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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 몇 억은 모아 둬야지' 강요하지 마세요
오마이뉴스 | 입력 2010.03.04 11:37
1억이란 숫자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대단히 특별하다. 재테크 열풍을 일으킨 평범한 사람들의 1억 만들기 커뮤니티들만 봐도 억에 대한 특별한 집착을 새삼 느낄 수 있다. 단위가 점점 진화하기도 한다. 1억 모으기가 10억으로 10억이 다시 100억 성공담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숫자가 커질수록 사람들은 돈에 더 심하게 집착하거나 반대로 돈에 더욱 냉소하는 태도로 양분된다.
과연 우리에게 '억'이 필요한가
▲ "억이란 대단한 돈은 우리에게 현재의 필요와 적당한 욕구를 채우는데 '절실히 필요'한 것이 아니다. 미래 어느 시점에도 우리는 건강한 정신과 신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건전한 사회가 필요한 것이지 '억'이 유일한 대안일 수 없다."
당장 생활비를 사용하기 위해 억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억 단위 돈에 민감한 것은 두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함을 해소하기 위해 목표의식을 갖고 저축하거나 투자하기 위함이다. 불편한 절약을 감수하고서라도 저축을 하기 위해서 억이라는 달콤한 숫자로 목표의식을 뚜렷하게 만들겠다는 자기 다짐이다.
최근 미국의 하버드 대학에서 '행복학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긍정심리학자들에 의하면 목표 설정은 자신감과 능력을 자각하게 해주고 계속 노력하도록 동기를 부여해준다고 한다.
막연히 저축하는 것보다는 어떤 뚜렷한 목표를 정해 놓고 저축을 강제하는 것이 저축에 효과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목표를 설정하는 과정에서 모든 목표가 사람에게 긍정적인 동기를 부여해 주는 것은 아니다.
긍정심리학자들의 오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돈을 많이 벌고자 하는 경제적인 목표가 오히려 사람들에게 우울과 불안을 줄 가능성이 크다고 결론짓는다. 하버드 대학의 긍정심리학 강사인 탈 벤 샤하르는 그의 저서 < 해피어 > 를 통해 돈을 목표로 삼는 것의 폐해성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싱가포르 경영대학원 학생들을 조사한 결과, 물질적인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학생일수록 자기실현과 활력, 행복수준이 떨어지고 불안과 신체적 이상증세, 불행 수준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물질적 목표의 부정적 결과를 보고하고 있다.
'억'모으기 열풍은 일부 사람들에게는 강제저축 혹은 재테크에 열을 올리는 실천적 효과를 만들어 낼지는 모르지만 그로 인해 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지는 못할 것이다. 또한 대부분 사람들에게는 실천 강제력마저 떨어뜨려 억 모으기 열풍에 끼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자괴감을 느끼게 하거나 누군가 억을 모으고 있을 것 같은 상대적 박탈감에 미래를 좌절하게 할 수 있다.
공포를 과장하는 소리에 주의해야
우리 사회가 갑자기 억억 거리게 된 두 번째 원인에는 금융회사들의 과도한 공포심 조장이 있다. 금융회사들은 언론을 통해 툭하면 소득 없는 노후를 거론하며 은퇴 쇼크, 고령화 쇼크 등의 충격화법을 세간에 던진다. 언뜻 보았을 때 합리적으로 보이는 화폐 가치 변화 추이까지 들먹이며 몇억의 노후자금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어느 금융전문가의 칼럼을 보면 최소한 3억이라고도 했다가 모 경제 연구소 발표에서는 9억 이상은 있어야 함을 강조한다. 또한 자녀 대학 등록금을 준비하기 위해서 기존의 등록금 인상율을 그대로 반영해서 억단위 교육비 준비자금을 역설한다.
이런 미래 억 단위 필요자금은 당장 그 억이 필요한 것이 아님에도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 사람은 미래의 좌절만으로도 오늘의 행복을 지워버릴 상상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미래의 삶이 지금보다 호전되지 않으리라는 절망감 때문에 오늘이 불행해 지는 것이다. 이것을 미래의 삶이 지금보다 나아져야 한다는 '기대가 야기한 불안'이라고 한다.
고령화 문제는 실제로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이다. 과도한 경쟁사회구조 속에서 경제적 잣대가 삶의 행복을 결정지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값비싼 사교육을 시킨다. 그 경제적 부담은 저출산을 부르고 저출산은 다시 또 부모의 미래를 노인인구로 가득한 불안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원인과 결과가 서로 악순환의 반복을 일으키고 있는 고령화 저출산 사회 문제는 개인이 억을 만들기 위해 현실을 희생하고 사는 것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특히나 2030년 이후 부터는 노인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차지하게 되는 초고령 사회로 진입한다. 전체 인구의 20% 가량이 '억'에 의존해 일하지 않는 은퇴 생활을 하게 된다면 그것 또한 국가적으로 잠재 성장률을 저해하는 커다란 사건이다.
소위 전문가들이란 사람들이 이런 불안한 미래를 앞두고 개인들에게 일하지 않고 소득없는 노후를 살 것을 대비해 오로지 '돈'만 준비하라는 해법을 제시하는 것은 무책임한 제안이다. 그보다는 사회 전체적인 질적 성장을 위한 고령자들의 사회적 일자리 제안의 아이디어들을 내놓아야 하는 것이 경제 연구소와 같은 전문가의 책임있는 태도가 아닐까.
억 마련하라는 주문, 터무니 없어
일하지 않고 사는 노후를 위해 젊은 시절부터 미래 화폐 가치까지 전부 고려한 억단위 돈을 마련하라는 주문은 터무니 없는 것이까지 하다. 설사 60세 즈음에 몇 억을 예금 계좌에 넣어두고 산다고 해도 미래 불안이 가실 리도 없다. 그 돈이 바닥날 것에 대한 두려움은 결국 그 돈을 묻지마 투자와 같은 위험한 유혹에 내맡겨버리게 만들 수 있다. 사람의 욕심은 끝도 없으며 불안도 쉽게 잠재워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몇 억은 알고 보면 우리가 노인이 되는 시점에도 한꺼번에 목돈으로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그 돈을 20년, 30년 조금씩 벌어서 살 수만 있다면 현가로 100여만원에서 많아야 200여 만원 되는 돈이다. 국민연금을 타고 부부가 함께 즐겁게 일하고 사는 사회만 가능하다면 충분히 벌어서 충당할 수 있는 돈이다.
그러나 100만원에서 200만원의 미래 화폐가치를 현가로 환산해 몇 억으로 둔갑시켜 버리고 나면 사람들은 지금의 몇 억의 가치로 화폐착각을 일으켜 공포심에 빠져버리게 된다. 자녀 대학 등록금도 마찬가지다. 4년치 대학등록금을 한꺼번에 들고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물가 상승의 이유를 들어 미래 화폐가치를 강조하는데, 물가 상승은 화폐가치 하락으로 사회적 임금 수준의 향상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미래 필요자금 몇 억은 사람들이 자주 범하는 화폐 착각의 오류를 이용한 공포감 유발에 지나지 않는다.
억이란 대단한 돈은 우리에게 현재의 필요와 적당한 욕구를 채우는데 '절실히 필요'한 것이 아니다. 미래 어느 시점에도 우리는 건강한 정신과 신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건전한 사회가 필요한 것이지 '억'이 유일한 대안일 수 없다.
'일하지 않는 자유'가 아닌 '일 하는 자유'가 억의 집착 버리게 해
지금도 그저 빚 없이 현업에서 은퇴하고 사회적 기업이나 비영리 기업 등에서 적은 보수를 받고 자신의 경력을 헌신하는 은퇴자들도 있다. 그들은 몇 억이 없어서 불행한 노후를 살지 않는다. 오히려 적은 보수이지만 보람 있는 일을 한다는 데서 자신의 두 번째 경력을 행복하게 만들어 나가고 있다고 자부한다.
'일하지 않는 자유' 대신 '일하는 자유'가 그들의 노후 준비인 셈이다. 긍정심리학자들은 '행복을 궁극적인 가치로 인정한다면 돈과 지위는 기본적 욕구를 제공하는 것 외에 우리가 추구해야 할 중심 목표가 될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된다'고 강조한다. 그들의 말대로 돈이 기본 욕구를 채우는 수단임을 인정한다면 억억 거릴 이유가 없음이 분명하지 않을까.
[오마이뉴스 제윤경 기자] Copyrights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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