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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출처 : | https://cafe.daum.net/cgsbong/20Yi/102130?svc=cafeap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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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 대한 네가지 오해 모델
피터 싸비지(Peter Savage, “The Church and Evangelicalism,” in The New Face of Evangelicalism, ed. C. René Padilla [Downers Grove, Ill.: InterVarsity, 1976], 106-20)는 지역 교회들 사이에 어느 정도 널리 퍼져 있는 교회에 대한 네 가지 모델들 혹은 오해들에 주목했다. 교회에 대한 이 오해들이 우리 중 일부에게는 낯설고 우습게 보이겠지만,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마치 이러한 실질적인 오해들이 언약 공동체에 대한 적절한 표현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강연장” 모델
이 모델들 혹은 오해들 가운데 첫 번째는 교회를 주로 “강연장”(lecture hall)이라고 주장한다. 교회에 대한 이러한 시각 때문에 사람들은 말씀 전하는 자의 성경 해설을 듣기 위해 주로 교회에 참석한다. 그들은 조용히 앉아서, 어떤 기대를 가지고 강단에서 전달되는 메시지/강의에 주목한다. 따라서 교회의 유효성은 말씀 전하는 자가 회중의 관심과 흥미를 얼마나 끌 수 있느냐에 따라 결정되며, 예배의 방향은 대체로 (설교자에 의해) 하나님에게서 회중/청중 쪽으로 움직인다.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 사이에 주고받는 대화로써의 예배 개념은 중요할 정도로 예배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처럼 신-인간 대화에서 한 쪽 방향에만 집중하게 되면 회중이 예배 자체에 참여하지 않게 되며, 그것은 궁극적으로 그들로 하여금 “교실” 안에서와 같이 교실 밖에서도 참여하는 일에 부족한 소극적인 성향을 가지게 한다. 이 모델은 교회 생활에 개인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결국 주일 “예배”에 정기적으로 참석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인식을 갖게 한다. 이 모델 안에는 성경 내용이 풍부하지만, 일상의 삶에서 그 내용을 가지고 어떻게 적용할지에 대해서는 전혀 강조하지 않거나, 있어도 미약한 수준에 머무른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주변 문화는 의미 있는 일에 바쁘지 않으며—즉, 훨씬 덜 변화되며—, 따라서 지역 교회는 자신의 예언자적 소명을 제대로 수행하는데 실패하고 있다.
“버라이어티 쇼” 모델
일부 교회들이 따르고 있는 두 번째 모델은 교회를 “버라이어티 쇼”(variety show)로 인식한다. 이 시각은 주(週)마다 있는 교회 교구 식구들의 정기 모임의 주요 목적을 그들을 즐겁게 하는 것에 두고 있다(이 시각은 거의 드물지만, 분명히 언급되어야 한다). 교회 “봉사”는 이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서 구성되고, 일련의 개별적이면서도 서로 관계가 없는 행사들 및 발표들을 조직함으로써 교회 출석률을 높이기 위해 구성된다. 그리고 그 행사들은 교인들의 관심을 붙잡아두고, 감정적으로 흥분시키고, 개인적인 확신을 경험하고 싶은 자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것들이다. 교회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불행하게도 주로 출석한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있는 질문—“나는 무엇을 얻었는가?—에 답하고자 한다. 이 모델의 위험은 교회 멤버들 입장에게 피상적인 충성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즉 자기들을 만족시켜 왔던 행사나 발표들을 교회가 더 이상 제공하지 않으면 그들은 교회를 곧바로 떠나 버린다. 따라서 이 모델은 교회 멤버들에게 교회란 단순히 그들의 삶을 가능한 한 만족시키고 즐겁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개념에 관심을 쏟게 만든다. 다시 말해서 교회 ”봉사“는 무엇보다도 회중을 만족시키기 위한 ”봉사“로서 전락된다. 따라서 이 모델은 분명 희생과 순종으로 특징지어지는 그리스도인의 헌신된 삶을 촉진하지는 못한다.
“기업” 모델
세 번째 모델은 교회를 “기업”(企業, corporation)으로 이해한다. 이 모델은 종교를 대중에게 판매하는 전임 목회자 팀이 있는 매우 효율적이며, 프로그램 중심의 교회이다. 이 종교 기업을 운영함에 있어서 융통성은 거의 없으며, “복음”은 존재와 행함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다른 패턴들로 특징지어지는 새로운 세계로의 초청이라기보다는 판매되어야 할 제품으로 이해된다. 외견상 이 모델을 추구하는 교회의 운영 방식과 특정한 기업들의 운영 방식 사이에는 차이가 거의 없다. 목사의 “서재”는 “사무실”로 대체되었고, 이 모습은 교회 멤버들에게 교회의 주요 목적이 개인의 신앙 성숙에서 외적인 기관 단체로 전환되었음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이 모델은 또한 교회가 “교인들”의 관심을 사로잡는 방법과 기업이 고객들을 사로잡는 방법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고 교회 멤버들에게 가르치는 위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예언적 임무는 비즈니스 모델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사교클럽” 모델
우리가 피해야 할 교회의 네 번째 모델은 교제(交際)를 가장 중요한 것으로 간주하는 모델이다. 이것은 “사교 클럽”(social club)으로서의 교회 모델이다. 교제는 분명 성경적 개념이고, 건강한 회중에게는 반드시 있어야 하지만, 우리가 교제를 어떻게 이해하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교제에 대한 성경적 개념은 각 멤버가 살면서 직면하게 될 다양한 시련에 대해 공동체적으로 도와줄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신실한 봉사를 계속하도록 상호 격려하는 것을 포함한다. 그러나 사교 클럽 모델을 따르는 교회의 교제는 믿음과 상호적 도움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그 교제는 본질적으로 호불호(好不好)가 비슷하고, 그룹 활동이나 재미를 위해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의 사교적 모임으로써 이해된다. 이 모델은 할인 매장에 가볍게 나가는 여인들, 공놀이 하러 나가는 학생부, 낚시 여행 가는 남자들과 같은 특징들을 만들어 낸다. 그룹 환경이 편할 때에는 이 활동들 가운데 어떤 것이든 확실히 상호 도움과 격려를 포함할 수 있지만, 그러한 도움과 격려는 이 모델에서 강조되는 것들이 아니다. 교회에 대한 이런 이해는 혁신적이고 삶을 변화시키는 복음의 특성을 가볍게 생각하며, 신자들의 모임을 단순히 사교적 모임으로 전락시키는 위험을 가지고 있다. 만일 누군가가 현재 모이고 있는 사교 그룹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있으면, 그는 환영받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룹 구성원들의 표정이나 중얼거리는 우회적인 방식으로, 다른 곳이 그에게 더 어울릴 것이라는 회유를 받게 된다. 이것은 결국 백인 교회, 흑인 교회, 네덜란드인 교회, 경상도인 교회, 전라도인 교회, 부자 교회, 노동자 교회와 같은 비성경적 결과들을 낳으며, 분열되고 깨진 세상에서 하나의 새 인류 형성을 전하는 장벽 없는 우주적 복음에 역행하는 것이다.
Michael J. Williams, The Prophet and His Message, 162-165에서 발췌
류호준교수 / 백석대신학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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