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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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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조건
로마서 10장
8.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슈아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1.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로마서는 신자의 구원에 관한 신학적인 논리를 피력한 바울의 서신중 최대의 걸작이다. 물론 말씀의 지혜를 주신 분은 주님이지만 구원에 관한 바울의 성경적 논리는 참으로 경이롭게 여겨진다
로마서에 나타난 주제는 인간의 죄와 율법과의 관계와 신자의 믿음에 부합한 행함을 전제로하고 있는데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은혜의 수여가 아닌 구원의 약속된 말씀에 대하여 죄중에 있는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을 향한 응답의 조건으로 구원을 주신다는 이 약속의 말씀으로 로마서 10장에서 결론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 구원의 조건들을 살펴보면 다음으로 논증할 수 있다
첫째로 예슈아를 주(主)로 시인하라 : 9절
이 말씀은 예슈아를 하나님과 그리스도임을 시인하라는 의미의 말씀이다. 믿음에 대한 입으로 시인하는 것은 하나님과 악한 영들 앞에서 우리 자신이 누구를 주인으로 섬기고 살것인가를 선포하는 의미가 있다. 또한 주라는 의미는 포괄적인 의미로 한 분 하나님으로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주체이시며 전능하신 하나님의 존재로 여기고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은 한분이시다 온 만물의 주재가 두분이 되는 것은 성경적인 논리에 맞지 않는다
. 마가복음 8:29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 이다 하매”
요 20장 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둘째로 주님이 죽으신 것과 부활이 되심을 믿음과 입으로 시인하는 것
주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의 길로 나아갈수 있는 길을 열어 놓어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이 이루어 놓으신 이 놀라운 구원의 값진 희생에 대하여 우리의 응답을 주님께 드려야 하는 것이야 말로 구약의 희생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과 같은 것인데 이것은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므로서 우리도 죽은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놀라운 은혜를 얻는다. 이 사실을 믿는자는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믿음의 의를 얻음으로 주님으로 부터 칭의를 선물 받는 것이다. 또한 이 말씀과 관련하여 믿는 것에 대하여 입으로 시인하는 것 또한 구원의 조건에 해당되는 것이다.
셋째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
이 말씀의 간접적 의미는 주님의 이름의 권세를 의지하여 부르는 자에게 구원을 줄 것이라는 약속이 있다. 이 귀한 약속을 자신에게 당연히 적용되는 말씀으로 받아 들이기 쉬운데 주님의 참된 이름을 부르지 않으면 약속된 구원은 오지 않는다. 신자가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 있을때 절박한 상황에서 주를 찿는 가운데 의지 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이 부름에 응답 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다 (잘못된 이름은 약속이 없다)
요나가 고기 뱃속에서 죽음의 구덩이에 빠진 자신을 구원해 줄 수 있는 분은 오로지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고 부르짖고 회개할때 하나님은 응답하셨다.
요나가 처해진 상황 같이 모든 인간이 사망의 구덩이에서 빠져 나올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는 신자가 불러야하는 것은 오직 주님의 이름 뿐이다.
우리는 그 분의 이름에 대한 약속을 가지고 있다. 아직도 이 약속은 남아 있지만 그러나 이 이름에 대한 지식이 없어 잘못된 이름을 부름으로 망 할 수 있는 것이다. 호세아서에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 망하도다“ 라는 탄식의 말씀은 지금도 주님의 백성으로 일컽음을 받는 사람들에게 주님을 아는 지식이 결여되어 망하는 자리에 놓여 있음을 한탄하시고 있다.
누가 주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바꾸어 부르게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성경은 무오하나 오늘날 성경은 변역의 오류로 말미암아 사람들을 구원에서 멀어지게 하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명백히 초대교회 때 사도들은 예슈아의 이름을 부르고 예슈아의 이름으로 전도하며 예슈아의 이름으로 병을 고치고 예슈아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었다.
그러나 사도의 시대가 지나고 로마 교회로부터 기독교가 세계로 나왔지만 언약궤가 이스라엘 장막을 떠나 블레셋의 우상의 제단으로 들어간 것처럼 오늘날의 기독교는 우상을 섬기는 혼합의 종교가 되어 버렸다. 그 결과는 주의 이름을 잊어 버린 것이다.
렘23장27. “그들이 서로 꿈 꾼 것을 말하니 그 생각인즉 그들의 조상들이 바알로 말미암아 내 이름을 잊어버린 것 같이 내 백성으로 내 이름을 잊게 하려 함이로다”
다른 이름이 어찌 주님의 이름을 대신 할 수 있겠는가?
예수, 지저스, 헤슈스 , 이에수스, 지금의 세상에서 불리우는 이름은 진짜가 아니다. 모든 사람이 부른다고 해서 하나님이 인정하는 것은 말씀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 지도자들은 본래의 성경적인 진리를 회복하려는 노력을 하기 보다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신학적 논리와 전통에 부합하여 종교적인 권세와 이득을 좆아 오기만 하였다.
주님의 이름에 구원의 약속이 있지만 사람들은 이 놀라운 은혜의 약속을 인식하지 못하고 구원이 주님으로 부터 나온다는 것보다 종교 지도자들의 설교에 더 의존하게 만들었다. (말라기 1장 6-11절)
주의 이름이 하나로 통일 될때 주님의 나라가 이 땅에 세워질 것이다
말세에는 주의 이름이 하나로 통일 될 것을 예언하고 있다. 결국 이름은 하나임을 증거하고 있다
스가랴 14:9
“주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 날에는 주께서 홀로 한 분이실 것이요 그의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라“
말 3장16. “그 때에 주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 주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주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주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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