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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씨와 도둑>은 최용우 개인 책방의 이름입니다. 이곳은 최용우가 읽은 책의 기록을 남기는 공간입니다. 최용우 책방 구경하기 클릭! |
손안에 쏙 들어오는 이 책은 얼마전 대전에 있는 어느 헌책방에서 발견하여 고이 모셔온 나의 보물이다. 오래전에 한희철목사님이 주보에 한편씩 옮겨적은 글을 보고 너무 반해버려서 이 책을 한 권 사야겠다고 맘 먹었지만, 어디에서도 구할수가 없었다. 대교출판사 사장님 되시는 분이 자가출판하여 소량으로만 돌린 책인것 같은데 절판되어서 찾을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책의 이름만 머리속에 외워두었었는데, 우연히 헌 책방에서 만난 것이다.
가마, 가마솥, 경대, 고무신, 골무, 그릇, 다듬이, 독, 또아리, 맷돌, 물레, 바가지, 반짇고리, 버선, 부채, 비녀, 석유등잔, 소반, 시루, 우물, 인두, 일년초화, 자물쇠, 장도, 장독대, 장롱, 절구, 참빚, 호미, 체... 옛 여인들이 평생을 두고 사용하였던 이런 물건들을 아는가? 이 책은 이런 잊혀진 생활 도구들과 여인들의 이야기를 짤막하게 쓴 글인데, 참 재미있고 눈물겹다. 나중에 기회를 만들어 햇볕같은이야기에 실을수 있었으면 좋겠다. 2004.1.30. 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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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돌
맷돌은 자연이다. 사람들이 산에서 바위와 나무 일부를 취하여 다듬과 쪼아 만들었기에, 억지로 인공(人工)이 만들어 낸 이물질(異物質)인 두어 개의 쇳조각을 몸속에 지녔으되 아직도 여전히 소박한 자연의 일부일 뿐이다.
맷돌이 돌아갈 때는 우레 소리가 난다. 소나기 소리가 난다. 그에겐 웅대한 자연의 숨소리가 숨어 있고 우주의 그림자가 투영(投影)되어 있다.
거친 곡식을 곱게 갈아 허리춤으로 힘겹게 토해 내니 그 모습이 실로 기이하고 신성하다. 노자(老子)도 석가(釋迦)도 팽조(彭祖)도 액하(腋下)탄생설을 즐겨 취하고 있음은, 상고시대 공수자(公輸子)가 처음 제작했다는 이 작은 석애(맷돌)가 신성한 인상으로 뭇사람의 뇌리에 박혀온 연고이다.
어찌되었거나, 중요한 건 이 땅의 아낙네가 일찍이 맷돌을 통하여 천금(千金)의 세상 이치를 꿰뚫어 깨달은 사실일지니, 고운 가루를 얻으려면 결코 서둘러서 아니 되는 것. 급히 성과를 얻으려고 곡식을 한꺼번에 듬뿍 먹여서도 아니되고 단번에 힘을 쏟아부어 맷돌을 빠르게 돌려서도 아니되는 것. 그래서 한 줌 알맞은 양과 속도로 착실히 가는 게 고운 가루를 얻어내는 가장 빠르고 올바른 방법이라는 이 평범한 이치를 깨달아 애써 생활 전반의 좌표로 삼아온게 아니겠는가.
이제 맷돌들은 아낙네 곁을 떠나 흙 위에 버려졌고 잘 생긴 전기 분쇄기가 외마디 소리로 호들갑을 떨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껏 맷돌이 준 지혜를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지니고 있는 이 땅의 갸룩한 나악네요, 부디 하늘의 큰 축복 있을진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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