 위엄을 떨어뜨리고, 수치스러운 것들로 가득한 우화적인 신학은 국가적 신학의 영역 안에 끌려 들어간다. 그리고 비난받고 배척 당해야 한다고 판정받는 것이 마땅한 이 우화의 신학 전체는, 숭배받고 보호받을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이 국가의 신학의 부분에 속한다. 
 
164.세 가지 신학이 왜 구별되는가?
참 하나님은 짐작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연에 의하지만, 모든 자연이 하나님인 것은 아니다. 의심할 여지없이 인간에게도, 짐승에게도, 나무에도, 돌에도 자연은 있지만 그 가운데 어느 것도 하나님은 아니기 때문이다. 자연신학과 우화신학과 국가신학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들이다.
 
165.바로가 말하는 본성이든 활동이든 확정된 신들의 정체
바로가 말하는 신들은 너무나 비열하고 지나치게 세분되어 있어서 사람들이 저마다의 특유한 역할에 맞춰 기도해야 한다고 한 그 신들의 역할은, 신의 위엄보다는 희극 배우의 익살에 더 어울리는 게 아닐까? 
 
166.세네카의 국가적 신학 비판
로마의 철학자이자 네로의 가정교사였던 세네카는 우상을 논하며 “그들은 비천하고 생명이 없는 것으로, 신성불가침하고 불멸인 존재를 만들어 그것에 인간과 짐승, 어류의 겉모습을 부여하고, 어떤 것은 양성(兩聖) 및 잡다한 신체를 가졌다. 그것을 신이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만일 그것들이 갑자기 생명을 얻는다면 괴물이라고 여길 것이다.”라고 말했다. 
 
167.세네카의 유대인관
세네카는 유대인의 제례, 특히 안식일을 비난했다. 거기에 따르면 유대인이 그런 일을 하는 것은 무익한데, 그들은 7일마다 안식일을 지키려고 인생의 7분의 1을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시간적으로 급한 일을 뒤로 미루어 손해를 본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네카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해서는 중립적인 태도를 보이며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다. 
 
168.국가적 신학에서 볼 수 있는 신들은 
 현세, 내세 어느 것을 목적으로 하든 숭배되어서는 안 된다. 행복은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에 진실하고 오롯한 행복이 있는 영원한 생명을 경건하게 사랑하는 우리는 행복을 주시는 하나님 말고 그 누구에게 몸을 바칠 수 있으랴?
 
제7권 신들에 관한 자연주의 해석과 참 행복 ---------------------------
 
169.마르쿠스 바로의 저서에서 볼 수 있는 
신들 사이의 선택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만일 신들을 양파 고르듯 고를 수 있다면, 선택되지 않은 나머지 신들은 아무 가치가 없다고 여겨 배척당하게 될 것이다.
 
170.바로가 말하는 선택받은 신들의 실태
바로는 이렇게 선택받은 신들을 책 한 권으로 간추려 놓았다. 12명은 남신이고 8명은 여신으로 모두 20명이다. 이러한 신들이 선택은 이들이 세계에서 위대한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일까? 그들이 세상에서 해내는 역할이 좀 더 뛰어나기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무슨 이유가 있는 것일까? 모르겠다.
 
171.신들이 선택되는 기준의 애매함
선택받은 20명의 신들의 면면을 보면 선택받지 않은 다른 신들보다 그들이 더 중요한 일을 한다거나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것도 아니다. 만약 어리석은 대중들의 판단에 따라 신들이 선택되었다면 신들은 어리석은 대중들 보다도 더 못한 것이 될 것이며, 반대로 몇몇 지혜로운 이들이 신들을 구분했다면 그들의 지혜는 지혜라고도 할 수 없을 만큼 어리석은 것이라 할 수 있다.
 
172.선택받은 신들일수록 오점이 많다 
명성과 영애를 좇는 사람이라면, 선택받은 신들에게 찬사를 보내고 그 신들이 운이 좋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그 신들이 선택받은 일은 명예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해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거지와 왕자가 같은 급이라고 선택받았다면 왕자는 선택받은 것이 매우 기분이 나쁠 것이다.
 
173.자연적 신학의 깊은 뜻
바로가 말하는 자연신학은 참된 신학이 아니다. (왜냐하면 영혼까지는 다다랐지만 영혼을 만든 참된 하나님에게는 이르지 못했으니까) 바로가 언급한 자연적 신학은 주로 물질적 본성에만 관계하는 민간신학에 불과하다.  
 
174.바로의 우주상과 자연적 신학의 관계
바로는 자연신학에 대한 머리글에서 자연 전체를 하늘과 땅으로 나눈 다음 하늘은 공기와 에테르 땅은 물과 흙 네 부분으로 구분하고 그것에 여러 원소를 배치했다. 그리고 이 네 부분은 모두 영혼으로 채워져 있다고 주장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스토아학파, 피타고라스도 이렇게 주장했다. 
 
175.야누스와 테르미누스를 두 신으로 나누는 게 마땅한가?
야누스와 테르미누스는 똑같은 신으로, 그 한 얼굴은 시작을 가리키고 다른 한 얼굴은 끝맺음을 가리킨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그는 두 신인가 한 신인가? 
 
176.야누스 우상은 어떻게 풀이되는가
야누스 신은 앞뒤로 얼굴을 가지고 있는데 구강 모양이 세계의 형상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바로는 입천장을 그리스어로 우라노스라 하며 하늘을 뜻한다고 한다. 그는 치아 쪽으로 출구가 있고 목구멍 방향으로는 입구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 야누스의 모양이 영혼이나 영원한 생명과 참으로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177.우주를 둘러싼 주피터와 야누스의 기묘한 관계
로마 신화에서 주피터는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Zeus)와 같은 신이다. 주피터는 신의 우두머리요, 지상과 하늘을 주관하는 최고 신이다. 세계에 있는 모든 것은 어떤 원인에서 비롯되었는데 주피터는 그러한 모든 원인을 다스리는 신이라고 한다. 그런데 바로는 왜 주피터 보다 야누스를 더 앞에 놓는 것일까?
 
178.주피터의 여러 이름들에서 보이는 모순
주피터는 빅토르, 제우스, 인빅투스, 오피툴루스, 스타로트, 티길루스, 알무스... 그 밖에도 하나하나 늘어놓기가 번거로울 정도로 많은 이름으로 불린다. 각 이름은 주피터가 하는 일을 나타낸다. 하지만 주피터가 하는 일 들 중에 다른 신들이 맡아서 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다른 신들은 없어도 되는데 신들이 그렇게 많은 이유는 무엇인가? 
 
179.주피터와 야누스 두 신을 구별하는 근거의 애매함
야누스와 주피터가 모두 세계라고 한다. 그러나 세계는 하나뿐인데 야누스와 주피터는 왜 별개의 신으로 저마다 다른 신전과 제단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두 신이 종교적 의례도 신상도 다른 까닭은 무엇 때문인가.
 
180.주피터가 페쿠니아로도 불린다
쥬피터라는 이름은 ‘만물이 그에게 속해 있다’는 원대한 이름이다. 그런데 주피터를 페쿠니아(돈)이라고도 부르는 까닭을 모르겠다. 말할 것도 없이 주피터에게 이런 이름을 붙인 것은 탐욕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부유하다고 말하는데, 그가 물질적으로 넉넉해서가 아니라 전능하시기 때문이다. 많은 돈을 가진 사람을 부유하다고 말하지만, 만일 그에게 끝없는 금전욕이 있다면 가난한 것과 다름없다. 마찬가지로 돈이 없는 사람은 가난하다고 말하지만 만일 그가 현자라면 실제로는 부유하다. 
 
181.사투르누스, 게니우스 두 신은 주피터와 똑같다
사투르누스는 ‘파종의 신’이다. 그런데 주피터는 모든 종자를 스스로 내보내는 동시에 자기 안에 받아들이는 자이다. 주피터가 다 하는데 사투르누스 신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게니우스는 ‘생성하는 모든 사물을 관장하는 신’이다. 아버지이자 어머니이신 주피터가 하는 일도 같은 일이다. 게니우스가 특별히 따로 있어야 할 이유가 있는가?
 
182.메르쿠리우스와 마르스
메르쿠이우스는 언어를 관장하는 신이다. 그런데 그 능력이 다른 신들에게까지 미치고 주피터 조차 그 지배 아래 있어야 언어의 능력을 얻는다고 한다. 마르스는 전쟁을 관장하는 신이다. 평화의 여신 펠리치타스가 영원한 평화를 보장한다면 마르스 신은 아무것도 할 일이 없게 된다. 
 
183.별의 신격화에서 보이는 모순
별들도 각 신들의 이름을 붙었는데 특별히 빛나는 금성에는 ‘베누스 달’이라 이름 붙여서 가장 빛나는 별이라고 한다. 그런데 모든 신들의 왕인 주피터의 별은 베누스 보다 훨씬 작은 별의 이름이다. 주피터의 힘이 다른 신들보다 뛰어나다면 당연히 그의 별이 가장 빛나야 하지 않은가? 
 
184.그밖에 선택된 신들의 위치에서 보이는 모순
미네르바는 인간이 하는 온갖 예술을 관장하는 신이다. 그러나 이 여신에게 어울리는 별을 찾지 못했기에 그들은 이 여신을 ‘달’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달은 우주에 맨 아래에 있는 가장 가치 없는 별이라고 여긴다.
 
185.바로는 자신의 이야기가 억측임을 스스로 인정했다
바로는 그의 두 번째 책에서 “내가 이 책에서 신들에 대해 의심스런 견해를 말한다고 해도 그 때문에 비난 받아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나의 의견에 귀를 기울인 뒤, 더 확실한 판단이 필요하다면 그렇게 하면 되기 때문이다.”라고 자신의 이야기가 억측임을 스스로 인정했다.
 
186.인간을 신격화한 이교도의 신들
이교도들은 다음과 같은 견해를 주장한다. 신들은 처음에는 인간이었지만, 이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한 사람들이 그들을 신이라고 주장하며, 그들에게 그 재능과 성격, 역할, 운명을 바탕으로 종교의식과 제전을 정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종교의식과 제전은 온갖 정령들과 비슷한 영혼을 가지고 오락거리를 찾아다니는 사람들 속에 서서히 스며들어 멀리 퍼지면서 신이 되었다는 것이다.
 
187.사투르누스
바로는 ‘사투르누스’가 갈고리를 지닌 까닭은 ‘농사일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투르투스’가 다스리던 시대에는 아직 농업이 시작되지 않았다. 그 시대를 원시시대라고 하는데 원시시대 사람들은 땅에서 자연적으로 생긴 씨앗을 먹고 살았기 때문이다. 필요도 없는 갈고리를 달고 있었다니 말이 안 된다.
 
188.케레스
옛날 어느 시대에 풍요로움이 사라져 대지가 불모 상태가 되었는데,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케레스의 딸을 오르쿠스가 유괴해 자하 명계에 감금해 버렸다. 케레스의 딸은 ‘프로세르페레(서서히 발아하다)’라는 말에서 나온 이름이기 때문이다. 이 사건이 해결되고 나자 다시 풍요로움이 되살아났다고 하여 케레스 여신과 관련된 제의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189.리베르
리베르는 액상의 씨앗, 즉 제1순위를 차지하는 와인을 대표로 하는 과실의 액즙뿐만 아니라, 동물의 정액까지 도맡은 신이다. 이 신에 대한 제의가 얼마나 파렴치한 것인지를 말하자면 끝이 없을 것 같아서 차라리 시작도 하고 싶지 않다.
 
190.넵투누스, 살라키아, 베닐리아
이교도들의 주장에 따르면 우주의 물인 ‘넵투느스’에게는 바다 속 깊은 곳에 있는 물의 여신 ‘살라키아’라는 아내가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베닐리아’와 결혼을 한다. 그것은 종교의식의 필요성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더 많은 악령들을 불러들이려는, 부패한 영혼의 욕정에서 나온 것으로밖에 생각할 수 없다.
 
191.대지의 여신으로 보는 신격화의 모순
틀림없이 대지는 오직 하나이고, 우리가 눈으로 뚜렷하게 보는 것처럼 그것은 고유한 생명들로 가득 차 있다. 또 대지는 여러 원소들 가운데 거대한 덩어리를 이루고 있음에도, 세계에서 가장 낮은 부분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왜 이 대지를 이교도들은 여신이라고 주장하는 것일까? 대지가 풍요로운 결실을 가져오기 때문일까? 만일 그렇다면, 거기에 쟁기질을 하고 정성들여 경작해 더욱 풍요롭게 가꾸는 인간들이 오히려 더 신성한 존재가 되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교도들은 세계 혼이 대지의 구석구석 스며들어 있기에 대지는 곧 여신이라고 말한다.
 
192.텔루스
텔루스는 대지의 모신(母神)으로도 불린다. 이 여신은 평평한 원형의 대지이기도 한데, 그것을 드러내기 위해 작은 북을 지니고 있다. 또 지상의 도시를 나타내기 위해 머리에 탑을 얹고 있다. 거세당한 갈루스라 불리는 신관들이 이 여신을 시중들게 된 까닭은 종(정)자가 없는 자는 대지에 발을 딛고 살아야 함을 나타낸다고 한다. 텔루스 신의 종교의식에서는 남근을 자르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남성의 생식력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갈루스들이 여성으로 바뀌지도 않고 남자로 남아있는 것도 아니다.
 
193.아티스
텔루스의 애인인 아티스는 꽃의 남신인데 꽃은 열매를 맺기 전에 떨어진다고 하여 스스로 거세한 남신이다. 그렇다면 꽃이 나타내는 것은 아티스라는 남자의 존재가 아니라 그의 남근이라는 얘기가 된다. 떨어진 것은 남근뿐이고 아티스는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194.갈루스
바로는 남성과 여성이 지닌 수치심을 모두 내팽개치고 대지 모신에게 몸을 바친 ‘갈루스’라 불리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바로 얼마 전까지도 머리카락에 잔뜩 기름을 바르고, 얼굴에는 짙은 화장을 하고, 정숙하지 않은 차림으로 여자처럼 걸으면서 카르타고 광장과 그 주변을 돌아다닐 뿐 아니라, 자신들의 수치스러운 목숨을 이어나가기 위한 양식을 얻고자 곧잘 구걸을 하기도 하였다. 이런 갈루스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없으며, 생각만 해도 얼굴이 붉어지고 말문이 막힐 뿐이다.  
 
195.국가적 신학과 마귀의 관계
세계를 이루는 어떤 원소, 또는 어떤 피조물적인 영이, 그것이 특별히 부정하고 사악한 것이 아니라 해도 참된 하나님께 바쳐야 하는 성전과 성직자, 제물로써 대신 떠받들어진다면 죄가 된다. 그 까닭은, 제사 때 쓰이는 수단들이 올바르지 않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런 제사와 예배는 본디 바쳐져야 하는 참된 하나님을 숭배할 때만 드려져야 하기 때문이다. 
 
196.선택된 신들에 대한 바로의 해석은 한결같지 않다
매우 박식하고 날카로운 눈을 가진 바로가, 정교한 논의를 펼쳐. 그 모든 신들을 하늘과 대지로 되돌리는 동시에 그것과 관련 지으려고 몹시 애쓴 목적은 무엇일까? 그러나 그런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신들은 그의 손에서 넘쳐 흐르고 튀어나와서 비틀거리다 쓰러졌다.
 
197.선택된 신들의 모든 권능은 모두 참된 하나님의 창조와 관계 있다
이교도들이 선택받은 신들에 대한 신학적 근거로서 세계와 관련된다고 여겨지는 모든 것은, 세계를 창조하고 모든 영혼과 신체를 만든 하나님께 돌려져야 한다. 그렇게 하면 신을 모독하는 일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을 품을 일이 없어질 것이다.
 
198.참된 하나님은 어떤 신인가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스스로 창조한 존재들에게, 존속하고 활동하는 처음과 끝을 정해주셨다. 그분은 사물의 원인을 모두 이해하고, 알고, 또한 배려한다. 하나님은 모든 종자들에게 활력을 주었다. 또한 생명이 있는 것 가운데에서도 자신이 선택한 자들에게 정신(아니무스)이라고 하는 이성적인 영혼을 내리고, 언어능력을 주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 하나님은 모든 물의 창조자인 동시에 그것을 통치하고 있다. 그분은 빛을 내는 모든 물체 가운데 가장 빛나는 태양을 창조하고, 그에 알맞은 힘과 운동력을 내려주셨다. 
 하나님은 어디에 있어도 전체이고, 어떤 장소에서도 한정되지 않으며, 무엇에도 속박되지 않고 어떤 부분으로도 나눠지지 않으며, 모든 점에서 불변하고, 하늘과 대지를 아우르는 힘과 아무것도 모자람이 없는 본성으로 채워져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한 만물을, 그것들이 고유한 운동을 자유로이 시작하고 지속할 수 있도록 다스리신다. 하나님이 없으면 피조물 또한 하나도 존재할 수 없으며, 하나님과 똑같은 피조물은 이 세계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 또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 많은 일들을 하고 계시며, 천사들의 행복의 밑바탕은 하나님 자신 말고는 없다.
 
 199.하나님은 인간에게 넘치는 은혜를 주신다
 우리가 존재하고, 생활하고, 하늘과 대지를 내다보면서, 이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탐구할 수 있는 정신과 이성을 가진 것은 그 어떤 감사의 말로도 갚지 못할 은혜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죄의 중압감에 짓눌려 하나님의 빛을 외면하고 어둠, 즉 부정(不正)에 대한 사랑에 눈이 멀어버린 우리를 결코 저버린 적이 없었다. 오히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의 말씀을 보내 주셨다. 
 하나님의 독생자는 우리를 위해 인간의 육신을 취함으로써 태어났고 고난 받았다. 그것은 하나님이 얼마나 인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는지를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하고, 독생자의 그 유일무이한 희생으로써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주며, 하나님의 성령을 통해 우리의 마음에 사랑이 퍼져나가(롬5:5)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영원한안식에 이르고 하나님의 관조가 가져다주는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기쁨에 이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200.그리스도의 비밀의식은 이미 훨씬 이전에 예시되었다
 영원한 생명의 신비는 인류가 나타난 이래, 시대마다 들어맞는 어떤 상징이나 종교의식, 천사들을 통해 그것을 받아야 할 사람들에게 미리 알려졌다.(갈3:9, 행7:38, 히9:2) 히브리 민족은 이 의식을 수행하기 위해 하나의 국가로 모아졌다. 그리스도의 재림으로부터 오늘까지, 그리고 그 뒤에 일어날 일들이 예언되었다. 또 이 민족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다가올 영원한 구원이 예언되어 있는 성경을 입증하기 위해 이교도들 사이로 흩어져 갔다. 
 
 201.그리스도교의 이교도 신들 정체 폭로
 유일하고 참된 그리스도교는 이교도들이 믿는 신들의 정체는 부정하기 짝이 없는 정령들이라는 것을 폭로한다. 인간은 악령들을 타락시킨 교만에 맞설만한 겸손의 모법을 보임으로써 인간을 구원하고자 부활한 그분(그리스도)를 믿었을 때, 비로소 악령들의 잔인하고 불경한 지배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202.누마 왕의 진정한 운명과 제사의 의심스러운 부분
 누마 왕에게는 하나님의 어느 예언자나 신성한 천사가 보내진 적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점(물로 보는 점)에 의지해야 했다. 실상은 정령들이 만들어내는 환영이지만, 물속에 비친 신들의 모습을 보고, 거기서 종교의식에 대해 무엇을 만들고 따라야 하는지를 알아내려고 한 것이다. 
 
 203.누마 왕과 마귀들의 관계
 마귀들은 물점을 비롯한 온갖 수단으로써 누마와 친구가 되어 자신들의 비밀스런 일들을 완전히 밝히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마귀들은 누마에게 죽기 전에 그 책을 불태워 버리게까지는 못했다. 누마의 이 책이 얼마나 해롭고, 참된 신에 대한 예배와 얼마나 거리가 먼 것이었는지는 원로원이 과감히 그 책을 불태워버린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마귀들과의 교제를 원치 않는 사람은, 마귀들을 숭배하는 위험한 미신을 두려워 하지 말고, 이런 마귀들의 정체를 폭로하고 정복하는 참된 종교를 인정할 것을 나는 간절히 바란다.  
 
제8권 그리스도와 철학자들의 가르침에 나타난 중개자의 역할 -------------------
204.자연철학의 문제는 뛰어난 철학자들과 이야기해야 한다
 그들이 ‘자연적’이라고 부르는 신학에 대해서는 어떤 사람과도 구별 없이 논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자들과 논해야 한다. 그리고 신적 권위와 진리가 보여주듯이,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지혜라면 참된 철학자 즉 지혜를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는 뜻이다. 그러나 철학자라는 명칭에 걸맞은 내용 자체가, 그러한 명칭을 자랑하는 모든이들에게 깃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문제를 함께 논하기에 알맞은 철학자들을 선택해야 한다. 
 
 205.이탈리아, 이오니아 두 가지 철학파
 그리스 문학에 관해 철학자들의 두 가지 기원이 전해진다. 하나는 일찍이 마그나그라이키아라고 불렸던 이탈리아의 한 지역에서 파생한 ‘이탈리아학파’이다. 또 하나는 그리스로 불리고 있는 지역에 기원을 둔 ‘이오니아학파’이다. 
 
 206.소크라테스의 가르침
 소크라테스는 모든 철학을 도덕의 개선과 완성으로 돌린 인물이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모든 철학자들은 자연의 모든 것을 탐구하는데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소크라테스는 그 자연철학자들이 사물의 원인에 대해 탐구하는 것을 알고 첫째로 최고의 원인은 유일한 하나님 말고는 없다고 믿었다. 그리고 사물의 원인은 오직 정화된 정신만이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소크라테스는 스스로 지식이 있다고 여기는 무지한 망상가들의 어리석음을 놀랍도록 명쾌한 표현과 날카로운 풍자로 추궁하고 폭로했다고 전해진다. 그 때문에 적대자들의 원한을 사서 끝내 중상모략으로 단죄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죽게 된다.
 
 207.소크라테스의 소중한 제자 플라톤 그리고 철학의 세 부분
 플라톤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배운 것과 자신의 지성으로 깨우친 것을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말함으로써 소크라테스의 기지 및 도덕상의 논의와 연결지었다. 소크라테스는 실천적 부분에서 빼어났고, 지성의 힘을 따라 그것에 다가갈 수 있었던 피타고라스는 관상적 부분에서 뛰어났다고 전해진다. 플라톤은 이 양쪽을 종합하여 철학을 완성했다는 찬사를 받는다. 그는 그렇게 이룩한 철학을 세 부분으로 나누었다. 첫째는 주로 실천적 문제를 다루는 윤리학, 둘째는 관상에 맡겨지는 자연학, 셋째는 참된 것을 거짓으로부터 구별하는 논리학이다.
 플라톤 학파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 하나님 안에 존재의 원인은 자연학 부분에 속하고, 지성인식의 근거는 논리학에 속하며, 생활의 질서는 도덕학에 속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리라. 따라서 만일 인간이 자기에게서 탁월한 것(이성)으로써, 모든 것을 초월한 존재, 즉 유일한 진리이자 최고선인 하나님께 이르도록 창조되었다고 한다면, 우리 인간은 거기서 모든 것이 우리와 연관되어 있는 그분(하나님)을 탐구해야 하고, 거기서 모든 것이 우리 인간에게 확실한 것이 되는 그분(하나님)을 인식해야 하며, 거기서 모든 것이 우리에게 진실인 그분(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리라. 
  
  208.신학에 대해서는 플라톤 학파 철학자들과 이야기해야 한다
 신화적 신학, 국가적 신학 이 두가지 신학은 참된 신은 만물을 창조하는 자, 진리를 비춰주는 자, 축복을 내리는 자라는 플라톤학파 철학자들에게 그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정신을 신체에 종속시키고 물질적인 것이 자연의 원질이라고 믿는 다른 철학자들도 위대한 신 하나님을 인정한 그 훌륭한 플라톤파 철학자들에게 그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209.자연학이라 불리는 철학 부분에 대한 플라톤 학파의 견해
 플라톤 학파 철학자들은 하나님이 결코 물체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모든 물체적인 것을 뛰어넘어 하나님을 좇았다. 그들은 또 어떤 가변적인 것도 최고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플라톤학파 철학자들이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자이고, 또 하나님 자신은 그 무엇에 의해서도 창조되신 분이 아님을 깨달은 것은 하나님의 불변성과 순일성 때문이다. 존재하는 것은 물체나 생명, 이 둘 가운데 하나이고 생명은 물질보다 뛰어나며, 물질의 형체는 감각으로 느낄 수 있고, 생명의 형체는 지성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그들은 여겼다.  
 
 210.플라톤학파 사람들은 다른 철학자보다 논리학이 뛰어나다
 그들은 감각 능력을 감각에서 없애지 않고 또 능력 이상의 것을 감각에 돌리지도 않으며 감각을 올바르게 평가하여 정신으로 인식하는 것과 감각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것을 구별한다. 그리고 그들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자체가 모든 것을 배우기 위한 정신의 빛이라고 주장한다. 이로 보아 그들은 다른 에피쿠로스 학파나 스토토아 학파보다 훨씬 뛰어난 논리를 가지고 있다. 
 
 211.플라톤학파 사람들은 도덕철학도 뛰어나다
 그들은 더없이 행복한 사람이란 ‘육체와 영혼을 누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누리는 사람’이라고 했다. 플라톤은 궁극적 선이란 ‘덕을 따라 사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닮고자 하는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일이라고 했다. 플라톤은 ‘철학자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고 했다. 따라서 철학은 복된 삶으로 이끌기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누림으로써 복된 삶에 이른다. 
 
 212.그리스도교 신앙 진리에 가까운 철학
 ‘하나님을 피조물의 창조자, 모든 인식의 빛, 모든 행위의 궁극적 선으로 생각하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자연의 원리와 가르침의 진리, 그리고 삶의 행복을 누리게 된다’고 생각하는 철학자는 그 학파가 무엇이든 우리는 그들 모두를 다른 철학자들보다 더 나은 위치에 두고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선 사람들임을 인정하는 바이다. 
 
 213.철학과 그리스도교, 철학적 문제 속에서 
얼마나 그리스도교는 뛰어난가. 오직 성서를 통해서만 교육받은 그리스도교인이라 할지라도, 철학자란 지혜를 탐구하고 또 지혜를 사랑하는 이들이라는 것을 모를만큼 무지하지는 않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 세상의 원소를 따라 철학을 하면서 세계를 창조한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경계한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이 이미 경고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이 세상의 원소에 바탕을 둔 철학과, 헛된 가르침의 유혹으로 그대들을 속이는 것을 경계하라.”(골로새서2:8) 또, 그렇다고 모든 철학자들을 그렇게 똑같이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것도 사도 바울이 이미 말했다.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롬1:19-20) 
 
214.플라톤은 어째서 그리스도교에 가까운 이해력을 가질 수 있었는가
플라톤이 하나님에 대해 많은 점에서 그리스도교의 진리와 매우 비슷한 방법으로 생각하고 있는 이유는, 어떤 사람들은 플라톤이 이집트를 여행했을 때 예언자 예레미야의 말을 들었거나, 예언서를 읽었으리라고 말한다. 이러한 생각을 가능케 하는 것은 창세기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그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이런 말로 시작되는데 플라톤이 세계의 창조에 대해 쓴 책<티마이오스>는 ‘하나님은 창조의 작업에서 대지와 불을 결합시켰다’라고 한다. 플라톤은 불에다 하늘의 위치를 부여했고 ‘공기는 영’이라고도 말한 것으로 보아 어떤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 또 플라톤은 ‘철학자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플라톤이 어떤 식으로든 성서를 접했을 것이라고 보는 의견에 동의하는 것이다.
 
215.플라톤학파 사람들은 하나뿐이고 참된 신을 바르게 생각했음에도 
많은 신들을 섬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가장 뛰어난 철학자로 선택한 까닭은 그들이 하늘과 대지를 창조한 유일신에 대해, 다른 사람들보다 한결 많은 지식을 가졌기 때문이고, 그들은 다른 철학자들보다 더욱 명성이 높고 훌륭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216.모든 신들은 선하고 덕을 사랑한다고 정의한 플라톤의 생각
플라톤 학파 철학자들이 ‘악한 신들에게는 그들이 해꼬지를 하지 않도록 그들에게 희생을 바치며 달래야 하고, 선한 신들에게는 도움을 달라고 호소해야 한다’는 말은 처음부터 그 의미를 잃고 만다. 왜냐하면 플라톤은 ‘모든 신들은 선하며 악한 신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기 때문이다.
 
217.세 가지 이성적 혼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견해
그들에 따르면 이성적 혼을 지닌 모든 생명은 신, 인간, 그리고 정령으로 분류된다고 주장한다. 즉, 신의 자리는 하늘에 있고 인간의 자리는 지상에 있으며, 정령의 자리는 공중에 있다고 한다. 
 
218.정령이 공기로 된 육체를 가지고 높은 곳에 살기에 인간보다 
뛰어난 게 아니다. 바라건데 참된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이런 말에 속지 말기를 바란다. 사람보다 뛰어난 신체 능력을 가진 존재는 정령 말고도 많다. 그렇다면 그들이 모두 인간보다 위에 있단 말인가? 하나님은 우리보다 못한 동물들에게 더욱 우월한 신체 기능을 주셨다. 그것은 그들의 생존 방식이지 ‘우월성’이 아니다.
 
219.아풀레이우스가 설명하는 정령들의 성격과 행동
우리는 정령들을 신처럼 섬겨서는 안 되며, 오히려 정령들에게 그러한 성질을 내려 준 하나님을 숭배해야 한다. 그러나 공기적인 생명체가, 이성적이지만 비참해질 가능성을 지녔고, 감정적이고 실제로 비참하며, 영원한 존재여서 자신의 비참함을 끝내 종결할 수 없다면, 그들이 어떻게 신의 명예를 가질 자격이 있단 말인가? 
 
220.인간은 정령들의 악독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아풀레이우스는 정령들은 우리와 공통된 것, 즉 혼의 감정을 지녔다고 말했는데 정령들의 혼은 왜 감정의 혼란과 폭풍에 흔들리는가? 참된 종교는 우리가 분노에 휘둘리지 않고 오히려 그것에 맞서도록 우리에게 명령한다. 참된 종교는 마음의 온갖 격정, 정신의 불안, 혼의 혼란과 폭풍같은 것들을 내버리라고 명령한다. 그런데 감정 따위에 휘둘리는 정령들에게 우리가 복종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고 정신나간 일인가.
 
221.인간이 정령들의 도움을 받아야 신들에게 기도한다고? 
아풀레이우스는 정령들은 인간이 바라는 것들을 인간으로부터 신들에게 전하고 그것으로 가져가서 승인을 받아가지고 다시 인간에게로 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마음이 정결하고 양심적인 인간, 마술적 사악한 행위를 한 적이 없는 인간들까지 나쁜 행위를 사랑하는 정령의 도움을 받아 기도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정령들은 사려 깊은 인간들을 결코 좋아하지 않고 그들은 부도덕한 행위를 사랑한다.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결코 사랑하지 않는 ‘천 가지 사악한 술수’를 아끼는 정령을 기도의 중개자로 삼는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222.정령들의 도움에 기대는 마술의 죄
아풀레이우스는 자신이 마술을 한 혐의로 그리스도교 재판관 앞에서 탄핵을 받았다. 만약 마술적 행위가 신성하고 경건한 행위라면 마술을 금지한 법률을 비난했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정령들이 마술을 행하는 것과 아무 관계도 없다고 스스로를 변호했다. 그런데도 정령들의 도움을 받아서 기도해야 하는가?
 
223.좋은 신들은 인간보다 정령들과 가까이 지내는 것을 기뻐할까?
어쩔 수 없는 절박한 이유가 정령들에게 신들과 인간 사이를 중개하도록 강요하고, 그로써 정령들은 인간의 소원을 신들에게 전하고, 신들로부터 충족된 그 소원을 인간에게 가져다준다고? 그렇다면 도대체 그 절박한 이유란 무엇인가? 
 
224.신들은 정령들을 신하로 삼았는가?
플라톤 주의자들은 ‘신들이 있는 천상은 지상에서 아득히 먼 곳에 있고, 또 떠다니고 있는데 비해 공중은 천상과 대지 양쪽에 맞닿아 있기 때문에 신들은 인간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또 언제 인간을 도와 주어야 하는지를 정령들을 통해서만 알 수 있기에 정령들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얼마나 황당하고 통탄할 주장인가! 도대체 신들이 언제 정령들을 신하로 삼았는가?
 
225.정령들의 예배는 폐기되어야 한다
정령들은 참된 종교에 참여하지 않는 많은 불신자들을 마치 포로나 종처럼 부리면서 그들이 자신들을 신처럼 믿도록 속여서 그들의 예배를 받는다. 그러나 그들의 악덕을 알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생각해 낸 거짓말이 자신들은 신과 인간의 중계자라고 하지만 그마저도 철저하게 비웃음을 당하고 있다.  
 
226.헤르메스 트리스메기투스의 우상숭배에 대한 생각
이집트인 헤르메스는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우상은 말하자면 신들으 몸체라는 황당한 주장을 한다. 인간은 인간이 만든 것을 인간이 예배함으로써 쉽게 신들을 만들 수 있지만, 그 자신이 만든 것을 예배함으로써 인간 이하의 존재가 되고 만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명예로운 인간이 자신이 만든 것을 자신이 예배함으로 스스로 짐승의 지위로 내려앉은 것이다.
 
227.헤르메스는 이집트 종교의 실수를 어떻게 인정했는가?
헤르메스는 “경건하지 못한 우리 조상이 신들의 예배와 종교를 소홀히 여기고, 신들의 관념에 대해 중대한 잘못을 저질렀으므로 신들을 만드는 기술을 생각해 낸 것이다.”라고 하는데, 헤르메스는 그들이 실수를 저질렀고 그 결과 신들을 만드는 기술을 창안했다고 말하는 것일까?
 
228.거룩한 천사와 인간은 공존할 수 있다
우리는 천사들과 함께 있고, 그들과 함께 살며, 비록 그들을 육체의 눈으로 볼 수 없다고 해도 그들이 예배하는 하나님을 그들과 함께 섬긴다. 우리는 부정한 마음으로 지상의 것을 생각하기 때문에 천사들과 교류를 맺을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치유되어 천사처럼 될 때는 믿음으로 천사에게 다가가게 된다.
 
229.이교도의 모든 종교는 죽은 사람과 이어져 있다
헤르메스는 “우리는 많은 점에서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들과 믿음 없는 사람들에 의해 또, 성스러운 종교의 예배를 거스르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인정되는 것들(우상 숭배, 성소와 신전, 피라미드)이 이집트에서 사라질 날이 언젠가는 오는 것을 슬퍼하며, 그때는 성소와 신전의 가장 신성한 장소인 이 땅은 무덤과 죽은 사람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라고 예언했다. 헤르메스는 우리(그리스도교도)의 순교자들의 기념예배당이 그들의 신전과 성도를 대신하고, 그것을 잇는 것을 슬퍼하였다. 
 
230.그리스도 신자는 순교자들에게 어떤 영애를 주었는가
우리는 순교자들을 위해 신전을 세우거나 성직자와 종교의식을 정하고 희생제물을 바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그들이 신이 아니고, 그들의 신이 우리의 신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잘못된 허구의 신념을 지닌 자에게 참된 종교를 알리기 위해, 육체의 죽음에 이르도록 진리를 위해 싸운 그들의 유업을 하나님의 경건한 사람의 것으로서 찬양한다. 그 이전에도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두려움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31.이제까지 한 이야기와 앞으로 생각해야 할 문제
어떤 사람들은 선한 신과 악한 신이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좋은 신만 존재한다고 믿고 그 신은 착한 사람들보다 더 뛰어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정령들을 염두에 두고 그런 말을 하였으나 결국 정령들에게 휘둘리고 있다. 철학자들 가운데 누구보다도 뛰어난 플라톤학파 사람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정령들은 신과 인간들의 중개자가 아니며 그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232.신들보다 뒤떨어진 정령 속에 인간의 혼을 구해 참된 행복을
가져다주는 선한 부분이 있는가? 선한 정령들을 따라야만 죽음 뒤 영원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동안 악한 정령들의 함정에 빠져 오히려 참된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방황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우리는 참된 하나님과 함께 있을 때, 그 하나님 안에서만 인간의 혼, 곧 이성적이며 지성적인 혼은 행복해진다.
 
233.아풀레이우스는 정령들이 이성을 가졌다고는 했지만 
덕을 지녔다고는 하지 않았다. 그는 공기로 이루어진 정령에 대해 많은 설명을 하지만, 선한 정령의 좋은 행동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반대로 악한 정령에 대해서는 폭풍처럼 난폭한 감정에 휘둘려 어리석은 인간들의 정신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말한다. 정령의 지성은 격정적이며 타락한 감정에 맞설 진실과 덕성도 갖지 못한 채 세차게 흔들리는 바다일 뿐이다. 
 
234.소요학파와 스토아학파의 혼에게 일어나는 정욕에 대한 견해
그리스인들은 이런 정신적 감정을 ‘파테’라고 부르고, 키케로 같은 사람이나 작가들은 ‘격정(petturbatio)’이라 부르며, 어떤 이들은 ‘감정’이라고 부른다. 또 아풀에이우스는 ‘정념(passio)’이라고 부른다. 플라톤학파와 아리스토텔레스학파도 정신의 지배를 이성으로 조절하며 통제한 결과 정신 지배가 여러 방법으로 감정에게 법을 부여해 감정이 필요한 만큼 제약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계속 
 
235.그리스도 신자의 혼을 움직이는 감정은 덕을 실현한다
성경의 가르침은 하나님이 인간 정신을 다스리고 도와줄 수 있도록 정신 그 자체를 하나님께 복종시키며, 모든 감정은 정의를 위해 쓸 수 있도록 이끌며 억누른다.  따라서 그리스도교 윤리에서는 경건한 정신이 화를 내는지 또는 참는지 묻는 게 아니라 분노하거나 슬퍼하는 원인이 무엇인지, 어떤 것을 두려워 하는지를 따져보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236.정령들을 휘두르는 권력
신들과 인간들 사이에 있는 정령(악령)들이 정념에 흔들린다는 플라톤 학파의 말은 무슨 뜻인가? 정령의 정신이 악덕을 따르고 그것에 지배를 받아 이성이 지닌 것을 속이려 심하게 유혹하고 해를 주는 욕망이 더욱 강하게 정신을 지배한다면, 정령들의 어떤 부분이 신들에게 호감을 주며 인간들을 바른 삶으로 오롯이 이끌 지혜를 가졌다고 할 수 있다는 말인가? 
 
237.플라톤학파 사람들은 시인들이 지은 ‘신들을 모함하는 시’
는 정령을 다뤄야 한다고 말한다. 아풀레이우스는 시인들이 신들을 허구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는 정령들이 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는 있지만 그들은 있는 그대로의 정령으로 그려지기 때문에, 이런 시인들의 허구가 진실과 아주 멀지는 않다고 말한다. 
 
238.인간은 정령의 중개로 신들과 관계를 가질 수 있는가
그렇다면 인간과 신들 사이에서 인간이 신과 가까워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중계자는 어떤 존재일까? 생명을 가진 동물을 혼과 육체로 이루어진다. 혼이 육체보다 뛰어나다. 결함 많고 약할지라도, 혼은 건강한 육체보다 앞선다. 왜냐하면 혼은 그 본성이 육체보다 뛰어나며 악덕이라는 오점을 가졌어도 육체보다 뒤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더러운 황금이 깨끗한 은이나 납보다 더 가치있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데 사악한 정령들은 마치 신과 육체를 이어주는 것과 같다. 
 
239.하늘의 신들, 그 아래 정령, 땅 위에 인간에 대한 정의
아풀레이우스는 “정령들의 본성은 동물이며, 혼은 감정을 따르고, 정신은 이성적이고, 육체는 공기와 같으며, 시간적으로 영원하다”고 말했다. 
 
240.플로티노스는 죽어 없어지는 육체를 가진 인간은 
영원한 육체를 가진 정령보다 비참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인간의 혼을 이야기 할 때 “자비로우신 아버지는 그들을 위해서 죽어 사라지는 족쇄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사멸될 육체를 지닌 인간이 비참한 현생에 영원히 속박되지 않도록 한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자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령들은 사악해서 이러한 자비를 받을 자격이 없다. 
 
241.인간 혼은 육체에서 떨어진 뒤 정령이 된다는 플라톤 학파의 견해
아풀레이우스는 인간의 혼을 정령이라 말했다. 선행을 많이 하면 죽은 뒤 라레스가 되고, 악행을 많이 하면 레무레스나 라르바이가 되며, 만일 선과 악 어느 쪽인지 불분명하면 마네스가 된다고 했다. 
 
242.플라톤 학파의 인간의 본성과 정령의 본성 구별
아풀레이우스가 “신들의 생명력은 영원한 데 비해, 인간의 생명력은 덧없고 불안정하다.”고 말한 까닭은 생명의 영구성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신들의 본성은 행복한 상태로 찬양받는 반면, 인간의 본성은 비참한 상태에 빠져 있다.”고 했다. 이는 본성의 완전성을 말하기 위함이다.
 
243.정령이 신처럼 행복하지 않고 또 인간처럼 비참하지 않다면 
어떻게 그런 정령이 신과 인간 사이를 이어줄 수 있는가 ?플라톤 학파의 말에 따르면 가장 높은 곳의 신들은 ‘영원한 행복’ 도는 ‘행복의 영원’을 가진다. 그에 비해 가장 낮은 곳의 인간들은 ‘죽음의 비참함’ 혹은 ‘비참한 죽음’이다. 그러므로 중간에 있는 정령들은 ‘비참한 영원’또는 ‘영원한 비참함’을 지니게 된다. 
 
244.인간은 죽어야 하면서 행복할 수 있는가
인간이 반드시 죽어 없어지는 존재이면서도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는지 그것은 매우 큰 문제이다. 어떤 사람들은 인간 조건을 겸허하게 관찰해서 인간이 죽게 되는 삶을 사는 한 행복할 수 없다고 말한다. 스토아주의자들은 인간을 기리고 칭찬하여 비록 죽는 존재이지만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245.사람이 된 예수 그리스도가 신과 인간을 중개한다.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죽음을 맞기에 비참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은 믿을만하고 있을 수 있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인간이면서 신이기도 한 중개자를 찾아야 한다. 중개자의 행복한 죽음이 중개자의 행동에 따라 인간들을 죽어야 하는 비참함에서 행복한 영원으로 이끌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개자가 죽어야 하지만 그 죽음은 영원해서는 안 된다. 중개자는 말씀의 신성이 약해져서 죽는 게 하니라 육체의 약함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죽음을 맞는다. 그러나 육체는 죽음의 상태로 머물지 않고 죽음에서 부활했다.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중개자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을 맞이하면서 영원한 행복을 얻었고 잠시 머무는 것으로써 죽을 운명을 지닌 존재들과 자신을 하나로 만들고, 그들을 죽음에서 영원한 상태로 이끌었다. 
 그분은 우리를 죽음과 비참함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고 하여 죽지 않고 행복한 천사들에게로 이끈 게 아니라 오직 삼위일체로 우리를 이끌어 준다. 천사들도 삼위일체에 기댐으로써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분은 중개자가 되기 위하여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빌2:7) 천사보다 낮은 것이 되기를 선택했을 때 하나님 모습으로 천사들 위에 머무셨다. 천상에서 생명이었던 분은 마찬가지로 낮은 곳에서도 생명의 길이 된 것이다. 
 
246.플라톤학파는 하늘의 신들이 땅 위 인간과 교류하는 것을 부정했다.
플라톤학파 아풀레이우스는 ‘우리가 참된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세상 모든 것의 창조자인 가장 높은 신을 인간의 보잘 것 없는 언어로는 오롯이 묘사할 수 없는 하나뿐인 존재’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칠흑 같은 어둠을 밝히는 하얀 섬광이 번쩍이듯 그렇게 겨우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번쩍 빛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신들이 인간을 도우려면 어쩔 수 없이 인간과 접촉해야만 하는데 신들이 그 만남으로 더렵혀질까? 태양과 달빛은 땅과 맞닿지만 그렇다고 땅이 빛들을 오염하지는 않는다. 
 
247.그리스도만이 행복한 삶으로 이르게 해주는 중개자이다
가장 아래에 존재하는 죽음을 맞이할 불순한 존재들은 가장 위에 존재하는 죽지 않고 순수한 존재와 직접 만날 수 없으므로, 이런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참된 중개자가 필요하다. 그런 중개자는 이 땅 위에 있어도 신과 매우 닮아 높은 곳에 사는 것과 다름 없다. 오염되지 않는 하나님은 그분이 지닌 인간성 때문에 함께 지내는 사람들로부터 더럽혀질까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분은 성육신(成肉身 신적인 존재가 육체 안으로 들어와서 인간 가운데 머무는 것) 때문에 오염될까 꺼려하지도 않았다. 신성은 육체 때문에 더럽혀지지 않는다. 성경은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2:5)고 한다. 그분의 신성은 성부(聖父)와 같고, 인성은 우리와 닮았다.
 
248.진리로 가는 길을 방해하는 정령의 거짓
정령들은 거짓되고 속임수에 뛰어난 중개자이다. 부정한 영이 가져온 수많은 결과로 보아 비참하고 사악한 존재들이다. 정령들은 물체적 공간적 거리나 공기 같은 육체가 가진 가벼움으로 우리 혼이 앞으로 나아감을 막고 샛길로 엇나가도록 하여 영적인 성장을 막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한다. 그들은 우리가 하나님으로 가는 길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방해한다. 우리는 물질적인 발전으로 신에게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향상, 곧 비물질적인 진보로 하나님께 다가간다. 
 
249.정령이라는 용어는 더이상 좋은 의미로 쓰이지 않는다
성경에는 착한 천사와 악한 천사는 있지만 ‘선한 정령들’이야기는 없다. 많은 신들과 정령들을 섬겨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교도들조차, 학식이나 배움에 상관없이 자기 노예한테도 “너는 다이몬(악령)을 지니고 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만약 누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가 험담을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따라서 거의 모든 사람들은 나쁜 의미로 ‘정령’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250.정령을 교만하게 만드는 지식의 종류
만약 정령이라는 단어의 유래를 성경에서 찾는다면 ‘지식’을 뜻하는 ‘다이몬’이 있다. 사도 바울은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고전8:1)라고 했다. 사랑이 없으면 지식은 도움이 되지 않으며 사람들을 우쭐하게 하고 헛된 망상에 빠져 오만하게 한다는 뜻이다. 정령들 안에는 사랑 없는 지식만 있다. 그래서 그들은 아주 우쭐거리며 오만해져서 참된 하나님만 받아야 할 신성한 영광과 종교적 섬김을 자신들에게 달라고 한다. 
 
251.주님은 어디까지 정령에게 알려지기를 바라는가
정령들은 주님이 육체의 연약함을 두르고 오셨을 때 이렇게 말했다. “나사렛 예수님, 어찌하여 우리를 간섭하시려는 것입니까? 우리를 없애려고 오셨습니까?”(막1:24) 정령들은 상당한 지식은 가지고 있으나 사랑은 없다. 정령들은 벌 받는 일은 두려워 했지만 예수가 오신 정의는 사랑하지 않았다. 예수는 정령들에게 믿음 깊은 사람들을 비춰주는 변하지 않는 빛과 영원한 생명은 알리지 않았다. 
 
252.선한 천사들과 정령들의 지식 차이
천사들에게는 물질적이고 일시적인 온갖 지식이 아무런 가치가 없다. 그 이유는 천사들에게는 하나님의 사랑만이 고귀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가슴속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고 있다. 그리하여 모든 선한 것의 선이신 하나님을 그 자체를 누린다. 그래서 거룩한 천사들은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시간적이고 변하는 일들의 원리와 원인을 보기 때문에 그들의 지식은 더 확실하고 고귀하며 행복하다. 그러나 정령들은 기본적인 지혜들을 하나님 안에서 보지 않는다. 인간들에게 감추어진 지식의 징표를 인간들보다 조금 더 먼 미래를 볼 뿐이다. 
 
253.이교도들은 신들의 이름을 잘못 쓰고 있다
우리는 인간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기 위해 보내진 영들을 ‘천사’라고 부르는데, 플라톤 학파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런 일이 ‘신들’, 즉 영원하고 행복한 존재들이 아니라 정령들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름을 둘러싼 단순한 말다툼을 할 필요는 없다. 그렇더라도 정령(다이몬)이라는 이름은 혐오스럽기 때문에 거룩한 천사들에게 쓰는 것은 피해야 한다.
 
제10권 영원한 생명의 종교-----------------------------
 
254
제11권 하나님이 시간 속에 창조한 세계와 천사 
286
제12권 천사와 인간 창조 
320
제13권 영원한 생명의 복원인 인간의 구속 
348
제14권 범죄 후 인간의 행태에서 나온 두 도성 
372
제15권 두 도성의 전개: 카인과 아벨부터 대홍수까지 
400
제16권 하나님 도성의 초기사: 노아부터 다윗까지 
427
제17권 예언자 시대의 하나님 도성 
470
제18권 역사 진행 속의 두 도성 비교
494
제19권 선의 목적은 하나님 안의 평화 
548
제20권 최후심판에서 닥칠 일들 
576
제21권 종말의 징벌 
606
제22권 육신의 부활과 영원한 생명

633 -662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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