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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당예배

목회독서교육 최주훈 목사............... 조회 수 190 추천 수 0 2020.01.18 08:4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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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s://www.facebook.com/profile.php?id=100001103890659&fref=nf&__tn__=%2Cdm-R-R&eid=ARD05btl8M4xSP-7fYthbx_LKzyvn6Z9AYdFbKeuM_XJuIP_e1qGi-pRqsHP7eOjz7O1Dxrg6gpZAmA0 

<입당예식>


모든 공식적인 행사엔 일종의 예식이 갖춰지기 마련이다. 예배도 마찬가지다. 예배를 크게 세 단계로 구분한다면 시작예식(Ritus initiales), 말씀의 예배, 성례전의 예배로 나눌 수 있다. 시작예식엔 입당, 죄의 고백과 용서, 자비송(키리에), 대영광송, 오늘의 기도(collecta)로 구성되어있고, 말씀의 예배는 교회력 성서 봉독, 신앙고백, 찬송, 설교, 봉헌, 교회의 기도로 구성된다. 마지막 성례전의 예배는 보통 성찬례로 진행된다.


기독교가 로마의 제국 종교로 공인되기 전엔 소규모 예배 모임이었기 때문에 입당(Introitus) 같은 시작예식이 필요치 않았다. 상식선에서 생각해 보자.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안방 들어가며 찬송하고 절하며 격식 차리는 모습은 매우 이상한 게 분명하다. 4세기 이전 예배는 비밀스럽고 제한적인 모임이어서 기껏해야 부잣집 큰 방에서 모이는 게 일반적이었을 테니 거창한 예식 자체가 필요치 않았다. 그저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흘러가고 옛 기억을 나누고 먹고 마시며 노래하고 다독거리고 기도하는 게 전부였을 것이다.


물론 1세기 후반 <디다케>나 2세기 초 <사도전승>을 참조해 보면, 기본적인 뼈대는 있었던 것 같지만, 거기서 예배의 골격이란 기억 나눔과 식사에 초점이 있었다.


그러다 4세기, 기독교가 로마의 제국종교가 되자 상황은 급변하게 된다. 예배 장소는 소규모 공간에서 로마 법원과 같은 거대한 관청 건물로 바뀌게 된다. 지금은 ‘카테드랄’(Cathedral)이란 단어가 ‘대성당’ 또는 ‘주교좌 성당’을 지칭하지만, 원래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로마의 관공서 건물을 지칭하는 용어였다. 국교화가 되면서 교회가 이 건물을 사용하게 된다. 숨어 살다가 대리석으로 된 웅장한 건물로 들어오니 어리벙벙했을 것이다. 게다가 이전처럼 소박하게 예배 모임을 갖자니 뭔가 옹색하기도 했을게다. 이전엔 집례자가 들어올 때 방문만 열고 들어오거나 아니면 기껏해야 몇 발짝 안 걸어도 되었지만, 이젠 걸어 들어오는 거리가 만만치 않아졌다. 거룩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 사람들이 운집했는데, 대리석 바닥을 또각또각 아무 말 없이 들어오는 게 영 개운치 않았을 것이다.


신자 수는 급증했고, 공간은 커졌다. 이제 명색이 제국의 종교가 되었는데 뭔가 이 어색한 시간을 채울 게 필요했다. 그래서 생긴 것이 집례자와 예배 봉사자들의 ‘행렬’이 생겼고, 제단 앞에서 절하고 기도하는 ‘제대 인사’(Salutatio altaris), ‘교우 인사’(Salutatio populi congregati) 등 하나둘 화려하고 복잡한 예식이 생겨난다. 4-7세기 매우 다양하고 복잡한 과정들이 혼재하다가 고정된 형태로 차츰 자리 잡기 시작했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양한 순서와 예식들이 나타났지만, 시작예식의 개념이나 역할은 여전히 분명치 않았고, 신학적 준칙도 없었기에 대부분 그때그때 만들어졌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입당행렬과 입당송만 하더라도 4세기 이전엔 그런 예식 자체가 없었다. 그러나 제국종교가 된 이래로 사제들이 행렬을 만들어 교회당 안으로 들어가면서 일종의 고정예식이 되어버렸다. 물론 제국종교가 되자마자 입당 찬송이 생긴 건 아니다. 5세기 말까지만 해도 입당은 찬송이나 기도 없이 침묵하며 행진을 하는 게 전부였다. 입당 찬송이 생긴 유래가 재미있다. 5세기 이래 로마 시내에 있던 일곱 교회(Statio)를 교황과 사제들이 행렬을 만들어 사제들과 신자들이 서로 교대하며 부른 속죄대송(Antiphona)과 자비송으로 불리는 키리에에서 그 기원을 찾곤 한다. 7-8세기에 들어 향로도 등장하고 부제들의 영접이라든지 제대 앞 성가대 찬양 같은 부가적인 것들이 매우 화려하게 첨가된다. 결국 이게 지금 우리가 “입당”(Introitus)이라고 부르는 예배 용어가 되었다.


16세기에도 이런 상황은 여전했는데, 로마교회는 반종교개혁의 색깔을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트리엔트 공의회(1546-1563) 직후 비오 5세(Pius V, 재위 1566-1572)의 <로마 미사 경본>(Missale Romanum, 1570)에서 시작예식을 공식화했다. 그러나 여전히 각 순서의 신학적 의미나 연결점이 모호했다. 이에 대한 신학적 각성은 20세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이르러서야 치밀하게 논의된다.


<루터교회 입당>


루터교회의 주일예배 공식 명칭은 “공동예배”이다. 명칭 자체가 종교개혁자의 신학에 따라 ‘공동예배’(Gemeinde Gottesdienst)라는 것은 의미가 있다. 공동예배엔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다. 모두 한 가족 공동체로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찬의 식탁에 초대받는다. ‘공동예배’라는 명칭을 조금이라도 고민해 본다면, 칭얼거리다가 갑자기 우렁차게 울어버리는 유아나 정신 산만한 어린이라고 해서 유아실이나 어린이부실로 격리시킬 수 없다. 생각해보라. 교회가 공동체라는 것은 가족이라는 뜻이다. 명절 때 멀리 있던 가족이 한 식탁 앞에 모이는데, 어린아이라고 해서 방문 밖으로 나가라고 한다면 그건 가족이 아니다. 예배가 거룩하다는 것은 목사의 설교 시간에 조용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거룩한 예배는 누구나 초대받아 말씀과 성찬으로 쉼을 얻고, 가족으로 보듬어 안는다는 뜻이다. 할아버지가 손주들 떠든다고 째려본다면 그건 친족이 아닌 게 확실하다.


루터교회의 주일 공동예배는 신자들이 모두 모인 장소에서 집례자와 예배 봉사자들이 성찬대가 있는 단상(가톨릭에선 “제대칸”, 다른 교파에선 “성단소”라고 칭함)으로 행진하며 시작된다. 중앙루터교회의 경우, 예배 시작 전 목회자를 비롯한 성가대와 모든 예배 봉사자는 교회당 문을 열고 문밖에 선다. 위치는 교회당 입구이기 때문에 집례하는 성찬대에서 가장 먼 자리이다. 거기서 집례자가 교회력 절기에 따라 예배의 시작을 알리며 온 성도들을 공동예배에 초대한다.


예를 들면, “오늘은 성탄 후 첫째 주일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말씀과 성찬의 자리로 초대하셨습니다. 이제 다같이 일어나 찬송가 00장을 찬송하겠습니다.”라고 집례자가 선언하면 모든 신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한 목소리로 찬송을 부른다. 특별한 것은 회중들이 앞이 아니라 예배당 뒤쪽, 촛불이 행진하는 쪽을 향해 선다.


입장 순서는 촛불, 성가대, 성서 봉독자(구약/사도서간), 기도자, 집례자 순이다. 특별한 절기나 예배의 경우, 십자가와 성경이 함께 들어갈 수 있는데, 그때 순서는 성경, 촛불, 십자가의 순이다. 이때 순서는 창조사건을 상기시킨다. ‘빛이 있으라’ 말씀하신 그분이 하나님이며, 그 하나님이 아들의 형상으로 이 땅에 오셔서 세상을 구원하셨다. 이런 구원사의 순서를 따라 세상을 창조한 말씀(성경)이 선두에 서고, 그 뒤에 촛불, 그리고 그 뒤에 십자가가 위치한다. 이 순서는 로마교회와 다르다.


교단 연합 예배인 경우, 예를 들어 종교개혁일 예배의 경우엔 종교개혁을 상징하는 깃발도 함께 들어가는데, 이때 순서는 십자가 뒤에 서고, 깃발의 순서는 정해진 바가 없지만, 말씀-은총-믿음 중, 그날의 설교와 관련하여 중요도 순으로 순서를 정한다. 교단에서 진행하는 예배의 경우엔 여러 목사들이 행진해야 한다. 가톨릭은 사제들이 안수 서열로 입장하면서 후미로 갈수록 오래된 고참급이 서는 것을 명예롭게 여긴다. 그러나 그런 서열 개념을 거부하고 시작한 것이 프로테스탄트 교회이기 때문에, 목사들이 안수 서열을 따져가며 행진순서를 정하는 것은 종교개혁 신학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성가대와 예배 봉사자 사이에 서되 자유롭고 조화롭게 하면 되고, 집례자가 가장 뒤에 서기만 하면 된다.


개교회 주일 공동예배에서 입당 찬송을 부를 때, 회중은 일어나 촛불을 향해 선 채로 찬송한다. 동시에 촛불이 행진하는 방향에 따라 찬송하는 회중의 심장 방향도 그 동선을 따라 방향을 바꾼다. 촛불은 ‘의의 빛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상징한다. 입당 때 찬송하는 성도들이 촛불을 향해 방향을 바꾸는 것은 몸으로 표현하는 신앙고백이다. 심장이 예로부터 ‘마음’을 상징한다는 것을 기억해 보면, 촛불을 향해 신자의 몸이 움직이는 의미가 무엇인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삶은 어둡고 절망적이며, 미래는 한 치 앞도 알아볼 수 없는 칠흑 같다. 그런 어두운 세상을 밝히며 앞장 서는 분이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니 신자들은 그분 뒤를 따라가는 것이 안전하다. 우리의 심장을 그리스도의 빛에 일치시키고, 그렇게 살겠다는 신념을 다지는 순간이 바로 입장 찬송의 순간이다.


촛불이 행진하여 도착하는 곳은 성찬대 위에 놓인 두 개의 초다. 초가 두 개인 이유가 있다. ‘참 인간이요, 참 신’이신 그리스도를 뜻한다. 로마가톨릭의 경우, 칠성례를 뜻하는 일곱 개의 초가 점화되기도 한다. 이처럼 같은 입당예식이라도 교회의 전통과 신학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되고 적용될 수 있는 것이 예전이다. 고정된 것은 없다.

최주훈 목사 (중앙루터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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