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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탄 피하게 하신 하나님
경북 안동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난 문원순 목사는 (예장통합 승리교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단돈 3만원을 들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다. 원래는 안동 땅부잣집 아들이었지만 큰형님이 다 날려버리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가난한 집으로 주저앉은 것이다.
문 목사는 종로2가에 있던 파고다 독서실을 한달 끊고 옛날 할리우드 극장 건물에 있던 대일학원에 아르바이트 학생으로 들어갔다. 아르바이트 학생은 수업료가 면제였던 터라 돈을 들이지 않고도 공부할 수 있었다. 잠은 독서실 바닥에 신문지 깔고 자기도 하고 의자에 앉아 책상에 엎드려 자기도 했다. 밥은 파고다 공원 밖에서 팔던 50원짜리 밥을 먹었는데 퍼석한 정부미 쌀에 콩나물 몇 가닥 들어가 있는 멀건 국, 잘게 썬 깍두기가 전부였다. 고되고 힘겨운 하루 하루를 살다가 돈이 들지 않는 육군사관학교 시험에 응시해 합격하게 됐다. 하지만 신입생 신원조사에서 8촌이 사상불순 죄가 있다하여 불합격처리 됐다.
그러다 재미 삼아 서울시 공무원 시험에 응시했는데 또 합격했다. 결국 공무원을 하면서 야간으로 명지대학교 법학과에 들어갔다. 문 목사는 법대에 가서 사법고시를 합격하고 판, 검사가 되어 나이가 들면 안동으로 내려가 변호사로 활동할 계획을 세웠다. 무료로 변호를 해주면서 민심을 얻어 국회의원이 되는 것이 1차 목표였고 2차 목표는 장관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공무원 근무로 인해 고시공부를 하기 힘들었고 그러다 군대 갈 나이가 되자 ROTC 헌병장교로 입대해 3년을 더 복무했다. 당시에는 헌병장교 중에 3년 연장자는 중위에서 대위로 승진한 경우가 없었다. 하지만 문 목사가 한국최초로 대위로 승진하여 육군참모총장의 경호 중대장으로 갈 수 있었다. 하지만 '강원도 홍천 헌병 중대장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지시를 꿈으로 받고 나서 강원도로 근무지를 옮겼다. 두 달 후 또 꿈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죽고 다음 대통령으로 최규하씨가 당선될 것이다' 라고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셨다. 강원도에서 같이 근무하던 선임하사에게 꿈에서 들은 그대로 말했더니 믿지 않았다.
그 후 10.26사태와 12.12사태가 벌어지고 문 목사 대신 발령 받았던 육군참모총장 경호 중대장이 총탄 다섯 발을 맞았다. 그때 문 목사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살리시기 위해 넉 달 전에 강원도 홍천으로 보내심을 깨닫게 되었다.
주의 길로
문 목사는 81년도에 장로회신학대학원에 들어갔다. 이번에도 하나님께서 '목사 하라'고 인도하셨기 때문이다. 신대원를 졸업한 뒤 강원도 원주시 소초면 장양 4리에 교회를 개척했다. 처음 한가족으로 시작한 교회는 차츰 부흥되더니 2층짜리 교회를 지어야할 만큼 부흥되었다. 7년 뒤 '서울 상계동으로 가서 개척하라'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았다. 여태까지 하나님께서는 요셉과 다니엘에게 하셨던 것처럼 문 목사에게 전부 꿈으로 보여주셔서 역사 하셨다.
그래서 문 목사는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상계동으로 가서 교회를 개척했다. 상가 16평 짜리 사글세로 교회를 얻고 노모까지 합쳐 모두 6명의 식구가 24평 짜리 아파트를 얻어 살았다. 그때 하나님께서 '이 땅을 사라'고 하셔서 10억원 빗을 내 지금의 땅을 구입했다. 문 목사는 11년 동안 빗을 갚으면서 얼마나 힘들었던지 하나님께 다 갚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면 교회에서 한 달에 1천만원 이상 씩 선교구제를 하겠다고 본 교인들과 함께 서원 했다. 그래서 2001년 7월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빼먹지 않고 한 달에 1천만원 이상 씩 선교구제를 하고 있다.
거지들의 왕초
올 6월엔 승리교회가 설립 21주년을 맞이했다. 처음 교회 부지를 주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두 가지의 사명을 주셨다. 첫째는 가난한 자를 기억하라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승리교회 성도들 중 삼분의 일은 영세민 임대주택에 살고 있다. 나머지 성도들도 넉넉지 않은 형편이지만 마음만은 풍족하고 늘 감사가 넘친다.
또 승리교회는 사랑이 넘치는 교회다. 부유한 자나 학식 있는 자가 없으니 빈부귀천의 갈등과 유, 무식의 차별이 없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무릎꿇을 줄 알며 목사 귀한 줄 안다. 그래서 문 목사는 "목회할 맛이 납니다" 라고 고백한다. 목사에게 순종하며 목사 말이라면 아멘으로 화답하고 협조하니 신바람이 절로 나는 것이다.
또 두 번째 사명은 장애인들을 따뜻하게 대해주라는 것이다. 그래서 문 목사는 발달장애(저능) 교우들을 모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그림성경 공부책으로 교육하고 있다. 또 1대 1 교육으로 더 쉽게 이해를 돕고 있다.
승리교회는 1200명의 극빈자들에게 주일 예배 후 식사를 대접하고 있으며 2001년 9월부터 지금까지 9년째 하고 있다. 남들은 그 돈 모아서 성전 건축이나 하라고 말하지만 하나님께 서원한 것이니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킬 것이라는 문 목사의 굳은 신념 때문에 번듯한 성전은 갖추어져 있지 않지만 조립식 성전에서도 성령의 역사와 성도들간의 사랑이 뜨겁게 일어난다. 가끔 성도들도 몇 천명 모이고 규모도 큰 교회에서 청빙이 들어오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기도하는데 '여기서 가난한 자들과 함께 하는 것이 더 좋다' 고 응답해 주신다.
가끔은 너무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불구의 몸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님께 더 많이 드리려고 노력할 때 감격스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안타까움도 느낀다. 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않고 천국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그들의 삶에 문 목사도 덩달아 새 힘이 생긴다.
그래서 일까 2004년 12월 8일 국민일보에서 '자랑스러운 목회자 대상'을 수상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하나님을 만난 체험' 간증집 출간
문 목사는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알리기 위해 간증집 '하나님을 만난 체험'을 출간했다. 그동안 살아온 과정과 결과 속에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세세하게 보살피고 계획된 삶으로 이끄셨는지 고백한 간증집이다.
문 목사는 대대로 불교를 믿으며 온갖 잡신을 섬기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러다 문 목사가 4살이 되던 해 석달 이상이나 많이 아팠다고 한다. 도저히 살 가망이 없었다. 그러다 이웃집 할머니가 10리 밖 장터에 있는 교회에 가면 나을 수도 있다고 말하자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심정으로 교회에 갔다. 어린 문 목사는 그곳 장터 교회 성도들에게 기도를 받고 난 뒤 기적같이 완치되었고 부모님은 그때부터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문 목사는 사실 23살 때까지는 습관적으로 교회 다니다가 믿음 좋은 장로님의 딸과 연애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이 매일 성경 읽자고 권유하니 읽지 않을 수 없어서 매일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만날 때마다 성경을 안 읽고 가면 차일까봐 억지로 읽었던 것이다. 하지만 억지로 읽었던 말씀을 통해 문 목사는 점점 변화되고 성령을 체험했다. 그 날로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간증집 '하나님을 만난 체험'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목양관 곳곳에 붙어있는 문 목사의 자작시를 읽다가 언제 또 책을 출판할지 묻자 문 목사는 '하나님을 만난 체험' 이 한 권의 책으로 끝낼 것이라고 밝힌다. 오직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드러내며 영광 돌린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지 다른 꼬리표로 이미지를 분산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문 목사의 깊은 뜻이다.
복음 들고 갈 때 젊은 시절 꿈 이뤄져
다른 부흥사의 집회보다 문 목사의 부흥회는 결신의 역사가 많이 일어난다. 예수를 믿지 않았던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고 성도들은 새로워지는 역사가 충만하다. 이 때문에 문 목사는 부흥회 다니는 것을 참 즐거워한다.
또 하나 문 목사가 즐거워하는 것은 예전에 법학을 공부했던 경험을 살려 예장통합 총회에서 법과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는 것이다. 몇 해전에는 헌법위원장을 지냈고 지금은 헌법개정위원회 서기와 헌법위원회 전문위원직을 감당해오고 있다. 또 기독교계 연합사업의 역할을 위해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감사로 충성하고 있다. 인간의 눈으로 돌이켜보면 법대에 들어간 것이 시간낭비고 인생의 시행착오로 보이지만 하나님은 법학 공부를 통해 사용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라고 문 목사는 고백한다.
하나님께서는 문 목사가 예전 청년시절에 품었던 세상 정치는 못하게 하셨지만 더 좋은 복음 들고 청와대와 정당, 육군사관학교에서 설교할 수 있도록 인도하시니 가고 싶었던 곳은 다 다녀온 것이나 마찬가지다. 세상에서 문 목사 자신의 꿈은 실현되지 않아도 하나님 안에서는 실현되는 것을 볼 때 새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느낀다.
목숨 다하는 날까지 쉬지 않고 달려갈 것
문 목사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양무리를 어떻게 잘 돌볼 것인가와 부흥집회를 통해 복음 증거하는 일, 또 기독교계의 올바른 정치를 위해 쓰임 받는 일에 기도하며 더욱 정진하고 있다. 문원순 목사는 두 눈을 지긋이 감고 "목회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무조건 감사합니다. 나 같은 죄인에게 귀한 직분 주신 것이 어찌나 감사한지…. 눈 뜰 때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감사만 합니다" 라고 뜨겁게 고백한다. 또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지 굳게 다짐한다.
문의 : 02-931-8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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