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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출처 :  
《성지(聖地)는 없다. 그러니 성지순례라 하면 안된다! 》

고은교회: 황 부 일 목사

<성지순례가 기독교의 잏반화 되어 있다>

성지하면 이어 성지 순례가 자동으로 연결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성지순례는 오늘날 모든 기독교들의 필수 여정처럼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형편들이 좋아서인지 아니면 그것이 필연적인 신앙의 요소나 과정으로 생각해서인지 평신도들도 많이들 가볼 정도입니다.

목회자들에게 있어서는 적어도 한번이상 그리고 몇 번씩 가보아야 할 마땅한 경지나 중요한 과정처럼 되어 있습니다. 그래야 바르게 실감나게 가르칠 수 있고 은혜를 끼치는 생생한 설교를 할 수 있으며 진리를 밝히 알게 되고 목회를 잘 할 수 있다고 자타가 인정할 정도입니다.
만일 목회자가 성지순례를 한 번도 못 갔다면 형편없는 자로 취급받을 정도입니다.
실제를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코끼리의 한 부분만 만지고 말하는 소경된 자처럼 신앙의 수준에 미달되는 자로 여기기도 합니다. 그만큼 거기 가야만 주님과 더 가까워지고 특별한 은혜와 권능을 입고 좀 더 신령해 질 수 있는 것이 그곳에 따로 있는 것으로 인정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복음을 통해 그리스도를 만나고 구원에 이르는 기독교 신앙에 매우 위험천만한 일이고 무지한 지경에 처했다고 진단 할 수 있는데 대부분의 지도자나 교인들은 성지순례의 특별한 은총을 기대하며 갔다 와서 신앙의 더함을 간증하며 권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 이 세상 특정 지역에 하나님의 특별한 성지가 지금도 있다고 믿으며 그렇게 신앙과 연결시키려 한다는 것에 매우 심각한 신앙 문제가 도사리고 있는 것입니다.
분명히 지금 이 세상 어디고 장소적으로 거룩한 하나님의 영역인 성지는 없는데도 그렇게 여기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기독교인들은 그리로 가서 신앙생활을 하든지 아니면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정기적으로 몇 차례씩 반드시 가야할 것입니다.
카톨릭에서 오래전에 지정한 성지순례를 오늘나 개신교들이 그대로 답습하고 신앙의 필연적 과정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성지와 성지순례를 조성한 자들>

보통 성지를 사람들은 “신성한 지역” 혹은 “성역화 된 장소”로 신의 역사가 독특한 역사나 현현으로 나타났거나 다시 나타날 것으로 기대되는 곳을 지정해서 말홥니다..
특별히 신성한 역사적 기억이 보존되는 곳을 성지라 일컫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곳을 신앙의 마음으로 돌아보며 신앙의 의식을 가지는 것이 성지순례라고 합니다.

성지순례에 대한 역사적 기록을 뒤져볼 것 같으면 주후 3세기 때부터 유럽 각지에서는 언약의 땅인 이스라엘과 또한 예수께서 탄생하신 곳과 이스라엘에서 생활하시던 곳과 마지막 생을 마친 곳을 중심으로 성지라 하여 찾아들었고 비잔틴 시대에 와서는 그런 곳곳에 기념 교회라 하여 카톨릭식 성당 건물이 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성지는 성경에 나오는 중요지명이나 사도들의 흔적지나 순교지나 성자들의 무덤이 있는 곳까지 확대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성지순례는 13-14세기 때에는 유럽 모든 나라에서 절정을 이루었고 그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신앙 생활의 필수적인 과정이나 단계처럼 인정 되어졌던 것입니다.
당시 그들은 고난의 형편에서도 성지를 찾아가서 종교의식을 갖고 예배를 해야 만이 하나님을 만나고 가까이 하는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는 것처럼 여겼던 것입니다.
이때는 예루살렘에 성지순례자들을 위한 합숙소도 생겼으며 또 한때는 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보다 로마로 가는 경우가 더 많았다고 합니다. 이는 당시 교황들이 그때는 면죄부와 대속제년을 선포하여 로마에는 2만-3만명 가량의 성지순례자들이 몰려들었다고 합니다.
당시 로마에 있어 성지는 성인이라고 하는 자들이 세운 교회 건물이나 또는 그들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오래된 성당 건물이나 베드로나 바울의 무덤이라는 곳과 그리고 순교자들의 무덤이 있는 곳이나 카타콤 등을 성지로 순례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성지는 유럽 전 지역에 수도승이나 성인이라는 자들의 무덤이나 자취가 있는 곳까지 확장 조성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성지순례로 인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생겨진 것이 있는데 십자군 전쟁의 발발입니다.
교황청이 세워짐과 동방정교와 로마 카톨릭이 서로 경쟁하듯 성지를 확산시키고 그럴싸하게 조성하여 그런 곳마다 기념교회라 하여 우상 투성인 성당 건물들을 난립시켰던 것입니다.

십자군 전쟁은 7세기 중엽 이슬람에 의해 넘어간 성지를 탈환하기 위해 로마 교황청은 그럴싸한 명목아래 성지를 향하는 십자군을 소집하여 파병합니다.
이 전쟁은 무려 2세기에 걸쳐(1096-1204)성지를 서로 빼앗으려는 카톨릭화 된 유럽 기독교와 이슬람과의 잔인하고 지루한 전투였는데 이것이 다 당시 무지하고 잘못된 로마 카톨릭화 된 유럽 기독교들이 신전처럼 여기는 중요한 성지를 빼앗긴다거나 신앙생활의 성역으로 된 그곳을 성지순례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었기 때문에 순교적 차원에서 십자군 운동의 동기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중세 16세기 종교개혁이 일어난 후부터서야 종교개혁자들로 인해 성지와 성지순례는 문제화 되었고 금지내지는 시정화 되도록 강조가 되었습니다.
당시 개혁자들은 “성지라 하여 순례하며 방랑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것은 구원과 구원을 이루는 신앙에 아무런 유익이 없다”라고 했고,
어떤 개혁자는 한마디로 “엉터리 신앙으로 가는 성지순례는 멀리하라”고 단정하기도 했습니다. 종교개혁을 따르는 당시 개혁교회들은 이런 개혁자들의 주장과 가르침을 받아 예전처럼 성지라 하여 찾아가 종교적 의식과 신앙의 중심을 가지고 하는 성지순례를 하지 않게 되었던 것입니다.

〈다시 성지순례로 돌아간 오늘날 개신교〉

오늘날 개신교는 많지만 올바른 개혁주의 개신교는 찾아보기 매우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여러 가지 상태로 볼 수 있겠지만 성지 순례라고 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더 말할 것도 없이 개신교 보수교단에 개혁주의 신학교나 교회들의 지도자가 되는 교수들이나 목사들도 대부분 보면 성지순례란 말을 쓰고 있으며 성지순례를 중요한 신앙의 업그레이드화 되는 필수로 강조 내지는 권장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신학교 졸업여행이나 선교여행으로 성지순례를 가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많은 여행사들은 한층 더 고무적인 광고를 내고 폭넓게 여러 경로를 소개합니다.
기독교 계통의 잡지나 신문지면을 볼 것 같으면 이름 있는 목사들의 성지순례 예찬 글이 지면에 종종 올라와 있는 것을 봅니다.
대부분 그들은 공통적으로 성지순례를 은혜를 더하는 것으로 신앙에 매우 유익되고 새롭게 도전받고 새 힘을 얻게 되는 필수적인 과정이나 체험의 장으로 본인이 실제로 느끼고 얻게 된 것으로 간증합니다.
그리하여 이제는 보통 신도까지 가봐야겠다는 기대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어느 교단 신문에 보니까 “노회 행사로 성지순례를 다녀오다” 라는 단체 사진과 함께 된 기사를 보았는데 그 내용 중에는 성지순례를 통해 더욱 은혜를 입게 되었다고 했고, 그리스도의 자취를 더욱 실감하고 더 가까이하며 따라가는 시간이나 계기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정도면 기독교 신앙에 있어 심각하고 매우 위험한 상태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을 얻고 구원을 이루는 기독교의 신앙은 어떤 특정지역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기독교인들은 모두 그리로 가야하고 더하는 은혜와 그리스도와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라면 아예 그곳으로 가서 살아야 합니다.
분명 성경에 보면 그리스도와 더욱 가까워지고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연합되는 삶은 어디서나 상관없이 그분의 말씀을 지키고 따르는 것에 있다고 했습니다(요일 3:24). 그런데 보면 이제는 우리나라에다가도 한국 기독교 개신교가 천주교처럼 순교자들의 무덤이나 기념관을 성역화 하여 성지로 만들고 그곳도 성지순례 시키고 있을 정도입니다. 이런 면에 있어서는 이제 개신교라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콘스탄트대제 이후 국교화 된 기독교는 이미 복음에 합당한 신앙에서 멀어지고, 변질된 기독교로서 인본중심으로 조직화되고, 보이는 것을 숭상화 시키며 그런 중심으로 신자를 조련시켜가던 로마 카톨릭 때의 성지순례를 그대로 답습하거나 아예 한술 더 떠서 예찬하고 신전시 된 성지를 만들고 신앙의 경지의 행로로 가는 이슬람교도들처럼 이 땅의 개신교회들이 성지순례를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또한 그런 곳을 찾아가서 신앙의 의식을 가지고 예배하고 기도 모임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신전에 모여 종교의식을 갖는 이방종교처럼 말입니다.

〈성지(聖地)는 없다〉

지금 시대에 분명 성지(聖地)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메시야 시대가 성취된 이후 하나님은 어느 특정지역을 성역화 시키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조상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유대인들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하더이다”라고 말하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고 말씀하심처럼(요 4:20-21), 하나님께서 특별히 어떤 곳에 임재 하셔서 하나님 백성과 교통하시겠다는 거룩한 곳, 성역화 된 성지가 이제는 장소적으로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 신정국가로서 삼으신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다스리며 교통하는 곳으로서 유일하게 정하신 곳이 있었는데 그곳이 예루살렘 성전이었고 그래서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 성을 성지로 시온 성, 거룩한 성이라 했고, 더 넓게는 이스라엘 전역을 하나님의 언약의 땅으로 기업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시 이스라엘은 역사적으로 이 땅에 실현된 하나님 나라로서 정해졌던 성역이요 거룩한 성지였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언약의 땅이요 또한 성전이 있는 특별한 장소로서 만으로 성지가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야 했고 그 말씀대로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 말씀을 어기고 우상을 좇으면서 성전으로 나올 때 그 때 성전은 그들에게 인간적인 성지요 신전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역사에 성전이 무너지고 나라가 붕괴하는 때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 그리스도가 임재하시고 그의 구속의 역사가 성취되면서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성격은 보이는 한 장소인 언약의 땅인 이스라엘을 넘어 온 세상 지역에 구원받은 그리스도의 교회로 발전 실현된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 기자는 이스라엘로 국한 되었던 성지로서 시온 산과 하나님의 도성은 이제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으로 증거한 것입니다(히 12:22).
예수님께서도 하나님 나라가 언제 임하냐고 묻는 바리새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17:20-21).
이 말씀은 이제 유대주의자들이 기대하는 회복될 이스라엘이 그들이 기대하는 더 좋은 유대 성지로 될 것이 아니라 이제는 보이지 않게 그들 중에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들에게 현재적인 하나님 나라로 실현될 것을 밝히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것이 성지의 점진적 발전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점에 대해 확실한 내용을 증거 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하나는 계집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는데 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이스마엘이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의 자녀인 이삭이 났다고 했습니다.
이 둘은 두 언약의 비유로 하나님의 유업을 받지 못할 육체를 따라 난 자와 하나님의 유업을 받을 성령으로 난 언약의 자녀로 서로 상반된 관계를 말씀합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죄의 종 된 자를 낳는 대표적인 계집 종 하갈을 표현하기를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노릇하고”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자유한 여자인 오늘날 교회 된 자의 대표적인 어머니가 되는 사라는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라고 했습니다(갈 4:22-31).
이 말씀에서 분명한 증거는 지금 있는 예루살렘은 율법의 정죄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세상중 한곳에 불과한 곳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에 있는 예루살렘은 성지는커녕 하나님과 전혀 상관이 없는 정죄된 자들의 곳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그곳에 가 보았지만 거기는 옛 성전도 예수님 말씀대로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졌고(마 24:1-2), 그 무너진 흔적조차 안보이고 오히려 그 자리 위에는 이슬람 사원이 서 있어 이제는 실제로 그들의 성지가 된 것입니다. 또한 곳곳에 저들 나름대로 정하고 성지화 하기 위해 동서 카톨릭이 세운 기념교회라는 성상과 성화 중심의 우상 물로 가득차 있는 성당들뿐인 것입니다. 또한 율법 중심의 민족 종교인 유대 종교가 옛 성지회복을 꿈꾸고 있을 뿐입니다.
이제 이삭과 같이 언약의 자녀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 된 교회에 있어 거룩한 성지는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로 실현된 하나님 나라가 우리의 실제 성지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두가 성지라고 부르는 곳은 성지가 될 수 없습니다.
지금의 예루살렘은 신정국가로서 존재할 때 거룩했던 옛 성지였던 것뿐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고 통치하시며 그곳을 통해 교통하실 때에만 성역이고 거룩한 곳이었던 것입니다. 지금의 이스라엘은 이제 세상 여러 나라 중 한 나라요 세상 넓은 땅 중에 한 지역일 뿐입니다. 우리가 이스라엘을 가보고 예루살렘을 가 보아도 거기에는 옛 성지였던 유적지만 부분적으로 남아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더군다나 성인이라는 자의 무덤이나 순교자들의 무덤 따위가 어떻게 성역이 되고 성지가 되겠습니까? 그래도 성지라고 한다면 오늘날 개신교는 인위적으로 기념건물을 만들어 놓고 성지순례라 하여 어리석게도 그곳을 숭배하게 하고 신앙화하게 하는 잘못된 카톨릭이나 이슬람 종교와 다를 바가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이슬람의 신앙의 과정과 그리고 경지의 단계는 성지순례에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곳곳에 있는 유명한 사원이나 심지어 구약에 나오는 인물들의 흔적지까지 순례를 하며 무엇보다 제일 된 성지순례는 저들의 교조인 마호메트의 탄생지 사우디 아라비아에 있는 “메카”로 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심지어 걷지 못하는 불구자나 나이 많은 늙은이도 가족에 의해 들것에 실려 가거나 도구를 힘입어 가기도 합니다.
이슬람에 있어 성지순례는 알라신을 향하는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가야 알라를 만나고 은총을 입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아모스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런 잘못된 신앙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가지 말라 길갈은 정녕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허무하게 될 것임이라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염려컨대 저가 불같이 요셉의 집에 내리사 멸하시리니 벧엘에서 그 불들을 끌 자가 없을까 하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암 5:4-6).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 조상들이 거하거나 지나면서 하나님과 만났던 곳을 기념 장소 이상 거룩한 성지로 찾았던 것입니다.
벧엘은 하나님께서 망명길에 있는 야곱을 찾아오셨던 곳이며, 길갈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이 요단을 건너 처음 진지를 구축하고 첫 번 유월절을 지킨 곳이며, 브엘세바는 아브라함, 하갈, 이삭, 야곱, 엘리야가 거처했거나 지날 때 하나님께서 찾아오셨던 곳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곳을 오늘날 기독교처럼 성지로 여기고 찾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거기에 계신 줄 알았거나 자기들도 가면 그곳에서 하나님을 특별히 만날 수 있다는 기대에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들 마음대로 그런 곳을 성지로 여기고 찾는 것은 허무하게 될 것이요 어리석게도 사로잡히게 될 것이며 망하는 형벌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시면서 나를 어디서나 직접 찾으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 당시 그렇게 성지로 삼은 곳은 신전이 그곳에 있는 것 같은 우상지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때가 되셔서 그때 주의 백성에게 찾아 오셔서 언약 내지는 계시의 차원에서 역사하신 것이지 그 장소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저들이 정한 성지를 통해 어리석게도 찾으려 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을 여행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지금도 부분적으로 남아 있는 그리고 발굴되는 유적지를 찾아 가보는 것이 잘못됐다는 말을 하고자 함도 아닙니다.
지명적으로 문화적으로 보는데 도움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과거 구원과 거룩한 하나님의 기업으로서 모형이었던 그곳을 지금도 거룩한 하나님의 도성처럼 성지라 여기고 그런 믿음의 의미와 기대를 가지고 찾아가는 것이 잘못됐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직도 하나님을 그런 특별한 장소에 찾아와 계시어 만나준다는 것이 되며 아니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흔적을 남으시는 분으로 만들게 되는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거기 가서 더욱 특별힌 신앙을 가지려는 것이 얼마나 헛되고 미신적이고 우상적이 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오로지 성경 말씀을 통해서 계시된 진리의 하나님을 만나야 하고 그를 따르며 가까이 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보이는 외형중심으로 잘못된 신앙을 조성한 자들이 명명한 성지순례란 말부터 쓰지 말아야 합니다.
옛 이스라엘 유적지 탐방이 성경에 나오는 역사적 지명이나 지역을 관찰 여행하는 것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형편에 따라 몇 번 가 볼 수도 못 가볼수도 있겠지만 분명히 분별해야 할 것은 그곳이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하며 특별한 은혜를 체험하는 성지는 아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8:20절에서,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성도 된 우리의 성지는 거룩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요 머리되신 주께서 말씀의 통치속에 성령이 교통하사는 교회된 영역이며 약속된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며 실현된 현재적인 하나님 나라를 통해 점진적으로 완성될 새 하늘과 새 땅뿐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하나님의 도성인 그의 나라는 오직 진리의 복음을 통해 구원으로만 실현됨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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