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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8:16-17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816-17: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평상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들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고 감추인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16: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는 사람이 있느냐? 그릇으로 덮을 바에야 뭐하려고 켜느냐? 등불을 켜서 침상 밑에 두는 사람이 있느냐? 정신병자가 아니면 세상천지에 그런 사람은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졌으면 그대로 살아야지 밥그릇으로 덮듯이 덮어버려서 그 말씀이 자기에게 무효화 되게 하면 자기가 어떻게 될까?

 

등불을 켤 때는 들어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보여지게 하려고 높은 곳에 둔다. 높은 곳에 두면 사람도 보여지고, 나가고 들어가는 사람의 발밑에 무엇이 있는지 보여서 걸려 넘어지지 않게 된다.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반대로 한다면 정신이 바로 된 것이 아니다.

 

빛이 있어서 보여야 누군지 알게 되고, 누군지를 알아야 말도 하게 되고, 말을 하게 되니 사람을 알게 되고, 사람을 알게 되니 일을 같이 하든지 말든지 하게 된다. 어둡다면 사람을 알아볼 수가 없다. 쌍방 간에 다 밝아야지, 얼굴이 확 나타나야지, 인격 면에서 확 나타나야지, 자기의 신분이 바로 나타나야지.

 

영적인 면을 두고 이렇게 생각할 때 여자든 남자든 머리로 자기 얼굴을 가리지 말아라. 면상이 확 드러나게 하고, 품위가 드러나게 하고, 인격이 드러나게 하라. 솔직한 그 말이다. 머리야 자기 취미대로 하겠지만 왜 자기 마음을 인격을 가리느냐? 그러면 상대가 못 알아보고 대화가 안 되고 피해버린다.

 

남의 말을 잘하는 사람은 자기 말은 잘 안 한다. 숨겨져 있다. 또 이 사람 저 사람을 잡고도 아무 말도 안 한다면 그 사람 속에는 엄청난 꼬챙이가 들어있는 거다. 또 너무 말을 함부로 하면 그 사람은 나중에 그 말을 어떻게 수습하려고 그러느냐? 이런 사람은 말하자면 자기 속에서 말이 정립이 안 된다. 어떻게 보면 미쳤다. 사람이 때와 장소에 따라서 말이 바로 돼 나간다면 좋은 것이다.

 

말을 안 하는 사람과 사귈 수 있느냐? 못 사귄다.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과도 사귀지 말라. 타락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기존적인 성격을 못 고쳤다. 밥 먹고 돈 벌고 사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인격 면에서 못 고쳤다. 인간의 세상에는 왜 그렇게 조심해야 할 것이 많은지? 선악과 따먹고 나온 타락된 세상이기 때문에 그렇다.

 

사람이 어둡다면 그 사람을 알아볼 수가 없다. 그 사람 마음속에 사기꾼이 끼었는지 도둑놈이 숨었는지 짐승이 숨었는지 알지를 못한다. 빛이 밝으면 기분이 좋다. 시간적인 밤에는 등불 빛이 있어야 사람을 볼 수 있고 길을 찾아갈 수 있다. 죄악 된 캄캄한 세상에서는 진리 빛이 있어야 사람을 구별할 수 있고, 정신 마음 사상을 구별할 수가 있고, 캄캄한 나그네 인생길을 무사히 갈 수가 있다.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한 학박사라도 사건 속에 들어있는 사람의 마음을 몰라서 감옥 속에 갇히기도 한다. 이건 나그네 인생길에서 함정에 빠진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그런 정도는 안다. 그런데 문제는 기독교의 가르침 속에, 교회들의 가르침 속에 함정이 있다는 점이다. 어디든지 함정이 있다.

 

이놈의 마귀가 어디든지 돌아다닌다. :에 보니 목사님 뒤에도 턱 앉아있다. 안 가는 곳이 없다. :에 보니 문자적으로 볼 때 하나님 앞에도 턱 있다. 물론 우리들에게 깨닫게 해 주시려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있다고 해서 다 교인일 것이라고 여기지 말아라. 보기에는 다 교인들인데 마음속에 마귀 같은 마음도 있고 마귀 같은 목사도 있다. 우리의 마음을 가르쳐 주려고 그렇게 기록을 해 놓은 것이다.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는 것에 중점을 두며 살고 있는데 이것이 아담 타락 후에 그대로 내려오고 있는 정신들이다. 예수를 믿는 것은 소원 목적적으로 그렇게 살지 말고 하늘에 소원 목적을 두고 사는 것이다. 먹고 마시고 일하는 것은 삶의 목적이 아니라 참 사람으로 만들어지는데 방편들이다. 그렇게 목적을 두면 사람의 숨이 막힌다.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깊음과 흑암으로 아무 것도 분별할 수 없는 이 지구에 먼저 햇빛도 달빛도 아닌 빛을 만들어 놨다. 그 다음에 모든 것을 창조하신 것을 보면 우리 인간에게 마음의 빛을 정신의 빛을 먼저 비춰줘야 된다고 하는 것을 우리들에게 깨닫게 해 주신다.

 

빛을 만들기 전에 처음에 깊음과 흑암에 있었다는 것은 예수 믿기 전에 우리 마음속에는 구별이 없었다는 것을 은밀계시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거다. 안 믿는 사람들은 이걸 모른다. 예수를 믿어도 창:의 그 말씀 속에 든 은밀한 뜻을 모르면 자기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를 모른다.

 

예수 믿기 전에 자기 속에 구별 분별이 있었느냐? 신령한 것과 아닌 것을 구별 분별할 수가 있었느냐? 없었다. 언젠가 예수를 믿고 난 뒤에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말씀의 이치로 서서히 자기 속에서 깨달아진 것이다. 이 깨달음은 햇빛이나 달빛으로가 아닌 말씀의 빛으로 되는 거다. 그런데 예수를 믿지만 아직까지 자기 속에 빛이 비취지 않는 자가 허다하다. 그러니 구별을 못한다. 뭘 보면 아느냐?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알고, 예수 믿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이 세상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만들었고, 성도들의 구원을 위해서 이 세상을 잡아 돌린다는 것을 안다. 그것도 우리교인이나 알지 딴 교회 교인들은 잘 모른다. 그런데 우리교회 교인 중에도 이걸 듣고서도 실감이 안 가는 자도 있다. 자기가 잘나서 돈 벌고 먹고 마시고 건강한 줄 안다. 그런 사람이 왜 예수를 믿느냐? 예수 믿고 등불이 없이 사는 것처럼 살 바에야 왜 예수를 믿고 왜 깨달으려고 하느냐?

 

예수 믿는 정신이 비 맞은 소똥처럼 되어있으면서도 일반사회에서는 너와 같은 사람들 틈에서 네가 드러나게 살 런지 모르겠지만 참 사람다운 사람 속에서는 너는 촌놈이 되고 만다. 여기서 촌놈이라는 것은 촌에 산다는 게 아니라 못 배운 사람처럼 산다는 것이다. 예수 믿으면서 이 좋은 진리의 말씀을 가지고 왜 욕을 얻어먹으면서 살려고 하느냐?

 

17: 자기의 숨은 것이 나타난다는 것을 안다면 자기가 그렇게 살겠느냐? 자기는 모른다. 모르는 그것이 나타나고 있는 데도 모르고 있다.

 

숨은 것이 드러나고 감추인 것이 나타나게 되는 것은 빛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다. 빛 앞에는 좋던 나쁘던 무엇이던 다 나타나게 돼 있다. 색깔은 색깔대로, 크기는 크기대로, 부피는 부피대로 다 나타나게 돼 있다.

 

세상창조에서 보면 햇빛 달빛도 아닌 말씀으로 빛을 만들어 놓고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라고 했다. 햇빛 달빛도 아닌데. 빛을 낮이라 칭하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했다. 그러니까 먼저 말씀으로 된 빛 즉, 밝음이 있고, 이 밝음이 아닌 것은 어두움이라, 밤이라그렇게 하고 창조가 들어간다.

 

빛과 어둠을 나누사.’ 성경에 보면 빛의 자녀가 있고 어둠의 자녀가 있다. 낯의 자녀가 있고 밤의 자녀가 있다. 그러면 자기는 예수 믿는 것을 봐서 어디에 속하는 것 같으냐? 낮의 자녀라면 자기의 신분 정신 사상이 확 드러난다. 밤의 자녀는 컴컴하다. 안 드러난다. 안 드러나는 그게 밤이다. 확 드러난다는 것은 단순히 교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기 신분 정신 사상 마음 소원 목적 취미가 대낮같이 드러난다는 말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뉴스나 테레비를 보면 죄인이 재판을 받는걸 보는데 이건 사람 앞이 아니라 법 앞에 선 것이다. 법 앞에 서면 잘한 것과 잘못한 것을 다 드러내야 한다. 그래야 상을 주던지 벌을 주던지 한다. 그런데 이 타락된 세상에는 법을 속이는 사람도 있다. 그런 것처럼 예수 믿는 사람은 어디를 가나 하나님 앞인데 이 하나님을 속이는 자가 있다. 사실은 인간이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는 건데 자기 스스로 속이면서 산다. 스스로 속이면서 사람의 행동은 마음에 들어있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에 든 대로 행동이나 활동이 그렇게 나타나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명확하게 구별 분별이 돼야 한다. 자신을 구별해야 한다. 내가 낮에 속한 사람인지 밤에 속한 사람인지, 아니면 박쥐같은 사람인지?

 

둘째 날에 보면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이 나누어졌다. 궁창을 하늘이라 칭했는데 신비롭게도 궁창을 가지고 위 아래로 나눴다. 선을 긋는다거나 새끼줄을 쳐놓은 게 아니라 궁창을 가지고 위 아래로 나눠놨다. 궁창은 아무 것도 없는 허공인데 이것이 위아래를 나눠놨다. 참 신비롭다.

 

사람의 마음이 무엇으로 나누어지느냐? 말씀으로 나누어진다. 말씀으로 이쪽저쪽을 나누는데, 궁창 위아래라고 하는 것은 눈에는 안 보이지만 질적으로 다르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같은 궁창이지만 궁창 아래로 떨어지면 땅이고, 위로 올라가면 하늘이라. 그래서 물질세계에서 가만히 보면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있으면서, 땅의 것은 우리의 구원을 깨달으라고 아주 다양적으로 이것보다 이것이 더 좋고, 이것보다 이것이 더 높고하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면 예수 믿는 자기는 이 세상에 살면서 뭘 깨달았느냐?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은 창조물을 보고 뭘 깨달았느냐? 이태백이처럼 달이 뜨면 술잔을 기울이라고 뜨게 한 거냐? 자기가 사람이면 사람으로서 내가 누구냐? ‘질이 어떻고, 성격이 어떻고하는 것을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깨달으면 얼마나 좋을까? 예수 믿는 자기는 얼마나 깨달았느냐? 배가 고프면 그냥 배고픈 것만 알고 먹을 것을 찾으러 가는 자기냐?

 

뭘 먹을까하며 먹을 것을 찾으러 다니는 사람보다도 한 편으로 보면 예능 쪽으로 나가는 사람이 훨씬 기분 좋게 산다. 그런 걸 보고 아무리 타락된 세상이지만 저 사람은 저렇게 사니 참 좋겠다. 그런데 나는 왜 이럴까하는 게 있다. 세상을 보면서 그런 생각들을 한다. 그러면 예수 믿는 자기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살피면 모르겠느냐? 그건 없이 세상만 쳐다보며 나는 왜 이런가?’ 하고 있느냐? 누가 자기를 그렇게 만들어 놨느냐? 자기가 그렇게 만들어 놓은 거다. 부모를 탓하는 것은 남이 하는 거지 자기가 할 일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나보다 더 험악한 환경에서도 그 환경을 뛰어 올라서 나보다 훨씬 더 좋게 사는 것을 사회에서도 본다.

 

셋째 날은 아래의 물을 한 곳으로 모이게 하고 모인 물을 바다라고 칭했고, 드러난 뭍을 땅이라고 칭했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것은 네덜란드는 바다보다 낮은데 왜 바닷물이 낮은 그곳으로 모이지를 않을까? 참 신비롭다. 그리고 땅에서 형형 각색의 각종 씨를 맺는 나무와 채소를 나게 했다. 이건 생산이다.

 

그러니까 먼저 사람이 빛과 어둠이 구별되면 그 다음에 나오는 것은 이 그릇은 부엌으로 가고, 이 그릇은 방으로 가고, 이 그릇은 찬장으로 가고하며 정리정돈을 하게 된다. 밝아야 그게 나온다. 그래서 하나님 당신이 세상을 창조해서 우리에게 빛으로 통해서 깨닫게 해준다. ‘, 이런 정신은 내버려야겠구나. 이런 것은 나에게도 안 좋고 남에게도 안 좋다. 이런 것은 나에게도 좋고 다른 사람에게 좋구나한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이걸 보면 큰 틀에서 나눠놓고 난 그 다음에 또 지극히 적은 면으로 나누어지면서 창조가 되게 하는구나하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사실 신앙의 세계도 보면 그렇다. 창조적인 신앙을 가지고 사는 자도 있고, 일을 찾아서 일을 하는 사람도 있고, 일을 만들어서 일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이 중에 어떤 사람이 좋으냐?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고 죽는 게 낫다. 가족 중에 일도 안 하고 딩굴딩굴 하면 나가서 죽으라고 한다. 낮의 사람은 생산적으로 산다. 이런 사람은 희망이 있다.

 

넷째 날은 궁창에다 해와 달과 별들의 각종 천체를 만들었다. 그리고 광명으로 사시연한과 징조를 이루게 했다. 뿐만 아니라 해로 하여금 첫째 날에 만든 그 빛으로 낮으로 삼고 그 낮을 주관하게 했고 밤에는 그 어두움을 달이 주관토록 했다.

 

여기엔 계시가 들어있다. 해가 지면 캄캄해지는데 해가 지면 캄캄해지도록 되는 이걸 해가 주관토록 했다. 첫 날에 빛을 만들었는데 이 빛은 해와 달빛이 아니다. 그런데 그 빛을 해가 주관토록 했다고 한다. 참 신비롭다. 이걸 계시적으로 생각을 해보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빛 된 그 분이 낮에 속한 성도를 주관하는구나그렇게도 볼 수 있다. 진리의 등불이 꺼져 있으면 밤의 사람이다.

 

다섯째 날에는 바다에는 형형 각색의 어류와 땅 위에는 각종 조류를 번성케 했다. 이건 다 생산이다. 적지적소에서 생산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잘 믿는 나라에는 땅을 보고 , 여기엔 뭘 심고 여기엔 심었으면 좋겠다할 수 있는 머리를 줬다. 그래서 어느 나라가 창조 때의 산천초목이 대부분 그대로 있으면서 백성들이 사는 것은 그렇게 궁핍하지 않으냐? 한국은 전부 깎아 놨다. 이게 다 돈 때문에 그러는 거다. 백성들의 머리가 튀었으면 정말 산천초목이 몸살을 앓지를 않는다.

 

여섯째 날에는 각종 형태의 모든 동물을 만드셨고, 특별히 당신의 모양과 형상대로 인격체로 오각과 오감성을 가진 사람을 만들어서 땅 위의 모든 것을 통치하고 지배하고 다스리고 편만하라는 축복을 주었다.

 

이렇게 해서 인간이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온전한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일에 하나도 빠짐없이 다 갖추어 놓았다. 못난 자기를 사람 바로 만들고 깨닫게 해주기 위해서 다 갖추어 놨다. 그러니 자기 욕심만 부리며 이기적으로 살지 말고 이걸 알고 살아라.

 

사람이 만들어진 창조 당시에는 두 사람이 벗고 있었다. 하나님 앞에서나 부부 간에나 거짓이 없었다. 벗었어도 부끄러움 없었다는 것은 거짓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먹으라는 생명과는 안 먹고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고 가르쳐 줬음에도 불구하고 그 선악과를 먹었다. 선악과를 먹은 뒤에는 타락되고 저주를 받았다. 이로 인해서 우리 인간이 하나님 앞에나 인간 앞에 무엇을 자꾸 감추는 존재가 돼 버렸다. 죄를 지으니 변명이 많고 감추는 버릇이 생겼다. 우리에게는 그런 것이 없느냐? 거짓말도 많이 하고, 부모 앞에서 거짓말을 하고, 어두운 곳으로 숨기도 하고, 거짓으로 위장하고. 이건 참 슬프고 고통스럽고 불행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심에는 분명한 원인 동기 목적이 있는데 그 목적에 비추어 볼 때 자기가 자기에게 스스로 어떻게 대하고 살았는지? 하나님을 발견하면 하나님 앞에 자기를 세워놓고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의 자리에 내가 서야 할 텐데, 그 참 나를 생각하면서 현재 자기를 또 생각을 해봐라. 현재적 자기가 자기 속에 들어있는 자기를 생각할 수 있는 거다. 이게 참 신비로운 거다. 짐승은 그런 게 없다.

 

현재적 자기가 과거의 자기를 자기 앞에 데려올 수 있고, 미래적 자기를 현재의 자기 앞에 데리고 올 수도 있다. 그래서 비교할 수가 있는 거다. 우리교회 교인들은 자기를 잘 보고 고쳐나가야 한다. 말씀에 의해서 자기를 과거 현재 미래적으로 보면서 자기의 과거가 보이면 현재에 바로 살고 미래적으로 각오와 결심을 현재적으로 가져야 한다.

 

자기가 자기에게 어떻게 대하고 살았는지? 자기가 다른 사람에게 물질을 어떻게 다루며 살았는지? 자기 물질을 가지고 자기에게 어떻게 썼는지? 해가 되게 썼는지? 자타에게 사건을 어떻게 다루고 살았는지? 내가 무엇의 뒤에 숨고 살았는지? 내가 아직까지 무엇을 숨겨놓고 살았는지? 그 분의 빛 앞에는 다 드러나게 돼 있다. 마지막은커녕 그 때까지 미룰 필요가 없다. ? 자기에게 당장이라도 사건적으로 오는 날에는 네가 꼼짝없이 걸리게 돼 있다.

 

인간 모두는 출생의 목적과 나그네로 사는 재세기간의 존재목적을 확실히 하고 살아가야 한다. 내가 영원히 존귀 영광으로 살 곳인 실상세계와, 불타질 이 현상세계를 분명히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이제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빛을 창조하셨듯이 우리에게 빛 되신 생명의 말씀을 주셨으니 이 빛을 따라 영인성장과 영능의 실력 면에서 많이 생산이 돼야 한다. 첫째는 자기 속에서 생산이 돼야 한다. 자기 속에서 구별 분별이 되고 생산이 돼야 하고, 그리고 자기가 사는 주위 환경에서 자기가 신앙으로 사는 그것으로 인해 생산이 돼야 한다. 세상에서 사망적으로 소비적으로 되는 인간으로 살지 말아라.

 

그런 면에서 교회들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빛을 더 밝게 더 높이 올려야 할 것인데 진리생명의 빛을 자기 밥그릇으로 덮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예수 믿으면서 바로 믿기는커녕 자기 물질축복, 자기 요구조건 들어달라는 것, 먹고 마시는 것에 예수를 믿는 것은 자기 밥그릇으로 덮는 것과 같다.

 

이러면 어떻게 되겠느냐? 예수 믿는 것을 부자 되는 목적으로 믿는 것은 자기 밥그릇으로 덮는 겪인데 그러면 그 사람이 사람을 알아보겠느냐? 너도 어둡고 다른 사람도 못 알아본다. 그러면 앞으로 네가 어떻게 살 것이냐?

 

자기 육신이 먹고 마시는 생활수단으로 예수를 믿지 말아라. ‘너희들은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을 구하지 말라고 했다. 주신 달란트를 땅에 묻은 그 자를 주님이 책망을 했다. 거짓된 교회 인도자들은 예수 믿는 것을 세상부자에 붙여서 말을 한다. 이건 밥그릇을 가지고 덮는 겪이다. 그 사람은 등불이 꺼진 사람과 같다. 밝지를 못하다. 항상 염려 근심 걱정에 어둡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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