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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6: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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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6장 44절.
44절: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많은 목사님들이 ‘그 성경이 좋다.’ 예, 무슨 성경이냐 하면 킹제임스 성경. 거기에는 뭐라고 돼 있는가 하니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보화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악한 보화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이는 마음에서 넘쳐나는 것을 그 입이 말하기 때문이라.’ 예, 물론 마음을 두고 다 하는 말인데 악한 보화? 악한 보화가 있어요? 보화는 광물이지요?
‘악하다’ 하는 것은 인격을 가진 사람에게 하는 말입니다. 무슨 말이냐? 그 용어에서, 그러니까 한국어 성경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그게 듣기가 좋은지? ‘악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악한 보화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어느 것이 생각하기가 좋습니까?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귀담아 들어요. 어쨌든 우리 한국어 이 본문의 말씀이 누가 들어도 맞는 말씀입니다. 예, 기독교인이 들어도 맞고 예수님을 안 믿는 이방인들이 들어도 맞고, 한국사람이 들어도 맞고 세계사람들이 다 들어도, 남녀노소가 들어도 빈부귀천이 다 들어도 이치가 맞는 말입니다. 그렇지요? 인격을 가진 사람이라면 제 정신을 바로 가진 사람이라면 틀렸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누가 들어도 옳습니다.
그런데 누가 들어도 옳도록 그 이치를 만드셨느냐?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만들었단 말이요. 만약에 가시나무에서 한 해는 수박이 열리고 또 한 해는 탱자가 열리고 또 한 해는 또 다른 열매. 모든 나무가 해마다 그렇게 다른 열매로 열린다면 이게 어떻게 되겠느냐? 물론 상상이라서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렇게 되면 우리의 이룰구원에 혼돈이 생길 겁니다. 분명히. 말하자면 우리의 이룰구원의 이치는 없어질 것이다 그 말이요.
그런데 우리 인간은 인격자이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속에 맺혀지는 열매들이 마치 이치가 없는 혼돈스러운 상상 속에 되는 것처럼 실질적으로 자기 마음의 열매가 그런 상태가 있지 않는가? 혼돈스럽고 이치도 아니고. 그러니까 이게 제 멋대로 제 마음대로. 이치가 아니다 그 말이요. 자기 마음속에서 어떤 때는 요렇게 어떤 때는 요렇게 요렇게 맺히는 것이 그게 이치가 아니게 아주 정신이 혼란스럽게 맺히는구나. 그런 느낌이 들어요. 우리에게 열매로 그 나무를 알게 하신 것은 우리에게 이룰구원의 이치를 알게 하려고 그렇게 하신 거요. 그리고 먹어보고 그 맛을 알게 했고. 그래서 ‘어떤 나무에 열리는 어떤 열매가 맛있더라’ 그걸 알게 했다 그 말이요. 그 이름도 그렇게 알 수 있도록 지은 것이고.
우리 인간은 먹어보아야 만이 그 맛을 아는 것이지만 하나님은 사람처럼 안 먹어보아도 그 맛을 알고 계시지요. 당신이 만드셨으니까. 만든 분이 그걸 모른다면 말이 안 되지요. 독이 든 나무를 만들어놓고 하나님 당신이 먹었다. 그럼 모른다고 하는 것은 이건 허점이 있는 거거든. 다시 말씀드리면 죽을 수가 있다는 그 의미가 거기에 놓여지는 거지요. 모른다 그러면. 예를 들어서 포도를 하나 따서 맛을 보시면서 과거에 맛을 보신 것처럼 ‘음, 바로 이 맛이야’ 그렇게 하겠는지, 아니면 ‘나도 처음 먹어보네’ 하면서 자꾸 따서 잡수실는지? 무슨 말인지 알아요?
텔레비전 나오는 장맛이 좀 다르지요? 된장 맛? 그 어릴 때 된장국 끓여준 거 그 맛있는 입맛이 그 느낌 감각성이 있어서 끓여주면 ‘아, 바로 이 맛이야’ 그런 거 있습니까? 자기 경험 속에서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은 경험을 안 하셨어도 그걸 말하자면 익히 아시느냐 그 말이요. 당신이 만드셨기 때문에. 우리는 먹어보고 ‘맛있다’ 그러면서 자꾸 따먹고 하는 그런 게 있거든? 하나님도 그러냐 그 말이요. 안 따 잡수셔도 훤히 그 맛을 아신다 그 말이요.
또 하나님 당신이 만드셨지만 무조건 만들어놓고 또는 독버섯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독버섯인줄도 모르고 하나님 당신도 잡수시고 식중독에 걸리겠느냐? 그 독에 걸리겠느냐? 하나님은 경험을 안 해도 아시고 안 배워도 아시고 눈 감아도 아시고 안 보아도 아시고 없어도 아시고. 과거에 우리는 없었어요. 그러나 당신의 의중에는 나를 알아요. 내가 없어도 나를 알아요. 그러나 우리 인간은 꼭 보고 듣고 만지고 경험을 해야 압니다. 여기에서 하나님 당신은 경험 안 해도 안 배워도 눈 감아도 안 보아도 다 아심이다. 성경에서 우리가 볼 수 있듯이.
왜 우리에게 성경을 보게 하고 많이 보라고 그러고 늘 보라고 그러고 왜 그렇게 말씀하실까? 성경을 많이 보고 깨닫게 되면 경험을 안 해도 경험한 자처럼 지식이 들어가기 때문에 어떤 사건이 오면 그 때는 지혜롭게 ‘아, 요렇게 해야 되겠구나’ 이게 나온단 말이요. 그러니까 사람인지라 실수가 없지는 않겠지만 있더라도 그만큼 없다. 실수가 그만큼 없다.
눈으로 보고 남 넘어지는 거, 남 죄짓는 거, 남 죽는 거 다 보고 귀로 듣고 하는데 자기가 또 모른다고 해서 또 경험해야 되는 겁니까? 그렇게 살아야 되는 거요? 그럼 그 인간은 그렇게 살다가 맞아 죽던지 빠져 죽던지 하나님의 형벌에 진노에 죽던지 그 수밖에 없다. 성경을 안 믿고 다른 사람의 경험을 참고적으로 못 들을 때는 그러는 수밖에 없는 거다. 참 어리석다. 왜 밥 먹냐? 왜 살고 숨 쉬느냐? 숨 쉬고 왜 사느냐? 예수를 어떻게 믿는 거냐 그 말이요. 성경을 왜 보느냐 그 말이요. 자기가 밥 먹고 사는 이 부자에다가 맞추어요? 예수 믿는 것을 밥 먹는 밥숟가락에 맞춰요? 돈에다가 맞춰요? 참 미련하다.
예수 믿게 하고 성경을 보게 하고 하는 것은, 하나님 당신처럼 닮으라고 하는 거기에는, 온전이라고 하는 거기에는 일반세상 사람들이 선악과 따먹고 타락되고 저주받는 그 삶을 경험을 안 해도 너는 살 수 있다는 것이 들어 있잖아요? 안 믿으면 어쩔 도리가 없어요. 짐승이라면 두들겨 패서라도 목을 홀쳐서라도 하는 거지만 사람이기 때문에 그래서 인간 네 자유로 네 갈 길을 가는구나. 옳은 말해도 안 들으면 그건 소귀에 경 읽기고 얼마 못가서 네가 가고자 하는 그 끝을 네가 볼 것이다.
하나님께서 새로 만든 나무에서 열매만 보여주면서 ‘이 열매의 나무를 한 번 그려보아라’ 한다면 인간이 그릴 수 있겠느냐? 나무를 모르는데 열매는 보여줬고 나무는 안 보여주었어. 그럼 그 나무를 그릴 수 있겠느냐? 하나님은 잘 그리실까요? 그래요. 왜? 당신이 그 나무를 만들었기 때문에. 나무 없는 열매가 있는 겁니까? 열매가 있으면 나무가 반드시 있지. 세상에는 비슷한 나무들이 많은지라 열매를 보기 전에는 그 나무를 잘 모를 수도 있습니다. 열매가 열려야 그 나무를 알 수 있겠더라. 하나님은 아무리 비슷한 나무가 많이 있더라도 앞으로 열릴 열매들을 다 알고 계실뿐만이 아니라 열매의 맛까지 다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이룰구원을 위하여 우리 인간이 먹으면 해를 받는 열매도 만들었습니다. 왜 해를 받는 열매를 만들었어요? 인간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요? 먹으면 죽는다 그 말이지요? 나무가 그런 것처럼 어떤 인간을 만나면 너는 죽는다. 왜 그러냐? 그 사람의 마음속에 악한 것이 가득 들어있는 열매 같은 나무다. 그러니까 그 사람을 만나면 죽는다. 맞잖아요? 그러니까 사람의 외모 모양 형태가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속에 열려져 있는 그 열매가 문제 아니냐 그 말이요.
사람이 다는 그렇지 않습니다만 그러나 보통은 또 보면 사람이 참 희한해요. 보기에는 사람 좋아 보이고 괜찮게 보이고 첫 인상이 좋아 보이는데 사귈수록 사귈수록 마음이 냄새나고 마음이 굉장히 비뚤어진 사람을 많이 만나봅니까? 그러니까 사람은 겉만 보고 알 수 있느냐? 알 수 없다. 겉만 보고 용단하지 마라. 그런데 사람들은 겉을 보고 많이 논하지요. 이러쿵저러쿵. 예수 믿는 사람도 그렇지요? 그게 너의 큰 실수다. 너의 실수다. 그게. 그게 똑똑한 것 같으나 너의 실수라는 그 말속에는 너에게는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 그런 사고방식으로 사람을 본다면 너는 앞으로 큰 피해를 볼 수 있는 가능성이 놓여져 있다. 그게 아예 놓여져 있다.
가시나무는 위로 자라고 찔레나무는 넝쿨로 옆으로 자랍니다. 어쨌든 사람이 만졌다면 콕 찔림을 받고 피를 보게 됩니다. 가시나무는 건드렸다 그러면 그건 피 봐요. 맞지요? 울타리 장미 넝쿨장미 건드렸다 그러면 이거 피 봐요. 넝쿨장미가 아무리 아름답다 그래도 건들지 말아요. 그건 가시가 있어요. 허기야 뭐 아름다운 장미에 가시가 있어야 함부로 못 건들지 가시마저 없다면 그거 뭐 다 잘라다가 꽃병에 꽂을 거 아니겠어? 그것도 일리가 있어. 그러니까 장단점을 가만히 보면 ‘그 넝쿨장미 건들지 말고 그냥 내버려둬라. 그렇게 살다가 죽게’ 그런 의미도 들어있어. 만지기만 하면 피를 보니까. 무슨 말인지 지금 알아요? 사람보고 하는 말이요. 사람에게 해를 준다. 해를. 얼마나 많은지 몰라. 얼마나.
이제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땄다는 사람이 있느냐? 찔레나무에서 포도를 땄다는 사람이 있느냐? 없습니다. 그것은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한 겁니다. 우리의 이룰구원의 이치로 깨닫게 해주시려고 그렇게 안 되도록 해놓고 또 그렇게 되도록 해놓고. 그러나 이치에 무지한 우리 인간들은 가시나무에서 또는 찔레에서 무화과 포도뿐만 아니고 각종 열매를 따고자 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있다. 그게 문제란 말이요.
왜 이런 말씀을 써놨을까요?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딸 수 있나요? 그거 안 되지. 찔레에서 어떻게 포도를 딸 수 있어요? 그 말도 안 되는 소리지. 근데 왜 그런 말씀을 하고 계신가? ‘너희들의 마음이 이치도 아니게 그렇게 살고 있구나.’ 쉬운 예를 들자면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의사단일성에 하나님의 뜻에 맞는 마음도 아니고 완전히 세상화 된 마음인데 그런 교인이 자꾸 하나님보고 ‘복 달라. 잘 살게 해 주십시오. 병 낫게 해 주십시오’ 그러면 그게 맞는 소리냐 그 말이요. 그 이치가 맞는 소리냐? 하나님께서 주고 싶겠냐 그 말이요. 예를 들어서 공부 못하는 자식이 자꾸 아버지한테 ‘돈 달라. 뭐 어떻게 해 달라. 자기 좋도록 해 달라’ 그러면 그게 맞는 말이냐? 그게? 그게 맞는 말이냐? 이치가 아닌 마음을 품고 예수 믿는 사람이 참 많다. 말하자면 ‘복 주시오. 복 주시오’ 그 말 안 해도 복 받을 사람의 마음으로 만들어지면 복은 굴러들어온단 말이요. 그게 이치라.
‘복 달라’ 그러면서 자기 마음을 하나님을 향해서 한 번이라도 비춰본 사람이 있습니까? 오늘날 사람들 자기 마음을 자기 얼굴은 어디서 보아요? 남의 얼굴을 쳐다보면 자기 얼굴이 보여요? 자기 얼굴은 거울 앞에서 보는 거지요? 맞지요? 자기 마음의 거울은 어디서 봐요? 마음거울도 있는데 마음거울 앞에 볼 줄 알아야지? 하나님 앞에. 네가 믿는 주님 앞에. 근데 예수님을 모르면 자기 마음도 모르는 거야. 왜? 비춰져야지. 세상을 많이 갖고자 하는 마음, 욕심적인 그 세상마음을 가지고 예수 앞에 서니 그게 보여요? 안 보이는 거요. 예수님을 믿는 것은 주님과 인격 대 인격, 성품과 성품. 예, 우리 주님의 신령한 것으로서 우리의 영과 잘 매치가 돼야 바른 사람이 돼. 바른 교인이 돼. 고상한 교인이고 멋있는 교인이요.
오늘날 세상 속화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자기 마음은 하나님을 닮아가는 그 마음이 없이 세상을 계속 쫓아가고 있으면서 하나님한테 자꾸 각종 열매를 따먹으려는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다. 각종 열매가 어떻게 따져요? 무슨 말이냐 하면 거짓된 교회인도자들이 타락된 인간들의 마음 밭을 모르고 무조건 예수이름으로 종교적인 행사를 벌려 그것이 하나님 앞에 영광이 되는 열매인줄로만 생각을 하고 있구나. 예수 믿는 자기는 하나님 앞에 마음 밭을 살필 줄 알아야 돼요.
우리가 차를 타고 가면서 길을 걸으면서 들판을 보면 벼 심은 논을 가만히 보면 어떤 농부는 참 부지런히 그 뭐요? 논에서 일을 했나봐. 무슨 말이냐? 그 피라는 거, 나락 밭에 피. 벼 밭에 피 많이 나지요? 그게 하나도 없는 그런 논이 있어요. ‘참 누군지는 모르지만 참 부지런하구나’ 칭찬이 가고, 그런데 어느 논은 이게 참 벼가 그저 2/3나 될까? 피가 1/3정도나 될까? 이거 정말 주인은 누군지 모르지만 그렇게 게으르다. 자기가 농사짓기 싫으면 남에게나 주지. 분명히 그 사람 돈 많은 사람일 거다. 돈이 많아서 남 주기는 싫고 또 농사짓는답시고 안 지으면 또 뭐 벌금인가 세금인가가 나온다며? 또 피가 유달리 많은 그런 논이 있어요. 떨면 타작을 하면 어떻게 될까? 타작을 하면 어떻게 되겠느냐? 얼마 안 가서 그 피를 다 솎아내야 되는 건데 그대로 내버려두고 그 떨어놓으면 이게 어떻게 되겠느냐? 한 이삼 년 지나면 전부 피 밭이 돼버린다.
목사님들은 ‘사람 마음 밭에 이게 피가 많이 있는 거냐, 정말 바람직한 알곡이 많이 있는 거냐’ 이걸 잘 생각을 해야 된다. 부자라고 믿음 있는 것도 아니고 또 가난하다고 믿음 있는 것도 아니에요. 밭이 여러 종류가 돼있기 때문에.
그래, 이 교회가 하나의 종교인으로서 일반적인 일을 하는 이건 예수 안 믿는 불교인도 할 수 있고, 유교를 믿는 사람도 할 수 있고, 남묘호랑교를 믿는 사람도 할 수 있고, 미신을 믿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일반적인 사회적인 그런 봉사는 다 할 수가 있어요. 우리 주님이 교회가 그것을 못해서 그걸 가르쳐주러 왔느냐 그 말이요. 인간이 다 할 수 있는 그 일을 못하는 걸 보고 하늘로부터 내려왔느냐 그 말이요. 예수님이?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오셨으니 하늘의 일을 말씀을 하시더라. 그런데 오늘날 교회가 하늘의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성경은 하늘의 일을 말하고 있는데, 지금 이 말씀도. 교회가 왜 땅의 일을 해요? 이치에 맞는 소리요?
하늘의 일이라야 네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머리를 닮고 하나님의 마음을 닮는 거다. 이게 안 믿어져요? 모르겠거들랑 학교로 가봐라. 영어선생 자꾸 따라다니면 자기 마음 밭이 영어 밭이 돼요. 수학선생 따라다니면 자기 마음 밭은 수학 밭이 돼요. 맞잖아요? 이치가. 노름하는 사람 따라다니면 자기 마음 밭은 화투 밭이 돼버리지. 왜 그런 이치를 왜 어기지요? 예수 믿으면서 왜 어기지요? 이게 미련퉁이다. 이게 미련퉁이야. 그냥 밥 먹고 걸어 다니고 하니까 인간이지. 아니야. 그 정신은 뭐로 돼있냐? 그 정신은? 호랑이냐 원숭이냐 닭대가리냐 곰이냐 뱀이냐? 왜 자기 마음 밭과 왜 자기 정신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몰라?
감기 들면 머리 아프지? 감기 들렸는데 머리 안 아프고 그런 사람 있어요? 콧물 줄줄 흐르고. 감기 들면 머리 아프고 열 나. 그런 거는 알면서 예수 믿으면서 자기 머리통이 어디로 생각이 어디로 돌아가는 건지? 세상으로 달아나고 있는 건지, 하나님 앞으로 쫓아 올라가고 있는 건지 그거 생각 안 나요? 하나님 앞에 하나님을 섬긴다면 경외한다면 내 마음과 뜻과 힘과 정성을 다해서 나의 전인격을 다해서. 왜 그러라는 거요? 그럼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다 받는다. 네가 복된 사람이 되고 네가 고상한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형벌에 놓이지를 않고 높은 사람이 된다, 존귀 영광스러운 사람이 된다.
예수를 어떻게 믿고 있는 거요? 그냥 예배당에 들락날락하는 거요? 설교 듣는 게 뭐요? ‘예수 믿어 복 받아라’ 그러면 ‘아멘’ 하러 돌아다니는 거요? 자기 마음속에 뭐가 가득 들어있는지? 자기 마음 밭을 다른 말로 하면 창고야. 자기 마음은 창고야. 뭐가 들어있어? 들어있는 대로 나온다. 그건 못 속인다. 누구든지 못 속여요. 아무리 공부를 많이 했어도 그 공부는 머리통 속으로 들어갑니다. 하나의 지식적으로 들어가요. 아무리 대학박사라도. 그러나 하나님은 그걸 보시는 게 아니고 마음 밭에서 어떤 곡식이 나고 있느냐? 사람의 인격과 성품을 본단 말이요. 네 마음 밭이 뭐가 있냐? 예수 믿는 것은 머리로만 생각지를 말아. 사람은 일반적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야 됩니까? 정이 있어야 돼. 정.
오늘날 기독교회가 예수 안 믿는 그러면서도 이방종교인들이 할 수 있는 그런 것을 하고 있다. 이게 아니다. 이게. 오늘날 교회들이 경쟁을 하는 거 같아. 어떻게 경쟁이냐? 큰 집 짓고 사람 많이 모이고. 안 믿는 사람들도 돈만 있으면 다 할 수 있는 그런 것은 세상이 하도록 내버려두고 네가 주 여호와 하나님을 닮자. 네가 예수 믿냐? 예수를 닮자. 예수님의 인격과 성품과 지혜와 지식과 예수님의 마음을 닮자. 인격적으로 닮자. 이게 교회요. 예수 믿는 사람이 예수 안 닮을 바에야 뭐하려고 예수 믿어? 예수 믿는 가치가 뭐 있어? 수 년 수 십 년 믿지만 예수 믿는 가치가 어디 있느냐고요?
자기 혼자만 예수 믿어요? 혼자 어떻게 예수 믿어? 성경가지고? 성경은 뭐라 그러는데? 예수 믿는다고 하는 것은 자기의 전 생애 전 폭을 다 말을 하는 거요. 그럼 살면서 남하고 연관을 안 짓나? 물건을 안 만지나? 안 사먹나? 늘 말씀 드렸습니다만 학교에서 공부를 했으면 그만큼 배웠으면 자라나는 사람들에게 가르칠 줄 알아야지. 가르칠 줄 모르고 사람노릇 못하고 사회에서 똑바른 사람 안 되고 교회에서 일꾼으로 자라지를 못하고. 뭐요? 뭐하는 사람이요? 어떤 열매가 맺힌 거요? 그게? 가정에서도 그런 사람 좋아해요? 그런 자식 좋아해요? 그런 아버지 부모 좋아하더냐고요? 그 가정이 되겠어요?
사람 못된 사람이 국가에 정치로 나가봐요. 그게 나라가 잘 되겠어요? 국민에게 세금이나 걷어먹으려고 그러지. 사람이 틀려먹었어. 사람이 안 됐어. 교회는 사람 만들어지는 거야. 참 사람. 주님 같은 사람.
오늘날 기독교회가 이방종교인들과 손을 많이 잡고 있어. 이 성경을 보면 우리 주님이 아마 오늘날 교회를 보고 놀라 자빠질 거야. 오늘날 기독교회가 어떤 짓을 하고 있나? 만능의 능력자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그 분을 손에 붙잡고 기독교인이 그런 짓을 하는 거요. 정신을 보면. 절간의 부처하고. 부처가 사람이요? 돌. 만능의 능력자 인격자이신 이 분을 부처의 손을 잡고 악수하라고 그러는 거다. 오늘날 기독교가 어떻게 돌아간 거냐? 하나님의 진노를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우리 모두 저기 무덤 앞의 망부석이나 또는 그 뭐요?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인가? 거기 가서 ‘자네 잘 있었냐’ 하면서 악수를 해봐요. 누가 높은 거요? 누가 깎아서 만들어 놓은 거요?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세상 속화되고 타락된 사람들이 그렇게 사는 거와 같구나. 그러니까 하나님이 돌부처를 딱 손을 붙잡고 ‘어이, 세상에 죄가 많으니까 우리 같이 손잡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봅시다’ 그런 거요. 그런 식이요.
성경에 보면 땅의 짐승과 바다의 짐승이 손을 같이 잡지요? 요한계시록에 나오지요? 왜 짐승이라고 하나?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요. 짐승 같은 그런 정신을 가진 교회를 보고 하는 말이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자기 마음에 안 들던지 애를 먹이고 나쁜 짓을 하면 ‘아이고, 저런 순 독사 같다느니 미련 곰탱이 같다느니’ 그럽니까? 사람을 두고? 그래요.
오늘날 자기 마음은 뭐 같아요? 벌을 닮은 사람도 있습니까? 휭 날아와 가지고 사람을 탁 쏘고 달아나는 그런 사람도 있어요? 그 어린애들도 그런 거 있습니까? 자기 친구도 아닌데 벌 날아오듯이 와가지고 남의 아기를 꽉 물고 달아나는 그런 애도 있습니까? 사람을 잘 무는 애도 있습니까? 뭘 닮은 거요? 사람을 잘 할퀴는 애도 있습니까? 뭘 닮은 거요? 뭐가 사람을 잘 할퀴어요? 고양이. 그래요. 고양이를 왜 만들었냐? 고양이 같은 사람이 있다고 하는 것을 알라고 고양이를 만들었어.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누가 선을 내요? 어떤 사람이? 그 선한 사람은 왜 선한 사람이라고 그래요? 선한 것을 내는 것 보니까. 어디에서? 마음에서 쌓은 선이기 때문에. 선한 것 많이 쌓았어요? 있어요?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기차 전철 타고 다니면서 가만 보면 주로 중고등 대학생들이 이게 많이 타고 다니지요. 간혹 보면 어떻게 그렇게 욕지거리로 말을 해요. 욕으로 그냥 통해버려요. 그래, 그런 학생들 마음속에 마음창고에 뭐가 가득 들었다는 거요? 욕이. 욕이 가득 들었다. 욕이 가득 들어있어. 그래요? 여기 오신 분들도 그래요? 어떤 사람은 미움이 가득 들어있고 어떤 사람은 벙어리가 가득 들어있고. 자기 속에 뭐가 들어있는지 웬만하면 다 알아요. 자기가 자기 마음을 웬만하면 다 느낄 수 있지요? 사람은 본 것, 들은 것, 경험한 것, 느낀 것, 배우고 생각한 것 등등 마음창고에 들어있었던 것이 말로써 입으로 통해 나오게 돼있습니다.
보통 보고 듣고 경험하고 배우고 생각한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많이 말을 하게 됩니다. 아는 것이 없으면 모르니까 말을 안 하게 되지요. 그렇지요? 그런데 아는 것도 많이 있는데 말을 안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악한 것으로 많이 가슴속에 쌓여있으면 악한 것이 나올 것이고. 안 나오고? 나올 것이고. 안 나올 수도 있지요? 나와요? 나와요. 예, 구멍이 뚫려있으면 들어가기도 하고 나오기도 하고 그래요.
자기의 눈은 사진기와 같아서 참 만능사진기요. 아주 자동화 시스템으로 잘 돼있어. 찍혔다 그러면 들어가. 그렇지요? 사진기가 흐릿하고 먹통이 돼있으면 어떻게 찍겠어요? 모르지. 귀로 된 녹음기도 들어가면 녹음이 되는데 귀로 들리는 소리가 먹보 같으면 어떻게 녹음이 되겠어요?
그런데 사람인지라 밥은 먹고 살고 생각은 어느 정도 하기 때문에 이 참 그런 거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지식의 말을 많이 주고받고 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만날 먹고 마시는 그거. 동네 아주머니들 만나면 ‘돈 얼마나 벌었냐? 뭘 먹었느냐? 뭘 사서 입었느냐?’ 만날 때마다 맨 그 소리. 마음속에 그것만 가득 들어있는 거지.
악한 것으로 많이 마음속에 쌓였으면 악한 것이 나올 것이고 선한 것으로 마음속에 많이 쌓였으면 선한 것이 나오는 겁니다. 나오는 것은 들어있었기 때문에 나오는 겁니다. 우리 예수 믿는 기독자들의 마음속에 세상의 불타질 것으로 많이 들어있으면 그런 소원 목적과 그런 말이 많이 나오게 돼있습니다. 하늘의 신령한 하나님의 말씀의 이치로 많이 들어있으면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의 이치가 자기 입으로 통해서 많이 나옵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선하다. 악하다’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선악과 따먹은 세상사람들의 그 도덕성 기준을 가지고 ‘선하다. 악하다’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당신을 기준해서. 하나님은 선이시요, 그러니까 하나님 당신의 속성 성품 하나님의 마음이 예수 믿으면서 나에게로 건너와서 많이 들어있다면 그건 선한 사람이다. 그리고 입을 열면 선한 말을 하게 된다. 하나님의 말을 하게 되고 하늘나라를 말하게 되고 사람 사는 이치를 말하게 되고 생활하는 이치를 말하게 되고. 그 다 선에 속하는 거요.
우리 인간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는 선한 역사. 의롭고 선한 역사이다. 그런데 자기에게 의롭고 선한 역사를 하나님은 하고자 원하는데 그것을 안 받으려고 그러고, 모르고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은 그 사람은 악한 사람이다. 선한 것은 하나님의 것밖에 없다. 하나님의 것을 많이 가졌느냐? 하나님의 선이 나올 건데 그게 싫다고 안 받고 안 듣고 안 배우고 한다면 그 사람은 악한 사람이다. 알겠어요? 아담 하와가 선악과 따먹은 그 기준지식으로 타락된 지식으로 들어있다. 그 네 마음은 악한 거다.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진단을 내린단 말이요.
‘나쁜 짓을 해서 악하다’ 그 이전에 나쁜 짓이 왜 나오느냐?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에 나쁜 짓이 나오지. 우리가 성경을 배우고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선한 지식이 많이 들어가서 자기 말이나 행동이나 선한 것으로 나와야지. (계속)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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