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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6:46-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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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6장 46절-7장 8절.
46절-49절: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냐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히되 잘 지은 연고로 능히 요동케 못하였거니와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주초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히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
신앙사상적인 표현으로 우리에게는 이것이 이제 귀합니다. ‘집을 짓되 모래 위 또 탁류 반석 위 주초’ 하는 것은 일반 것을 갖고 와서 그 속에 우리의 구원도리 이치를, 물질이치보다 ‘물질이치를 왜 그렇게 만들었느냐’ 하는 우리에게 신앙적인 사람으로 바로 세워지는 그 이치를 알려주기 위해서. 그래서 그 면으로 보면서, 우리의 구원도리라 그 말이요. ‘구원’이라 그럴 때는 신앙사상과 정신 그리고 자기의 인격 혹은 성품 그 면을 깨닫게 해주려고 이런 것을 든다 그 말이요.
예를 들어 신앙사상적인 표현으로 탁류라 함은 깨끗지 못한 세상적 육적 비진리적 옛사람 부패성적 마귀적인 모든 가르침들을 말하는 겁니다. 그 정신. 참 진리는 맑고 깨끗하고 거룩하고 오염이 없는 건데 교회에서 세상적으로 가르치는 이것은 전부 탁류라 그 말이요. 깨끗지 못하고 구별이 안 되고 혼탁하다 그 말이요. 성경구절 가지고 해도 하나님 말씀이 아니라. 성경구절가지고 이놈의 마귀가 세상정신으로 돌아가게 만든단 말이요. 목적을 그렇게 가르치는 게 다 탁류라 그 말이요. 그런 가르침들을 말하는 거다.
예수님께서 ‘너희들은 사람들의 미혹을 삼가라. 그리고 바리새인들이 가르치는 것을 삼가라. 주의하라.’ 사람 넘어뜨리는 것은 물질 이전에 자기가 물질성으로 돌아가 있으면 그 사람은 넘어져 버립니다. 서지를 못해요. 넘어져 버린다. 분명히 그렇다. 아무리 예수 믿어도 물질성적인 그런 면이 슬며시 기대지면 그 사람 넘어진 거요. 교회 다녀도 그 사람은 넘어진 거라. 그걸 알아라. 정신 넘어지면 사람은 아무 힘없습니다.
기독교 복음을, 이 성경 하나님의 말씀을 사회주의적 가르침이나, 일반사회 말이요. 그런데다가 목적을 두고 가르치는 것. 그런 가르침. 그리고 ‘복 복’ 하면서 세상 복으로 가르치는 그런 것. 그리고 신비주의적 이런 가르침. 자꾸 ‘뭘 보았네. 들었네. 꾸었네. 환상을 보았네. 꿈을 꾸었네. 음성을 들었네’ 하는 고런 기도하다가 ‘뭘 어쨌다네’ 그런 가르침. 그리고 ‘참자’ 하는 극기. ‘이겨야 된다. 배가 고파도 이겨내야 된다.’ 물론 그런 때는 있는 거예요. 그런데 일부러 ‘배가 고파도 이겨내야 된다. 내가 이까지 것 못 참으면 신앙이 아니다’ 뭐 이런 거. 신앙은 정신면에 있는 거지 물질 면에 있는 게 아니에요. 정신면이 약하니까 물질 면에도 넘어가는 거지.
가르침으로 극기주의적 또는 은둔주의, 자꾸 사람이 골방기도 해가면서 방구석에 처박혀 가지고 일도 안 하고 만날 기도만 하고 눈앞에 번뜩하는 별이나 보려고 그러고. 이거 은둔주의적. 그 뭐 나라를 위해서 또 어떻게 살아야 된다느니, 구복주의적 가르침. 그런 목적 그 말이요. 현세주의적, 현재. 현세주의적. ‘이렇게 살아야 된다. 이렇게 살아야 된다’ 하는 그런 가르침들. 현세적으로. 그러니까 여기에는 상황을 따라가는 식. 이런 것들은 다 탁류입니다. 탁류.
그러니까 탁류적인 그런 가르침들은 세상에서 그런 열매를 다 따먹으려고 그래요. 우리 열매는 천국에까지 가는 거요. 현세의 열매가 천국에까지 가는 것. 그 미래의 참 내 영능의 실력을 지금 닦는 것. 그런데 탁류, 이 혼탁한 가르침은 이 세상에서. 현세에서. ‘요런 경우는 요렇게 살고 저런 경우는 저렇게 살고’ 하며 따라가면서 바람에 불려가면서 사는 것.
그런 가르침에는 반석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반석은 기초 바닥이 없단 말이요. 사람이 설 수 있는 바닥이 없어. 기독교 종교적으로 말하면 예수가 없단 말이요. 또 교훈적으로 말을 하면 예수님의 가르침 그 정신이 없다. 그러니까 예수 믿으면서 세상정신으로 들어가 있는 요건 기초가 없는 겁니다. 바닥이 없다. 그러니까 사람이 세워지지 못해요. 절대로 못 서요. 신앙믿음으로 올라가지 못해요. 절대로 그래요. 그건. 항상 물질성적인 면으로 기울여져 있고, 교회는 들락날락해도 사람이 안 세워져요. 그건 자기 고집이지 안 세워져요.
사람이 세워지면 그 다음에 늘, 이 사람이 그렇잖아요? 어린애기는 자기 위주로 살아요. 나이 들면서 조금 깨달으면 다른 사람을 도와주기도 해요. 맞지요? 좀 더 훌륭한 정신이 들어가면 사회나 국가를 위한 어떤 일을 업적을 남겨놓지요. 일반적으로 보면. 예수 믿으면서 하루 이틀 믿고 십 년 믿고 아 이렇게 믿어나갈수록 성장성은 교인들에게 유익을 줘요. 신앙믿음에 유익을 줘요. 그러니까 그런 일에 수종을 든단 말이요. 수종을 못 들면 이거 아주 어린애기다. 이거. 나쁘게 말하면 굉장히 고집이다. 이건 똥고집이다. 그러면 생각을 해봐요. 사회 어디 가서 살겠냐? 누가 좋아하냐 그 말이요. 사회 어디들 간들? 식구가 좋아하겠어요? 가정에 살면서 가정에 유익을 안 주면 식구가 좋아하더냐?
교회에서는 사람이 만들어질 수 있는, 만들어지게 하는 진리의 말씀을 가지고 자꾸 규모를 잡아가고 사람이 바로 돼 들어가는 그게 교회요. 그래서 교회 안에서 서로 수종 들고 인사도 하고 사정도 물어보고 도울 거 있으면 돕고 이런 게 다 들어가 있어. 이게 사람 사는 거다. 교회성도로서 마땅히 할 일이다. 성도의 교제라고 하는 것은 성경만 왔다갔다 말하는 게 아니다. 전 인격이 다 들어가는 거다.
몸은 왜 줬냐? 활동을 하라고 줬다. 눈은 왜 줬냐? 보라고 줬고, 귀는 왜 줬냐? 들으라고 준 거다. 다 써먹어야지. 인간으로서 인간에게 써먹어야지. 인간에게 유익을 주고 가야지. 세상에 살면서 모든 인간의 유익만 자기가 받고 자기 혼자 달랑 있으면 이게 어떻게 할 거요? 이거 어떻게 일반 불신자도 그렇게 사는 사람 좋아해요? 교회 안에서 그렇게 살면 안 된다. 사람이 안 된다. 사람 꼴이 안 된다. 너만 그러냐? 자라는 자식도 그렇게 들어가 버린다. 어떻게 할 거요? 사람이란 오각의 오감성이 있어서 희로애락에 그 다 느낌성이 있잖아요. 하나님 앞에서 안 고칠 거냐? 정말 눈에서 피가 나도록 자극이 돼야 되겠냐? 나쁘게 말하면 귀신이 들렸구나. 이거.
이 탁류에는 진리의 신앙지식이 없습니다. 진리상식도 없습니다. 지혜가 없습니다. 사망적인 사상에 그냥 휩쓸리고 마는 겁니다. 세상적인 사상적 바람에 유행바람에 다 휩쓸려. 안 휩쓸리나? 휩쓸리고 마는 거지. 성령의 열매로 된 진리사상화 진리인격화 진리실상화로 된 깨달음이 있을 수가 없다. 그러니까 성장도 없는 거고 자기 인격화 자체화 된 것도 아무 것도 없는 거다. 죄를 안 짓는다가 아니고 그 자체가 이루지 않는 그 자체가 죄다.
우리는 죄를 보는 눈이 좀 고급적이 돼야 돼요. 남에게 해로운 행동한다 하는 그건 죄요. 일반적으로도 알아. 일반적으로 남에게 나눠줄 줄도 모르고 자기만 달랑하게 사는 사람 있습니까? 자기 벌어 자기 먹고 자기만 사는 사람. 사람 가운데서 살면서 자기만 사는 사람. 이룰구원 차원에서 하나님 앞에 죄란 말이요. 나이 먹고 교회 오래 다니고 성장이 되면 뭔가가 정복 발전이 있어야지.
탁류의 그릇된 신앙, 비진리적 육적인 신앙사상, 세상적인 그런 물을 먹고 그런 정신을 먹고 빠진 사람을 끄집어 올리기란 참 힘들어요. 왜 힘드냐? 마치 옷에 물이 잔뜩 먹은 사람을 끄집어 올리려고 하는 것처럼 잘 올라오지 않으려고 하는 그런 성질이 들어있습니다. 무슨 말이냐? 옷을 입은 채 물에 빠져놓으면 끄집어 올리려면 잘 안 올라와요. 옷에 물이 잔뜩 먹었기 때문에. 물이 슬슬 빠져야 좀 가벼워서 올라오는 거요. 말하자면 힘들다. 힘이 드는구나. 왜 그렇게 힘이 드는 거냐?
기초도 파지 않고 반석 위에다가 놓지도 않고 그냥 모래나 흙 위에다가 자기 집을 세우면 사람이든 재산이든 다 사망적인 탁류 즉 비진리에 다 쓰러지고 날려가는 거다. 지진이 났거나 홍수가 났어도 벽은 다 허물어 졌는데 기둥이 딱 서있다면 야, 참 누가 지었는지? 그런데 아무리 높은 집이라도 지붕이든 다 깡그리 무너졌으면 어딘지 모르게 지은 사람이 생각이 나요. 기둥이 바로 서있으면 그건 다시 세울 가능성이 있는 거지. 벽을 붙이고. 이제. 기둥이고 벽이고 다 허물어졌으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된다. 성장이 없이 이룰구원이 없이 교회 다니고 오래 다니면 요건 고집이다. 이건 고집이다. 분명히 이건 고집이다. 속에 앙칼성이 들어있단 말이요. 부드럽고 야들하고 순종성이 들어있는 게 아니라 이게 가시 같은 고집이 꼿꼿하게 서있어. 맞지요?
주초가 없이 흙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은 지혜가 있는 사람입니까, 없는 사람입니까? 상식이 있는 사람이요, 없는 사람이요? 누가 보아도 홍수가 나면 무너지고 떠내려간다는 것을 모르는 자가 없는데. 맞지요? 결국은 인명과 재산에 이건 몽땅 손해보고 고통은 고통대로 겪고 심판은 심판대로 당하는 겁니다. 이것이 불신자가 아니라는 거요. 이게 믿는 사람이라는 거지요.
주님의 강함은 세상 그 어떤 것이 와서 넘어뜨릴 수가 없습니다. 세상 그 어떤 것이 와서도. 세상 그 어떤 것이 주님의 강하고 능력 있는 말씀을 변질시킬 수가 없어요. 이 강한 말씀으로 자기 인격화 시켰으면 어느 누가 그 사람을 넘어뜨리겠느냐? 무엇이 와서 그 사람을 넘어뜨릴 수가 있겠느냐? 진리로 서있는 사람 여기에는 판단 분석이 다 들어가 있고 거룩으로 서있고 생활의 모든 활동 면에서는 사랑이 많고 봉사심이 강하고 많은 사람에게 덕을 세우고 하는 요게 들어있지만, 예 완전히 똥고집은 이것도 안 넘어가요. 안 넘어간 사람이 볼 때에 안 넘어간 사람인데 요건 넘어가놓고도 넘어간 줄도 모르고 있다. 그 깡아리 있는 사람 서지를 못했어요. 안 서있는데 자기는 서있다고 한 것처럼 돼있는 거라. 이게. 아는 깡아리가 아니라 이건 모르는 똥배짱의 깡아리.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를 하늘의 것으로 강하게 만들어 주고자 하는 겁니다. 예수 믿는 상식과 비상식, 진리적 지식과 비진리적 지식. 오늘날 자기는 어디다가 세웠어요? 어떤 탁류라고 하는 그 세상적인 사상이 오면 안 불려가겠냐 그 말이요. 그걸 알아야 된다. 자기가 진리가 아닌 다른 것에 마음 쓰고 있다면 그건 분명히 그 면에 대한 탁류가 오면, 그런 바람이 분다거나 그런 유혹과 미혹이 오면 넘어가게 돼있어. 고건. 안 그럴 것 같아요? 하나님의 말씀이 옳으면 자기가 빨리 고쳐.
7장.
1절: 예수께서 모든 말씀을 백성에게 들려주시기를 마치신 후에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시니라.
예수님께서 백성들에게 모든 말씀을 다 들려주셨습니다. 잘 알아듣고 깨달았으면 이제 생명 길 좁은 길을 가면서 자기의 이해타산과 가치와 판단과 평가성을 정확히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이다. 절대 정확한 신앙의 기초 위에 자기의 삶 전체를 세워야 합니다. 개인적 사건이나 가정으로 오는 사건이나 교회로 오는 사건이나 전 세계적으로 오는 사건이나 우리 모두에게 오고 있으니 진리생명 길로 참 사람 만들어지며 가는 것이 넘어지지 않는 겁니다. 사람이 정신 사상으로 그 사람은 넘어지지 않는 거다.
말씀을 마치신 후에 왜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시는 것일까?
2절-5절: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 예수의 소문을 듣고 유대인의 장로 몇을 보내어 오셔서 그 종을 구원하시기를 청한지라 이에 저희가 예수께 나아와 간절히 구하여 가로되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 저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
왜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셨느냐? 들어가셔서 하신 일을 보면 하늘의 뜻을 행하러 가셨고 사람을 온전케 하려고 가셨고 천국복음을 전하러 들어가신 겁니다. 가버나움에 들어가자마자 어떤 일이 생겼느냐?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생겼다고 전갈이 왔습니다. 백부장이란 백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있는 군대의 지휘관이지요. 이 백부장의 마음에 사랑하는 종이란 다면 얼마나 아끼는 종이겠느냐? 그렇지요? 그런데 병이 들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우리 인간은 죽을 병이 들면 죽고 병이 안 들어도 연수가 다하면 죽고 사고가 나도 죽고 우리 인간은 이래저래 죽습니다. 병이 들어와서 사람을 살리는 병은 없습니다. 맞습니까? 건강한 사람도 건강도 죽는 쪽으로 가고 있고 가만있어도 죽는 쪽으로 가고 있고 일을 해도 죽는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맞아요? 세상의 부귀와 명예나 영광을 가졌어도 죽는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이 죽는 것을 막을 군대의 신은 없습니다. 맞아요? 아끼고 사랑하는 종이 죽어간다. 백부장이 지금 어쩔 도리가 없잖아요. 아끼고 사랑하는 백부장의 종이 죽어간다. 예수님께서 지금 이 장면을 모르실까요? 알고 들어가시는 거요, 그냥 모르고 들어가다 보니 그런 일이 생긴 거요? 알고 들어가는 거요. 예수님에게 그게 다 그렇게 들어가 있어요. 그럼 오늘날 인간 자기는 상대와 어떤 만날 계획을 하면 알고 들어가는 거고 가다 보면 아는 사람을 턱 만났을 때에 알고 그 날 몇 시 몇 분 알고 만나는 거요? 인간의 표현으로 우연이라는 말이 이제 쓰이지. 계획을 해놓고 들어가도 못 만날 수도 있고. 우리 인간 편은 그래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장면을 아십니다. 그런데 백부장은 또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어. 들어오신다. 그 소문을 들었어. 그리고 즉시 유대인의 장로 몇을 보내어 유대인의 장로 몇을 보내어 자기의 종을 구원해 주시기를 청했습니다. 아마 백부장은 로마군대 백부장일 텐데 그런데 유대인의 장로 몇을 보냈어요. 유대인의 장로들이란 어떤 직위의 사람들이냐? 유대공회에 나가는 분들이요. 높은 분들이란 말이요. 무슨 의원. 율법을 가지고 신앙 면을 가르칠 수 있는 분들이요, 백성들을 가르칠 수 있는 신분이 높은 분들이요. 그러니까 낮은 분들이 아니란 말이요. 그 신분이 아주 높아요.
장로들이 예수님께 말하는 그 내용을 보아서 백부장은 분명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구나. 맞잖아요? 그렇게 나오는 거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구나. 하나님을 믿는 유대백성을 사랑했고. 로마는 이방민족이지요?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 유대백성을 사랑했고, 그리고 회당도 지어주기도 했단 말이요. 유대인들의 회당. 지금 쉽게 말씀드리자면 예배당을 지어줬단 말이요. 쉽게 말하자면. 유대장로들 하고도 친했습니다. 본문이 친하고 있어요. 겉으로는 이방인이지만 그 신앙정신만큼은 이방이 아니로구나. 맞지요? 백부장은 그 정신만큼은 신앙인이지.
그래서 장로들은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종을 고쳐주심을 좋게 여긴 겁니다. 장로들이. 다시 말씀드리면 중보역할을 하고 있구나 그런 느낌이 들어요. 이것을 그런 장면을 예수님은 이미 알고 계시는 겁니다. 그리고 고쳐주시려고 그 고을로 들어오고 계셨고. 그걸 가만히 봐 봐요. ‘예수님 오시옵소서. 오시옵소서’ 안 해도 예수님께서 기뻐서 당신이 알아서 가실 수 있는 마음으로 딱 된다면 이거 얼마나 큰 축복이냐? 죽어가는 사람이 살아나는구나. 살리는 역사가 일어나는구나.
그런데 문제는 백부장이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으면 왜 직접 가지 않았을까? 왜 장로들을 보냈느냐 그 말이요. 직접 나가시지. 안 그래요? 뭐 예를 들자면 대통령이 오시는데 마을로 들어간다 그러면, 쉽게 말하면 마을이장이 나와야지 딴 사람이 나오면 되겠느냐 그 말이요. 사람이 에티켓이라 그러나? 뭐라 그래요? 왜 장로들을 보냈을까? 본인 자기가 직접 나오지.
자, 그래서 1, 2, 3. 첫째, 군대의 장관이기 때문에 나갈 수가 없다? 두 번째, 좀 쉬려고. 백 명을 다스리자니 얼마나 힘드냐? 그러니까 좀 쉬어야 되겠다? 세 번째, 지극히 높으신 분에게 감히 나갈 수가 없어서? 또 있어요? 또 있을 것 같아요, 없을 것 같아요? 뭘 보면 없을 것 같아요? 말이 나와서 정답이 탁 나왔으면 ‘아, 이건 그 이상 없다’ 이렇게 들어가야 되거든? 1, 2, 3이라 그러니까 그렇지. 4는 없다. 어쨌든 3가지 중에 어느 것이 제일 그래도 정답이, 사람의 마음이 예수님께 대한 그 자세가 1, 2, 3 중에 몇 번입니까? 3번. 확실해요?
우리 모두 자기가 어려울 때에 ‘누가 감히 자기를 위해서 기도를 해줄까’ 그런 것도 생각을 해 보시고, 말하자면 그럴 정도로 자기가 다른 사람에게 의와 선행을 한 것이 있느냐 그 말이요. 다른 사람을 해코자만 하고 몹쓸 짓만 했으면 내가 어려울 때 누가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 주겠어? 생각을 해봐요. 이게 지금 중보기도 아닙니까? 이게. 사람이 선행이 있어야 그래도 교인들 간에도 ‘아이고 하나님, 그 분 좀 도와주십시오.’ 말하자면 그렇게 들어가지. 다른 사람과 관계는 다 끊어놓고 하나님과 관계성을 어떻게 해? 특히 우리 진리입장에서 볼 때에 누가 자기 기도를 들어주겠어? 안 들어줘. 들어주지를 않아.
누가 내 대신 중보의 역할이나 중보의 기도를 해줄까? 다른 사람을 원망만 하고 돼지같이 자기 욕심만 부리고 살았다면 어려움에 처했을 때에 누가 나를 위해서 중보의 기도를 해줄까? 같은 교인이 해줄까? 없다고 한다면 평소에 어떻게 살은 증거가 나와 있지 않은가? 왜 사람이 그렇게 살아야 되나?
자기가 아플 때에 누군가가 앞뒷집에서 이렇게 조금만 도와주면 그게 그렇게 고맙습니까? 고마우면 또 앞뒷집에서 어려운 일을 당하면 또 그렇게 상부상조. 그게 사람 사는 맛이 나지. 사람이 그렇게 살아야지. 그런데 어려울 때 도와줬더니 그걸로 그냥 입 싹 닦아버렸어요? 그런 사람도 혹 있습니까? 이건 일반상식인데 기독교회에서 특히 우리교인이 그런 식이 된다면 이건 맞아야 된다. 이건. 사람이 안 된다. 맞아야 된다.
우리 모두 자기가 산다는 것은 다른 모든 사람에게 의행과 선행을 해야 할 자기 일인 겁니다. 자기 일이다. 자기 남의 일이 아니고 자기 일이란 말이요. 내 복 받을 것이 저 사람에게 있다 그 말이요. 내 사랑 받을 것이 저 사람에게 있어. 인간을 그렇게 만들어 놨어요. 사람에게 의행과 선행을 해야 할 자기의 일인데 그렇지 못하다면 자기를 사랑하는 주님의 역사가 있겠느냐? 자기에게 주님의 역사는 너에게는 없다. 사랑의 역사는 없다. 미움의 역사밖에 없겠구나.
백부장은 하나님을 섬기는 유대백성에게 기억되는 선한 일을 많이 했구나. 성경에 보니까. 정치목적이 아니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그게 나왔다 그 말이요. 그래서 예수님은 이것을 아시고 들어가신다 그 말이요. 가만 보라고요. 참 축복의 사람이라.
6절-8절: 예수께서 함께 가실 새 이에 그 집이 멀지 아니하여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가로되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치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저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제 아래에도 군병이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제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집으로 향하여 가십니다. 여기서 잠깐 첫째, 예수께서 그들의 말을 듣고 가는 거다? 예수님이 들어가니까 나와서 그 말을 하니까 그 말을 듣고 들어가는 거다? 두 번째, 예수님께서 그들의 부탁을 듣기 전에 처음에 그 고을로 들어가신 것이다? 어느 게 먼저요? 무슨 말인지 지금 멍해요? 어느 게 먼저요? 두 번째. 만일 그들의 말을 듣고 간다면 이제 이유가 어떻게 나오는가 하니 소식을 안 들었으면 안 가신다는 말이 돼버리는 거요. 그렇게 되면 예수님은 그들의 종이 되어, 요 이치를 잘 알아야 돼요. 그들의 종이 되어 심부름을 하는 격이 되고 만다 그 말이요. 예수님께서 듣고 가는 것으로 해석이 돼버리면 그들의 종이 되고 마는 격이고.
그들의 소식을 듣기 전에 이미 백부장의 마음을 아시고 또 백부장이 지금 어떤 어려운 일에 처해졌다는 그걸 익히 미리 아시고 들어가시는 것. 이해갑니까? 지금 이게 무슨 말인지? 이런 역사들이 우리에게 지금 하는 말씀이요. 우리에게 하는 말씀이라. 이 고을에 들어오신 자체가 백부장의 종을 고치러 들어오시는 겁니까?
다른 사람들은 모두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한 구원사역에 수종자들이고 동참자들입니다. 예수님이 오시는 그 길에 뭐 사람이 무슨 말로 하고 이런 걸 전부 다 사람을 낳는 일에 전부 수종자고 동참자고 이게 심부름꾼이다 그 말이요. 살아나는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 그 말이요. 이런 것을 보지 못하면 성경해석은 어려워진다. 자칫 잘못하면 성경해석에서 예수님을 종으로 격하시키고 마는, 사람의 종으로 격하시키고 마는 해석이 돼버려요. 그래도 몰라.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집에 가까이 오셨습니다. 이것을 안 백부장은 참 눈치가 빨라. 그렇지요? 이것을 안 백부장은 자기의 벗들을 또 보내요. 자기의 벗들을 또 보내요. ‘내 집에 들어오심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또 내가 주께 나아가는 것도 감당치 못하오니 말씀만 하옵소서.’ 어떤 마음으로 이 말이 나왔을까? 문제. 잘 들으세요. 그만큼 말을 들었으면 눈치로 이제 때려잡아야지. 자, 문제 1. 방청소를 안 했기 때문이다?
아무개에게 이 목사가 ‘한 번 집에 가봐야 되겠다.’ ‘우리 집에 오시 마세요. 우리 집 더럽고.’ 정말 더러워서 오지 말라는 건가, 아니면 목사님 보시기에 너무 알록달록 꾸며놨기 때문에 비싼 것으로 꾸며놨기 때문에 차마 목사님 집하고 비교하면 이거 엄청나니까 그래서 들어오지 말라는 건가? 이러니 사람이 더 궁금해지잖아. 아직까지 안 가봤어.
그리고 또 우리교인들 심방도 제가 많이 안 갔고, 뭐 어디 산다고 하는 그런 것만 들었지 직접 안 가봤어요. 그러니까 뭐 심방 잘 와야 기분이 좋다는 그런 교인들 입장에서는 ‘목사가 뭐 그런 목사가 다 있냐’ 이렇게 말이 나올 법도 해. 나는 잘 안 가요. 생각을 해봐요. 교인들 집보다 우리 집이 더 못한데 뭘 내가 가면 성질 안 나겠어요? 그러니까 안 가지. 허허허. 아무렴 텔레비전은 있을 테니까. 허허 그런다고 해서 이상하게 생각지 말아요.
내가 누구 누구 집에 갔나? 유OO목사님 집에 한 번 가봤고. 아따, 방 크고 넓데. 허허허. 저래놓으면 유목사님 잠을 못 잘 거야. 유목사님이 좀 그래. 몰라, 또 울는지. 하나님 앞에 펑펑 울는지. 또 누구 집에 갔나? 별로 안 간 거 같아. 평택에 장OO집사님 가버렸지? 거기 가보고. 또 누구 집? 내가 간 집이 어디요? 본인들도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요.
그 다음 두 번째, 병이 든 종의 방에는 냄새가 고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들어오지 마십시오’ 그랬다? 세 번째, 예수님께로 병이 옮아올까봐 걱정이 돼서 그랬다? 그런 말도 혹 있을 수도 있겠지요? 차마 ‘예수님, 들어오시면 병 옮습니다’ 노골적으로 이 말은 못하고 ‘들어오지 마옵소서.’ 네 번째, 유대백성의 세금으로 자기 집을 궁궐처럼 지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 다섯 번째, 그 전부터 예수님의 교훈과 이적과 기사를 익히 들었고 ‘어떤 분이시다’ 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인격적으로나 능력적으로나 지극히 거룩하고 높으신 분을 감히 어떻게 백부장 자기와 비교할 수도 없거니와 하늘로부터 오신 분을 어떻게 죄인의 집으로 라는 마음으로 그 말이 나온 거다? 자 1, 2, 3, 4, 5 중 몇 번째요? 어떻게 정답을 잘 아는지 모르겠어. 다음에는 순서를 바꿔봐야지.
예, 그 백부장의 심성을 우리가 느낄 수 있겠지요. 참 아름답습니다. 예, 주님 보시기에도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당신이 스스로 알아서 가시는구나. 부르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알아서 가시는구나. 참 심성이 곱다. 신앙심성이 참 곱다. 그래서 성경 해석자들이요 백성의 지도자들인 장로들을 보낸 것은 백부장 자기보다 높은 분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접견하는데 예의를 갖춘 것이 아닌가? 맞잖아요? 예의를 바로 갖췄구나.
또 ‘벗들을 보내어 내 집에 들어오심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말씀만 하옵소서.’ 예, 거기 보니 ‘저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제 아래에도 군병이 있으니 이더러 가라면 사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제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군대는 명령대로 움직인다고 하는 이치를 들어서 예수님께서 말씀만 하셔도 그대로 이루어진다고 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단 말이요. 참 믿음 좋잖아요? 세상에 이런 믿음이 또 있을까?
오늘날 대부분 보면 인간 자기의 뜻, 세상 자기의 뜻대로 이루어 달라고 하는 기도가 많다. 나의 구원을 위해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현재 나의 구원을 위해서 주님 당신의 뜻대로 하옵소서. 내가 알든 모르던 주님의 뜻대로 나에게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이루어지고 있는 겁니까? 모르면 모르는 대로 깨닫게 하는 사건을 보내서, 알면 아는 대로 이룰구원 면에 긍정적으로.
그 가만히 생각해봐요. 모른다고 해서 그냥 팽개쳐있는 게 아니다. 거기에는 또 어떤 사건 환경을 보내서 정신을 차리게 해서, 그 참 가만히 보면 예수님이 어떻게 잘 아시고 이렇게 하시는지? 그래서 백부장 종의 집을 찾아간 주님이 오늘날 자기에게도 그렇게 역사를 해주셨으면 좋겠지요? 마음이 그러면 지금부터라도 하나님께 대한 신앙심성을, 그리고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백성에게 이게 지금 다 들어 있잖아요. (계속)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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