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4808947525954.jpg 

나는 방임형의 아빠
                                                    
존 가트맨(Jone Gottman)의 <내 아이를 위한 사랑의 기술 - 감정코치>라는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캬~ 정말 애들 가진 부모들을 유혹하기에 딱 좋은 책 제목이다”라고 중얼거렸다. ‘감정은 다 받아 주고 행동은 잘 고쳐주라’ 라는 표지의 부제가 눈에 들어왔다면, 자녀교육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부모라면 십중팔구는 분명 책을 집어 들었을 것이다.
이 책이 말하려는 것은, 한마디로 애들을 윽박지르지 말고 그들의 감정에 충분히 동조해 주라는 것. 해선 안 되는 짓에 대한 경계를 긋기 전에 반드시 그들 감정에 대해 충분히 그럴 수 있다며 인정해 주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백 번 옳은 말이다. 하하 그런데 그렇게 하고 싶지만, 아이들이 그릇된 행동이나 신경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면, 어디 배운 것이 생각나기나 하는가 다다다다 잔소리가 먼저 튀어나오고 말지.
책 뒤에 ‘부모의 네 가지 유형과 감정코치 5단계’라는 동영상 CD가 하나 업혀 있어서 그걸 먼저 보았다. 보고 나서 혼자 보기 보다는 온 가족이 함께 모여서 보는 게 나을 것 같아 저녁식사를 마치고 두 딸과 아내를 컴퓨터 앞에 불러 모았다.
아이들과 함께 동영상을 다 보고나니, 과연 엄마 아빠는 어떤 유형의 사람이며, 너희들에게 그동안 어떻게 했었고, 앞으로 어떻게 하려고 한다... 구구절절 설명 안 해도 그냥 서로서로에게 감정코치가 되었다
아이들이 먼저 “아하... 아빠는 3번 방임유형의 사람이니까 우리들에게 그렇게 하셨었구나" 하면서 오히려 아빠를 이해하는 것이었다.
이 책에서 말하는 4가지 유형의 부모는  
1.축소전환형(Dismissing):아이의 감정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2.억압형(Disapproving):아이의 감정을 부정적이라 여기고 ‘머슴애가 눈물 질질짜냐’ 는 등 실망표현, 질책, 야단을 치는 최악의 부모
3.방임형(Laissez faire): 아이의 감정을 너무 관대하게 받아주기만 하기 때문에 확실한 방향제시를 하지 못한다.
4.감정코치형(Emotion Coaching):아이의 감정을 존중하고 받아주되  행동의 한계를 정해주는 부모
나는 누가 봐도 틀림없는 3번 방임형의 아빠이다. 아이들의 모든 감정을 모두 받아주며, 부정적인 감정을 경험하는 아이를 따뜻하게 위로하고, 아이들이 웬만큼 잘못을 하지 않으면 야단을 안친다. 어떻게 보면 자상한 아빠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답답하고 우유부단한 아빠인 것이다. 아이들도 인정하고 나도 순순히 인정을 했다.
“자, 그렇다면 아빠가 어떻게 변했으면 좋겠니?” 당연히 4번 감정코치형으로 변했으면 좋겠다고 아이들이 합창을 한다. 이 책에서 아이와 부모가 함께 행복해지는 감정코치의 방법을 5단계로 나누어 설명을 한다.
1단계: 아이의 감정을 포착
2단계: 친해지고 가르치는 기회로 생각하기
3단계: 감정을 들어주며 공감하기
4단계: 감정을 표현하도록 도와주기
5단계: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이끌어주기
얼마나 노력을 해야 감정코치형 아빠가 될 지 나도 모르지만, 아이들과 함께 서로 노력을 하기로 하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축소전환형이나 억압형 부모가 아니라 ‘방임형’이기 때문에 감정코치형으로 전환될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많다는 것이다.
육아에 대한 책은 부모들을 대상으로 하는 책인데, 책을 읽을 때마다 드는 생각은 엄마아빠가 자기들을 위해서 이런 책을 읽으면서 배운다는 것을 아이들이 알까? 하는 것이었는데, 책을 아예 같이 보니까 훨씬 좋은 것 같다.
우리 아이들이 초등학교 6학년 3학년이기 때문에 10대 청소년의 경우에 어떻게 감정코치를 해야되는지에 대한 부분을 관심을 갖고 읽었다.  10대 아이들은 좀 다른 식으로 감정을 코치해야 한다. 10대의 경우 부모와 서로 다른 뇌를 사용하는데, 예를 들어 ‘공포의 표정’을 보고 성인의 경우에는 100% ‘공포’로 받아들이지만 청소년은 50%만 ‘공포’로 인식하고 나머지는 다양하게 해석한다. 심지어는 ‘웃는 표정’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청소년은 주로 전두엽을 이용하며 10대의 뇌는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니다. 특히 ‘명령조’의 어법을 사용해서는 안 되는데, 이는 위협으로 사랑이 전해지지 않으며,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제공한다. 이런 스트레스는 기분 나쁜 이미지 또는 고통을 주는 행위보다 대략 2배의 스트레스를 제공한다. 10대들에게 있어서 “왜? 너는 무엇무엇을 못하느냐?”하는 말은 비난으로 들리고 이런 물음에 본능적으로 방어자세를 취한다고 한다. “아 ~~ 구나” 로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핵심포인트이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감정코치를 제대로 잘하기 위한 실제적인 방법들이 제시되어 있다.
1. 꾸중을 하려면 제대로 꾸중하라
2. 칭찬은 두루뭉실하게 하지 말고 도움이 되는 칭찬을 하라. 노력에 대해 칭찬하고, 구체적으로 한 두가지 정도 범위를 지정해서 칭찬하라. ‘아이고 착한 아들’ ‘우리 아들은 천재야’ 같은 도움이 되지 않는 칭찬은 오히려 부담을 준다.
3. 먼저 사과하기 - 부모가 먼저 “미안해!”라고 하면 아이도 “미안해!” 라는 말을 시작한다. 즉, 인간이 완벽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마음을 열게 된다는 것이다. 아내와 아이들이 장난스럽게 ‘먼저 사과하기’부분을 실천해 보라고 요구했다. 나는 망설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좋은아, 밝은아. 오늘 이렇게 우리 식구들이 모여 동영상을 보고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게 되어서 아빠는 참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동안 아빠가 너희들에게 어떻게 행동했는지도 알게 되었고, 그것이 너희들에게 상처가 되고 아픔이 되었다는 것도 알았다. 정말 쑥스러워서 말이 잘 안 나오지만, 아빠가 아빠라는 자존심을 다 내려놓고 말할게. ‘미안하다. 미안해’”
미안하다는 말이 내 목구멍에서 올라오며 살며시 떨렸고, 태어나서 처음 아빠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들은 아이들과 아내의 눈가에도 살짝 이슬이 맺히는 것이 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