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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숨어 계실까?](시편 10편)
1. 숨어 계신 하나님
시인은 처절하게 노래한다.
(시 10:1, 새번역) 주님, 어찌하여 주님께서는 그리도 멀리 계십니까? 어찌하여 우리가 고난을 받을 때에 숨어 계십니까?
고난받을 때 하나님이 숨어 계시다고 느끼는 것은
비단 시인만이 아닐 것이다.
무고하게 나를 괴롭히는 악인들은
여전히 잘 되고 있고,
뻔뻔스럽게도 자신들을 심판할 자가 없다고 말한다.
(시 10:4, 새번역) 악인은 그 얼굴도 뻔뻔스럽게 "벌주는 이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고 말합니다. 그들의 생각이란 늘 이러합니다.
이런 악인들을 보고 있을 때,
심지어 이런 악인이 나를 괴롭힐 때,
그럼에도 하나님은 숨어 계시는 것 같을 때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숨어 계신 것 같이 느껴지는 하나님을 직면했을 때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까?
악인들은 마음대로 악을 행하면서 살아가는데
전혀 심판을 받지 않는 것 같고,
무고히 고난 받는 나의 고난은 전혀 끝날 것 같지 않을 때
신자는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까?
두 세 가지의 반응을 할 수 있겠다.
2. 무관심 또는 자포자기
숨어 계시는 듯한 하나님을 직면했을 때,
악인의 그렇게 악한 짓을 대놓고 저지르며 살아감에도
아무련 심판을 받지 않고 오히려 잘 되는 것을 볼 때,
첫 번째 반응은 무관심 또는 자포자기다.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 해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니, 어떻게 해보았을 수도 있지만
그 거대한 악의 힘에 눌려
도리어 처절하게 당하고 말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대부분의 악인들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들의 강포로 그리고 더러운 지혜로
이미 승리할 자원들을 마련해 두었기 때문에,
이기기 위해서 양심까지 팔아 넘기는 자들이기 때문에,
적어도 양심의 찔림을 느끼는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절대 악인들을 이길 수가 없다.
그래서 한 두번 부딪혀 보고 자포자기 하기 쉽다.
또는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 될 수 없으니
무관심하기 쉽다.
3. 주님께 고발하기
무관심하거나 자포자기 하지 않는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그들은 거대한 힘을 가진 악인들이고
나는 너무나 무력한 사람에 불과한데
감당하기 어려운 악에 직면했을 때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시인은 악인의 악행을 숨어 계신 듯 보이는 하나님께 고발하고
주님이 일어나서 악인들을 벌하여 달라고 호소한다.
(시 10:11-13, 새번역) [11] 악인은 마음 속으로 이르기를 "하나님은 모든 것에 관심이 없으며, 얼굴도 돌렸으니, 영원히 보지 않으실 것이다" 합니다. [12] 주님, 일어나십시오. 하나님, 손을 들어 악인을 벌하여 주십시오. 고난받는 사람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13] 어찌하여 악인이 하나님을 경멸하고, 마음 속으로 "하나님은 벌을 주지 않는다" 하고 말하게 내버려 두십니까?
이렇게 호소하는 것이 무슨 효과가 있을까 싶을지라도
숨어 계신 듯 보이지만
살아계시고 공의로우신 분임을 믿고
끝까지 호소하기를 멈추지 않는 것이
신자의 바른 자세일 것이다.
주님께 고발하고 호소하기를 멈추지 않을 때
시간은 제법 걸리겠지만
마음 속에서 작은 확신이 생기기 시작할 것이다.
(시 10:17-18, 새번역) [17] 주님, 주님께서는 불쌍한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십니다. 그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주시고, 그들의 부르짖음에 귀 기울여 주십니다. [18] 고아와 억눌린 사람을 변호하여 주시고, 다시는 이 땅에 억압하는 자가 없게 하십니다.
왜 이런 확신을 시인은 가지는 것일까?
이런 일들을 여러 번 겪었을 것이고
그때마다 연약한 시인은 하나님께 고발하고
호소하는 것 외에는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고발하고 호소하기를 쉬지 않았을 뿐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작은 응답이 주어지기 시작하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하나님이 불쌍한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시는 분이심을,
하나님은 옛적부터 고아와 과부로 대표되는
약한 자들의 편이심을,
그래서 약자를 괴롭히는 악인을 심판하시는 분이심을,
하나님께 고발하고 호소하는 사람은
깨닫고 발견하고 누려가게 된다.
그 경험이 있을 때
이런 고발과 호소의 기도를
다음에도 계속할 수 있게 될 것이다.
4. 악과 싸우기
가끔 악과 싸우기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들은 약하지만 진실의 힘을 믿고
거짓과 폭력에 맞서 싸우는 용감한 사람들이다.
바위에 계란을 던지는 무력함이지만
끝까지 계란 던지기를 포기하지 않아서
적어도 그가 악인이라는 사실을
대중에게 알리는 역할이라도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힘이 강하지 않고
정직하게 살아가기에 재정적으로도 어려울 수 있고
안타깝게도 진실을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욕을 먹고
심지어 악한 지혜와 돈과 힘을 가진 악인들로부터
온갖 협박과 위협을 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악과 싸우기를 포기하지 않는 그들은
참으로 귀한 사람들이다.
5.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악인의 악에 대해서 아무리 대항해봐도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음을 경험해서,
또는 그렇게 짐작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포자기 하는 것에서만 벗어나면 될 것 같다.
그렇게 자포자기 해버리면
하나님을 경험할 수도 없고
하나님이 공의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 수도 없고
악인들이 번성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절망만
계속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기에
자신에게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적어도 둘 중 한 가지는 해야 할 것이다.
힘이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꿈쩍도 하지 않는 거대한 바위를 향해
계란을 던지는 것이라도 계속 하든지,
그것을 할 만한 용기가 없다면
하나님께 고발하고 호소하는 일을 하든지.
물론 바위에 계란 던지는 사람도
하나님께 고발하고 호소하는 일을 하면서
그 일을 계속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겠다.
그러나 바위에 계란을 던지는 일을 못하겠다면
하나님께 악인들을 고발하고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고
공의와 정의를 이 땅에 실현해 달라고,
약자들을 보호해 주시고 악인들을 심판해 달라고
기도하는 일만은 반드시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누가 악인인지를 분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대 사회에서 악인들은 자신의 정체를
교묘하게 숨기면서 악을 행하기 때문에
그 정체를 쉽게 알기가 어렵다.
정신을 차리고 분별력을 가지지 않는다면
악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도 어렵다.
교회를 세습하는 목사 부자를 직접 만나고서도
그들이 악인이라고 믿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성범죄를 저지른 목사의 설교를 매주 들으면서도
그가 성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라고 믿기도 어려울 것이다.
자본과 언론과 결탁해서
온갖 거짓과 나쁜 짓을 일삼는
나쁜 정치인들도
자신들의 모습을 그럴듯하게 포장하기 때문에
분별력을 제대로 갖지 않는다면 분별하기 어렵다.
이 시대는 분별력이 너무나 필요한 시대다.
분별력을 가지고
악인을 제대로 분별하고
작은 계란 하나라도 그 바위를 행해 던질 수 있어야 하리라.
작은 계란을 던지는 것을 못하겠다면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을 해야 한다.
하나님께 악인의 악을 구체적으로 고발하고
심판해 달라고 호소하는 것,
약한 사람들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 달라고 호소하는 것이다.
그렇게 호소하기를 포기하지 않을 때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악인의 악을 심판하시고
연약해서 하나님께 매달리는 사람을 돌보시는 분이심을
조금씩 경험해가게 될 것이다.
6. 나는?
'건강한 작은 교회 동역 센터'라는 모임의 운영위원 중 한 명이 되었다.
나를 제외한 다른 운영위원들의 면면을 보고
나는 이 자리에 포함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대형교회 세습에 항의하기 위해서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시고
교회와 교단에서 잘못된 판단을 내릴 때마다
가만히 있지 않고 나서서 그들과 싸우는 목사님이 있고,
마을에 주민들에게 피해를 줄 위해시설이 들어온다고
그 세력과 맞서 싸우는 일에 앞장 서다가
마을 이장에게 비리가 있음이 드러나서
결국 마을 이장까지 된 목사님도 있고,
교회 공간을 비용이 낮은 곳으로 옮기면서까지
약자와 가난한 사람들과 선교사들을 돕는 비용을 늘리는
귀한 목사님도 있다.
교회가 지역사회와 연대해서
불의와 싸우는 일에 앞장 서는 목사님도 있다.
이런 목사님들에 비해서 나는
너무나 초라하다.
나는 그분들처럼 악과 싸우는 일에 직접 나선 적이 없다.
지역사회와 연대해서 무언가를 할
적극적인 성격도 못된다.
나는 그저 말씀 하나에 삶을 걸고 살아왔고
늦은 나이에 목사가 되었고
말씀 하나에만 집중하면서 성도들을 세워가는 것이
내가 목사가 된 유일한 이유다.
한국교회 내의 거대한 악을 보고 들으면서
울분이 쌓이고 화가 나지만,
그 분들처럼 기독교 내의 거대 악과 싸우는 일에
나는 앞장 서지 못한다.
나는 그저 설교와 성경공부와 대화를 통해서
성도들이 이 시대를 분별하고
한국교회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악들에 대해서
말씀을 기준으로 제대로 분별하도록
눈을 뜨게 돕는 일을 할 뿐이다.
때로 나는 그 분들 앞에서
너무 초라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나는 악인들을 하나님께 고발한다.
그리고 그들을 욕한다.
목사가 무슨 욕을 그렇게 하느냐는 말을 들을지라도
그들을 욕하고 또 욕한다.
나의 이 욕이 악인들을 사람들에게 고발하는
작은 몸짓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과 불의와 탐욕과
온갖 더러운 짓을 마음대로 하는 그들을
참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부족한 나를 건작동의 운영위원으로 초청해주셔서
함께 하는 목사님들께 깊이 감사하고 있다.
목사가 되고 나니 목사 중에 악인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에
연신 충격을 받고 있다.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오는 일이 잦아져서
이제 욕을 절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멀쩡하게 큰 교회를 목회하면서
뒤로는 얼마나 더러운 짓들을 하는지 듣고서
구역질이 날 것 같은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그 악인들을 하나님께 고발하고
그들을 심판해 달라고 기도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당한 사람들을 불쌍해 여겨 달라고,
그 아픔 사람들을 회복시켜 달라고 또한 기도한다.
너무 화가 나고 억울한 사람들의 아픔이 전해서
나의 기도가 더 간절해진다.
그럼에도 감사하게도 이런 기도를 하면서부터
하나님을 누리고 경험하는 기회도 많아져간다.
숨어 계신 하나님이신 듯 하지만
하나님의 공의가 조금씩 실현되는 것도 본다.
여전히 숨어 계신 듯 보이는 하나님을
이렇게 조금씩 경험하고 누려갈 수 있어서
참으로 감사한 아침이다.
[윤용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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