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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믿는 자들에게 주고 가신 것

마가복음 크리스............... 조회 수 340 추천 수 0 2020.08.30 15: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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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16:14-20 
설교자 : 김기성 목사 
참고 : 말씀의 숲 교회 네이버- 말씀의 숲 교회(서울 은평) 


마지막 믿는 자들에게 주고 가신 것


(16:14-20)

 

201916일 주일부터 시작한 마가복음 강해가, 오늘 2020830, 8월 마지막째 주일로 마칩니다. 18개월 정도 걸렸구요. 마가복음 강해 62번째로 마가복음 11절로 시작해서 16장 마지막 절까지 마가복음서를 설교했습니다. 처음 설교 했던 제목이 행복한 사람들 이었습니다.

 

오늘 다시 마가복음이 쓰였던 그 당시 상황을 집고 넘어가야, 마가복음이 마무리가 될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에 64년 정도 지났어요. 정말 역사책에도 나올 정도로, 로마에 큰 불이 일어났어요. 로마시의 16개 구역 중에 10개 구역이 넘게 타 버리는 엄청난 화재이지요.

 

얼마 되지 않아 로마 전역에 이상한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어요. 그 당시 로마 황제가, 우리가 잘 알 고 있는 네로 황제 입니다. 이 네로 황제는 술과 파티를 참 좋아했어요. 술기운인지, 그냥 로마 전역에 불을 지르도록 했지요.

 

네로가 불을 질렀다는 소문이 점점 퍼져나가기 시작해요. 많은 시민들의 분노가, 네로 황제에게 향하고 있었어요. 조금 있으면 폭동이 일어날 상황까지 이르게 돼요. 사태가 점점 커지기 시작하니까, 로마 정부에서는, 거짓 정보를 흘리기 시작하지요.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로마 곳곳에 불을 질렀다고, 거짓 소문을 흘리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로마 시민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에 대한 증오심이 불같이 일어났지요. 그로 인해, 많은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시 방화 혐의로 체포되어, 처형되지요. 그나마 살아남은 그리스도인들은 카타콤이라고 하는, 깊은 지하 동굴로 숨어들었고, 더러는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해외로 흩어졌지요.

 

이런 암울한 사건이 일어난 직후에, 그 어두운 동굴 속에서 작은 책자 하나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비밀리에 건네어지기 시작해요. 이 소책자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어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그 책이 바로 이 마가복음이었던 거지요.

 

여러분,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족보로부터 아브람의 후손으로, 예수님을 표현하고 있고요.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탄생사건으로부터 시작하지요. 그런데, 마가복음은 왜 굳이 많고 많은 문장 중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라고 시작했을까요?

 

여러분, 복음이라는 말을 우리는 압니다. 기쁜 소식이지요. 즉 예수님의 기쁜 소식이 시작이 되고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복음을 위해 지금 도망 다니고, 숨고, 동굴 속으로 쫓기고, 고난 가운데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는 기쁜 소식이 된다고 말하는, 마가의 첫 문장이 그들에게는 어떻게 받아들여졌을까요?

 

그리고 마가복음은, 그 기쁜 소식에 대한, 한 사람으로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3)’ 라고 말하면서 세례요한을 마가복음 1장에 쓰고 있어요. 그리고 그의 생애를 쓰고 있지요.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듯이, 세례요한의 마지막은 목이 잘려 소반에 담겨 죽었어요. 여러분, 언제 죽일지도 모르는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이 숨어 있으면서, 손에 손으로 돌아다니는 이 책자의 첫 페이지를 읽을 때, 그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그들이 들고 있는 마가복음이라는 소책자에 소개된 세례요한’! 그와 같이 주의 일을 하다가 목이 잘려 죽고 마는 그 책자가, 과연 그들에게 어떠한 위로가 되었을까요?

 

오늘 마가는 절망 속에서 이 글을 읽는, 그나마 한 줄기 희망을 찾고자하고, 어두운 동굴의 카타콤에서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그들에게, 예수님을 위해 무대 뒤로 쓸쓸히 사라져 가는 것을 복음이라고 말하고, 더 나아가 복 받은 자라고 말하는, 어떻게 보면 어처구니없는 말을 하고 있어요.

 

여러분, 이 말씀을 읽고, 절망 가운데 도망 다니고 있는 그들에게 소망이 생겼을까요? 목이 잘려 끔찍하게 쓸쓸히 죽어간 세례요한의 행복이, 그들 가슴에도 와 다 왔을까요? 예수를 위해 무대 뒤로 살아져가는 것을, 가장 행복한 자라고 믿고, 말없이 사자의 밥이 되어, 죽어 갈 수 있었을까요?

 

그러나 여러분, 그 어두컴컴한 동굴 속에서, 작은 촛불하나 켜고, 마가복음을 읽어 내려가는 그들에게 분명 하나님께서는 다가오셨을 거예요. 그리고 마가복음 첫 장의 이 끔찍한 사건을 읽으면서도, 분명 위로의 소식이 되었을 것이라는 거죠. 여러분 그렇다면 그들에게 다가왔던 말할 수 없는 위로의 힘은, 아마도 우리가 생각하는 위로와 다를 것입니다.

 

여러분, 어쩌면 우리의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요,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 때 어려운 문제를 만나지요. 그리고 그 어려운 문제를 믿음으로 잘 극복하지요. 그리고 극복하고 나서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찾아오지요.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믿음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과연 이것이 믿음의 전부일까? 우리는,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이런 믿음의 울타리에 갇혀 있는지도 모릅니다. 나에게 찾아오는 어려움이 해결되고, 그리고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믿음이라고만 생각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오늘 마가복음은 그 믿음의 한계를 뛰어 넘고 있는 거예요. 마가는 절망 가운데 있는 그들에게, 쓸쓸히 죽어가는 세례요한을 보여주며, 믿음은 극복하고, 이겨내는 것을 뛰어넘어, 믿음은 죽는 것이다!’ 마치 이렇게 소개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믿음의 정의와 좀 다른 것이죠.

 

여러분, 최소한 우리 신앙의 논리로는, 예수님을 위해서 내가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면, 내가 사는 동안에는 내 삶이 편안해야 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따라와야 한다는 논리가 우리들에게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러한 논리는 최소한 마가복음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지요. 마가가 그들에게 주었던, 절망 속의 위로는 죽으라는 겁니다. 세례요한이 형장의 이슬로 살아졌던 것처럼, 너희도 죽으라는 거지요.

 

이렇게 동굴 속에 숨어 있다가, 발각되어, 쓸쓸이 죽어가는 것이 과연 복일까? 여러분 그것이 복 일 수 있다고, 마가는 소개하는 것이죠. 목이 잘려 죽어가는 세례요한처럼, 앞으로 내 뒤에 오실 예수님을 소개하며,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쇄하여야 하리라고 고백하며, 인생의 뒤안길로 쓸쓸히 사라져 버리는 그 세례요한이,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소개하는 겁니다. 성경이 말하는 그 행복의 기준은, 더 넓고, 더 깊은 것이라고 말하는 거지요.

그러니까 내가 믿음으로 잘 살아도, 그냥 쓸쓸히 죽어갈 수 있는데, 그렇게 죽어가는 나를 보고, 세상 사람들은 아무 의미 없는 죽음이라고 말하겠지만,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주를 위해 죽어갈 때, 그것을 복으로 여기고, 가장 잘 산 사람으로 여기겠다는 것이죠.

 

이 작은 소책자를 돌려가며 읽어 갈 때, 그들은 깨달았을 것이고, 하나님은 그것으로 위로를 주신 것이죠. 그리고 주를 위해 헌신하고, 사자 밥이 되어 몸이 찢겨 나가도, 내가 죽음으로 예수가 산다면, 나는 그것을 행복으로 여기겠다는, 그 믿음이 그들을 위로해 주었다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생각하는 믿음은 어쩌면 이 땅에서도 부족함 없이 넉넉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죠. 그렇게 살 수 있어요. 그러나 믿음과 그리고 그에 따른 축복이 단지 이 땅에 있음을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마가복음을 잘 못, 읽고 있는 겁니다. 성경은 주를 위하여 죽어 갈 때, 진정한 행복과 복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주를 위해 죽어가는 것을 우리는 희생이라고 말하고, 헌신이라고, 봉사, 섬김, 더 나아가 주를 위해 열심히 전도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그 희생과 헌신, 봉사, 섬김, 전도 속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은 점점 없어지고, 작아지고, 낡아지고, 기력은 점점 쇠하여 가지만, 내가 죽어 감으로 내 안에 예수가 점점 살아난다면, 그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믿습니까? 내가 죽어가고 내 안에 예수가 산다면, 그것을 정말 행복으로 여길 수 있습니까? (아멘) 그 믿음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그리고, 오늘 마가복음 16장을 마감하면서,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다시 묻는 거예요. 행복하냐고?’ 너는 나를 위해 그렇게 죽을 수 있냐고, 그리고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겠냐고? 다시 묻는 거지요.

 

마가복음 1장은 세례요한으로 시작했던 그 삶을 시작으로, 마가복음의 마가는, 예수님의 삶을 그렇게 16장까지 쓰고 있었던 것이지요. 죄 없으신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 이 땅에 오셔서, 당신도 쓸쓸히 십자가에 고통당하시고, 피 흘려 돌아가시면서, 당신의 죽음으로 우리가 행복해 질 수 있다면, 당신도 그 삶을 살다가 가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이지요.

 

그런데 여러분, 그런 삶을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정말 우리가 힘들어 지칠 때가 있잖아요. 때로는 예수님이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잖아요. 그럼에도 여전히 예수님은 나는 네 곁에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우리를 위로해 주세요. 그것이 바로 17, 18절 말씀에 있어요.(시작)

예수님이 정말 살아 계신지, 가물가물할 때가 분명 있잖아요? 그런데 여전히 우리 곁에 있음을 알고 있으라고 말씀하시는 거지요.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내 이름으로 무엇을 쫓아내고?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 즉 뭐예요? 나으리라 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것이 여전히 예수님이 함께 하신다는 표적으로 우리에게 능력을 보여 주신다는 거예요.

 

믿는 자에게 따르는 표적은, 분명히 우리에게 귀신을 내어 쫓는 능력이 있다고 말씀하시고,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 즉 나으리라고 말씀하셨기에, 우리는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할 때, 그 능력을 체험하며, 가까이 계시는 예수님을 여전히 우리는 경험하고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특정한 사람에게 그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믿고 기도하는 자들에게 이런 표적이 따른 다는 것이지요.

 

특별히, 오늘 저는 말씀을 읽으면서 저의 눈을 크게 뜨게 한 내용이 있었어요. 그전에는 그냥 지나쳤는데, 그 말씀이 계속 저를 묵상하게 했어요. 여러분, 예수님이 떠나시면서 제일먼저 제자들에게 주신 능력이 무엇입니까? 내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는 능력을 주셨다는 거예요.

 

왜 예수님이 귀신을 내어 쫓는 표적을, 당신이 떠나시기 전에 제일먼저 말씀하시고 가셨을까요? 그만큼 귀신의 세력이 우리 곁에 있고, 우리를 붙잡고 있고,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이지요. 여러분, 우리 눈에는 안보이지만 귀신들이 있어요. 우리 눈에 우리가 숨 쉬는 공기가 안 보이지만, 있듯이, 우리 눈에 귀신은 보이지 않지만, 영적인 눈으로는 분명히 귀신이 있어요.

 

여러분 그런 생각해 보셨어요? 그 귀신들이 우리의 발목을 붙잡아요. 어쩌면 귀신을 쫓아내지 아니하면, 우리가 받을 많은 은혜와 축복들이 빼앗기고, 그 귀신들의 방해로, 내가 받아야 할 것을 받지 못하고, 빼앗길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어디를 가든, 어디에 있든 제일 먼저 우리가 선포하고 쫓아내야 할 것이 바로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나를 가로막고 있는 귀신을 쫓아내야 한다는 거예요.

 

선포하지 아니하고, 쫓아내지 아니하면 그 마귀 귀신들을 통해 우리 것을 도둑질 당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여러분, 우리가 살면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마귀, 귀신이 와서 우리의 은혜를 빼앗아 갈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마가복음을 마무리 하면서, 예수님이 우리 믿는 자들에게 주신 첫 번째 되는 표적이, 내 이름으로 무엇을 쫓아내라고요? 귀신을 쫓아내라고 말씀 하시는 거예요.

 

가끔 저에게 직장 생활을 하면서, 또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 목사님 힘들어요! ‘그만 두고 싶어요’ ‘사람하고 관계가 너무 힘들어요.’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것은 내가 그곳에서 받을 은혜를 마귀, 귀신들에게 빼앗기고 있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특별히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곳에 정말 예수 믿는 사람들이 없고, 나 혼자 밖에 없다면, 더 힘들겠지요. 그래서 문을 열고 직장을 들어 설 때, 선포하라는 말씀드리는 거예요. 이곳에 평안이 있을 찌어다. 이곳에 예수그리스도의 평강의 은혜가 있을지어다 선포하라고 말씀드리는 거예요.

 

그 선포로 말미암아, 그곳에 있는 귀신들이 떠나가는 거예요. 한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쫓겨 가는 거예요. 내가 받을 은혜와 축복을 가로채지 못하도록 귀신들의 발과 손을 묵고, 입을 틀어막는 거예요. 떠나갈찌어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선포할 때, 그곳에 있는 귀신들이 떠나가는 거예요.

 

오늘 쫓아냈다고, 내일 없을까요? 아니에요. 우리는 믿는 자들하고만 이 땅을 사는 것이 아니에요. 세상에서는 더럽고 악한 귀신들이 붙어있는 사람과 장소에서 같이 사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교회 안에 있으면, 마음이 평안하고, 예배당 안에 앉아 있으면 평안한 이유가, 이곳에는 하나님이 임재하기에 귀신은 얼씬도 하지 못하는 것이죠.(아멘) 그래서 매일 가는 곳 마다, 여러분이 머무는 곳마다 선포하는 이유가 거기 있는 거예요.

 

예수님이 믿는자에게 주고 가신 것이 있어요. 믿는 자에게는 표적이 따른다고 했어요. 그러니 선포하는 거예요. 그러니 쫓아내는 거예요. 대적하지 아니하면 나가지 않아요. 그곳에 머물러 있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보혈의 피와 성령의 권세로 분명히 귀신을 쫓아내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이 주신 능력이 바로 마귀를 대적하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성경에는 더러운 귀신이 있다고 했고요, 여러분, 이 세상에 얼마나 더러워요. 더러운 생각, 더러운 마음, 더러운 짓들,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나오는가? 귀신에게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악한 귀신이 있다고 말했고요. 미워하게 하고, 싸우게 하고, 평안을 빼앗아 가지요. 그 악한 귀신도 쫓아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어디를 가든, 제일 먼저 마음으로, 선포하고 입으로 선포해야 합니다. 이 악하고 더러운 귀신아 떠나가라, 예수이름으로 선포하니 떠나가라 선포하는 거예요. 특별히 마음이 답답하고, 몽롱하게 하고, 힘들어지면 당연히 선포해야 해요. 더럽고 악한 귀신아 떠나가라! 선포하는 거예요.

 

여러분, 그 귀신이 우리 생활에 얼마나 영향력을 미치기에, 예수님이 세상 떠날 때, 그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 중에 제일 먼저가 너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라 하실까요? 여러분 이 말씀에 귀를 기울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이 땅에 살면서 언제나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가까이 계시는 줄 믿습니다. 능력으로 언제나 다가오시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의 은혜를 가로 막고 있고, 축복을 가로 막고 있는 모든 것에서,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면, 그 귀신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떠나갈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이 땅을 떠나실 때, 우리에게 주고 가신 능력입니다. 우리는 예수 믿기 때문에 행복한 사람인줄 믿습니다. 이 암울한 세상에서 때로는 하나님이 멀리 느껴질 것 같은 그 현실에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고 가신 것은, 함께 하심의 표적과 능력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의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 함께 역사하사 오늘도 저와 여러분에게 능력으로 나타나 주시는 줄 믿습니다. 귀신이 떠나갈 줄 믿습니다. 그 은혜로 그 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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