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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출처 : 김학현 목사 http://omn.kr/fnxk 

내일은 없다, 지금 "미안하다"고 말해라

[책 뒤안길] 윌리엄 맥스웰의 장편 <안녕, 내일 또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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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 내일 또 만나>(윌리엄 맥스웰 지음 / 최용준 옮김 / 한겨레출판 펴냄 / 2015. 11 / 228쪽 / 1만 2500 원)
 



"안녕, 내일 또 만나."

늘 그래왔듯이 이렇게 말하고 그와 헤어졌다. 하지만 그 인사는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만약 그가 사랑하는 연인이었다면. 만약 그가 어릴 때 친구였다면. 만약 그가 자녀였다면. 부모였다면.

상상하기도 싫은 이야기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는 실제로 있었다. 한국전쟁 때 그랬다. 세월호 사건이 그랬다. 테러사건이나 교통사고나 건물·다리 붕괴사고 때도 그랬다.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이런 이야기가 '문학'이란 이름으로 화장을 하고 양장본 케이스에 담겼다. 아주 함초롬히.

내가 읽은 윌리엄 맥스웰의 <안녕, 내일 또 만나>는 그런 책이다. <행복한 그림자의 춤>으로 유명한 201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엘리스 먼로까지 "이렇게 썼어야 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내가 썼던 모든 글을 다시 쓸 거라고 생각했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은, 유년시절의 아스라한 기억을 더듬으며 감상하면 '향수(鄕愁)'란 한 움큼의 보석이 쥐어 질 것 같은 그런 소설이다.

미안함이 절절한 이야기 만들어

"하늘을 보고 이제 저녁식사 시간이 되었다 싶으면, '안녕' 그리고 '내일 또 만나'라고 말하고는 황혼 속에서 각자 갈 길을 갔다. 그리고 어느 저녁, 이런 평범한 작별인사가 마지막 인사가 되었다. 우리는 바로 그 총소리에 의해 갈라졌다." - <안녕, 내일 또 만나> 62쪽

 


어릴 때 친구 클레터스의 아버지가 범인으로 지목되는 바로 그 살인사건의 총소리, 이들을 가른 건 치정에 얽힌 이 한 방의 총성이었다.


몇 년 후 둘은 한 번 복도에서 마주치지만 아무런 인사도 나누지 않은 채 비켜 지나간다. 작가는 왜 이리 능청맞게 주인공인 '나'를 음울하게 만드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다. 그때 한 마디만 했어도 소설은 이리 절절한 이야기를 담을 수 없었을 것이다.

맥스웰이 72살에 된 나이에 발표한 소설이고 보면, '나'는 기억의 잔상에서 지워질 위기에 놓인 간절함의 표상일 테고, 그 위기는 미안함이고 절절함일 테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오면서 한 번쯤은 누구에게 미안함과 안쓰러움을 간직하게 되는 법. 작가는 그걸 놓치지 않고 소설로 그려내 우리의 추억 속으로 케케묵은 영화 같은 한 장면을 들여 민다.

"이 작품에서 맥스웰은 자신의 어린 시절의 기억 그리고 링컨 외곽에 살던 두 부부의 치정에 얽힌 별거, 살인, 자살에 대한 지역 신문기사를 바탕으로 하여 자신이 늘 다루어오던 주제들, 즉 어린 시절, 가족,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과 그로 인한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가슴 아픈 이야기로 엮어냈다."- <안녕, 내일 또 만나> 222쪽

이 책을 번역한 최용준의 말이다. 그의 말처럼 어린 시절의 아픔과 소소한 일상을 소설화한 작품이다. 작가는 기억이라는 열차에 추억을 실어 현재를 사는 독자가 읽고 동일한 추억에 잠기게 하는 마력이 있다. 그런데 그게 단순한 마력이 아니다. 아주 잔잔한 스토리로 조곤조곤 등장인물들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너무 가락이 없고 클라이맥스조차 찾기 힘들 정도로.

그런데 총격 살인 사건이고, 자살 사건이고, 치정과 가족 파괴가 그 속에 들어 있다. 충격적인 사건을 지고지순한 눈빛으로 들여다보며 정상적이며 극히 일상적인 우리네 이야기로 엮는 능력은 맥스웰을 능가할 이가 없을 듯하다. 그래서 엘리스 먼로조차도 소설을 다시 쓴다면 맥스웰처럼 쓰겠다고 하는지 모를 일이다.

상실감 위로했던 친구, 기억 속에서만

소설 속에 아련한 추억은 죄책감에서 시작된다. 총소리와 함께 부서진 친구관계는 얼마든지 회복될 수 있는 '복도의 만남'이 있었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그냥 지나쳐 버렸다. 그게 '나'에게 남아 죄책감이 된다. 여기까지는 우리의 일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는 여기서 머물지 않는다. 속죄의 길을 찾는다. 그 속죄의 증거가 이 소설이다. 이미 어머니의 죽음을 통해 상실감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던 '나'는 클레터스를 통해 적잖이 위로를 받는다. 첫 위로자 어머니의 죽음과 둘째 위로자 친구의 상실 사이에 조그마한 간극도 없다. 어머니이자 친구인 그가 예기치 않은 치정살인 사건의 그 총소리 때문에 더 이상 친구가 아니다.

만나면 좋은 친구. 무엇을 바라지도 요구를 거절하지도 않는 친구.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면서 "안녕, 내일 또 만나"라는 너무도 일상적인 말을 할 수 있었던 친구. 그런데 그 친구에게 더 이상 "안녕, 내일 또 만나"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런데 그것도 모르는 아버지는 어린 '나'에게 물어 보지도 않고 재혼을 선포한다. 얼마나 충격이었는지 이렇게 그때 상황을 기술한다.

"내가 본 것은 개구리를 삼키던 뱀이었는데 개구리가 너무 커서 제대로 넘기지 못한 모습이었다. 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도 마찬가지였다. 저녁식사 때 다른 여자가 어머니의 자리에 앉을 뿐 아니라 아버지의 마음에서 어머니의 자리를 차지하게 될 거라는 생각을 나는 도저히 삼킬 수가 없었다."- <안녕, 내일 또 만나> 36쪽

너무 큰 개구리를 먹는 뱀, 너무 충격적인 이야기다. 작가는 치밀하게 조직된 이런 표현을 조곤조곤, 아주 살살 이야기한다. 그래서 조그만 시골마을에서 일어난 충격적 사건인 치정 살인, 간통, 자살 등의 사건이 옛날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옛날이야기처럼 들린다.

상실감과 죄책감이 나은 부산물치고는 너무 단조롭다. 너무 소소하다. 너무 개인적이다. 50년이 지난 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친구에게 못했던 미안함을 표현하는 게 맥스웰이니까 가능하다. 자신의 회상록이요, 마을에서 일어난 옛 사건의 진실을 들춰낸 취재파일이며, 강아지에게까지 미안한 작가의 마음은 독자의 마음조차 뭉클하게 만든다.

혹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 그 누구에게 '미안하다' 말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용기를 내어 다가가기 바란다. 직접 만나지 않아도 요새는 얼마나 통신기술이 발달되어 있는가. 한을 남기지 말고 '미안하다' 말해보시기 바란다. 그게 아주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늘 하는 인사, "안녕, 내일 또 만나" 이게 갑자기 할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그의 아버지 때문에 살인자의 아들이 된 친구 클레터스, 그는 영문도 모른 채 친구를 잃었다. 그리고 영원히 친구에게서 멀어졌다. 맥스웰은 "당신이라면 날 용서할 겁니까?"라고 묻고 있다. 맥스웰처럼 소설을 써서라도 참회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지금 당장 "미안해"라고 말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뒤안길은 뒤쪽으로 나 있는 오롯한 오솔길입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의 오솔길을 걷고 싶습니다. 함께 걸어 보지 않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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