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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가지 밭의 비유의 해석

누가복음 궁극이............... 조회 수 294 추천 수 0 2020.09.16 14:2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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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8:11-15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811-15: 이 비유는 이러하니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길 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와서 그들로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간 믿다가 시험을 받을 때에 배반하는 자요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리와 일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치 못하는 자요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11: ‘씨는 하나님 말씀이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역사하는 힘이 있다. 살아있는 말씀을 잘 받고 순종해 나가면 자기에게 많은 결실이 보장된다. 예수 바로 믿고 바로 깨달아 나가면 아무렴 어디에 갖다 놔도 넘어지지 않는 보배로운 사람이 된다.

 

5절에서 길가에 떨어진 씨는 그 씨가 사람들의 발에 밟히다가 공중의 새가 내려와서 먹어버렸다. 이것은 비유다. 이런 정도는 누구나 안다. 그런데 이 비유를 가지고 무엇을 말씀하고자 하심인가?

 

12: 길가에 떨어진 씨는 길가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자다. 길가에서 들었다는 의미가 뭐냐? 말하자면 말씀을 들을 때는 옥토 밭에서 들을 일이지 왜 길가에 서서 듣느냐? 즉 온전히 생명 길 안으로 들어와서 들을 일이지, 들어오던지 나가던지 하지 왜 가에서 듣느냐?

 

길가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니까 마귀가 그로 구원을 얻지 못하게 그 사람의 마음에서 말씀을 빼앗아 갔다는 것이다. 이 비유를 들어서 사람의 마음의 정신상태를 말씀하심이다. 이런 마음상태이면 너는 죽도록 믿어도 신앙이 안 되는 것이다. 예언 방언 충성봉사를 해도 그건 아니다.

 

그래서 12절에서 보면 누가 잘못이냐? 길가에 있는 사람 자기가 잘못이냐, 말씀을 빼앗은 마귀가 잘못이냐? 자기가 잘못이냐? 아니지. 마귀가 백배의 결실을 보려고 빼앗아 간 거지? 아니냐?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 너에게 필요한 것이고 구원에 필요한 것인데 왜 길가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느냐? 왜 삐딱선을 타고 듣느냐?

 

길가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신앙정신의 상태를 생각해 보자. 길가라는 의미가 처음부터 신앙의 중요성을 가지고 듣는 것이 아니라 오다가다 만난 것처럼 무슨 소린가?’ 하고 그냥 보통으로 듣는 것을 말한다. 자기의 중요성은 딴 데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소원적으로 주님의 진리노선을 가면서 순종을 하는 게 아니라 옹기종기 사람들이 모여 있기에 무슨 말인가 어디 한 번 들어보자하는 것. 이건 길은 길인데 딴 길이다. 자기는 마음속으로 다른 길을 가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이다. 적중성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남이 볼 때는 적중성 같으나 마음속에서는 딴 길을 가는 경우가 있다. 이건 길가이다. 그 다음에 자기의 마음 밭을 갚아 엎고 씨를 심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듣는 것이 아니라 이 말씀은 다른 사람에게 필요하다하고 생각하며 말씀을 듣는 사람.

 

또 관심을 집중하여 심각하게 듣는 것이 아니라 무관심으로 듣는 사람. 무관심으로 듣는 사람은 예배태도를 보면 거의가 드러난다. 졸거나 장난을 하거나 사람이 부산스럽다. 말씀을 듣기는 듣는데 무슨 책장을 넘겨가면서 부스럭거리고 있다. 또 일단 앉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마냥 조는 사람도 있다. 또 말씀을 전하는 시간에 뭘 하는지 아래를 봤다가 옆 사람을 봤다가 웃다가 통화를 했다가 책장을 넘겼다가 뭘 썼다가 하는 사람도 있다. 또 듣기는 들어도 말씀 따로 자기 따로다. 해 먹을 것은 없고 목사나 해 먹자하는 사람도 있다. 또 말씀만 듣고 주님의 일에 수종 드는 면에 협조나 동참성이 없는 사람도 있다. 이 외에도 많지만 등등의 사람들은 다 길가에서 말씀을 듣는 신앙이라고 하는 정신상태다.

 

길가 사람이라는 게 어떤 거냐? 길가에 있으니 길가 사람이냐? 자기 정신 사상 마음의 상태를 말하는 거다. 이제 말씀드린 사람들은 말씀을 마귀가 빼앗아 갔기 때문이 이룰구원의 수입은 없다. 죽을 때까지 그런 식으로 믿으면 진리 가운데로 못 들어오는 길가에서 듣는 상태의 신앙인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 마귀가 하는 말이 옥토 밭의 백배의 결실의 가치를 모르는 너는 똥 같은 놈이다. 너는 인간도 아니다. 너에게는 백배의 구원이 필요가 없다한다. 얼마나 못났으면 마귀에게 무시를 당할까? 인간 자기의 삶의 가치는 백배의 열매에서 자기의 가치가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 믿는 가치를 어떻게 생각을 하느냐? 말씀을 무시하면 마귀가 자기를 무시한다.

 

바위 위에 떨어진 씨는 6절에서는 났다가 습기가 없어서 말라 죽었다고 했다. 바위 위에 씨가 떨어지면 그 씨는 당연히 말라 죽는다는 것을 상식적으로 안다. 그런데 바위 위에서 씨가 조금 났다. 하지만 바위 위이기 때문에 그 씨는 필연적으로 죽는 것은 너무나도 빤한 일이다. 그 씨는 산다고 기대할 수 없는 아예 죽는 거나 다름이 없다.

 

13: 그냥 비유로만 듣는 것과, 설명을 듣는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비유만 듣고 어떻게 주님의 말씀대로 해석이 나올까? 그래서 우리가 생각해 보면 바위 위에 떨어진 씨와 같은 믿음은 말씀을 기쁨으로 받았으나 시험이 오니 떨어져 나간다. 말씀을 받을 때는 좋다고 확 받아들이면서 목숨이라도 내놓을 것 같다. 그런데 마음 밭이 바위와 같아서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씨가 바위 위에 떨어지면 뿌리가 안 내려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왜냐? 바위 위이니까. 그 밑에 큰 바위가 있으니까. 이는 즉, 인간의 타락된 주관성이 밑에 깔려있으니 말씀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말씀이 그 마음에 어찌 뿌리를 내릴 수 있겠느냐? 말하자면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 자기가 깨어져 옥토가 되어야 하는 것인데 자기는 바위처럼 안 깨지고 다른 사람에게 써먹을 궁리부터 하고 있으니 어찌 그 마음에 말씀이 뿌리를 내리겠느냐?

 

목사가 안 깨어진 상태에서 많이 배워서 가르쳐 주는 것이 목사인 줄로만 안다면 이것은 바위다. 목사님들에게 바위가 정말 많다. 바위는 큰 덩어리가 엄청나게 들어있는 거고, 돌짝 밭은 사소한 것이다.

 

이런 목사는 자기의 정신 사상으로 인해 자기가 뿌리가 내리지 못하는 신앙이라고 하는 것을 인식을 못한다. 그러면서도 순교라도 할 것 같은 그런 자기를 알아달라고 한다. 또 이런 목사는 번민을 하면서도 말씀은 달게 받는다. 그리고 사람들이 다른 복음을 좇아가는 것도 안다. 그런데 자기는 인내심이 없다. 그래서 자기 성격 성질에 안 맞으면 싸워버린다. 목사들 세계에서 이런 게 참 많다. 이런 목사는 미혹의 영 귀신의 가르침을 잘 따라간다. 종교적인 명예 영웅심이 대단히 강하다.

 

또 이런 목사는 인도자 자기는 바위 덩어리이면서 자기 교회에 사람들이 모이면 자기가 교인들을 옥토 밭에서 백배의 열매를 맺는 자들로 만들 것이라고 생각을 할 것이고, 또는 인도자 자기는 옥토 밭에서 열매를 맺은 자로 생각을 한다. 그리고 이런 목사는 물욕심도 대단하다. 그리고 목회를 자기의 본분으로 여기지를 못하고 밥 먹고 사는 하나의 수단으로 안다. 영의 눈으로 신앙의 성격이나 성질을 보지 않으면 이건 모른다.

 

그 다음에 이런 목사는 시험을 받을 때 배반을 한다. 작은 시험 하나도 못 이긴다. 왜냐? 뿌리를 내리지 못했으니까. 그러나 실제로는 자기의 주관성이 강해서 자기를 시험하는 것들이 전부가 자기의 마음에 안 맞기 때문에 기분이 상해서 떨어져 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목사님들 세계에서 각자가 떨어져 나가는 것은 상대가 비진리 때문이 아니라 자기들끼리 성격 성질이 안 맞아서, 각자 속에 세상이 가득 들어있어서 서로가 맞지를 않으니 서로가 기분이 상해서 떨어져 나가는 거다.

 

그러니까 진리냐, 비진리냐하는 질과는 상관없이 각자의 속에 추구하는 세상성이 있기 때문에 각자가 자기의 그 세상을 키우기 위해 각자가 떨어져 나가서 그 중에 추구하는 그 세상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또 다른 무리를 이루는 것이다. 그래서 총회신학이 몇 개냐? 장로교나 감리교나 성결교나 구세군이나 오순절이나 입을 벌리면 냄새는 다 똑같다. 전부는 세상이다. 그게 공통성이다. 그런데 그 공통성이라고 하는 신앙의 성격이 신앙성격이 아니라 사람의 성격에 따라 제 마음에 안 맞으면 떨어져 나가는 거다.

 

이런 목사는 분명히 시험에서 떨어진 것인데도(진 것인데도) 자기는 시험에서 떨어진 것을 전혀 의식을 못하고 남의 말만 하고 돌아다닌다. 이런 목사는 자기의 물질 면에 손해가 난다거나 누가 자기의 체면을 깎는 얘기를 했거나 무시하는 말을 했다면 그만 기분이 상해서 싸우고 뚝 떨어진다.

 

목사만이 아니라 예수 믿는 사람이 자기 마음속에 이런 바위가 들어있으면 그의 신앙은 뿌리를 내릴 수가 없다. 이런 사람은 백배의 구원의 열매보다 자기 인기 체면 영웅성 허욕성이 잔뜩 들어있다. 너무나도 많이 볼 수가 있다.

 

14: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 7절에서는 가시가 기운을 막아버리니 자라지를 못했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도 다 안다. 가시밭에 씨를 심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14절에 보니 이 자 역시 말씀을 들은 자이다. 길가 밭이나 바위 위에 떨어진 거나 다 말씀을 들은 것이다. 씨가 떨어졌다는 것은 일단은 생명의 말씀을 들은 것이다.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 역시 말씀을 들은 자인데 세상 것이 들어있는 자이다. 이런 자는 지내는 중에 이생의 염려와 재리와 일락에 기운이 막혀서 온전히 결실치 못한다고 했다.

 

이생의 염려란 이 험난한 세상에서 어떻게 먹고 마시고 살까하며 염려하고 근신 걱정을 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늘 생계수단에 무게가 잡혀서 그 위주로 교회에 가기도 하고 안 가기도 한다. 재리와 일락이란 재산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죽기 전까지 기쁨과 향락과 쾌락으로 세계유람이나 하고 가자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전기세 주민세 내는 것을 걱정을 하고 연탄 값 올라가는 것을 걱정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백화점 쇼핑하는 걸 못했다고 걱정을 하고 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이런 이방인들처럼 살고 있다면 이는 가시덤불 속에서 사는 것 같아서 이런 사람은 결실이 안 된다는 것이다. 소원과 목적을 바꾸지 않는 한 결실이 없다는 주님의 말씀이다.

 

15: 옥토에 떨어진 씨. 좋은 땅에 떨어진 씨. 8절에서는 백배의 결실을 맺었다. 좋은 땅은 하나님 보시기에 심성이 아름다운 마음이요,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는 것을 말한다. 이런 마음은 아무리 고달프고 고생스러워도, 환난과 핍박을 받아도 진리말씀에 순종하고 약속된 말씀을 믿고 참고 견디고 인내하며 백배의 결실이 된다. 왜냐? 좋은 땅이니 그렇다.

 

예수님께서 비유와 해석을 해 주셨는데, 비유는 세상 사람들 누구나 다 경험되고 아는 것을 들어서 말하고자 하는 뜻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네 가지 밭의 비유와 해석을 통해서 이 네 가지 밭들이 곡식이 잘 될는지 안 될는지를 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상식적인 것을 비유로 써서 네 가지 밭을 말씀을 하셨고 해석을 해 주심으로 해서 앞으로 이 사람이 열매가 있다. 없다하는 것을 정확히 알게 했다. 그러니까 자기 마음 밭을 점검을 잘 하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을 하신 것을 다들 알고는 있으나 문제는 자기 마음 밭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네 가지 밭의 비유의 뜻은 한 마디로 좋은 땅에서 백배의 결실을 내려면 길가에서 빙빙 돌고 서 있지 말고 옥토 밭으로 적극적으로 들어와야 하고, 바위는 자기 주관성이 깨어져 나가야 하고 옥토 밭에서 순종자 되어야 하고, 가시덤불 밭은 불을 질러버려야 한다. 불타질 것을 없애버려야 하고 그의 나라와 의를 찾고 구해야 한다. ‘세상 것이냐, 천국 것이냐하는 선택을 바로 하고 살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옥토에서 많은 열매가 열린다는 것은 알면서도 자기 마음 밭의 성질도 모르고 옥토 밭의 열매의 가치성도 모른다면 그런 자는 하나님 앞에서 가치 없는 인간이 되고 만다. 이건 인간 삶의 실패요 망했다고 보는 것이다.

 

길가에서 서성거리는 것과 같은 신앙정신을 가진 자들끼리 만나서 단체를 만들면 모두들 옥토 밭의 열매인양 착각을 할 것이다. 바위처럼 자기의 기존적 타락적 주관성이 강한 자가 신학교를 만들거나 또는 교인들이 점점 많아지면 자기가 옥토 밭의 열매인 것으로 착각을 할 것이다. 이런 걸 얼마나 많이 보느냐? 또 자기 마음 밭이 가시덤불과 같으면서도 육신이 살기가 조금 나아지면 자기가 옥토 밭의 신앙인양 착각을 하고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셨다고 착각을 하며 살 것이다.

 

이 마지막 시대에 착각 속에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수도 없이 많다. 이런 자들은 비유밖에 모르는 자들이다. 예수님의 해석 속에 들어있는 신앙사상의 마음 밭을 모르면 너는 비유밖에 모르는 사람이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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